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와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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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설교 2018년  02월호 설교적 주석, 이렇게 하라: 창세기 1-3장 채경락 교수의 설교적 주석(2)

지난 호에 필자는 설교적 주석(homiletical commentary)의 정의와 필요성, 지면 구성과 활용법 등 설교적 주석의 원리를 개략적으로 소개했다. 이제 그 원리를 바탕으로 창세기 1-3장을 본문으로 실제 설교적 주석을 시도하겠다. 먼저 본문은 장별로 자르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사람 창조를 소개하는 1:26-28은 그 무게감으로 인해 별도 구획으로 구분했다. 설교적 주석은 일반 주석과의 협업을 전제로 하기에, 본문 해설은 최대한 간략하게 하고, 설교 구상을 다양하게 소개하는 데 집중하고자 한다.

창세기 1장

천지 만물의 기원을 소개하는 본문이다. 태초에 하나님이 계셨고, 그 하나님이 말씀으로 우주 만물과 사람을 창조하셨다. 6일 구획으로 천지 만물의 창조를 개괄하는데, 인상적으로 반복되는 구절이 둘 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니 그대로 되니라”와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이다. 전자는 하나님의 전능한 능력이 만물을 창조했음을 강조하고, 후자는 그 결과로 창조된 세상이 너무나 아름답고 완전했다는 의미로 읽힌다. 이는 온 우주 만물의 배후에 창조주 하나님이 계심을 보여준다.

●  설교 구상 1
창세기의 첫 구절의 의미를 묵상하는 설교가 가능하다. 창세기 1:1은 단지 한 절이라고 하기에는 품고 있는 의미가 거대하다. 창세기 1장 전체를 이끄는 구절이기도 하고, 심지어 성경 전체를 이끄는 머리 구절이다. 우주의 기원과 창조주를 소개함은 물론 우리의 삶을 완전히 변화시키는 구절이라고 설교할 수 있다.

우산 질문   창세기 1:1은 어떤 구절인가?
구절 혹은 단락에 담긴 의미가 무엇인지를 묻고 답하는 형식의 설교다. 한 절이지만 그 무게감은 열 절, 심지어 한 권에도 뒤지지 않는다는 서론 후에 이 한 절이 담고 있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묻고 답하는 흐름이다. 

대지 1       우주의 기원을 소개하는 구절이다.
인간을 포함해 온 우주 만물이 어디서 왔는지를 설명하는 구절이다. 성경은 우주 만물이 창조의 열매라고 선포한다.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의도적인 창조의 결과물이다. 이 한 절을 믿는다는 것은, 내가 우연 속이 아니라 누군가의 창조물 속에 살고 있음을 고백한다는 의미다. 

대지 2       우주의 주인을 소개하는 구절이다.
대지의 강세는 ‘주인’에 있다. 창세기 1:1은 온 우주 만물의 주인을 소개하는데, 바로 하나님이다. 그분이 만물의 주인이신 이유는 만물을 그분이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권리는 돈을 주고 획득한 소유권이 아니라, 무에서 유로의 창조를 통해 주어진 무한 주권이다.

대지 3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는 구절이다.
이는 앞서 소개한 첫째와 둘째 대지의 실존적인 적용이다. 직설형으로 사실(우리의 삶을 흔들어 놓는다)을 소개하지만, 의미를 새기건대 당위의 명령(우리의 삶을 흔들어 놓아야 한다)이다. 창세기 1:1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만물의 창조주와 나 자신의 창조주로 인정한다는 의미다. 성경의 첫 구절인 창세기 1:1에 기초한 삶을 살자는 결단으로 설교를 마무리할 수 있다.

●  설교 구상 2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를 고백하는 설교도 가능하다. 구상 1의 설교가 창조주 하나님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이번 설교는 그분이 창조하신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를 묵상하는 설교다. 설교의 중심에는 여전히 하나님이 계신다. 다만 설교 전면에 내세운 세상을 매개로 하나님을 고백하는 설교로 볼 수 있다. 반복되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라는 구절은, 하나님이 창조한 세상이 얼마나 아름답고 완전한지를 선포한다. 가장 마지막에 사람이 창조되는데, 하나님은 사람이 살기에 적합한 세상을 창조하셨다.

창세기는 과학 논문이 아니라 신학적인 선포다. 과학의 언어로 분석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설교자의 더 큰 소임은 저자가 선포하는 메시지를 발굴해 전달하는 것이다.

우산 질문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떤 세상인가?

대지 1     창조된 세상이다.
이 세상은 우연히 존재하는 곳이 아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이다. 주인이 있는 세상이라는 의미다.

대지 2     아름답게 창조된 세상이다.
창조의 구획마다 하나님은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선포한다. 혼돈하고 공허하던 우주가 아름다운 질서가 되었다. 6일 창조의 구획과 배분 자체가 세상이 얼마나 정교하게 창조되었는지를 보여 준다.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은 아름다움과 선함이 가득한 세상이다. 자연의 신비가 하나님의 솜씨를 드러낸다.

대지 3     우리를 위해 창조된 세상이다.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자는 메시지를 담은 대지다. 하나님은 창조의 마지막 순간에 인간을 창조하셨다. 이는 앞선 만물의 창조가 사실상 우리를 위한 창조였다는 의미다. 한 설교자는 6일 창조를 장차 태어날 아기를 위해 어미가 아기 용품을 구입하고 아기 방을 꾸미는 모습에 비유했는데, 참으로 절묘한 비유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살고 있다. 우리를 위해 이 아름다운 집을 만들어 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자.

●  설교 구상 3
유사한 내용을 조금 다른 언어로 구성할 수도 있다. 설교의 다양성은 선포되는 메시지보다 담아내는 언어와 초점의 다양성에서 기인한다. 그런 의미에서 설교자는 한 신학자가 말한 대로 시인이 되어야 한다.

우산 질문   창세기는, 특히 1장은 어떤 본문인가?

대지 1      세상의 주인을 소개하는 본문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우연히 존재하는 무주공산이 아닌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이다.

대지 2      그분의 능력과 지혜를 소개하는 본문이다.
하나님은 온 세상을 말씀으로 창조하셨다. 기적이라는 말로도 부족할 만큼 하나님은 엄청난 능력을 소유하신 분이다. 온 우주 만물은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선포하고 찬양한다.

대지 3      우리를 향한 그분의 사랑을 소개하는 본문이다.
창조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뿐 아니라 우리를 향한 그분의 사랑을 발견한다. 자연의 신비는 우리를 향한 창조주 하나님의 세밀한 사랑이다.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의 신비하고도 세밀한 사랑 안에 살고 있다. 그분을 찬양하고 감사하는 하루를 보내기 바란다.

창세기 1:26-28

사람의 창조는 다른 피조물들의 창조와 확연하게 구별된다. 다른 피조물들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되었다는 사실만 담백하게 소개된다면, 사람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묵직한 언어와 함께 창조의 목적까지 웅장하게 기술된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라는 명령과 더불어, 하나님이 창조하신 만물을 다스리는 자로 세움을 받는다. 이 본문에 기초한 설교는 필연적으로 ‘하나님의 형상’에 담긴 의미에 상당한 비중을 두어야 한다.

●  설교 구상 1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를 정리하는 설교가 가능하다. 우리는 진화의 산물이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한 존재임을 선포해야 한다. 이어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대표되는 인간 존재의 독특함을 선포하면 되는데, 존귀함과 사명으로 정리할 수 있다. 다른 피조물과 달리 인간에게만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거룩한 이름이 붙여지는 것은 그만큼 인간이 존귀한 존재라는 의미다. 또한 형상에는 대리자(vicar)의 의미도 포함되는데, 이는 인간으로 하여금 피조물들을 다스리게 하자는 말씀으로 실천된다.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묻고, 대답하는 설교가 좋겠다. 

우산 질문   우리는 어떤 존재인가? 성경의 인간관은 무엇인가?

대지 1      우리는 창조된 존재다.
우리는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창세기는 인간을 우연의 산물로 보는 진화론을 거부한다. 우리는 창조주의 계획과 정교한 빚음으로 창조된 존엄한 존재다. 우리는 자연 안에 살지만, 자연이 빚어낸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물이다.

대지 2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존귀한 존재다.
창세기는 오직 인간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음을 강조한다. 하나님은 당신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드셨다. 그만큼 존귀한 존재라는 의미다. 이는 모든 인간에게 적용된다. 나 자신은 물론이요, 모든 사람을 존귀하게 대할 필요가 있다.

대지 3     우리는 사명이 있는 존재다.
우리에게는 창조주께서 주신 사명이 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고, 땅과 바다와 하늘의 모든 생물을 다스리는 사명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 세계의 관리자로 세움을 받았다. 형상은 대리인을 뜻하기도 한다. 이처럼 우리에게는 하나님을 대신해 자연을 잘 관리하고 아름답게 가꿀 사명이 있다.

●   설교 구상 2
위의 설교에 구속사적 진전을 가미할 수도 있다. 본문에서 인간 존재 일반에 대한 메시지를 선포한 후, 신약으로 넘어가 그리스도인에 대한 선포로 나아갈 수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고, 존귀하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며, 땅끝까지 이르러 예수의 증인이 되라는 사명을 받았다(고후 5:17-19, 롬 8:15-17, 행 1:8) .

중간 질문   나아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어떤 존재인가?

대지 1      우리는 새롭게 창조된 존재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다(고후 5:17). 이전 것은 지나갔고, 이전보다 더욱 정결하고 온전한 새로운 피조물이다.

대지 2       우리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롬 8:15).

대지 3       우리는 거룩한 사명을 받은 존재다.
온 세상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사명(고후 5:18), 땅끝까지 이르러 예수의 증인이 되는 사명(행 1:8),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고 주의 교회를 세우는 사명을 받았다(마 28:19-20).

●  설교 구상 3
사명에 초점을 맞춘 설교도 가능하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사명을 주셨다는 것은, 그 사명에 대한 결산이 있음을 의미한다. 예수님의 달란트 비유와 므나 비유 등은 주께서 우리의 삶을 결산하실 날이 있음을 묵직하게 선포한다.

우산 질문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대지 1       형상은 존귀함이다.
우리는 다른 피조물과는 구별되는 존귀한 존재다.

대지 2       형상은 사명이다.
우리는 사명이 있는 존재다. 형상은 대리자를 의미하기도 하는데, 하나님은 대리자에게 만물을 다스리는 사명과 그리스도의 대리자로 복음으로 세상을 새롭게 하는 사명을 주셨다.

대지 3       형상은 책임이다.
형상은 하나님 앞에 책임 있는 존재라는 의미를 품고 있다. 사명을 주신다는 것은 결산의 날이 있음을 의미한다. 달란트 비유와 므나 비유 등을 통해 주님은 우리의 삶을 셈할 날이 있음을 엄중히 선포하신다. “착하고 충성된 종”에게는 영광스러운 상을 약속하셨고, “악하고 게으른 종”에게는 엄중한 형벌을 경고하셨다.

●  설교 구상 4
조금 더 따뜻한 언어로 접근하는 설교도 가능하다. “각기 종류대로”(11, 12, 21, 24, 25절)라는 구절에 빗대어 각자의 고유성을 강조할 수도 있고, 사명이라는 부담스러운 언어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기대라는 부드러운 언어로 대체할 수도 있다. 본문의 메시지를 타협해서는 안 되지만, 담아내는 언어는 대상과 상황, 그리고 의도에 따라 적절한 조절이 가능하다.

“각기 종류대로” 혹은 “종류대로”는 채소, 새, 생물들에게 붙여진 수식어지만, 필자는 각 피조물을 고유하게 창조하시는 창조의 원리로 확대 해석했다. 하나님이 각 사람을 고유한 존재로 창조하셨다는 것은 신약을 통해서도 확인되는 바다(고전 12장). 비교의식을 품기보다 각자에게 주신 은사와 소명대로 사명에 충성하라는 메시지가 가능하다.

우산 질문   우리는 어떤 존재인가?

대지 1      우리는 창조된 존재다.
우리는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존귀하신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준비하시고 때가 되어 창조하신 고귀한 존재다.

 대지 2    우리는 고유하게 창조된 존재다.
우리는 복제품이 아니다. 고유한 생김과 고유한 은사를 선물로 받은 고유한 존재다. 하나님은 각 생물을 “각기 종류대로” 창조하셨는데, 이는 한 사람 한 사람을 각각 고유한 존재로 창조하셨다는 의미로 받을 수 있다. 나와 네가 서로 다른 것은 내가 너보다 낫거나, 네가 나보다 우월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 각자가 고유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대지 3      우리는 기대를 품고 창조된 존재다.
앞서 우리를 사명이 있는 존재라고 소개했는데, 이는 곧 우리는 창조주의 기대를 받는 존재라는 의미다. 창조주는 기대를 품고 우리를 창조하셨다.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을 뒤로하고 하늘로 올라가셨다. 야속한 떠남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이면에는 우리를 향한 기대가 있다.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주님의 기대에 부응하는 삶을 살기를 바란다.

창세기 2장

6일 창조가 마무리되고 일곱째 날에 하나님은 안식하셨다. 이것이 오늘까지 주간 단위의 기초가 되고 있다. 7일 단위 주간 사이클은 필연적으로 창세기의 창조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하나님이 에덴동산을 창설하시고 사람을 거기에 두심으로써 창조 사역이 일단락되는 듯 보인다. 그런데 6일 창조에서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은 어두운 언어가 도입된다. 바로 “좋지 아니하니”이다(18절). 모든 것이 아름답고 완벽한 창조였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지 않은 것이 있었으니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었다. 이에 하나님은 아담의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의 아내가 되게 하셨다. 창조주 하나님은 남자가 부모를 떠나 아내와 합하여 한 몸을 이루는 결혼의 원리를 선언하신다. 이로써 하나님의 창조가 아름다운 완성에 이른다.

●  설교 구상  1
결혼과 가정의 의미를 정리하는 설교가 가능하다. 창조의 정점에서 가정이 탄생했다. 하나님의 6일 창조가 완성되는 시점에 사람이 창조되었고, 연이어 결혼과 가정의 설립으로 창조가 완성된다. 결혼과 가정은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사명의 완수를 위해 필연적인 조건이었고, 이면에는 사람 행복의 원천이라는 의미도 흐른다.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는 생육의 기능적인 측면을 넘어, 정서적인 행복을 염두에 둔 문구로 보인다. 설교를 통해 결혼과 가정의 의미를 묵직하게 선포할 필요가 있다.

우산 질문    가정이란 무엇인가?

주제 선언    가정은 창조의 완성이다.
하나님은 6일 창조 동안 모든 것이 보시기에 좋다고 선언하셨는데, 오직 하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은 좋지 않다고 말씀하셨다. 아름다운 창조에 일종의 결함이라는 인상을 풍긴다. 이에 하나님은 아담의 갈비뼈로 여자를 지으셨고, 둘이 합하여 가정을 이루게 하셨다. 이로써 하나님의 창조가 완성된다. 가정의 의미를 결코 가벼이 여기지 말라. 하나님의 만물 창조를 완성하는 정점이었다.
중간 질문   어떤 의미에서 그러할까? 가정이 우리에게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대지 1      가정은 행복의 원천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행복을 바라시는 분이며, 그래서 우리에게 가정을 선물하셨다. 하나님은 함께함의 행복을 잘 아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홀로 존재하는 고독한 하나님이 아니라, 삼위의 아름다운 연합으로 존재하신다. 함께하는 연합 안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이다. 아담이 혼자 있는 것을 보신 하나님은 그를 위해 여인 하와를 지으시고 둘이 합하여 행복의 원천인 가정을 이루게 하셨다.

대지 2      가정은 사명 공동체다.
창조주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사명은 혼자서는 이룰 수 없다. 부부의 사랑 안에서 생명이 탄생하도록 하심은 하나님의 창조의 신비하고도 절묘한 아름다움이다. 출산과 자녀 양육은 창조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이다. 구속사의 진전을 따라 더 큰 사명이 있으니, 주님 안의 한 가족인 교회를 이루는 것이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마 12:50)라고 말씀하셨다. 우리의 가정이 행복의 원천과 더불어 주께서 주신 거룩한 사명을 이루는 팀이 되기를 바란다는 권면으로 설교를 마무리할 수 있다.

●  설교 구상 2
행복한 가정을 위한 실천적인 적용을 중심으로 설교할 수도 있다. 23-25절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결혼 제도 설립 과정에서 드러난 행복한 가정의 원리를 정리하는 설교다. 서론을 통해 하나님이 가정을 행복의 울타리로 주셨음을 선포하고, 이어서 구체적인 실천을 묻고 답하는 흐름이다. 본문은 서술적(indicative) 언어로 기록되어 있지만, 설교에서는 당부형(imperative) 언어로 바꾸었다.

주제 선언   가정은 행복의 원천이다.
창조주 하나님은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않다고 말씀하시며, 남자의 갈비뼈로 여자를 만드신 후 가정을 이루게 하셨다. 이러한 사실은 사람의 행복에 가정이 차지하는 자리가 결정적일 수 있음을 가리킨다.

우산 질문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길은?

대지 1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하라.
아담은 아내를 향해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라고 노래한다. 아가서가 떠오르는 아름다운 사랑의 노래다. 이는 에베소서 5장의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고, 남편은 아내를 위해 희생하고 사랑하라는 가르침으로 이어진다.

대지 2      서로를 최우선으로 여기라.
“부모를 떠나”라고 하시는데, 부모를 무시하거나 버리라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독립된 인격체로서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룬” 가정을 소중히 여기라는 의미다.

대지 3      서로의 모든 것을 나누고 인정하라.
한 몸이 되었으니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이는 서로 모든 것을 나누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창세기 3장

뱀의 유혹에 넘어간 아담의 범죄로 인해서 인간에게 죽음이 선포되는 장면이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이하 선악과)는 성경의 독자들에게 꽤나 골칫거리다. 말씀을 어긴 아담이 아쉽지만, 애초에 그런 나무를 만드신 하나님의 의중이 궁금하다. 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왜곡되자,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도 핑계와 떠넘기기로 이반되고, 자연과의 관계 역시 가시덤불과 엉겅퀴로 일그러진다. 생령이었던 사람에게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는 두려운 선포가 떨어진다. 어두운 타락 사건 속에도 한 줄기 굵직한 소망의 빛이 비치니, 하나님은 여자의 후손을 통해 뱀의 후손을 격파하실 것을 선언하시고, 작은 상징으로 보이는 가죽옷을 지어 아담 부부에게 입히신다.

●  설교 구상 1
하나님이 선악과를 만드신 이유를 묻고 답하는 설교가 가능하다. 우리가 하나님을 모셨다는 증거, 혹은 우리가 그분을 우리의 주님으로 모셨다는 표징이 무엇일까? 필자의 판단으로는 그분 때문에 못하는 게 있어야 한다. 내 맘대로 다할 수 있다면, 그분은 어쩌면 우리와 상관없는 존재다. 선악과는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모시는 통로였다.

우산 질문   하나님이 우리에게 선악과를 주신 이유가 무엇일까?

주제 선언   선악과는 우리에게 하나님을 주시는 매개였다.
내가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고, 하나님이 나의 주인임을 드러내는 증표다. 하나님 때문에 이전에 하지 못하던 일을 능히 할 수 있는 것도 귀하지만, 하나님 때문에 이전에 마음대로 하던 일을 이제는 금하는 것도 그분과의 관계에 있어 너무나 소중하다.

중간 질문   선악과의 의미를 우리의 삶에서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

대지 1      시간의 선악과로 하나님을 나의 주로 모시라.
주님을 모셨기에 내 마음대로 안 쓰는 시간이 있기를 바란다. 구약 시대 안식일은 시간의 선악과였다. 우리 시대에도 그 원리는 변함이 없다. 자유함 속에서도 주님께 매이는 시간이 필요하다.

대지 2       재물의 선악과로 하나님을 나의 주로 모시라.
내 지갑의 돈을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다면, 자유로운 인생일지 모르나 주인이 없는 삶이다.
모든 재물이 주님께로부터 왔음을 고백하는 십일조는 재물의 선악과였다. 지금도 그 원리는 계속되어야 한다.

●  설교 구상 2
타락 장면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을 정리하는 설교도 가능하다. 지극히 작은 선악과 하나가 인류의 타락이라는 거대한 불행을 몰고 왔다. 작은 틈이 모든 것을 무너뜨릴 수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사건이다. 본문 설명을 통해 이처럼 작은 틈이 모든 것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교훈을 확보하고, 이를 삶의 원리로 구체화하는 흐름이 좋겠다.

우산 질문   본문이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주제 선언   작은 틈이 모든 것을 무너뜨릴 수 있다.
온 인류의 타락이 사소한 과일 하나, 사소한 불순종 하나에서 나왔다. 작은 불순종 하나가 온 인류를 타락으로 끌어내렸다.

중간 질문   우리마음에 새겨야 할 삶의 다짐은 무엇인가?

대지 1      작은 타협을 크게 여기라.
‘이 정도쯤이야’ 하는 가벼운 생각이 삶을 파국으로 몰고 갈 수 있다. 치명적인 유혹은 언제나 사소하고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작은 것은 결코 작지 않다.

대지2      작은 실천도 크게 여기라.
우리의 진심을 담았다면, 주님 앞에서 작은 일은 없다. 작은 헌신도 없고, 작은 정성도 없다. 강도의 작은 고백이 영원한 구원으로 이끌었고, 아이들의 작은 도시락이 주님의 손에 잡힐 때 오천 명을 먹였다.

●  설교 구상 3
아담과 하와의 모습을 통해 내 안에 있는 죄인의 모습을 더듬어 가는 설교도 가능하다. 타락 사건에서 두 사람이 보여 준 태도는 전형적인 죄인의 모습이다. “반드시 죽으리라”(2:17)라는 주의 말씀을 임의로 “죽을까 하노라”(3:3)라는 가벼운 언어로 바꾸는 태도가 그러하고, 정직하게 회개하지 않고 서로에게 잘못을 떠넘기는 비겁함도 그러하다. 우리 안에 그런 모습은 없는지 돌아보고 회개하자는 권면의 메시지다.

우산 질문   아담이 보여 주는 타락한 죄인의 모습은 어떠하였는가?

대지 1      말씀을 가볍게 여기는 태도다.
주님은 분명히 선악과를 먹을 시에는 “반드시 죽으리라”고 말씀하셨지만, 하와는 뱀 앞에서 이를 “죽을까 하노라”로 바꾸어 버렸다. 죄인은 주님의 말씀을 진중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함부로 경감시킨다.

대지 2     교만한 욕심이다.
하와는 “하나님과 같이” 되리라는 사탄의 말에 넘어갔다. 하나님의 거룩함을 좇아가는 것과 하나님의 자리를 탐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이다. 우리는 주님을 따라가되 주님이 되려고 하면 안 된다. 누군가의 자리를 탐하고 비교의식과 과도한 경쟁의식에 사로잡힐 때, 우리 안에 죄성이 발동한다.

대지 3     비겁한 핑계다.
아담은 하와 핑계를 대고, 하와는 뱀 핑계를 댈 뿐 결코 스스로의 잘못을 회개하지 않는다. 이처럼 죄인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자기 죄를 모르고 회개하기를 싫어한다는 것이다. 핑계를 대기보다 정직하게 회개하는 사람이 되자는 권면으로 설교를 마무리할 수 있다.

●  설교 구상 4
죽음에 대한 설교도 가능하다. 창세기 3장은 인간의 타락과 함께 우리에게 죽음의 기원을 알려 주는 본문이다. 창조 시의 에덴동산에는 죽음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데, 죄와 함께 죽음이 들어왔다. 성경이 가르치는 죽음은 생로병사의 자연스러운 귀결인 자연사가 아니라 죄에 대한 형벌로서의 사형이다.
여기에 복음이 있으니, 자연사는 원리상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지만, 사형은 죄만 해결되면 철회될 수 있다.

우산 질문   죽음이란 무엇일까? 성경이 가르치는 죽음은 무엇인가?

대지 1      죽음은 죄에 대한 형벌이다.
창세기 3장에 의하면, 죽음은 건강의 약화나 수명의 다함이 아니다. 그것은 선포된 죽음이 실행되는 방식일 뿐, 죽음의 기원은 죄에 대한 형벌이다. 말씀을 어기고 죄를 범했고, 그 죄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로 죽음이 언도되었다. 

대지 2       죽음은 중간에 끼어 든 불청객이다.
창조 시의 에덴동산에는 죽음의 향취가 느껴지지 않는다.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생명이 흘러넘치는 곳이었다. 그런데 죄와 함께 죽음이 들어온다. 죽음은 인간 존재에 내재된 본질이 아니라, 중간에 끼어 든 불편한 손님이다.

대지 3       죽음은 철회될 수 있다.
죽음은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 아니다. 형벌이기에 철회될 수 있고, 중간에 들어온 손님이기에 물리칠 수 있다. 창세기 3:15의 복음은 우리의 죽음을 철회하기 위한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출발이다. 죽음을 운명이라고 말하지 말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죄가 해결될 때, 우리는 부활 생명으로 회복될 것이다

마무리하며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라는 말씀에서 불현듯 설교자가 떠오른다. 설교자 홀로 고군분투하는 것은 효과적이지 않고 아름답지도 않다. 돕는 배필은 설교자와 그의 과업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기존의 많은 주석과 더불어 설교적 주석도 설교자를 돕는 요긴한 자료가 되길 바란다.

다만 설교자를 돕는 일이 과할 경우, 자칫 설교자를 게으르게 만들거나 설교의 정도를 흐트러뜨리는 결과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든다. 자료의 특성도 한몫하겠지만, 결국은 활용하는 설교자의 열심과 태도가 결정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채경락 고신대학교 설교학 교수. 미국 남침례신학교(Ph.D.). 저서로 《쉬운 설교》, 《설교자들이 알아야 할 절기와 상황 설교》 등이 있다. 필자의 다른기사 keyboard_arrow_r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