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와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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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와진단 2017년  11월호영화에서 발견한 남북의 갈등과 공조 모드 영화 〈브이아이피〉(V.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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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갈등은 한국 영화의 발전을 위한 좋은 재료로 사용되었다.

 

남북의 갈등 속에 발전한 한국 영화

영화는 뜻밖에도 비극적인 역사와 사회 현실을 디딤돌 삼아 발전해 왔다. 안정된 사회를 배경으로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풍요로움을 누리는 인간을 영화 속에 담는 것과 전쟁과 기근 그리고 정치적 폭압에 시달리는 사회 속의 인간을 다루는 일 가운데서 영화는 후자를 선택한 것이다. 대중 예술로서 영화는 관객의 심리를 움직일 수 있는 자극이 필요하다. 이에 비추어 볼 때 일상을 뒤엎는 역사적 사건이야말로 영화가 반길 수밖에 없는 소재다. 이것은 마치 예수님이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막 2:17)라고 하신 말씀에 대응될 만하다. 예수님은 아무런 문제의식도 없이 편안하고 배부른 사람이 아닌 병들고 소외되고 문제 투성이로 손가락질 받던 사람들을 주위에 두셨다. 예수님이 “세리와 죄인의 친구”(마 11:19)로 불린 것도 이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영화도문제 있는 사람과 사회가 겪는 갈등을 다루기를 좋아한다. 

그런 의미에서 남북 분단의 비극적 상황이 한국 영화가 발전하는 데 큰 자양분을 제공했다는 역설이 성립된다. 일제 강점기의 혹독한 시련 뒤에 겪어야만 했던 남과 북의 이념 갈등과 한국전쟁, 이산가족의 현실과 북한의 핵무기 개발에 따른 한반도 주변 강대국들의 대치 국면 등 남북 갈등의 역사가 없었다면 한국 영화에 담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될까? 영화가 상업적인 목적으로 활용되는 데 필수적인 이야기들은 모두 ‘갈등의 미학’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남북의 현대사는 한국 영화를 움직이는 힘으로 작용한다.

심리학적으로 갈등은 서로 다른 욕망이 충돌할 때 빚어지는 현상이다. 남북의 갈등이란 남과 북의 다른 이념이 사회적으로 표면화되어 나타난 갈등일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한 개인의 마음속에서 서로 다른 가치가 부딪힐 때 일어나는 갈등일 수도 있다. 

남북의 갈등을 다룬 영화는 한국전쟁 직후 시작되어 분단 67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물론 지난 세월 동안 정치와 사회의 변화에 영향을 받아 남북의 갈등을 다루는 방법이나 시각 또한 달라진 것이 사실이다. 1990년대 이전에 만들어진 한국 전쟁 관련 영화들이 남북의 갈등을 대결 구도 속에서 바라보았다면, 민주주의의 발전과 경제 성장을 토대로 자신감을 얻은 2000년대 이후에는 상호이해적인 관점을 함께 보여 준다.

2000년 이전의 북한을 묘사한 영화들은 반공주의를 표방한 계몽적 성격의 영화들이 주를 이루었다. 북한은 민족의 원흉이며 남한의 모든 국민이 힘을 합쳐 무찔러야 할 적으로 묘사되었다. 6·25전쟁이 끝난 후 냉전 시대로 접어들면서 제작된 6·25전쟁 영화는 반공이데올로기를 전파하기 위한 성격을 분명히 하고 있었다.

하지만 ‘임권택’이라는 한국 영화사의 걸출한 감독이 메가폰을 잡기 시작하면서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한국전쟁은 분단이라는 민족의 고통으로 승화되었다. 한국전쟁 동란의 현장에 있었던 군인들만의 고통이 아닌 모든 한민족이 겪었던 고통으로 심화 해석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남북의 갈등에 대한 새로운 사회적이며 인간적인 성찰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에서 남북 갈등은 결코 떨쳐 버릴 수 없는 한국인의 한(恨)을 생성한다. 그의 영화 속에는 전쟁에서 죽은 자들이 문제가 아니라 어쩔 도리 없이 가슴에 품고 살아가야만 하는 살아 있는 자들의 원망과 자책, 슬픔과 고통의 복합적인 정서로서의 한이 겹겹이 쌓여 있다. 좌우가 대립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정면으로 다룬 〈태백산맥〉(1994)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남북 분단과 이념 갈등, 좌와 우, 진보와 보수 이야기만 나오면 거품을 물며 한 맺힌 이야기들을 풀어 놓는 지금의 모습은 67년 전 우리가 겪었던 고통의 현실을 되새기게 만든다.

북한을 다룬 새로운 영화의 탄생

21세기 이후 나타난 북한을 다룬 영화의 원형적 요소는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 JSA〉(2000)에서 드러난다. 그것은 이영진 영화평론가가 말한 대로 “역사의 비극을 불러와 희극으로 치장하고, 결국엔 다시 비극으로 마무리해 현재의 비극을 환기하는 플롯”의 반복이다.

이 영화에는 군사분계선을 넘나들며 우정을 쌓아가던 남북의 네 명의 젊은 군인들이 등장한다. 제대를 앞두고 인사차 찾아간 북한 초소에 갑자기 들이닥친 북한군 간부로 인해 이 우정 어린 상황이 총격전으로 이어지며, 조사 중 주인공이 자살로 끝을 맺는 줄거리는 역사의 비극이 회상되고 다시 비극으로 마무리되는 구조를 보여 준다. 그러나 북한을 다룬 영화들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비극의 중간에 자리한 익살과 유머 그리고 이념을 넘어서는 인간애가 자리한다는 점이다. 

북한군 오경필 중사(송강호 분)를 필두로 중간중간 코미디 영화에나 나올 법한 대사와 익살스런 연기는 긴장감으로 일관된 상황을 이완시키는 청량제와 같은 역할을 한다. 만일 이 영화를 사건의 전모를 밝혀내는 데 치중한 추리물로 만들었더라면 틀림없이 지금과 같은 좋은 반응은 얻지 못했으리라. 왜냐하면 〈공동경비구역 JSA〉의 포장 방법은 휴머니즘인데 인간미의 결정적 요소는 분노나 복수에 있지 않고 웃음과 울음에 있는 까닭이다. 주인공 이병헌이 지뢰를 밟았을 때 이를 북한군 오경필이 제거해 주는 상황은 웃음과 울음이 교차되는 이 영화의 상징적 장면이다. 이것은 20세기 온 인류를 웃기는 한편 내적으로 울렸던 찰리 채플린의 휴머니즘이 주는 희비극의 가치를 재현한 것이다. 웃음만이 줄 수 있는 가벼움을 극복하면서도 울음이 던져 주는 무거운 상황을 이 영화는 아슬아슬하게 교차시킴으로써 탈이데올로기의 시대를 맞아 젊은이들의 가벼움을 추구하는 감각적 성향과 기성세대들의 의미를 추구하는 성향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었다.

〈공동경비구역 JSA〉가 상영된 지 17년의 세월이 흐른 오늘날 남북의 상황은 최악을 향해 달음질하고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영화는 다르다. 반공을 앞세운 영화가 나올 법한 상황이지만 한국 영화는 북한 내부의 문제를 지적하면서도 아울러 남북 간의 협력 모드를 전개시키고 있다. 그 중심에는 영화 〈공조〉와 〈브이아이피〉(V.I.P.)가 있다.

악마적 캐릭터와 여성 혐오적 캐릭터 사이에서

박훈정 감독의 신작 〈브이아이피〉는 범죄액션물이란 익숙한 장르 속에 남북의 급변하는 상황과 갈등이 내포된 영화다. 북한 권력자의 외아들 김광일(이종석 분)을 기획 탈북시켜서 북한의 중국 내 비밀 계좌 정보를 얻고자 하는 국정원 요원 박재혁(장동건 분)이 한 축을 이루고 있고, 그의 의도와 상관없이 김광일이 한국과 홍콩에서 저지른 여성 연쇄 살인 사건을 추적하는 남한 경찰 채이도(김명민 분)와 북한 보안성 요원 리대범(박희순 분)의 집요한 추적이 또 하나의 축을 이루면서 암흑가의 정서와 액션을 화면 가득 담고 있다. 이 영화의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는 두 축이 대립적 구도를 형성하며 갈등을 양산해 내는 가운데 전개된다.

〈브이아이피〉에 대한 관객들의 평가는 엇갈렸다. 박훈정 감독은 이전 영화 〈신세계〉에서 보여 주었던 개성 넘치는 캐릭터의 향연이 이번 영화에서도 펼쳐짐으로써 그가 한국형 누와르(noir, 암흑가를 다룬 범죄물)에만 능한 것이 아니라 북한의 사이코패스 캐릭터를 묘사하는 데도 재주가 있다는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영화 속에서 문제적 인물로 등장하는 김광일 역을 맡은 이종석은 장성택의 중국통으로 통하는 권력자의 외아들 김광석으로 등장한다. 일반적으로 북한사람 같지 않은 흰 얼굴에 훤칠한 키, 그리고 곱상한 외모를 자랑하지만 그 속에 연약한 여성들을 희롱하며 잔인하게 죽이는 살인마의 모습을 감추며 관객 앞에 나타난다. 

악역이 높은 평가를 받으려면 영화를 보는 시간 동안 관객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미움도 사야 한다. 감독은 김광일을 통해 북한의 권력층 자제들이 유학을 다녀온 뒤 일반 주민들은 꿈에도 누릴 수 없는 사치와 향락에 빠진 모습을 실감나게 보여 주었다. 여기에 더해 잔혹한 폭력 장면을 배경으로 클래식을 듣고 영어 소설을 읽는 살인광의 이미지를 연출함으로써 매우 인상적인 사이코패스 캐릭터를 창조해 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사이코패스 주인공이 납치된 여성에게 저지르는 잔혹성은 지나치게 충격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를 통해 악역의 성격을 부각시키는 데는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이로 인해 여성에 대한 혐오 심리를 반영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영화 속 연쇄 살인범에게 희생당하는 사람은 모두 여성들이며, 희생자들은 한결같이 여러 명의 남성들에게 성적 희롱을 당한 뒤 살해되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여성 희생자들이 죽음에 이르는 극한 상황을 성적 쾌감과 동일시하는 진술을 거침없이 표현함으로써 여성의 죽음을 쾌락을 위한 도구로 사용한 점은 여성 관객의 입장에서 불쾌한 느낌을 받기에 충분했다.

지금까지 〈신세계〉나 〈대호〉와 같은 남성 중심의 영화를 만들어 온 박훈정 감독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영화를 여성 혐오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관객의 반응에 대해 다소 억울한 면이 있을 것이다. 〈양들의 침묵〉과 같은 할리우드 영화에서도 사이코패스 범죄자들의 범죄 수법을 묘사하는 데 비정상적인 방법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는 사회와의 교감을 통해 인식되고 새롭게 해석되는 면이 있는 만큼, 최근 우리 사회에서 나타나는 여성 혐오에 따른 범죄들 때문에 관객들이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다는 점은 고려할 필요가 있다. 

갈등의 구조를 살피면 영화가 보인다

〈브이아이피〉는 독특한 캐릭터를 소화해 내는 연기자들의 명연기 못지않게 이야기를 구성하는 능력 또한 훌륭하다. 마치 한 사건을 두고 세 편의 영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느낌이다. 왜냐하면 영화의 표면적인 갈등 구조가 다원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시간의 흐름상으로 보면 첫째, 북에서 연쇄  살인을 저지르고도 아버지의 막강한 권력으로 무마시키는 뻔뻔함을 보이는 김광일과 그의 범죄에 대해서 어떻게든 응징하려는 북한 보안성 요원 리대범 사이에 일어나는 대결 구도가 하나의 이야기를 형성한다. 북한의 어린 여성들을 욕보인 후 잔인하게 살인할 뿐만 아니라 가족까지도 죽이는 만행을 서슴지 않는 김광일을 응징하려는 리대범은 나름 정의 구현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리대범의 정의 수호는 오히려 부패한 권력으로 인해 그를 좌천시키는 결과를 낳을 뿐만 아니라 목숨이 위협받는 상황에 처하게 만들었다. 리대범은 복수의 심정으로 남한에 침투해 김광일을 납치해서 북한으로 데려가려 한다. 이것은 금년 초에 개봉되어 화제를 일으킨 영화 〈공조〉의 이야기 구조와 유사하다. 즉 영화 한 편을 만들 수 있을 만큼의 충분한 이야깃거리가 김광일과 리대범의 대립 구조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다. 〈브이아이피〉에서 김광일과 리대범 사이에 일어나는 이러한 대립 구조는 다른 모든 갈등의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둘째, 수사 경찰관과 국정원 요원 사이에서 일어나는 권력 게임에 따른 공방은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또 하나의 갈등 구조다. 남한의 수사 팀장 채이도 경감은 폭력으로 징계를 받고 있던 중 연쇄 살인 사건 해결의 책임을 지고 사건에 투입되는 인물이다. 채이도는 남한에 와서도 여전히 연쇄 살인을 저지르고 다니는 김광일 일당의 범죄 물증을 확보하고 수사 종결 직전까지 가지만, 기획 탈북 사실을 감추고 김광일을 미국 CIA에 넘기려는 국정원 요원 박재혁과 신경전을 벌이는 갈등의 상황을 연출한다. 

CIA를 무시할 수 없는 국정원은 북에서 온 연쇄 살인범을 숨기려 하고, 남한의 폭력적인 경찰은 진실을 밝혀서 체면도 살리고 살인범을 잡아 법정에 세우려 하는 것이다. 하나의 사건을 두고 벌이는 권력 게임 역시 한 편의 영화를 만들기에 충분한 이야기다. 〈부당거래〉(2010)를 비롯해 〈베테랑〉(2015) 등의 영화에서 경찰은 검찰이나 정계에서 수사 중단이나 종결의 압력을 받으며 갈등하는 상황을 보여 주었다. 한국 영화에 등장하는 권력 게임에 관객은 이미 익숙한 상태다. 〈브이아이피〉에서 채이도 경감은 권력에 떠밀려 소신껏 수사하지 못하는 비운의 희생자가 될 뿐 아니라, 국정원과 CIA를 후원자 삼아 안하무인(眼下無人)으로 행동하는 범죄자 김광일에게 오히려 총을 맞는 비극을 겪게 된다.

셋째는 국정원 요원 박재혁과 미국 CIA의 능구렁이 같은 요원 폴 그레이(피터 스토메어 분)와의 갈등 구조다. 폴 그레이와 박재혁은 동맹국 정보원으로 처음에는 협조적인 관계를 보여 주는 듯하지만, 폴 그레이가 미국의 힘을 과시하듯 김광일에 대한 전권을 행사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박재혁은 대한민국 정보 요원으로서의 자존심 회복에 나서게 된다. 결국 박재혁은 폴 그레이가 얻고자 하는 정보원인 김광일을 살해함으로써 더 이상 상하 관계에서 일하지 않을 것을 선언해 버린 셈이다.

박재혁이 영화 상영 시간 동안 줄곧 보호하고 있던 김광일을 살해한 것은 개인의 갈등을 넘어 김광일과 갈등 관계에 있는 모든 영화 속 인물들의 분노를 대행한 일이었다. 영화 중반부까지 비록 업무적이긴 하지만 박재혁과 김광일이 같은 편일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두 사람이 사실은 매우 심각한 갈등 관계로 발전했음을 보여  주는 일이기도 하다. 물론 관객들은 박재혁 요원이 보는 앞에서 김광일이 채이도 경감에게 난데없이 권총을 발사해 중상을 입히는 장면을 지켜보며, 박재혁과 김광일의 관계가 결코 업무상 원만한 상태에 이를 수 없음을 사전에 직감할 수 있었지만 말이다.

갈등의 중심에 서 있는 부패한 북한 권력

〈브이아이피〉를 본 관객들은 영화의 이야기를 형성하는 여러 구조들 사이에서 뜻밖에도 공통된 한 가지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모든 갈등의 중심에는 북한의 부패한 권력층의 자제인 김광일이 있다는 사실이다. 영화 초반부에는 김광일과 국정원의 박재혁 그리고 CIA의 폴 그레이가 한통속이고 이와 대립하는 인물로 북한 보안성 요원 리대범, 남한 경찰 채이도가 등장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김광일은 주위의 모든 인물과 충돌함으로써 악의 중심에 서게 된다. 특히 탈북까지 하며 김광일을 잡으러 온 리대범과 대립하는 모습에서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말하고 싶은 것이 있음을 알게 된다.

첫째, 모든 북한 문제의 핵심은 권력 중심부의 문제라는 사실이다. “북한이 나쁘다 혹은 북한이 문제다”라고 말할 때 ‘북한’이란 핵미사일을 개발하고 세계를 위협하는 북한의 핵심 권력 집단을 의미할 뿐 북한 주민 대부분은 이와 관계가 없음을 알아야 한다. 오히려 〈브이아이피〉에서 보듯이 일반 주민들은 권력 집단의 희생자이거나 생존하기 위해서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사람들에 불과하다.
둘째, 남북이 공통의 목표 안에서 협력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영화에서 리대범의 원래 소속은 35호실 해외사업팀이다. 북한의 35호실은 북한의 대남공작기관으로 리대범은 간첩 교육을 받고 공작원 임무를 수행하던 사람이었다. 그러던 그가 김광일 사건을 조사하다 함경북도 비료 공장으로 좌천된 이후 남한에 와서 채이도 경감과 협력하는 관계로 변화하게 된다. 두 사람은 서로를 매우 까칠하게 대하지만 중요한 정보들이 오가는 것을 볼 수 있다.

〈브이아이피〉는 리대범과 채이도, 즉 남과 북의 수사관이 협력하는 분위기를 더 이상 진전시키지는 못했다. 오히려 리대범과 채이도 두 사람은 모두 김광일에 의해 희생당하는 결과로 끝났다. 이것이 지금 남과 북이 처한 현실이다. 〈브이아이피〉는 현실에 따른 개연성을 강조하고 있다.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쏘는 지금의 상황에서 남북의 수사관들이 손을 잡는 모습은 현실감이 없어 보인다고 감독은 판단한 듯하다. 

환상과 욕망의 예술로 남북의 공조를 꿈꾸다 

그러나 영화는 항상 꿈꾸기를 돕는 도구란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남북이 함께하는 최초의 공조 수사를 다룬 김성훈 감독의 영화 〈공조〉는 어느 영화보다도 ‘믿음’에 대한 더욱더 많은 질문을 던진다. 위조지폐 동판을 훔쳐서 남한으로 잠적한 북한의 전직 특수부대 장교 차기성(김주혁 분)을 잡기 위해 남한에 온 북한 형사 임철령(현빈 분)과 그의 파트너가 되어 북한이 감추고 있는 수사의 진실을 캐내려는 남한의 어리바리한 형사 강진태(유해진 분)가 벌이는 공조 수사를 다룬 이 영화는 불신이 가져온 코미디적 상황과 믿음의 결과물로 벌이는 정의로운 액션을 펼쳐 보이고 있다.

상대방의 비밀을 알아내고 감시하기 위해 서로의 휴대폰에 도청 장치를 심어 놓고 심지어 남한 사정을 잘 모르는 임철영에게 수사관의 명패인 양 성폭력 전과자에게 채우는 전자발찌를 채우는 불신의 상황은 관객에게 웃음을 주는 코미디적 요소로 등장한다. 강진태의 입에서 믿음 없이는 공조가 불가능하다는 말이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것은 남과 북의 현 정치적 상황에 대한 간접적 표현이기도 하다. 

그러던 그에게 북한 형사에 대한 믿음이 은연중 생겨나기 시작한다. 폭력을 행사하는 범죄자 앞에만 가면 힘을 못 썼던 강진태가 덩치가 산만한 폭력배들에게 둘러싸여 있을 때 큰소리치며 싸우는 액션은 림철령이 도와줄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코미디와 액션 장르를 오가며 진행되는 이 영화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은 불신의 관계가 어떻게 믿음으로 발전할 수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영화는 ‘함께하는 시간’과 ‘가족’이라는 장치를 통해 반목과 불신의 골을 좁혀 나간다. 남한 형사의 집에서 가족들과 밥을 먹고 시간을 보내며 임철령은 남한의 파트너에 대한 이해와 믿음의 높이를 쌓아 간다. 함께 밥을 먹고 자며 가족처럼 시간을 보내는 일은 심리적 일체감을 형성하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예수님이 제자들과 먹고 마시며 늘 함께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마 11:19). 이는 바로 믿음의 공동체의 시작인 셈이다.

영화는 관객이 보고 싶은 환상을 통해 인간 내면에 잠재된 욕망을 발현하는 도구다. 영화 〈공조〉에서 관객들은 남북이 힘을 합쳐 악당을 물리치고 가족처럼 함께 오순도순 밥을 먹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은 비록 지금의 현실은 아니지만 간절히 원하는 미래의 모습일 수 있다. 영화를 통해서라도 좋은 꿈을 계속 꾸어야 한다.   

강진구 고신대학교 국제문화선교학과 교수, 영화평론가. 한남대학교대학원(Ph.D., 기독교학과). 공저로 《감성 세대의 영화 읽기》가 있다. 필자의 다른기사 keyboard_arrow_r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