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와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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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2018년  10월호예배의 기도가 한 맥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예배 갱신, 교회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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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조 목사
 
“성도들의 기도 내용 역시 단순한 단어의 나열이 아닌 심사숙고해 정돈한 흔적이 역력하다. 기도자의 개성이 드러나면서도 교회의 목표와 지난 주일의 설교 내용에 대한 깊은 사색이 공통적으로 포함되어 있다. 더불어 회개와 용서, 영광과 감사, 사랑, 정의, 평등, 교회와 사회 등 다양한 주제들이 무리 없이 정확하면서도 신실한 언어로 표현되어 있음이 놀랍다. 일이십 분의 끄적임으로는 결코 나올 수 없는 성숙한 기도들이다.”(〈목회와신학〉 2018년 8월호, “안덕원 교수의 예배 탐방기(14)” 내용 중) 
100주년기념교회의 대표기도를 묘사한 내용이다. 이전부터 100주년기념교회는 정돈된 예배와 영감 있는 기도로 유명했다. 어떻게 하면 잘 준비된 기도를 드릴 수 있는지, 예배의 여러 기도를 무엇에 주의해서 준비해야 하는지 100주년기념교회의 예를 통해 힌트를 얻고 싶었다. 지난 8월 30일 100주년기념교회에서 교회의 영성 총괄로 섬기는 정한조 목사를 인터뷰했다.


대표기도의 순서를 특별하게 한다고 들었다.

보통 장로나 안수집사가 대표기도를 전담하는데, 우리 교회는 모든 성도가 참여한다. 등록 후 1년 그리고 세례를 받은 지 1년이 지난 성도들이 가나다순으로 대표기도를 담당한다. 물론 수요예배 및 청년예배의 대표기도도 가나다순으로 담당한다.

특별히 만인 제사장 정신을 살리고자 그렇게 한다. 몇  사람만 돌아가며 기도한다면 그 정신에서 벗어난 것이다. 모든 사람이 주님 앞에 동등한 제사장이기에 돌아가면서 순번제로 진행한다.

그렇게 했을 때 나타나는 긍정적인 부분이 크다. 하나님께서 사람마다 주신 은혜가 다르다. 삶의 이력이 다르고, 살아가는 환경이 다르기에 다른 은혜를 가지고 산다. 그것이 모두 기도에 포함된다. 3분 정도의 짧은 기도이지만 그 안에 한 성도의 인생 전체가 들어 있다. 기도는 삶으로 드리는 것이기에 한 개인이 아무리 기도를 잘해도 몇 차례 하면 같은 내용이 반복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모든 성도가 참여하면 매번 다른 은혜를 경험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를 각각 다르게 지으셨다. 그 다른 입을 통해, 즉 모두의 입을 통해 기도를 듣기 원하시니 기도에 모두가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


성도들이 어떤 자세로 기도를 준비하도록 안내하는가?

대표기도는 예배 즉석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개인 기도라면 당장 있는 자리에서도 가능하다. 하지만 예배 중 기도는 참여한 모든 성도를 대표해서 하는 제사장적 기도이기 때문에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그래서 기도자를 위해 매뉴얼을 제공한다. 준비하는 자세, 기도의 형식과 내용, 기도 당일의 이동 경로와 몸짓 및 자세, 기도의 시간, 기도의 언어, 기도자의 복장, 넥타이의 색을 준비할 수 있는 절기 색 등을 자세하게 안내한다.

그렇게 철저하게 준비하면, 준비하는 와중에 은혜가 임한다.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게 된다. 중보자로 서야 하기에 더 정결한 태도를 가지고 살게 된다. 기도를 준비하면서 이미 충분한 은혜가 기도자에게 임한다. 실제로 예배의 자리에서 드리는 기도는 그가 준비한 삶에 비해 극히 일부분이다.

성도들에게 기도를 철저히 준비하도록 당부하는 것만큼 중요한 게 있다. 설교를 잘 준비하는 것이다. 담임목회자가 설교를 위해 준비한 만큼 성도들도 기도를 준비한다. 혼신의 힘을 다해 준비하면 성도들도 혼신의 힘을 다한다. 설교나 기도 모두가 하나님과 성도 사이의 매개체다. 대충 준비할 수 없고, 그렇게 혼신의 힘을 다해 준비한 것을 성도들이 들을 때 감동이 크다.


성도들이 부담스러워 하지는 않는가?

사실 많이들 기피한다. 부담 없이 준비하라는 교회도 있지만, 우리는 부담을 장려하기 때문에 더욱 피하는 것 같다. 1-4부 예배와 수요예배까지 합치면 한 해에 250-300명이 기도를 담당한다. 등록 교인이 꽤 많기 때문에 농담처럼 이번에 하지 않으면 40년 후에야 순서가 돌아온다고 말씀드린다. 부담스러워 하더라도 꼭 해 보라고 용기도 주고 강권한다. 요청에 응하시는 분들은 목회자가 설교를 준비하는 만큼이나 열심히 준비한다. 몇 주 동안 기도를 쓰고 고치며, 자신의 마음을 가다듬고, 신앙을 돌아보며 준비한다.


어떤 내용을 기도하도록 안내하는가?

기본적인 형식은 하나님에 대한 찬양과 감사, 죄의 고백, 회중 전체의 염원과 소망을 담은 간구, 예배를 받아주시고 열납해 주실 것을 기원,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무리하는 순서로 준비한다. 이를 바탕으로 혹 절기가 있다면 해당 절기에 관한 기도, 국가와 민족을 위한 기도, 교회를 위한 기도 등을 담는다.

국가와 민족을 위한 기도를 꼭 포함하도록 안내하기도 하지만, 그전에 성도들이 알아서 잘 준비하는 것 같다. 교회는 이 땅에 함몰되어서도, 유리되어서도 안 되며 이 땅 위에 존재한다. 그렇기에 예배를 위한 기도만큼이나 국가와 민족을 위한 기도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기도의 언어를 위해서는 어떤 내용을 안내하는가?

우선 기도문을 작성할 때 불필요한 문장이나 내용이 들어가지 않도록 안내한다. 너무 어려운 문자를 쓰기보다는 모두가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 말로 하도록 한다. 공동체를 대표해서 기도하는 것이기에 단수보다는 복수형 문구를 사용하도록 한다. ‘제가’ 보다는 ‘저희가’, ‘내가’ 보다는 ‘우리가’를 사용하도록 한다. 자신의 입장이 아닌 회중 전체의 입장에서 기도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특별히 기도를 마칠 때는 “기도드렸습니다”와 같은 과거형보다는 “기도드립니다”와 같은 현재형으로 마치도록 한다. 기도는 현존하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언어들도 세세히 살펴서 제대로 사용하려고 한다. 같은 예로 ‘축복해 주세요’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축복은 복을 비는 것인데 하나님은 복을 주시는 분이지 빌어 주는 분은 아니다. 축복은 인간의 영역이며, 하나님은 강복하는 분이시다. 이런 식으로 용어를 선택하는 것에 유의하도록 한다. 언어는 우리의 사고나 삶을 규정한다. 매우 주의해서 준비해야 한다.

사실 용어도 설교의 영향이 크다. 설교에서 사용되는 언어가 잘 준비된 것이라면 성도의 언어에도 좋은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의 설교 강단에서는 피동형 동사가 너무 많이 사용된다. 되는 것이지 되어지는 것은 아니다. 아주 작은 부분이지만 정확한 언어를 쓸 때 설교도 훨씬 잘 전달된다.

그런 의미에서 원고를 꼭 작성하길 추천한다. 물론 원고 없이 하는 설교의 장점도 있다. 하지만 원고를 쓸 때 얻을 수 있는 유익이 그보다 크다. 원고를 쓰면 같은 말을 반복하지 않게 되며, 정화된 언어를 사용하게 된다. 계속 쓰고 고치는 와중에 목회자의 필력도 높아질 것이고, 그럴수록 표현력도 커진다. 이렇게 목회자의 언어가 높은 경지에 오를수록 성도들의 기도도 더욱 정제된 언어로 표현된다.


대표기도의 시간은 어느 정도가 적절한가?

우리 교회는 3분 정도가 적당하다고 가르친다. 3분은 10포인트 글자 크기로 문서를 작성할 때 A4용지 2/3-3/4 정도 되는 분량이다. 3분이라고 정한 이유는 그것이 설교 시간의 1/10정도 되기 때문이다. 짧은 새벽예배 시간이나 가정예배에서 지나치게 길게 기도하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어떤 모임이든 설교의 1/10 정도의 기도가 적절하다고 본다. 설교와 연결되는 기도여야 하지, 설교를 대신하거나 넘어서는 기도는 적절치 않다.


예배 중에는 대표기도 외에도 여러 기도의 순서들이 있다. 이를 준비할 때 유의할 점은 무엇인가?

예배는 종합 예술이다. 기도들이 뚝뚝 끊어지는 것이 아니라 한 맥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그래야 각 기도의 내용이 겹치거나 비지 않는다. 기도를 연결하는 기준은 말씀이다.

우리 교회의 예배에는 부름의 말씀 후 기도, 새신자를 위한 기도, 성도 대표의 기도, 말씀 후 기도, 봉헌기도, 축도 등의 기도 순서가 있다. 부름의 말씀을 읽고서 기도할 때는 읽은 본문에 따라 예배를 올려 드린다. “우리가 이 말씀에 의탁해 주님 앞에 나왔으니 우리에게 복을 주십시오.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부족함을 감추어 주십시오”라고 기도드린다.

그 후에 새신자를 환영하는 시간이 있다. 함께 축복하는 노래를 부른 후 예배 인도자가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데 지난주의 설교 내용을 토대로 기도한다. 그렇게 함으로 일주일 동안 말씀을 잊고 지낸 교우들에게 말씀을 되새기며, 오늘 들을 말씀으로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설교의 마지막 부분이나 축도를 보면 설교가 한 줄로 요약되어 있다. 그것을 통해 기도해서 교인들이 아무 생각 없이 예배의 자리로 왔더라도 지난주 설교를 다시금 떠올리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말씀 후 기도는 당연히 그날 설교의 핵심을 가지고 한다. 봉헌 기도에는 그 핵심을 다시 적용한다. 이 말씀으로 한 주간 살겠다는 결단을 담아 기도하는 것이다. 헌금만 드리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통해 우리 삶을 드린다는 고백이다. 헌금 시간에 목회기도를 하는 교회도 많지만, 우리는 지양한다.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인데 목회기도를 하면 사람이 드러날 수 있기에 조심한다. 축도도 당연히 설교의 핵심을 바탕으로 한다. 즉 모든 기도가 설교 말씀 속에서 하나로 꿰어지도록 한다.

오히려 기도가 한 줄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에 각 기도의 개성도 사라진다. 예배를 시작할 때는 사회를 위한 기도를 할 수 없고 예배를 위한 기도만 해야 한다. 대표기도를 할 때는 사회를 위한 기도를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 주일예배 기도와 수요예배 기도도 달라야 한다. 주일에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에 대해 찬양했다면, 수요예배 기도는 들은 말씀으로 삼 일을 살아낸 소감을 포함해야 한다. 그 예배나 모임의 성격, 청중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서 그 사람들을 대표해서 기도해야 한다. 즉, 각 기도의 뚜렷한 목표를 알고 준비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예배 중 기도는 한 맥으로 이어져야 한다. 이렇게 기도해야 그날의 설교가 한 주의 삶으로 연결된다. 우리 교회의 경우 주일 설교의 결론이 새벽기도회 및 심방예배의 설교 결론으로 이어지도록 한다. 그리고 매 주의 설교는 한 해의 표어와 연결된다. 각 설교의 결론이 연결된다는 것은 기도로도 연결된다는 말이다. 새벽기도회에서는 오늘 하루를 그렇게 살도록 기도하며, 심방예배에서도 그 해의 표어, 그 주간의 설교를 붙들고 기도한다. 기도를 통해 예배를 한 방향으로 잇고, 또한 기도를 통해 성도들의 삶을 한 방향으로 잇는다.
 

예배 중 기도의 갱신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기도는 굉장히 어렵다. 오히려 설교보다 더 어렵다. 만약 대통령의 말을 다른 이에게 전달한다면 오히려 쉬울 것이다. 대통령의 말이기에 그냥 전하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다른 이에게 들은 말을 대통령에게 아뢴다면 그것은 굉장히 조심스럽고 어려운 일이다. 기도가 그런 것이다. 우리 같은 죄인이 성도를 대표해서 하나님을 독대하는 일이기에 경거망동해선 안 되고, 최대한의 예의를 지켜야 한다. 기도를 굉장히 중히 여겨야 한다.

또한 앞서 언급했듯이 기도는 말씀과 따로 가서는 안 되고, 예배 전체를 말씀 안에서 잇는 윤활유가 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몇 주간의 예배 흐름 속에서 기도를 준비해야 한다. 대표기도를 들으면 간혹 기도자가 지난 몇 주 간의 설교를 여러 번 들으며 준비했다는 것이 느껴질 때가 있다. 그때 참 감동이 된다. 말씀이 존중받는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말씀이 존중되지 않으면 기도할 때 자기가 하고 싶은 말, 늘 똑같은 말을 하게 된다. 말씀이 존중될 때 개성이 있으면서도 하나로 연결되는, 각자의 고민이 담겨 있으면서도 공동체를 아우르는 기도를 드릴 수 있다.

정한조, 송지훈 정한조 100주년기념교회 영성 총괄 목사, 송지훈 <목회와신학> 기자 필자의 다른기사 keyboard_arrow_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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