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와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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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2019년  06월호 일순(日殉)의 행복을 누리자 침체 교회 출구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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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는 고달픈 자화상을 극복해야 한다.


목회자라면 누구나 물어야 하고, 또 답해야 하는 질문이 있다. “교회란 무엇인가?”이다. 이에 대한 분명한 이해 없이는 교회를 세울 수도, 목회를 감당할 수도 없다. 성경은 분명하게 말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엡 1:23)이다. 모든 성도가 한 몸이 되어 살아 숨쉬며 성장, 성숙해야 한다. 또 교회는 ‘복음의 증인’(행 1:8)이다. 어떤 상황에서든 반드시 부활 생명의 예수를 전하며 부흥, 확장되어야 한다. 그리고 교회는 ‘영원한 승리자’(마 16:18)다. 음부의 권세를 능가하는 하늘의 자유와 평안, 충만을 누리며 살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증거하는 교회요 우리가 추구하는 교회다.

그러나 작금의 한국 교회 현실은 어떠한가. 분명 위의 성경적 진리와는 거리가 있다. 왜곡된 성공주의, 세속적 물신 숭배, 목회자의 도덕성 타락, 다원주의의 저변화, 사이비 종파의 공격 등이 만연해 교회마다 침체되고, 쇠퇴함이 우리에게 체감된다. 아니나 다를까 최근 몇몇 목회자들에게서 이런 자괴적 탄식도 듣게 되었다. “목회가 안 됩니다. 교회를 그만두어야 할 지경입니다.” 재정도, 규모도 어느 정도 되는 교회가 이렇다면 하물며 개척 교회, 작은 교회의 상황은 어떻겠는가.

다행스럽게도 아직 길은 있다. 바로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아서 코난 도일이 쓴 《셜록 홈즈》 시리즈를 보면 언제나 미궁에 빠진 사건은 처음 자리, 사건 현장에서 해결이 시작된다. 처음 그 자리에서부터 영감을 얻고, 해결 가능한 실마리를 발견하는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어려울수록 처음, 그 원리로 돌아가야 한다. 당장의 얄팍한  처세술이나 변칙으로는 다시 소생하기 어렵다. 조급함을 비우고 원리로 돌아가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러면 거기서 영감을 얻고 위기 극복의 빛을 볼 것이다.  “원리는 언제나 통한다. 원리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소생의 길이다.” 원리는 지루하다. 심지어 힘이 든다. 그러나 원리를 익히면 그때부터 일이 바르고 쉬워진다. 재미가 있다. 성취가 있다. 기쁨이 있다. 이제 필자는 침체된 작은 교회가 어떻게 소생하여 생명력 있는 건강한 교회를 이룰지에 대해 4가지 기본 원리를 제시하고자 한다.

자기 소생의 원리

첫째, 자기 소생의 원리다. 첫 번째 과제는 먼저 목회자 자신부터 살려내는 것이다. 사실 교회의 침체는 대부분 목회자의 침체에서 시작된다. 생각해 보라. 크든 작든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려면 날마다 숱한 난관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경제적 궁핍으로 인한 내외적 압박, 다양한 인간 관계에서 오는 오해, 원치 않아도 만나야 하고 위로해야 하며 때로는 잘못한 것 없어도 먼저 사과해야 하는 심정, 열악한 생활 환경에서 오는 불편, 교회가 성장하지 않는 상황으로 인한 심리적 압박과 주변의 무시, 가족의 고통과 그들을 보는 죄스러움, 시도 때도 없이 밀려오는 열등감과 무기력, 실패 의식, 그럼에도 쉴 새 없이 밀려드는 설교 사역과 성경 공부와 심방까지… 목회자는 누구나 탈진하고, 침체될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 살아간다. 이것이 오늘 우리의 고달픈 자화상이다.

분명한 것은 이런 척박한 목회 현장이 절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아니, 어쩌면 일평생 이런 상황을 견뎌내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마지못해 무기력한 잿빛 얼굴로 할 수 없이 이 길을 가겠는가. 그럴 순 없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스스로를 살려내는 자기 소생의 능력을 발휘해야 한다. 이 모든 열악한 상황을 능히 이기는 강건하고 매력 있는 목회자, 마치 향나무처럼 언제나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만일에 우리가 향나무처럼 우리를 치는 도끼 날에 향을 뿌려, 그 흉기를 향기로 바꿀 수 있다면 아, 그럴 수만 있다면…”(이승우).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스스로 살아날 수 있는가. 바로 십자가로 살 때 가능하다(고전 1:18). 곧 날마다 십자가를 생각하고, 십자가에 감격하고, 십자가에 죽고, 그리하여 이제 내 안에 사시는 그리스도와 함께(갈 2:20) 무엇에든지 기도로, 감사로, 십자가 사랑으로 사는 것이다. 이제는 내가 아니라 내 안에 사시는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를 따라, 그리스도를 위해 살 때만이 어떤 죽음의 환경에서도 다시 소생하는 은혜를 누릴 수 있다. 물론 이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가 어떤 난관도 능히 이겨내고 십자가로 살아가려면 그러한 습관을 체득해야 한다. 십자가 신앙이 일상의 순간마다 작동해 매 순간 나를 다시 소생시키도록 몸에 새기고 새겨야 한다. 일상을 십자가로 살아내려는 필자의 목회 습관을 몇 가지 소개해 본다. 

먼저 항시 하나님께 기도하는 습관이다. 불안하고, 속상하고, 화나고, 우울할 때마다 수시로 두 손을 들고 외쳐 기도하는 것이다. “오, 하나님 아버지! 저 어려워요. 힘들어요.” “오, 키리에 엘레이손!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십자가에 죽었습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오, 파라클레토스! 성령이여 임하소서. 충만히 임하소서. 지금 임하소서.” “오, 그리스도시여! 사랑합니다. 주님밖에는 나의 주가 없사오니 나를 구원하소서. 구원은 그리스도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 저에게 내리소서.” 이렇게 잠시 동안 하나님을 부르며 기도하면 놀랍게도 일순간 나의 속 사람이 다시 살아나 즐겁고 행복한 일상을 보낼 수 있게 된다.

매일의 소박한 행복을 즐기는 습관이다. 인생의 행복은 큰 성취나 성공이 아니라, 도리어 사소한 기쁨을 일상에서 자주 느끼는 데 달려 있다. 필자에게 소박한 행복은 가벼운 산책, 시원한 사우나, 서점 방문, 친구와의 담소, 어여쁜 손주 돌보기, 아내와의 데이트 등이다.  물론 가끔은 이런 일들로도 회복되지 않는 탈진에 시달린다. 그럴 때면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치유하신 ‘먹·자·기·법’을 시도한다. 하루 이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어디론가 떠난다. 거기서 실컷 먹는다. 그리고 깊은 잠을 잔다. 모든 일을 내려두고 그저 먹고 쉬고 자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감사하게도 하나님께 나아가고픈 마음이 든다. 그때 일어나 울기도, 웃기도, 소리치기도, 걷기도 하고, 글쓰기도 하면서 기도하노라면 어느덧 내면의 상처와 탈진은 회복되고 점차 강건해져 새벽 이슬과 같은 신선함으로 다시 목양지로 돌아올 수 있게 된다.

일과를 미리 준비하는 습관이다. 무슨 일이든 쫓겨서 하면 스트레스가 쌓이고, 건강을 해치며, 정성을 다한 양질의 결과를 낼 수 없다. 특히 목회자로서 설교에 쫓기면 다른 모든 사역에도 쫓기게 된다. 쫓기다 보면 시야가 좁아져 목회 전반을 두루 살필 수 없고 매번 간신히 하는 허술한 사역이 되고 만다. 더욱이 이런 일이 반복되면 목회자 스스로 사역에 보람과 만족을 느끼기 힘들어 점점 활력을 잃어버리게 된다. 따라서 어떤 사역이든 먼저 나는 죽고 내 안에 사시는 그리스도께 지혜를 구하며 미리 준비해야 한다.

목회자로서 가장 중요한 일은 아무래도 주일 설교일 것이다. 따라서 아직 주일 설교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주일 저녁에 다음 주일의 설교 본문을 정하고 묵상을 시작해야 한다. 늦어도 금요일 오후까지는 원고 작성을 마쳐야 한다. 토요일은 주일을 위해 몸의 컨디션을 끌어올리고, 밤에는 이미 완성된 원고를 가지고 기도로 뜸을 들이면 주일이 기다려지고 영적 행복감으로 가득해질 것이다. 새벽예배 역시 마찬가지다. 오늘의 새벽예배를 마친 후 바로 다음날을 준비하면 하루 종일 부담 없이 여유롭게 생활할 수 있다.

어떤 난관이든 능히 이겨내며 건강하고 생명력 있는 교회를 세우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다. 지뢰밭 같은 목회 사역 속에서도 십자가 신앙으로 자기 자신을 다시 소생시키는 목회 습관을 체득해야 한다. 체득이란 단순한 앎이 아니다. 반복적으로 훈련하고 연습해 내 몸에 완전히 배어 체질이 되게 하는 것이다. “생각이 머리에 들어가면 정보다. 정보가 마음에 닿으면 영감이다. 영감이 발톱과 손톱까지 번지면 성육신이다”(웨인 코데이로).

나만의 사명 원리

둘째, 나만의 사명 원리다. 아마도 목회자를 침체로 이끄는 가장 큰 원인은 결과만 생각하는 성과주의와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열등감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한다. 목회는 내 소원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뜻을 이루는 것이다. 곧 누구와 비교할 수 없는 나만의 사명을 정립하고, 일평생 그 길로 매진하는 것이 목회의 승리요, 성공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나만의 부르심의 목회 사명을 분명하게 정립해야 한다. “온 천하가 다 무너지더라도 내가 이것은 꽉 붙들고 놓을 수가 없다. 내가 이것을 위해서 살고 이것을 위해 죽을 수 있는 나만의 사명을 발견해야 한다”(키에르케고르).

교회는 결코 크기가 중요하지 않다. 규모에 상관없이 나만의 부르심의 목회 사명, 교회관이 있느냐가 중요하다.1 돌이켜 보면 필자도 남들과 비교하지 않는 나만의 부르심의 목회 사명(사람 살림, 기독 문화 살림, 작은 교회 살림)을 추구해 왔기에 행복했고, 과분하게 인정도 받은 것 같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이를 좀 더 젊은 날 일찍 깨달았더라면, 이 사명에 보다 더 집중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것이다.

독일의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는 일찍이 “십자가에 내 인생을, 내 업적을, 내 명예를 못 박았다”고 고백했다. 이처럼 우리도 내 욕심과 야망을 십자가에 못 박고, 나를 통해 하나님께서 이루시고자 하는 교회관을 정립하고, 평생 죽는 날까지 그 길로 매진해야 한다. 만일 이미 나만의 부르심의 목회 사명을 발견했으면 이제는 쉽다. 천천히, 꾸준히, 즐기면서, 주님과 함께 그 길을 가면 되는 것이다. “그날이 점점 한 점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러나 나는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함석헌).

원형 소그룹의 원리

셋째, 원형(原形) 소그룹의 원리다. 모두가 아는 바대로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다. 목회는 사람을 살려내 그리스도인으로 삼고, 그를 동역자로 삼아 함께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과업이다. 따라서 침체된 교회를 살리는 일 역시 사람을 살리는 일에 달려 있다. 목회자는 어떠한 상황에서든 자기 자신을 소생시킬 뿐만 아니라 함께하는 동역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살려내야 한다. 사람을 세우고, 사람을 키우고, 사람을 섬기고, 사람을 살리는 일, 그것이 바로 교회를 세우는 일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람을 살려낼 수 있을까?

먼저 화평한 관계를 구축하라. 사람은 작은 문제에도 시험에 들 수 있다. 더구나 작은 교회는 목회자와 성도들 간에 접촉이 잦기에 말 한마디, 작은 실수에도 상처 입기 쉽다. 그럴 때마다 목회자는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긍휼의 마음을 품고, 온유와 겸손으로 그들을 넉넉히 감싸야 한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 2:5).

나는 십자가에 죽고 내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와 함께 목회자부터 넉넉히 화평을 시도하고 화목을 이루어야 한다. 형편도, 환경도, 신앙도 가지각색인 성도들 사이에서 목회자가 먼저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화평을 서로 힘써 이루어야만 교회가 살아난다(엡 4:3). “화평케 하는 것은 교회를 살리는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또한 비전을 공유해야 한다. 비전 공유란 두 번째 원리에서 제시한 바로 ‘우리 교회만의 사명’을 성도들과도 나누는 것이다. 성도들과 화평한 관계를 구축한 목회자는 그들의 관심사를 목회자가 아닌 교회의 비전으로 돌려야 한다. 하나님께서 그 공동체에 주신 사명을 함께 이루어가도록 이끌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서로 사랑하여 화평의 공동체를 이루고, 거기에 목회자의 야망이 아닌 진실한 하나님의 비전이 깃발로 주어진다면 그 공동체는 반드시 소생하여 강건한 교회로 성장할 것이다.

이를 위해 목회자가 먼저 사람이 살아나는 원형(原形) 소그룹을 직접 세워갈 것을 제안한다. 교회 안에서 화평과 비전이 공유되는 소그룹의 모델, 다시 말해 핵심 소그룹을 시작하는 것이다. 이것은 또 하나의 목회 프로그램이 아니다. 오히려 목회 사역의 성패를 결정하는 일이다. 내 모든 것을 걸고 예수를 경험하는 예배 공동체로, 예수의 사랑을 경험하는 화평 공동체로, 예수의 사랑을 전하는 사명 공동체로 그들을 이끌어야 한다. 이 원형 소그룹이 온전히 세워지면 그 안의 멤버가 살아나고 성장해, 마침내 그들로 인해 교회와 목회 사역이 더욱 풍성해질 것이다.

필자는 개척 때부터 지금까지 매년 두 그룹씩 ‘밀알 학교’(12주)라는 원형 소그룹을 직접 인도한다. 이 소그룹을 통해 성장한 멤버들은 목회자와 비전을 공유하며 사역의 장에서 교회를 활성화하는 데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감당한다. “작은 교회 목회자들이여, 원형 소그룹에 목숨을 걸라!”

목회 기획의 원리

넷째, 목회 기획의 원리다. 흔히 기획을 믿음과 상반되는 불신앙적인 것으로 오해한다. 그러나 목회 기획은 자원과 재정을 기반으로 효율성을 추구하는 세상적 기술이 아니다. 도리어 이루고자 하는 사역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묻고, 그 뜻에 맞게 구체화해 미리 준비하는 믿음의 과정이다. 기획은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펜으로 쓰는 기도다.

목회 기획은 특히 작은 교회 목회자에게 더 필요하고 중요한 일이다. 왜냐하면 자원과 인력이 부족하기에 어떤 사역과 과업을 이루기가 쉽지 않고, 자칫 실패하게 되면 회복이 어려울 정도로 큰 타격을 입기도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목회자가 기획하지 않고 믿음만으로 무작정 사역에 달려들었다가 넘어진다. 따라서 기도와 묵상으로 하나님의 뜻에 맞도록 목회 기획을 충실히 하면 불필요한 혼란과 실패를 예방하게 되고, 구하고 생각하는 것보다 더 풍성한 결실을 얻을 것이다.2 여기서는 침체된 작은 교회가 다시 소생하기 위해 기획해야 할 몇 가지에 대해 나누어 본다. 이를 보고 각자 상황에 맞도록 적용해 보길 바란다. 

첫째, 경제적 자립이 우선이다. 경제적 자립이 되지 않으면 목회자가 아무리 숭고한 비전을 품어도 힘 있게 사역하기 어렵다. 따라서 교회를 개척하기 전에 먼저 자립을 위해 교회와 목회 구조를 어떻게 세워갈 것인지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또한 이미 목회를 하는 경우라면 자립을 위해 먼저 고정 지출을 줄여야 한다. 아마도 작은 교회로서 지출이 가장 큰 부분은 임대료일 것이다. 종종 과도한 임대료로 전전긍긍하다가 결국 가슴 아픈 상황을 맞이하는 목회자를 본다. 월세가 과하면 그것이 부담되어 다른 일을 추진하기 어렵고, 목회 사역 또한 비전에 따라 충실히 감당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먼저 월세를 부담되지 않는 수준으로 낮출 방안을 기획하라. 한 예배당에서 두 교회가 시간을 조정해 공동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한인 교회처럼 예배당이 있는 이웃 교회의 교육 공간을 임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주일에 휴업하는 회사의 회의실, 카페, 공연장 등도 사용 가능할 수 있다. 기존의 구조와 상황을 벗어나 기획해보라. 구하고 찾고 두드리면 반드시 길이 열릴 것이다.

둘째, 교회 공간을 다용도로 활용하라. 작은 교회가 성장하는 데 방해가 되는 것 중 하나가 예배 공간이다. 작은 교회에 하나밖에 없는 공간, 그러나 예배 외에는 전혀 쓸 수 없는 공간 말이다. 이는 요즘 이야기로 가성비가 너무나 낮은 공간이다. 기왕 얻은 공간이라면 다용도로 활용할 수 있도록 디자인하라. 즉 언제든 전시, 공연, 회의, 강의 등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방안을 기획해야 한다.

실제로 ‘공유’를 모토로 예배 공간을 꾸민 한 작은 교회는 예배 시간 외에는 그곳을 이웃들에게 내어 준다.3 사람들을 전도해 교회에 데려오는 것이 얼마나 힘든데, 도리어 사람들이 교회로 찾아오고, 모여들고, 더구나 그것에 고마워하며 소정의 감사 헌금까지 한다니 일거양득 아닌가? 교회가 정한 핵심 사역에 방해되지 않고, 그리스도의 복음에 저해되지 않는다면 무엇이든 시대에 맞게 시도하라. 시도하지 않고 되는 일은 없다.

셋째, 우리 교회만의 프로그램을 개발하라. 교회가 침체를 벗어나 활성화되려면 자신만의 프로그램이 있어야 한다. 주어진 비전과 지역적 특성이 반영된 독특한 프로그램이 있을 때, 이웃에게 우리 교회만의 존재 의미가 확인되고, 주어진 비전의 성취도 가능해진다.
물론 모든 교회에는 예배, 양육, 전도라는 3가지 프로그램이 있다. 이 3가지를 충실히 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문제는 이것을 어떻게 우리 교회만의 프로그램으로 만들 것인가다. 이것은 5가지 플러스 알파가 있을 때 가능하다. 즉 시대를 내다보고, 지역 문화에 호응하며, 교회의 비전에 맞고, 독창적 창조성을 더하며, 성령의 은혜를 힘입는 것이다. 이상을 전제로 우리 교회를 상징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

필자의 경우 개척 초기에 서초구 서초동이라는 지역 특성을 고려해 문화 강좌를 개설했다. 지역 주민들이 인문학과 자녀 교육에 관심이 높았기에 당시 대한민국의 유명 강사들을 매월 초청해 강좌를 열었는데, 개척 교회 지하 예배당이 만원사례를 이루곤 했다. 필자는 그 강사들을 전혀 알지 못했고, 사례조차 제대로 줄 수 없는 형편이었지만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기획을 통해 모든 것을 할 수 있었다. 

넷째, 중요한 사업일수록 철저히 기획하라. 교회를 개척하거나 작은 교회에 부임해 사역에 어느 정도 열매 맺는 것은 참으로 귀하고 감사한 일이다. 목회자의 눈물과 땀과 피로 거둔 세상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복된 열매이기 때문이다(시 133편).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다.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교회가 다음 도약을 위해 중요한 사업(예배당 확장, 리모델링, 이전, 건축 등)을 벌이다가 도리어 큰 혼란과 분열을 겪거나 교인들이 대거 떠나는 사례가 많다. 아무리 좋은 의도로 시작했어도 결과적으로는 교회에 큰 상처와 침체를 가져온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을까? 시간을 두고 더욱 철저히 기획해야 한다. 특별히 교회에서 큰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는 최소한 이 두 가지를 기억해야 한다.

먼저 확실한 하나님의 응답을 구하라. 중요한 프로젝트일수록 그 일이 하나님의 뜻인지 구하고, 그에 대한 명확한 하나님의 이끄심을 발견해야 한다. 이 사실만 분명히 확인된다면 고민할 필요가 없다. 목회자는 순종하면 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일이 가능하도록 필요한 사람을 보내시고, 재정도 공급하실 것이다. 만일 이런 분명한 응답과 인도하심 없이 무리하게 일을 진행했다면 그 책임과 고난 역시 목회자 자신이 져야 함을 잊지 말라. 절대로 경거망동하지 마라. 반드시 확실한 사인을 구하고 움직여라.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지식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며, 인간이 행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업적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다”(조지 트루엣).

그 다음은 교회 공동체와 동심(同心)으로 시작하라. 하나님께서 교회 공동체에 주신 일이 분명하다면 온 교회가 그 일을 동심으로 기쁘게 이루어가야 한다. 동심은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나도, 너도 그리스도의 마음’이 되어 온 교우가 한 몸으로 응답하고 협력하는 것이다(빌 2:1-5). 교회가 이런 동심을 갖기 위해서는 프로젝트를 회중에게 갑자기 발표해서는 안 된다. 충분한 논의를 거쳐야 한다. 목회자를 중심으로 중직자, 직분자, 일반 성도에 이르기까지 순차적으로 논의를 심도 있게 진행해야 한다. 행여 반대나 이견이 있을 때에는 그 자리에서 반박하거나 서둘지 말고, 동심이 될 때까지 설득하고 기다려라. 

모든 일을 진행할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을 잃지 않는 것이다. 사람을 잃으면 다 잃는 것이고, 사람을 얻으면 다 얻는 것이다. 만일 기다려도 동심이 되지 않는다면 무리하지 말고 다른 방법을 찾는 것도 좋다. 후에 보면 그 다른 방법이 얼마든지 더 좋은 일이 되어 있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행 16:6-7).

단, 한 가지 전제는 사람에게 의존하거나 매이지 말라는 것이다. 목회자가 의존하고 바라볼 이는 오직 한 분 그리스도이시다.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시 3:8).

따라서 목회자는 교회 내에서 큰 프로젝트를 추진할 때 하나님의 명확한 비전과 이끄심을 가지고 우직하게 진행하되, 구체적으로 기획해 교회 구성원 모두가 동심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꾸준히 시도해야 한다. “기획에 실패하는 것은 애당초 실패를 기획하는 것과 같다.”

목회를 즐기자

모두들 목회가 어렵고 힘들고 안 된다고 하는 시대다. 그러나 어렵지 않은 일이 세상 어디에 있는가? 세상에서도 성공하려면 밤잠을 줄여가며 피나는 수고와 고생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세상 가장 귀하고 위대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나서지 않았는가! 죽어가는 영혼을 살려내어 그리스도인으로 삼고 함께 교회를 이루어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과업, 세상에 이보다 더 중요하고 보람 있고 행복한 일은 없다. 그러니 오늘부터 이 사명을 즐겁게 하기로 작정하라. 이왕 하는 목회 신나게 하자! 행복하게 하자! 충만하게 하자! 

목회를 즐기려면 다른 방법이 없다. 날마다 내가 십자가에 죽어야 한다(고전 15:31). 이는 분명 역설이다. 살려면 죽어야 한다. 우리가 스스로 일순(日殉), 곧 매일 주를 따라 십자가에 죽을 때 도리어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신다. 그분이 내 안에 소생의 능력을 불어넣으신다. 그리하여 내 안에 사시는 그리스도와 함께 날마다 기도와 감사로 소박한 행복을 누리며 살게 된다. 분명한 나만의 사명을 따라 살게 된다. 화평과 비전을 공유하며 살게 된다.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살게 된다. 그러므로 잊지 말자.  “우리의 목표는 그리스도다. 우리의 목적은 그리스도와의 동행이다. 우리의 믿음은 나는 날마다 죽고 그리스도로 사는 것이다. 우리의 방법은 그리스도와 항상 함께 하는 쉬지 않는 기도다.”

어떤 상황에서든 우리의 시야에서 그리스도를 놓치지 말자. 그러면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는 분께서 우리가 능히 목회를 즐기게 하실 것이다(엡 3:20). “아, 목회보다 신나는 일은 없다. 이제 목회를 즐기자!”



1) 더 자세한 내용은 필자가 쓴 〈목회와신학〉 2018년 2월호 “목회 비전 상실, 예수님이 답이다”와 나만의 부르심을 따라 사역하는 목회 체험서 《배부르리라》(좋은생각, 이태형)를 참조하라.
2) 목회 기획의 이론과 실제에 대해서는 〈목회와 신학〉 2013년 12월호 “목회 비전 설계와 점검의 6단계”를 참조하라.
3) 아트교회(www.artchurch.net)

김석년 서초성결교회 담임목사. 미국 샤스타기독교대학교(D.D.). 저서로 《바로 그 교회》, 《십자가를 살다》 등이 있다. 필자의 다른기사 keyboard_arrow_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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