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와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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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 2018년  05월호 은퇴 목회자는 교회를 떠나야 하나요? 목회자 고민 상담소(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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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기에는 삶을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회개할 것은 회개하고, 고칠 것은 고쳐 성화의 구별된 삶으로 진입하는 것이 은퇴기의 중요한 과제입니다
 


Q 30여 년 목회한 교회에서의 은퇴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은퇴 후 저의 출석 여부를 두고 성도들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후임 목사를 위해 제가 출석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몹시 서운한 마음이 듭니다. 은퇴해도 후임 목사와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많다고 생각하는데, 왜 교회를 떠나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은퇴하면 정말 교회를 떠나야 하나요?
 
A 목회자가 한 교회에서 30여 년 목회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목회에 대한 평가를 떠나서 한 교회를 위해 30여 년 섬겨 온 것은 하나님의 큰 은혜이자 기념할 만한 일입니다. 하지만 정작 은퇴 당사자인 목사는 깊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은퇴하는 순간 자신이 출석할 교회마저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이는 담임 목회자로 은퇴하는 이들의 매우 독특한 고민입니다.

교회는 출생부터 장례까지 모든 것을 위탁하는 평생의 공간입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은퇴와 동시에 교회를 옮겨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목사는 은퇴와 더불어 자신이 목회했던 교회를 떠나야 합니다. 후임 목사를 위해 낯선 곳으로 떠나는 것은 목회 윤리적으로 ‘당연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몸은 쇠약해지고 경제 활동은 어려워지는데, 그동안 쌓아 온 인간관계마저 끊으라고 하는 것은 너무나 가혹한 요구입니다. 직장이란 월급만 주는 곳이 아니라, 여러 친구와 동료는 물론 서로 겨루면서 지낼 수 있는 경쟁자, 심지어 부정적 감정을 가지고 있더라도 소통해야 하는 많은 적까지 만나게 해 줍니다.

마찬가지로 목사에게 교회는 성도들의 출생, 질병, 진학, 취업, 결혼, 장례 등 삶의 중요한 순간들을 함께 공유하는 장이었습니다. 그런 현장을 떠나야 하는 목회자의 소회는 남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 모든 기억들을 뒤로하고 떠나야 한다면, 그것은 목회자의 입장에서 자신의 팔을 끊어내는 아픔일 것입니다.
 

떠나라 & 보내라

결혼한 자녀들이 부모를 떠나야 하듯이 은퇴한 목회자도 사역하던 교회를 떠나야 합니다. 그래야 후임 목회자와 사역하는 교회가 잘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 교회에 두 담임 목사는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혼란스럽고 분열될 것입니다. 부교역자들은 우왕좌왕할 것이고,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렇기에 은퇴하는 목회자는 가능한 바로, 멀리 떠날 각오를 해야 합니다.

강력한 카리스마로 성도들의 영적 생활을 이끌어 온 목사가 은퇴 후에 자신과 친밀한 장로들을 통해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한 교회가 있습니다. 새로 온 담임 목사는 이전 교회에서 개척교회를 잘 성장시켜 천 명이 넘는 교회로 안정되게 이끌어 온 경험이 있는 목회자였습니다. 자신의 욕심보다 교회에 덕을 세우려 하고, 교회의 건물을 확장하는 것보다 청년이나 신학생을 양육해 다음 세대를 이끌어 갈 지도자를 키우는 데 더 많은 관심을 가진 훌륭한 목회자였습니다.

하지만 은퇴한 목사를 따르는 일부 장로들은 사사건건 담임 목사의 사역을 방해했습니다. 이전과 다른 점은 어떤 것이든 반대했습니다. 예를 들어 6년 사역 후 몇 달이라도 안식년을 줄 것을 요청하면, 그러한 전례가 없다고 거절했습니다. 목사가 어떻게 사역을 쉴 생각을 하냐며 훼방을 놓았습니다.

결국 7년 후 담임 목사는 자신을 더 환영해 주는 새로운 교회로 부임하게 되었고, 남은 교회는 소송과 분쟁에 휩싸여, 반대 장로들이 사회법에 의해 축출당하는 수모와 분열을 겪게 되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이 같은 드라마가 오늘날 너무나 흔하다는 사실입니다.

완전한 떠남은 완전한 위임을 가리킵니다. 떠나는 목회자는 신앙적이고 의지적인 결단으로 자신의 영향력 아래 있던 모든 개인이나 조직을 새 목회자에게 전적으로 위임해야 합니다. 옛날의 향수를 생각하며 몇몇 사람이라도 자신의 영향력 아래 붙들어 놓으려고 하는 것은 탐욕입니다. 어떤 면에서 세습은 떠나야만 하는 현실을 받아 들이지 않는 불안이며 불신앙입니다. 

떠난 교회로부터 자신의 영향력을 끊어야 합니다. 그것이 참된 떠남입니다. 간음과 같은 부도덕한 일들로 교회가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면 후임 목회자의 사역에 끼어들어서는 안 됩니다. 떠나는 것은 자신의 연락망과 영향력을 전적으로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초연히 자기 길을 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와 장로들을 은혜의 말씀에 의탁하고 홀연히 십자가의 길을 갔던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행 20:32).

후임 목사와 성도들의 새로운 교제와 효율적인 목양을 위해 은퇴 목회자는 잘 떠나야 하고, 교회는 잘 보내야 합니다. 먼저 은퇴 목회자는 은퇴 후 6개월 혹은 1년이라도 사람들의 연락이 닿지 않는 곳으로 휴가를 떠나는 것이 좋습니다. 존 파이퍼 목사도 아내와 함께 후임 목사가 자리를 잡는 동안 떠나 있다가 돌아왔는데 이는 리더십 이양에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또한 이런저런 통로로, 그럴 듯한 이유로 새 목회자와 갈등을 겪고 찾아오는 성도들이 있다면, 반드시 그들을 후임 목회자에게 돌려보내야 합니다. “아직도 내가 살아있다”라거나, “사람들은 여전히 나를 필요로 하는구나”라는 자기 위안을 거절해야 합니다. 설령 후임 목회자가 젊어서 시행착오가 있다 할지라도 은퇴 목회자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후임 목사 역시 성급하게 성도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 전임 목회자를 배척하는 데 힘을 쓰지 않아야 합니다. 담임 목회자가 은퇴 목사를 존경하면 성도들도 함께 사랑하며 존경할 수 있습니다. 잘 떠난 은퇴 목사는 자신의 목회에 위협의 대상이 아니라 최고의 동반자가 될 수 있습니다.

결혼한 부부가 부모를 떠난다고 해서 모든 인연을 끊어버리는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은퇴 목사를 존경하고, 어떤 모양으로든 그의 자리를 너그럽게 인정해야 합니다. 또한 그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수시로 성도들 앞에 표현함으로써 지난 30년의 사역이 더욱 풍성하게 기억되도록 성숙한 관계를 유지해야 할 것입니다.
 

말씀으로 직면하라

은퇴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자기 내면의 두려움입니다. 상실에 대한 두려움, 늙음에 대한 두려움, 외로움에 대한 두려움 등은 은퇴자와 가족을 사로잡습니다. 그 결과 은퇴자들은 가능한 한 변화를 적게 하고, 더 많은 것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려고 애쓰게 됩니다. 목회 세습이 그 대표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의 안정, 평안한 신앙생활 등 무슨 명분을 내세우더라도 거기에서 느껴지는 것은 은퇴자의 커다란 두려움입니다.

《목회상담사전》(Dictionary of Pastoral Care and Counseling, 이하 ‘DPCC’)에 의하면, “일은 사람으로 하여금 환상이 아닌 실제적인 물질의 세계, 생각과 과정과 사람들을 접촉하게 한다”라고 합니다. 인간은 일을 기준으로 활동과 쉼, 일과 놀이라는 시간의 틀을 만들고, 가정과 사무실과 우리가 이용하는 가게들의 공간을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은퇴하기까지 일을 중심으로 형성된 것들 중 무엇을 잃게 되고, 어떤 것을 그리워하게 될지 알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목사가 은퇴 후 가장 그리워할 것이 있다면 설교와 리더십일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설교하는 것은 엄청난 부담인 동시에 보람과 기쁨을 느끼게 해 주는 사역입니다. 또한 교회에서 일어나는 중요한 일들에 대한 최종 책임자이자 결정권자 역할 역시, 부담스럽고 중대한 것이지만 마음의 위로를 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은퇴는 그 모든 권한을 가져가 버립니다.

그러므로 은퇴는 그 자체가 “권한의 상실”(DPCC)입니다. 어떤 일에 대한 결정권, 다른 사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권위나 권한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결국 지금까지 자신을 지탱해 주던 교인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을 수 없게 되고, 가끔씩 기억하며 베풀어주던 감사의 표현도 사라지게 됩니다. 이 모든 것들이 은퇴를 앞둔 목사들을 두렵게 하고, 은퇴를 한 목사들을 외롭게 합니다. “이제부터 나는 교회 없이, 설교 없이, 돌보아야 할 성도 없이 어떻게 남은 일생을 살아갈 것인가?” 엄습하는 두려움을 때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거기에 숨겨진 불신앙입니다. 교회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교회이며, 그리스도의 몸이며, 성령의 전입니다. 교회를 이끌어 가는 주체는 하나님이십니다. 양떼 역시 주님의 것입니다. 목사는 주님의 몸을 섬기는 몸종일 뿐입니다. 그런데 은퇴 이후에도 지속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겠다고 하는 것은 종이 주인의 결정에 따르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스스로 방어책을 도모하는 것과 같습니다.

은퇴는 평생의 사역으로부터 쉬게 하시는, 주인 되신 하나님의 명령이며 소명입니다. 그런데 그 명령을 따르기보다 순리를 거스르며 자신의 영향력과 결정력을 유지하기를 기획하고 실행하는 것은 어쩌면 하나님과의 교제를 거절하는 것입니다. 평생의 사역을 되돌아보고, 회개할 것은 회개하며, 고칠 것을 고치고, 성화의 구별된 삶으로 진입 하는 것이 은퇴기의 중요한 과제입니다.

이처럼 은퇴는 목회자에게 주시는 믿음의 시험대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의 공급하심에 대해 설교했고 하나님과의 관계의 중요성에 대해 가르쳤는데, 나는 과연 내가 설교한 대로 살 수 있는가를 결단하는 시험대입니다. 반드시 통과해야 하고, 주인 되신 하나님의 합격점을 얻어야만 합니다.

물론 단순하거나 쉬운 일은 아닙니다. 우선 은퇴 감사예배와 담임 목사 위임예배가 있을 때, 사람들은 당연히 새 사람에게 몰려갈 것입니다. 이전에 받은 은혜를 다 잊은 것처럼 행동하는 성도들을 보면, 은퇴 목사는 낙심하거나 실족할 수 있습니다. 이전과 달리 성도들이 찾아오지 않으면 외로움과 절망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때 다음과 같은 질문을 자신에게 던져야 합니다. ‘지금껏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믿고 살아왔는데, 외로움이 대수인가?’, ‘언제는 외롭지 않은 적이 있던가?’, ‘굳이 은퇴 후에 내 존재감을 확인하면서 새롭게 사역의 꿈을 펼치는 사람과 교인들을 헷갈리게 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깨끗하게 손을 털고 일어나서 하나님 손에 자신의 미래를 맡기는 것이 큰 믿음의 사람들만 할 수 있는 일인가?’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 계십니다. 하나님은 평생 주님의 교회를 위해 일하다가 은퇴한 종들을 귀하게 보십니다. 하나님은 은퇴 목사의 필요를 아시고, 채워 주시는 분입니다.
 

은퇴는 새로운 소명이다

은퇴에는 이런 두려움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은퇴가 주는 유익은 말할 수 없이 큽니다. 무엇보다 은퇴는 “자신의 정체성을 재구성할 자유”를 줍니다(DPCC). 이제는 더 이상 한 지역 교회에 매인 목회자가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자유롭게 활용하며 사람들의 인정이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정의하는 인생을 선택해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은퇴는 인간을 인간답게 합니다. 지금껏 시간에 쫓겨 설교를 준비하고, 사람들의 요구에 일일이 부응해야만 하는 목회적 임무에 매여 있었다면, 이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부르심에 응해 속도를 조절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태껏 너무 빨리, 너무 급하게 달려왔다면 이제는 속도를 늦추고, 삶을 좀 더 깊이 관조할 기회를 얻는 것입니다. 은퇴 후에도 여전히 지속되는 가족들과의 관계에 집중하고, 그들을 위한 더 많은 기도, 그들을 사랑할 수 있는 더 많은 시간을 갖는 것이야말로 인생의 진정한 즐거움입니다.

이처럼 더 이상 타인이 요구하는 인생이 아니라, 나 스스로 자유롭게 구성하는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은퇴 생활의 긍정적인 본질이며 핵심입니다. 시간을 가지고 내면의 요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타인에 대한 배려로 지금껏 자제한 것들을 자유롭게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바로 은퇴입니다. 그러므로 은퇴는 목회나 직장생활의 연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관심과 취미와 즐거움을 솔직하게 찾는 기회입니다. 옛 생활에 미련을 두지 말고 새로운 생활을 향해 떠나야 합니다.

필자의 지도 교수인 미국 밴더빌트대학교의 밀러-맥리모어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하나님의 부르심과 소명은 평생에 걸쳐 여러 번 나타납니다. 많은 이들이 소명을 신학 공부를 시작하게 하는 일생 단 한 번의 부르심이라고 생각하지만 정작 한 개인의 삶에서 경험되는 하나님의 부르심은 아픈 부모를 돌보는 청소년들, 암으로 투병하는 환자들, 심지어 은퇴를 앞둔 사람들에게도 새롭게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은퇴는 새로운 소명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 목회자로 부르신 하나님의 소명에 대한 응답이었다면, 하나님은 이제 은퇴한 목사로 새로운 사명을 주십니다. 이전의 목회적 의무가 아닌 새로운 일, 새로운 기쁨, 새로운 관계로 불러들이십니다. 그러므로 은퇴하는 목사는 자신의 은퇴와 더불어 주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응답은 자발적이고 기쁘고 감사한 반응이어야 합니다.

은퇴는 관계의 새로운 부르심입니다. 옛 관계는 거두어 가시고 새로운 관계로 부르십니다. 은퇴한 목사가 우선 지키고 회복해야 할 것은 부부의 친밀감입니다. 그동안 일에 ‘중독된’ 목회자라면, 교회 사역 때문에 평생 소홀했던 부부관계에 더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합니다.

실제로 교회 사역에 매여 거기에 익숙한 나머지 아내와 단둘이 함께 있는 것을 매우 힘들어 하는 목회자들도 있습니다. 두 사람만 있으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대화를 어떻게 이끌어가야 할지 어색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은퇴는 더 이상 어색할 틈을 주지 않기에 서로에 대한 존중과 사랑을 표현해야만 합니다. 이처럼 가장 가까운 사람과 가장 신비로운 관계를 회복하고, 다시 누리는 관계의 즐거움이야말로 은퇴의 진정한 묘미입니다.

그러므로 목회자가 목양지를 떠날 때 보여 주어야 할 것은 지금까지 설교해 온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모습, ‘잘 떠나는 용기’ 있는 모습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떠날 때 하나님의 손에 모든 것을 맡기고 평안하게 떠나는 모습을 자손들에게 보여 주기 원하는 것처럼, 지금까지 섬겨 온 교회를 잘 떠나는 것이야말로 교회는 주님의 것임을 덕스럽고 아름답게 고백하는 모습일 것입니다.

하재성 고려신학대학원 목회상담학 교수. 밴더빌트대학교(Ph.D.). 저서로 《우울증, 슬픔과 함께 온 하나님의 선물》, 《강박적인 그리스도인》 등이 있다. 필자의 다른기사 keyboard_arrow_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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