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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2019년  05월호 동성애 문제의 배후에 무슨 사상이 있나? 변증서가(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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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주의 도전과 기독교 신앙》 김영한/ 두란노/ 188쪽/ 10,000원

서울의 한 대학으로 청년 교우를 심방하러 가는 길에 학내 성소수자 동아리 소속 학생이 써 올린 대자보를 보았다. 대학신문 칼럼에 실린 ‘동성애자 혐오 발언’을 사회적 소수자의 인권을 짓밟는 행위라고 문제 삼는 내용이었다. 영국을 비롯한 유럽에서는 이미 혐오 표현 규제법이 도입되어 길거리에서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라 외치면 위법이란 말을 들어왔던 터라 낯설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한국에서도 ‘동성애 탄압=인권 탄압’ 등식을 보편적인 진리로 받아들이라는 압력이 공공연해지는 듯해 왠지 불편했다. 이 대자보 말미에는 전국 대학의 수십 개 성소수자 모임의 이름이 열거되었고, 그 명단에는 한 보수 신학대의 성소수자 모임도 있었다.

대학 사회의 이러한 분위기는 청소년층에도 퍼지는 듯하다. 여고에 진학한 딸이 필자에게 “여고에 레즈 많대요”라는 말로 여고에는 레즈비언이 많은 게 당연하다는 듯한 분위기를 전했다. 요즘 유튜브에는 구체적인 ‘동성애 방법’까지 친절하게 안내해 주는 동영상들이 나돈다. 댓글에는 “오래오래 이쁜 사랑 나누세요” 식의 선플이 대부분이다.

동성 결혼이 합법화된 미국에서는 이제 ‘he’나 ‘she’에 더해 성 중립 인칭 대명사로 ‘ze’를 사용하자는 분위기에 성 중립 화장실까지 등장했다. 유럽에서는 동성 커플이 대리모로 아이를 얻고, ‘엄마’, ‘아빠’ 호칭이 금지되어 ‘부모1’, ‘부모2’라 부르며, 학교 교육에서 인간이 남성과 여성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내용을 가르치지 못한다. 캐나다에서는 소아성애 합법화가 추진되고, 독일에서는 동물 매춘과 인간 매춘이 동일한 매춘 가격으로 운영되며, 유럽의 일부 국가에서는 합의에 의한 부모 자식 간의 성관계도 합법으로 규정하는 추세다.

마르크시즘과 휴머니즘의 결합 

인류사에서 동성애가 전세계적으로 지금처럼 양성화된 적은 없다. 포스트모던 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문화 현상 중 하나라고 볼 만하다. 일찍이 칼 마르크스는 각 시대의 철학이나 종교, 도덕적 가치는 당대에 가장 큰 권력을 가진 계층이 생산 수단을 통제하려는 시도와 맞물려 있다고 말했다. 사회의 문화적 가치나 인간의 행동을 자극하는 심리적 동기 또한 이러한 생존 도구를 획득하려는 본능적 충동에 좌우된다고 보았다. 이는 “권력을 가진 자들의 주도에 따라 진리의 개념이 달라진다”는 포스트모더니즘식 논리의 한 축으로 발전했다.

지금은 동성애 역시 이성애자들이 가진 기존 권력에 의해 진리가 아닌 것으로 치부되었을 뿐이라는 주장이 먹힌다. 역사의 시험대를 거쳐 체제 중심의 정치적 마르크시즘이 쇠퇴해 가면서 이제는 문화적 마르크시즘이 동성애 현상을 더욱 조직적으로 부추긴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름하여 ‘네오-마르크시즘’이다. 이 책은 바로 이 네오-마르크시즘이 현재 동성애 운동의 배후에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추적하고, 기독교적 대응 논리를 모색했다.

“네오–마르크스주의자들은 당시 최고 이슈였던 휴머니즘을 마르크시즘에 결합시켰다. 이들은 사회주의 사상만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휴머니즘을 표면적으로 내세운다. 이들이 주장하는 휴머니즘은 바로 인권, 평등, 평화, 정의, 소수자 인권 보호 등 그럴싸한 구호를 내세우기 때문에 1960년대 중반부터 전 세계를 강타하여 시대를 이끄는 주류 사상이 되었다”(p.27).

  저자는 이 책에서 현재의 동성애 인권 운동이 바로 이 네오-마르크시즘의 ‘성 정치학’(sex-politics)에서 연유한다고 본다. 빌헬름 라이히의 성 정치 이론, 시몬 드 보봐르의 급진적 페미니즘, 프랑스 학생들의 68혁명 등이 그 배경에 깔려 있다. 특히 모택동의 문화 혁명 이념의 영향을 받은 프랑스 68혁명은 표면적으로는 1968년 5월에 파리 소르본느대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일어난 샤를 드골 정부의 보수 정책과 사회적 모순에 대한 저항 운동과 총파업 운동이었다. 그러나 이후 전세계적으로 억압에서의 자유, 불합리한 사회 구조의 개선을 기치로 금기 없는 성적 쾌락을 추구한 히피 문화처럼 구세대의 관습과 문화를 해체하고 재구성하고자 한 총체적인 문화 혁명의 시발점이 되었다(p.42).

“모든 금지하는 것을 금지하라!”는 모토를 내세운 이 혁명과 직접 얽혀 있던 질 들뢰즈, 자크 데리다, 미셸 푸코,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와 같은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유대 기독교적 철학과 통합된 서구의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철학에 대한 일종의 반철학(counter-philosophy) 운동을 일으켰다. 이를 통해 정치사회적 영역에 머물렀던 억압과 착취 개념을 문화적 영역으로 확대해 문화적 착취, 관료적 억압, 성적 억압, 인종적 착취에 대한 투쟁을 전개하면서 신좌파적 이념을 확산시켜나갈 수 있었던 것으로 본다(p.44).

포스트모던 시대 정신에 힘입어 소수자 인권 운동이란 명분 아래 진행되는 동성애 운동의 사상적 배후와 전략을 캐낸 이 책의 핵심 내용을 동성애 옹호자들이 4가지 동성애 인권 운동 전략을 제시하는 형태로 간추려 본다.

대표적인 동성애 운동 전략 4가지

첫째, 성 관념이나 도덕 윤리를 억압하는 기존 질서를 해체하라. 이를 위해 프로이드의 성 욕망 억압 이론을 마르크스의 사회 비판과 연결시켜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요 기독교 사회인 서구 사회가 만든 모든 억압 문화 체제 속에서 인간의 착취된 노동력과 억압된 성충동을 해방시켜야 개인들이 진정한 해방과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선전하라.

둘째, 페미니즘을 적극적으로 도구화하라. 여자로서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자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가르쳐야 한다. 여성은 남성에 의해 억압당해 왔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여성 정체성을 부정해야 한다고 선동하라. 가부장 제도의 족쇄와 모성의 노예 신분에서 벗어나 경력에서 자기만족을 이루며 해방된 성 생활에 탐닉하도록 부추겨야 한다. 성적 도덕성, 가족을 거부하고, 낙태를 여성의 인권으로 옹호하라.

셋째, 남녀를 가리키는 ‘성’의 의미를 이데올로기화시켜 사회적 성인 ‘젠더’(gender)로 바꿔라. 이렇게 하면 남성과 여성이란 생물학적 차이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남성 중심 사회에서 권력을 가진 남성들에 의해 여성들에게 부과된 것이라는 점을 부각시킬 수 있다. 성 평등 실천이 동성애나 소아성애, 근친상간, 일부다처, 일처다부, 심지어 수간의 사회문화적 근거가 된다.

넷째, 젠더를 중심으로 사회문화를 바꾸는 젠더 주류화 운동(Gender Mainstreaming, GM)에 집중하라. 19세기의 여권 신장 운동이 이제는 유엔을 본부로 하는 성 평등 운동으로 발전했다. 순진한 사람들은 성 평등 운동을 단순히 남녀 성차별을 방지하자는 운동으로 알지만, 사실은 남성과 여성의 성적 구별 자체를 차별로 보고 이를 폐지할 뿐 아니라 50가지가 넘는 젠더를 인정하라는 젠더 이데올로기 운동이다. 결국 성 평등이란 동성애자들의 유익을 위해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는 근거를 마련해 다수인 정상적인 이성애자들에게 불이익과 역차별을 초래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 인간의 성에 대한 과학적 이해와 사회의 법적 구조를 재구성하고, 기독교 신학 또한 여기에 맞추어 바꿔야 한다. 사회의 법적 구조를 바꾸는 운동을 통해 1997년부터 유엔으로 하여금 젠더 주류화 운동이 회원국들의 의무라고 선포하게 하는 업적을 이루어 냈다. 앞으로도 동성애 아젠다를 유엔 인권법 체제 속에 편입시켜 성, 인종, 나이, 종교 등 전통적 차별금지 사유에 ‘성적 지향’과 ‘성 정체성’이 포함되는 것처럼 인식시켜나가야 하며, 각 국가의 인권위원회 같은 정부 기구가 이 일을 지속적으로 전개해 나가도록 물밑에서 도와야 한다. 

동성애 문제를 풀어내기 위한 변증 전도 방법론

성경은 동성애를 죄라고 분명하게 규정한다(레 18:22; 20:13; 롬 1:24-27; 고전 6:9; 딤전 1:10; 유 1:7). 레위기의 음식 규례 같은 의식법이 폐해졌듯 동성애 금지 규례도 지금은 무효하다는 퀴어신학자들의 주장은 의식법과 도덕법의 차이를 무시한 억지다. 염색체나 호르몬, 뇌 구조의 이상 등을 이유로 동성애가 선천적일 수 있다는 주장들은 이미 과학적 근거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동성애자에서 정상적인 이성애자로 돌아온 많은 사례가 그 증거다.

물론 ‘남자 같다, 여자 같다’는 식으로 신체적 요인이나 기질적 경향이 날 때부터 반대의 성에 가까운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들 역시 후천적인 환경의 영향으로 동성애자들이 되기가 더 쉬울 뿐이다. 설령 생물학적 특정 성향을 타고난다 해도 그 성향대로 행동에 옮겨도 좋은가는 인간의 책임 있는 도덕 의식의 문제다. 동성애는 성장 환경이나 유년기의 불안정한 성 정체성, 부모나 동성과의 역기능 관계, 왜곡된 성 경험, 대중매체의 영향 등 환경적 요인에 따라 후천적으로 만들어진다. 성경적으로는 모든 사람이 음란이나 탐욕의 성향을 타고나듯 동성애도 타고난 죄의 성향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은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사 5:20) 인본 중심의 상대주의 가치를 임의로 절대화하는 포스트모던 시대다. “너에게 좋은 게 좋은 거야”, “우린 틀린 게 아니라 다를 뿐이야”라는 사상으로 인해 남자가 남자와 결혼하고, 여자가 개를 남편으로 맞아도 그것이 ‘나’를 행복하게 해 준다면 ‘역리도 순리가 되는’(롬 1:26) 배도의 시대다. 이 책의 저자 역시 지금과 같이 ‘불법이 성한’(마 24:12) 무규범의 시대는 적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는 마지막 때라고 일갈한다(p.77, 99).

이렇게 창조 질서에 역행하는 반기독교적 시대 흐름의 배후에 “종교는 아편”이라는 가치관, 유물론적이고도 무신론적인 사상의 문화적 변형인 네오-마르크시즘이 작동했으리라고 보지 못할 이유는 없다. 극우 개신교인들의 극성스런 ‘음모론’이라며 굳이 무시해 버리고 넘어갈 것도 없다. 이미 이 시대의 사회와 문화를 관통하는 포스트모더니즘 자체가 거대한 음모론이다.

무엇보다 젠더 이데올로기에 따른 동성애 전략이 실제 현실로 이루어진 서구의 상황을 볼 때 네오-마르크시즘이 현재 동성애 인권 운동의 은밀한 배후로 작동한다고 볼 만하다. 증거는 그 운동 내부자들의 책에서도 발견된다. “가족 제도는 성을 계급 사회 속에 통합하는 데 언제나 가장 중요한 구실을 했다. 동성애자 억압에 맞서는 투쟁은 자본주의 사회를 철폐하고 자본주의가 왜곡한 성과 성 역할을 바로잡는 투쟁이다. 억압에 맞선 오늘날의 투쟁은 모두 사회주의 사회의 성 해방 전망을 밝게 한다”(노라 칼린, 콜린 윌슨, 《동성애 혐오의 원인과 해방의 전망》). 

이 모든 사상적 배후를 자유나 정의, 평등이란 미명 아래 철저히 숨긴 채 동성애를 합법화하고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려는 시도를 한국 교회는 어떻게 막아야 할까. 기독교 가치관을 도외시하려는 세상 사람들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보편적인 상식과 합리 차원에서 먼저 호소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동성애로 인해 가정이 해체되면 국가가 해체되는데, 이런 경우를 조금이라도 국가가 장려하고 보호해 줄 순 없다. 이런 논리 안에서 자유 민주사회가 합법적으로 허용하는 한도 안에서의 정당한 절차와 내용과 활동으로 합리적인 대안을 내놓는 방식이 더 주효할 수 있다.

이미 미국 연방대법원은 동성애 반대라는 종교적 신념도 헌법이 최우선적으로 보호해야 할 시민의 자유라고 판시한 바 있다. 특정 개인의 동성애 반대는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이 아니라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행위라고 본 것이다. 교회 역시 동성애자들을 존중하는 것이 동성애 반대자들을 차별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는 논리로 차별금지법 제정을 끝까지 반대할 수 있다. 

동성애 문제를 성경적으로 풀어가는 과정도 세인들과 공유할 수 있는 공통 분모를 접촉점으로 합리적 대응 논리를 통해 기독교 진리를 전하려는 변증 전도의 방법론과 통한다. 물론 이 책의 저자가 제안하는 대로 본래적인 진리의 개념들을 임의로 왜곡하는 동성애 옹호자들의 오류를 잡아내는 신학적, 지적 작업도 필요하다.

“원래 자유는 외부적 강제 없이 양심에 따라 자율적으로 자기가 원하는 바를 행하는 것인데, 젠더주의자들은 자유의 개념을 사유화하여 무책임한 자유를 조장한다. 정의란 권리와 의무의 정당한 주고받음을 통해 개인이나 기관의 사회적 기본구조에 대한 관심이 균형을 이루는 것을 말한다.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모든 것을 각 분량에 따라 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젠더주의자들에게 정의란 각 사람이 그의 성적 정체성을 자유롭게 선택하는 것이다. 동성애자들은 자신들의 권익을 옹호하려고 동성애와 이성애의 구별을 차별로 간주하여 구별조차 못 하도록 만든다. 그러나 선과 악을 구별하는 것은 사람들을 차별하는 것이 아니다. 탈동성애를 돕는 것이 진정한 인권 보호다”(pp.160-181).

안환균 그말씀교회 담임목사. 변증전도연구소장. 미국 풀러신학교(D.Min). 저서로 《7문7답 전도지》, 《하나님은 정말 어디 계시는가?》 등이 있다. 필자의 다른기사 keyboard_arrow_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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