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와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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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2018년  11월호잃어버린 기독교적 설득의 예술, 어떻게 되찾을까? 변증서가(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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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 기니스/ 복있는사람/ 480쪽/ 19,000원


“거룩하신 하느님, 부처님, 모든 신들이시여!” 일전에 광화문에서 굿판을 벌인 이들이 이런 말로 ‘신들’을 불러 모아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신의 존재에 대해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검증해 보았다면, 이렇게 막연히 뭉뚱그려 모든 신을 부르는 게 얼마나 무모한 일인지 눈치챘을 것이다. 지금은 “신은 존재하는가?”라는 물음보다 “어떤 신이 존재하는가? 어떤 신이 참된 신인가?”를 따져야 할 시대인 것 같다.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 존재인지도 그 문제가 풀린 이후에나 자연스럽게 드러날 것이다.

지금 기독교 변증은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선 무신론적 자연주의와 싸워야 하고, 도덕적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해선 포스트모던 시대의 상대주의 가치관과 씨름해야 한다. 두 가지 문제는 결국 어떤 신이 참된 신인가의 문제와 관련된다. 변증전도의 승패는 이 문제를 놓고 어떻게 사람들을 효과적으로 설득해 낼 것인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프란시스 쉐퍼의 계보를 잇는 세계적인 기독교 변증가인 저자가 50년 가까운 자신의 사고 과정, 수많은 대화, 강연과 강의, 자신이 읽은 숱한 책들의 결과물이라고 밝힌 이 책에는 오늘날의 기독교 변증이 비신자들과 소통하는 데 필요한 구체적인 설득의 원리와 방법론이 담겨 있다. 시대적으로 심각한 불통의 위기 가운데 전도에 큰 어려움을 겪는 지금의 한국 교회가 귀담아들을 만한 알찬 변증적 대안들로 빼곡하다.

현대 교회가 맞닥뜨린 총체적인 전도의 위기

“인터넷 시대는 자아와 셀카의 시대라고들 한다. 세상은 자아로 가득 찬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한마디로, ‘나는 게시물을 올린다. 고로 존재한다’의 시대인 것이다”(p.29). 저자는 지금은 기독교적 변증의 개념을 알거나 가져다 쓰지 않고도 온 세상이 변증에 빠진 ‘웅대한 세속 변증의 시대’라고 규정한다. 그 변증의 주력 상품은 물론 ‘나 자신’이다. 아쉽게도 예수님의 삶과 죽음과 부활이라는 진리와 그 의미를 증언하는 기독교 변증은 오늘날과 같이 매체가 새로워진 시대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한다.

새로운 변증은 ‘이제 모든 사람이 어디에나 있는’ 비범한 세상에서 우리가 매일 접하는 다양한 사람과 이슈만큼 강력하고도 유연해야 하지만(p.31), 현대 교회들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교회는 여전히 다양한 대상을 염두에 두고 그들의 입장에서 복음을 전하기보다 전하는 사람의 편의에 따라 일방적인 전도 공식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다.

“서구 교회의 일부 진영에서는 여러 가지 이유로 사실상 전도를 포기했다. 다른 진영에서는 기독교의 진리와 신앙이 마치 누구에게나 늘 쉽게 이해될 수 있는 것처럼 말한다. 기독교의 많은 증언이 인기도 없고 잘 통하지도 않는다고 느낀 교회들이 전도를 회피하는 행위를 사회 정의에 대한 새로운 열정으로 가리며 안도하는 경우도 있다”(p.33).

오늘날 대다수의 비신자들은 복음에 대한 무관심자 또는 냉담자들이다. 그래서 지금 한국 교회가 전도의 돌파구를 찾으려면 저자의 주장대로 창의적인 설득을 중시하는 변증전도가 유용하다. 저자는 복음서와 성경 전체에는 두드러지는데,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의 소통 방식에는 결여된 것이 바로 설득이라고 말한다. 이 책의 목적은 성경의 사례와 교회사에 남겨진 기독교 변증가들의 저술, 그리고 저자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기독교가 잃어버린 설득의 예술을 되살리는 데 있다. 저자가 이 책에서 제시하는 기독교적 설득의 원리와 방법들 가운데 핵심적인 제안 몇 가지를 요약해 본다.

우리 시대에 맞는 5가지 기독교적 설득의 방법

첫째, 기독교만의 창의적 설득의 관점에 충실하라. 기독교 변증은 기독교 신앙의 다섯 가지 핵심 진리인 ‘창조, 타락, 성육신, 십자가, 성령’을 통해 형성되어야 한다. 성경적 관점의 창조에 충실하려면, 기독교적 설득은 인간 심령의 중요성과 인간의 사고 능력을 늘 고려해야 한다. 타락에 충실하려면, 하나님을 부정하는 불신의 사고의 생리를 늘 고려해야 한다. 성육신에 충실하려면, 언제나 일차적으로 인격 대 인격으로 얼굴을 마주 대해야 한다. 논증 대 논증, 공식 대 공식, 매체 대 매체, 방법론 대 방법론이 되어선 안 된다. 

예수의 십자가에 충실하려면, 메시지만 십자가 중심일 뿐 아니라 방법도 십자가의 원리에 따라야 한다. ‘바보 어법’(fool’s talk)은 성육신과 십자가, 성령의 사역을 통해 드러낸 구속의 계시와 같이 세상 사람들에게는 미련해 보이는 하나님의 지혜다. 하나님은 세상의 높아진 지혜와 힘과 우월감을 십자가로 부끄럽게 하심과 동시에 전복시키신다. 성령께 충실하려면, 기독교적 설득은 결정적 능력이 우리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음을 늘 알고 보여야 한다.

둘째, 기술적·과학적 접근 대신 진정성 있는 진리의 예술로 접근하라. 모든 좋은 사고는 세 가지 기본 질문을 던지고 답한다. “말하는 내용이 무엇인가? 그것은 참인가? 그래서 이제 어찌할 것인가?” 그러나 지금은 세상이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만 추구하는 듯 보인다. 과학과 첨단 기술의 이 시대에는 모든 것이 과학 기술적 수단으로 풀어야 할 과학 기술적 문제가 되어 버렸다. 맥도날드의 4대 비법(타산성, 효율성, 예측가능성, 통제성)을 따라하면 햄버거뿐 아니라 컴퓨터, 병원, 개척 교회, 새 회심자 등 무엇이든 양산할 수 있다.

그러나 기독교적 설득은 사영리와 같은 일률적 방식의 기술로만 환원될 수 없다. 예수님은 단 두 사람에게도 똑같은 방식으로 말씀하신 적이 없으며, 우리도 그래서는 안 된다. 성경은 진리와 이성을 중시하되 모더니즘에 빠지지 않고, 전체적 이야기 속의 무수한 이야기들과 상상력을 중시하되 포스트모더니즘에 빠지지도 않는다. 성경은 이성적이면서도 경험적이고, 명제적이면서도 관계적이어서 성경적 논증은 어느 시대의 누구에게나 통한다. 차원 높은 문제에 요구되는 기술은 과학보다 예술이다. 실용 방법으로는 어림도 없다. 모든 예술과 마찬가지로 창의적 설득도 학습하기보다는 스승 밑에서 경험을 통해 삶으로 체득해야 한다.

셋째, 비신자들이 이중적으로 표출하는 불신의 체계를 철저히 해부하라. 성경적 관점에서 불신을 해부해 보면, 그 중심에 진리에 대한 고의적 오용이 있다(롬 1:18). 모든 인간은 진리를 추구하기도 하고 진리를 왜곡하기도 한다. 자신의 행동을 하나님의 법에 맞출 의향이 없어 하나님의 법을 자신의 행동에 맞추려 한다. 불신의 사고와 마음에는 ‘딜레마 극단’과 ‘일탈 극단’의 양극단이 있다. ‘딜레마 극단’은 인간이 자신의 현실관에 일관될수록 하나님의 현실에서 멀어져 결국 더 딜레마를 느끼기 쉽다는 것이다. ‘일탈 극단’은 인간이 자신의 현실관에 덜 일관될수록 하나님의 현실에 가까워져 결국 더 일탈을 찾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인간은 용감하고 일관되지만 불편한 ‘딜레마 극단’보다는 일관성은 없어도 편한 ‘일탈 극단’을 취한다. 가장 보편적인 회피 방법은 아예 결단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러면 삶이 더 이상 의미를 향한 여정이 아니라, 여정 자체에 의미가 부여된다. 도달하기보다는 희망을 품고 계속 가는 게 낫다는 것이다. 추구 자체가 보상이며 의미의 추구가 곧 추구의 의미가 된다. 그리하여 추구는 끝없이 계속된다. 행복한 삶의 비결은 행복한 삶을 추구하며 사는 데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불신은 결코 단순한 우연이나 집안의 영향이나 인생길에 잠시 거쳐 가는 정신적 선택이 아니다. 불신은 의지의 행위이며, 선택을 통해 굳어진 사고의 습관이다.

넷째, 상대의 입장에 대해 형세를 역전시키고, 초월의 신호를 활용하라. 비신자들의 불신을 해부한 데 대한 기독교 변증의 주된 두 가지 반응 중 첫 번째는 형세를 역전시키는 것이다. 이 전략은 모든 논증이 양방향으로 통한다는 사실에 기초한다. 즉 무엇을 믿고 믿지 않는다는 상대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여 상대를 자신의 불신의 결과 쪽으로 밀어붙이는 방식이다. 이 전략의 전제는 기독교 신앙이 진리라면 상대의 불신은 결국 진리가 아니며, 따라서 상대는 거기에 끝까지 충실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 자신의 선택의 논리대로 밀어붙여 형세를 역전시키는 일은 인간의 불순종과 불신에 대한 하나님 특유의 반응이며, 회심 또한 이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두 번째 반응은 상대에게 자신의 인간적 열망과 갈망, 그리고 그런 열정의 궁극적 지향점을 의식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 열망과 갈망은 선천적으로 우리 삶 속에 묻혀 있다. 특히 이 전략은 평범한 일상사 속에 심겨진 이른바 ‘초월의 신호’에 주목하게 한다. 초월의 신호란 자연적 실재의 영역에서 조우하지만 그 실재 너머를 가리키는 듯한 어떤 현상을 말한다. 이런 경험은 단서, 전조, 자극제, (지인의 죽음과 같은) 충격적 사건, 계기, 귀소 신호, 인식의 한계점, 국면의 전환점, 현현, (예기치 못한 기쁨과 같은) 초월적 충동, 형이상학적 갈증 등 여러 어휘로 표현된다. 이 초월의 신호 배후에는 인간을 하나님과 분리시킨 타락이 있다. 변증자의 특권은 말뿐 아니라 삶으로 사람들을 도와 그런 신호를 듣고 경청하고 이해하게 해 주는 것이며, 나아가 그 신호가 인도하는 대로 따라가게 해 주는 것이다.

다섯째, 의문을 불러일으키는 질문의 위력을 활용하라. 자신의 신앙에 대해 외부인에게서 어떤 반론도 듣지 않으려는 사람도 질문의 위력에는 열려 있다. 우선 질문은 간접적이며 상대를 끌어들이는 특성을 지닌다. 좋은 질문은 결코 그 지향점을 내비치지 않으며, 듣는 사람을 초대해 질문을 넘겨받아 직접 답을 찾아내게 한다. 질문에는 특유의 전복적 성질이 있다. 우리 시대의 대다수 사람들은 전도를 받지 못했다기보다 고민이 없고, 설득되지 않았다기보다 관심이 없다. 그들에게는 답 못지않게 질문이 필요하다. 질문으로 의문을 불러일으키면 답이 필요해지기 때문에 사람들이 진정한 구도자가 될 수 있다.

‘바보 어법’의 기독교 변증이 절실한 때

“한마디의 진리가 전 세계보다 더 중요하다(One word of truth outweighs the entire world).”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지난 5월 고려대에서 열린 베리타스 포럼 첫날 강연에서 저자가 인용한 러시아 소설가 솔제니친의 말이다. 전 세계가 다 좇아 따라가며 믿는다 해도 진리가 아니면 궁극적인 해답이 못 된다. 그것은 결국 아무것도 아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올바로 드러내는 진리만이 세계를 올바로 이해하고 사람이 가장 사람답게 살게 해 주는 유일한 길이며, 그 절대 진리가 곧 기독교의 하나님이다. 저자도 이 책에서 구도자는 보통 질문과 해답, 검증, 결단의 4가지 주요 단계를 거치며 신앙을 향해 나아가는데 그 과정에서 어떻게 참된 신을 만날 수 있는지에 대해 안내한다.

“신앙군이라는 용어는 우주의 실재의 궁극적 근원을 무엇으로 보느냐에 대한 관점이 같다는 점에서 서로 비슷한 신앙들을 가리킨다. 그렇게 볼 때 오늘날의 세상에는 세 가지 주된 신앙군이 있다. 첫째는 힌두교, 불교, 뉴에이지 운동을 포함하는 동양 신앙군이다. 이들에게 실재의 궁극적 근원은 비인격적 존재다. 둘째는 무신론, 불가지론, 자연주의, 유물론을 포함하는 세속주의 신앙군이다. 이들에게 실재의 궁극적 근원은 우연이다. 리처드 도킨스는 우주란 ‘우연한 행운’의 산물이라 했다. 셋째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를 포함한 아브라함 신앙군이다. 이들에게 궁극적 근원은 무한하신 인격신이다”(p.432).

저자는 이 세 가지 신앙군의 렌즈에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의 문제, 악과 고난의 문제를 통과시켜 보라고 제안한다. 결과가 너무도 판이해서 각 선택의 대안이 뚜렷하게 대비되는 과정 자체가 참된 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자명하게 보여 줄 것이라는 의도다. 참된 하나님을 외면하는 세계관에서는 세상이 온통 힘의 논리로 좌우된다. 세상의 내로라하는 무신론적 철학 사조나 과학, 예술의 세계가 가진 본질적인 허구성과 명백한 논리적 허점을 지피지기의 창의적 설득으로 무장된 기독교 변증의 창을 통해 걸러내지 못하면, 그들이 가진 힘의 논리에 막연하게 휘둘린다.

또 그들의 논리에 빠져 삶의 궁극적인 목적은 뒤로한 채 일탈의 일상화에 익숙해져 버린 비신자들을 참된 진리로 이끌어낼 수 없다. 성령이 주시는 지혜와 사랑 안에서 상대방의 입장으로 성육신되어 말로나 삶으로 자기희생의 십자가를 기꺼이 달게 져야 한다. 사람들의 마음을 얻고 그들의 마음 문을 여는 ‘바보 어법’의 기독교 변증이 그 어느 때보다 더욱 절실한 때다.

안환균 그말씀교회 담임목사. 변증전도연구소장. 미국 풀러신학교(D.Min). 저서로 《7문7답 전도지》, 《하나님은 정말 어디 계시는가?》 등이 있다. 필자의 다른기사 keyboard_arrow_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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