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와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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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 2017년  11월호교회 공동체에서 동성애자에게 상담 요청을 받았습니다 목회자 고민 상담소(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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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적 열망을 떨치기 위한 고투자의 갈등은 굉장히 무겁고 치열하다

Q 중형교회 청년부를 담당하고 있는 전도사입니다. 한 청년이 찾아왔습니다. 그는 자신이 동성애자라고 밝히고, 동성애적 행위를 할 때마다 심한 죄책감과 우울감에 빠진다고 말했습니다. 평상시에도 동성애적 상상 때문에 힘들다고 고백했습니다. 동성애가 죄임을 인정하지만, 동성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 청년을 돕기 위해서 어떻게 상담해야 할까요? 청년부 공동체에는 비밀로 해야 할까요? 아니면 함께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할까요?

A ‘고투자’를 상담하게 되셨군요. ‘고투자’란, 동성애자로서 오랜 세월 고통당하다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변화를 경험한 앤드류 코미스키가 과거 자신과 같이 동성애와 신앙 사이에서 갈등을 겪는 사람을 부르는 단어입니다(앤드류 코미스키의 저서 《동성애, 온전한 변화를 위한 시작》은 매우 설득력이 있으며, 고투자를 성경적 진리에 기초해 돕는 그의 사역은 한국 교회가 알아야 할 중요한 지식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즉, 고투자란 말씀과 치유를 거부하는 사람이나 동성 결혼의 합법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동성애 행위에 중독된 자신의 문제를 알고 하나님 안에서 다시 새로운 삶을 살기를 원해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입니다. 혼자서는 변화를 경험하기가 쉽지 않아서 도움을 요청하거나 도움의 손길에 마음의 문이 열려 있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우선 코미스키는 말씀을 거부하고 치유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알아야 할 몇 가지 전제를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첫째, 성경에 동성애적 관계를 인정하는 근거는 없다. 둘째, 동성애 관계를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사람에게는 그가 그러한 행위를 밝히고 도움을 찾기 전까지는 교회 안에서 어떤 종류의 책임 있는 일도 맡게 해서는 안 된다. 셋째, 동성애의 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있을 경우, 다른 성적인 문제로 죄를 지은 사람과 똑같이 대해 주어야 한다. 성에 관한 한, 이성적 범죄를 저지른 사람과 조금도 다르지 않게 적용하고, 일관성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코미스키에 따르면 동성애의 뿌리는 깊고 강합니다. 따라서 이것을 해결하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그러므로 그 변화의 과정은 일시적 승리와 실패를 거듭하는 자기 분투의 과정입니다. 곁에 있는 사람뿐 아니라 고군분투하는 본인 스스로도 큰 절망을 경험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처럼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를 하나님께서 반드시 해결해 주실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토록 강하고 끈질긴 동성애에 대한 성욕, 그리고 잠시 멈출 때마다 찾아오는 동영상에 대한 집착을 이길 수 있는 길은 고투자 스스로 하나님의 도움에 의지하는 것입니다. 동시에 그들의 동성애적 성욕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온전히 대치되기까지 고투자를 붙들어 주고, 믿어 주고, 기다려 줄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고투자를 위한 격려와 변화의 과정

먼저 동성애적 성욕을 느끼는 청년에게 고투자로서 자신을 진심으로 주님께 맡기는 결단이 필요함을 알게 해야 합니다.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는 것과 예수님의 복음이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적으로 받아들이도록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참된 복음만이 진정한 위로와 변화를 경험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의 진리를 변형시켜 동성애가 죄가 아니라는 인식은 변질된 복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일부 신학자들이 친동성애적 연구를 하면서 매우 교묘하게 성경의 진리를 왜곡시키는 경우를 봅니다. 만일 동성애를 성경이 허락했다고 가르치는 교회가 있다면 그것은 바른 복음을 전하지 않는 교회입니다. 아울러 동성애자로 사는 것이 성경적이라고 가르치는 교회 역시, 동정심은 풍성할지 모르지만 진리에 있어서는 심각하게 함량 미달입니다.

그런 교회들은 예수님을 찬양하기보다는 자신들의 동성애적 성향을 추켜세우기에 더 열심입니다. 이런 교회에는 성령의 기름이 부어지지 않습니다. 성경을 기록된 그대로 선포하고, 인내와 사랑으로 동성애 형제자매들이 진심으로 주님의 길을 따르도록 권면하는 교회만이 영적인 성장과 변화를 이룰 수 있는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에이즈와 같은 치명적인 질병에 걸리지 않도록, 그리고 성적 유혹이 아니라 보다 가치 있고 생산적인 일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독려해야 합니다.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자녀를 낳고 양육하는 거룩한 가정 사역에 참석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것이야말로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또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땅을 살아가는 데 가장 보람된 길로 안내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았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깨우침과 순종은 전혀 별개의 개념으로 동성애 고투자에게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과정이 필요합니다.

우선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영접하는 기초 단계에서 변화가 시작되어야 합니다. 바른 복음을 받아들이고,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음을 고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신의 힘이 아니라 성부성자성령 삼위 하나님의 도우심을 통해서만 참된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하지만 복음의 능력이 일시에 마술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동성애적 행동과 관계를 멈추는 것만 해도 큰 성과임에는 분명하지만, 내면에서 동성애적 열망을 떨치기란 좀처럼 쉽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고투자의 갈등은 치열합니다. 특히 음란물과의 싸움은 매우 고통스럽습니다. 작은 변화를 시작했더라도 한순간에 무너지고 반복적으로 실패합니다.

그러나 변화의 목표는 그것보다 훨씬 높고 심오합니다. 왜냐하면 동성애는 행동이나 욕망보다 높은 하나의 세계관이기 때문입니다. 한 개인의 내면 전체를 지배하는 이것을 바꾸기 위해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대안입니다.
고투자가 하나님을 의지할 때 하나님은 분명히 그 변화의 과정에서 버리거나 떠나지 않으시고 도와주십니다. 하나님처럼 고투자를 지속적으로 만나 주고 위로와 격려를 해 줄 수 있다면, 그리고 교회 공동체가 나서서 고투자를 위해 기도해 주고 상담과 격려를 함께해 줄 수 있다면, 반드시 변화할 것입니다.

한 사람으로는 부족하다

필자는 20대 중반의 고투자와 상담한 적이 있습니다. 그가 오랫동안 고통을 받았던 문제는 다름 아닌 여성적인 행동을 취하는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어머니의 태도였습니다. “넌 그렇게 사는 게 편해? 이게 사람이 사는 거야?”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그의 마음은 무너졌다고 합니다.  감정이란 판단하거나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것입니다. 공감함으로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감정은 느낌이며, 느낌은 부정한다고 없어지지 않습니다. 비록 당황스럽고 어려운 선택이라 하더라도 동성애적 감정을 느끼는 사람의 감정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인정해 주어야 합니다. 그것은 마치 기쁜 사람에게는 기쁨을, 슬픈 사람에게는 슬픔을 공감해 주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고투자가 자기 감정의 존재를 편안히 받아들일 수 있도록 안정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줄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감정이 육체적 경험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교회 역시 동성애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찾아왔다고 해서 특별하게 놀라거나 경원시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21세기 한국 교회가 준비해야 할 복음 사역의 단면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찾아오는 동성애 고투자 혹은 구도자들 한 명 한 명에게 손을 내밀고 계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예수님은 고투자에게 동성의 연인에 대한 갈망 그 자체를 내려놓으라 하십니다. 공동체 앞에 자신의 고민을 내려놓고 함께 기도할 때 빛으로 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공동체는 두려움 없이 동성애 고투자를 환대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믿음 공동체의 돌봄에 있어서는 하나님 아버지와 계시된 말씀이 철저히 우선되어야 합니다. 자칫 자유주의적 교회들처럼 성경을 고쳐서라도 동성애를 지지하겠다는 것은 기독교 신앙의 근간을 포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오히려 교회는 진리와 긍휼을 함께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고투자는 하나님께 자신의 쾌락과 사랑과 복종을 바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성령님의 도우심과 고투자 자신을 위한 뜨거운 기도와 성령의 공동체인 교회 성도들의 도움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고투자를 위한 하나님의 부르심이 지금보다 훨씬 더 높은 곳에 있음을 알고, 그 부르심에 열정적으로 응답해야만 합니다.

고투자를 자유롭게 하는 것은 참된 진리입니다. 그 진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반드시 고투자에게 먼저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만일 개인적인 기독교 상담자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가능한 한 동성의 상담자를 비성적(非性的)인 관계로 상담하는 것이 유익합니다. 성이 개입되지 않은 동성과의 관계야말로 동성애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돕는 중요한 계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대개 남성 동성애자들은 친아버지에 대한 긍정적인 경험이 결핍되어 있습니다. 그는 자기중심적이고 미성숙한 아버지의 학대나 외면 가운데서 자랐습니다. 그러므로 남성 동성애자 고투자가 성적 관계와 관련이 없는 교회 남성 신자들과 우정을 쌓고 도움을 받는 것은 동성애에서 벗어나는 중요한 지름길입니다. 교회의 남성 조력자들은 심리적으로 고투자로 하여금 긍정적인 친아버지를 경험하게 하는 치료를 가져옵니다.

아울러 상담자는 우선 고투자에게 자살 충동이나 우울 장애가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상담 과정에서 갑작스럽고 불필요한 시도가 생기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동성애적 열망을 가지고 있으면서 스스로 경험한 수치심이나 고통을 진술할 수 있도록 하는 공감적 경청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처음부터 단번에 해결하려고 덤비는 것은 어리석은 시도입니다. 반복된 실패를 경험하더라도 작은 변화에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아야 합니다. 신뢰와 공감을 전제한 후에 비로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중재하는 것이 상담자와 공동체의 핵심적인 역할입니다.

당분간 한국 교회는 동성애 문제로 아픔을 겪게 될 것입니다. 현재 한국 사회는 동성 결혼 합법화 논쟁 중입니다. 국회의 개헌 특위가 전국을 돌며 헌법 개정을 위해 국민들로부터 의견을 수렴하는 가운데, 특히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동성혼 합법화를 위한 개정안이 등장해 큰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광주, 대구, 아산 등지에서는 많은 사람이 편향된 헌법 개정에 반대하며 시위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언론은 생리대 소비자들의 훨씬 작은 규모의 집회나 시위에 대해서는 보도를 하면서도, 이처럼 큰 규모의 지회와 진지한 논의에 대해서는 보도조차 하지 않는 형편입니다. 그것은 이미 한국 사회와 언론에서 동성애 논쟁이 생각보다 많이 진행되었음을 보여 주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동성 결혼 합법화를 지지하는 많은 사람의 오래되고 치밀한 물밑 작업과 그에 맞선 저항과 논쟁이 당분간 심각하게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동성 결혼 합법화의 위험

동성애는 어떤 면에서 하위문화(sub-culture)에 속합니다. 하지만 2015년 미국 대법원이 동성혼 합법화를 결정하면서 세계적으로 동성 결혼에 대한 관심이 커졌을 뿐만 아니라, 동성애적 성욕을 가진 사람들의 목소리가 한국 사회에 전반적으로 많이 고무된 것이 사실입니다. 심지어 대학의 일부 기독 학생들조차 동성애를 하나님의 말씀의 관점이나 에이즈와 관련된 파괴적 실상이 아닌 인권이라는 차원에서 지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표준으로 믿는 한국 교회의 다수 그리스도인들과 동성애의 개인적·사회적 폐해를 이해하는 국민들은 여전히 동성 결혼이 합법화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대다수 국민들의 자율권까지 제한할 수 있는 동성애자 중심의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가지고 있습니다.

동성 결혼 합법화, 군대 내에서의 동성애 행위 처벌 조항 폐지, 국가인권위원회 헌법기관화 등은 동성애자들과 그들을 보호하고자 하는 사람들에 의해 지금도 지속적이고 조직적으로 시도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천문학적인 에이즈 치료 비용을 국가가 전액 부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인권위원회는 학생인권조례 등의 지자체 수용을 요구하며, 초헌법적 기관으로서 타인의 인권을 무시하며 자신들이 정한 인권만을 절대적인 것인 양 주장합니다.

그 결과 어린 청소년들은 동성애 음란물에 무차별 노출되었고, 그것이 유해물이라는 경고조차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치명적인 동성애적 성행위의 결과, 1998-2003년 사이 매년 0-6명의 에이즈 환자가 발생하던 우리나라에서 지난 2016년 한 해에만 1000명이 넘는 에이즈 환자가 발생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수자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경제적 외부 효과, 즉 세금과 건강보험을 지불하는 대다수의 국민들에게 건강보험료 인상이라는 영향을 미치는 보건정책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법과 정책이 공정하게 운영되기 위해서는 국민 다수의 보건 이익과 조세원칙, 수익자 부담에 따른 형평성을 지키는 것이 핵심입니다. 정책의 보편성을 간과한 채, 일부의 성적 취향과 쾌락의 보호를 세련된 인권이라 말하며 다수의 청소년들을 에이즈 감염 위험에 방치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입니다. 성경을 진리로 믿는 교회와 성도들, 더 나아가 인간의 보편적 가치로서의 가정의 남녀 결합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함께 힘을 모아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의 권리는 동등하게 인정하되, 한쪽으로 치우친 법의 제정이나 건전한 법의 폐지 시도는 반드시 막아야만 합니다.

더군다나 동성애자들을 축복한다는 명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변형시키는 것은 기독교 진리를 포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오직 진리의 기준 안에서만 순종의 의지와 진실한 회개를 일으키는 성령의 감동이 경험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동성애 고투자도 일회적 감동이나 은혜 체험이 아니라 매시간 하나님의 은혜의 충만함을 구해야 합니다.

동성애는 한 사람의 전문가, 상담가, 기도자가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긍휼의 마음과 인내하는 사랑으로 연약한 자, 아픈 자를 돕는 많은 손길이 모여야 비로소 하나의 회복 과정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우선 고투자를 향한 교회 전체의 시선이 바뀔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사람을 구하는 진정한 피난처가 되어 주님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을 연결시켜 주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성령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실 때 변화를 원하는 고투자의 의지가 확고해지고, 교회는 회복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하재성 고려신학대학원 목회상담학 교수. 밴더빌트대학교(Ph.D.). 저서로 《우울증, 슬픔과 함께 온 하나님의 선물》, 《강박적인 그리스도인》 등이 있다 필자의 다른기사 keyboard_arrow_r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