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와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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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와진단 2019년  05월호 개혁 교회의 특징이 오롯이 남은 남아프리카공화국 교회 세계 교회는 지금(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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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프타운에 있는 마더처치
 
남아프리카공화국(이하 남아공)은 아프리카 최남단에 있는 국가다. 인구는 약 5700만 명이며 이집트와 함께 아프리카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다. 아프리카 국가 중 가장 고도화된 산업화를 이루었고, 경제의 중심지이며, 실질적인 리더다. 남아공의 교회는 역사가 깊다. 약 400년 전 네덜란드인들의 이주와 함께 교회가 시작되었고, 현재 기독교 인구는 90%에 육박한다. 아프리카 선교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요즘, 아프리카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남아공의 교회 모습을 알기 위해 정은일 목사를 만났다. 정은일 목사는 고신대 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을, 캘리포니아 신학대학원에서 선교학을, 남아공의 포체프스트룸 대학원에서 설교학을 공부했다. 요하네스버그 한인교회에서 1992년부터 28년째 담임목사로 시무하고 있다. 지난 4월 2일 부산 사직동교회에서 안식년으로 고국을 방문 중인 정 목사를 만났다.


남아공 교회는 어떻게 시작되었나?

1600년대 중반부터 네덜란드인의 남아공 이주가 시작되었으니 400년 가까운 역사를 가졌다. 남아공 교회는 이들이 정착하면서 시작된다. 당시는 유럽인들의 신항로 개척이나 신대륙 발견이 활발하던 시대다. 네덜란드인들도 인도까지 항로를 개척하고 동인도 회사를 세워 향로를 수입했다. 하지만 인도에서 유럽으로 오는 길은 결코 가깝지 않았다. 중간에 보급할 곳이 필요했고, 이들은 남아공 케이프타운에 식료품을 보급하는 선식 회사를 차렸다. 많은 배들이 케이프타운에 정박했다.

백인들이 남아공에 들어와서 처음 발견한 것은 좋은 기후였다. 사실 남아공은 기후가 정말로 좋다. 오대양 육대주를 다녀 봐도 이곳만큼 좋은 곳이 없다. 그래서 몇몇 이들이 아예 정착하기로 결심한다. 남아공에 처음 들어온 이들은 네덜란드인이었는데 당시 네덜란드는 개신교 국가였으므로 백인들의 정착과 교회의 역사가 함께 시작되었다고 보아도 된다. 그 이후에 프랑스의 위그노들이 들어왔는데 이들도 박해를 피해서 들어온 개신교인들이다. 나중에는 독일인들도 들어온다. 즉 처음 남아공에 온 이들이 모두 개신교 신앙을 가진 이들이었다. 이들은 네덜란드어가 60% 이상 반영된 ‘아프리칸스어’라는 언어를 만들고 커뮤니티를 형성했다.

제일 먼저 정착한 곳은 케이프타운이다. 이곳에서 점점 북쪽으로 진출했다. 그래서 케이프타운을 ‘마더시티’라고 부른다. 백인들이 정착하면서 제일 먼저 한 일은 교회를 세운 것이었다. 케이프타운에 가면 300년이 넘은 역사를 지닌 마더처치가 있다. 그리고 이 교회를 중심으로 길이 나 있고, 그 길을 ‘처치 스트리트’라 부른다. 북쪽으로 거듭 개척해 나가면서도 가장 먼저 했던 일은 교회를 세우는 것이었다. 그래서 대부분 도시에 가면 교회가 있고, 그 주변 길을 처치 스트리트라고 부른다. 이렇게 시작된 것이 남아공 교회다.


남아공 교회의 현재 상황은 어떤가?

아프리카 대륙 전체로 보면 교회가 부흥을 한다거나, 무슬림 세력이 커진다거나 하는 이야기도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남아공에는 원래 교회가 많았다. 전체 인구의 70% 가까이가 기독교인으로 조사된다. 백인들은 거의 기독교인이라고 보면 된다. 대학들을 보아도 기독교 국가의 느낌이 난다. 프리토리아대학, 스텔른보쉬대학, 포체프스트룸대학 등은 모두 정부의 지원을 받는 종합 대학인데 그 안에 신학부가 설치되어 있다. 신학부는 각각 연계된 교단의 영향 아래 운영된다.

교회의 역사가 꽤 길기 때문에 유럽과 비슷한 명목적 그리스도인들도 있다. 기독교인이라고 대답하고, 유아세례나 결혼식 때는 교회에 나오지만, 주일예배에 참여하지 않는 자도 많다. 그래도 아직 주일이면 예배당이 가득 찬다. 보수적인 교리를 고수하는 교회가 많으며, 세속화의 흐름에도 많이 휩쓸리지 않았다.

교파적으로 보면 아무래도 개혁 교회의 비율이 가장 높다. 물론 침례교, 장로교, 감리교 등 다양한 교단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개혁 교회가 전체의 40%를 차지할 정도로 대다수다. 


아파르트헤이트 때 교회의 과오가 있었는가?

개혁 교회의 책임이 분명히 있다. 앞서 얘기했듯, 남아공의 백인들은 대다수가 개신교인들이다. 즉 아파르트헤이트를 주도한 ‘보어인’들, 국민당 정권의 대다수는 개혁 교회 소속이었다. 남아공의 개혁 교회는 ‘개혁 교회’와 ‘화란 개혁 교회’로 나뉘어 있는데 둘 다 아파르트헤이트를 찬성했고, 이론적인 기반을 제공하기도 했다. 물론 그들이 나쁜 의미에서 정책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흑인과 백인을 차별하자는 것이 아니라 분리하자는 취지였다. 즉, 서로 다른 문화를 인정하고 자신들의 기준에 맞게 살아가자는 것이었다. 그것이 흑인과 백인이 좋은 이웃으로 사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당시 이미 벌어져 있던 사회적 지위 수준이나 경제적 수준의 차이를 보았을 때 현실적으로 이 정책은 인종 분리 정책이 아니라 인종 차별 정책이 될 수밖에 없었다. 아파르트헤이트 이후 흑인들은 상당한 고통을 당하게 된다. 게다가 흑인들의 참정권까지 인정하지 않았으니 아주 악한 차별 정책이라 할 수 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아파르트헤이트의 철폐에도 교회가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아파르트헤이트 철폐에 큰 역할을 했던 남아공의 10대 대통령 프레데릭 데 클레르크는 포체프스트룸대학 법대 출신이었고, 개혁교단의 장로였다. 그는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완벽한 민주주의의 정착’을 선언하고 26년 동안 수감 중이던 넬슨 만델라를 석방한다. 1991년에는 수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파르트헤이트 법률을 40년 만에 철폐하고, 94년에는 남아공 역사상 처음으로 흑인들이 참여하는 자유총선거를 실시했다. 그 결과 아프리카민족회의(ANC)가 압승하고 당수였던 만델라는 대통령에 선출된다. 처음으로 정권을 잡은 흑인 정당은 행정력이 부족했다. 만델라의 요청으로 그는 야당임에도 ANC 정부의 부통령을 맡아 2년간 흑인 정부의 기틀을 다지기도 했다.


아파르트헤이트가 교회에 미친 영향도 있는가?

꽤 오랫동안 아파르트헤이트는 유지되었고, 사회 곳곳에 영향을 미쳤다. 물론 교회에도 흔적을 남겼다. 아파르트헤이트는 이미 1994년에 철폐되었고, 이제는 25년이나 지났다. 흑과 백을 분리하는 것은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남아공의 교회들도 예전의 과오를 회개하고 복음으로 돌아가자고 외친다. 최근에는 흑인과 백인이 함께 예배하는 교회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서로의 문화적 차이가 크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섞이지는 못한다. 백인 교회, 흑인 교회, 유색인 교회가 자연스럽게 나뉘어 있다.

개혁 교회를 예로 들면 아파르트헤이트 당시에는 한 교단 안에 백인 총회와 흑인 총회가 따로 있었다. 만델라 정부가 들어선 이후 교회도 하나가 되기로 했다. 둘을 물리적으로 합쳤지만, 오히려 흑인들의 발언권이 줄어들고, 자기도 모르게 주눅 들어 의견을 자신 있게 개진하지 못하는 일들이 생겼다. 지금은 흑인들의 요청에 의해 다시 두 총회를 분리해 의사 결정을 한다.

저항 정신이 강한 남아공의 흑인들은 아파르트헤이트까지 경험했기에 그 정신은 더욱 커졌다. 그들에게 개혁 교회는 제국주의의 다른 이름이다. 그래서 개혁 교회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 흑인이 주로 거주하는 동네를 선교할 때는 개혁 교회라는 것을 전면에 드러내지 않기도 한다.


남아공 교회의 특징은 무엇인가?

개혁 교회의 전통이 많이 남아 있다. 역사가 오래된 남아공 대부분의 교회는 아직도 예배당에 피아노나 드럼이 없다. 예배 중에는 파이프 오르간만 사용한다. 찬송도 시편 찬송만 부른다. 물론 새롭게 등장하는 교회나 젊은이들이 주축이 된 교회, 흑인들의 교회는 찬양을 많이 하는 예배를 드리기도 한다. 젊은이들은 아무래도 전통적인 예배 방식을 지겨워하는 경향이 있다. 흑인 교회도 다른 아프리카 교회처럼 카리스마틱한 예배는 아니지만 그들만의 기질이 예배에 묻어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대부분 남아공 교회의 주된 예배 방식은 아주 전통적이다.

남아공에서는 개혁 교회 성도가 다른 교단, 예를 들어 감리교회로 옮기게 되면 기존 교회의 치리를 받는다. 교파 개념이 아주 강해서 알미니우스주의를 따르는 교단으로 가면 치리를 당한다.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대부분의 성도들이 자신이 다니는 교회가 어느 교단 소속인지, 그 특징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하지만 남아공에서는 그 개념이 아주 뚜렷하다. 같은 교단 안에서의 이동은 정확한 이명 절차를 밟아야 한다. 이사를 하면 그 지역과 가까운 곳에 있는 교단 교회로 보낸다. ‘나는 말씀이 좋아서 기존 교회로 가겠습니다’라는 개념이 그곳에는 잘 없다. 웬만하면 가까운 곳으로 가도록 권면한다.

가족예배를 매우 자주 드리는 것도 남아공 교회의 특징이다. 원래 화란의 개혁 교회는 설교를 제외한 모든 예배 순서에 아이들이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남아공 교회도 화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한국에서 요즘 말하는 세대 통합 예배라는 것은 남아공 교회에서 전통적으로 종종 드려온 것이다. 아이들도 그것에 훈련이 되어 있는지 남아공 개혁 교회의 예배에 참여해 보면 꽤 긴 예배 시간임에도 아이들이 꿈쩍 않고 앉아 있다. 시편 찬송도 잘 따라 부르고 설교 시간에도 집중력이 있다.


목회자의 생활은 어떠한가?

교회마다 사정이 다르다. 개혁 교회의 경우에는 규모가 크면 부목회자를 두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교회가 담임목회자 한 명과 직원, 장로에 의해 운영된다. 교회의 규모에 따라 목회자의 사례비나 생활수준도 다르다.

목회자들의 신학적 수준은 굉장히 높다. 남아공에는 훌륭한 신학교가 많다. 세계적인 신학자를 많이 배출했고, 그들 밑에서 수준 높은 학문을 수학할 수 있다. 스텔른보쉬나 포체스트룸 신학부에는 지금도 한국 보수 교단에서 많은 학생이 유학을 온다. 목회자들의 말씀 주해나 설교의 수준이 상당히 높다.

반면 흑인 교회에는 제대로 신학 공부를 하지 못하고 안수 받은 이들이 목회하는 경우도 있다. 이로 인해 종교적 혼합주의와 같은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 이들을 위한 선교와 교육, 구제가 필요하며 많은 교회가 노력 중이다.


한국 교회가 배울 만한 남아공 교회의 장점은 무엇인가?

남아공 교회의 장로들은 실제로 교단 헌법에서 말하는 장로의 일을 한다. 장로직이 명예직이나 관리직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부목회자가 하는 일들을 실제로 한다. 문화적인 차이일 수도 있다. 남아공에서는 성도들끼리 서로 호명할 때 직분을 말하지 않고 이름을 부른다. 그래서 장로, 집사, 목사인 것이 명예가 되지 않는다. 목사를 부를 때도 전체 이름을 부르고, 친해지면 그냥 이름으로 호명한다. 그래서인지 수직적인 문화가 아니라 수평적인 문화가 형성된다. 장로는 장로의 일을 하고 목사는 목사의 일을 하는 것이다.

보통 장로는 3년의 임기를 가진다. 3년 동안 하나의 교구를 담당한다. 저녁에는 심방도 다니고, 결혼이나 장례 등 가정의 일이 있으면 방문하기도 한다. 금요일 저녁에는 담당 교구의 가정들을 찾아다니며 십일조를 거두기도 한다. 목회자의 방문이 필요한 가정이 있으면 보고해서 목회자가 심방하도록 돕는다. 그렇기에 남아공 교회의 장로들은 정말로 바쁘다. 그들 중에는 교수도 있고, 선생도 있고, 사업을 하는 이들도 있다. 모든 봉사를 생업을 감당하면서 한다. 3년 임기가 끝나면 다시 집사가 되는데 그동안 수고가 많았다며 다 함께 축하해 준다.

장로를 선출하는 방법도 다르다. 임기가 끝나고 자리가 비는 만큼 당회에서 후보자를 결정한다. 실제로 장로의 일을 해야 하기에 충분히 검증하고 본이 되는 이들로 선정한다. 당회에서 이들에 대한 면접도 진행하고, 여러 경로를 통해 검증한 후 교회 내에 공표한다. 그리고 몇 주간 함께 기도하고 교인들의 반대 의사를 묻는다. 물론 당회에서도 충분히 검증을 했고 공동체에서도 인정받는 이들이기에 반대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새롭게 장로가 되는 이들을 장립하고 축하하는 행사도 하는데, 앞으로 얼마나 힘들지 알기에 많은 위로와 격려를 보낸다.

어떤 교회의 담임목회자가 신학부 교수로 가게 된 일이 있었다. 남아공 교회에서는 모든 것을 공개하고 함께 기도한다. 다른 교회의 청빙을 받거나 신학교에서 부름을 받으면 교인들에게 공개하고 함께 기도하길 구한다. 그리고 응답대로 남거나 떠나는 것을 결정한다. 실제로 교인들과 기도한 후 목회지에 그대로 남는 경우도 많다. 그 목회자의 경우 하나님이 신학부 교수로 부르신 것을 확신하게 되었고, 결국 교수가 되었다. 그런데 그 뒤의 결정이 우리나라와는 많이 다르다. 목회자는 자신이 목회하던 교회에 집사로 남았다. 그리고 장로의 자리가 생기자 장로로도 선출되었다. 실제로 심방 다니는 장로의 일을 했고, 자신보다 한참 후배인 후임 목회자에게 성실히 보고하고 그를 섬겼다.

이와 같은 문화는 남아공 교회의 큰 장점이다. 우선 수평적인 문화와 개인의 욕심이 반영되지 않는 구조가 본받을 만하다. 게다가 일반 성도들이 교회의 실제적인 운영에 주도적으로 참여한다는 것은 교회를 생명력 있게 하는 매우 큰 장점이다.


남아공 교회의 가장 큰 걱정은 무엇인가?

흑인 교회 중 교리적인 문제가 있는 곳이 많다. 혼합주의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다든가, 지나치게 은사주의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다. 주일에는 교회에 나오지만 집에 가서는 여전히 조상신을 섬긴다. 이런 이들도 종교 조사에서는 기독교라고 답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얼마나 많은 이들이 여전히 조상신을 섬기는지 파악하기도 힘들다. 경제 수준이나 교육 수준도 많이 떨어지기 때문에 그들을 향한 구제나 선교의 필요도 여전히 크다. 그래서 남아공은 70%가 기독교인임에도 여전히 선교가 필요한 국가다. 최근에는 백인 선교사들이 많이 빠져나가는 추세이기 때문에 걱정이다. 우리 교회도 현지에 16개의 교회를 세우고 교구들과 연계해서 사역하는 중이다.
이슬람교의 확장도 걱정이다.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기독교도 성장을 했겠지만, 이슬람이 최근 무서운 속도로 성장 중이다. 남아공은 그나마 잘 방어하고 있지만 영향을 받는다. 남아공은 아프리카의 리더 격이다. 이럴 때일수록 남아공 교회들이 바른 신학, 바른 신앙으로 자리 잡아야 아프리카 대륙에도 복음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남아공 교회를 위한 기도 제목은 무엇인가?

첫 번째는 남아공 전체의 안정이 중요하다. 남아공은 아프리카 대륙의 경제 중심지다. 지금도 아프리카 각 국에서 목숨을 걸고 남아공으로 건너오는 이들이 많다. 남아공에만 가면 먹고 산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꾸준한 경제 성장이 이루어져야 개신교가 아프리카 전체에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다.

특히 최근에는 백인들의 경제력이나 영향력이 많이 줄어들었다. 역차별 때문이다. 물론 그동안 소외되고 억압받았던 흑인들에게 유리한 정책을 시행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것이 오래 지속되어 또 다른 불평등을 낳았다. 많은 백인 인재들이 이민을 갔고, 오히려 백인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지경이다. 어떤 모양의 불평등이든 국가에는 손해가 된다. 흑인들을 위해 구제하던 비용도 많이 줄었다. 그래서 정치와 안정을 위한 기도가 필요하다. 아프리카 전체를 품기 위해서다. 

두 번째는 남아공 선교를 위해서 기도 부탁드린다. 많은 백인 선교사가 철수한다. 한국 선교사도 남아공에 많이 들어와 있는데, 문제는 최근 비자 연장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남아공은 여전히 선교적 도움이 필요한 나라다. 이들의 비자 연장 문제가 해결되어 선교에 집중할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드린다.

정은일, 송지훈 정은일 요하네스버그 한인교회 담임 목사, 송지훈 <목회와신학> 기자 필자의 다른기사 keyboard_arrow_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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