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와 신학

  • {{x.scr_name}}
  • 미분류

특집 2017년  11월호설교 점검, 누가 어떻게 할 것인가? 특집 ㅣ 목회 건강 검진, 받으셨나요?

기사 메인 사진

더 나은 설교 사역을 원한다면, 적당한 대상에게 적절한 점검을 받아야 한다. Ⓒ 김홍
일단 이 질문부터 던지고 싶다. 설교 점검, 할 것인가, 말 것인가? 그야말로 뜨거운 감자다. 필요성은 충분히 공감하지만, 자칫 입천장을 델 수 있는 부담스러운 물건이다. ‘점검’ 대신에 ‘평가’라는 용어를 쓰면 더 부담스럽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가장 홀가분한 것이 이제 시험도 없고 평가받을 일도 없다는 것인데, 이제 와서 또 평가를 받아야 하느냔 말이다. 그러나 더 나은 설교 사역을 위해서라면 입천장을 데더라도 삼켜야 하고, 부담스러운 길이어도 가야 한다. 평가와 점검도 어쩌면 주님이 우리를 설교자로 부르신 소명의 일부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부담스러워도 설교 점검, 하기로 하자.

그렇다면 설교 점검, 어떻게 할 것인가? 크게 두 부분을 고민해야 한다. 점검의 잣대와 점검의 방법이다. 모든 평가와 점검에는 기준이 되는 잣대가 필요한 법인데, 설교 점검도 마찬가지다. 적절한 잣대를 마련하는 것은 의미 있는 평가의 기초가 된다. 다음으로는 방법인데, 구체적으로 ‘누가’의 문제다. 누구한테 점검을 받을 것인가? 이 글에서 두 가지 이슈에 관한 필자의 생각을 나누니, 현장 설교자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점검의 잣대

점검은 개선을 위한 발판이다. 단지 점수를 매기기 위함이 아니다. 이웃 교회 설교자와 비교해서 등수를 매기기 위함은 더더욱 아니다. 나의 설교를 돌아보고 더 나은 설교로 빚어가기 위한 발판으로서의 점검이다. 그런 의미에서 점검의 잣대는 평가를 넘어, 발전과 개선의 범주가 되어야 한다.

필자는 다음 네 가지 범주를 추천한다. 그 범주는 ‘주제’, ‘구조’, ‘예화’, ‘말’이다. 이는 설교를 구성하는 기본 골격이다. 특히 설교자가 자기 설교를 점검하고 다듬어 갈 수 있는 현실적인 범주다. 여기에 적절한 수식어를 붙이면 좋은 설교의 구성 요소가 되는데, 필자가 생각하는 요건은 다음과 같다. 첫째 ‘본문에 기초한 선명한 주제’, 둘째 ‘전략적인 구조’, 셋째 ‘충성된 예화’, 넷째 ‘잘 들리는 말’이다.

1. 본문에 기초한 선명한 주제
강해 설교의 대가로 꼽히는 해돈 로빈슨은 강해 설교를 “하나의 성경적 개념”(a biblical concept)의 전달이라고 정의했다. 두 가지 요소가 결합된 문구인데 ‘하나의 개념’ + ‘성경적 개념’이다. 한 편의 설교를 통해 전달되는 개념은 하나여야 하고, 그 개념은 성경 본문에서 나와야 한다는 말이다. 로빈슨이 말한 ‘개념’은 한 단어가 아니라, 주어부와 술어부로 구성된 완결된 문장을 의미한다. 우리가 흔히 쓰는 말로 고치면, ‘주제’다. 요약하면, 해돈 로빈슨이 생각하는 강해 설교는 ‘성경 본문에서 얻은 하나의 주제’를 전달하는 설교다.

필자는 로빈슨의 강해 설교 이해에 십분 공감한다. “본문에 기초한 선명한 주제”의 잣대는 그의 “하나의 성경적 개념”의 번역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여기에 더해 필자가 강조하고 싶은 항목은 ‘선명성’이다. 효과적인 설교란 청중의 마음에 선명하게 새겨지는 설교일진대, 무엇보다 주제 문장이 선명해야 한다. 선명한 주제가 선명한 설교를 낳는다. 이를 위해 필자는 주제를 ‘글로 써보기’와 ‘선명하게 다듬기’를 추천한다. 설교 전에, 심지어 설교를 작성하기 전에 반드시 주제를 글로 써보고, 가능하면 더 선명한 문장으로 다듬기를 추천한다. 잘 다듬은 주제 문장 하나는 열 예화 부럽지 않다.

여기서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것이 ‘본문에 기초한’ 잣대다. 설교는 개인의 생각이 아니라 본문을 전해야 한다. 충분히 적용된 설교를 해야 하지만, 그 이전에 철저히 본문에 기초한 메시지를 선포해야 한다. 이를 위해 설교자는 오늘 설교의 주제가 본문에 기초하고 있는지를 진중하게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이 모든 원리를 담은 잣대가 바로 본문에 기초한 선명한 주제다.

2. 전략적인 구조
전략적인 구조도 중요하다. 본문에 기초한 선명한 주제가 중요하다면, 구조에서는 팀워크가 중요하다. 통일성(unity), 진전(progress), 효과적인 순서(order)는 스피치 전문가들이 좋은 연설의 요건으로 소개하는 팀워크의 원리들인데, 설교도 하나의 연설로서 이를 적극 존중할 필요가 있다.

대지들이 주제를 중심으로 통일성을 이루는지를 확인하라. 각 대지들이 고유한 내용을 담고 있어서 설교가 정체되거나 맴돌지 않고 앞으로 쭉쭉 나아가는지(진전하는지)를 점검하라. 같은 내용이라도 배열된 순서에 따라 효력이 달라진다. 가장 효과적인 순서를 고민하라. 설교학자들은 대지의 순서는 본문의 흐름보다 생각의 흐름을 존중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시작과 끝이 중요한 만큼, 설교에서 서론과 결론의 중요성도 묵직하다. 본문에 충실한 서론과 결론을 추구해야 한다. 인상적인 서론도 좋지만, 본론을 무색하게 할 만큼 지나치게 파격적인 서론은 부담스럽다. 서론의 본분은 청중의 관심을 사로잡아 본론으로 연결하는 것이다. 너무 빛나서도 안 되고, 너무 밋밋해서도 안 된다. 결론은 말 그대로 설교를 결론지어야 하는데, 간혹 우물쭈물하는 안쓰러운 결론도 있다. 서론이 청중을 설교로 사로잡아 온다면, 결론은 메시지를 삶의 현장으로 가져가도록 도전해야 한다.

3. 충성된 예화
예화는 설교의 주인이 아니라 종이다. 그리고 종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다. 설교의 주인은 주제다. 본문에 기초한 선명한 주제가 설교를 이끈다. 그리고 주제를 뒷받침하기 위해 다양한 예화와 이미지가 동원되는데, 주제를 뛰어넘는 ‘주제넘은’ 예화도 부적절하고, 주제에 미치지 못하는 질척거리는 예화도 아쉽다. 선포되는 주제를 가장 적절하게 섬길 수 있는 충성된 예화를 발굴하고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필자는 예화를 각색하라고 조언한다. 성경이나 예화집, 그리고 우리의 일상에서 찾아낸 많은 예화들은 일종의 원석이다. 가공되지 않은 원석이 보석이 되기 위해서는 적절한 가공이 필요하다. 발굴한 예화에 거짓을 더하거나 왜곡하라는 말이 아니다. 다만 오늘 선포될 메시지에 충분히 조율되도록 각색하라는 말이다. 거짓을 더하거나 왜곡해야만 오늘 메시지에 조율되는 예화라면, 버리는 것이 원칙이다. 

예화의 개수와 비율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절대적인 원칙은 없지만, 설교자 나름의 원칙을 세울 필요는 있다. 간혹 예화 사용을 터부시하는 설교자도 있는데, 필자의 경우 적절한 예화는 설교에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예화는 메시지에 회화성을 더해 청중의 이해도를 높이고, 개념의 빡빡함과 구별되는 이야기의 푸석함이 청중의 듣기 과업에 여유를 준다. 심지어 좋은 예화는 적용의 기능까지 있으니, 안 쓸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4. 잘 들리는 말
설교는 글이 아니라 말이다. 설교문을 들고 단에 올라가지만 전달되는 것은 말이다. 글과 말은 일란성 쌍둥이인 듯 외양은 비슷해도, 구동 방식은 다른 집 자식처럼 근본적으로 다르다. 말은 글이 누리지 못하는 자유를 많이 누린다. 소리의 크기, 말하는 속도가 그러하고, 음색도 글로써는 표현할 수 없는 말만의 특성이다. 여기에 침묵도 활용 가능하고, 또한 이 모든 영역에 변화를 줄 수도 있다. 요컨대, 글에 비해 말은 굉장히 역동적인 표현 모드다.

그런 의미에서 좋은 설교란, 말의 역동적인 특성을 십분 활용한 설교다. 말을 잘한다고 해서 좋은 설교자인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설교자에게 말을 잘하는 것은 정말로 감사해야 할 은사다. 각자에게 주신 은사의 양과 깊이가 다르겠지만, 주신 은사의 범위 안에서 최대한 말의 구동 방식과 특성을 십분 활용할 필요가 있다. 메시지의 흐름에 따라 말의 크기와 속도, 음색도 변화시킬 수 있다면 보다 효과적인 전달이 가능하다. 그러나 여기서 기억할 것, 좋은 말의 기본은 ‘자연스러움’이라는 것이다. 특히 설교는 진실성이 생명인 만큼, 자연스러움 안에서 말의 특성을 잘 활용해야 한다. 

5. 신학적 건강성과 균형
추가로 보다 넓은 차원의 잣대 하나를 더하려 한다. 신학적 건강성과 균형이다. 설교가 선포하는 것은 신학이 아니라 본문의 메시지이지만, 설교 안에는 신학이 묻어난다. 그래서 설교는 성경 본문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건강한 신학의 지도를 받을 필요가 있다. 건강한 신학은 본문에 대한 잘못된 해석 혹은 적용을 방지해 주는 울타리와 같다. 그런 점에서 설교자는 신학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에 공감한다. 전문적인 신학자가 되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오늘 선포되는 메시지가 신학적으로 건강한지를 판단할 수 있는 신학적 소양은 갖추어야 한다.

또한 좋은 설교는 신학적인 균형을 갖춘 설교다. 이는 단편 설교에 대한 것이기보다는 일 년 전체의 설교적 흐름에 대한 잣대다. 예를 들어, 건강한 신학은 하나님의 주권과 더불어 인간의 책임을 균형 있게 선포한다. 그런데 이 둘 가운데 하나만을 편향적으로 강조한다면 불건전한 신학이 되고 말 것이다. 설교에 있어서도 전체적인 균형이 중요하다. 단편 설교는 특정한 주제를 강조할 수 있지만, 일 년 전체 설교에 있어서는 적절한 균형을 갖출 필요가 있다.

점검의 방법

이제는 점검의 방법인데, ‘누가’의 문제다. 누가 나의 설교를 점검할 것인가, 혹은 누구한테 설교 점검을 받을 것인가? 참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설교 점검 혹은 평가가 부담스러운 것은, 앞서 논의한 ‘잣대의 부담’보다는 오히려 지금 살펴볼 ‘누가의 부담’이다. 필자의 판단에 크게 세 가지 방법이 가능하다. 첫째 ‘자가 점검’, 둘째 ‘공적 점검’, 셋째 ‘확대된 자가 점검’이다.

1. 자가 점검 - 자가 모니터링
설교자 스스로 자기 설교를 점검하고 평가하는 방법이다. 방송인들이 자신이 출연한 프로그램을 모니터링하듯 설교자도 그렇게 할 수 있다. 위에서 논의한 ‘설교 평가지’는 기본적으로 자가 점검을 위한 도구다. 적절히 수정한 나만의 평가지를 펼쳐 놓고, 설교 녹음 파일이나 가능하면 비디오 영상을 보면서 자신의 설교를 평가하고, 개선점을 찾아가면 된다. 위의 평가지에는 표기하지 않았지만, 각 항목 오른편에 1-5점 혹은 1-10점의 점수를 매기는 것도 의미가 있다. 부족한 부분을 표기하고 다음 설교에 더욱 신경을 쓰면 된다.

물론 이는 쉬운 일은 아니다. 처음으로 내 설교 영상을 본 것은 신학대학원 3학년 때였다. 당시 ‘설교 실습’이라는 과목이 있었는데, 교수님이 영상을 주시면서 자기 설교를 모니터링하게 하셨다. 그래서 집에 가서 영상을 보는데, 몹시 힘들었다. 목소리도 이상하고, 표정도 이상하고, 누군가와 같이 보기엔 민망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효과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나하나 점검을 하고 마음을 쏟으면 분명히 개선의 효과가 있다.

의외의 성과도 있는데, 설교자 중에는 자신도 모르는 좋지 않은 버릇을 가진 이도 있다. 쩝 거리는 소리, 의미 없이 반복되는 표현, 이상하게 기울어진 자세 등 안 좋은 습관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설교 평가지에는 없는 항목이지만, 조치가 되지 않으면 설교의 효력에 큰 해가 될 수 있는 요소다. 

2. 공적 점검 - 교인 전체 혹은 선별 그룹에 대한 설문 조사
다음으로 공적 점검을 생각할 수 있는데, 청중에게서 직접 설교를 점검받고 평가받는 방식이다. 설교자로서는 매우 부담스러운 방식이지만, 설교 점검에 있어서 청중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설교는 주의 말씀을 사람에게 선포한다. 그런 의미에서 듣는 당사자에게 직접 피드백을 받아 볼 필요성은 충분하다. 다만 조심스러운 점이 있는데, 자칫 성도들에게 설교가 평가의 대상이라는 인식을 심어 줄 수 있다. 목사의 말을 향한 맹신도 건강하지 못하지만, 목사의 설교를 평가 대상으로 보는 것도 그리 바람직하진 않다고 생각한다.

일단 공적 점검을 받기로 했을 경우, 두 가지 방식을 생각할 수 있다. 교인 전체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할 수도 있고, 아니면 당회 혹은 교인을 대표할 수 있는 소수 그룹의 피드백을 받아볼 수 있다. 이 경우에는 앞에서 소개한 ‘설교 평가지’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청중에게 묻기에는 항목이 너무 세밀하고 전문적이기 때문이다. 이보다는 목사의 설교에 만족하고 있는지, 설교가 자신의 신앙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어느 정도인지, 혹은 자신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어느 정도인지 등 포괄적이고 간접적인 질문 위주로 구성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지난주 설교 내용을 어느 정도 기억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질문도 요긴하다. 

3. 확대된 자가 점검 - 목회자 소그룹, 사모의 피드백, 전문가 컨설팅
다음으로 확대된 자가 점검을 생각할 수 있는데, 개인 점검과 공적 점검의 중간쯤 되는 방식이다. 먼저, 설교자들이 소그룹을 만들어서 서로의 설교를 점검하고 평가할 수 있다. 청중에게 직접 평가를 받는 것보다는 한결 부담이 덜하고, 설교에 대한 전문 지식이 있기에 보다 조밀한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인격적인 신뢰가 더해진다면 서로의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여서 좋은 개선의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사모의 피드백을 받는 것도 한 방법이다. 사모는 한 사람의 청중이면서, 동시에 설교자에게 가장 가까운 한 몸과 같은 존재다. 설교 평가를 받기에 매우 독특하면서도 유용한 자리에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조심할 것이 있는데, 그 누구의 비판보다 쓰린 것이 사모의 비판일 수 있다. 언젠가 한 동료 목사로부터 ‘사모를 위한 설교학’ 블로그를 만들라는 제안을 받은 적이 있다. 사모들에게 설교학과 평가 잣대를 가르치면, 효과적으로 남편을 도울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른 동료의 만류로 계획을 접었다. 그는 그랬다가는 전국의 목사님들에게 원수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아내에게만큼은 격려를 받고 싶은 게 남편 마음이라는 것이다. 결국 시도하지 않았지만, 필자가 아는 분 중에는 사모님을 설교 세미나에 동참시켜서 적극적으로 조언을 받는 분도 있다.

전문가에게 컨설팅을 받는 방법도 있다. 설교학 교수 혹은 대외적으로 활동하는 설교 전문가에게 피드백을 받고 컨설팅을 받는 방식이다. 많은 신학교에는 설교 실습실이 마련되어 있는데, 학생들뿐 아니라 현장 목회자들에게도 열려 있는 공간이다. 그런데 실제로 현장 설교자들이 이용하는 경우는 잘 보지 못했다. 신학교가 현장성 있는 컨설팅 체계를 확보하고 현장 설교자들이 적극 활용한다면, 의미 있는 열매가 맺어지리라 기대한다. 더불어 현장에 있는 설교 관련 기관들을 통해서도 실제적인 피드백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4. 심방을 통한 점검
설교 점검에 있어 빠질 수 없는 방편은 심방이다. 교회 헌법은 심방을 통해 설교가 제대로 실천되고 있는지를 점검하라고 규정한다. 심방은 상당 부분 듣는 활동이다. 심방에서는 목회자가 설교를 하기도 하지만, 성도의 말을 많이 듣게 된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는 중에, 목사는 성도가 설교를 얼마나 기억하고 있는지, 그리고 설교가 성도의 삶에 얼마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대놓고 설교에 대해 묻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다. 심방을 통해 나의 설교를 점검받을 수는 있지만, 그 자체가 심방의 목적은 아니기 때문이다. 심방은 성도의 형편을 살피고, 위로하고, 격려하고, 때로는 말씀으로 강하게 권면하는 시간이다. 여기에 곁가지로 설교 점검의 효과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불편해도 해야 할 일

평가와 점검은 무엇이든 부담스럽다. 설교도 예외는 아니며, 어떤 면에서는 가장 부담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해야 할 일이다. 최선을 다하는 설교자라면, 설교 준비의 일환으로 점검의 시간을 꼭 할애할 것이다. 점검과 개선이 없다면 최선을 다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잣대와 방식은 다양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형태로든 점검과 평가에 기초한 개선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채경락 고신대학교 설교학 교수. 미국 남침례신학교(Ph.D.). 저서로 《퇴고 설교학》, 《절기와 상황 설교》 등이 있다. 필자의 다른기사 keyboard_arrow_r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