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와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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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2018년  07월호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교회를 살리는 전도신학 소통과 공감으로 전도하는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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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의 본질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있다. 예수께서 우리의 주님이시며 구원자라는 복음은 시대가 달라져도 변할 수가 없다. 복음은 깊고 풍성하기에 다양한 문화와 삶의 여러 측면을 조명한다. 절대적인 복음은 여러 상황 속에서 다양하게 표현된다. 또한 전도는 복음을 선포하며 전달하는 것이기에, 그 중심에는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실천이 있다. 이 실천 방식은 시대와 문화에 따라 적절하게 달라진다. 커뮤니케이션의 변화는 단순히 전달 기법의 변화와 복음 메시지의 상황화를 요청한다. 복음의 내용을 변경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상황에서 복음의 깊이를 적절하게 변주하는 것이다.

모더니즘 vs. 포스트모더니즘  

한국 교회는 교회사적으로 주목할 만한 전도의 유산을 지니고 있다. 20세기 한국의 역사는 비극과 질곡 가운데서도 비약적 부흥을 경험하는 은총을 입었다. 현대 한국 기독교는 비서구권 국가들 중에서 서구의 신학과 방법론을 가장 충실히 따르며 성장했다. 전도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국 교회의 전도에 영향을 준 모델들은 대부분 서구(주로 미국과 영국)에서 파생되었으며, 이는 모더니즘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모더니즘 시대의 산업 구조는 개별성과 다양성보다는 표준성과 대규모 생산이 특징을 이루었다. 복음 사역도 이러한 모더니즘의 구조를 따르면서 대규모 부흥 시대가 열렸다. 18세기부터 20세기까지 카리스마적 집회 전도를 통해 집단적 회심과 헌신 운동이 일어났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바로 대규모 회심의 부흥을 이끈 모더니즘 시대 집회 전도의 아이콘이었다. CCC의 창시자 빌 브라이트 박사도 사영리를 통해 영적인 생활에 대한 표준적·객관적 법칙을 제시하고, 그에 대한 즉각적 수용을 요청한다는 측면에서 근대 모더니즘 전도의 영웅이었다. 한국 교회 또한 이러한 집회 전도와 즉각적 결신 전도의 모델을 따라 큰 열매를 거두었다.

문제는 문화와 커뮤니케이션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는 더욱 많은 사람들이 개성과 다양성을 선호하며 자아 정체성과 자존감에 대해 더 깊은 고민을 한다. 물론 한국 사회는 서구와 같은 모더니즘-포스트모더니즘의 도식을 따라가지는 않는다. 하지만 20세기 한국사를 관통했던 ‘위기와 불안’이라는 코드는 더욱더 견고하고 안전한 진리를 추구하게 만들었다. 여기에 서구 기독교의 영향력이 더해져 모더니즘 방식의 전도가 매우 설득력 있게 한국인들에게 다가왔다고 볼 수 있다. 모더니즘 시대의 부흥 전도는 몇 가지 특징이 있는데, 대중동원형이며 즉각적 결신을 강조하고 법칙화된 복음 제시를 했다는 점이다. 그에 비해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전도는 인격적이며 과정지향적이고 이야기 중심의 복음 제시를 한다는 특성을 지닌다.1

이와 같은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전도를 문화적으로 이해하고 적용하기 위해서는 과거 서구 사회의 개인주의와 도덕-죄책이라는 프레임을 넘어서는 복음 전도의 상황화가 요구된다. 그것은 바로 수치-명예의 문화에서 복음과 전도를 보는 것이다. 

죄책의 문화 vs. 수치의 문화

근세의 서구 사회는 도덕과 죄책의 문화라는 기반을 만들었다. 인간의 문제는 자율적 개인의 도덕적 의지와 행동에 달려 있다. 죄는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불순종과 도덕적 범죄로 인식된다. 죄로 인해 인간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져서 영원 형벌 앞에 놓였을 뿐 아니라, 동료 인간 및 자연과의 관계도 모순과 부패로 뒤덮이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은 우리의 죄로 인해 받아야 할 형벌을 대신 담당하고 우리를 속량해 주시는 사역이었다. 이 예수를 믿음으로 우리는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된다. 죄의 문제가 해결됨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의롭게 되어 구원을 얻게 되었다는 확신이 죄책의 문화에서 복음 전도 사역을 이해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기독교의 근본적 구원의 메시지를 가장 간명하게 반영한다.

그런데 우리가 죄를 이해하는 방식은 개인의 도덕적 죄책을 넘어서서, 더욱 영적이고 구조적인 차원을 포함한다. 인간이 하나님과의 의존적 관계를 벗어나 스스로가 인생의 주인이 되어 자기주장을 하는 것이 근본적 죄의 개념임은 변함이 없다. 그러나 그 죄는 우리로 하여금 도덕적 범죄로만 이끄는 것이 아니라, 자아 정체성을 일그러뜨리고 자존감을 파괴한다. 수치와 두려움이 인간을 집어삼키고, 타인과의 건전한 관계를 훼손시킨다. 인간은 외적으로는 성공과 성취를 구가해도, 내면으로는 원초적 불안과 소외 속에 살아간다. 이처럼 죄가 우리의 자아를 두렵고 부끄럽게 만드는 이야기는 창세기 3장에서 선악과를 따 먹은 아담과 하와가 보인 모습이다. 미움과 질투, 분노, 복수 등의 감정을 느끼기 전에 인간이 가장 먼저 경험한 부정적 감정은 바로 수치와 두려움이었다.   
     
죄책이 도덕과 쌍을 이루듯이(죄책-도덕의 문화), 수치는 명예를 반대의 평형 개념으로 삼는다. 죄책(guilt)은 수치와 더불어 죄를 경험하는 한 가지의 대표적인 양상이다. 죄책이 내가 행한 것으로 인해 느껴지는 부정적인 감정이라면, 수치(shame)는 내가 당한 것으로 인해 내 안에 축적되는 감정이다.2 수치는 어린 시절에 부모의 표정과 말투를 보면서 각인되기 시작한다. 아이들은 엄마의 표정을 보며, 자신이 얼마나 엄마를 행복하게 하며, 엄마에게 인정을 받는가를 무의식적으로 읽게 된다. 죄책은 이 수치라는 플랫폼에서 활동하며, 수치는 두려움을 일으키고, 두려움은 우리로 하여금 싸우거나 도피하게 만든다. 물론 가장 근본적인 수치는 절대자인 하나님으로부터 용납되지 못한다는 자신도 인지하지 못하는 깊은 감각이다. 수치 속에서 인간은 해체와 고립을 경험하는데, 더 나아가서는 무기력한 정체감으로 괴로워하게 된다.

수치와 가장 밀접하게 연관되는 감정 또는 분위기는 정죄감이다. 정죄감은 자기 자신과 타인을 경멸하게 만든다. 경멸은 타인을 판단하게 하고, 이혼의 가장 큰 원인을 제공한다. 수치가 해결되지 않으면 이런 식의 감정적 해체와 공격 성향이 계속 일어난다. 비난과 자기비하가 빈번해지기도 한다. 수치는 자기가 버려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가져다준다. 더 잘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자기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수치가 자아 중심이라면, 죄책은 행위 중심이다. 수치 문화에서 사람들이 모욕과 소외, 버림받을 두려움에 민감하다면, 죄책 문화에서는 정죄, 처벌, 책임 추궁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죄책 문화에서 합당한 형벌과 보상으로 죄를 씻는다면, 수치 문화에서는 공감과 동일시, 그리고 사랑의 부어짐으로 죄를 씻는다.3  

전통적인 선교와 전도 사역은 구원이 필요한 인간의 죄성과 복음의 효력을 설명할 때, 죄책-도덕의 관점에 기초한 형벌 대속론에 의지해 왔다. 그러나 일본 선교사로 사역했던 노먼 크라우스(Norman Kraus)는 죄책-도덕의 틀을 바탕으로 한 형벌 대속론이 일본인들에게 예수의 사역을 만족스럽게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한 청년이 트럭을 몰다가 교통사고를 냈고 피해자가 사망했다. 크라우스는 이 청년에 대한 재판에서 판결의 초점은 그의 범죄 여부를 지적하고 처벌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와 피해자 간에 인간관계를 잘 보존할 수 있는 길을 찾아주는 데 있음을 발견했다. 죄책-도덕의 문화에서는 구체적 범죄 행위를 규명하고 책임을 추궁하지만, 수치-명예의 문화에서는 사람의 잘못을 폭로하고 배척하는 것이 가장 큰 위협이 된다. 따라서 이러한 문화에서는 잘못한 사람을 깨끗하게 하고 명예를 회복시키며 공동체로 돌아오게 하는 과정이 가장 중요하다. 형벌은 수치를 없애지 못한다. 수치를 씻는 것은 사랑이며, 사랑은 새로운 관계에 들어서게 한다. 크라우스는 이러한 측면에서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을 재조명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죄인인 우리와 동일시되셨으며 자기를 버리신 사랑으로 우리의 수치를 씻기셨다. 수치-명예의 문화에서는 그리스도의 대속이 극도로 낮은 자존감과 죄로 인해 왜곡된 정체성을 회복하는 데 중요한 방점이 찍히게 된다.

그러면 이러한 수치-명예의 정서는 동양 문화에 국한된 것인가? 그렇지 않다.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는 글로벌화와 동시에 진행되기에 문화와 인종을 초월해 수치는 보편적인 정서와 감각으로 공유되고 있다.5 특히 최근의 디지털화와 소셜 네트워크의 비약적 발전은 현대인들에게 수치의 감정을 더욱 중대한 이슈로 만들고 있다.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이 동서양을 막론하고 보급되며 거의 모든 젊은이들이 이러한 프로그램들에 깊이 빠져들면서 자신의 글과 사진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호응을 보내느냐에 따라 자존감이 좌우되는 환경에 당도했다. 동양인들이 수치의 문제를 주로 공동체 내에서의 명예 회복과 연결시킨다면, 서구인들은 개인의 자존감과 연결시키는 온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사실 수치는 인간의 내면에 오래전부터 새겨진 보편적 공통분모다. 인간이 된다는 것은 바로 이 수치라는 현상에 노출되는 것이다. 수치는 슬픔, 분노, 실망, 죄책감이라는 정서적 언어에 가려져 있으면서, 우리의 성장을 방해하는 가장 큰 걸림돌이다. 수치로 인해 우리는 모욕, 당황, 불명예, 비천함 등의 감정을 느끼며, ‘나는 적합하지 않아’ 또는 ‘나는 충분하지 않다’는 주문을 되뇐다.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는 다양성과 개성을 존중한다. 그렇기 때문에 동시에 인간은 제도와 집단으로부터 떨어져서 고립과 외로움을 느끼기 쉬운 상태가 된다. 따라서 끊임없이 자기를 인정받고 명예를 유지하기 위한 강박과 불안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수치감으로 괴로워하는 포스트모던인들에게 새로운 희망과 위로를 제공한다. 복음은 그의 조건과 지위, 인종과 문화에 관계없이 오직 은혜로 용납과 특권을 얻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수치-명예 문화에서의 전도 사역

모더니즘 시대의 죄책 문화가 전도를 (죄와 구원을 정의하는) 명제적 복음 제시, 개인 구원의 확신 등에 집중하게 한다면,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수치 문화에서 전도는 이야기, 정서적 과정, 공동체로의 통합이라는 사역의 지평을 열어준다.

첫째, 이야기 전도의 관점에서 말하면, 인간은 이야기를 듣고 말하며 존재를 형성해 간다. 수치로 괴로워하는 인간은 수치의 이야기를 듣고 자란 탓이다. 자신의 존재가 수치의 이야기 속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치에서 해방되기 위해서는 수치를 다르게 접근하는 성경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성경에서 우리는 비로소 자신이 위치한 다른 이야기를 듣게 된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용납하시고 자녀 삼으신 이야기와 사건, 이미지, 경험 등으로 가득하다. 이야기는 진술과 기록의 형태만이 아닌, 이미지, 표정, 제스처, 감각, 느낌, 신체적 경험 등으로도 축적되고 형성된다. 인간은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일어난 일들의 의미를 탐색하며 동기부여를 얻기도 하고, 불안과 고통을 완화시키기도 한다. 따라서 기독교인은 좋은 이야기를 듣고 말할 필요가 있다. 구원받은 이야기만을 듣고 말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누구이며 어떤 존재로 부름받았고 성장하는지를 성경을 통해서 스토리텔링해야 한다. 스토리텔링은 의식 아래에 있는 무의식 속에서도 이루어지며 우리를 형성한다.6 

둘째, 정서적 과정의 전도를 보면, 수치와 싸우기 위해서 수치가 아닌 것에 집중(attention)하는 훈련 과정이 필요하다.7 수치심은 단두대에서 단번에 처단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두고 굶겨야 한다. 수치심을 조장하는 잘못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말고 자아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를 경청해야 한다. 더 큰 이야기, 즉 하나님의 구원 이야기, 복음 이야기에 관심을 집중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집중은 정신 활동의 발화점이다. 집중의 연습과 실천은 수치의 미혹과 잔재를 극복하는 데 중요한 열쇠가 된다. 수치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정서적 경험은 애착이다. 애착은 어릴 때 영향을 주었던 돌봄 제공자와의 관계를 기반으로 형성된다.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한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과의 새롭고 온전한 애착관계에 들어서는 것이다. 전적인 은혜를 통해 하나님의 자녀로 구원받고 죄 용서받으며 그의 자녀가 된다는 이 정서적 과정은 수치 문화의 사람들에게 유력한 복음 전도가 된다. 현대 사회의 인간관계는 외모와 이해를 조건으로 형성된다. 그러나 복음 이야기에서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로 재발견된다. 수치는 이벤트를 통해서 해결되지 않고, 신뢰할 만하고 안전한 관계 속에서 점진적으로 소멸된다. 이를 위해서는 대화와 기도, 그리고 공동체의 교제가 지속적으로 필요하다.  

셋째, 공동체 전도의 입장에서 교회는 수치를 감싸주며 서로의 약함을 드러내고 보호하며 격려하는 공동체다. 연약함을 공유하는 것은 약함 속에서 혼자가 아니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수치를 드러내며 서로 나누는 것은 강력한 복음 전도의 공동체가 되는 조건이다.8 수치는 표면적으로 연약함을 드러내기 두려워하는 환경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잠복한다. 그러다가 문제들이 터진다. 우리의 연약함이 교회 안에서 알려지는 과정은 가장 강력한 전도와 치유의 도구다. 여기에는 엄청난 용기가 수반된다. 사람들은 내면 깊은 곳에 있는 연약함 가운데 서로를 신뢰할 수 있는 공동체를 찾는다. 이러한 공동체에서 우리의 실수와 허물은 적이 아니라 친구가 된다. 수치를 극복하는 공동체는 서로에게 하나님이 우리를 있는 그대로 용납하시고 즐거워하심을 말과 행동으로 보여 주는 곳이다. 이는 인간에게 전인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총체적 이야기다.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불안한 자아들은 새로운 이야기, 더 큰 이야기, 더 견고한 이야기를 들으며 새로운 가능성과 희망에 관심을 집중해야 한다. 

복음 전도의 주제

베드로는 이사야 28:16을 인용하며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벧전 2:6)라고 선언한다. 믿는 자는 수치를 당하지 아니한다는 이 말씀은 수치 문화에서의 전도를 엿보는 단서가 된다. 전통적 전도는 죄책을 중심으로 복음을 설명했으나, 수치 문화에서의 복음 제시는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더 풍성하게 설명한다. 성경적 구원의 두 가지 중심적 모티브는 신분의 변혁과 하나님 백성의 공동체에 소속되는 것이다.9
 

1. 신분의 변혁
하나님은 우리의 신분을 수치스러운 신분에서 명예로운 신분으로 뒤집으신다. 하나님의 구원은 이전의 신분 기준을 완전히 뒤엎으신다. 그분은 우리의 정체성을 바꾸신다. 신분의 변화라는 이미지는 단순히 우리가 전하는 복음의 내용일 뿐 아니라 문화적으로 적절한 방법으로 구원을 전하는 성경적 패턴이기도 하다.

* 복음 제시 사례: ‘존귀함의 회복’
스마트폰 앱으로도 나와 있는 ‘존귀함의 회복’은 수치 문화에서의 명예 회복을 모티브로 하여 5단계에 걸쳐 복음을 제시한다. 첫째, 태초에 하나님이 세상을 선하게 창조하셨고 모든 사람에게 존엄성을 부여하셨다. 둘째, 우리는 우리를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께 저항하고 떠남으로 그를 모욕하고 자신만의 영광을 추구하며 살기 시작했다. 셋째, 하나님은 우리의 깨진 마음을 회복시키기 위해 예수님을 보내주심으로 우리를 향한 그분의 사랑을 표현하셨다. 넷째, 우리는 우리 스스로 명예를 추구하는 것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 다섯째, 우리는 존귀하신 예수님의 명예를 함께 공유하게 되며 하나님의 영원한 가족으로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10 


2. 공동체 소속
최근 신약학 연구에 의하면 초기 기독교회의 관심사는 우리가 어떻게 구원받는가가 아니라 ‘누가 하나님의 백성인가?’라는 질문이었다.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에 속함으로써 얻어지는 명예는 수치에 의해서 괴로워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소식이 된다. 새로운 공동체에 소속된다는 사실 그 자체가 구원의 다른 표현인 것이다.

* 하나님의 마을로 돌아오다’(Back to God’s Village)
이 이야기는 수치-명예 문화의 관점에서 성경 전체의 흐름을 재진술하는 5분 분량의 그림 동영상이다. 초점은 하나님과의 명예로운 관계를 누리던 인간이 에덴동산에서 추방되며 수치와 배척의 삶을 살게 되었는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우리 대신 수치를 당하시며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명예로운 자리로 회복시키신다는 것이다.11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전도 사역을 준비할 때, 수치-명예 문화에서의 복음을 고려하는 일은 교회의 선교적 사명에 진지한 과제가 될 것이다. 죄책-도덕 문화는 개인의 자유의지와 도덕성에 기초해서 복음 전도에 접근하는 경향을 띠지만, 수치-명예 문화에서의 전도는 죄의 구조적 영향력과 그에 대항하는 은혜의 공동체, 탈 수치의 성경 내러티브가 지니는 잠재력에 주목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계층의 고착화, 불확실한 미래, 배제와 소외의 문제가 예리하게 인식되는 한국 사회에서 복음 사역을 담당할 교회를 살리는 전도신학이 개발되기 위해서는 인간의 정체성과 자존감에 관한 좋은 소식으로 복음의 상황화를 시도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인간의 가장 깊은 내면과 관계에서 근본적인 회복과 치유를 일으키시는 하나님의 큰일이기 때문이다.   

 


1) 전도적 관점에서 모더니즘 시대와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차이에 관해서는 본인의 졸저인 《전도의 유산》(서울: SFC, 2014), 7장을 참조하라.
2) Curt Thompson, The Soul of Shame: Retelling the Stories We Believe About Ourselves(Downers Grove: IVP, 2015), pp.21-22.
3) 마크 베이커 · 조엘 그린, 《십자가와 구원의 문화적 이해》(서울: 조이출판사, 2014), p.246.
4) 앞의 책, pp.244-245.
5) Jayson Georges & Mark Baker, Ministering in Honor-Shame Cultures(Downers Grove: IVP, 2016), p.118.
6) Curt Thompson, The Soul of Shame: Retelling the Stories We Believe About Ourselves, 52f.
7) 앞의 책, p.48.
8) Jayson Georges & Mark Baker, Ministering in Honor-Shame Cultures, p.220.
9) 앞의 책, p.167 이하
10) 안드로이드 체제에서 GodTools를 설치하면 ‘존귀함의 회복’이라는 복음 제시 영상을 볼 수 있다.
11) http://honorshame.com/back-gods-village-gospel-narrative/

김선일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 선교학 교수. 풀러신학대학원(Ph.D.). 저서로 《교회를 위한 전도 가이드》, 《전도의 유산》 등이 있다. 필자의 다른기사 keyboard_arrow_r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