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와 신학

  • {{x.scr_name}}
  • 미분류

그말씀 2018년  11월호부정을 씻는 물: 간이 속죄제 책별 성경 연구 | 민수기 19장

민수기 19장의 신학 개관

이 장은 민수기 17:12-13(17:27-28)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했던 탄식에 찬 질문, 즉 “[여호와의 성막에] 가까이 나아가는 모든 자들 … 사멸할 때까지 죽어야 합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두 번째 대답이다. 하나님의 첫 번째 대답인 18장이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의 죽음을 방지하는 것이었다면, 19장은 시체로 인해 부정하게 된 자들을 ‘부정을 씻는 물’(19:9, 13, 20, 21; 31:23)로1 씻어 정결하게 함으로써 죽음을 방지하는 것에 대해 다룬다.
‘부정을 씻는 물’은 본문의 표현에 따르면 ‘속죄제’(9절)로서 작용한다. 그러나 이 물이 작동하는 방식을 고려하자면, 좀 더 부연적으로 ‘간이 속죄제’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할 수도 있다.2 이 점을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레위기에 따르면 간단한 부정들의 경우에는 그냥 물로 씻거나 저녁까지 기다리는 것으로 해결되었지만, 심각한 부정들의 경우에는 7일 동안 기다린 후에 속죄제를 드려야만 했다(레 14:10-32; 15:13-15, 28-30). 그러나 제사는 상당히 비싸고 번거로운 해결 방식이었기에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런 면에서 ‘부정을 씻는 물’은 “사망으로 인해 발생한 오염의 심각성을 나타내 주면서도 비싸고 번거로운 제사라는 방식에 의존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었다.3 이런 면에서 이 물은 심각한 오염에 대한 정결 의식 및 그에 따르는 속죄제를 결합한 것과 비슷한 형식과 성격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4
‘부정을 씻는 물’을 만드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2-10절). 우선 이스라엘 백성이 ‘흠이 없고 아직 멍에를 메지 않은 완전한 붉은 암소’를 가져오게 한다(2절). 제사장 엘르아살은 이것을 진영 밖으로 끌고 가서 누군가 다른 사람이 이것을 도살하게 시킨다(3절). 이어서 그는 도살된 암소의 피를 손가락으로 찍어 그 피를 회막 쪽을 향해 일곱 번 뿌린다(4절). 이 의식은 대제사장의 속죄제(레 4:6; 참조, 8:11)나 온 회중의 속죄제(레 4:17) 혹은 대속죄일의 의식(레 16:14, 19)을 연상시킨다.5 이어서 엘르아살은 그 암소가 자기 앞에서 불태워지게 한다. 이때 ‘불태우다’란 동사(@r:f'싸라프)는 희생 제물이 제단에서의 ‘불사름’을 통해 정식으로 하나님께 올려지는 용도로 태워지는 뜻을 가진 동사(ryjiq.hi히크티르)가 아니라 그냥 태워 없애는 용도로 태워지는 것을 가리키는 동사이다.6 암소 중 불태워지는 부위로 나열되는 것은 가죽, 고기, 피, 똥이다(5절). 피를 제외한 나머지 부위의 목록은 대제사장의 속죄제 및 온 회중의 속죄제의 경우를 연상시킨다(레 4:11-12, 21). 이런 점은 ‘부정을 씻는 물’이 일종의 ‘간이 속죄제’로서, ‘사람의 시체로 인한 부정’이라는 심각한 오염을 해결하는 역할을 하리라는 것을 나타내주는 듯하다.
물론 이 물이 대제사장의 속죄제나 온 회중의 속죄제와 같은 정식 속죄제는 아니기 때문에 이것들과의 차이점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이런 차이점들 중에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속죄제의 경우와 달리 제물의 지방 부위 역시 제단이 아니라 진 밖에서 불태워진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참조, 레 4:8-10).7 왜냐하면 이 물을 만들기 위한 붉은 암소는 아예 처음부터 진 밖으로 이끌려갔고, 지방만을 따로 진 안으로 가져와 제단 위에 불태워 드렸다는 언급이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암소를 진 밖에서 불태울 때 엘르아살이 아닌 다른 제사장이 정결 의식에서 주로 사용되는 백향목, 우슬초, 홍색 실을 불 속으로 던져 넣는다(참조, 레 14:4, 6, 49, 51-52). 그리고 마지막 단계로 암소의 재를 모아서 진영 밖의 정결한 곳에 모아 두었다가 이스라엘 회중의 ‘부정을 씻는 물’로 사용한다(민 19:9).
이 물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백향목, 우슬초, 홍색 실을 불에 던져 넣은 제사장, 암소를 불태운 사람, 재를 모은 사람은 다 부정하게 되기 때문에 옷을 빨고, 몸을 씻어야 하며, 저녁까지 부정한 상태에 머무르게 된다(7-8, 10절). 물론 마지막 사람의 경우에는 몸을 씻어야 한다는 언급이 없지만, 정황상 그 역시 같은 종류의 부정을 겪고 있기에 몸을 씻는 문제에 있어서도 나머지 두 사람의 경우와 같았으리라고 생각된다.8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부정을 씻는 물’은 본문이 분명히 ‘속죄제’라고 부르고 있다(9, 17절). 그러나 이것이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일반적인 속죄제와 같은 절차와 방식을 엄밀하게 따르고 있지 않기 때문에 아마 일종의 ‘간이 속죄제’로서, 사람의 시체로 인한 부정을 씻는 역할을 하는데 사용되었다고 생각된다. 만약 이 물이 없었다면 이스라엘은 레위기 14-15장의 심각한 부정을 해결하는 의식들에서 보듯이 정식으로 속죄제를 드려야 했고, 이것은 상당한 절차적, 비용적 부담을 야기했을 것이다. 이런 면에서 ‘간이 속죄제’로서의 ‘부정을 씻는 물’은 하나님의 섬세한 배려와 은혜를 보여 준다.
이 물은 사람의 시체와 접촉함으로 부정해진 사람을 정결하게 하는데 사용될 것이다(11-13절). 사람의 시체를 만진 사람은 7일 동안 부정하게 되는데, 부정하게 된 사람은 제3일과 7일에 ‘부정을 씻는 물’로 정결하게 한다(11-12절). 만약 이런 의식을 치르지 않을 경우, 그 사람은 여호와의 성막을 더럽히는 것이 되며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끊어지게 된다(13절).
이런 19장 전반부(1-13절)의 내용은 후반부(14-22절)를 통해 약간 다른 관점에서 다시 반복된다. 이 점은 19장이 가진 이중적 구조에 반영되어 있다. 이에 대한 좀 더 상세한 내용은 “단락 구분” 항목을 통해 다루기로 한다.
참고적으로 민수기 5:2-3은 “모든 악성 피부병 환자와 유출증 있는 자와 죽은 자로 인해 부정하게 된 모든 자를 다 진 밖으로 내보내라”라고 명령한다. 여기에서 악성 피부병과 유출증의 경우에는9 사람이 항상 겪는 일이 아니고, 생리 작용 등과 같이 부득이하게 겪는 일도 아니다. 그러나 시체로 인한 부정은 가족이 죽거나 혹은 가까이에서 어떤 사람이 갑자기 죽는 경우, 그리고 전쟁과 같이 광야 시대의 이스라엘이 정복 활동을 위해 가나안 접경에 다가가는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이 다수의 무리가 겪을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이런 때마다 각 사람이 ‘시체로 인한 부정’이라는 심각한 부정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레위기 4:1-5:13과 같은 일반적인 속죄제를 드려야 한다면 그것은 너무나도 비싼 값을 치르는 번거로운 일이었을 것이다. 이런 점에 있어서 ‘시체의 부정’이라는, 부득이하게 발생할 수밖에 없는 문제에 대해 ‘간이 속죄제’로서의 ‘부정을 씻는 물’이라는 조치를 마련해 주신 것은 하나님의 큰 은혜라고 할 수 있다.
이제 마지막으로 신약과의 관계를 잠깐 살펴보도록 하자. 히브리서 9:13-14은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라는 말씀을 통해 민수기 19장의 붉은 암소로 만든 ‘부정을 씻는 물’에 대해 언급한다. 그러나 구약의 다른 모든 제사들이 그러했듯이 민수기 19장의 이 물도 결코 이스라엘 백성에게 부정으로부터의 완전한 자유를 주지 못했으며,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게 깨끗하게’ 할 수 없었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피다. 그리스도는 단 한 번의 제사를 통해서 성도들을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다(히 10:10-14[특히 14절]). 이것이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가지는 담대함의 원천이자,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진정한 성도가 되기 위해 가져야 할 숙제이다. 우리 각자는 히브리서 9:14의 말씀이 던지고 있는 질문, 즉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라는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


본문 사역 및 해설

[1]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셨다. [2]이것이 여호와께서 명령하시는 율법의 율례이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해 흠이 없고 아직 멍에를 메지 않은 완전한 붉은 암소를 너에게 데려오게 하라. [3]너는 그것을 제사장 엘르아살에게 주어라. 그리고 그는 그것을 진 밖으로 끌어내고, 그것이 자기 앞에서 도살되게 하라. [4]제사장 엘르아살은 손가락에 그 피를 찍고 그 피를 회막 쪽을 향해 일곱 번 뿌려라. [5]그 암소를 자기 앞에서 불태우게 하라. 그것의 가죽, 고기, 피를 똥과 함께 불태우게 하라. [6]제사장은 백향목, 우슬초, 홍색 실을 취해 암소를 태우는 불 가운데 던져라. [7]제사장은 자기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고 난 후에 진에 들어가라. 그는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다. [8]소를 불태운 자도 자기 옷을 물로 빨고, 물로 몸을 씻어라. 그도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다. [9]그리고 정결한 사람이 이 암소의 재를 모아서 진 밖 정결한 곳에 두어라.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의 회중을 위해 부정을 씻는 물에 쓸 것이다. 이것은 속죄제이다. [10]암소의 재를 모은 자도 자기 옷을 빨아라. 그는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다.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과 그중에 거류하는 거류민에게 영원한 율례이다. [11]사람의 시체를 만진 사람은 7일 동안 부정할 것이다. [12]그는 셋째 날과 일곱째 날에 [물로] 자신을 정결하게 하라. 그러면 그가 정결하게 될 것이다. 만약 그가 셋째 날과 일곱째 날에 자신을 정결하게 하지 않으면 그는 정결하게 되지 않을 것이다. [13]누구든지 죽은 자, 곧 사람의 시체를 만지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지 않는 사람은 여호와의 성막을 부정하게 한다. 이 사람은 이스라엘에서 끊어지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부정을 씻는 물이 그에게 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부정할 것이며, 그의 부정함이 그에게 그대로 있을 것이다. [14]이것이 장막에서 사람이 죽을 때의 율법이다. 누구든지 그 장막에 들어가는 자와 그 장막에 있는 자는 7일 동안 부정하다. [15]뚜껑이 위에 덮여 있지 않고 열려 있는 모든 그릇은 부정하다. [16]들에서 칼에 잘려 죽은 자나 사람의 시신이나 해골, 그리고 무덤에 접촉한 모든 사람은 7일 동안 부정하다. [17]속죄제로 태운 [암소의] 재를 그 부정한 자를 위해 취해, 그것을 흐르는 물과 함께 그릇에 담아라. [18]그리고 정결한 자가 우슬초를 취해 그 물을 찍어 장막과 그 모든 물품들과 거기 있는 사람들, 그리고 해골이나 시신이나 잘려 죽은 자나 무덤에 접촉한 자에게 뿌려라. [19]그 정결한 자가 셋째 날과 일곱째 날에 그 부정한 자에게 뿌리고, 일곱째 날에 그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그는 자기 옷을 빨고 물로 씻어라. 그가 저녁이면 정결하게 될 것이다. [20]사람이 부정하게 되고도 자신을 정결하게 하지 아니하면 그 사람은 회중 가운데에서 끊어질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여호와의 성소를 부정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부정을 씻는 물이 뿌려지지 않은 자, 그는 부정하다. [21]이것은 영원한 율례이다. 정결하게 하는 물을 뿌린 자는 자기 옷을 빨아라. 그리고 부정을 씻는 물에 접촉한 자는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다. [22]부정한 자가 만진 모든 것은 부정하다. 그리고 그것을 접촉한 자도 저녁까지 부정하다.

[2]흠이 없고 … 완전한(~Wm HB'-!yae rv,a] hm'ymiT.트미마 아쉐르 엔-바흐 뭄) ‘트미마’(hm'ymiT)는 레위기에서 제물의 신체적 상태와 관련해 흔히 언급되는 특징인 ‘흠이 없는’이라는 뜻으로 사용된 단어인 ‘타밈’(~ymiT')의 여성형이다. 그리고 ‘아쉐르 엔-바흐 뭄’은 그 자체가 ‘흠이 없는’이라는 뜻이다. 개역개정은 ‘트미마’를 다른 본문들(레 1:3, 10 등)에서는 ‘흠이 없는’이라고 번역하지만, 이 구절에서만은 ‘온전한’이라고 번역한다. 그 이유는 정말 ‘흠이 없는’이라는 뜻을 가진 ‘아쉐르 엔-바흐 뭄’이라는 문구가 바로 뒤이어 사용되고 있기에 양자를 구분짓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여기에서 볼 수 있듯이 ‘타밈’의 일차적인 뜻은 원래 ‘완전한’ 혹은 ‘온전한’이 맞다.10
암소(hr"P'파라) 민수기 19장은 이 단어를 ‘암송아지’와 ‘암소’로 섞어 번역한다. 그러나 이 단어 자체는 나이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지 않다.11 따라서 총칭인 ‘암소’로 번역하는 것이 좀 더 적절하다.
[3]도살되게 하라(jx;v'샤하트) ‘샤하트’는 칼형이며, 능동형이다. 그러나 그 앞의 ‘자기 앞에서’란 표현이 분명히 보여 주듯이 이 동사의 주어는 엘르아살일 수가 없으며, 누군가 다른 사람이어야만 한다. 이처럼 동사의 주어의 정체가 특정되어 있지 않으며 그 주어가 동사에 내포되어 있는 경우에는 능동형 동사를 수동적인 의미로 해석하면 된다.12 
[5]불태우게 하라(@r:f'w>붸싸라프) 제사법 본문에서 무엇인가를 ‘태우다’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단어는 두 개가 있다. 하나는 여기에서 사용된 바와 같이 ‘싸라프’라는 동사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히크티르’(ryjiq.hi)이다. 제물을 제단 위에서 태워 하나님께로 바쳐 올리는 행위는 후자, 즉 ‘히크티르’라는 동사로 표현된다. 반면에 제물의 남은 재, 혹은 제단 위에서 태우지 않고 진 밖에서 제물의 부위들을 태워 없애는 행위는 ‘싸라프’로 표현된다.13 이 둘을 구분하기 위해 사역에서는 ‘싸라프’를 ‘불태우다’, ‘히크티르’를 ‘불사르다’로 일관되게 번역했다. 현재 구절에서는 ‘싸라프’라는 단어를 사용했으며, 이 경우 이 의식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유념해야 한다.
이 단어와 관련해 또 한 가지 유념해야 할 점은 이 단어 자체는 사역형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러나 8절의 내용을 고려해볼 때 불태우는 이 의식은 제사장이 직접 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문맥을 고려해 이 단어를 사역적인 의미로 번역했다.
[9]부정을 씻는 물(hD"nI yme메 닏다) ‘메’는 ‘물’(water)이란 뜻의 단어인 ‘마임’(~yIm;)의 연계형이다. ‘닏다’(hD"nI)란 단어의 뜻은 크게 두 가지 정도로 압축된다(레 15:19).14 첫째, 이 단어는 제의적인 부정을 나타내는 단어이다. 즉 월경으로 인한 부정(레 12:2; 15:19-20; 겔 18:6; 22:10 등), 시체와의 접촉으로 인한 부정(민 19:9, 13, 20, 21; 31:23) 등을 나타낼 수 있다. 둘째, 이 단어는 각종 부정을 나타낼 수 있다. 즉 여러 가지 부정한 물건이나 대상들(스 7:19, 20; 애 1:17), 우상(대하 29:5; 스 9:11), 기타(슥 13:1) 등이다. 이 중에서 특히 민수기 19장이 다루는 ‘메 닏다’, 즉 ‘부정을 씻는 물’이란 표현은 오직 시체와의 접촉에만 관련되는 특수한 용어로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속죄제(taJ'x;핱타트) ‘속죄제’라고 번역한 이 단어는 기본적으로는 ‘죄’(sin) 혹은 ‘죄의 상태’(condition of sin)라는 뜻을 갖고 있지만 또한 ‘죄에 대한 심판’(punishment for sin)을 의미할 수도 있으며, 더 나아가서는 죄의 해결을 위한 제사(sin offering)를 의미할 수도 있다.15 또는 최근의 레위기 제의법 전문 학자들은 ‘핱타트’가 ‘깨끗케 함’(cleansing) 혹은 ‘정결케 함’(purification)을 의미할 수도 있다고 지적하며, 이에 따라 ‘속죄제’라는 전통적인 용어도 ‘정결제’(purification offering)로 번역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16
이 단어가 가진 다양한 의미들에 기초할 때, 9절의 ‘핱타트’는 문맥상 ‘속죄제’, ‘정결 의식’ 혹은 ‘정결 의식에 관계된 것’ 등으로 번역될 가능성이 있다. 현재 사역에서는 전통적인 성경번역본들(KJV, 개역개정 등)을 따라 ‘속죄제’라고 번역했다. 그러나 좀 더 최근의 여러 번역본들은 ‘부정을 씻는 물’의 제작 과정과 그 결과물이 레위기 4-5장 등에 나오는 일반적인 속죄제와는 명백히 성격이 다르므로 이 단어를 ‘속죄제’로 번역해서는 안 된다고 보며, 여러 가지 다른 방식으로 번역했다. NIV, NASB95, NET 등은 ‘죄의 정결(혹은 정결을 위한 것)’(purification for/from sin) 등으로 번역했다. 또한 새번역 성경은 아예 이 단어를 풀어서 ‘죄를 속하려 할 때에’라고 번역했다. 그러나 민수기 19장의 내용 전반을 고려할 때 현재의 사역과 같이 전통적인 번역을 고수하는 것이 최선으로 생각된다.17 이 번역에 대한 추가적인 설명과 논의는 아래의 ‘본문 해설’을 참고하라.  
[12]이 구절은 히브리어 원문 자체만 보면 “그는 셋째 날에 자신을 정결하게 하라. 그러면 일곱째 날에 정결하게 될 것이다. 만약 그가 셋째 날에 자신을 정결하게 하지 않으면 일곱째 날에 그는 정결하게 되지 않을 것이다”처럼 읽을 수 있는 소지도 있다. 그러나 19절이 명시적으로 언급하는 내용으로 볼 때 개역개정이나 현재 사역과 같이 번역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물로](wOB보) 히브리어 원문을 직역하자면 ‘그것으로’이다. 그러나 문맥의 흐름상 단지 직역대로 번역하면 그 내용을 파악하기 힘들다. 이 문구에서 ‘그것’은 앞에서 언급된 ‘부정을 씻는 물’이 분명하다.18 사역은 이 점을 살려서 번역했다. 물론 개역개정이나 대부분의 영어 성경들도 다 이렇게 번역하고 있지만 이것이 원문의 직역은 아니기 때문에 이 문구를 사각 괄호 속에 넣었다.
[13]끊어지게 될 것이다(ht'r>k.nIw>붸니크르타) 이 표현은 항상 하나님에 의한 심판을 의미한다.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 및 참고문헌은 민수기 4:18의 ‘본문 해설’을 참고하라.
부정을 씻는 물(hD"nI yme메 닏다) 개역개정은 이 구절에서 이 문구를 ‘정결하게 하는 물’이라고 번역했다. 그러나 이미 9절에서 개역개정은 동일한 문구를 ‘부정을 씻는 물’이라고 번역한 바 있다. 사역은 본문의 일관성을 살리기 위해 9절과 일치시켜 번역했다.
뿌려지지(qr:zO조라크) ‘뿌리다’라는 뜻의 동사인 ‘자라크’(qr:z")의 푸알 3인칭 남성 단수. 이 푸알형은 간혹 칼 수동형으로 간주되기도 한다.19 이 동사는 이 형태로는 구약에서 오직 두 번만 사용되며, 모두 민수기 19장에만 나온다(13, 20절).
제사법 신학 속에서 볼 때 ‘자라크’는 ‘힞자’(hZ"hi, 나자[hz"n"]의 히필형)란 동사와 항상 비교된다. ‘자라크’가 좀 더 많은 양의 피를 뿌린다는 의미에서 보통 영어로 ‘splash’라고 번역되는 반면, ‘힞자’는 적은 양의 피를 손가락으로 찍어 뿌린다는 의미에서 ‘sprinkle’이라고 번역된다.20
문제는 민수기 19장이 동일한 의식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이는 동작에 의미가 분명하게 다른 두 단어를 혼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13, 20절은 ‘자라크’를 한 번씩 사용하고, 18, 19절은 ‘힞자’를 한 번씩 사용한다.21 이에 어떤 학자들은 두 단어의 혼용이 19장 본문에 깔린 상이한 자료들 및 편집 과정의 흔적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22
그러나 이런 역사비평학적인 해결책보다는 콜(Cole)의 주장이 더 좋은 해결책인 것 같다. 그에 따르면 두 단어는 교차대조법적 구성을 갖고 있다.23

13절: 자라크
18절: 힞자
19절: 힞자
20절: 자라크

또한 그에 따르면 ‘자라크’는 모두 ‘부정을 씻는 물’을 뿌림으로써 부정을 씻는 의식을 치르지 않은 부정적인 경우들에 대해 언급한다: ‘부정의 물이 뿌려지지 않았기 때문’(13절), ‘부정의 물이 뿌려지지 않은 자’(20절). 반면에 ‘힞자’는 모두 정결 의식의 와중에 이 물을 뿌리는 절차를 언급할 때 사용되었다(18, 19절). 이런 면에서 그는 ‘자라크’는 정결 의식을 수행하지 않은 잘못된 경우를 지적하는데 쓰이는 표현으로, ‘힞자’는 실제 정결 의식을 수행하는 절차를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데 사용된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우리는 두 용어가 문맥상 각자의 역할이 있을 뿐 다른 문서나 편집 과정의 증거라고 볼 필요가 없다.
[16]시신(tme메트) 이 단어는 ‘죽다’(to die)라는 동사인 ‘무트’(tWm)의 칼 분사 남성 단수 형태이다. 이 분사형은 현재 문맥에서 ‘죽은 자’(a dead man) 혹은 그의 ‘시신’을 의미한다. 이 시신은 바로 앞의 ‘들에서 칼에 잘려 죽은 자’와 대조적으로 어떤 자연적인 원인으로 죽은 자나 그의 시신을 가리킨다. 이런 점에서 이 단어를 ‘시신’이라고 번역했다.
[17]속죄제로 태운 [암소](taJ'x;h; tp;rEf.쓰레파트 하핱타트) 여기에서 ‘속죄제’라는 표현은 레위기 4-5장의 속죄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민수기 19장에서 ‘부정을 씻는 물’을 위해 태운 암소를 가리키는 표현이다(9절). 이 점을 분명히 하고자 ‘[암소]’라는 표현을 추가했다. 개역개정은 ‘하핱타트’를 ‘죄를 깨끗하게 하려고’라고 풀어서 번역하는데, 이 번역은 이 히브리어 표현의 문맥상 의미를 모호하게 만들기에 좋지 않다고 생각되며, 폐기되어야 한다고 본다.
흐르는 물(~yYIx; ~yIm;마임 하임) 이 히브리어 표현에서 ‘흐르는’에 해당하는 ‘하임’의 기본 뜻은 ‘살아 있는’이다. 즉 ‘흐르는 물’은 ‘살아 있는 물’이다. 레위기 14:5-6, 50-52; 15:13에 따르면 악성 피부병으로 인해 죽은 자와 같은 취급을 받았던 사람이나 같은 증상으로 인해 부정하게 된 집, 그리고 유출병이 있는 자를 정결하게 하는 의식에 이 ‘흐르는 물’을 사용했다. 이때 ‘흐르는 물’, 곧 ‘살아 있는 물’은 악성 피부병 환자나 집,24 그리고 유출병 환자의 회복이 곧 생명의 회복과 같다는 점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인다.25 이런 면에서 시체로 인한 부정을 처리하기 위한 ‘부정을 씻는 물’의 제작에 ‘흐르는 물’이 사용되는 것은 매우 적절하다.
[20-21]부정을 씻는 물 개역개정은 ‘정결하게 하는 물’이라고 번역한다. 앞의 13절의 ‘사역 해설’을 참고하라.

단락 구분

민수기 19장의 단락 구분은 다음과 같이, 1절의 말씀 도입구와 21b-22절의 부기(appendix) 사이의 부분이 두 개의 평행하는 패널(A, B)을 구성하고 있는 이중적 형태(bifid structure)로 이루어져 있다.26
1. 말씀 도입구(1절)
2. 패널 A-B(2-20절)
3. 부기(appendix)(21-22절)

이 장은 레위기와 민수기의 규례 본문들이 항상 그렇듯이 하나님의 말씀 도입구인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셨다”라는 문구로 시작된다. 이 장에서는 이 문구가 더 이상 나오지 않기 때문에 이 장은 단일한 주제, 즉 ‘부정을 씻는 물’에만 집중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장의 중심이 되는 2-20절의 본문은 두 개의 단원, 즉 2-13절과 14-20절의 두 개의 단원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두 단원은 마주 보는 두 개의 병풍처럼 서로 상응하고 있기 때문에 각 단원을 패널 A와 B로 칭한다.

 


 

각 패널의 첫 부분은 다음과 같이 서로 상응하는 단원 도입구로 되어 있다.

패널 A: 이것이 … 율법의 율례이다(hr"wOTh; tQ;xu tazo조트 훜카트 핱토라, 19:2a)
패널 B: 이것이 … 율법이다(hr"wOTh; tazo조트 핱토라, 19:14a)
각 패널의 두 번째 부분은 언뜻 보기에 서로 상응하지 않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패널 A의 이 부분(2b-10절)은 ‘부정을 씻는 물’의 준비 과정에 대해 다루고, 패널 B의 이 부분(14a*-16절)은 시체를 만짐으로 인해 발생하는 부정에 대해 다루기 때문이다. 그러나 양자 사이에는 몇 가지 상응점들이 있다.
첫째, 패널 A의 ‘부정을 씻는 물’과 패널 B의 ‘시체와의 접촉’은 모두 대상을 부정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서로 상응성이 있다(7-8, 10절과 14a*-16절).
둘째, 패널 A의 ‘부정을 씻는 물’이 패널 B의 부정을 처리하는 물건이기 때문에 양자는 각각 ‘해결책과 그 해결 대상’이라는 측면에서 내용상의 상응성이 있다.
각 패널의 세 번째 부분은 정결 의식의 절차를 다룬다는 점에서 서로 상응성이 있다. 패널 A의 이 부분(11-12절)이 좀 더 원론적인 측면을 다룬다면 패널 B의 이 부분(17-19절)은 절차적인 부분들을 다룬다.
각 패널의 마지막 부분은 19장이 다루는 바, ‘부정을 씻는 물’을 사용한 정결 의식을 간과할 때의 문제를 다룬다. 시체를 만지고도 이 정결 의식을 시행하지 않는 사람은 성막을 더럽히기 때문에 백성 가운데서 끊어지게 될 것이다(13, 20절).
19장의 마지막은 21-22절의 부기(appendix)가 장식한다. 이 부기는 19장의 내용을 정리해 주고, 이 장이 지금까지 미처 언급하지 않았던 점, 즉 시체로 인해 부정하게 된 사람에 의해 부차적으로 오염된 사람의 처리에 대해 간략하게 다룬다.
단락 구분과 관련해 마지막으로 살펴볼 사항은 이 장의 구조 분석에서 보조적인 역할을 해 주는 문구이다. ‘영원한 율례’(h ~l'wO[ tQ;xu훜카트 올람)라는 이 문구는 19장에 총 두 번(10, 21절) 나온다. 이 문구의 첫 번째 것은 패널 A에서 해당 패널의 핵심 부분인 ‘부정을 씻는 물’을 제작하는 과정(2b-10절)과 해당 패널의 나머지 부분(11-13절)을 나눠주는 구분선의 역할을 한다(10절). 그리고 이 문구의 두 번째 것은 패널 B(14-20절)와 마지막 부기 단락(21-22절)을 나눠주는 구분선의 역할을 한다.
 

본문 해설

1. 말씀 도입구(1절)
[1]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셨다. 민수기 19장은 레위기와 민수기의 규례 본문들에 흔히 사용되는 이 말씀 도입구로 시작한다. 이 장이 가지는 차이점이라면, 통상적인 경우와 달리 이 규례의 말씀의 청자(聽者)가 ‘모세와 아론’이라는 점이다. 대개의 경우 말씀 도입구에 언급되는 청자는 모세 단독이거나 아론 단독이다(참조, 민 18:1, 8, 20). 둘 모두가 공동 청자로 언급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참조, 레 11:1; 13:1; 14:33; 15:1). 2절의 ‘너’ 등을 고려할 때 이 규례의 말씀의 주 청자는 모세이지만, 그 내용이 심각한 오염으로 인한 부정을 씻는 내용이라는 점에서 제사장의 역할이 중요했기 때문에 그가 공동 청자로 언급되지 않았나 생각된다(참조, 11:1 등).27
2. 패널 A-B(2-20절)
[2a] 이것이 … 율법의 율례이다. 이 문구는 패널 A(19:2-13)의 도입구이다. ‘율법의 율례’란 문구는 구약 내에서 이 장을 제외하고는 단 한 번, 역시 시체로 인한 부정을 다루는 본문에서 언급되며(민 31:21), ‘율법’과 ‘율례’라는 비슷한 어휘의 중첩은 이 규례의 중요성을 부각시켜 주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28
또한 앞의 ‘단락 구분’에서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이 문구는 패널 B(19:14-20)의 도입구인 ‘이것이 … 율법이다’란 문구(14a절)와 상응한다. 두 문구는 패널 A와 B가 서로 상응하는 내용으로 진행될 것임을 예고해 주는 역할을 한다.
[2b] 흠이 없고 아직 멍에를 메지 않은 완전한 붉은 암소 2b-10절은 패널 A의 도입구에 이은 부분으로, ‘부정을 씻는 물’의 준비 과정에 대해 다룬다. 특히 2b절은 이 ‘물’의 가장 중요한 재료가 되는 ‘붉은 암소’의 선택 기준을 명시한다. 19장의 ‘간이 속죄제’인 ‘부정을 씻는 물’을 만드는 데 사용될 짐승은 ‘붉은 암소’이다. 제물의 선택 조건에 가축의 색깔이 언급된 적은 이 경우를 제외하고는 단 한 번도 없다는 점에 독특성이 있다. 아마 이 색깔은 피를 상징하는 것으로 생각된다.29
이 암소의 선택 조건으로는 또한 ‘흠이 없고 … 완전한’ 것이어야 한다는 점이 언급되어 있다. 이때 ‘흠이 없고’란 표현은 ‘엔-바흐 뭄’이고, ‘완전한’은 ‘트미마’의 번역이다. 이에 대한 상세한 해설과 참고문헌은 앞의 ‘사역 해설’을 보라. 두 문구는 현재 문맥에서 동어반복적인 용도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것은 ‘부정을 씻는 물’이란 특별한 하나님의 조치에 사용될 제물이 아주 엄격한 기준에 따라 선택되어야 함을 강조하는 듯하다.
또한 이 암소는 ‘아직 멍에를 메지 않은’ 소여야 한다. 이 말은 이 암소가 세속적인 용도로 사용된 적이 없어야 함을 뜻한다.30  이처럼 ‘부정을 씻는 물’을 만드는 데 사용될 암소는 일반적인 제물의 경우보다 훨씬 더 엄격하게 선택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아마 이 물이 일종의 ‘간이 속죄제’로 작용하면서 이스라엘 백성의 부정을 좀 더 쉽게 처리할 수 있게 해 주는 대신, 이 물을 만드는 데 사용된 기준은 더 높게 요구함으로써 이것이 단순한 편법적 방법이 아니라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편한 조치의 배경에는 ‘더 엄격한 기준’이라는 요소가 놓여 있다.
[3] 너는 그것을 제사장 엘르아살에게 주어라. 그리고 그는 그것을 진 밖으로 끌어내고, 그것이 자기 앞에서 도살되게 하라. 대제사장 아론 대신에 그의 아들 엘르아살이 이 일을 하는 이유는 다음의 몇 가지로 생각된다.31 첫째, 이스라엘 제의의 가장 중심에 있는 대제사장 아론은 될 수 있는 한 모든 종류의 부정으로부터 오염되지 않아야 했기 때문에 ‘부정을 씻는 물’을 만드는 과정에서 야기될 수 있는 부정의 가능성을 피하기 위함으로 보인다. 둘째, 엘르아살은 이미 성막 운반 및 기타 상황과 관련해 중요한 역할들을 해왔는데(민 3:32; 4:16; 16:37-39[히브리어 원문, 17:2-4]), 이번 경우에도 대제사장 아론이 해서는 안 되는 일의 최종 책임을 감당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제사장 엘르아살은 암소를 진 안에서 잡아 제단에 태우는 것이 아니라 진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 ‘부정을 씻는 물’을 준비하는 과정은 모두 진 밖에서 이루어지며, 만들어진 물도 ‘진 밖 정결한 곳’에 보관되었다가 필요한 경우에 사용될 것이다(9절).
‘사역 해설’에서 다룬 바와 같이 히브리어 원문을 고려할 때 엘르아살은 진 밖으로 암소를 데려가는 일을 맡았지만 도살은 다른 사람이 했던 것으로 보인다.
[4] 제사장 엘르아살은 도살한 암소의 피를 손가락에 찍어서 회막 쪽을 향해 일곱 번 뿌린다. 이 의식은 대제사장의 속죄제(레 4:6; 참조, 8:11), 온 회중의 속죄제(레 4:17), 대속죄일의 속죄 의식(레 16:14, 19)과 같이 구약 이스라엘의 제의에서 가장 중대하고 높은 차원의 속죄제나 속죄 의식에 했던 행위를 연상시킨다. 이 점은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암소의 선택 기준을 더 엄격하게 요구했던 점과 상응한다.
[5] 이 암소는 진 밖에서 불태워지는데, 가죽, 고기, 똥을 불로 태우는 의식 역시 대제사장의 속죄제나 온 회중의 속죄제를 연상시킨다(레 4:11-12, 21). 역시 중대한 속죄제를 드리는 의식과 비슷하면서도 더 엄숙한 면이 있다. 왜냐하면 후자의 두 속죄 제물의 경우에는 최소한 지방은 하나님께 태워 올리고(레 4:8-10, 19-20), 그 나머지만을 진 밖으로 내어가 정결한 곳에서 불로 태웠다(4:11-12, 21). 또한 그 제물의 피도 특별한 방식으로 성막 안의 기물들과 뜰의 제단에 사용했다(4:5-7, 16-18). 반면 19장의 암소의 경우에는 그 피와 지방과 더불어 나머지 모든 것들을 처음부터 진 밖에서 태웠다.
[6] 제사장은 백향목, 우슬초, 홍색 실을 취해 암소를 태우는 불 가운데 던져라. ‘백향목, 우슬초, 홍색 실’은 정결 의식에 흔히 사용되는 물품들이었기에 ‘부정을 씻는 물’을 만드는 작업과 잘 어울린다(레 14:4, 6, 49, 51-52). 이때 이 작업을 하는 제사장에 대해서는 단지 ‘제사장’이라고만 되어 있고, 엘르아살의 이름(참조, 3-4절)은 언급되어 있지 않다. 아마 그 이외의 다른 제사장이 이 절차를 담당했을 것이다.
[7-8] ‘부정을 씻는 물’에 관여한 제사장과 암소를 태운 사람은 이 물을 만드느라 부정하게 되었으므로 옷을 물로 빨고, 몸을 씻어야 하며, 저녁 때까지 부정한 상태에 머무르게 된다고 한다. 이런 절차는 각종 부정에 의해 오염된 자들이 행하는 정결 의식의 절차였다(레 11:25, 40; 14:8, 9; 15:5).
[9] 그리고 정결한 사람이 이 암소의 재를 모아서 진 밖 정결한 곳에 두어라. 앞의 과정들을 통해 만들어진 암소의 재는 ‘정결한 사람’이 모아서 진 밖의 정결한 곳에 보관한다. 이렇게 모아진 재는 나중에 이스라엘 백성과 거류민들에게 발생한 부정을 씻는 데 사용될 것이다.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의 회중을 위해 부정을 씻는 물에 쓸 것이다. 이것은 속죄제이다. ‘부정을 씻는 물’을 ‘속죄제’(taJ'x;핱타트)라고 부르는 이 문구는 아주 중요하다. 상당수의 주석가들과 성경 번역본들은 ‘부정을 씻는 물’이 일반적인 속죄제(참조, 레 4:1-5:13)와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핱타트’가 결코 ‘속죄제’라는 의미일 수가 없다고 보고, 대신 이 단어를 정결의 행위나 의식을 가리키는 표현이라고 본다. 일례로 그레이(Gray)는 이 단어를 ‘속죄제’로 번역하는 것은 의미가 통하지 않으며, ‘죄를 제거하는 수단’(a means of removing sin)이라고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32 그러나 19장의 앞 구절들의 본문 해설에서 보았듯 이 물을 위해 준비하는 과정은 일반적인 속죄제들, 그중에서도 특히 대제사장의 속죄제와 같이 의식의 엄숙성 수준이 높은 속죄제들을 따르고 있다는 점은 이것이 일종의 ‘간이 속죄제’로 기능하도록 하기 위한 하나님의 안배임을 보여 준다. 따라서 전통적인 성경 번역본들의 해석과 마찬가지로 ‘속죄제’로 번역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10] 7-8절에서 본 바와 마찬가지로 9절의 재를 모은 ‘정결한 사람’ 역시 부정하게 된다. 따라서 그도 동일한 정결 의식을 치러야 했다. 그 역시 옷을 빨고, 저녁까지 부정의 상태를 겪어야 했다. 또한 10절에는 물로 몸을 씻는 절차가 언급되지 않지만 그 역시 이 절차를 치러야 했을 것이다. 7-8절의 사람들과 재 모으는 사람이 이 점에 있어서만 달라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11-12 ] 2-10절이 ‘부정을 씻는 물’을 만드는 과정에 대한 내용이라면 패널 A의 세번째 항목인 11-12절은 이 물로 정결 의식을 치르는 절차에 대해 다룬다. 이 항목은 패널 B의 상응 부분(17-19절)과 상당히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에 함께 다루는 것이 좋을 것이다. 두 평행 본문을 함께 모아보면 다음 페이지와 같다.
두 구절의 비교에서 보듯이 11-12절은 좀 더 원론적인 점에 집중한다. 그리고 그 평행 본문인 17-19절은 좀 더 절차적인 측면에 집중한다. 우선 11절은 ‘사람의 시체를 만진 사람’이 7일 동안 부정한 상태에 있게 된다는 대원칙을 천명한다. 그러나 이 대원칙은 몇 가지 점에서 추가적인 사항들을 유념해야 한다.
첫째, 이 원칙의 내용이 7일 후에는 시체로 인해 부정하게 된 이 자가 자동적으로 정결하게 된다는 의미가 결코 아니라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12절의 끝, 그리고 13절 후반절이 분명하게 밝히고 있듯이 그는 ‘부정을 씻는 물’로 씻는 절차를 치르지 않는 한 자동으로 정결하게 되지 않을 것이다.
둘째, 11절에 따르면 단순히 ‘시체를 만진 사람’이 ‘부정을 씻는 물’의 적용 대상인 것 같지만 평행 본문의 18절은 이 물의 정결 의식 적용 대상에 대해 추가적인 세목을 제공해 준다. ‘장막과 그 모든 물품들과 거기 있는 사람들, 그리고 해골이나 죽은 자나 잘려 죽은 자나 무덤에 접촉한 자’ 등이 모두 이 물의 적용 대상이다. 즉 그가 거주하는 장막, 그의 물품들과 그 장막 안에 함께 기거하는 사람들도 역시 이 물로 정결하게 하는 의식을 거쳐야 한다. 또한 ‘시체’는 ‘해골’, ‘시신’, ‘잘려 죽은 자’, 그리고 심지어 ‘무덤에 접촉한 자’까지도 포괄한다.
이제 12절을 보자. 앞에서 본 18절의 ‘부정을 씻는 물’의 적용 대상 목록 속의 다른 사람이나 사물들과 달리 직접적으로 시체로 인해 부정하게 된 자는 좀 더 복잡한 정결 과정을 거쳐야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단순히 한 번만 물 뿌림을 받는 것이 아니라 셋째 날과 일곱째 날에 각각 한 번씩 물 뿌림을 받아야 했다. 이렇게 하지 않는 한 ‘그는 정결하게 되지 않을 것’이라고 이 구절은 밝힌다.
12절의 평행 구절인 19절에서는 이 물 뿌림 외에도 추가적인 절차가 있음을 밝힌다. 그것은 그가 7-8, 10절의 부정을 씻는 물에 참여한 자들과 마찬가지로 자기 옷을 빨고, 물로 씻으며, 저녁까지 기다려야 했다는 것이다.
[13] 이 구절은 패널 A의 네 번째이자 마지막 항목이다. 이 구절은 ‘정결 의식 간과 시의 처벌’ 내용을 담고 있다. 이 구절은 패널 B의 마지막 항목(20절)과 상응하기 때문에 역시 함께 비교하고, 그 내용을 살펴보고자 한다.
전반절의 경우, 어구의 순서에는 약간 차이가 있지만 그 내용은 거의 동일하다. 이것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시체를 만짐으로 부정하게 된 사람이 ‘부정을 씻는 물’로 정결 의식을 치르지 않으면 그는 자신의 부정으로 인해 여호와의 ‘성막’(13절) 혹은 ‘성소’(20절)를 더럽히게 된다. 여기에서 ‘성막’과 ‘성소’는 동의어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33
둘째, 그는 이스라엘 회중 가운데에서 끊어지게 될 것이다. ‘끊어진다’라는 개념은 하나님께서 직접 그의 심판에 관여하실 것임을 의미한다.
셋째, 그가 시체로 인해 겪는 부정은 오직 ‘부정을 씻는 물’로만 해결할 수 있다.
[14a*] 이것이 … 율법이다(hr"wOTh; tazo조트 핱토라) 이 문구는 패널 B(14-20절)의 첫 항목이며, 패널 도입구로서의 기능을 한다. 이 문구는 ‘단락 구분’과 2a절의 해설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패널 A의 도입구와 상응한다.
[14a*-16] 이 부분은 패널 A의 두 번째 항목인 2b-10절과 상응하는 부분이다. 패널 A의 이 부분이 ‘부정을 씻는 물’의 준비 과정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면, 패널 B의 이 부분은 시체를 만지는 것이 부정을 야기한다는 점에 대해 이야기한다. 즉 패널 A의 이 부분이 해결책을 만드는 과정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패널 B의 이 부분은 이 해결책이 적용되어야 하는 대상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시체들과의 어떤 식의 접촉이 부정을 야기하며, ‘시체’라는 것에는 어떤 것들이 포함되는가, 그리고 부정이 어느 정도 유지되는가 하는 것 등에 대해서는 14a*-16절이 다음의 몇 가지 사항들을 열거하고 있다.
(1) 장막에서 사람이 죽은 경우, 그 장막에 들어가는 자와 그 장막에 있는 자들은 부정하며, 그 부정의 기간은 7일 동안이다. 한 가지 유념할 점은 위의 11절의 본문 해설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이 부정은 7일이 지나면 자동으로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7일 내에 적절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의미라는 점을 간과하면 안 된다(14a*절).
(2) 사람이 죽은 장막에서 뚜껑이 덮여 있는 물건들의 경우는 상관 없지만 뚜껑이 열려 있는 그릇들은 다 부정하다(15절). 이것들도 ‘부정을 씻는 물’로 정결케 하는 의식의 대상이다(18절).
(3) 들에서 칼에 잘려 죽은 자, 사람의 시신이나 해골, 혹은 무덤에 접촉한 자들 역시 7일 동안 부정의 상태에 머무르며, 동일한 정결 의식의 대상이다(16절). 이 목록은 18절의 대상 목록과 근본적으로 동일하다.
[17-19] 패널 B의 세 번째 항목인 이 부분과 패널 A의 상응 항목(11-12절) 사이의 관계 및 기본적인 해설은 11-12절의 본문 해설에서 이미 다루었다. 여기에서는 단지 17-19절이 언급하고 있는 의식 절차를 간략하게 정리하고자 한다.
(1) 14-16절이 언급하고 있는 부정이 발생한 경우 그것을 처리하기 위해 2-10절의 과정을 통해 만들어서 보관해 놓은 바, ‘간이 속죄제’로 사용할 암소의 재를 부정한 자를 위해 취해 흐르는 물과 함께 그릇에 담아 놓는다(17절). 이때 ‘흐르는 물’을 담는다는 규정은 악성 피부병 환자, 악성 피부병에 감염된 집, 혹은 유출병 환자의 정결 의식에 흐르는 물을 사용한 것과 동일한 의미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참조, 레 14:5-6, 50-52; 15:13). 이 점에 대해서는 앞의 사역 해설을 참고하라.
(2) ‘정결한 자’, 즉 아마 제사장이 아니라34 그냥 정결한 상태에 있는 사람이 우슬초를 사용해 ‘부정을 씻는 물’을 찍어서 16절에 언급된 모든 부정한 사람이나 사물에게 뿌린다. 이때 물품의 경우에는 한 번의 뿌림의 절차로 부정이 마무리된 듯하고, 사람의 경우에는 19절의 좀 더 복잡한 절차를 따라야 했던 것 같다.
(3) 19절은 18절의 내용을 부연하는 역할을 한다. 즉 뿌림의 절차가 셋째 날과 일곱째 날에 행해져야 함을 밝힌다.
(4) 뿌림의 절차가 마무리되고 나면, 부정한 자는 옷을 빨고, 물로 씻어야 했다. 그리고 저녁까지 기다리면 정결이 회복되었다(19절).
[20] 패널 B의 마지막 항목인 이 구절에 대한 해설은 패널 A의 상응하는 항목을 담은 구절인 13절의 본문 해설에서 이미 다루었다. 

3. 부기(appendix)(21-22절)
부기(appendix)에 해당하는 두 구절은 19장의 내용을 정리하면서 이 정결 의식의 다른 측면을 지적한다. 이 본문은 “이것이 영원한 율례이다”라는 서두의 문구를 통해 앞의 단원들과 구분된다.
[21] 이미 앞의 17-19절에서 언급된 바 있는 사항, 즉 ‘부정을 씻는 물’을 뿌림 받은 사람이 옷을 빨아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지적한다. 이어서 이 부정을 씻는 물에 접촉한 자가 저녁까지 부정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가 저녁까지 부정하다’라는 언급은 이미 19절에 언급되어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추가적으로 그의 부정이 바로 ‘부정을 씻는 물’과의 접촉으로 인한 것임을 밝힌다. 이 점은 7-8, 10절의 ‘이 물을 씻는 자가 저녁까지 부정하다’라는 점과 상응하는 것으로 보인다. 비록 이 물이 정결 의식을 위해 준비된 것이기는 하지만 이 물은 또한 해당 사람을 저녁까지 부정하게 만드는 것이다.
[22] 시체로 인한 부정의 전염성, 그리고 전염으로 인한 부정의 처리에 대해 언급한다. 시체로 인한 부정이 전염될 수 있다는 점은 이미 14-15절 등에 전제되어 있지만, 해당 본문에서는 이 점을 적극적으로 부각시키지 않았다. 22절은 이 점을 전면에 내세운다.
이 구절이 말하는 바에 따르면 시체로 인해 부정하게 된 사람은 접촉하는 모든 것을 부정하게 만든다. 그로 인해 부정하게 된 것에 접촉한 사람은 저녁까지 부정한 상태에 있게 된다.
그러나 이처럼 부정의 전염성으로 인해 이차적으로 부정하게 된 사람은 원래의 당사자만큼 심각한 부정을 겪고 있지는 않기 때문에 19장에 언급된 의식을 치를 필요는 없다. 그는 단지 저녁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부정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처럼 부차적으로 부정하게 된 자들이 원래 부정한 자보다는 부정의 정도가 약하다는 점, 따라서 그에 따른 조치도 더 간단하다는 점은 레위기 15장에서 다룬 부정의 경우와 비슷하다.35


현대적 적용

[2-10] 흠이 없고 아직 멍에를 메지 않은 완전한 붉은 암소 … 그것을 진 밖으로 끌어내고 … 그 피를 회막 쪽을 향해 일곱 번 뿌려라 … 그것의 가죽, 고기, 피를 똥과 함께 불태우게 하라. 이 구절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시체로 인해 부정하게 될 때마다 항상 엄격하게 속죄제를 드려야 하는 수고(레 5:1-13)를 겪지 않고도 그 부정을 해결할 수 있도록, 소위 ‘간이 속죄제’로서 붉은 암소를 태운 재를 흐르는 물에 타서 만든 ‘부정을 씻는 물’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셨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이 하나님을 섬기는 데 너무 번거롭지 않도록 좀 더 쉽고 단순한 방법을 마련해 주셨던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이처럼 하나님께서 쉬운 방법을 허용하셨다는 것이 곧 하나님이 당신과 백성 사이의 관계에서 모든 기준을 낮추셨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점이다. 이것은 ‘부정을 씻는 물’을 만드는 데 하나님이 일반적인 속죄제(참조, 레 4:1-5:13)보다 더 엄격한 기준들을 요구하시는 것을 통해서 드러난다.
첫째, 이 물을 만드는 데 사용하는 암소의 기준으로 ‘흠이 없고 아직 멍에를 메지 않은 완전한 붉은 암소’라는 기준이 제시된다(2절). 이런 까다로운 기준은 일반적인 속죄제의 제물로 사용되는 짐승을 고르는 기준인 ‘흠 없음’이라는 단순한 기준과 비교된다.
둘째, 이 암소를 처리하는 과정은 일반적인 속죄제 중 가장 엄격하고 높은 기준이 요구되는 대제사장의 속죄제(레 4:3-12)나 온 회중의 속죄제(레 4:13-21)의 제물을 처리하는 과정과 비슷한 것들이 많다. 제물의 피를 회막 쪽을 향해 일곱 번 뿌리는 동작은 위의 두 속죄제의 피를 지성소의 휘장에 뿌리는 동작을 연상시킨다. 일반적인 속죄제 중 오직 이 두 가지 속죄제물의 피만 이처럼 지성소의 휘장에 뿌려진다. 또한 암소 전체를 진 밖으로 끌고 가 거기에서 그 암소 전체, 즉 그것의 가죽, 고기, 피, 똥을 불로 태우는 것은 앞의 두 속죄제의 경우보다 더 엄격한 것이기도 하다(민 19:5; 참조, ‘본문 해설’).
이런 점들이 주는 교훈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이런 점들은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을 향해 섬세한 은혜를 베푸시는 분임을 보여 준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장막 안에서 가족이 죽는  등(민 19:14-15)과 같은 상황으로 인해 겪을 수 있는 부정을 항상 번거롭게 속죄제를 통해 해결하지 않고, ‘부정을 씻는 물’로 간단하게 처리할 수 있게 해 주셨다.
둘째, 하나님이 간단한 조치를 통해 부정을 해결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푸셨다고 해서 하나님이 방종을 조장하시는 분은 결코 아니다. 하나님은 비록 ‘부정을 씻는 물’이 마치 ‘간이 속죄제’처럼 작용할 수 있게 허용하시기는 했지만 그것을 만드시는 과정에서는 다른 속죄제들보다 더욱 엄격한 사항들을 요구하셨다. 하나님의 은혜는 더욱 엄격한 요구들이 충족된 결과로 얻어진 것이다.
그리고 이 점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구원의 은혜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은 우리에게 구약의 모든 제사들보다 훨씬 편하게 주어져서, 우리는 이제 더 이상 번거로운 제사들을 드릴 필요없이 오직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 놀라운 은혜가 가능하게 되기 위해 하나님 편에서는 더 엄격한 것들이 요구되었다. 짐승 대신에 하나님의 독생자가 제물로 드려졌고, 제물이 단순히 도살되는 대신에 우리 주님이 십자가에 달려서 오랜 고난을 당하시고, 성부 하나님의 버림을 받는 과정이 치러졌다(마 27:26). 따라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이 값없이 주어진 것이라고 해서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이 값없는 은혜를 위해 하나님이 더 엄숙하고, 더 엄격하고, 더 수고로운 과정을 거치셔야 했으며, 또한 더 비싼 값을 치르셔야 했다는 것을 우리는 망각해서는 안 된다.


설교: 그리스도의 피로 거룩하고 온전하게 되었는가?(2-13절; 히 9:9-14)

구약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죄와 부정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가지 제사들과 정결 의식들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민수기 19장은 하나님이 한 가지 조치를 더 마련해 주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부정을 씻는 물’입니다.
이 물은 일종의 ‘간이 속죄제’와 같은 것으로서, 시체로 인해 부정하게 된 자들, 즉 심각한 부정으로 인해 오염된 자들이 레위기 4:1-5:13의 일반적인 속죄제를 드리지 않고 정결 의식을 치를 수 있게 해 주는 수단이었습니다. 원래 이런 심각한 부정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번거로운 속죄 제사를 드리고, 정결 의식들을 행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부정을 씻는 물’은 이런 모든 절차들을 간소화시켰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 물은 하나님의 섬세한 은혜의 방편이었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서는 구약의 제사들이나 부정을 씻는 물이 옛 언약에서이루어진 하나님의 임시적인 조치로서, 분명히 한계가 있는 것들임을 밝힙니다. 히브리서 9:9-10은 “[구약의] 예물과 제사는 섬기는 자를 그 양심상 온전하게 할 수 없나니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일 뿐이며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구약의 이런 제의법적인 조치들은 임시적으로 죄와 부정을 처리해서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해 주기는 하지만, 이런 것들이 사람의 양심 자체를 온전하게 만들어주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이런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습니다(히 9:12). 이 점에 기초해서 히브리서 9:13-14은 이렇게 말합니다: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구약의 제물들과 민수기 19장이 말한 바, 즉 ‘암송아지의 재’로 만든 물로 인해 구약에서도 비록 임시적이기는 하나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해 거룩하게’ 했는데 ‘하물며 …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신약의 성도들에게 엄청나게 강력한 메시지이며, 또한 큰 숙제와 도전을 줍니다. 이 점들을 몇 가지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 구약의 성도들과 비교해서 신약의 성도들은 죄와 부정의 문제에 대해 훨씬 더 강력한 하나님의 조치를 누리고 있습니다. 구약에서도 하나님은 죄인인 백성과 함께하시기 위해 각종 제사와 ‘부정을 씻는 물’ 등을 그들의 죄와 부정을 처리하는 수단으로 허락하셨습니다. 구약의 성도들도 이것들을 통해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해 거룩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히 9:13). 그러나 이것들은 다 한시적인 것이며, 사람 자체를 온전하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9:9). 반면에 예수 그리스도의 제물과 피는 ‘영원한 속죄’를 이루었습니다(9:12).
둘째, 하나님의 더 강력한 조치는 신약 시대 이후의 성도들에게 큰 숙제와 도전을 남깁니다. 히브리서 9:14은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라고 묻습니다. 이것은 수사의문문입니다. 수사의문문은 강한 긍정을 기대하고 던지는 질문입니다. 다시 말해 이 본문은 “그리스도의 피가 …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로부터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할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아니, 더 나아가서 “반드시 그렇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놀랍고 축복된 약속이기는 하지만 커다란 도전이기도 합니다. 과연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 ‘죽은 행실로부터 깨끗하게’ 되고, 살아 계신 하나님, 거룩하신 하나님을 섬기게 되었습니까? 현재 여러분의 삶은 ‘죽은 행실’에서 벗어나 있습니까?
만약 이런 질문들에 대해서 자신 있게 “네”라고 대답하지 못한다면 정말 심각하게 자신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왜 성경이 단언적으로 말씀하고 있는 바가 내 삶 속에서는 구현되지 않는 것일까요? 그리스도의 피가 무능력한 것일까? 아니면 우리가 아직 그리스도의 피로 인해 깨끗함을 얻고, 구원을 받은 상태에 이르지 못한 것일까요?
요한일서 2:4은 “그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라고 무섭게 경고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진실로 이 점에 대해서 우리 자신에게 심각하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현재 한국 교회는 역사상 가장 타락하고, 가장 심각하게 세상의 비난을 받는 와중에 있습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아마 히브리서 9:13-14이 던지는 수사의문문에 대해 충분히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의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실 수 있다고 말하는데, 왜 우리의 삶과 교회의 모습 속에서는 이런 점이 실현되고 있지 않은 것입니까?
우리에게 현재 주어진 숙제는 성경의 말씀과 우리 삶 사이의 불일치를 해소하는 것입니다. 이 불일치가 해소될 때 우리는 진정으로 거룩하신 하나님의 성도와 교회가 될 것입니다. 이 점을 위해 우리 모두 함께 고민하고 노력해야겠습니다.  




 


1) 민수기 8:7의 ‘속죄의 물’은 19장의 ‘부정의 물’과는 다른 것일 가능성이 높다. 전자의 히브리어 표기가 ‘메 타트’(taJ'x; yme)인 반면에 후자의 것은 ‘메 닏다’(hD"nI yme)이다. 후자의 표현은 아래의 민수기 19:9의 “사역 해설”에서 보듯이 시체로 인한 부정을 처리하는 데 사용되는 물을 가리키는 전문용어인 것으로 보이며, 전자의 물, 즉 민수기 8:7의 레위인의 정결 의식에 사용되는 물은 시체로 인한 부정과는 상관이 없는 것으로 생각된다.
2) 이하의 설명은 Gordon J. Wenham, Numbers: An Introduction and Commentary. Vol. 4. Tyndale Old Testament Commentaries (Downers Grove: InterVarsity Press, 1981), p. 163를 따른 것이다. 웬함은 ‘간이 속죄제’ 대신에 ‘즉각적 속죄제’(instant sin offering)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만 전자의 표현이 더 적절해 보이므로, 이 글에서는 이것을 계속 사용하도록 하겠다.
3) Wenham, Numbers, p. 163.
4) Wenham, Numbers, p. 163은 ‘부정을 씻는 물’이 속죄제와 비슷하다고 지적하지만, 사실 이 물을 만드는 데 사용된 ‘백향목, 우슬초, 홍색 실’의 사용은 레위기 14장의 악성 피부병 환자의 정결 의식이나 집에 생긴 악성 곰팡이의 정결 의식에 사용된 것들과 동일하다(14:4, 6, 49, 51-52). 따라서 ‘부정을 씻는 물’은 ‘정결 의식+속죄 의식’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편이 더 적절할 것이다.  
5) 이것은 나병 환자의 몸에 피를 일곱 번 직접 뿌리는 악성 피부병 환자의 정결 의식과는 상관이 없는 것으로 생각된다(참조, 레 14:7).
6) 두 동사의 용법 및 의미의 차이에 대한 좀 더 상세한 설명은 박철현, 《레위기: 위험한 거룩성과의 동행》 (서울: 솔로몬, 2018), p. 68를 보라.
7) Timothy R. Ashley, The Book of Numbers.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Eerdmans, 1993), p. 363.
8) Jacob Milgrom, Numbers. The JPS Torah Commentary (Philadelphia: Jewish Publication Society, 1990), p. 160.
9) 특히 ‘유출증’은 여성이 매달 겪는 생리나 남자의 몽설과 같이 부득이하게 발생하는 가벼운 부정을 제외하고 혈루병 등과 같은, 좀 더 지속적이고 심각한 종류의 유출증의 경우만 가리킨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에 대한 설명은 민수기 5:1-4의 “본문 해설”을 보라.
10) 제물의 ‘흠 없음’을 ‘완전함’ 혹은 ‘온전함’이라고 이해해야 하는 것의 신학적인 중요성에 대해서는 박철현, 《레위기: 위험한 거룩성과의 동행》, pp. 71-74를 보라. 나는 이 점이야말로 제사법 신학의 핵심들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11) 오경의 제사 및 제의와 관련된 동물들을 지칭하는 단어들이 그 자체로 나이 개념을 내포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 대해서는 Rene Peter-Contesse and John Ellington. A Handbook on Leviticus (UBS Handbook Series; New York: United Bible Societies, 1992), pp. 15, 40; 박철현, 《레위기》, p. 293를 보라.
12) 이에 대해서는 George Buchanan Gray, A Critical and Exegetical Commentary on Numbers. International Critical Commentary (New York: C. Scribner’s Sons, 1903), p. 253를 보라. 또한 문법적 자료로는 A. B. Davidson, Introductory Hebrew Grammar Hebrew Syntax. 3d ed. (Edinburgh: T&T Clark, 1902), §108a; Friedrich Wilhelm Gesenius, Gesenius’ Hebrew Grammar. Edited by E. Kautzsch and Sir Arthur Ernest Cowley. 2d English ed. (Oxford: Clarendon Press, 1910), §144d를 보라.
13) 이런 두 단어의 차이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설명은 박철현, 《레위기》, p. 55를 보라.
14) Wilhelm Gesenius and Samuel Prideaux Tregelles, Gesenius’ Hebrew and Chaldee Lexicon to the Old Testament Scriptures (Bellingham, WA: Logos Bible Software, 2003), p. 534; Francis Brown, Samuel Rolles Driver, and Charles Augustus Briggs, Enhanced Brown-Driver-Briggs Hebrew and English Lexicon (Oxford: Clarendon Press, 1977), p. 622(BDB로 약어 표기)를 보라. BDB, pp. 308?309.
15) Ashley, Numbers, p. 368.
16) Milgrom, Numbers, p. 253. 이런 류의 견해에 대한 정리는 박철현, 《레위기》, pp. 161-162를 보라.
17) 물론 이 말은 ‘부정을 씻는 물’이 일종의 ‘간이 속죄제’라는 개념을 유지해야 한다는 뜻, 다시 말해 일종의 제사의 대체물로서의 기능을 한다는 뜻이지 꼭 ‘속죄제’라는 단어 자체를 고수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따라서 ‘핱타트’를 ‘속죄제’보다는 ‘정결제’로 번역하는 것이 더 낫다는 최근의 레위기 학계의 거의 만장일치적 견해를 고려할 때 ‘정결제’로 번역하는 것도 좋은 선택이라고 본다. 단지 사역은 이 글의 주된 독자들이 학자들이 아니라 목회자들이라는 점을 고려해 교회에서의 사용시 혼란을 방지하는 차원에서 ‘속죄제’라는 번역을 유지하는 것뿐이다. 이런 제사 용어에 번역에 대한 논의는 박철현, 《레위기》, pp. 161-162를 보라.
18) Ashley, Numbers, p. 368.
19) William Lee Holladay and Ludwig Kohler, A Concise Hebrew and Aramaic Lexicon of the Old Testament (Leiden: Brill, 2000), p. 93.
20) 이에 대한 더 상세한 해설은 박철현, 《레위기》, p. 66를 보라.
21) Dennis Cole, Numbers. Vol. 3B.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2000), p. 313.
22) 이 점에 대해서는 Ashley, Numbers, pp. 372-373의 정리를 보라.
23) Cole, Numbers, p. 313.
24) 현대의 의학적 개념으로 볼 때 악성 피부병은 사람이 걸리는 것이지 집이 걸리는 것은 아니다. 아마 집에 걸린 악성 피부병이란 현대적 개념으로는 악성 곰팡이 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레위기 본문에서는 집에 피는 이런 곰팡이들을 지칭할 때도 사람에게 걸린 ‘악성 피부병’을 지칭하는 용어를 그대로 사용했다. 원어상으로는 이처럼 양자가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이 글에서는 계속 ‘악성 피부병에 걸린 집’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런 용어상의 문제 및 번역에 대해서는 박철현, 《레위기》를 참고하라.
25) 박철현, 《레위기》, pp. 412, 415, 434의 해설을 보라. 
26) 이하의 19장의 구조에 대한 분석은 Milgrom, Numbers, pp. 437-438와 그에 기초한 Cole, Numbers, pp. 303-304의 제안을 바탕으로 약간의 수정을 가한 것이다. 이와 본질적으로 상응하는 분석은 Gray, Numbers, p. 241; Baruch A. Levine, Numbers 1?20: A New Translation with Introduction and Commentary, vol. 4, Anchor Yale Bible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2008), pp. 457-458 등에서도 역시 찾아볼 수 있다.
27) 레위기 11:1에서 아론이 공동 청자인 이유에 대한 비슷한 설명으로 박철현, 《레위기》, pp. 196-197를 보라.
28) Ashley, Numbers, p. 363.
29) Baruch A. Levine, Numbers 1?20: A New Translation with Introduction and Commentary. Vol. 4. Anchor Yale Bible (New Haven; London: Yale University Press, 2008), p. 461.
30) Jacob Milgrom, Numbers. The JPS Torah Commentary (Philadelphia: Jewish Publication Society, 1990), p. 158.
31) Milgrom, Numbers, p. 158를 참고한 것이다.
32) Gray, Numbers, p. 252. Cole, Numbers, p. 308; W. H. Bellinger Jr. Leviticus, Numbers. Understanding the Bible Commentary Series (Grand Rapids: Baker Books, 2012), p. 254도 결국 비슷한 견해를 가진 것으로 보인다.
33) Milgrom, Numbers, p. 162. 밀그롬은 20절의 ‘성소’가 성막이 더 이상 기능하지 않게 된 후대 시대를 반영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지만 이런 추측은 불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34) Ashley, Numbers, p. 372.
35) 이 점에 대해서는 박철현, 《레위기》, pp. 428-429, 436-437를 보라.

 

박철현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구약학 교수. 글로스터셔대학교(Ph.D.). 저서로 《깨진 토기의 축복》, 《야곱-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 등이 있다. 필자의 다른기사 keyboard_arrow_right

그말씀

11월의 주요기사

추천 연재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