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의 조선 강점 10년째인 1919년, 억눌리고 고통 중에 있던 백성들이 하늘을 향해 울부짖은 사건이 바로 3.1운동이다. 일제의 감시로 집회, 언론, 출판 등 모든 자유 활동이 제한되고 통제된 상황에서 유일하게 전국 조직망을 가지고 활동할 수 있었던 장소가 바로 교회였다. 이 교회의 전국 조직망을 통해 3.1운동은 전국적 운동이 되었으며, 남녀노소를 무론 한(*막론하고/불문하고) 범국민 운동이 된 것이다.
3.1운동이 나이, 성별, 종교를 뛰어넘는 범민족적 전국적 독립운동이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박정신이 지적하듯이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될 수 있었던 동력은 개신교가 ‘지도력, 운동가들, 그리고 조직’을 제공했기 때문인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1 김승태 역시 만세운동이 빠르고 일관되게 전국적 운동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개신교 지도자들이 인원을 동원하고 운동을 조직하고 소통을 용이하게 했기 때문이라 주장한다.2
민족대표 33인중 16명이 개신교인이며, 만세운동 첫날 7835명 중 개신교인 수는 1719명으로 전체 22%를 차지했다.3 개신교인들은 3.1운동에 적극 참여했고, 교회 지도자들은 주요한 지역 만세운동을 주도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의주 만세운동은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인 유여대 목사의 주도하에 700명 이상이 모였으며,4 평양에서 김선두 목사가 1000명 이상을 모집하여 만세운동을 주도했고,5 대구에서는 이만집, 정재선 목사 등 경북노회 회원 및 계성학교 학생 등 약 700명과 함께 만세운동을 주도했다.6
여기서 개신교 지도자들의 3.1운동 참여는 신앙고백의 행위였다. 이들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리스도로부터 주어진 자유의 회복운동으로 3.1운동에 참여했다.7 이승훈 장로는 “민족 자결은 천제의 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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