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와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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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2019년  02월호 천국에선 일도 없이 맨날 쉬고 놀기만 하나? 변증서가(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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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디 알콘/ 요단출판사/ 432쪽/ 15,000원


“기독교에 흥미가 생긴다. 맹목적인 믿음은 싫고, 하나씩 알아 가고 싶다.” 천국에 대한 설교로 전도 메시지를 전한 성탄주일에 젊은 비신자 부부가 이런 소감을 전하며 교회에 참여하기로 했다. 또 다른 비신자 한 분은 메시지를 들을 때는 ‘아, 그렇구나!’ 싶었지만 다 듣고 나서 딱 돌아서니 ‘진짜인가? 진짜가 아니면 안 되는데…’ 하는 아쉬움 섞인 의심이 들어 이 의문을 풀려고 교회에 더 나와 보겠다고 말했다. 필자는 이런 사례를 경험하며 요즘 사람들에게도 성경적인 균형을 잡아 제대로만 전한다면 변증적인 천국 메시지가 통할 것이라고 느낀다.

C. S. 루이스는 《순전한 기독교》에서 “이 세상을 위해 가장 많이 일한 그리스도인은 바로 다음 세상에 대해 가장 많이 생각했던 이들이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이 다음 세상에 대해 더 이상 생각하지 않게 되면서 기독교는 세상에서 그 힘을 잃고 말았다”라고 진단했다. 천국을 지향하면 세상을 덤으로 얻을 것이지만 세상을 지향하면 둘 다 잃을 것이라는 예언자적 경고도 잊지 않았다.

천국에 대해 요즘 교회 안팎의 사람들이 무관심해진 이유가 무엇일까? 교회가 성경적인 천국에 대해 올바로 가르치지 않아서가 아닐까? 영원한 천국을 무심하게도 막연한 영적 황홀경이나 하나님 임재의 어떤 영적 상태 정도로 언급하고 마는 경우가 많다. 거기서 더 나아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이루어질 정확한 일상의 삶을 구체적으로 제시해 줄 필요가 있다. 대중적인 천국 간증집들과는 달리 이 책은 분명한 성경적 근거와 신학자들의 견해를 종합해 천국은 물리적인 시공간과 문화, 문명을 가진 구체적인 나라라는 그림을 제시한다. 그래서 천국을 영적인 곳으로만 여기려는 기독교인들의 이분법적인 천국관을 ‘기독교 플라톤주의’라고 꼬집기까지 한다.
“기독교 플라톤주의(Christoplatonism)는 천국에 관한 성경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치명적인 영향을 미쳤다. 특히 영원한 천국인 새 땅에 관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우리가 거의 무의식적으로 몸, 땅과 같은 물질은 영적이지 않기에 악하다고 믿는다면, 당연히 몸의 부활이나 새 땅의 물성에 관한 성경의 계시를 배척하거나 영해할 것이다”(p.65).

‘기독교 플라톤주의’를 넘어

저자는 이 책에서 ‘중간 천국’과 ‘새 하늘 새 땅’을 구분한다. 중간 천국은 하나님께서 영원한 천국인 새 하늘과 새 땅을 회복시키시기 전에 지상에 살았던 모든 성도가 잠시 머무는 낙원 같은 곳이다. 

예수님이 재림하시고 최후 심판이 진행된 후에는 중간 천국에 있던 새 예루살렘(히 12:22)이 새 땅으로 내려온다(계 21:2). 따라서 현재의 중간 천국도 물리적인 장소라고 볼 수 있고, 결국 물리적인 새 땅이 구속받은 성도의 최후 거처가 된다.

아담은 원래 하나님께 문화 명령을 받아 땅을 통치하기로 되어 있었다(창 1:28). 첫 사람이 타락해 에덴동산에서 추방되었지만 예수님의 구속 사역으로 다시 통치자의 지위가 회복되었다. 이제 구원받은 성도들은 죄 없이 그리스도와 함께 새 하늘 새 땅에서 영원토록 땅을 통치하게 된다.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은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는 것’(엡 1:10)이다. ‘다’(all things)라는 말은 광범위하고 포괄적이어서 그 안에 포함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다. 이 구절은 역사의 절정과 정확하게 일치하며 계시록 21장에서 이것이 성취된다. 과거에 분리된 세계였던 하늘과 땅이 그리스도의 주권 하에서 온전히 하나가 된다. 하나님과 인간이 그리스도 안에서 화해된 것처럼 하나님과 인간의 거처, 곧 천국과 땅도 그리스도 안에서 화해된다”(p.109).

부활의 몸을 입고 저주에서 온전히 자유롭게 되어 새 땅에 거하게 된 인간은 죄의 방해 없이 장대한 문화와 문명을 더욱 발전시키게 된다. 새 하늘 새 땅은 이전의 하늘 곧 우주와 땅을 새롭게 한 것이어서 옛 땅에서 일궈진 모든 문화의 산물은 천국 환경에 합당하지 않은 요소들만 정화되는 과정을 거쳐 새 땅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지금 인간으로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삶은 지금 우리가 존재하는 우주에서 계속될 것이다(달라스 윌라드)”(p.153).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리라 …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겠고”(계 21:24-26). 이 말씀에서 ‘만국의 영광과 존귀’는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인간이 영적, 도덕적, 지적 능력을 활용해 만들어낸 2차 창조의 모든 문화적 산물이다.

같은 맥락에서 “나라와 권세와 온 천하 나라들의 위세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거룩한 백성에게 붙인 바 되리니”(단 7:27)라는 말씀에서 ‘온 천하 나라들의 위세’ 역시 그 나라들을 위대하게 만들어 준 그들의 문화, 예술, 운동, 과학 그리고 지식과 관련된 성취물들일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잃거나 파괴되지 않고 성도들에게 붙인 바 되며 성도들은 새 땅에서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를 통치할 것이다. 성도들은 세상의 부와 성취물을 관리하는 청지기가 될 것이다(p.211).

이 책은 바로 이러한 대전제를 가지고 영원한 천국인 새 하늘 새 땅에서의 삶에 대해 보여 준다. 천국의 일상에 대해 사람들이 가장 많이 궁금해 할만한 몇 가지 질문을 놓고 이 책이 소개하는 핵심적인 답을 요약해 본다.

영원한 천국의 일상에 대한 7문 7답

첫째, 성도들은 영원토록 어디서 어떻게 왕 노릇을 할 것인가?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계 11:15). 예수님은 이 세상 나라들을 멸망시키지 않고 그 나라들을 자신의 영원한 나라로 부활시킨다. 성도는 어떤 무형의 하늘 세계가 아니라 땅 위에서 만국을 통치한다. 성도가 받을 면류관은 본래 통치의 상징이어서 보상으로서의 면류관에 관한 모든 언급은 성도가 그리스도와 함께 통치할 것을 가리킨다(눅 19:17, 고전 6:2). “메시아의 나라에서 순교자들은 그들의 핍박자들에 의해 거부되었던 세상의 소유권을 되찾을 것이다(이레니우스)”(p.197).

둘째, 천국에서 성도들은 무슨 일을 하게 될 것인가?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마 25:23). 이 땅에서 일한 데 대한 천국의 보상은 더 중요한 자리에서 맡을 더 많은 일이다. 천국에서도 옛 땅에서 시작했던 일을 계속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물론 타락한 세상의 성품 때문에 생겼던 직종들, 곧 의사(쇠퇴), 경찰관(범죄), 장의사(죽음), 보험 설계사(장애) 등은 새 땅에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정원사, 엔지니어, 건축가, 예술가, 동물 조련사, 음악가, 과학자, 공예가, 그리고 수많은 다른 직업이 수고와 고통, 죄의 장애물 없이 계속될 것이다. “새 땅에는 베토벤보다 더 나은 음악가들, 라파엘보다 더 나은 화가들, 지금보다 더 훌륭한 시와 드라마, 산문 그리고 계속해서 기술 발전을 이룩할 과학자들이 있을 것이다(안토니 호케마)”(p.359).

셋째, 천국에서 성도들에게 우주는 어떤 곳인가? “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계 2:28). 새벽 별은 천상의 물체이며 금성을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 말씀을 비유적으로 생각하지만,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새 하늘에서 그분의 자녀들에게 행성들과 별들을 맡기실 수 있다는 걸 암시한다. 새 창조가 정말 옛 창조의 부활한 모습이라면 결국 새 금성도 존재할 것이다. 땅과 행성들과 우주 전체가 인간과 함께 타락하고, 인간과 함께 부활한다면, 영원한 새 하늘 새 땅에서 성도들이 다른 부활한 행성들에 살면서 그들을 다스리는 모습을 쉽게 그려 볼 수 있다.

넷째, 천국에서 성도들은 무엇을 알고 배우겠는가?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엡 2:7). 성도가 천국에 가면 모든 것을 다 알게 된다고 말하는 것은 오해다. 전지전능하신 분은 하나님뿐이다. 우리가 죽으면 만물을 보다 더 분명하게 보고 지금보다 더 많이 알게 될 것이지만, 결코 모든 것을 다 알지는 못한다. 

고린도전서 13:12은 주께서 우리를 아신 것처럼 우리가 보다 더 분명하게 혹은 온전하게 알 것이라고 말한다. 즉, 어떤 실수나 오해 없이 주님이 우리를 아신 것처럼 안다는 것이다. 이 말은 ‘항상 계속해서 배운다’는 말씀으로 번역될 수 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더욱더 계속해서 끊임없이 발견함으로써 천국에서 더 행복하며 그분 안에서 더욱 큰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조나단 에드워즈)”(p.266).

다섯째, 천국에도 시간이 존재하는가? “하늘이 반 시간쯤 고요하더니”(계 8:1). 천국의 순교자들은 자신들의 피를 신원하시도록 ‘어느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지 묻고 “아직 잠시 동안 쉬라”라는 말씀을 듣는다(계 6:10-11). 천국에서 성도들은 밤낮 하나님을 섬긴다(계 7:15). 새 땅의 생명나무는 “달마다 그 열매를 맺는다”(계 22:2). 중간 천국과 영원한 천국에는 날과 달이 있다. 한 마디의 말, 한 사건은 이전의 말과 사건에 이어 나오며, 또한 다음의 말과 사건과 이어지는 연대기적 사건의 연속 가운데 우리는 영원히 살 것이다.

여섯째, 천국에서도 남자와 여자, 결혼생활이 가능할 것인가?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성이 없어지지 않았듯 천국에서도 남자와 여자의 성은 없어지지 않는다. 부활의 핵심은 우리가 본래의 몸과 필연적으로 연결된 인간의 몸을 가지게 된다는 데 있다. 성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성의 한 단면이다. 이 땅에서 남자와 여자가 한 몸을 이루는 결혼의 연합은 그리스도와 성도의 관계를 가리키는 도로 표지판이다. 일단 목적지에 도달하면 그 표지판은 불필요해진다. 예수님은 인간의 결혼제도가 그 목적을 달성하면 끝나게 되지만 결혼한 사람들 간의 깊은 관계가 끝날 것이라고 말씀하시지는 않았다.

일곱째, 새 땅에서 성도들은 먹고 마실 것인가?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눅 22:29-30).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이 땅에서 제자들과 함께 음식을 드셨다(요 21:4-14). 성경에는 “내가 이제부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까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눅 22:18), “여호와께서 이 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시리니”(사 25:6)라는 말씀으로 실제적인 잔치와 포도주에 대해 말한다.

날마다 일상에서 경험하는 천국의 예배

지금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모든 일을 주의 이름으로, 주께 하듯 해야 하는(골 3:17, 23) 이유는 천국에서의 일상이 실제로 그러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일상의 삶으로 예배하는 것이 영원한 찬양이 된다. 단순한 찬양만 찬양이 아니다. 온갖 종류의 일을 통해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지상 생활은 영원한 천국 생활의 맛보기거나 사전 예행 연습이다.

이 땅에서도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각 사람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그때그때 늘 기적적으로 베풀어 주실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들이 각자의 은사로 각 직업의 영역을 통해 서로의 필요를 채우게 하는 이웃 사랑의 관계 공동체로써 세상의 구조를 기획하셨다. 영원한 천국에서도 하나님의 뜻과 계획 가운데 그러한 공동체적 사랑의 섬김은 계속될 것이다. 

일이 하나님의 본질임에도 일과 휴식이 완벽한 조화를 이룰 천국에서 성도들이 일 없이 그저 놀고 쉬기만 한다면 난센스다. 지금 이 땅에 이웃 사랑의 일이 없다면 천국에도 애초부터 없었을 것이다. 지금 이 땅에 여행이나 스포츠, 엔터테인먼트, 영화, 테크놀로지가 있다면 영원한 천국에도 존재할 것이다. 애초부터 사람이 그러한 문화 활동을 좋아하고 추구하도록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심지어 천국에도 삶의 리듬을 위해 하나님이 계획하신 완전한 선물의 하나로 잠이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새 땅에서 성도들은 완전한 몸을 가지고 있어 잠을 안 잘 거라는 주장은 천국에서는 배고플 일이 없어 음식을 안 먹어도 된다는 말과 같다고 본다(p.276).

천국에는 더 이상 물리적 육성과 결합된 감각적 쾌감이나 휴식은 없고 영적인 기쁨만이 전부라고 여기는 것 또한 다른 영육이원론이자 기독교 플라톤주의다. 지금 사람이 아는 모든 종류의 재미와 쾌락을 만드신 하나님을 칙칙한 종교적 이미지로만 그리려는 신자는 천국의 실상을 크게 오해했거나, 그 자신이 기쁨의 유일한 원천이신 하나님을 제대로 예배하지 못하고 살거나다. “사람들이 천국을 지루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지루해서다”(p.352).

안환균 그말씀교회 담임목사. 변증전도연구소장. 미국 풀러신학교(D.Min). 저서로 《7문7답 전도지》, 《하나님은 정말 어디 계시는가?》 등이 있다. 필자의 다른기사 keyboard_arrow_r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