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와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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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설교 2018년  11월호예수의 죽음을 바라보는 네 개의 눈길 권연경 교수의 네 개의 복음서에서 한 분 예수님 만나기(27)

말기 암 환자들을 위해 호스피스에서 봉사하던 한 청년이 심각한 영적 회의에 빠졌다. 죽음을 앞둔 많은 목회자가 조금이라도 더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모습과 평소 죽음과 영생에 관한 그분들의 멋진 설교를 연결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들에게서 영원에 대한 소망을 찾기가 힘들었다고 한다. 그저 이 땅의 삶이 전부이고, 그 삶을 조금이라도 더 연장할 수 있다면 무엇이라도 할 것 같은 이들의 모습에서 타향을 떠나 고향을 찾아가는 순례자의 모습은 발견할 수 없었다는 괴로움이었다.

죽음을 향해

이렇게 보면, 한 사람이 죽음을 맞이하는 태도는 그 사람이 그간 살아온 삶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해 준다. 정말 영생의 소망을 어루만졌던 것이 아니라, 영생의 언어를 읊조리고 그 언어를 활용하며 이 땅에서의 삶만 누렸던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죽음 자체가 최후의 유혹이 되어, 그간 지켜왔던 신앙적 태도를 뒤흔드는 것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고대의 현인들 중 ‘죽음’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소크라테스다. 플라톤이 전하는 소크라테스의 최후는 그야말로 의연한 죽음의 최고 사례다. 그는 피하려면 피할 수도 있었던 죽음의 잔을 애써 피하지 않았다. 그는 죽음에 대한 일상적 두려움조차 없었던 것처럼 보인다. 물론 그의 이런 태도는 죽음이 우리 인생의 ‘최악의 사태’가 아니라, 우리 삶이 향해야 할 목표 지점이며 우리 삶의 절정이라는 생각과 관계가 있다. 소크라테스에 의하면, 올바른 것을 추구하는 철학자의 삶이란 죽음을 연습하는 삶이다. 삶의 목표는 육체의 욕망과 필요를 최소화하면서 영혼을 고결하게 가다듬는 일이다. 이 과정을 완결하는 것이 죽음이다. 그러니 죽음은 무서워하며 피할 것이 아니라, 큰 기대감으로 맞이해야 할 일이다. 수련이 잘 되어 있을수록 더 나은 것이 기다리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그가 살아온 삶의 성격을

권연경 숭실대학교 기독교학과 교수(신약학). 런던 킹스칼리지(Ph.D.). 저서로 《로마서 산책》, 《갈라디아서 어떻게 읽을 것인가》 등이 있다. 필자의 다른기사 keyboard_arrow_r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