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와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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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2019년  04월호 염려와 안식 안식, 목회 회복의 첫걸음

목회에 큰 영향을 끼치는 염려

목회자의 염려는 목회에 큰 영향을 끼친다. 목회자의 염려는 자신과 가족뿐 아니라 섬기는 성도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친다. 그런 까닭에 목회자는 염려의 문제를 올바로 이해하고 염려를 잘 관리해야 한다.

목회자의 자기 관리 중에 하나는 염려 관리다. 염려는 목회자의 설교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 예수님은 씨 뿌리는 비유에서 가시떨기와 같은 마음 밭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가시떨기와 같은 마음 밭의 위험성은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이다. 그 결과는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것이다(마 13:22). 목회자는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목회자가 염려 때문에 말씀이 막혀 결실을 맺지 못한다면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목회자가 염려 때문에, 말씀을 묵상하지 못한다면 성도들에게 좋은 꼴을 먹일 수 없다. 

나는 한때 염려의 문제로 엄청난 침체를 경험했다. 나의 기질은 우울과 담즙이 섞여 쉽게 낙심하고, 쉽게 침체에 빠지는 성향이다. 우울 기질이 가장 나를 괴롭혔던 때는 1989년에 로고스교회를 개척한 때였다. 개척 초기에 나는 엄청난 침체를 경험했다. 그 침체가 몇 년 동안 지속되었다. 내가 경험한 침체의 원인 중 하나가 염려였다. 물론 침체 초기에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나는 침체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면서 그 원인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성경과 함께 수많은 책을 읽었다. 그 당시 독서는 누군가를 돕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의 침체 원인을 발견하기 위해서였다. 감사한 것은 그때 읽은 수많은 책이 인생을 이해하고, 인간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나는 성경과 함께 양서를 읽는 중에 인간을 총체적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몸과 마음이 연결되어 있고, 몸과 마음과 영혼이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 당시 나의 착각은 목회자는 스트레스를 받아서는 안 되며, 염려해서도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그 당시는 30대 초반의 나이였던 까닭에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의 생애와 좋은 책들을 접하면서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가를 깨닫게 되었다. 목회자도 얼마든지 염려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어느 정도의 염려는 정상이며, 당연하게 여길 수 있게 되었다.

영적 침체를 통과하던 당시 읽었던 책 중의 하나가 데일 카네기가 쓴 소책자 《근심이여 안녕》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깨달은 것은 우리 인생의 많은 문제가 염려와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목회자와 성도들이 겪는 상당히 많은 문제가 염려에서 비롯한다. 우리가 경험한 것처럼 염려는 무거운 짐이다. 염려의 무게가 더해지면 그 무게가 우리를 억누른다. 염려는 우리를 두렵게 한다. 염려는 우리를 불안하게 만든다. 염려하면 모험심이 사라진다. 호기심도 사라진다. 침체 속으로 빠져든다. 염려는 기쁨을 빼앗아 가는 적이다. 좋은 관계 맺기를 방해하는 것도 염려다. 염려는 우리를 냉소주의로 몰아간다. 염려가 많으면 산만해진다. 초점을 잃은 까닭에 평강이 사라진다. 염려는 목표를 설정하거나 시도하지 못하게 만든다. 지금 이 시대에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는 염려다. 염려는 공황장애와 연결된다. 염려는 반드시 올바로 이해하고 극복해야 한다.

염려가 많으면 안식할 수 없다. 염려의 문제는 과거와 관련한다. 과거의 실수, 실패, 실언, 범한 죄와 관련되어 있다. 해서는 안 될 말을 하거나 상처를 입히는 말을 하고 나서 그것 때문에 염려하는 경우가 많다. 염려는 과거의 실수에 대한 후회와 관련되어 있다. 염려는 과거를 떠나지 못하게 만든다. 염려는 우리를 과거 속에 살게 만든다. 염려는 ‘오늘’이라는 소중한 선물을 빼앗아 가는 우리의 대적이다.

염려는 또한 미래와 관련되어 있다. 인간은 장차 일어날 것 같은 미래의 나쁜 사건을 상상하며 염려한다. 염려를 잘하는 사람의 상상력은 탁월하다. 염려를 통해 발달된 상상력은 부정적이다. 파괴적이다. 이런 상상력을 타락한 상상력이라고 부를 수 있다. 염려와 믿음은 모두 상상력과 관련되어 있다. 염려의 상상력이 부정적이라면 믿음의 상상력은 긍정적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다(히 11:1). 장차 일어날 좋은 일에 대해 상상하는 것이 믿음이다. 물론 우리 인생에서 항상 좋은 일만 일어날 수는 없다. 예측할 수 없는 고난이 찾아오고 질병이 찾아올 수 있다. 가까운 사람들과 갈등을 겪을 수도 있다. 하지만 믿음의 상상력이란 하나님이 모든 사건을 합력해서 선을 이루실 것이라는 확신이 포함된 상상력이다(롬 8:28). 하나님의 절대 섭리와 절대 주권을 믿는 상상력이다.

염려를 줄이는 길은 과거와 미래를 차단하고 오늘에 집중하며 사는 것이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훈련해야 한다. 또한 염려가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산상수훈에 나타난 염려의 정체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염려에 대한 정체를 파악하도록 우리를 도와주신다. 예수님은 염려가 비생산적이라는 사실을 강조하신다.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마 6:27). 염려한다고 작은 키가 커질 수 없다. 큰 키가 작아질 수도 없다. 염려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예수님은 염려가 비신앙적이라는 사실을 강조하신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의 자녀들의 필요를 알고 공급하신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 사실을 믿으라고 말씀하신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마 6:30-31). 예수님은 염려의 원인 중 하나가 믿음의 결핍이라고 말씀하신다. 믿음이 작아지면 염려가 커지고, 믿음이 강해지면 염려는 사라진다.
  예수님은 염려 대신에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함으로 염려를 극복하라고 가르쳐 주신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염려는 우선순위가 바뀔 때 생기는 현상이다. 염려는 우리의 눈길이 하나님이 아닌 환경에 머물 때 생기는 현상이다. 우리는 날마다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의 필요를 채워 주시는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염려를 묵상하지 말고 하나님을 묵상해야 한다. 예수님은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일에 힘쓸 때 염려는 사라질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내일 일도 염려하지 않도록 권면하신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마 6:34). 예수님은 우리가 과거의 일뿐만 아니라 내일의 일 때문에 염려하는 것을 아신다. 우리는 미래에 일어나지 않을 일들을 끌어와서 염려하는 데 명수다. 우리가 전혀 손댈 수 없는 두 날이 있다면 어제와 내일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순간은 오늘이다. 그런데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어제와 내일에 집착해서 염려하게 되면 오늘이라는 선물을 상실하게 된다. ‘지금 여기에’라는 소중한 선물을 누릴 수 없게 된다.

염려 극복하는 방법

목회자로 살아오면서 염려를 내려놓고 안식하는 법을 터득한 것을 함께 나누고 싶다. 가능한 염려를 덜 할 수 있는 방법과 염려를 극복하는 법을 나누고 싶다.

첫째, 목회자도 인간이기에 염려할 수 있다는 실존을 이해하도록 하자. 목회자는 하나님이 아니다. 인간이다. 그런 까닭에 염려가 깃든다. 마귀는 염려라는 씨앗을 뿌리고 다닌다. 또한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 어려운 현실, 그리고 힘든 교회 상황이 우리를 염려케 만든다. 목회자는 하나님이 아닌 연약한 인간이다. 그래서 염려할 수 있다. 염려할 수밖에 없는 자신을 이해하고 긍휼히 여기고 품에 껴안아 주는 훈련을 해야 한다.

둘째, 염려에 직면하고 분석하는 훈련을 하도록 하자. 많은 염려의 문제가 무지에서 온다. 어떤 사람은 비행기를 탈 때 염려를 많이 한다. 비행기를 타기로 예정된 몇 달 전부터 염려를 한다. 반면에 어떤 사람은 비행기를 탈 때 별로 염려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비행기가 자동차보다 더 안전할 수 있다는 지식을 지닌 까닭이다. 비행기 사고로 죽을 확률은 1100만분의 1이라고 한다. 비행기 사고보다 차 사고로 죽는 확률이 훨씬 높다. 올바른 지식이 염려를 물리치는 데 도움이 된다. 예수님은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한다고 말씀하신다(요 8:32). 염려에 대해 연구한 결과에 의하면 우리가 염려하는 문제 중에 90%는 거의 우리에게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염려를 극복하기 위해 올바른 지식을 갖는 것과 함께 염려를 직면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염려에 직면하는 것을 두려워하면 그 염려가 산더미처럼 크게 다가온다. 염려는 조용히 노려보고, 바라보면 별 것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영원의 시각에서 염려를 바라보면 우리가 염려하는 것들은 작은 점에 불과하다. 또한 우리 인생을 돌이켜 보면 우리가 염려하는 것들이 소낙비처럼 다 지나간 것을 깨닫게 된다. 소낙비는 반드시 멈추게 되어 있다.

염려에 대한 직면은 생각하는 훈련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염려는 생각에서 시작된다. 그런 까닭에 염려는 올바른 생각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오도록 하라(고후 10:5). 염려 대신에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선택하라. 염려의 씨앗이 들어오면 그 씨앗을 키우지 말라. 염려의 불씨는 초기에 끌수록 좋다. 염려를 조용히 바라보고, 염려 대신에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도록 하라. 그리함으로 염려의 불씨를 끄도록 하라.

셋째, 염려를 하나님께 맡기는 훈련을 하도록 하자. 성경은 거듭 하나님께 우리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으라고 권면한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 짐을 대신 져 주시길 기뻐하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안식하도록 초청하신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염려하면 어떤 도움도 되지 않는다. 염려는 건강을 해치고, 평강을 빼앗아 간다. 염려라는 짐을 주님께 날마다 내려놓는 것이 영성 훈련이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벧전 5:7). 염려를 주님께 맡겨 드리면 주님이 우리 대신 염려해 주신다. 주님이 우리가 염려하는 문제를 대신 해결해 주신다.
넷째, 염려를 기도로 바꾸는 훈련을 하도록 하자. 바울은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기도하라고 권면한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6-7).

영성 훈련이란 염려를 기도로 바꾸는 것이다. 염려할 일이 있으면, 염려 대신에 그 일에 관심을 갖도록 하라. 염려하는 일을 기도 제목으로 바꾸도록 하라. 염려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기도하면 놀라운 일이 전개된다.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대신해서 일해 주신다. 우리가 염려하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깨닫게 해 주신다. 염려를 관심으로, 관심을 기도로 바꾸는 훈련을 하도록 하라.

다섯째, 염려 대신에 하나님을 의지하는 습관을 형성하도록 하자. 염려도 습관이다. 염려가 익숙해지면 염려하지 않으면 이상한 느낌이 든다. 염려가 사라지면 염려할 거리를 일부러 생각해 염려하게 된다. 염려가 습관이 되면 기쁨을 상실한 채 살아가면서 염려에 안주하게 된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풍성한 생명을 누리기보다는 염려에 머물게 된다. 염려에 안주하는 일은 슬픈 일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풍성한 삶을 살기 원하신다. 천국을 경험하며 살기를 원하신다. 천국의 삶은 의와 평강과 희락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 14:17). 의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맺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때,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가 되신다. 우리는 그분의 자녀가 된다. 바로 그 관계 속에서 평강을 경험하게 된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워 주시는 분이다(빌 4:19). 그 사실을 믿을 때 희락이 임하게 된다. 바울은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빌 4:4)고 권면한다.

영성 개발의 핵심은 습관에 있다. 우리가 지속하고 반복하는 것이 습관을 형성하고, 습관은 우리의 성품을 형성한다. 바울은 기뻐하는 것과 기도하는 것과 감사하는 것이 습관이 되게 하라고 권면한다.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 염려는 좋지 않은 습관이다. 반면에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하는 습관은 좋은 습관이다. “염려하지 말라”(마 6:25, 34)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라.

여섯째, 염려가 될 일을 하지 않도록 훈련하자. 목회자의 많은 염려는 염려할 일을 스스로가 만든 데서 기인한다. 함부로 단언할 수는 없지만 교회에서 일어나는 많은 문제는 목회자 스스로가 만들어 낸 문제다. 목회자가 스스로 만들어 놓은 문제이기에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상황을 직시하지 못하고, 마귀가 역사한다고 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또는 목회자 자신의 유익이나 방어를 위해 성도들에게 무조건 순종하며 따르라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목회자는 그런 과정을 통해 성도들을 영적으로 학대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이런 실수를 나 자신이 목회하는 중에 많이 범했다.

목회자의 염려는 말실수에서 온다. 강단에서나 성도들과의 만남에서 말실수를 하거나 지킬 수 없는 약속을 난발할 때, 그 결과는 염려를 낳는다. 설교를 통해 은근히 마음에 들지 않은 성도를 치는 일이 염려를 만들어 낸다. 또한 목회자가 법적 절차와 질서를 무시할 때 염려를 낳게 된다. 목회자의 잘못된 권위 의식은 절대 권력을 꿈꾸게 된다. 모든 법과 절차와 질서를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일을 처리하려고 한다. 그 결과, 문제는 점점 커진다. 처음에 작은 일처럼 보이던 문제가 눈덩이처럼 커지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목회자가 목회 사역을 통해 일어날 수 있는 문제를 줄이는 방법은 길이 아니면 가지 않는 것이다. 정당한 절차와 질서를 따라 살아가는 것이다. 어떤 일을 추진할 때 교회법의 범위 안에서 추진하도록 힘쓰는 것이다. 법을 어기는 것은 불법을 행하는 것이다.

성경은 법을 강조한다. 율법이 있고, 자연법이 있고, 믿음의 법이 있고, 은혜의 법이 있다. 죄와 사망의 법이 있고, 생명의 성령의 법이 있다(롬 8:2). 성경은 불법과 무법을 경계한다. 성경은 올바른 법을 따라 살도록 권면한다.

목회자가 재정을 지혜롭게 관리할 때 염려를 줄일 수 있다. 교회의 많은 문제는 재정의 문제다. 목회자는 정해진 예산과 정해진 범위 안에서 재정을 관리하고 사용해야 한다. 청지기 정신을 가지고 재정을 관리해야 한다. 목회 활동비도 기록을 남기는 것이 지혜롭다. 모든 재정을 공개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필요할 때는 모든 사용내역을 공개할 수 있을 정도로 재정 관리가 투명해야 한다.

일곱째, 성도들을 전인적으로 이해하는 훈련을 하도록 하자. 목회자는 인간을 총체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인간은 영과 혼과 몸으로 구성되어 있다(살전 5:23). 혼을 정신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마음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감정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몸과 영을 연결시키는 통로라고 말할 수도 있다. 이런 접근은 나의 인간 이해와 경험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목회자들의 오류 중 하나는 모든 것을 영적인 문제로만 보는 시각이다. 존 맥스웰은 교회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문제는 영적인 문제가 아니라 리더십의 문제라고 말한다.
인간의 근본 문제가 죄와 영적인 데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인간의 문제는 다양한 이유 때문에 발생한다. 인간의 문제는 생각의 문제, 관계의 문제, 마음과 감정의 문제에서 생겨날 수 있다.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실 때 몸과 마음과 영을 모두 총체적으로 창조하셨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하나님이 마음을 만드셨고, 마음의 중요성을 언급하신다. 그런 까닭에 목회자는 염려의 문제를 전인적으로 다루는 지혜가 필요하다.

여덟째, 목표지향적인 삶을 살도록 훈련하도록 하자. 염려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날마다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에 몰입하도록 하라. 염려란 생각이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한 채 표류하는 것이다. 일단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몰입하게 되면 염려를 잊게 된다. 사명에 초점을 맞추도록 하라. 염려를 해야 한다면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염려하라(고후 11:28).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근심하라(고후 7:11). 하나님의 교회를 건강하게 세우는 일을 위해 염려하라.

바울을 통해 배우는 것은 염려 가운데는 성스러운 염려도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 염려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염려다. 사명을 완수하기 위한 염려다. 부디 쓸데없는 염려는 내려놓고, 성도들에게 풍성한 꼴을 먹이기 위해 힘쓰라. 인간은 목표지향적일 때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과거를 초월하고, 환경을 초월하고, 자신을 초월한다.

염려 극복 통해 하나님의 안식 누리기

목회자는 염려의 문제를 극복해야 한다. 사람들은 염려로 충만한 목회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염려라는 무거운 짐을 하나님께 내려놓으라. 내려놓음이 있어야 안식하게 된다. 낙타는 안식하기 위해 무릎을 꿇는다. 낙타는 짐을 내려놓기 위해 무릎을 꿇는다. 내려놓음은 내어 맡김이다. 예수님께 우리의 모든 염려를 맡겨야 한다. 염려할 시간이 있으면 말씀을 읽고, 암송하고 묵상하도록 하라.

나의 목회 생활 중에 가장 힘든 기간이 있었다. 오해와 비난과 비판의 화살이 수없이 날아왔다. 모든 것을 포기하라고 위협하는 협박을 받았다. 나는 그 기간 동안에 매일 새벽 무릎을 꿇었으며 요한복음 중 일곱 장을 영어로 암송했다. 성경 암송은 나의 거룩한 습관이다. 지금도 매일 성경을 암송한다.

결과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과정 자체를 소중히 여기는 훈련을 하라. 올바른 일을 위해 올바른 방법을 사용하는 훈련을 하라. 하워드 헨드릭스 교수는 “가장 위험한 것은 잘못된 방법으로 성공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나님은 성공보다 성실을 더욱 중요하게 여기신다.

사람들의 칭찬이나 인기나 인정에 함몰되지 않도록 하라. 칭찬에 중독되는 것은 위험하다. 거듭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거듭 원천으로 돌아가야 한다. 거듭 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근본은 예수 그리스도시다. 영광스런 그리스도의 복음이다. 목회자는 거듭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목회자의 초심이란 사명에 머무는 것이다. 그때 염려를 극복하고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을 완수할 수 있다.


 

강준민 새생명비전교회 담임목사. 탈봇신학대학원(Th.D.), 저서로《안식의 영성 》, 《믿음이 만든 사람》등이 있다. 필자의 다른기사 keyboard_arrow_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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