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와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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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2019년  01월호 지경을 넓히시는 하나님 다문화 사회, 다문화 목회

기사 메인 사진 인류의 이동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은 무엇인가? 수많은 이주민과 난민이 한국을 찾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은 무엇인가? 이에 대해 기독교인에게 줄 수 있는 답은 다음과 같다. 우리의 지경을 넓히시는 하나님을 알게 하기 위함이다.

이주민과 난민 중 다수는 불교, 회교 혹은 기타 종교적 전통을 가지고 있는 전도 대상자이다. 대부분의 이주민과 난민은 일, 음식, 주택, 의료, 우정, 보육과 교육, 언어 습득과 같은 기본적인 생활을 위한 도움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교회와 선교단체는 정부의 도움이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거나 다른 서비스들을 제공할 수 있다.

하나님은 이러한 상황을 사용해서 한국 교회가 하나님을 더 잘 알도록 도전하신다. 하나님이 단지 내가 속한 민족의 하나님이 아니라, 모든 민족의 하나님임을 깨닫게 하신다. 필자는 본고에서 이주민과 난민을 통해 하나님께서 일하셨던 역사의 예를 살펴보고, 이를 통해 한국 교회가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겠다. 
 

역사적 요인들

역사상 인류는 이주와 정착공동체 형성을 모두 경험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이주와 정착의 역사를 통해 인류에게 하나님을 알리려는 계획이 있음을 밝힌다.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이는 사람으로 혹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로되”(행 17:26~27a).

그러므로 하나님을 좀 더 잘 알기 원한다면, 인류의 이주와 정착 공동체 형성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한국, 서양, 그리고 더 아래쪽에서 거주하는 이들 간 역사적, 사회-정치적 상호작용을 살펴보겠다.
 
1. 한국
약 4000년 전 전설적인 건국 이래 한국인들은 외국인들과의 교류가 간헐적으로만 일어나는 고립된 민족이었다. 그러다 2000여 년 전에 중국으로부터 한자를 받아들였고, 4세기에는 불교를 들여왔다. 또한 중국 일본과 때때로 충돌들이 있었는데 이러한 환경 속에서 중대한 문화적 변화들이 생겨났다.

19세기 말 일본이 근대 제국들 가운데 빠르게 강국으로 떠오르면서, 1910년 한일 합방, 즉 만 35년 동안 식민 통치가 시작되었다. 1945년 일본으로부터 해방이 되어 한국의 독립과 문화적 독자성이 회복되었으나, 미국-소련 연방/중국의 냉전이 곧 한국을 집어삼켜 또 다른 근본적인 변화의 시기를 맞았다. 그것은 바로 잔혹한 전쟁과 한반도의 남북 분단이었다. 한국전쟁 이후 남한 사람들에게는 빈곤, 이산가족, 군부 독재 정치 등이 복합적인 도전으로 다가왔다.

1970-1980년대 남한의 경제가 눈부신 성장을 거둔 후, 한국의 경제가 지속적인 성숙을 이루고 노령 사회로 접어들면서 육체 노동자들의 필요가 생겨나게 되었다. 그 결과 아시아 전역으로부터의 수많은 근로자가 이주해왔다. 또한 동남아시아로부터 국제결혼을 위해 들어오는 여성들, 세계 전역에서 유학생들도 들어왔다. 이로 인해, 현재 남한의 전체 인구 5150만 명 가운데, 비한국인 거주자의 인구가 약 270만 명에 이르렀다.

한국인들의 몸에 밴 외국인들에 대한 태도는 서양인, 일본인, 중국인(조선족을 포함하여), 동남아시아인, 중동인 등 국적과 인종에 따라 다양하다. 외국인들은 이러한 태도의 차이를 의식하고 있으며 한국인 기독교인들도 자신들의 태도를 의식할 필요가 있다.
 
2. 유럽과 미국
유럽인들이 이민자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갖게 된 데에는 두 가지의 특정한 역사가 있다.  첫 번째는 유럽으로 갑작스럽게 들어온 이슬람교의 침입과 연관한다. 7-8세기 이슬람교의 우마이야 칼러피트(Umayyad Caliphate, 우마이야 왕조)가 북부 아프리카를 가로질러 서쪽으로 뻗어가고, 이베리아 반도를 향해 북쪽으로 세력을 확장하며 732년 투르 푸아티에 전투(Battle of Tours)가 일어났다. 그 결과 무어인(Moorish) 문명이 이베리아에서 발달했고, 이들은 15세기 말 스페인에 의해 추방되었다. 또한 유럽의 남동부에서 벌어진 오스만 제국의 전쟁(Ottotman Wars)은 13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약 600년이 넘도록 지속되었다. 오스만 제국은 로마제국의 중심지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한 후 이스탄불이라고 개명했고, 유럽의 심장부를 위협했다. 이 두 가지의 역사적인 사건들은 유럽인들의 마음에 깊이 새겨졌다.

두 번째는 아프리카인의 노예화와 유럽 제국들의 성장과 관련한다. 유럽인들(그리고 유로-미국인들)은 미개하고 이국적인 대응 인물들(대부분의 경우에 노예나 피지배 민족이 되었다)보다 자신들이 우월하다고 생각했다. 19세기 하반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진화론은 백인들이 다른 유색인종들보다 앞선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더 심화시켰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은 유럽과 미국인들로 하여금 유색인종 이민자와 난민들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두려움 혹은 무시하는 감정을 갖게 했다.

반면 이민자, 난민, 망명 신청자를 섬기는 것에 대한 긍정적인 전통도 있다. ‘보호구역’을 제공하는 것이다. 고대 아테네인들은 망명을 청하는 사람들을 위해 피난처를 제공해 주는 전통을 갖고 있었고, 이는 유럽과 미국의 관습법으로 오랫동안 존재했다.
 

외부적 환경

국제화된 세상에서 많은 나라의 외부적 환경이 눈에 띄게 비슷해지고 있다. 특히 세계 경제의 동향과 관련해서 그렇다. 하지만 각 나라마다 독특한 특징들도 존재한다. 이주민과 난민들에 대한 기독교 사역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그 특징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1. 한국
UN의 정의에 따르면 이주민이 5% 이상이면 다문화사회라고 보는데, 한국의 이주민으로 추정되는 인구가 270만으로 한국 국민의 5%에 해당한다. 이에 대해 한국이 얼마나 잘 적응하고 있는지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다. 긍정적인 측면에서 볼 때 정부는 시민권을 얻기 위해 요구되는 절차들을 단순화하는 조치를 승인했으며, 혼혈 가정을 묘사하는 용어로서 차별성을 줄인 ‘다문화’라는 용어 사용을 권장했다. 부정적인 측면으로는 국적(그리고 그에 따른 차별적인 태도)에 따라 차별적인 형태의 비자를 발급하고, 특정한 ‘다문화 지역’, 예를 들어 안산시의 원곡동과 같은 곳을 만들어 외국인 혐오를 일으킬 여지를 남겼다는 점이다.

여기까지는 난민보다는 이주민들에게 초점을 맞췄다. 한국으로 들어온 탈북민들은 엄밀히 말하자면 난민이지만, 공통된 한국적 유산을 갖고 있기에 특별한 범주에 속한다. 반면 제주도에 도착한 수백 명의 예멘 난민들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에 대한 최근의 이슈는 유럽인들과 미국인들이 보여 준 유사한 두려움과 염려들을 드러낸다. 한국 정부가 지난 10월에 난민의 신분을 원하는 대부분의 예멘인들의 난민 체류 신청을 거절함으로써 외국인공포증의 정서에 굴복한 것이다.

난민을 가장 많이 수용하고 있는 세 개의 국가는 터키, 파키스탄, 우간다다. 세 국가는 모두 전쟁으로 피폐해지고 인도주의적인 위기들을 맞고 있는 나라 옆에 위치한다. 그중 우간다의 사례는 한국인과 한국 교회가 배울 점이 많다.
 
2. 우간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우간다는 19세기 말에 팽창되던 제국의 힘(우간다의 경우는 대영제국)에 의해 그 역사가 중단됐다. 또한 2차 세계대전 후 독립을 맞았지만, 잔혹한 내전과 독재 통치가 뒤따랐다. 우간다 최악의 상황은 1970년대 이디 아민 대통령의 통치기간에 일어났다. 이디 아민은 그들에 대해 널리 퍼져 있던 분개를 이용해 남아시아인들(영국이 지배할 당시 재정 및 건설 분야에서 관리직에 있었던 사람들)을 추방하거나 투옥하고 살해했다. 이때 다른 외국인들도 우간다를 떠나거나 이디 아민의 비밀 경찰 폭력단의 손에서 끔찍한 결과를 맞이했다.

이디 아민의 공포 정치가 끝나자마자 이주의 흐름이 뒤바뀌었다. 다른 동아프리카 국가들처럼 우간다는 특히 1994년 르완다 대학살 기간 동안 난민들을 대거 수용하는 나라가 되었다. 이후 아프리카 중심부와 수단에서 지속된 갈등으로 인해 인접 나라들의 난민들이 끊임없이 찾아왔다.

우간다는 현재 약 4300만의 인구 가운데 약 115만 명의 난민을 수용하고 있다. 많은 지역 공동체들이 우간다의 전국적인 문호 개방 정책과 보조를 맞추어 새로 온 난민들과 땅을 공유하고 있다. 우간다 교회들도 11개의 주요 난민촌을 중심으로 난민들을 돕고 있다.

이로 인해 우간다 경제와 우간다가 지원받는 원조가 위축되고 있으며, 질병 및 다른 사회적 피해의 위험성이 증가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주자와 난민들을 수용하는 우간다 정책은 많은 이에게 빛과 소망이 된다.

3. 유럽과 미국
유럽 국가들은 이민자와 난민들을 수용하는 것에 대해 다른 정책들을 갖고 있다. 미국은 여전히 가장 많은 이민자를 수용하고 있지만 전체 이민자 인구에서 이민자를 수용하는 비율은 독일의 25%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가 특정한 모슬렘 국가들로부터 오는 외국인들을 막기 위해 이민자, 난민, 망명 신청자들에 대한 심사를 강화하려는 시도 아래 그 수가 현격하게 줄었다.

원래 미국에는 이민자를 환영하는 전통이 있었다. 자유의 여신상에 새겨진 문구가 이를 잘 보여 준다. “자유롭게 숨쉬기를 갈망하는 너의 지치고 가난한, 자유를 갈망하는 움츠러든 이들을 내게 보내라.” 미국은 라틴 아메리카의 이민자들과 난민들을 제한하는 쿼터제를 폐지하며 급격한 인구 변화를 겪기도 했다.

나아가 미국은 이민자들을 위한 기독교 사역도 활발했다.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Underground Railroad)는 아프리카 출신의 미국인 노예들이 도망치도록 도왔고, 가난한 도시 이주민 근로자들을 위한 구호 서비스를 제공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전국복음주의협회(National Association of Evangelicals, NAE)와 이 단체의 전쟁구호위원회(War Relief Commission, 이후 World Relief로 변경됨), 개신교-가톨릭교회세계서비스(Protestant-Catholic Church World Service, CWS)는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의 난민 수용을 제한하는 정책들을 수립한 것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특히 CWS는 불법 입국자 보호 운동에 참여했다. 이 운동은 1980년대 중앙 아메리카 난민들을 돕기 위해 일하면서 동력을 얻었고, 오늘날에는 난민들에게 종교적 건물과 도시를 제공하는 일에 동참을 유도하면서 불법 체류자들을 미국 정부의 몰수와 추방으로부터 보호하고 있다.
 

주요 질문들

필자는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국 교회들이 사역을 고려할 때 직면하는 주요 질문들을 다루며 이 글을 맺고자 한다.
 

한국 선교는 계속해서 국제적인 선교 현장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가 아니면 국내 사역으로 전환해야 하는가?

미국 일부 교회와 선교 단체들은 선교사들을 해외로 파송하는 전략을 수정해, 국내에서 “우리에게 들어오는 열방, 이주민과 난민”을 대상으로 사역하기로 결정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해외로 파송된 미국 선교사들을 후원하는 재정으로 다른 긴급한 수많은 필요를 채울 수 있다. 둘째, 그 재정으로 동일한 민족을 대상으로 미국의 선교사보다 더 효과적인 사역이 가능한 현지인 목회자를 후원할 수 있다. 셋째, 이민자들을 사역의 대상으로 했을 때보다 많은 교인이 사역에 직접 참여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유의할 점은 해외 혹은 국내라는 질문이 배타적인 선택을 요구하는 질문이 아니라는 점이다. 양쪽 모두 필요하다. 이민자와 난민을 위한 사역에 집중하는 것이 해외 선교에 대한 헌신을 약화시켜서는 안 된다.
 

이민자와 난민을 대상으로 건설적으로 사역하기 위한 본보기를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

우간다는 한국의 역사적 배경과 유사한 특징들(식민 통치, 전쟁으로 발생한 국내 피난민, 가난, 해외로 이주, 기독교 역사)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이주민과 난민에 대한 사역들을 수행할 때 우간다의 기독교 사역들을 살펴보며 도전을 받을 수 있다. 우간다는 타인에게 관대한 환영을 베풀어 한국인들이 배울 수 있는 섬김의 본을 보여 준다.

또한 유럽의 유산을 가진 기독교인들이 갖고 있는 좋은 모델들도 주목해야 한다. 유럽과 북미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이민자들을 환영하고 섬겨왔다. 전형적인 섬김의 예로서 그들은 이민자 기독교인들에게 예배 드릴 장소를 찾아주고, 자신들의 교회 건물도 무료로 제공하였다. 또한 정부 혹은 사회 서비스 기관과 협력해 언어 교육과 더불어 의료, 법률, 기타 서비스를 시행했다. 나아가 그들의 사회적, 물질적 필요들을 확보해 주었다. 

더불어 유학생을 위한 사역에도 주목해야 한다. ISI (International Student Incorporated)는 유학생들을 위한 소그룹 모임으로 전도와 제자양육을 위한 성경공부를 진행했다. 또한 유학생들을 민박 가족과 연결해 주는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이를 통해 학생들이 일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을 경험할 수 있도록 인도한 것이다.


최근에 늘어나는 이민자와 난민들을 통해서, 한국 교회에 주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무엇인가?

하나님은 난민들의 유입을 통하여 우리에게 두 가지 메시지를 보내고 계신다. 첫째는, 다른 사람들과 만남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견해와 기독교적 가치가 올바른지 돌아보는 것이다. 남한에서 예멘 난민들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가장 공격적으로 반대를 표명한 것은 보수 기독교인들이었다. 마찬가지로, 트럼프의 이민 정책을 가장 확고하게 지지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미국의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이 있다. 이들은 폭력, 일자리 부족, 사회적 서비스 비용의 증가에 대한 보호라는 명목으로 트럼프의 정책을 지지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그들의 생각이 기독교적 가치에 부합하는지 돌아보기를 원하신다.

둘째는, 정부의 정책 참여에 대한 것이다. 기독교 교육은 로마서 13:1-7을 따라 정부를 존중하고 순종할 의무를 강조한다. 그렇지만 정부가 난민과 이민자를 거부하는 정책을 수립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불법 입국자 보호 운동(sanctuary movement)에 대해서는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이에 대해 무조건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기독교적 가치의 정책을 펼치도록 목소리를 낼 줄도 알아야 한다.

넬슨 제닝스 온누리교회 선교 목사. 에딘버러 대학교(Ph.D.). 저서로는 Theology in Japan: Takakura Tokutaro, God the Real Superpower: Rethinking Our Role in Missions등이 있다. 필자의 다른기사 keyboard_arrow_r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