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와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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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말씀 2019년  03월호 구약성경에 나타난 인도와 보호 인도와 보호

  ‘인도’는 어떤 장소로 안내하여 가는 것을 뜻한다. 인도자는 인도받는 사람에게 그가 가야 할 목적지를 분명하게 설명하고, 그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필요한 편의들을 제공하며, 종국에는 인도받는 자가 애초에 설정된 목적지에 도착하게 한다. 그러므로 인도는 보호를 내포한다.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을 가로막는 여러 가지 장애들을 이겨낼 수 있도록 보호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글의 제목은 ‘인도와 보호’지만, 사실 이것은 ‘인도’라는 하나의 주제로 나타낼 수 있다. 따라서 구약 성경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관해 살피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고 하나님 자신을 대신하여 이 세상을 다스리게 하셨다(창 1장). 그 때로부터 아브라함 이전까지 인류의 역사는 사람들이 스스로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자신의 한계를 깨달아가는 과정이었다(창 2-11장). 반면에 아브라함 이후의 구약 역사는 하나님께서 한 민족을 선택해 그들로 하여금 인류 구원의 통로가 되도록 이끌어 가시는 과정이다(창 12장 이후). 그러므로 구약에 나타난 인류의 역사는 아브라함 이전 시대와 이후 시대로 구분된다.

  이와 같은 구분은 ‘하나님의 인도’라는 주제와 관련해서도 동일하게 유용하다. 아브라함 이전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소극적으로 인류를 인도하셨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아담과 그의 후손들에게 그 창조된 세상을 다스리라는 사명을 주셨는데, 이 사명은 인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방향을 설정해 주셨지만 그 방향으로 그들을 이끌어 가지 않으셨다. 단지 소극적으로 사람들의 행동에 반응하고 계셨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소극적인 간섭은 인류가 타락하는 것을 가로막지 못했으므로, 마침내 바벨탑의 건축을 통해 창조주 하나님께 대한 인류의 반역이 명확하게 드러났다(창 11:1-9).

  하나님께서는 이 사건을 계기로 삼아서 새로운 방식으로 인류를 인도하기 시작하신다. 이 새로운 방식은 과거와 비교해 보다 적극적인 것으로서, 인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설정하실 뿐만 아니라, 그 방향으로 사람들을 이끌어 가신다. 이것은 자신의 능력으로 죄를 극복하지 못하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이미 오래 전에 계획하신 것이다(참조, 창 3:15).

  하나님의 적극적인 인도는 아브라함을 선택하시는 것부터 시작한다(창 12:1-3). 그 후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이집트로 내려 보내 그곳에 거주하는 동안 큰 민족을 이루게 하셨다(창 46:3-4). 또한 하나님께서 오랜 세월이 지나 모세로 하여금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게 하셨고, 시내산에서 율법을 주셨다(출 19:3-9). 그 후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셨고, 그곳에 다윗의 왕국과 성전을 세우셨다(삼하 7:10-16). 하지만 다윗의 후손인 인간 왕들과 그 백성의 우상 숭배는 유다 왕국을 멸망에 이르게 했는데, 이 또한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왕국을 이 땅에 임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다(대하 36:11-21). 그러므로 구약은 그 전체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기록이다. 인류를 구원으로 인도하시며,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 역사의 중심으로 인도하셨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는 모든 경건한 자들을 인도하셔서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성취할 수 있도록 도우시고 보호하셨다.

모세 오경에 나타난 인도와 보호


  1. 인생의 동반자로서 인도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나의 벗”이라 부르셨다(사 41:8, ‘오하비’ ybih]ao). 이 칭호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일생 동안 마치 친구처럼 그와 동행하셨음을 가리킨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동행을 잘 보여주는 히브리어 단어가 ‘라아’(ha'r', ‘보다’)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창 12:1). “보여 줄”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는 ‘라아’ 동사의 미완료 형태에 해당한다. 이 구절에서 이 단어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보여주시게 될 어느 한 순간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보여주심’은 아브라함의 평생과 관련된다. 다시 말해 갈대아 우르에서부터 가나안 땅에 이르기까지 아브라함이 거쳐야 하는 모든 갈림길에서 그에게 올바른 방향을 지시해 주시겠다는 것을 뜻한다. 또한 이 단어는 부르심을 받아 신앙의 여정을 시작한 이후 죽음에 이르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와 동행하면서 그를 보호하시고 그로 하여금 목적지인 가나안 땅에 안전하게 도착하게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견고한 의지를 표현한다. 하나님은 떠나라고 명령하시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길의 모든 여정에 보호하시고 인도하심으로써 하나님께서 원하신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게 만들어주신다. 마치 예수께서 제자들을 갈릴리 호수 건너편으로 급히 떠나 보내신 후에 철야기도 하셨다가 그들이 밤새 겪어야 했던 고난을 물리치시기 위해 바다 위를 걸어가셨던 것과 동일하다(마 14:22-33).

한편 ‘라아’ 동사는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가리키기도 한다.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세겜에 이르렀을 때,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셔서 가나안 땅을 그의 후손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창 12:7). 이 때 ‘나타나다’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가 ‘라아’다. 즉 이 단어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스스로를 보여주셨음을 뜻한다. 99세의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라아’) 그가 행해야 하는 것과 그가 성취할 것을 말씀해주셨다(창 17:1). 또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시기 전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라아’) 사라가 아들을 낳을 것을 말씀하셨다(창 18:10).

  이삭과 야곱의 이야기에서도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표현하기 위해 ‘라아’ 동사가 사용된다. 가나안 땅에 흉년이 들었을 때,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나타나셔서(‘라아’) 그가 이집트에 내려가지 않고 가나안 땅에 계속 거주하도록 권면하셨다(창 26:2). 우물의 소유권 때문에 블레셋 사람들과 분쟁이 생겼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삭에게 나타나셔서(‘라아’) 그가 두려움에 빠지지 않도록 위로하시고 아브라함과 세우셨던 언약을 다시 확인해 주셨다(창 26:24). 야곱이 밧단 아람에서 가나안 땅으로 돌아왔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셔서(‘라아’) 복을 주셨다(창 35:9). 임종을 앞둔 야곱이 벧엘(=루스)에서 요셉에게 나타나셔서(‘라아’) 복을 주셨던 하나님에 관해 말했다(창 48:3).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삶의 중요한 고비마다 족장들에게 나타나셨는데, 이 사실은 하나님께서 그들과 동행하고 계신다는 점을 잘 드러낸다.

  또한 ‘라아’ 동사는 하나님께서 족장들이 걸어가는 삶의 모든 여정을 지켜보고 계심을 가리킨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기 위해 모리아산을 오를 때였다. 이삭이 아브라함에게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하고 질문했다(창 22:7). 이 때 아브라함은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대답했다(창 22:8). 여기서 ‘준비하다’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가 ‘라아’의 미완료 형태인 ‘이레’(ha,r>yI)다. ‘이레’는 문자적으로 “그가 보신다”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 구절을 ‘라아’ 동사의 기본적인 의미를 살려서 번역한다면,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에 관해서는 하나님께서 보고 계신다”가 된다. 모리아산 위 수풀에 뿔이 걸린 숫양 한 마리를 발견하고 그것으로 제사를 드린 후 아브라함은 그 장소의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고 불렀다(창 22:14). ‘이레’가 ‘라아’의 미완료 형태인 것을 고려할 때 “여호와 이레”는 “여호와께서 보신다”라는 뜻으로 이해될 수 있다. 아브라함은 수풀에 걸린 숫양을 발견한 뒤, 여호와께서 자신의 모든 행동을 지켜보고 계신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곳의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고 부른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하갈이 하나님을 “나를 살피시는(‘라아’) 하나님”이라고 부른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곤경을 지켜보고 계심을 깨달았기 때문이다(창 16:13). 여호와께서는 레아가 미움 받는 것을 보시고(‘라아’) 그에게 아들을 주셨다(창 29:31-32). 야곱은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 계셨고, 그렇기 때문에 자기의 고난과 수고를 보셨다(‘라아’)고 고백한다(창 31:42).

  ‘라아’라는 동사를 통해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나타나는 세 가지 특징들을 언급할 수 있다. 첫째는 하나님의 나타나심이다. 일생의 동반자가 되셔서 동행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삶에 있어서 중요한 순간마다 나타나신다. 그리고 그가 행해야 할 것에 대해 지시하시거나, 불안해하는 마음에 위로와 용기를 주신다. 둘째는 하나님의 보여주심이다.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보여주듯, 성도에게 비전을 보여주시고, 사명을 부여하신다. 또한 그 사명을 성취하기 위해 그가 걸어가야 할 바른 길을 제시하신다. 셋째는 하나님의 보심이다. 졸지도 않으시는 하나님께서는 불꽃같은 눈동자로 성도의 삶을 지켜보신다. 그러므로 그가 감당하지 못하는 시험으로부터 보호하시고, 온갖 종류의 위험과 고난에서 구원하신다.

  2. 지도자를 통해 인도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인도하시는 한 방법은 그들에게 지도자를 보내는 것이다. 구약 시대 이스라엘 백성의 탁월한 지도자들 중 한 사람이 모세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는 하나님의 일을 대신 행하는 사람이다. 출애굽기 3:8에서 하나님께서는 직접 이집트로 내려가겠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곧이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서 인도해내기 위해 모세를 보내신다고 말씀하신다(출 3:10). 이와 같이 모세는 하나님을 대신해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는 지도자가 되었다.

  백성들은 모세를 통해 그들이 가야 할 방향을 알게 된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돌이켜 바다와 믹돌 사이의 비하히롯 앞 곧 바알스본 맞은편 바닷가에 장막을 치게 하라”(출 14:2). 백성들이 홍해라는 장애물에 막혀 길을 가지 못하게 되었을 때, 모세는 홍해를 갈라서, 백성이 마른 땅을 밟고 건너가게 했다(출 14:16-17). 백성들은 물이나 음식이 핍절할 때, 모세를 통해 광야에서 살아갈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음식과 물을 제공받았다(출 16:8; 17:6). 백성들은 모세라는 통로를 통해 발현되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환난 가운데서 구원받았다(출 17:11). 모세가 지팡이를 잡고 있는 손을 치켜든 것은 하나님의 권능이 땅 위에서 역사하게 하는 행위였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받았다(출 20:19).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것은 모세의 중재를 통해서였다(출 24:1-11). 이스라엘 백성들이 큰 위기를 겪을 때, 모세는 백성들을 위해 대신 하나님께 기도함으로써 백성들을 구원했다(출 32:31-32).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지도자를 통해 자기 백성을 인도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지도자의 권위를 세워주신다. 미리암이 모세를 비난하자,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특별한 지위를 언급하시면서 그의 편이 되어 주셨다(민 12:6-8). 하나님께서 미리암이나 아론보다 모세를 더욱 특별한 존재로 인정하신 것은 모세가 하나님을 대신해 백성들을 인도하는 책임을 맡고 있었기 때문이다. 백성들은 지도자에게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게 된다. 그렇지만 모세 역시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모습을 보여주어야 했다. 그가 가데스의 므리바에서 물을 얻기 위해 반석을 지팡이로 친 것은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 하신 하나님의 지시를 어기고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드러내지 못하는 행위였다(민 20:8, 11).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책망하시고 그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선언하셨다(민 20;12). 지도자는 백성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할 뿐만 아니라, 그 스스로가 하나님의 기대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

  3. 다양한 사건들과 환경을 통해 인도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환경이나 사건들을 통해서 자기 백성을 인도하신다. 이런 경우 사람은 자신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있다는 것을 그 당시에는 깨닫지 못하다가, 모든 것이 이루어진 다음에야 하나님의 보살핌이 있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그분께 영광과 감사를 돌리게 된다.

  여호수아가 여리고성과 아이성을 파괴한 이후, 가나안 전 지역의 민족들이 군사 동맹을 체결하고 이스라엘과 맞서 싸우려 했다(수 9:1-2). 이 때 기브온 사람들이 그들을 배반하고 여호수아를 찾아왔다. 그들은 마치 가나안 땅 바깥의 먼 곳에서부터 찾아온 사람들인 것처럼 가장하고 이스라엘 백성과 상호협력조약을 맺었다(수 9:14-15). 이 때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께 물어보지 않았다. 따라서 이 조약은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의 실수로 우연히 체결된 것이었다. 비록 우연의 산물이라고 할지라도 이 조약 체결의 결과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큰 유익을 가져다 주었다. 왜냐하면 기브온이 가나안의 중심에 위치하는 성읍이었는데, 기브온과 이스라엘의 동맹으로 인해 가나안이 남과 북으로 분리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나안 전체 민족들이 체결했던 군사 동맹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고, 남방 연합과 북방 연합으로 갈라지게 되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 모든 민족들의 연합 군대와 전쟁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기브온과 이스라엘 사이의 조약 체결이 알려졌을 때, 가나안 남쪽 민족들이 기브온을 공격하고 점령함으로써 북쪽 민족들과 다시 연합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려고 했다(수 10:4). 기브온이 공격받자 여호수아는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계획에 없는 전쟁을 남방 연합군대와 치러야 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에게는 이 전쟁이 의도하지 않았던 것이지만, 실제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로 하여금 가나안 남부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할 수 있게 하기 위해 계획해 두셨던 전쟁이었다. 그러므로 여호수아보다도 하나님께서 남방 연합군과의 전쟁에 더 적극적으로 개입하셨다(수 10:11-14). 이 승리는 자연스럽게 북방 연합군과의 전쟁에서도 이스라엘 백성이 승리할 수 있게 했다(수 11:12-14).

  여호수아는 남방 연합군과의 전쟁과 북방 연합군과의 전쟁을 사전에 계획하지 않았었다. 단지 상황의 변화에 따라 행동했을 뿐이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이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이루어졌다. 비록 여호수아는 깨닫지 못했지만, 언제나 하나님의 손이 그와 이스라엘을 인도하셨다.

역사서와 선지서에 나타난 인도와 보호
 
  1. 다양한 환경을 통해서 인도하시는 하나님
  구약의 다른 여러 인물들도 상황의 전개를 통해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했다. 하나님께서 룻을 인도하시는 과정은 베들레헴 땅에 기근이 드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룻 1:1). 이 기근이 나오미의 가정을 모압으로 보냈다. 거기서 엘리멜렉이 죽자 나오미는 자신의 아들들을 모압 여인과 결혼하게 했다(룻 1:4). 두 아들이 죽는 시기에 맞추어 베들레헴에 기근이 사라지게 되었다(룻 1:6). 그러자 나오미는 모압에서의 생활을 중단하고 룻과 함께 베들레헴으로 돌아왔다. 룻은 우연히 보아스의 밭에 가서 이삭을 줍게 되었다(룻 2:3). 그 때 마침 보아스가 자기 밭을 방문해 그곳에서 이삭을 줍고 있는 룻을 보고 호의를 품게 되었다(룻 2:4). 이와 같은 일련의 과정들 가운데 하나님께서 나오미나 그 가족의 삶에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말씀하시거나 간섭하지 않으셨다. 하지만 우연히 이루어지는 몇 가지 사건들이 중첩되면서, 마침내 룻과 나오미가 평안과 행복을 찾게 된다. 뿐만 아니라 룻과 보아스 사이에 다윗의 조부인 오벳이 태어나면서 예수님에게까지 연결되는 메시아의 족보가 형성된다. 베들레헴의 여자들이 여호와를 찬송하는 것처럼, 여호와의 인도하심이 나오미의 생애 가운데 가득했음을 알게 된다(룻 4:14).

  엘가나의 아내 한나가 아들을 구하려고 하나님께 기도하였던 것은 브닌나가 한나를 괴롭히고 멸시하면서 그의 마음을 괴롭게 했기 때문이었다(삼상 1:6-7). 에스더서는 하나님의 여러 칭호들 중 하나도 등장하지 않는 책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와스디가 뜻밖의 사건으로 왕후의 자리에서 쫓겨나는 것(에 1:19), 그리하여 에스더가 왕후로 발탁되는 것(에 2:17), 모르드개가 왕에 대한 암살 모의를 발견하는 것(에 2:21), 왕이 한 밤중에 모르드개에 대한 기록을 읽었던 것(에 6:2) 등 모든 사건들이 하나님이 배후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보호하시고 인도하고 계신 것을 보여준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성도가 겪게 되는 사건이나 처해 있는 상황과 환경을 통해서 인도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는 겸손한 태도로 항상 자신의 삶을 살피면서, 자신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깨달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2. 기도를 통해 인도하시는 하나님
이스라엘의 최고 지도자로 활동하던 엘리가 늙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새로운 지도자가 필요함을 아셨다. 그래서 브닌나의 핍박으로 인해 고통을 겪는 한나로 하여금 아들을 얻기 위해 기도하는 마음을 갖게 하셨다. 한나의 마음이 매우 간절했기 때문에, 한나는 하나님께서 주실 아들을 다시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서원하면서 기도했다(삼상 1:11). 하나님께서는 한나의 이 기도를 통해 그에게 아들들을 주셨고, 그 가정에 행복이 임하게 하셨다. 또한 한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셨다. 다시 말해 한나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이스라엘은 사무엘이라는 뛰어난 지도자를 소유할 수 있었다. 또 그 사무엘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함으로써 이스라엘이 모든 이방 민족들을 물리치고 강한 나라가 될 수 있었던 것도 한나의 기도에 기인한 바 크다.

  산헤립이 아시리아의 강력한 군대를 이끌고 유다를 공격했을 때, 히스기야는 성전으로 들어가서 하나님께 기도했다(사 37:14-20). 히스기야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보내셔서 아시리아 군대 18만 5000명을 하룻밤에 진멸하시고 유다 왕국을 구원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셨다(사 37:36). 이처럼 국가적으로 큰 위기를 겪고 있는 이 시기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었다(사 38:1). 히스기야는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간절히 기도했다.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의 눈물 어린 기도를 들으시고 그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히스기야에게 15년의 수명을 더하셔서 그가 아시리아의 위협에서부터 나라를 구원할 수 있게 만드셨다(사 38:5-6).

  다니엘은 기도의 사람이었다. 그는 젊었을 때에 느부갓네살의 꿈을 해석하기 위해 친구들과 함께 기도했다(단 2:17-19). 다리오가 통치하던 때 페르시아의 고관들이 다니엘을 시기해 함정에 빠뜨리려 했다. 그들은 왕을 설득해 신에게 기도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령을 선포하게 했다. 하지만 다니엘은 그 법령이 선포된 것을 알면서도 늘 하던 대로 하나님께 기도했다(단 6:10). 또 다니엘은 예레미야 선지자가 예루살렘이 70년 동안 황폐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음을 깨닫고, 하나님께 유다의 포로시기를 끝내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했다(단 9:1-19). 하나님께서는 이 다니엘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포로로 잡혀와 있던 유다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귀환할 수 있게 하셨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경건한 사람들로 하여금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게 만드시고, 그 기도를 통해서 개인의 삶을 인도하시거나 유다 민족의 역사뿐만 아니라 인류의 구원 역사 또한 인도해 가신다.

시가서에 나타난 인도와 보호
  시편 23편은 여호와를 목자로 묘사한다. 목자는 양떼를 인도하는 사람이다(요 10:3-4). 그러므로 이 시는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를 잘 표현한다. 이 시의 1절과 6절은 각각 서론과 결론을 형성한다. 이 두 절을 합치면 “여호와는 선한 목자이시다”가 된다.
  1절에서 시인은 여호와 하나님을 “나의 목자”라고 부른다. 하나님은 공동체의 목자이면서 동시에 나 개인의 목자이시다. 하나님께서는 단체를 위해 개인을 희생하지 않으신다. 개인을 살려서 공동체를 부흥케 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시인에게는 부족함이 없다.
  2-5절은 본론이다. 시인은 본론에서 목자이신 하나님의 은혜를 설명한다. 먼저 목자는 양떼를 푸른 풀밭에 눕게 하고, 쉴만한 물가, 즉 잔잔한 물가로 인도한다(시 23:2). 푸른 풀밭에서 양은 무엇을 먹을까 걱정하지 않는다. 물이 거세게 흘러가면 물을 마시기 힘들다. 그러나 잔잔히 흐르는 쉴 만한 물가에서는 원하는 대로 얼마든지 편안하게 물을 마실 수 있다. 물과 음식, 이것은 사람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요소들이다. 목자는 삶의 기본적인 필요에 관심을 갖고 계신다. 예수께서는 자신을 따르는 무리가 굶고 있다는 것을 아시고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라고 말씀하신다(마 14:16).

  목자이신 여호와는 단순하게 육신의 필요만 채워주시는 분이 아니다. 영혼을 소생시키신다(시 23:3). 지친 마음에 힘을 주고, 병든 영혼을 건강하게 하신다. 영혼을 소생시키려면 의로운 길로 걸어가야 한다. 사울이 하나님을 떠났을 때, 그는 여전히 왕으로서 큰 권력과 부귀를 누리고 있었지만 그의 영혼은 공허했다. 반대로 다윗은 사울에게 목숨의 위협을 받으면서 광야의 동굴을 전전할 때조차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의로운 길을 걷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인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니게 될 것을 예상하면서도,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시 23:4). 왜냐하면 목자이신 하나님께서 지팡이와 막대기로 자신을 보호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지팡이와 막대기는 상호보완적인 것으로서 어떤 형편에서도 양을 도울 수 있는 완전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가리킨다.

  목자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들 중 마지막은 원수들 앞에서 식탁을 베푸는 것이다(시 23:5). 식탁은 보상이며 상급이다. 그런데 왜 시인이 상을 받아야 할까? 시편 23편은 목자이신 하나님께서 행하는 일들을 소개하는 시다. 양을 돌보고, 인도하는 모든 일을 목자이신 하나님께서 행하셨다. 상급은 마땅히 목자에게 주어져야 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목자의 인도에 순종하고 의지했다는 것만으로 양들을 칭찬하시고 보상하신다. 머리에 기름을 붓고 잔이 넘친다는 것은 그 상급이 최고 수준인 것을 가리킨다. 기대하는 것 이상의 보상이다. 목자는 양을 언제든지 소비할 수 있는 자신의 재산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양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어놓는다.

  마지막으로 시인은 확신을 가지고 평생 동안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자기를 따를 것이라고 고백한다. 짐승이 아무리 피하려고 해도 추격하는 사냥꾼을 피할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시인을 평생 동안 좇을 것이다.
  이 시편에서 시인은 하나님께서 목자처럼 자신을 인도하신다고 고백한다. 하나님의 인도에는 세 가지 결과가 주어진다. 첫째는 육체와 영혼의 필요가 채워진다는 것이다. 둘째는 의로운 길, 곧 하나님의 사명을 성취하는 길을 걸어가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절대적이며 완전한 보호가 약속되어 있다. 셋째는 영광스러운 상급이다.

맺는 말

  ‘인도’라는 말은 세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누군가에게 올바른 길과 방향을 보여주거나 그 길과 방향으로 그를 이끌어간다는 뜻이다. 이것은 ‘인도’의 출발점이라고 말할 수 있다. 둘째는 누군가와 함께하면서 그를 보호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인도’의 과정에 해당한다. 셋째는 누군가를 마지막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도달하게 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인도’의 종착지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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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모든 인류의 인도자시며, 우주만물의 주관자시다. 특히 구약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인도자로 나타나신다. 하나님께서는 경건한 사람들과 동행하심으로써 그들을 인도하시거나, 지도자를 통해 공동체를 인도하시거나, 우연한 사건들과 환경을 사용하셔서 인도하시거나, 기도에 응답하심으로써 인도하신다. 이렇게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다윗은 시편에서 “나의 목자”라고 고백했다. 이 시편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하나님 자신의 유익을 위한 것이 아니며, 주고받는 거래관계에 근거한 것도 아님을 보여준다. 목자이신 하나님은 마치 예수님께서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요 10:11)라고 말씀하셨던 것처럼, 넘치는 사랑과 은혜로 인해 자신의 양떼를 인도하는 분이시다.

황성일 광신대학교 구약학 교수. 영국 리버풀대학교(Ph.D.). 저서로 《구약배경사》, 《성경히브리문법》 등이 있다. 필자의 다른기사 keyboard_arrow_r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