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와 신학

  • {{x.scr_name}}
  • 미분류

목회 2018년  06월호 여보, 사모 모임 참석이 너무 힘들어요 목회자 고민 상담소(53)

기사 메인 사진

사모 모임은 비공식적으로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는 차원에서 진행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Q 교회를 3년째 섬기고 있는 부목사입니다. 우리 교회에는 담임목사님 사모님을 중심으로 하는 정기 사모 모임과 모든 사모들이 참여하는 교회 봉사나 기도회가 있습니다. 교회 내에 마음을 터놓고 대화할 상대가 없는 아내에게 좋은 모임이 될 것 같아 처음에는 적극적으로 참여를 권했습니다. 그러나 직장 생활을 하는 제 아내는 사모 모임에 참여할 시간을 내는 것도 쉽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는 사모 모임의 서열 문화도 힘들어하는 눈치입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A ‘교회 안에서 교역자 사모들만의 모임을 따로 조직하고 운영하는 것이 바른가?’ 하는 문제는 교회 안에서 목회자가 차지하는 위치가 평신도들이 차지하는 위치와는 다른 독특성이 있다는 점을 유념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목회자 사모는 목회자가 교회 안에서 차지하는 지위와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서 목회자가 차지하는 독특한 지위의 문제는 목회자에게 주어진 고유한 소명과도 관련됩니다. 목회자 직분 형성의 기원은 신약 시대의 장로 제도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초대 교회는 교회가 부흥해 돌봐야 할 성도들의 수가 늘어나자, 말씀을 가르치는 은사를 받은 장로들을 따로 세워서 말씀과 목양 사역에 전념하도록 하고 교회가 이들의 생활비를 책임지는 시스템을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사례금을 받고 말씀 사역을 중심으로 하는 목양 사역을 하는 교역자라는 특별한 직분이 구별되기 시작했습니다. 현대 개신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가르침을 받는 자, 사례금을 지급하는 자와 사례금을 받는 자 사이의 구분을 제도로 정착시켰습니다.

목회자의 소명을 받은 자는 신학교에 지원하기 위해 노회 추천서를 받는 순간부터 교회 행정상으로 노회에 소속되어 임지 이동 등과 같은 모든 처신에서 노회의 지도를 받습니다. 물론 교역자들이 교회 안에서 섬길 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모신 교회의 지체로서 다른 평신도들과 차별이 없지만, 교회 행정상으로는 평신도들과 구분됩니다. 교역자는 교회 안에서 성도들을 말씀으로 양육하고, 영적으로 돌보는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따라서 직능 수행에 부적합하다는 사실이 판명될 경우 언제든지 자의 또는 타의로 직무를 내려놓을 수 있으며, 직무를 내려놓는 순간 교회도 떠나야 합니다. 한 교회 안에서 교역자들은 직무를 수행하는 목적으로만 교역자 회의와 같은 모임을 조직할 수 있으며, 직무 수행과 무관한 모임들을 교회 안에서 조직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교인들의 다양한 교제 모임에 교역자가 지도자로서 초청받아 관여할 수는 있으나, 그 모임의 회원으로서 관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사모 모임, 비공식적·비정례적인 느슨한 모임이 바람직하다

교역자들은 직무 수행을 위해 부름받은 자들이기 때문에 직무 수행을 목적으로 하는 교역자들만의 조직, 곧 정례적인 교역자 회의 등을 조직해 운영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사모는 교회로부터 공적으로 직무를 부여받은 위치가 아니기 때문에 사모들만으로 직무와 관련된 모임을 조직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직무상의 조직이 아닌, 단순한 친교와 격려를 위한 사모들만의 정례적인 모임을 조직하는 것은 허용될 수 있을까요? 이때는 사모들의 남편 교역자들이 노회 소속으로서 직무 수행을 위해 보냄을 받은 자들이고, 사모들도 남편의 직무 수행의 결과에 따른 진퇴에 절대적으로 함께한다는 사실이 고려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사실을 고려할 때 사모들이 진퇴 문제나 공적인 직무 수행의 부담으로부터 자유로운 평신도들의 교제와 같은 모임을 구성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습니다. 야구 선수의 아내가 남편이 참여하는 경기의 승패 여부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는 것처럼, 사모는 남편 교역자의 직무 수행의 성패 여부에 직접적이고 절대적인 영향을 받고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한 교역자들 간의 위계가 현실적으로 상존하고 있는 한국 교회의 현실이 상황을 더 어렵게 합니다. 현재 한국 교회에서는 담임목사만이 교회헌법상으로 모든 권리와 지위를 보장받고, 부교역자는 교회헌법상으로 권리와 지위를 거의 보장받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부교역자는 임시직으로 임기는 담임목사의 의중에 따라 결정되며, 재정적 복지에 있어서도 담임목사와 현격한 차이가 납니다. 남편 교역자에게 위계질서와 복지적 상황의 현격한 차이로 인한 어려움이 있는 상황에서 사모들이 따로 모임을 갖고 진정한 친교와 위로의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따라서 사모들만의 정례화된 친교 모임은 사모들의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습니다. 물론 담임목사의 사모가 정말 따뜻한 마음으로 부교역자들을 돌보는 경우가 있기는 하겠지만, 이 같은 위로가 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사모들의 모임을 정례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필요할 때 우발적으로 그리고 자연스럽게 모여서 교제하고 위로하는 정도로 제한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사모 모임은 사모들에게 지나친 부담을 주어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해서 지나친 기대를 주어서도 안 됩니다. 따라서 사모 모임은 비공식적이고 비정례적인 느슨한 모임 정도로 두고, 사모들이 교회와 개인의 상황에 따라 탄력 있게 자신의 위치를 정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배우자 교역자의 직무에 기댄 위계적인 모임 되지 않도록 주의하라

비공식적인 사모 모임에서도 위계질서를 강요하거나, 선임 교역자의 사모가 후임 교역자의 사모에게 은연중에 지시나 명령에 따를 것을 요구하거나, 남편 목회자의 위치를 빌미로 삼아 어떤 훈계를 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합니다. 한국 교회의 현실에서 직무상 선임 교역자와 후임 교역자 사이에 어느 정도의 질서와 위계가 존재할 수 있습니다. 물론 교회 공동체의 성격상 이러한 질서와 위계도 사랑과 섬김이라는 틀 안에서 이루어져야겠지요. 그러나 이와 같은 직무상의 질서와 위계가 사모 모임까지 영향을 끼치게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이 일이 실제로는 매우 어렵습니다. 사모들은 남편 교역자의 직무에 직접적이고 결정적인 영향을 받기 때문에 남편 교역자의 직무와 분리해 동료 사모들을 대우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쉽지 않아도 반드시 남편의 직무 문제가 동료 사모들의 관계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의지적으로 노력해야 합니다. 교역자 사모 모임이 계급 관계가 철저한 군대 장교 부인들의 모임이나, 회사 직원 부인들의 모임, 재산과 지위를 철저하게 따지는 상류 계층의 천박한 모임과 같은 집단으로 전락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합니다.

사모 모임이 이와 같은 질서와 위계의 모임이 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하는 이유 두 가지를 짚어 보려고 합니다. 하나는 그와 같은 모임이 교회 공동체의 본질에 반하기 때문입니다. 교회 공동체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모시고(엡 5:23) 머리이신 그리스도에게 모든 지체가 동등한 입장에서 순종하는 공동체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모든 지체들 자체가 그리스도의 몸입니다(고전 12:27). 모든 지체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라는 로마서 10:12이나,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라는 갈라디아서 3:28의 말씀처럼 머리이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평등합니다. 교회의 모든 지체는 주이신 그리스도께 절대적으로 순종해야 하지만 같은 지체들끼리는 사회적 신분, 경제적 상태, 학력, 인종, 성별 등을 초월해 평등한 관계에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는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들에 대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존경(딤전 5:17)과 공적인 직무를 수행하는 교역자들 간의 기본적 질서와 위계를 제외하고는 모든 조직이 섬김과 사랑의 관계로 형성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사모 모임이 남편 교역자들의 직무에 기대어 위계적인 모임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특히 사모의 남편은 평신도가 믿고 존경하고 따르는 지도자이기 때문에 사모 모임은 공식적이지 않더라도 교인들에게 끼치는 도덕적이고 영적인 영향이 심대하다는 점을 유의해야 합니다.

사모 모임이 위계적 모임이 되어서는 안 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여성이 교회 안에서 차지하는 역할과 관련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4:34-35를 보면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라는 권고가 나옵니다. 35절은 “만일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지니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물론 이 말씀은 여자가 교회 안에서 말씀을 가르치거나 설교를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또한 고린도전서 11:5에는 “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 말씀 역시 교회 안에서 여자는 아예 입을 닫고 있으라는 뜻이 아닙니다.

특히 이 말씀은 고린도교회의 특별한 상황을 염두에 두고 주어진 것입니다. 앤소니 티슬턴에 따르면, 남자 지도자가 설교를 했을 때 설교 내용에 대해 의문을 가진 여자 성도가 공적인 예배에서 설교 내용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것을 자제시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설교는 질문하고 대답하는 시간이 아니라, 설교자가 말씀을 선포하면 성도들은 그 말씀을 듣고 순종하기로 결단하는 시간입니다. 이 점에서 선포로서의 설교는 자유롭게 질문하고 토론할 수 있는 성경 공부 시간과는 다릅니다. 따라서 의문이 있을 경우 그 자리에서 질문을 하여 무안을 주지 말고 집에 가서 남편에게 의문을 전달하고, 이후 남편이 설교자에게 가서 질문해 답변을 듣고 집에 와서 아내에게 설명하는 방식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결국 이 말은 여자 성도로서 설교자에 대한 예의를 지키라는 뜻입니다.

이 권고에서 주목해야 할 논점은 여성이 설교와 관련된 어떤 평가를 직접 하기보다는 남편과 협의해 가면서, 가능한 한 남편을 통해서 하는 것이 교회의 질서를 유지하는 데 바람직하다는 뜻입니다. 이 논점을 사모 모임에 적용해 보면, 선임 사모가 후임 사모에게 시정해 주고 싶은 어떤 요소가 있더라도 선임 사모가 직접 후임 사모에게 지적하고 말하는 것을 자제하라는 것입니다. 즉, 꼭 필요할 경우 남편 교역자에게 말하고, 남편 교역자가 후임 교역자에게 귀띔을 하는 방식으로 간접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서로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사모의 직업에 대한 탄력적인 대응 필요하다

한국 교회는 목회자 사모를 매우 인색하게 대우하는 좋지 않은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의 분위기는 “사모는 일체의 세상 직업이나 일을 해서는 안 되고 목회자를 내조하는 일에 헌신해야 한다”는 생각이 주류를 이루어 왔습니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사모는 교회의 일에 공식적으로 일체 관여해서는 안 되고 드러나지 않는 그림자와 같이 처신해야 한다”는 압박을 가하고 있습니다. 이 두 압박 사이에서 사모가 설 자리는 사실상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런 생각을 교정할 때가 되었습니다. 우선 사모가 세상 직업을 가지는 문제에 대해 교회는 조금 더 탄력 있게 대응할 필요가 있습니다. 교회로부터 공식적인 직무를 부여받지 못하고 교회 안에서 평신도들처럼 자유롭게 친교 모임을 가질 수도 없는 사모에게 세상에서 일할 수 있는 재능과 기회가 있을 때 이 일까지도 하지 못하도록 차단하는 것은 성경적인 근거도 없고 현실적이지도 못합니다.

두 가지 상황을 고려한다면 사모가 세상 직업을 가지고 일을 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첫째, 교역자가 교회로부터 받는 사례금이 너무 적어서 교역자 가족의 생활을 꾸려 가기가 어려운 경우입니다. 이 경우에 사모가 세상 직업을 수행할 재능이 있어서 일을 할 수 있다면, 교회는 양해해 주는 것은 물론 오히려 격려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비정례적인 사모 모임을 가지더라도 일을 하는 사모의 시간 사정에 맞추어서 모임을 가지는 배려가 필요합니다.

둘째, 신약 시대에 전임 사역자가 형성된 과정이 주는 의미를 새롭게 조명해 보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사역하는 교회로부터 사례금을 받지 않고 일을 해 자기 생활비를 충당하면서 사역을 했습니다. 신약 시대 형성 초기의 교회 지도자들인 장로들 역시 사례비를 받지 않고 사역을 했습니다. 그러다 교회가 부흥하고 규모가 커지면서 말씀 사역을 중심으로 하는 전임 사역자가 필요해졌습니다. 이때부터 전임 사역자는 교회로부터 사례금을 받아 생활비를 충당하면서 사역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두 가지 상황이 역사상에 모두 등장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일을 해서 생활비를 충당하면서 사역을 하는 방법과 교회로부터 사례금을 받아 생활비를 충당하면서 사역을 하는 방법 가운데 어느 한 가지만이 정답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즉, 두 가지 방법 가운데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는 교회의 상황이 결정합니다. 사도 바울이나 초기의 장로들처럼 생활비를 스스로 해결하면서 사역을 해야 하는 상황이 있고, 교회로부터 생활비를 지원받으면서 사역을 해야 하는 상황이 있습니다.

오늘날처럼 신앙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고 교회도 정상적인 규모를 갖춘 상황에서는 교회로부터 생활비를 지원받으면서 사역을 하는 것이 통상적입니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보면 오늘날에도 생활비를 스스로 충당하면서 교회 사역을 하는 경우가 매우 많습니다. 우선 대학생선교회(CCC)에서는 자비량 선교를 원칙으로 하고 있고, 복음 전파가 자유롭지 못하고 목회자들에 대한 정부 당국의 제재가 강한 나라들에서는 전문 직업을 가진 평신도가 자기 일을 하면서 선교나 교회 사역을 수행하는 것이 통상적입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의 현실도 일을 하면서 교회 사역을 수행하는 것을 통상적인 사역의 한 방법으로 고려해야 할 때라고 판단됩니다. 특히 한국 교회의 재정 현실을 들여다보면, 문제는 매우 심각해집니다. 한국 교회의 절반이 훨씬 넘는 교회들이 목회자의 생활비를 충당하기 어려운 미자립 상태에 있습니다. 이는 목회자 자신의 잘못보다도 사회의 경제 구조가 원인인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상 사회의 가장 빈곤한 계층에 속해 있는 미자립 교회의 담임 목회자나 부교역자가 사력을 다해 교회를 섬겨도 가족들의 생활비가 충당되지 않는 절박한 상황이기에 사모가 세상 직업을 가지고 일을 해서 생활비의 일정 부분을 충당하는 것은 불가피합니다. 목회자나 부교역자가 교회를 전임으로 섬겨도 생활비가 충당되지 않아 사모가 일을 해서 생활비의 일정 부분을 충당하면서까지 어려운 교회를 포기하지 않고 교회를 섬기는 것은 매우 소중히 여겨야 할 목양 활동입니다.
 

마무리하며

이제 정리하겠습니다. 사모 모임은 의무적이고 정례화해서는 안 되고 필요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모여서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는 모임의 범위를 넘어서지 않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사모는 교회의 직무를 공적으로 부과받은 남편 교역자와 진퇴를 같이 하지만, 사모에게는 공적인 직무가 부과된 일이 없으므로 공적인 직무에 직접 관여하거나 사모의 모임 안에 남편의 직무에 뒤따르는 질서와 위계가 구현되어서는 안 됩니다. 특히 남편 교역자가 교회로부터 필수적인 생활비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경우나 사모에게 전문적인 능력이 있어서 사회의 직업을 수행할 경우, 사모들의 모임은 이 사모를 소외시키거나 따돌리지 않고 배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상원 총신대학교 기독교윤리학과 교수. 네덜란드 캄펜신학교(Th.D.). 저서로 《기독교 윤리학》, 《21세기 사도신경 해설》등이 있다. 필자의 다른기사 keyboard_arrow_r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