목회와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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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2019년  06월호 교회의 활력, 그 정의와 측정지표 침체 교회 출구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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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활력을 위해선 무엇보다 담임 목회자가 활력을 유지해야 한다.


우리는 “활력이 넘치다”, “활력을 잃다”, “활력을 불어넣다” 등의 표현을 즐겨 사용한다. 이러한 표현에 사용되는 ‘활력’(活力)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활력의 사전적 정의는 “살아 움직이는 힘”이다. 싱싱하고 힘찬 기운이 넘쳐서 생명력을 뿜어내며, 창조적으로 꿈틀거리는 힘을 활력이라 할 수 있다. 터지기 직전의 꽃봉오리가 가진 잠재력이 활력이다. 갓 태어난 아이를 안고 있는 부모에게서 감지되는 생명력이 활력이다. 일반적으로 새로운 생명이 창조되고 잉태되는 현장에는 의례히 활력이 넘친다.

모든 생명체에게는 활력이 필요하다. 특별히 사람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그래야만 주변에 생기를 내뿜게 된다. 활력 있는 사람은 창조적이고 생산적이고 발전적이다. 간혹 활력이 없이 단지 그 생명을 유지하는데 급급한 사람도 있다. 우리는 그러한 사람을 의학적으로 식물인간이라고 부른다. 식물인간까지는 아니지만, 활력이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력증과 우울증 등 심각한 정신과적 비정상에 시달린다. 그렇다. 우리 인간에게, 아니 모든 생명체에게는 활력이 필요하다.

이제 이 ‘활력’을 교회에 적용해 보기로 하자. 성경은 교회를 생명체 혹은 유기체라고 말한다. 교회는 살아 있는 유기체다.1 교회는 생명체다. ‘포도나무와 가지’(요 15:5), ‘몸’(골 1:18), ‘지체’(고전 6:15) 그리고 사도신경의 ‘성도의 교통’ 등은 교회가 생명체임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표현들이다. 교회가 생명체라면 교회 역시 활력을 필요로 한다. 활력 있는 교회가 살아 꿈틀거리며,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한 생산적인 도구가 된다. 단지 존재하기에 급급하고 만족하는 ‘식물 교회’는 사실은 죽어가는 교회로서 존재 자체가 무의미하다. 

교회 활력의 정의

교회의 활력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교회를 꿈틀거리게 하는 힘”, “무언가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고조된 분위기”,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무언가를 이루겠다는 구성원들의 고양된 열정과 의지” 등으로 정의할 수 있다. 즉, 교회의 활력은 “교회에 내재된 교회를 이끌어 가는 어떤 스피릿”(Spirit)이다. 교회의 활력은 교회의 건강성과 교회의 성장 가능성을 보여 주는 힘이며, 교회 구성원들의 헌신과 희생의 정도를, 나아가 구성원들의 교회 생활에 따른 행복의 정도를 보여 주는 지표가 된다. 

이러한 의미의 교회의 활력을 팀 켈러는 ‘운동 역동성’(movement dynamic)2이라고 표현했다. 켈러에 의하면 모든 교회는 ‘운동 역동성’과 ‘제도성’이라는 두 종류의 힘에 의해 움직인다. 두 힘은 교회 안에서 서로 대치하는 힘으로서, 운동 역동성이 강해지면 제도성이 약해지고, 제도성이 강해지면 운동 역동성이 약해진다.

제도성이 강한 교회의 특징은, 첫째 규칙과 정책을 통해서 안정적인 행동 패턴(전통)을 만들어 내며, 둘째 도덕적 의무가 강조되고, 셋째 권위에 대한 순종이 덕목으로 제시되며, 마지막으로 질서를 강조한 조직 체계가 수립된다는 점이다. 제도성이 강해질수록 소위 말해 ‘전통적 교회’가 되고, 궁극적으로는 오랜 시간에 걸쳐 쇠퇴하는 교회가 된다.

반면에 ‘운동 역동성’이 강한 교회의 특징은, 첫째 강력한 비전을 갖고 있으며, 둘째 그 비전에 의해 온 교회가 이끌림을 받고, 셋째 그 비전을 위한 구성원들의 희생이 당연시되며, 넷째 현세적 보상보다는 내재적 보상을 추구하는 문화가 정착되고, 마지막으로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아이디어에 대해 열려 있다는 점이다. 운동 역동성이 강해질수록 활력이 넘치는 교회가 되고 창조적인 기운이 감도는 교회가 된다.

결론적으로, 교회에는 운동 역동성과 제도성이라는 두 가지 힘이 모두 필요함에도, 실제적으로는 운동 역동성이 강해질수록 활력이 넘치고, 제도성이 강해질수록 활력이 약화된다.

교회 활력의 측정 지표

그렇다면 팀 켈러가 말한 운동 역동성, 즉 교회의 활력을 측정하는 방법이 있을까? 그동안 이 활력을 측정하기 위한 여러 지표와 수단이 교회 성장 전문가들에 의해 제시되었고 활용되었다. 전통적으로는 예배 참석자의 수와 헌금 액수를 통해 교회의 활력을 측정했다. 하지만 사람의 수와 헌금의 액수만으로 교회 내 진정한 의미의 활력을 측정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보다 구체적인 다양한 지표들을 제시한다.

스나이더는 하나님에 대한 열정, 유기체 의식, 균형(예배와 친교의), 지체로서의 사역, 주변 문화에 대한 반응 등을 교회의 활력을 측정하는 지표로 제시했다.3 NCD의 크리스찬 슈바르츠는 교회의 활력을 ‘교회의 건강성’이라는 의미로 해석해 여덟 가지의 교회 건강성 측량 지표를 제시했는데 지도력, 사역, 영성(기도와 성경), 조직, 예배, 소그룹, 전도, 인간관계 등이다. 이 외에도 많은 전문가가 교회의 활력을 측정하는 도구로 지도력(Leadership), 영적 분위기, 변화수용성(Receptivity), 복음전도(Evangelism), 지역과 문화에 참여(Participation), 평신도 활용 목회(Laity Ministry), 소그룹(Small Group), 투명한 재정운용 등 다양한 요소를 제시한다.

이러한 전문가들의 견해들에 필자의 개인적인 소견을 첨부하고, 한국 교회 생태계를 고려해, 다음과 같은 교회 활력 측정 지표를 제시하고자 한다. 과연 어떤 교회가 활력이 넘치는 교회이고, 건강한 교회이며, 성장 가능성이 잠재된 교회인가?

1. 담임 목회자의 스피릿
교회의 활력과 관련해 담임 목회자보다 더 중요한 요소가 있겠는가? 담임 목회자의 스피릿과 자세야말로 교회의 활력을 불러일으키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한 제일 요소다. 교회가 활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 무엇보다도 담임 목회자에게 활력이 넘쳐야 한다. 담임 목회자를 보면 그 교회를 볼 수 있다. 만약 담임 목회자가 어떤 이유로든 의기소침하고 자신감을 잃어버리고 낙심해, 마지못한 자세로 목회를 수행한다면, 교회는 당연히 활력이 사라질 것이다. 

오늘날 한국의 많은 담임 목회자가 경제적인 이유, 교회 성장에 대한 압박, 교인들과의 쉽지 않은 관계 등으로 인해 의기소침해져 있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그렇기에 교회들 역시 활력이 사라져, 그저 현실을 유지하기에 급급하다. 목회자는 처음 목회에 입문할 때 가졌던 강력한 스피릿을 끝까지 유지해야 한다. 적어도 담임 목회자의 스피릿이 살아 있는 동안은 교회의 스피릿 역시 살아 있다.

그렇다면 담임 목회자가 어떻게 활력이 넘치는 스피릿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첫째는 소명 의식과 사명감을 잘 유지해야 한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목회자의 강력한 소명감이야말로, 또한 자신이 왜 지금 그곳에 있어야만 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사명감이야말로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목회 현장을 지키게 한다. 그리고 그 소명감과 사명감은 구성원들에게 전염되어 교회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둘째는 목회자 됨의 정체성에서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 목회신학자 토마스 오덴은 목회자가 지치고 낙심하는 주요 원인으로 목사직에 대한 정체성의 혼란을 지적했다. 그는 목회자가 자기 직분에 대한 일관되고 분명한 정체성과 뿌리를 인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담임 목회자가 활력이 넘치는 스피릿을 유지하기 위한 마지막 방안은, 목회자를 위축시키는 수많은 도전에 대한 분명한 신학적인 대응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 성장, 목회 성공 등의 이슈는 목회자에게 압박을 주고 나아가 좌절시키는 도전이다. 이러한 도전에 대한 성경적 대안이 없다면 당연히 흔들릴 수밖에 없으며, 활력을 유지할 수 없다. 

2. 분명하고 명확한 비전 
비전의 유무는 교회의 활력을 측정하는 중요한 지표다. 분명하고 명확한 비전이 있고, 그 비전을 교회의 모든 구성원이 명확하게 인지하며, 그것을 이루기 위한 희생을 모든 구성원이 당연하게 여기는 교회야말로 활력이 충만한 교회이며 건강한 교회다. 그렇다면 비전이란 무엇인가? 비전이란 그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구성원들이 이해할 수 있는 그림으로 그려서 제시하는 것이다. 따라서 당연히 비전은 담임 목회자에 의해 그려지고 제시된다. 담임 목회자는 온 힘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해야 하고, 그것을 그림으로 그려 구성원에게 제시해야 하며, 구성원들로 하여금 그 그림을 구매하도록 동기를 부여하고, 실제로 값을 치르고 구매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비전 제시(Vision Casting), 동기 부여(Motivation), 주인 의식 함양(Goal Ownership)이라고 부른다. 이 일들은 담임 목회자의 의무이며, 담임 목회자의 리더십 역량에 따라 그 결과가 크게 달라진다. 만약 담임 목회자가 제시한 비전에 구성원들의 관심이 없다면, 그래서 구성원 중 아무도 그 비전을 자신의 비전으로 삼지 않는다면,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담임 목회자가 그린 비전이 성도들이 이해하기에는 지나치게 모호하기 때문일 것이며, 또한 비전과 관련한 리더십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담임 목회자는 매력적이고 생생하고 분명하고 단순하고 구성원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하고, 구성원 모두가 그 비전을 수용하도록 하는 동기를 부여하고, 희생을 유발시키는 리더십 발휘가 필요하다. 

당신의 교회가 공유된 하나의 비전에 의해 이끌어지는가? 아니면 교회 안에 이미 관습으로 굳어진 규칙, 패턴, 판에 박힌 과정들이 이끌어 가는가? 전자는 활력이 넘치는 교회이지만, 후자는 활력이 사라져 가는, 혹은 이미 사라진 교회임에 분명하다.   

3. 지상대명령
교회의 활력을 측정할 수 있는 또 다른 지표는 지상대명령(마 28:19-20)이 교회 존재 이유로 취급되느냐다. 지상대명령은 복음 전도 사역을 위한 주님의 절대적 명령이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이 명령에 순종하느라 그들의 목숨을 바쳤다. 지상대명령에 대한 궁극적인 순종은 다름 아닌 영혼을 구원해 제자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제자를 삼고, 세례를 주고, 가르쳐 지키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상대명령이 존재 이유로 자리 잡은 교회는 당연히 복음 전도적 교회가 될 수밖에 없다. 복음 전도적 교회란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그리고 그들을 제자로 만들기 위해 담임 목회자에서 시작해 온 교회 구성원이 생명을 다해 복음을 전하는 교회다. 복음 전도적 교회는 당연히 활력이 넘치고 생기가 돈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우리 한국 교회에서는 지상대명령이 교회의 존재 근거로 여져지지 않는 듯하다. 많은 교회가 복음전도보다는 이미 구원받은 사람들을 불러오는 데 관심이 더 많다. 교회 밖 동네에 관심을 갖기보다는 교회 내부인들의 친교에 치중하는 듯하다. ‘제자화’라는 말이 교회 내부자들을 위한 성경공부 프로그램 정도로 여겨진다. 대부분의 사역과 예산이 교회 내부에 집중되어 있다. 교회 밖의 비신자를 위한 사역과 예산은 아주 미미하다. 이미 탈기독교(Post-Christianity) 시대임에도 대부분의 한국 교회는 기독교 왕국(Christendom) 사고 방식으로 세상을 대한다. 복음을 전하기 위한 빚진 자의 자세를 찾아보기 어렵다.  

이 땅의 모든 교회는 지상대명령에 순종해야만 한다. 이 땅의 모든 교회는 사도적이어야 한다. 성육신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선교적이어야 한다. 지상대명령을 존재 이유로 삼는 교회가 사도적이요 성육신적이요 선교적인 교회다. 아마도 수많은 교회가 지상대명령에 순종하지 않을 것이다. 그 명령에 순종하는 교회라면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라는 약속으로 인해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교회가 이 중요하고 본질적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니까 기력을 잃어버리고 궁극적으로 세속화되는 것이다. 새로운 생명이 구원되어 계속해서 교회에 유입되고, 그들이 제자로 변화되어 가는 일이 반복되는 교회는 당연히 활력이 넘치는 건강한 교회다.

4. 변화 수용성 
교회의 활력 유무를 측정하는 지표 중의 하나가 변화에 대한 담임 목회자와 구성원들의 태도다. 변화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타협이 아니다. 변화는 기독교 신학의 특성이다. 기독교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인해 초자연적인 변화를 목표로 하는 종교이기 때문이다(시 51:5, 롬 12:2).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변화(transformation)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변화에 대한 교회의 거부성은 정말 악명 높다. 교회들마다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바꾸어 가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변화가 전제되지 않는 원리, 방법, 과정, 전술은 조만간 가치 없는 것이 되고 만다. 만약 당신의 교회가 수년 전 방식 그대로 운영된다면 당신의 교회는 당연히 활력이 사라진 교회가 분명하다. 교회가 현재 평안하거나 교인들 모두가 교회에 만족한다고 해서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지 않는다면, 조만간 쇠퇴기에 진입할 것이다. 매년 수백 개의 교회들이 변하지 않기 때문에 죽어간다는 사실을 아는가? 성장하지 않으려는 교회는 없다. 그러나 변하지 않으려는 세력의 저항에 부딪혀 교회가 성장하지 못한다.

당신의 교회는 과연 변화에 대해 열려 있는가? 당신의 교회 구성원들은 변화를 위한 용기를 갖고 있는가? 교회 내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그것을 기꺼이 시도해 보려 하는 ‘적극적인 사람’이 많은가, 아니면 늘 하던 대로 안전 위주, 현상 유지를 원하는 ‘무리’가 많은가? 미래를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은가, 아니면 과거의 영광을 회상하는 사람이 많은가? 분명한 사실은 과거에 대한 추억이 미래를 위한 비전보다도 더 자주 회자되는 교회라면,  그 교회는 죽어가는 교회다. 

필자의 박사 논문 지도교수이었던 테리(John Mark Terry) 교수는 “많은 교회가 시대를 따라 변하지 않는다. 따라서 비신자들은 자신과 관계없는 것으로 본다”4고 말했다. 이 말은 교회들이 변하지 않음으로 복음을 전할 세상과의 접촉점을 찾지 못한다는 의미이며, 그 결과 교회가 죽는다는 것이다. 새로운 세대를 그리스도께 인도하기 위해서 교회는 변화해야 한다. 변화에 대한 자세는 교회의 활력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5. 구조와 절차와 생각에서의 단순함
교회의 활력을 측정하는 또 하나의 지표는 바로 단순함(simplicity)이다. 구조에서, 그리고 의사결정 절차에서, 그리고 의식에서 얼마나 단순함과 간결함을 바탕으로 하느냐는 그 교회의 운명을 결정한다. 

레이너와 게이거는 그들의 공동 저서 《단순한 교회》에서 단순함이 교회의 활력 유무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를 논증한다. 그들은 말하기를 “단순한 교회의 설계와 지역교회의 성장 및 생명력 사이에는 아주 중요한 관계가 있다... 대개 활기차고 성장하는 교회들은 단순하다. 활기찬 교회들은 그렇지 못한 교회들보다 훨씬 더 단순하다”5고 했다. 특별히 저자들은 ‘[비전의] 명료함’(Clarity), ‘[교인들의] 활동’(Movement), ‘[사역의] 조정’(Alignment), ‘[자원의] 집중’(Focus)이라는 네 영역에서 단순함이 유지되어야 만이 교회의 생명력이 유지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충분히 동의할 수 있는 주장이다.

활력이 사라진 대부분의 교회는 구조가 복잡하다. 결정 절차도 복잡하다. 회의 시간은 상대적으로 길다. 교인들의 사고 역시 복잡하다. 보이는 현상이나 들리는 말 그대로보다는 그 이면을 추측하는 등의 복잡한 사고를 한다.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수많은 비전 선언문이 복잡하게 선포되기 때문에 교회가 실제로 무엇에 집중하는지 알 수 없다. 지나치게 많은 행사와 프로그램으로 인해 구성원들의 관심이 분산되어 있다. 사실 지나치게 많은 프로그램이 운용되면 어느 것 하나 탁월성이 드러나기가 쉽지 않다.6 교회가 활력을 되찾기 위해 과감하게 단순성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 선택과 집중은 교회의 단순성을 유지하기 위한 중요한 방안이다.  교회가 해야할 일은 많지만 그 많은 일을 다 할 수 있는 지상 교회는 없기 때문이다.

6. 공동체 의식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교회는 생명체로서 한 몸이다. 성경은 교회를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하나의 몸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교회가 몸으로서의 기능을 잘하느냐는 건강한 교회를 가늠하는 중요한 지표가 된다. 간단히 말하면 교회에 공동체 의식이 있어서 공동체로서 유지되느냐다. 건강한 몸이 되기 위해서는 모든 지체가 각자의 역할을 감당해야만 한다. 

공동체 의식이 있는 교회의 특징은 몇 가지로 나타나는데, 첫째는 모든 구성원이 일한다. 구경꾼이나 손님은 없다. 은사 중심(gift-based ministry)의 목회에 모두가 참여한다. 이러한 교회는 구성원들이 자신의 은사를 발견하고 그것을 소명화하도록 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두 번째는, 모든 구성원이 다른 구성원에 일어난 일에 대해 자기 일처럼 반응한다. 만약 한 구성원이 실직하거나 한 구성원의 가정에 출산이 있으면 그 일을 마치 자신의 일처럼 여기고 같이 안타까워하고 또 같이 즐거워한다. 공동체 의식이 있는 교회의 세 번째 특징은 복음 전도를 위해 교회가 하나 되어 헌신과 희생을 한다는 것이다.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공동체를 보여 주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현대 포스트모더니즘 속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중요한 전략을 보여 준다. 세상 사람들에게 교회 공동체의 본질을 보여 줄 때 복음 전파의 접촉점이 된다. 

당신의 교회는 공동체로서 하나 된 몸인가, 아니면 단지 필요를 위한 사람들의 우연한 모임인가? 당신의 교회는 ‘home’인가, 아니면 단지 ‘house’인가? 이것은 교회의 활력을 가늠하는 중요한 질문이다. 활력이 있는 교회는 공동체로서 모두가 일하고 모두가 반응하고 세상에 대해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한다.

나가는 말

활력이 넘치는 교회는 당연히 건강하고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 활력이 넘치는 교회의 구성원들은 자발적으로 헌신하고 희생을 감수한다. 교회의 리더들은 활력이 사라지게 하는 요소들을 과감히 제거해야 하고, 활력을 불어넣는 촉매를 과감히 수용해야 한다. 교회의 활력과 건강성을 측정하는 많은 지표가 있겠지만, 제한된 지면으로 인해 오직 여섯 가지 지표만을 제시했다. 이 지표들은 현장의 목회자들이 반드시 점검해야 하는 교회의 건강성과 성장 가능성을 가늠하는 지표다. 이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지표는 담임 목회자의 스피릿과 목회 자세라고 필자는 다시 한 번 말하고 싶다. 교회는 담임 목회자에 의해 좌우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분명하고 명확한 비전, 지상대명령에 대한 순종, 변화에 대한 열린 자세, 교회에 자리 잡은 단순성 등은 그 교회의 가능성을 가늠하는 기본적인 요소다. 



1) 프랭크 바이올라, 《유기적 교회 세우기》, 이남하 옮김(서울: 대장간, 2010), p.23.
2) 팀 켈러,《팀 켈러의 센터처치》, 오종향 옮김(서울: 두란노, 2016), p.711.
3) 하워드 A. 스나이더, 《교회 DNA : 우리시대 교회는 예수 DNA를 가졌는가?》, 최형근 옮김(서울: IVP, 2006), p.137.
4) John Mark Terry, Church Evangelism(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7), p.41.
5) 톰 라이너, 에릭 게이거, 《단순한 교회》, 신성욱 옮김(서울: 생명의말씀사, 2009), p.96.
6) 앞의 책, p.63.

양현표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실천신학 교수. 서던침례신학대학교(Ph.D.). 필자의 다른기사 keyboard_arrow_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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