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와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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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와진단 2019년  05월호 우리의 영적 동반자, 가정 필름포럼이 추천하는 가정의 달 영화 5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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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델과 어니스트


세상에서 가장 비밀스러운 집단은 무엇일까? 가족이다. 모두가 평온해 보이고, 별일 없어 보이지만, 조금 더 깊숙이 들여다보면 문제가 없는 가족이 드물다. 건강, 관계, 재정, 종교와 같은 영역에서 지금 문제가 있거나 과거의 문제로 인해 현재까지 어려움을 겪는다. 그래서 함께 있으면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가족이 많다. 명절 후 이혼율이 높아진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그런데 더 안타까운 것은 조금만 가족에 대한 지혜를 배우면 지금보다 훨씬 나아질 수 있는 경우가 많음에도 가족 안에서 벌어지는 문제를 발설하면 수치라 생각해 쉬쉬하는 사례가 많다는 점이다.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영화를 통해 이러한 문제에 작게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몇 편의 영화를 추천한다. 

에델과 어니스트(2018년, 영국, 감독: 로저 메인우드)

흔히 부모가 되어 봐야 부모의 심정을 안다는 말을 한다. 자신의 입장에서만 바라보기에 이해가 되지 않는 대상 중 하나가 부모이기 때문이다. 어릴 적 부모의 모습은 한없이 컸고, 부모를 통해 제공되는 환경과 편의는 당연한 듯이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부모가 되어 보면 어떤가? 부모 역할에 숙련자인 줄 알았던 그들 또한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책무를 다하기 위해 온 힘과 정성을 쏟으며 인생의 시기를 보냈던 수련자임을 알게 된다. 부모의 삶을 이해하고 감사를 마음 다해 표현할 수 있는 때가 되면, 부모가 세상에 계시지 않거나 고령인 탓에 생각보다 보답해 드릴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영화 〈에델과 어니스트〉는 부모의 삶을 헤아리고 감사를 배울 수 있는 애니메이션이다. 《눈사람 아저씨》를 비롯해 《산타 할아버지》,  《곰》처럼 다양한 그림책으로 사랑 받아온 작가 레이먼드 브릭스가 1988년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난 후 부모의 삶을 재구성한 책을 출판했고, 2016년 영국에서 애니메이션 영화로 발표된 작품이다. 1920년대 영국 런던의 우유 배달부와 가정부가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한다. 한 명의 남자 아이가 태어나고, 얼마 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 아들의 안전을 위해 시골로 대피시키기고, 그 아들은 상급학교로 진학하며 점점 자신만의 세계를 형성해간다. 아들의 머리 길이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등 사소한 불만이 있었지만, 그래도 아들은 잘 성장해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린다. 어느덧 노인이 된 부부는 40여 년을 함께했던 시간을 뒤로 하고, 죽음을 맞이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저 한 부부의 평범한 일생을 그린 영화라고 밖에는 볼 수 없다. 그러나 이 영화에는 한 가지 주목할 시선이 있다. 그것은 바로 아들이 부모의 입장에서 기술했다는 점이다. 레이먼드 브릭스 자신이 아들이지만, ‘그때 부모님은 어떠했을까?’를 떠올리며 원작을 만들었다. 전쟁으로 인해 시골에 보내진 그는 외로움과 결핍의 시간을 보냈지만, 그렇게 자식을 시골로 보낸 부모 역시 전쟁의 공포 속에서 아들을 그리워하며 울고 있었다. 청년이 되어 히피 문화의 영향으로 머리를 기르자, 이를 못마땅해 하던 어머니가 어린 시절 아들의 머리카락이 잘렸다고 울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레이먼드 브릭스의 아내가 조현병으로 아이를 갖지 못했지만, 부모 역시 본래는 자녀를 많이 가지길 원했다. 또 자신과 달리 부모의 자동차가 컸던 이유는 허영이나 사치가 아니라 중산층이 되기 위해 힘썼던 부부의 꿈이 담긴 상징이었다. 

창세기 47장에는 애굽의 왕 바로 앞에 선 야곱의 모습이 나온다. 바로가 야곱에게 나이를 묻자 나그네 길의 세월이 130년이라고 밝히며 자신의 인생을 험악한 세월로 표현한다(창 47:8-9). 그 험악한 세월의 상당수는 자녀들의 분란 속에 찾아온 요셉의 사망 소식으로 애타던 시절의 안타까움이 담겨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야곱이 누군가? 아버지 이삭을 속이고 형 에서와의 다툼을 피해 수십 년에 걸쳐 광야 생활을 했던 장본인이 아닌가! 그는 자신의 이익과 복에 충실한 나머지 남겨진 부모와 형의 고통과 상실에 대해서는 헤아려보지 못했던 세월을 보냈을 것이다. 아들을 그리워했을 이삭처럼 자신 역시 죽었다고 생각했던 요셉을 그리워하다가 요셉의 생존 소식을 듣게 되고, 그 아들을 만나기 위해 애굽까지 오는 긴 여정 속에서 부모의 심정을 깨닫게 된 것은 아니었을까? 부모의 심정을 미리 알 수 있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의 시간 속에서 가족 간의 행복을 소중히 여기며 살 수 있을 것이다. 

우아한 거짓말(2014년, 한국, 감독: 이한)

아이들의 세계는 또 다른 우주다. 어른들의 눈으로 바라보며 그들에게 ‘착하고 바르게’라는 모범적인 구호 몇 마디로 상황을 정리하며 교육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그들만의 세계 속에서 그들은 편을 가르고,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는 쪽이 무엇인지를 본능적으로 알아채 처신한다. 어른과 동떨어진 세계이기 때문이 아니라 어른들의 세계 속에 그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무수한 아이들이 그들의 세상에서 상처받고 심지어 어른의 세계로 비상하기 전에 날개가 꺾이는 일이 비일비재한 이유이기도 하다. 
〈우아한 거짓말〉은 남편과 사별하고 마트에서 일하며 두 딸 만지(고아성), 천지(김향기)와 사는 엄마(김희애)의 이야기다. 이들은 경제적으로 넉넉하지는 않지만, 단란하게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아침, 그날도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아침식사를 하는 중에 천지가 생일 선물로 MP3를 사 달라고 한다. 평소 사려 깊은 말과 행동을 하던 천지가 생일이 한참 남았는데도 MP3를 요구하는 것이 엄마에게는 다소 생소하게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그날 오후, 천지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아무런 이상 징조도 보이지 않던 딸의 죽음을 엄마와 언니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우연히 언니 만지는 동생의 학교 친구들을 만나면서 어쩌면 동생이 학교에서 집단 따돌림을 당한 게 아닐까라는 의심을 시작한다. 엄마의 털실뭉치에서 유언과도 같은 천지의 쪽지가 발견되고, 만지는 차츰 천지가 그간 학교 생활에서 어떤 관계의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지를 알아간다. 가장 친했던 친구 화연이가 천지를 가장 힘들게 했던 아이였다는 사실까지. 누구보다 따뜻한 마음으로 친구를 원했던 천지에게 또래 집단의 냉대와 놀림은 삶의 희망을 앗아갔던 것이다. 엄마와 언니가 천지의 울타리가 되어 주었다고는 하지만, 사춘기 시절 친구 외에는 채워 줄 수 없는 그들만의 세상에서 사실상 천지는 퇴출된 채 투명인간처럼 살았던 것이다. 〈우아한 거짓말〉 속 자녀들의 세상은 냉혹한 어른들의 축소판으로 이해할 수도 있고, 이 아이들이 그대로 성인이 되어 살아갈 세상 역시 다를 바 없다는 현실을 확인시켜 주기도 한다. 

성경은 관계에서 오는 냉혹한 현실에 대해 다음과 같이 경고한다. ‘피 흘리기를 좋아하는 자는 온전한 자를 미워하고 정직한 자의 생명을 찾느니라’(잠 29:10). 보통 부모는 자녀가 온전하고 정직하게 자라기만 바란다. 그러나 이것은 자녀에게 면역력을 길러 주지 않은 채 길거리로 내보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세상에 악한 의도와 폭력성이 있음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그저 내 아이는 바르고 성실하니 모든 사람이 좋아하리라 생각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한 태도다. 자녀의 내적 태도와 성품에 대해 바르게 지도하는 것과 동시에 그런 태도를 견지하며 살아가는 것에는 많은 부딪힘과 갈등도 있음을 알려 주어야 한다. 

또한 자녀와의 대화가 일방적인 지시와 훈계로만 흐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자녀가 자신이 겪는 관계와 진로의 어려움에 대해 부모와 의논할 수 있는 신뢰 관계를 형성하는 것도 중요하다. 자녀에게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경제적인 면과 같은 외적인 지원에만 초점을 맞추고, 정작 자녀에게 인생의 선배이자 후원자로서 나누는 정서적인 교감을 놓쳐서는 안 된다. 부모가 모든 인생의 해법을 알고 적절한 조언과 인도를 해 줄 수는 없다. 그러나 최소한 자녀가 자신의 고민을 진솔하게 부모에게 알릴 때, 거부당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을 주는 일은 중요하다. 자칫 모든 것을 채워 주려 하다가 제일 중요한 것을 채워 주지 못하는 잘못을 범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더 늦기 전에 자녀의 방문을 노크하고 자녀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려는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 

하나와 미소시루(2016, 일본, 감독: 아쿠네 토모아키)

세상에 완벽한 부모는 없다. 그럼에도 모든 부모는 자녀에게 최선의 것을 주고 싶어 한다. 그게 부모의 마음이니까. 정도가 지나칠 때, 자녀는 스스로 걷는 대신 부모에게 의존한다. 세상을 직접 대면하지 못하고, 부모가 지어 준 안정이라는 집에서 칩거한다. 그렇게 자라는 자녀는 결코 어른이 될 수 없다. 세상은 쓰러지고 넘어져도 자신의 걸음으로 성장해 온 어른들이 만나는 광장이다. 그러므로 자녀를 사랑한다면 절제가 사랑일 수도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자녀에게 모든 것을 해주지 못한다고 자책할 필요도 없다. 그것이 사랑의 증거도 아니고, 부모가 해야 할 책무를 도외시한 것도 아님을 알아야 한다. 부모는 자신이 가진 재정과 삶의 형편 가운데 다만 ‘사랑으로’ 자녀를 양육하고, 독립하기 전까지의 동행자인 것이다. 오늘도 자녀에게 무엇을 더해 주지 못해 불안해하는 부모에게 영화 〈하나와 미소시루〉를 권한다. 

싱고(타키토 켄이치)는 한눈에 치에(히로스에 료코)에게 반한다. 적극적인 구애 속에 두 사람은 결혼하고, 행복한 삶이 계속 펼쳐질 것 같던 이들 부부에게 치에의 유방암 발병 소식이 들린다. 항암 치료를 하며 완치에 속도를 내야할 시기에 치에가 임신을 한다. 의사는 임신을 하게 되면 여성 호르몬이 많아져 암의 재발확률이 높다며 반대하지만, 결국 부부는 아이를 낳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꽃이라는 뜻의 ‘하나’를 출산하며 암이라는 행복의 장애물처럼 보이는 문제를 적극적으로 극복하기로 결정한다. 

가족의 단란한 일상이 5년째에 접어들 무렵, 치에의 몸에서 암이 재발한다. 죽음을 예감한 치에는 삶을 마감할 준비를 하며 남겨질 이들을 위해 자신이 꼭 해야 할 일 한 가지를 실행한다. 바로 하나에게 앞치마를 선물하며 ‘미소시루’(일본식 된장)와 ‘현미밥’ 만드는 법을 전수해 주는 일이다. 아직 엄마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모르는 하나는 그 나이의 아이들처럼 엄마에게 요리를 배우기 싫다며 투정부리지만, 엄마는 단호히 딸에게 요리를 가르친다. 그리고 치에는 딸과 남편을 위해 마지막 음악회에 서서 영원히 남을 추억을 선물한다. 영화의 마지막은 엄마가 하늘로 떠난 빈자리에 아빠와 딸만 남는다. 그런데 그 장면은 허전함과 쓸쓸함 대신 창가로 불어오는 바람이 희망과 설렘을 느끼게 한다. 엄마에게 배운 요리법으로 정성껏 차린 식탁에 아빠와 딸이 아침을 맞으며 절망이 아닌, 새로운 걸음마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믿음과 소망으로 채워진 ‘부재’는 허무가 아니다. 예수님은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요 16:7)라고 말씀하셨다. 이제 더 이상 직접 예수님의 육성을 들을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후로는 성령님이 오셔서 눈으로 직접 보고 사귀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만남이 펼쳐질 것을 예언하셨다. 믿음 안에서 가정생활을 한다는 것은 자녀를 위한 기도와 인격적인 관계를 형성해 가지만, 결국 부모가 모든 필요를 채워 주지 못하는 빈틈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틈을 성령님이 더 풍성히 채워 주심을 신뢰하는 것이다.

사건·사고가 많은 세상 속에서 우리는 자녀를 완벽히 보호할 수 없다. 내일 어떤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또한 우리는 언젠가 사랑하는 가족들과 헤어질 수밖에 없다. 진학·결혼·이민과 같은 일상의 변화뿐만 아니라 죽음과 같은 커다란 이별도 시기를 알 수 없을 뿐 언젠가 마주쳐야 할 사건들이다. 그러므로 가족이 서로에게 완벽한 존재가 되어 주지 못함을 원망하고 아쉬워하기보다 함께하는 시기들을 서로 감사하며 매일을 충실히 살아가는 자세가 지혜로운 태도일 것이다. 

아이 캔 온리 이매진(2018, 미국, 감독: 앤드류 어윈, 존 어윈)

성도들과 상담을 해 보면 가족이나 친척을 용서하지 못해 신앙생활 속에 늘 풀지 못하는 숙제 같은 부담감을 안고 있는 이가 많다. 직장 동료나 사회생활을 하며 만난 사람들의 경우 일정 기간이 지나면 다시 보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가족이나 친척의 경우에는 평생에 걸쳐 자주는 아닐지라도 종종 봐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설령 관계를 단절한 채 산다고 해도 혈연 관계에서 원만하지 않다는 사실 때문에 마음에 부담을 느낀다. 설교 중에 등장하는 주제가 용서와 사랑인 경우 용서하지 못한 관계의 문제를 지닌 이들은 신앙생활을 하기에 그 부담이 더 크다. 특별히 가족의 경우에는 이해 관계에서 벌어진 다툼보다 훨씬 복잡하고 주고받은 상처가 커서 용서를 꺼내기가 쉽지 않다. 용서에 관한 실화 한 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아이 캔 온리 이매진〉은 같은 제목의 CCM (Contemporary Christian Music)으로 미국 빌보드 CCM 차트에서 근 20년간 상위권에 머물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노래의 실제 주인공 이야기다. 이 영화는 실제 주인공 바트(J. 마이클 핀리 분)의 꿈을 이루는 과정과 가족 간의 회복과 용서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전도유망한 미식축구 선수였던 바트는 부상을 당해 더 이상 운동을 할 수 없게 된다. 신실한 여자 친구 새넌(매들린 캐롤 분)의 기도와 응원 속에 교내 합창단에 소속되어 음악에 소질이 있음을 발견한다. 머시미라는 팀의 일원이 되어 밴드 순회 공연을 하며 앨범을 발매할 오디션을 받는다. 관객들의 환호와 달리 전문 음반 제작자들은 그들의 음악에 진정성이 결여되어 있다며 퇴짜를 놓는다. 원인은 음악성 이전에 바트의 내면에서 비롯된 상처 때문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학대하고 폄하하던 아버지(데니스 퀘이드 분)에 대한 두려움과 증오가 가득했고, 그것이 바트로 하여금 노래의 메시지와 자신을 일치시키지 못하도록 방해했던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렵게 아버지를 찾아갔는데, 놀랍게도 그사이 아버지는 하나님을 만났고, 바트에게 용서를 구한다. 그러나 어린 시절의 기나긴 학대와 가정불화를 경험했던 바트는 용서의 손길을 내미는 아버지의 손을 선뜻 잡지 못한다. 사실 아버지는 암 투병 중이었고,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이를 알게 된 바트는 아버지와 화해하고, 믿음 안에서 아버지와 평안히 이 땅에서의 마지막 시간을 보낸다. 이후에 자신의 일기 속에서 상처의 순간에도 기도하며 희망을 그렸던 것을 발견하고, 이를 〈아이 캔 온리 이매진〉이라는 곡에 담아낸다. 바트의 삶이 담긴 노래는 그렇게 많은 이를 위로하고 꿈을 꾸게 만드는 하나님의 위대한 도구가 된다. 

우리가 누군가를 용서해야 하는 가장 근원적인 이유가 무엇일까? 〈아이 캔 온리 이매진〉에서 바트의 노래가 진실하게 들리지 않았던 이유를 생각해 보면, 그의 삶에 용서하지 않는 관계, 즉 파괴된 부분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엡 4:32)라는 말씀은 용서해야 하는 근거를 자신에게서 찾지 않고 하나님에게서 찾을 것을 요청한다. 

즉 하나님이 우리와 파괴되었던 관계를 긍휼이 넘치는 용서로 회복해 하나 됨을 이루셨던 것처럼 우리의 관계 안에 어그러진 부분을 회복해갈 때 우리 역시 온전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본래의 모습대로 살아가는 길에서 용서는 결과가 아니다. 과정이다. 그러나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름다운 삶으로 한걸음씩 나가게 된다. 용서는 의무가 아니다. 용서는 은혜로 들어설 수 있는 기회의 문이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 일본,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관계의 핵심은 완성에 있지 않고 과정에 있다. 관계에 정점이란 있을 수 없다. 끊임없이 관계의 성숙을 향해 나아가는 노력만이 있을 따름이다. 가족 안에서의 자기 정체성은 홀로 형성할 수 없다. 남편은 아내를 통해, 아내 역시 남편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이 세워진다.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도, 형제간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서로가 서로를 성숙하게 이끄는 도우미가 되며, 스승과 제자가 된다. 반드시 나이가 많아서가 아니라 자신의 부족함을 상대방으로 인해 깨닫게 될 때, 변화는 찾아온다. 

여기 거의 완벽에 가까운 료타(후쿠야마 마사하루 분)라는 남자가 있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비즈니스맨인 그는 똑똑하고 능력 있는 아버지이자 남편이다. 어느 날 믿기지 않는 연락을 받는데, 아이가 병원에서 바뀌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남자 류다이(릴리 프랭키 분) 역시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첫째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피 검사 결과를 통해 자신의 아이가 아니란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병원에서 만난 두 부모는 아이를 바꿔서 키우는 데 동의한다. 아이의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공원과 키즈 카페 등에서 시간을 함께 보내다 점점 각자의 집에서 아이를 양육하기 시작한다. 

평행선을 걷는 것 같던 흐름이 깨지는데, 료타의 집으로 온 류세이(황쇼겐 분)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며 자신을 키워 준 집으로 몰래 돌아가면서부터다. 반면, 류다이의 집으로 가게 된 케이타(니노미야 케이타 분)는 처음의 어색함을 극복한 뒤로는 잘 적응한다. 외형적으로 보면 성공한 아버지 밑에서 안정적인 양육을 지원받을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 류세이가 훨씬 행복할 확률이 높은데, 상황은 정반대로 돌아간다. 

허름한 전파상을 운영하며 세 아이와 함께 목욕도 하고, 스스럼없이 장난을 치는 류다이가 료타의 눈으로 보기에는 모자란 아버지이건만, 왜 류세이는 모든 게 갖춰진 자신의 집에서 점점 얼굴이 어두워지는 것일까? 부족해 보이는 아버지 류다이가 완벽해 보이는 아버지 료타에게 따끔하게 건넨 충고의 말에 그 이유가 담겨 있었다. 료타는 회사가 자신을 얼마나 필요로 하는지 설명하며 능력 있는 가장으로서의 중요성을 말할 때, 류다이는 ‘아버지란 일’도 다른 사람이 못 하는 일이기에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게 최고라고 말한다. 아이들은 아빠의 사회적 성공이 아니라 자신들의 세계를 이해하고 공감해 주는 것을 원한다. 그러면서 료타는 자신이 얼마나 케이타에게 부족한 아버지였는지 깨닫는다. 그렇게 그는 진짜 아버지가 되기 시작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가족의 일원으로 부르셨다.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 우리는 누군가의 아들 또는 딸이 된다. 우리가 부모라 불렀던 그들 또한 자녀를 출산하는 순간부터 누군가의 아버지이자 어머니가 된다. 그래서 시행착오가 있기 마련이다. 부모가 되기에는 매우 부족하다는 것을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부모들은 절감한다. 기쁨의 순간 못지않게 절망과 막막함의 순간들도 부모들에겐 자주 찾아온다. 이전에는 자신의 몸 하나 챙기기 바빴던 이들이 이제는 오직 자신만 바라보는 자녀들로 인해 무수한 불편과 고난을 감수한다. 자연스러워서가 아니라 그래야만 자녀도, 자신도 살 수 있기 때문이었다. 완벽하지 않은 부모가 나쁜 게 아니다. 성장하지 않는 부모가 나쁜 것이다. 자신의 부족함과 모자람을 양육에 있어서도 인정하며 실패와 좌절의 순간들을 교훈으로 삼아 더 좋은 부모가 되는 쪽을 택해야 한다. 그렇게 우리는 온전함을 향해 부름 받았다. 

가족은 우리의 스승이다

가정 사역 전문가 게리 토마스는 《부모학교》라는 책에서 자녀를 ‘거룩한 스승’이라고 부른다. 자녀는 좋을 때든 나쁠 때든 우리 마음을 빚고 영혼을 성장시키며, 보다 깊고 새로운 방식으로 하나님을 경험하도록 우리를 초대하기 때문이다. 자녀 양육의 신성한 여정 중에는 눈물도 많이 흘리겠지만 길모퉁이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축복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자녀 양육에만 해당되는 이야기일까? 그렇지 않다. 신앙의 눈으로 바라보는 부모와 형제, 친척들은 모두 영적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우리를 성장하게 만드는 하나님의 메신저들이다. 물론 우리 또한 그들에게 그러한 존재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비록 어렵고 힘들지만,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을 영적동반자로 바라보며 가정의 행복이라는 순례의 길을 성공적으로 완주하는 이들이 교회 안에 더 많아져야 할 것이다. 깨어진 관계 속에 신음하는 세상에 이러한 행복한 가정을 가꿔가는 이들이 많아질수록 교회는 소망이 되고, 전도와 선교의 가장 확실한 증거가 될 것이다. 가정의 행복을 교회가 강조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성현 기독교영화관 필름포럼 대표. 실천신학대학원(Ph.D.). 필자의 다른기사 keyboard_arrow_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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