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와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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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 2018년  02월호 헌금 설교, 어떻게 해야 할까요? 목회자 고민 상담소(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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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어렵다고 헌금 설교를 중단해 버리면, 교회는 균형 잡힌 성장을 할 수 없게 됩니다.


Q신앙의 성숙에 있어서 물질이나 시간을 헌신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헌금 설교를 할 때, 부담감이 있습니다. 목회자의 입장에서 헌금이 교회의 운영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주기에 사심이 들어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헌금 설교 자체를 싫어하고 불편해하는 교인들이 있습니다. 오죽하면 교회에 빚이 있거나 건축을 시작하면 교인들이 많이 떠난다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헌금 설교, 어떻게 해야 할까요?

A한국 교회의 교인들은 어느 나라 교인들보다 헌신적으로 헌금을 해 왔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목회자들은 교인들의 헌금을 통해 풍요로워진 교회 재정을 정직하고 투명하고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운영하는 데 거듭해서 실패했습니다. 실제로 대형 교회들의 불투명한 교회 재정 운영, 담임 목회자의 독단적인 교회 헌금 사용(私用), 턱없이 높은 목회자 전별금, 무리한 예배당 건축 등으로 사회의 따가운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목회자들은 안일한 태도로 이 같은 비판과 의문 제기를 묵살해 왔고, 잘못된 관행을 답습해 왔습니다. 계속되는 재정 남용과 불투명한 재정 사용은 급기야 무서운 철퇴가 되어 돌아오고 있습니다. 한국의 역대 정부들은 정교분리원칙에 따라서 교회 재정 운영에 일체 관여하지 않는 전통을 유지해 왔습니다. 이 전통은 교회에 대한 도덕적 신뢰에 바탕을 둔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의 재정 비리에 대한 누적된 소문들과 악화된 여론은 교회에 대한 국가의 도덕적 신뢰를 거두어들이게 만들었습니다. 마침내 정부는 종교인 과세와 종교 활동비 보고라는 칼을 빼들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과세는 근거가 정확해야 하고 보고는 정직해야 합니다. 때문에 과세의 근거가 명확하지 않고 보고가 정직하지 않다고 의심이 들 경우, 언제든지 국가가 세무 조사의 형태로 종교계 내부의 재정에 관여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이른바 국가의 종교 사찰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교회의 재정 운영에 대한 불신이 교회 안팎에 깊고 넓게 퍼져 있는 현실에서 목회자들이 헌금 설교를 하는 것은 매우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헌금 설교의 설득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고, 쉽게 곡해될 수 있으며, 교인들의 반응은 냉랭하게 얼어붙고 있습니다. 게다가 대학과 사회의 이념적 환경이 반기독교화되면서 성도들의 교회에 대한 헌신과 열정이 약화되고, 높은 실업률로 인해 성도들의 경제력이 많이 약화된 것도 헌금 설교를 어렵게 합니다.

하지만 상황이 어렵다고 헌금 설교를 하지 않거나 중단해 버리면,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복의 장치 하나가 부당하게 사장 되는 것이며, 교회는 균형 잡힌 성장을 할 수 없게 됩니다.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 6:21)라는 말씀을 고려할 때, 성도들이 우리의 몸(삶 전체)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롬 12:1) 헌신적인 신앙생활을 하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을 위해 재물을 드리는 일을 소홀히 할 수가 없습니다.

현세 안에서 영위되는 인간의 삶에 끼치는 돈의 영향은 막강합니다. 돈은 인간의 신체적 생명의 존폐 여부를 결정하는 위력을 지닙니다. 생명의 유지에 필요한 모든 것을 돈으로 살 수 있으며, 중병에 걸린 경우에도 치료에 필요한 돈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사느냐 죽느냐가 결정됩니다. 돈은 풍요롭고 넉넉하게 사는가, 아니면 궁핍하게 사는가도 결정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도 돈이 뒷받침되어야 진행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돈을 기독교인과 교회의 신앙생활에서 배제하면, 전인적이고 통전적인 신앙생활과 교회 운영은 어렵게 됩니다.

한국 교회가 다른 나라의 교회들보다 빠르고 견실한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이유들 가운데 하나는 자발적 헌금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한국 교회는 일찍이 중국 선교사 네비우스의 선교 정책을 채택했는데, 그 핵심은 한국 교회 교역자의 생활비는 한국 교회 교인들이 자발적으로 낸 헌금으로 충당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곽안련은 한국 교회에서 네비우스의 재정 자립 정책은 성공적으로 정착되었고, 한국 교회의 재정 자립과 이에 근거한 성장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고 평가했습니다. 한국선교회가 재정 자립을 강조한 이유는 어떤 외국 선교국이나 교단도 현지 교회를 영원히 보조할 수 없으며, 따라서 자립하지 않은 교회는 언젠가 사멸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네비우스 선교 정책의 채택은 자발적 헌금을 강조하는 전통과 직결되는 바, 이 전통은 미래의 한국 교회가 계승해 나가야 할 훌륭한 전통입니다.

지금까지 간략하게 분석한 내용에 근거할 때, 현재 한국 교회의 헌금 설교는 상반되는 인상을 주는 두 가지 요소를 조화시켜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첫째로, 목회자의 부정직하고 독단적인 교회 재정 운영에 대한 교인들의 불신과 마음의 상처가 매우 깊고 넓다는 점이 고려되어야 합니다. 이와 같은 고려는 헌금 설교를 주저하게 만듭니다. 둘째로, 이런 상황 속에서도 교인들의 자발적 헌금을 강조해 온 네비우스 정책의 흐름을 손상시키지 않고 계승해 나가야 합니다. 그렇다면 헌금 설교를 주저하게 만드는 현실 속에서 어떻게 하면 헌금 설교를 설득력 있게 계속할 수 있을까요?

교인들에 대한 배려

목회자는 무엇보다 먼저 교인들이 교회의 부정직하고 독단적인 재정 운영에 대해 깊은 불신과 상처를 안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합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바울이 보여 준 헌금에 대한 태도와 함의가 무엇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바울은 세 차례의 선교 여행을 하는 동안 사례금을 받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사역하던 현장을 떠난 이후에 교회가 보내 준 선교후원금은 감사한 마음으로 받았으나, 사역하는 동안에는 교회로부터 사례금을 받지 않고, 장막을 만드는 고된 작업을 하여 생활비를 해결했습니다. 바울이 교회에 생활비 지원을 요청할 자격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고전 9:1-15; 살전 2:7; 살후 3:8-9) 일체의 생활비를 요구하지 않았던 이유는 교인들의 영적 수준을 배려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사역했던 지중해 지역에는 방랑 설교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청중의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궤변적인 강설들을 늘어놓는 대가로 돈을 벌어들이는 자들이었습니다. 바울의 사역은 이러한 방랑 설교자들의 사역과 같은 것으로 오해될 위험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바울이 설립한 교회 교인들은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초신자였습니다. 교인들이 교역자의 생활비를 담당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필요한 자들이었습니다. 이러한 성도들에게 시험거리가 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기 위해 바울은 자비량 사역을 선택한 것입니다.

바울의 상황과 현대 한국 교회의 상황은 다르지만, 헌금 설교가 교인들에게 시험거리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 재정 운영에 대한 깊은 불신과 이로 인한 상처를 안고 있는 한국 교회 교인들에게 목회자가 헌금 설교를 거칠게 하면, 복음에 대한 오해는 물론 헌금에 대한 열정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따라서 목회자들은 교인들의 불신을 걷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작업이 먼저 필요하다는 인식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적인 헌금 설교

교인들이 헌금 설교에 대해 부담감을 느끼는 근원적인 이유 가운데 하나는 목회자의 설교가 복음의 깊이와 넓이를 바르게 증언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백성이 걸어야 할 길에 대해 충분히 가르치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 헌금 설교에 대한 불만은 교인들이 돈 그 자체에 인색해서가 아니라, 영적이고 도덕적인 필요가 충분히 충족되지 못한 데 있습니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발가락에 병이 생겼는데, 이 병의 원인이 발가락에 있는 것이 아니라 폐에 있다면 폐를 치료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헌금 설교에 대한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목회자가 복음의 내용을 정확하게 알고, 그 깊이와 넓이를 충분히 이해해 풍성하게 증언해 주어야 합니다. 또한 복음을 받은 자가 살아야 할 자기희생적인 삶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 지속적이고도 분명하게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목회자 자신이 복음의 깊이와 넓이 안에서 즐거워하고 감사하며 바른 삶을 살기 위해 모범을 보이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와 같은 영적이고 도덕적인 견실한 터전 안에서 성경적인 바른 헌금 설교를 한다면, 교인들은 결코 헌금 설교를 부담스러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인들이 헌금 설교에 대해 불만을 말할 때, 목회자는 자신의 설교와 삶이 복음의 풍요로움과 수준 높은 삶의 실천을 보여 주고 있는가를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평소 목회자의 설교 내용이 너무 빈약해 들을 것이 별로 없다고 느끼거나 목회자의 생활이 모범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 상황에서 목회자가 헌금 설교를 거칠게 하면, 목회자에 대한 불만이 헌금에 대한 불만의 형태로 표출된다는 것입니다. 교인들이 목회자의 설교가 자신들의 영적이고 도덕적인 필요를 충분히 충족시켜 주고, 목회자가 자신이 설교한 대로 살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확인되면 조금 강하게 헌금 설교를 해도 거의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투명한 재정 관리

헌금 설교에 대한 교인들의 불만은 헌금이 납득할 만한 방법으로 바르게 집행되지 못하고 있다고 느낄 때도 터져 나올 수 있습니다. 헌금을 잘 거두는 것도 중요하지만, 거둔 헌금을 잘 관리하고 바른 목적을 위해 바르게 사용하는 것은 훨씬 더 중요합니다. 구약에는 십일조를 통해 헌금에 관한 규정이 제시되는데, 십일조는 생계유지를 위한 토지를 분배받지 못하고 성전 관리와 제사 업무를 전담하는 레위인들의 생활비를 해결하고, 가난한 백성들을 구제하며, 성전 관리와 제사 업무에 필요한 경비를 충당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일조의 정신을 계승하도록 하신 것(마 23:23)은 이러한 십일조의 용도도 함께 계승하도록 하셨음을 뜻합니다. 바울은 스스로 일을 하여 자기 생활비를 충당했으나 “곡식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지니라”(신 25:4)라는 구약성경의 말씀과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눅 10:7)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근거로, 교역자가 교회로부터 생활비를 받는 것이 타당하다(고전 9:1-15)고 말함으로써 교역자의 생활비 지원이 헌금의 용도들 가운데 하나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기근 등으로 재정 위기에 처한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을 위한 헌금을 적극적으로 권장함으로써(고후 8-9장)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는 것도 헌금의 목적임을 밝혔습니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가 가난한 성도들을 구제하기 위해 기금을 마련해 운영한 것(행 2:43-47)도 구제가 헌금의 목적 가운데 하나임을 뒷받침합니다. 바울이 빌립보 교회를 떠난 후에 빌립보 교회가 보내 준 후원금을 받은 것(빌 4:16)은 헌금의 목적이 선교 지원에도 있음을 뜻합니다. 목회자들은 성경에 나타난 이 같은 헌금의 용도에 맞게 헌금이 사용되도록 유의하고 이 사실을 교인들이 숙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특히 신약성경에는 많은 교회에 관한 기록이 등장하지만, 그 어디에도 예배당 건축에 대한 언명이 없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예배당 건축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신약성경이 예배당 건축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이에 비추어서 오늘날 한국 교회의 예배당 건축의 현실을 점검해 보는 것은 유익합니다. 오늘날 많은 한국 교회가 교인들의 재정 수준으로 감당할 수 없는 규모의 예배당 건축을 추진하다가 수십 년 동안 빚을 갚는 일로 소진되고, 심지어 교회가 해체되기도 합니다. 서구의 많은 교회가 예술적 가치가 있는 거대하고 웅장한 예배당들을 건축했지만, 오히려 교인들이 떠나고 예배당은 관광 명소로 전락한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을 필요가 있습니다.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이동성이 활발해진 최첨단 인터넷 시대에 자기 건물을 갖는 것에 대한 미련을 과감하게 버리고 비록 상가 건물을 세를 주고 이용하더라도 사람들의 네트워크 구축에 관심과 재정을 집중하는 역동적인 교회를 구상해 보는 것도 필요합니다.

수십억 원에 달하는 목회자 전별금 관행은 반드시 시정되어야 하며, 후임 목회자에게 전임 목회자의 전별금을 담보처럼 가지고 들어오도록 요구하는 성직 매매적인 관행도 반드시 근절되어야 합니다. 또한 연말결산을 할 때 모든 교인이 투명하게 항목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예결산서를 작성하고, 온 교인이 관심을 가지고 교회 살림을 살피고, 교회 살림을 통해 복음의 향기를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의 신앙과 인격을 확인하려면 그 사람의 지갑을 보면 된다는 말은 교회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교회의 예결산은 교회의 신앙 성장의 수준과 성격을 알려 주는 척도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조치들이 투명하게 이루어지는 한 교인들은 목회자가 헌금 설교를 강조해도 결코 반발하지 않고 흔쾌하게 받아들일 것입니다.

자연스러운 헌금 설교

헌금 설교는 복음과 그리스도인의 삶의 과정에 대한 증언과 교육의 한 부분으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헌금을 독려하는 목회자 자신의 우발적인 목적 설정이 뚜렷이 드러나는 방법으로 진행되지 않도록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성경의 어떤 책을 연속 강해 형식으로 설교하다가 헌금에 관련된 부분에 이르렀을 때 헌금 설교를 하라는 것입니다. 아니면 성도들에게 헌금 설교가 포함되어 있는 일 년 설교 계획을 교회력 형식으로 짜고, 이 계획을 교인들에게 공지한 다음에 순서가 찾아올 때 자연스럽게 헌금 설교를 하는 것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설교를 하면 교인들은 목회자가 교회 교육의 일환으로서 헌금 설교를 하는 것임을 알고 편안한 마음으로 설교를 받아들일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목회자가 헌금을 거두려는 자의적인 의도를 가지고 헌금 설교를 한다는 오해를 주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목회자가 특별한 목적을 위한 헌금이 필요할 때, 이 목적에 맞추어서 설교 본문을 정하고 헌금의 필요성을 정당화하는 방향으로 본문을 해설하는 설교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필자의 생각에는 이런 형태의 설교는 정말 신중하게 하지 않으면, 헌금 설교에 대해 불신을 초래하는 매우 위험한 설교가 될 수 있습니다. 성경 본문으로부터 무리하게 특별헌금을 정당화하는 근거를 끌어내려고 하면 인간이 설정한 목적을 위해 성경을 이용하는 결과가 초래됩니다. 이런 방식의 설교가 습관화되면 설교에 의해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이 가려지고, 설교자는 하나님이 말씀하시지 않은 것을 전하는 거짓 선지자로 전락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예배당 신축이나 교육관 증축이 필요한 경우에 성막을 짓는 본문이나 예루살렘 성전을 짓는 본문을 설교 본문으로 정한 다음, 예배당이나 교육관 신축을 성막이나 예루살렘 성전 짓는 것과 같은 신성한 행위로 정당화시키는 설교를 하는 목회자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위험한 설교입니다. 성막이나 예루살렘 성전은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구속 사역을 완성하신 이후에는 폐기된 특별 계시의 장치들입니다. 따라서 성막이나 성전을 예배당 신축과 연결시키는 것은 해석학적인 오류에 빠질 수 있습니다. 실제로 예루살렘 성전 완공 이후, 성전봉헌식에서 솔로몬은 성전을 찬양하는 내용이 아니라, 예루살렘 성전조차도 천지보다 크신 하나님을 담기에는 너무 초라하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관심을 성전으로부터 하나님에게로 전환시킵니다(왕상 8:27).

그러므로 정직하고 실용적인 관점에서 특별헌금을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특별헌금을 할 때 이 특별헌금을 주제로 하는 설교를 꼭 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몇 주 동안 광고 시간을 이용해 헌금을 하는 목적을 교인들에게 정직하고 실용적으로 소개하고 협조를 구하는 것입니다. 예배당이나 교육관을 신축하는 경우에 건축이 하나님을 특별히 섬기는 신성한 것이며, 따라서 이 일에 참여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진노를 산다는 방식으로 말하지 말고 다음과 같이 담백하게 말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도 아시는 것처럼 교인 숫자가 늘어나다 보니 자리가 너무 협소해 예배 시에 많은 불편이 따르고, 아이들에 대한 효율적인 교육을 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따라서 불가피하게 예배당 혹은 교육관을 신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목적을 위해 헌금하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여러분이 힘이 닿는 데까지 헌신해 주십시오!” 그러면 교인들이 흔쾌히 헌금에 협조할 것입니다.

복음의 은혜를 받은 기독교인들과 교회는 전인적으로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헌신하는 삶으로 은혜에 대한 감사를 표현해야 하며, 이 안에는 반드시 재정적인 헌신도 포함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헌금 설교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목회자는 교회와 목회자의 재정 운영에 대한 불신과 상처가 교인들에게 깊고 넓게 드리워져 있는 현실을 심각하게 고려하면서 지혜롭고 신중하게 헌금 설교에 임해야 합니다. 풍성하고 진지한 복음 선포와 생활 교육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터전 안에서, 올바른 재정 사용과 투명한 재정 운영이 탄탄하게 이루어지는 가운데 헌금 설교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또한 강해설교나 교회력 안에서 자연스럽게 헌금 설교를 행하고, 무리하게 성경 본문을 가지고 헌금 설교를 정당화하기보다는 솔직하고 실용적으로 특별헌금에 임하는 등 지혜롭고 신중한 태도가 필요합니다.

이상원 총신대학교 기독교윤리학과 교수. 네덜란드 캄펜신학교(Th.D.). 저서로 《기독교 윤리학》, 《라인홀드 니버》 등이 있다. 필자의 다른기사 keyboard_arrow_r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