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와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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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설교 2019년  01월호 소중한 것을 소중하게 여기는 신앙: 창세기 24-28장 채경락 교수의 설교적 주석(8)

창세기 24장- 위대한 심부름

아브라함의 종이 주인의 명을 받고 주인의 고향으로 가서 주인의 며느리를 구해 오는 장면이다. 종은 길을 나서기 전 예기치 않은 돌발 상황에 대해 주인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정확히 확인하고는 신중하게 길을 떠난다. 주인의 하나님께 기도하여 도움을 구하고,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라 우물가에서 리브가를 순적하게 만난다. 종이 만난 리브가는 나그네는 물론 짐승의 목마름까지 챙길 줄 아는 귀한 여인이었다. 이삭의 아내가 되겠다는 리브가의 뜻이 확인되자 종은 속히 주인에게로 돌아온다.
 

설교 구상 1

‘작은 일은 없다’는 메시지를 선포할 수 있다. 본문의 길이가 눈길을 끄는데, 무려 67절이다. 창세기 1장의 창조 기사가 ‘불과’ 31절임을 감안하면, 심부름 하나에 얼마나 긴 성경 지면이 할애되었는지 놀라울 정도다. 하나님 앞에 작은 일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맡겨진 모든 일이 소중하다. 사람의 크기는 일의 크기나 지위의 높이로 따지는 게 아니다. 주께서 맡기신 작은 일에 성심을 다하는 사람이야말로 진정 큰 사람, 큰 일꾼이다.

우산 질문   아브라함의 종의 심부름의 의미는 무엇인가?
대지  1         작은 일은 없다
어찌 보면 작은 심부름이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천지창조보다 더 길게 기록하신다. 함부로 작게 여기는 일이 있을 뿐, 주님 앞에 작은 일은 없다.
대지  2       작은 사람도 없다
어찌 보면 작은 사람이었다. 종이고, 이름조차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본문의 주인공은 누가 봐도 이 종이다. 사람의 크기는 신분이나 지위로 따지는 게 아니다. 함부로 가벼이 대하는 사람이 있을 뿐, 주님 앞에 작은 사람은 없다.
대지  3     맡겨진 일에 충성하는 큰 사람이 되라
본능적으로 우리는 크고 중요한 일을 원하고, 빛나고 돋보이는 자리에 앉으려 한다. 그러나 진정 큰 사람은 나에게 맡겨진 작은 일에 충성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은 그런 일꾼과 함께 위대한 역사를 도모하신다.
 

설교 구상 2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꾼’을 설교할 수도 있다. 주님이 찾으시는 일꾼으로 이름 지을 수도 있지만, 본문의 뉘앙스를 감안할 때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꾼이 좋다고 판단된다. 종의 심부름을 주님이 창조 기사보다 길게 기록하셨는데, 마치 하나님이 “나에게는 이런 사람도 있다”고 자랑하시는 듯하다.

우산 질문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꾼은 어떤 사람인가?
대지  1         주인의 뜻에 민감한 일꾼
종은 길을 나서기 전에 먼저 주인의 뜻을 정확히 파악한다. 며느릿감이 고향을 떠나지 않으려고 하면 이삭과 함께 가나안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갈지를 물어본다. 평소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이 가지는 의미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좋은 일꾼은 자기 뜻이 아니라, 주인의 뜻을 구하고 주인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다.
대지  2        기도로 일하는 일꾼
종은 일의 시작과 마무리를 기도로 채운다. 아브라함의 명을 받았지만, 그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한다.
주요 시점마다 종은 하나님께 기도하고, 기도한 대로 일한다. 주님은 그의 기도를 기뻐하시고 예비된 리브가를 만나게 하셨다.
대지  3     대접 받는 것보다 사명에 집중하는 사람
리브가가 이삭의 아내가 되기로 결심한다. 이에 가족은 아브라함의 종에게 며칠을 묵으며 쉬었다가 가라고 제안한다. 리브가와 석별의 정을 나누려는 뜻도 있었겠지만, 종에게 리브가를 잘 부탁하며 대접하려는 뜻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종은 바로 길을 나서려 한다. 종의 관심은 자기가 대접받는 데 있지 않고, 주인이 맡긴 사명을 완수하는 데 있었기 때문이다.
 

설교 구상 3

‘현숙한 여인’을 설교할 수도 있다. 잠언 31:10로 인해 많은 그리스도인에게 ‘현숙한’은 이상적인 여인을 가리키는 언어로 정착되어 있다. 아브라함의 종이 주인의 며느리를 구함에 있어 기도하는 내용이 인상적이다. 나그네에게 물을 주며, 그가 타고 온 낙타에게도 물을 주는 여인을 찾는다. 그의 기준을 절대화할 수는 없지만, 주께서 기뻐하신 일꾼이 생각한 귀한 여인의 모습이고, 나아가 주께서 예비하신 여인이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우산 질문   리브가를 통해 보여주는 현숙한 여인은 어떤 모습인가?
대지  1      사람을 향한 너그러움
리브가는 지나가는 나그네의 목을 축여 주었고, 그가 타고 온 짐승까지 돌보아주었다. 나그네를 향한 환대는 성경이 거듭 강조하는 하나님 사람의 덕목이다. 종은 그런 여인을 만나기를 하나님께 기도했다.
대지  2       믿음으로 결단하는 용기
리브가는 용기의 여인이기도 했다. 여인의 몸으로 고향과 가족을 떠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으리라. 예전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날 때의 결단과 겹쳐 보인다. 아브라함의 믿음이 떠남으로 시작되었듯이, 믿음의 여인 리브가의 여정도 용기 있는 결단으로 시작되었다.
대지  3      권위에 순종하는 겸손
가나안에 도착할 즈음 이삭이 마중을 나왔을 때 리브가는 즉시 너울을 가지고 자기 얼굴을 가린다. 당시 전통에 여인의 정숙함과 동시에 남편에 대한 순종을 상징하는 행동이었다. 에베소서 5:22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는 말씀을 떠올리게 한다.
 

창세기 25장- 소중한 것을 소중히 여기라

여러 묶음의 족보가 소개된다. 아브라함이 사라 외에 다른 후처를 들여서 낳은 자손들이 소개되고, 이어서 이스마엘의 자손이 열두 부족이나 이루게 됨을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이삭의 계보가 소개되는데, 에서와 야곱이 쌍둥이로 잉태되었을 때 하나님은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는 의미심장한 예언을 주신다. 그 가운데 장자 에서는 장자의 명분을 너무나 가벼이 여겼고, 야곱은 장자의 자리를 간절히 사모하였다.
 

설교 구상 1

족보들이 주는 교훈을 챙기는 설교가 가능하다. 족보의 특성상 읽기에 다소 지루한 면이 있지만,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있다. 먼저 하나님이 주신 약속대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번창하고 있음을 본다. 후처와 이스마엘 등 어둔 면이 없지 않아 있지만,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짐음 목격한다. 족보에 으레 나오는 죽음도 인생의 의미를 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족보라는 존재는 우리의 삶이 기록된다는 두려운 교훈을 준다. 파편적인 메시지일 수 있지만, 성찰의 톤으로 묵상이 가능하다.

우산 질문   아브라함과 이스마엘, 그리고 이삭의 족보를 통해 성경이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인가?
대지  1      하나님의 약속은 이루어진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 그대로 이루어진다. 하갈에게도 네 씨의 자손이 크게 번성하리라고 약속하셨는데(창 16:10), 이 약속도 이루어주신다.
사람의 약속은 공수표가 되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그분은 신실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대지  2       인생에는 끝이 있다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지만, 인생에는 끝이 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도 죽음이 찾아왔고, 주의 약속 바깥으로 태어난 이스마엘도 예외가 아니다. 모든 인생의 끝은 죽음이다. 우리 조상들이 그랬듯이, 우리에게도 죽음의 순간이 찾아올 것이다. 부담스러워도 챙겨야 할 진실이다.
대지  3      우리의 삶이 기억되고, 심지어 기록된다
족보는 존재와 삶의 기록이다. 이들의 존재와 삶이 기억되고 기록되듯이 우리의 삶도 그러할 것이다. 하나님 앞에 서는 날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될 것이다.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날을 준비하며 살 것이고, 지금 여기서 이미 하나님 앞에서 살 것이다.
 

설교 구상 2

19-34절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을 설교할 수 있다. 난해한 설교가 될 것이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예정과 인간의 책임은 논리적으로 서로 충돌되는 듯이 보이는데, 오늘 본문에서는 양자가 병치되어 나타난다. 둘 사이에 긴밀한 균형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로 보인다. 리브가가 쌍둥이를 잉태했을 때, 하나님은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는 주권적인 예정을 주셨다. 그런데 바로 다음 장면에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벼이 여기는 모습이 나온다. 장자의 계보가 에서가 아니라 야곱에게로 이어진 것은, 하나님의 주권적 예정이었지만, 동시에 에서 자신이 스스로 차버린 면도 있다. 이에 대해 균형 있게 소개하면서, 주의 주권적 은혜를 의지하되 성심을 다해 살자는 권면으로 마무리할 수 있다.

우산 질문   장자의 계보가 에서가 아니라 야곱에게 이어진 이유는 무엇인가?
대지  1      하나님의 주권이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주권자시다. 에서와 야곱이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의 눈은 그들의 삶을 내다보신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창 25:23). 삶이 시작되기도 전인데 주님은 그들의 삶을 주권적으로 예견하신다. 우리의 삶도 그러하다. 우리 인생은 주권자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
대지  2      인생의 책임이다
장자의 명분을 차버린 것은 에서 자신이다. 순간적인 배고픔에 마음이 팔려 믿음의 계보를 잇는 장자의 명분을 스스로 차버렸다.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 믿음의 계보에서 떨어져 나가게 된 것이 그의 책임이었음을 지시한다.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핑계할 수 없다.
대지  3      주의 주권적 은혜를 의지하며, 성심을 다해 살라
하나님의 주권과 인생의 책임은 인간의 언어로 풀어내기가 어렵고, 어쩌면 신비의 영역이다.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를 의지하되, 하루하루 성심을 다해 살아가는 것이다. 비겁한 자는 핑계할 것이고, 어리석은 자는 남용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이 살아가는 길은 핑계와 남용이 아니라 겸손히 신비를 받아들이며, 하루하루 성심을 다하는 것이다.
 

설교 구상 3

에서의 안타까운 모습을 보면서, 소중한 것을 소중히 여기라는 메시지도 가능하다. 장자의 명분은 배부르게 하거나 지갑을 두둑하게 하진 않지만, 밥보다 소중하고 돈과 비교할 수 없이 귀하다. 그런데 어리석은 에서는 소중한 것의 소중함을 몰랐고, 소중한 것을 소중히 여기지 않았다. 소중한 것을 소중히 여기라는 주제를 선포한 뒤에 구체적인 적용으로 나아갈 수 있는데, 설교자의 묵상에 따라 다양한 적용이 가능할 것이다.

주제 선언     소중한 것을 소중히 여기라
어리석은 인생은 소중한 것을 가벼이 여기고, 거꾸로 가벼이 여겨도 되는 것에 과도한 무게를 둔다. 에서는 믿음의 계보를 잇는 장자의 영광을 순간적인 허기를 달랠 한 그릇 밥보다 하찮게 여겼다. 소중한 것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성도의 경건이고, 가벼운 것을 가벼이 여길 줄 아는 것이 성도의 품위다.
중간 질문     우리가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은 무엇일까? 
대지  1      눈에 보이는 것보다 영원한 것을 소중히 여기라
대체로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을 소중히 여긴다. 그런데 정말 소중한 것은 때로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다. 가끔은 눈을 감는 것도 지혜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영원한 영광을 사모하라.
대지  2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소중히 여기라
사도 바울의 지혜를 마음에 새기자. “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빌 3:8). 바울이 귀한 삶을 산 것은, 무엇이 소중하고 무엇이 하찮은지를 분별할 줄 알았기 때문이다. 영원한 진리요 영광인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소중히 여기자.
 

창세기 26장-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이삭이 신변에 위험이 닥칠까 두려워서 아내를 누이로 속이는데, 아버지 아브라함의 모습이 떠오른다. 아들이 아버지를 닮는다는, 평범하지만 부담스러운 진실을 보여 준다. 그후 하나님이 이삭에게 복을 부어 주시므로 그가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었다. 가는 곳마다 우물을 얻는 형통함도 참 부럽다. 주변 사람이 시기할 정도의 복이었고, 주변 왕이 두려워 조약을 맺자고 할 정도의 형통함이었다. 이방인의 눈에도 하나님이 이삭과 함께하심이 보였던 모양이다.
 

설교 구상 1

‘삶의 유산’을 설교할 수 있다. 아내를 누이로 속이는 이삭의 행동은 과거 창세기 12장과 20장의 아브라함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속이는 이유도 비슷해서, 자기 신변에 위협이 있을까 두려워서다. 아버지의 모습이 아들에게로 옮겨 왔다. 놀라운 것은, 아브라함이 아내를 누이로 속일 때 이삭은 태어나기도 전이었다. 자녀들이 보지 못했다 하더라도, 부모의 삶이 유산이 될 지 모른다는 경고로 받을 수 있다.

우산 질문   그리스도인은 자녀에게 어떤 유산을 남겨야 하는가?
대지  1       나의 삶이 후손에게 유산이 된다
이삭이 사람들 앞에서 아내를 누이로 속인다. 자기 신변에 위협이 닥칠까 봐 두려워서 지어 낸 거짓말인데, 창세기 12장과 20장의 아버지 아브라함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아버지의 못난 모습이 아들에게 그대로 전수되고 있다.
대지  2      나의 감추인 삶도 유산이 된다
아버지 아브라함이 아내를 누이로 속일 때, 아들 이삭은 태어나지도 않았다. 아버지의 부끄러운 모습을 아들이 본 적이 없다는 의미다. 그런데도 아버지의 모습이 아들에게서 나타난다. 자녀들에게 들키지 않은 우리의 삶도 유산이 될 수 있다는 두려운 가르침이다.
대지  3      귀한 삶의 유산을 남기라
부모로서 산다는 것은 참 두려운 일이다. 오늘 나의 삶이 언젠가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유산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루하루 유산을 남긴다는 마음으로 귀한 삶을 살아가자.
 

설교 구상 2

12-25절을 본문으로, 이삭에게 임한 복이 성도들에게도 임하기를 기원하는 설교가 가능하다. 설교의 톤은 단지 교훈과 책망에 제한되지 않고, 기도와 축복의 톤으로도 열려 있다. 본문의 언어는 우리를 딱딱한 가르침보다 뜨거운 감사와 간절한 기원으로 이끈다. 설교를 통해 이삭에게 주신 번성과 형통의 복이 우리 성도들에게도 임하기를 구하고, 동시에 번성함 중에도 신앙의 끈을 놓지 않기를 기원할 수 있다.

우산 질문   이삭의 복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기도 제목이 무엇인가?
대지  1      이삭에게 주신 복을 우리에게도 주소서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창 26:12-13). 읽기만 해도 행복한 구절이다. 하나님이 이삭에게 주셨다면 우리에게도 이 복을 주실 수 있다. “주여,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도 귀한 복을 허락해 주소서.” 속물적인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되겠지만, 자녀로서 아버지께 복을 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간구다.
대지  2      믿지 않는 이들이 시기하도록 복을 주소서
하나님이 이삭에게 얼마나 복을 부어주 셨는지, 주변 이방인들이 시기할 정도였다.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종이 심히 많으므로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창 26:13-14)였다. “주여, 우리에게 복을 주셔서, 하나님의 백성이 얼마나 복된 인생들인지를 다른 이들이 보게 하소서.” 복을 구하는 동기가 단지 내 욕심을 채우는 것이라면 주의 자녀로서 부끄러운 간구다. 주의 영광을 위하여 구하라.
대지  3     그러나 복에 겨워 하나님을 잊지 않게 하소서
그릇이 준비되지 않으면 주신 복이 오히려 재앙이 되기도 한다. 복에 겨워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어리석은 인생이 있다. 차라리 물질의 복을 받지 않았더라면 더 복된 삶이 되었을 가련한 인생들이 있다. “우리가 간절히 구하고 결코 놓치지 말아야 할 최고의 복은 하나님임을 잊지 않게 하소서. ”
 

설교 구상 3

26-33절을 중심으로 세상이 인정하는 교회를 설교할 수 있다. 아비멜렉 일행이 이삭을 찾아와 계약을 맺기를 청한다. 이유인즉, 이삭에게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삭의 삶에 전능하신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보고, 두려운 마음에 계약을 청한 것이다. 이 땅의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이런 눈빛을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주제 선언     세상이 인정하는 교회가 되기를!
안타깝게도 주의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손가락질을 받기도 한다. 본문의 모습과는 너무 다르다. 이방 왕이 이삭을 찾아와 겸손하게 계약을 청하는데, 이삭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정하고 심지어 그를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이 땅의 교회도 세상으로부터 이런 평가를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우산 질문   세상이 인정하는 교회는 어떤 교회일까?
대지  1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교회
아비멜렉은 이삭에게 계약을 청하는 이유에 관하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세상이 인정하는 교회는 돈이 많고 유력한 인사가 있는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교회다.
대지  2      하나님을 찾는 교회
하나님이 우리 안에 임하시려면 우리가 그분을 찾아야 한다. 주님은 그분을 간절히 찾는 사람과 함께하신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사 55:6). 이삭이 하나님과 동행했듯이, 교회인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할 때 세상이 우리를 인정하게 될 것이다.
대지  3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교회
모든 지식의 근원이 ‘하나님 경외’라고 했는데, 교회다움의 기초도 ‘하나님 경외’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교회에 주께서 임재하실 것이고, 그 교회를 세상도 인정하게 될 것이다. 세상의 인정을 받는 것이 우리의 목표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교회가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아서야 되겠는가. 교회다움이 충만할 때 세상이 교회를 인정하고 교회를 통해 하나님을 보게 될 것이다.
 

창세기 27장- 거룩한 욕심

난해한 본문이다. 야곱이 어머니와 결탁하여 아버지를 속이고 형의 복을 가로챈다.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는 예언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장면이지만, 읽는 마음이 편치 않다. 어떤 메시지를 선포해야 할지 쉽게 감이 잡히지 않는다. 묵상 중에 하나님의 복을 향한 야곱의 거룩한 욕심이 눈에 들어온다. 방법은 바람직하지 않았지만, 주의 복을 향한 거룩한 열정만큼은 갸륵하다. 축복 기도를 가벼이 여기지 말라는 메시지도 엿보인다. 이삭의 입에서 나온 기도는 언제든 주워 담을 수 있는 가벼운 말이 아니다.
 

설교 구상 1

거룩한 욕심을 품으라는 설교가 가능하다. 야곱과 리브가의 방법을 칭찬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복을 얻고야 말겠다는 거룩한 욕심만큼은 인정할 수 있다. 설교 초두에 메시지를 얻는 과정이 순탄하지 않음을 밝힐 필요가 있을 것이다. 단지 설교자의 고충을 토로하기 위함이 아니라, 속물적인 욕심과 혼동하는 오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이다.

우산 질문   아들이 어머니와 결탁하여 아버지를 속이는 장면이다. 이 난해한 본문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주제 선언     거룩한 욕심을 품으라
하나님의 복을 향한 야곱의 열정이 뜨겁다. 돈이나 세속적인 영광을 향한 욕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복을 향한 열정이다. 아버지를 속이는 방법은 아쉽지만, 열정만큼은 뜨겁다. 장자의 명분을 가벼이 여긴 에서에게선 찾아볼 수 없는 열정이다. 하나님의 거룩한 복은 뜨거운 열정과 사모함에 잘 담긴다.
중간 질문     야곱의 열정보다 더 나은 길은 없을까?
대지  1       정도를 걷는 열정
아무리 목적이 선해도 방법이 옳지 않으면 아쉬울 수밖에 없다. 야곱과 리브가는 열정이 너무 뜨거워 형과 아버지를 속이고, 아들과 남편을 속이는 지경에 이르렀다. 주의 약속을 믿고 우직하게 정도를 갈 수 있었더라면 더 아름답지 않았을까. 쟁취하는 열정도 좋지만, 정도를 걷는 열정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대지  2      낮아짐과 희생의 열정
뜨거운 마음은 대체로 위를 향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정말로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열정은 낮아지고 희생하는 열정이다. 예수님은 누구보다 뜨거운 삶을 사셨지만, 그분의 길은 언제나 낮은 길이었고 희생하는 길이었다. 이를 악물고 올라가는 길이 아니라, 오히려 묵묵히 내려가셨다.
 

설교 구상 2

기도를 가벼이 여기지 말라는 메시지가 가능하다. 조심스러운 설교인데, 야곱을 향한 이삭의 기도는 사실상 속아서 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이삭은 이를 철회하지 않는다. 엎질러진 물을 주워 담을 수 없듯, 기도의 언어도 함부로 철회될 수 없다는 뉘앙스가 느껴진다. 앞서 조심스럽다는 것은, 기도를 주술적 행위로 오해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기도는 주술이 아니다. 기도를 주술 취급하는 것은 기도의 주인이신 하나님에 대한 모욕이다. 그런데 기도를 가벼이 여기는 것 또한 하나님을 향한 모욕이 될 수 있다.

우산 질문   야곱을 향한 이삭의 축복 기도를 통해 주께서 주시는 말씀은 무엇일까?
대지  1      기도를 가벼이 여기지 말라
기도는 사람의 말이 아니다. 사람 입에 담기지만, 기도는 하나님 앞에서의 말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담은 말이다. 함부로 내뱉고 여차하면 철회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성도의 기도는 향이 되어 주의 제단 앞에 타오른다(계 5:8). 기도를 가벼이 여기는 것은 기도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가벼이 여기는 처사다. 진중한 마음으로 준비하고, 진중하게 기도하라.
대지  2      축도를 가벼이 여기지 말라
예배의 마지막 순서는 대체로 축복 기도다. 주께서 세운 목회자가 주의 이름으로 성도들을 축복하는데, 믿음으로 받을 때 주의 복이 임한다.
연약한 인간의 입술에 담긴 축복의 언어지만, 진중한 마음으로 받을 때 주께서 약속하신 복이 성도들에게 임할 것이다. 이를 위해 목사도 온 마음을 다해 주의 복을 선포하여야 할 것이고, 성도들도 겸손히 주의 복을 사모해야 할 것이다.
대지  3     야곱에게 임한 복이 우리 성도들에게도 임하기를
야곱에게 베푼 축복의 언어로 성도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를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창 27:28). 나아가 고린도후서 13:13의 언어를 풀어주며 성도들을 축복할 수 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창세기 28장- 여호와께서 여기 계시거늘

이삭이 야곱을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보낸다. 에서처럼(창 26:34-35), 야곱마저 이방 여인과 결혼할까 염려되어서인데, 이면에는 분노한 에서의 손에서 야곱을 보호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이 모습을 지켜본 에서는 아버지의 환심을 사기 위해 이스마엘의 딸과 결혼한다. 길을 가던 야곱은 밤에 하나님을 만나 그의 길에 늘 함께하며, 그를 지키며, 약속을 이루기까지 그를 떠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는다. 이에 야곱은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모시기로 결단하고,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주께 드리기로 서원한다.
 

설교 구상 1

에서의 아쉬운 삶을 묵상할 수 있다. 동생에게 밀려난 서러움이 있겠지만, 그의 삶 자체가 많이 아쉽다. 야곱이 떠난 뒤 에서는 급히 이스마엘의 딸과 결혼하는데, 아버지 이삭의 환심을 사기 위함이었다. 처음부터 아버지의 뜻에 진중하게 귀를 기울였더라면 헷 족속 이방 여인과 결혼하는 일은 애초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에서의 삶이 너무나 즉흥적이다.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팔 때도 너무나 즉흥적이었는데, 오늘도 그러하다. 이런 가벼운 삶에는 거룩한 주의 복이 임하기 어렵다.

우산 질문   에서를 통해 보여주는 아쉬운 삶의 모습은 무엇인가?
대지  1      껍데기 모방
에서가 이스마엘의 딸과 결혼하는데, 진심을 담은 행동이라기보다 껍데기 모방이었다. 아버지와 동생의 대화를 엿듣고는, 아버지의 환심을 사기 위해 급히 치른 결혼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겉 행동보다 마음 중심을 보시는 분이다. 우리의 행동이 의미가 있기 위해서는 거기에 우리의 진심이 담겨야 한다.
대지  2      때 늦은 분주함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법인데, 에서는 때를 놓쳤다. 아버지의 뜻을 헤아리려면 진작 했어야 한다.
할아버지 아브라함이 아버지 이삭을 위해 종을 고향에 보내어 어머니 리브가를 모셔온 일을 에서도 익히 들어 알고 있었을 것이다. 진작 귀를 기울였더라면, 애초에 헷 족속 여인과 결혼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대지  3      즉흥적 행동
그의 행동이 너무 즉흥적이다. 일찍이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고 장자의 명분을 팔 때도 즉흥적이었는데, 오늘도 변함없이 즉흥적이다. 진중하게 생각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그 와중에 너무나 소중한 것들을 많이 놓치고 말았다. 이토록 가벼운 삶에는 하나님의 거룩한 복이 임하기 어렵다.
 

설교 구상 2

15절을 중심으로 야곱에게 주신 약속을 묵상하는 설교도 가능하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찬찬히 분석하고 분해하면, 너와 함께 하리라, 너를 지키리라, 너를 이끌리라,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등의 대지를 얻을 수 있다. 야곱에게 주신 약속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에게 주시는 약속이다.

우산 질문   야곱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약속이 무엇인가?
대지  1      너와 함께하리라
임마누엘의 약속이다. 야곱에게 주신 약속이지만, 있는 그대로 우리에게 주시는 약속이다. 인생의 행복과 가치는 어떤 길을 가느냐보다 누구와 동행하는지로 결정된다. 존귀하고 거룩하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
대지  2      너를 지키리라
어떤 상황에서도 그를 지켜 주시겠다는 약속인데, 이 또한 우리에게 주시는 약속이다. 우리를 지키시는 분은 졸지도 않으시고 주무시지도 않으신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도 주님은 생명 다해 우리를 지켜주실 것이다.
대지  3     너를 인도하리라
인생길은 누구에게나 초행길이다. 어느 길로 가야 할지 선택이 쉽지가 않다. 감사하게도 주께서 우리의 길을 인도하실 것이다. 야곱이 외삼촌 라반을 찾아가는 길도 인도하시지만, 주님은 그의 일생을 동행하며 인도하실 것이다.

유사한 내용으로 대지 형태를 동사에서 명사로 변환도 가능하고, 대지 구성에 변화를 준 설교도 가능하다.

우산 질문   야곱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약속이 무엇인가?
대지  1       함께함의 약속
주의 백성이 가는 길은 어디나 벧엘이다.
대지  2      지키심의 약속
주님이 계시기에 두려운 세상에서도 용기를 낼 수 있다.
대지  3     이루심의 약속
주님이 계시기에 거친 길에서도 기대를 품을 수 있다.   

채경락 고신대학교 설교학 교수. 미국 남침례신학교(Ph.D.). 저서로 《쉬운 설교》, 《설교자들이 알아야 할 절기와 상황 설교》 등이 있다. 필자의 다른기사 keyboard_arrow_r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