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와 신학

  • {{x.scr_name}}
  • 미분류

신학·설교 2018년  08월호 아브라함의 믿음: 창세기 12-15장 채경락 교수의 설교적 주석(5)

창세기 12장: 약속의 땅으로 떠나라

75세라는 결코 적지 않은 나이에 아브람은 고향을 떠난다. 큰 민족을 이루어 이름을 창대하게 하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한 채,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독자로서는 믿음의 조상 아브람을 본격적으로 만나는 시작 장면이다. 믿음의 첫걸음은 떠남이라는 구도가 성립될 수 있는 대목이다. 아브람의 도착과 함께 가나안이 모습을 드러내고,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는 하나님의 약속과 함께 가나안은 약속의 땅으로 각인된다.

후반부에서는 믿음의 조상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아브람이 자기 신변의 안전을 위해 아내 사래를 사람들 앞에서 누이라고 속인다. 실제로 애굽 왕 바로가 사래를 아내로 삼기 위해 데려가는데, 남편 아브람은 그저 바라보고만 있다.
 

설교 구상  1
‘믿음은 떠남’이라는 주제를 설교할 수 있다. 아브람의 삶을 연속적으로 묵상하면서 믿음이라는 주제로 시리즈 설교를 기획해도 좋을 것이다. 본문은 아브람의 믿음의 여정 첫 장면으로서 떠남의 믿음을 선포할 수 있다. 적용의 3대지를 시도할 수 있는데, 조금 긴 서론부를 통해 믿음은 떠남이라는 주제를 확보한 후 구체적으로 무엇을 떠나야 할지를 묻고 답하는 흐름이다. 대지 내용은 설교자의 묵상을 통해 다양하게 구성할 수 있다.

우산 질문    무엇에서 떠날 것인가?

대지  1     불경건한 익숙함에서 떠나라
믿음은 새로운 삶이고, 새로운 삶은 익숙함에서 떠남으로 시작된다. 고향은 가장 익숙하고 편한 곳인데,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고향을 떠나라고 명하신다. 칠십 평생을 살아온 고향인데 떠나라고 명하신다. 지켜야 할 익숙함도 있지만, 참된 믿음을 위해 떠나야 할 익숙함도 있다.

대지  2     불경건한 관계에서 떠나라
믿음은 새로운 관계의 시작이다.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 믿음의 가족들과의 새로운 관계의 시작이다. 이를 위해 청산해야 할 관계도 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친척을 떠나라고 명하신다. 지켜야 할 관계도 있지만, 참된 믿음을 위해 떠나야 할 관계도 있다.

대지  3     죄악에서 떠나라
무엇보다 죄악에서 떠나야 한다. 믿음은 죄악에서 떠남으로부터 시작된다. 이신칭의 교리가 때로 죄를 가벼이 여기는 핑계로 남용되기도 한다. 믿음은 결코 죄를 가벼이 여기지 않는다. 참된 믿음은 죄악 중에 평안히 머무는 어리석은 객기가 아니라, 단호히 떠나는 결단이다.

  설교 구상 2
후반부를 중심으로, 못난 사람 아브람을 설교할 수도 있다. 사람은 결코 의지할 게 못 된다는 것, 그렇기에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라는 메시지의 설교다.
단호하게 고향을 떠나는 아브람의 모습은 믿음의 조상다운 당참이지만, 자기 살자고 아내를 누이로 속이는 그의 모습은 연약한 인간의 민낯이다. 비겁한 그의 모습이 민망하면서도, 그리 낯설지는 않다. 이것이 인간의 모습이고, 우리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진실이 선포되는데, 우리가 의지할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우산 질문    아브람의 실수가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대지  1      사람을 의지하지 말라
사래가 얼마나 황망했을까. 한평생 의지하며 살아온 남편이 자신을 버린다. 힘센 외간남자가 자신을 끌고 가는데도, 남편이라는 사람이 제 목숨 지키느라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한다. 당황스럽겠지만, 이게 사람이다. 사람은 사랑의 대상이지 의지의 대상이 아니다. 기대할 수는 있지만 의지해서는 안 된다.

대지  2    믿음의 사람도 섣불리 의지하지 말라
사래도 당황스럽겠지만, 우리도 당황스럽다. 보통 사람도 아니고 믿음의 조상 아브람이 자기 목숨 부지하겠다고 비겁한 거짓말 뒤에 숨어서 아내를 팽개친다. 적잖이 당황스럽지만, 이게 사람이다. 믿음의 사람이기에 더 기대할 수는 있지만, 사람인 이상 결코 의지의 대상은 아니다. 사람 앞에 아무리 좋은 수식어를 달아도, 결국은 사람이다.

대지  3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라
우리가 의지할 대상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아브람은 제 목숨 부지하기 위해 아내 사래를 버렸지만, 하나님은 능력으로 되찾아오셨다. 사람은 우리를 버려도, 심지어 나 자신도 나를 버릴 때가 있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지키신다. 하나님은 독생자의 목숨을 들여서라도 우리를 되찾아 오신다. 지혜 있는 자는 오직 그 하나님을 의지할 것이다.
 

창세기 13장 :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리라

아브람의 종과 조카 롯의 종 사이에 다툼이 일어나자, 아브람이 헤어질 것을 제안하고 룻에게 먼저 선택권을 준다.
롯은 기회를 놓칠세라 얼른 요단 땅을 택하는데, 그 기준이 아쉽다. 요단 지역은 “온 땅에 물이 넉넉”했지만,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들이 사는 영적으로 어두운 곳이기 때문이다. 반면 아브람은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가나안에 머무른다.

  설교 구상  1
아브람의 양보에 초점을 맞추며, 진정한 부요함을 설교할 수 있다. 아브람은 믿음의 조상이기도 했지만, 부자였다. 통장 잔고로 치면 롯도 못지않은 부자였지만, 진정한 부요함을 논할 때 롯에게는 아쉬움을 느끼게 된다. 아브람이 진정한 부자인 이유는 양보할 줄 아는 넉넉함과 더불어, 눈앞의 유익보다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가는 신실함 때문이다. 아브람의 후예로서, 무엇보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진정으로 부요한 사람이 되자는 권면의 설교가 가능하다.

우산 질문    진짜 부자는 누구일까? 아브람은 믿음의 조상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부요한 사람이었다. 아브람을 통해 성경이 가르치는 진정한 부요함은 무엇일까?

대지  1      양보할 줄 아는 넉넉함이다
단지 많이 가졌다고 부자는 아니다. 물론 “아브람에게 가축과 은과 금이 풍부하였”지만, 그가 진정한 부자인 이유는 소유보다 넉넉한 그의 마음 때문이다.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양보할 줄 아는 진정한 부자의 통 큰 음성이다.

대지  2    더 큰 가치를 보는 눈이다
아브람의 양보는 버림보다는 오히려 더 소중한 것을 챙김이었다.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친족이라 …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아브람에게는 돈보다 가족이 더 소중했다. 그래서 진정한 부자다. 하찮은 돈을 위해 소중한 가족을 잃어버리는 어리석은 인생들은 도무지 알 수 없는 부요함이다.

대지  3    더 큰 영광을 보는 지혜다
아브람은 그 무엇보다 하나님으로 부요한 사람이었다. 돈을 넘어, 심지어 가족의 화목도 넘어 아브람이 바라본 더 큰 삶의 보물이 있었으니, 하나님과 그분의 약속이다. 아브람은 영원한 하나님이 선물하시는 영원한 영광을 향해 살아간 사람이다. 이 땅의 삶에 고정된 근시안 인생들은 도무지 알 수 없는 영원한 부요함이다.

  설교 구상  2
보다 직접적으로, 선택의 문제에 초점을 둔 설교도 가능하다. 흔히 말하길,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한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혹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려면, 선택의 기로에서 그가 어떻게 선택하는지, 어떤 기준으로 선택하는지를 보면 된다. 아브람의 선택과 롯의 선택을 대조하면서 더 지혜롭고 귀한 선택의 삶을 권면하는 메시지다.

대지 언어로는 더 깊이, 더 높이, 더 멀리 등 체감적인 표현을 시도했다. 주의할 것은 이런 언어들을 사용하다 보면 자칫 고정된 격자에 본문의 메시지를 억지로 욱여넣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본문의 초점을 견지하면서 적절하게 사용하면, 성경 메시지를 성도들의 마음에 깊이 각인시키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우산 질문    성도로서 우리는 선택의 순간에 어떤 기준으로, 어떻게 선택해야 할까?

대지  1      더 깊이 바라보라
귀한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내 앞에 닥친 문제의 실체를 직시해야 한다. 다른 말로, 보다 깊이 들여다보아야 한다. 오늘의 문제는 단지 비좁은 땅 문제가 아니라, 가족의 화목을 지키는 문제였다. 아브람이 양보를 택할 수 있었던 것은, 표면적 이슈 이면에 숨어 있는 더 크고 더 소중한 이슈를 보았기 때문이다. 

대지  2    더 높이 바라보라
선택의 순간에 아브람은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본다. 하나님의 약속을 품고 가나안에 머물기로 선택한다. 조카 롯도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보았지만, 그의 눈은 결국 이 땅에 고정되고 말았다. 존귀한 하나님의 백성은 선택의 순간에 위를 바라볼 줄 안다.

대지  3    더 멀리 바라보라
어리석은 선택들은 상당 부분 멀리 바라보지 못하는 근시안에서 나온다. 이어지는 14장을 보면 롯이 자신의 선택이 잘못되었음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영원을 바라보기를 권하신다.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창세기 14장 : 훈련된 318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요단 주변 왕들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다. 지역의 패권을 두고 네 왕과 다섯 왕이 대립해 총 아홉 왕이 얽힌 큰 전쟁이었는데, 소돔에 살고 있던 롯에게까지 불똥이 튄다. 소돔 왕이 패하면서 롯은 가족과 함께 사로잡혔다. 소식을 들은 아브람은 “집에서 길리고 훈련된 자 삼백십팔 명을 거느리고” 조카 롯을 구해 온다. 승전하고 오는 길에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불리는 살렘 왕 멜기세덱을 만나는데, 멜기세덱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아브람을 축복하자 아브람은 전리품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바친다. 소돔 왕도 승리한 아브람을 영접하는데, 아브람에게 제안하기를 사람은 자기에게 돌려보내고 전리품은 아브람이 가지라고 말한다. 그러나 아브람은 함께한 병사들의 몫만 제외하고는 되찾아온 소돔 왕의 모든 소유를 그에게 돌려준다.

  설교 구상  1
준비하는 믿음을 설교할 수 있다. 아브람이 “집에서 길리고 훈련된 자 삼백십팔 명을 거느리고”라는 구절이 인상적이다. 저자의 의도 속에서 독자인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아브람은 믿음의 조상으로 불리는 사람인데, 그에게 믿음은 손 놓고 방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철저히 준비하는 행동이었다. ‘318명’이라는 숫자도 대단하지만, 기르고 훈련된 병사들이라는 게 놀랍다.

믿음은 단순한 지적인 동의(belief)를 넘어선다. 진정한 믿음은 하나님을 신뢰하며 말씀을 통해 보이신 길을 혼신의 힘을 다해 걸어가는 신실함(faithfulness)을 포함한다. 바울의 자비량은 하나님의 공급하심에 대한 믿음의 부족이 아니라, 하나님의 복음을 향해 헌신된 신실함의 발로였다.

우산 질문    훈련된 318명의 군사는 어떤 믿음을 보여 주는가?

대지  1      준비하는 믿음
아브람의 집에는 기르고 훈련된 병사가 318명이나 있었다. 유사시를 대비해 아브람이 준비한 것인데, 마침내 귀한 열매를 맺는다. 아브람의 믿음은 넋 놓고 기다리는 게으름이 아니라, 오히려 최선을 다해 준비하는 믿음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일하시는데, 특히 준비할 줄 아는 진실한 믿음의 사람을 통해 일하신다.

대지  2    도전하는 믿음
조카 롯이 사로잡혔다는 소식에 아브람은 즉시 군사를 이끌고 전장으로 달려간다. 두려움에 물러서거나, 하나님이 하시겠지 하며 발을 빼지도 않는다. 직접 군사를 이끌고 멀리 단까지 쫓아가서 치열한 싸움을 통해 조카를 구해 온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일하시는데, 특히 도전할 줄 아는 진정한 믿음의 사람을 통해 일하신다.

대지  3    그럼에도 오직 주님을 의지하는 믿음
돌아오는 길에 멜기세덱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아브람을 축복하기를,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이에 아브람은 전리품의 십분의 일을 바치는데, 오늘의 승리는 아브람 자신의 승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승리임을 인정하고 감사하는 헌물이다. 필시 전장으로 달려가는 순간에도 아브람은 자신의 군대가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했을 것이다.

  설교 구상  2
보다 도전적인 믿음을 선포하는 설교도 가능하다. 하나님을 믿는다면, 정말로 믿음이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를 묻고 답하는 흐름인데, 철저히 준비하고 용기내 도전하라는 권면의 메시지다. 믿음은 게으름이나 비겁함에 대한 변명이 될 수 없다. 진정한 믿음은 게으름보다 부지런함이고, 비겁함보다 떨쳐 일어나는 용기다. 도우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기에 최선을 다해 준비할 수 있고,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기에 용기내 도전할 수 있다.

우산 질문    진정한 믿음이란 무엇인가? 정말로 하나님을 믿는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대지  1      철저히 준비하라
믿음의 조상 아브람은 준비하는 사람이었다. 큰 민족을 이루리라는 약속을 받고는 넋 놓고 그냥 앉아 있지 않고, 부지런히 땀 흘려 일했다. 집 안에 318명이나 되는 군대를 거느리고 있었다는 것은 그가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다면, 최선을 다해 일하고 준비하라.

대지  2    동역자와 연대하라
믿음의 사람은 협력할 줄 안다. 아브람에게는 동맹이 있었는데, 아넬과 에스골과 마므레였다. 사로잡혀 간 롯을 구출하는 데 이들이 큰 힘이 되어 주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있다면, 사람의 손길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 쓰시는 다른 사람과 연대할 수 있어야 한다.

대지  3    용기내 도전하라
믿음은 비겁함에 대한 변명이 될 수 없다. 믿음의 사람은 필요할 때 담대하게 일어날 줄 안다. 아브람은 롯을 구하기 위해 떨쳐 일어난다. 318명의 병사를 이끌고 담대하게 달려가서 조카를 구해 온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이다. 하나님은 용기내 도전하는, 진정한 믿음의 사람과 함께하신다.

  설교 구상  3
성도의 품위를 설교할 수도 있다. 승리를 거두고 돌아오는 길에 아브람은 세 사람 앞에 서게 되는데, 각 사람 앞에서 보인 아브람의 태도가 묘한 대조를 이룬다. 첫째, 하나님의 제사장 멜기세덱 앞에서는 겸손히 엎드린다. 둘째, 소돔 왕 앞에서는 당당함을 잃지 않는다. 셋째, 함께 싸운 동지들 앞에서는 따뜻한 배려의 모습을 보인다. 하나님의 사람 아브람에게서 풍겨나는 아름다운 품위가 우리에게도 있기를 바란다는 권면의 설교다.

우산 질문    성도에게 어울리는 품위는 무엇인가?

대지  1      하나님 앞에 겸손한 엎드림
멜기세덱에게 바친 헌물은 곧 하나님 앞에 엎드림이었다. 승리를 위해 아브람은 혼신의 힘을 다해 싸웠지만, 하나님이 주신 승리임을 겸손히 고백한다. 믿음의 눈에는 이 진실이 보이는 모양이다. 겸손한 엎드림을 통해 아브람은 승리보다 더 큰 선물을 얻었으니, 바로 ‘나의 하나님’이다.

대지  2    사람 앞에 당당함
멜기세덱 앞에서는 겸손히 엎드렸지만, 소돔 왕 앞에서는 당당한 아브람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비록 왕이어도 한낱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람 앞에 예를 갖출 필요는 있지만, 주의 자녀로서 당당하게 대하는 것이 성도의 품위다. 우리는 주님께 속한 사람이지, 높은 사람에게 속한 사람이 아니다.

대지  3    동지를 향한 따뜻한 배려
함께 싸운 동료들의 몫을 살뜰히 챙기는 아브람의 모습에서 성도의 품위를 본다. 못난 사람은 높은 사람 앞에서는 비굴하고, 자신의 동역자들은 가벼이 대하기도 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람 아브람은 자신의 공보다 함께한 동지들의 땀을 소중히 여길 줄 안다. 아브람의 모습에서 예수님의 모습을 엿본다. 예수님은 권력자 앞에서는 당당하셨지만, 마지막까지 제자들의 안위를 챙기셨다. 하나님이 참 아름다운 사람을 빚으셨다.
 

창세기 15장 : 아브람이 하나님을 믿으니

하나님이 아브람과 언약을 체결하신다. 먼저 약속을 주시는데, 하나님이 아브람의 몸에서 거대한 민족이 나오게 하시고, 가나안 온 땅을 후손들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 믿기 힘든 말이었지만,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다. 아브람에게는 하나님과 언약을 맺을 아무런 공로가 없지만, 그의 믿음을 보시고 언약을 체결하셨다는 의미로 보인다. 그리고 쪼갠 고기 사이로 횃불이 지나가게 하심으로써 아브람과의 언약을 반드시 이루시겠다고 선언하신다. 앞으로 약속이 성취되기까지 일어날 일들을 보다 세밀하게 일러주시는데, 아브람은 장수하다가 평안히 생을 마감하고, 그의 자손들은 이방에서 객이 되어 400년의 고통을 겪은 후에 큰 재물과 함께 4대 만에 약속의 땅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설교 구상  1
언약을 통해 우리에게 임한 하나님의 은혜를 정리하는 설교가 가능하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과 아브람의 언약 체결 과정을 보여 주는데, 요소요소에 아브람을 향한 하나님의 따뜻한 은혜가 흐른다. 먼저 아무런 공로 없는 아브람을 언약의 대상, 즉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르신 것이 첫 번째 은혜다. 또한 자식 하나 없는 노인 아브람에게 뭇별과 같은 거대한 민족이라는 큰 복을 부으시는 것이 두 번째 은혜요, 하나님의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감으로써 당신의 목숨을 걸고 언약을 인치심이 세 번째 은혜다. 적용적인 언어로 바꾸어 대지를 구성하면 보다 체감적인 메시지가 될 것이다.

우산 질문    아브람과의 언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는 무엇인가?

대지  1      공로 없는 부르심의 은혜
하나님이 아브람을 언약의 대상, 즉 존귀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르시는 데는 아무런 이유가 없다. 아브람이 특출난 사람도 아니고, 하나님의 일에 크게 기여한 바도 없다. 그저 그가 하나님을 믿으니, 그것을 의로 여겨주셨다. 우리를 부르실 때도 마찬가지로 아무 공로 없는 우리 같은 죄인을 하나님은 은혜로 불러주셨다.

대지  2    넘치는 복을 약속하시는 은혜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복을 선언하시는데, 넘치도록 거대한 복이다. 그의 몸에서 뭇별과 같은 거대한 민족을 내시고, 가나안 온 땅을 그의 후손에게 주기로 약속하시는데, 당시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복이었다. 비천한 우리에게도 주님은 영원한 생명과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 됨을 약속하신다.

대지  3    당신의 목숨으로 인치시는 은혜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간 횃불은, 반드시 언약을 지키시겠다는 하나님의 자기 다짐이다. 당신의 목숨을 들여서라도 반드시 언약을 지키시겠다는 하나님의 자기 선언인데, 정말로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목숨을 들여서 우리를 향한 구원의 언약을 이루어 주셨다.

  설교 구상  2
다시 한 번 믿음이 무엇인지를 설교할 수 있다. 믿음의 조상이라는 별칭이 지시하듯 아브람의 걸음은 믿음의 삶이었고, 그를 통해 우리는 믿음의 다양한 양태를 묵상할 수 있다. 특히 오늘 본문은 6절로 인해 더 특별하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이는 로마서 4:22-23에 인용된 이신칭의 고백의 기초가 되는 구절이다.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기대하신 진정한 믿음이 무엇인지를 묻고 답하는 설교를 구상할 수 있다.

우산 질문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요구하신 믿음은 무엇인가?

대지  1      내가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것
믿음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은 나를 바라보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바라본다. 너무나 당연한 진실인데, 때로 나를 향한 긍정적 사고가 믿음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라는 문구는 단순하지만 성경적인 믿음을 정초하고 있다. 믿음은 오직 하나님을 향한다.

대지  2    바랄 수 없는 중에도 믿는 것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너무 과한 약속을 주셨다. 자식도 없는 노인의 몸에서 뭇별과 같은 민족을 내시겠다는 약속이다. 현실을 감안하면 도무지 기대할 수 없는 약속이지만, 그럼에도 아브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다. 믿음은 상황과 현실을 초월해 바랄 수 없는 중에도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대지  3    둘러가는 길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것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장차 그와 그의 후손들에게 일어날 일들을 일러주시는데, 그리 밝지만은 않다. 400년 동안 이방의 객이 되어 고통을 당하리라는 말씀이다. 이 말씀을 주시는 것은, 그때도 믿음에서 흔들리지 말라는 뜻이다. 참된 믿음은 고통의 길, 둘러가는 길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설교 구상  3
믿음이 주는 유익을 선포하는 설교도 가능하다. 성경이 믿음을 강조하는 것은, 그것이 영광스러운 유익의 통로가 되기 때문이다. 믿음이 우리에게 선물하는 유익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는 아브람의 믿음이 하나님과 언약을 체결하는 통로, 즉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통로가 되었다는 의미다. 아무 공로 없는 죄인에게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언약의 은혜가 임하는 통로가 있었으니, 믿음이다. 더불어 믿음은 절망을 이기는 희망의 발판이요, 어긋난 길에서도 걸음을 잃지 않게 하는 나침반이다.

우산 질문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주는 유익은 무엇인가?

대지  1      은혜의 통로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임하는 통로가 된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믿음을 통해 비천한 아브람이 의로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우리는 아무 공로 없는 죄인이지만,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때 주의 놀라운 은혜가 임한다.

대지  2    절망을 이기는 희망
아브람은 믿음을 통해 희망을 회복한다. 하나님이 뭇별과 같은 후손을 약속하셨지만, 자신의 늙은 몸으로 인해 아브람은 절망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믿음이 임할 때 아브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향한 믿음과 자신을 향한 희망을 회복한다. 믿음의 사람은 결코 좌절하지 않는다.

대지  3    어긋난 길의 나침반
더러 어두운 길도 있고, 어긋나 보이는 길도 있지만, 믿음의 사람의 걸음은 흐트러짐이 없다. 하나님의 약속과 인도하심을 믿기 때문이다. 아브람의 후손은 약속의 땅으로 돌아오기까지 400년 고통의 시간을 지날 것이다. 400년 어둠 속을 인도하는 나침반은 하나님을 향한 흔들림 없는 믿음이다.   

 

채경락 고신대학교 설교학 교수. 미국 남침례신학교(Ph.D.). 저서로 《쉬운 설교》, 《설교자들이 알아야 할 절기와 상황 설교》 등이 있다. 필자의 다른기사 keyboard_arrow_right

목회와 신학

8월의 주요기사

추천 연재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