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와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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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2017년  11월호무신론자들은 왜 부활을 믿기 힘들어 하나? 변증서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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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터니 플루, 게리 하버마스/ IVP/ 256쪽/ 12,000원


“예수는 정말 부활했는가?” 비신자들이 이런 돌직구 질문을 던진다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예수님이 실제로 부활하지 않았다면 기독교 신앙 자체가 다 헛것이다. 반면에 부활이 정말 일어났다면 기독교의 모든 이야기는 사실이다. 부활 사건의 역사성 하나로 전체 기독교의 진위가 판가름 난다. 그만큼 부활 사건에 대한 확고한 증거를 붙잡는 일은 기독교 신앙을 굳건히 세우고 전하는 데 결정적이다.

그렇다면 세상에 부활의 증거들을 어떻게 전하는 게 효과적일까? “성경에 예수님의 부활 사건이 기록되어 있으니까 사실이고, 그러니 당연히 믿어야지!” 신자들에게는 은혜로운 논리일지 몰라도 비신자나 무신론자들에게 이런 논리는 단순한 순환 논리로 치부되고 만다. 성경을 우선적으로 내세우지 않고도 무신론자를 포함해 누가 들어도 수긍할 만한 증거와 논리로 부활 사건의 사실성을 입증할 도리는 없을까? 

《부활 논쟁》은 철저히 비신자들의 시각에서 그들도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 논리와 역사적 정황 증거들을 들어 부활 사건의 타당성을 입증하고자 한다. 이러한 객관성을 처음부터 끝까지 견지하고 있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다. 이런 분위기에 탄력을 받아서인지 이 책의 편집자 데이비드 바게트는 오히려 합리적 증거를 가볍게 여긴 채 교조적 무신론에 집착하는 비신자들을 이렇게 꼬집기까지 한다. 

“그저 증거들에 코웃음 치거나, 알 수 없는 것이라며 무시하거나, 오래전의 일이라며 의심하거나, 학자들 사이에서 완전한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고 지적하거나, 주장된 사실들을 둘러싼 불분명한 지식을 인용하거나, 혹은 그저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고집하거나 하는 그 어떤 접근도 이성적 확신을 담보하지 못한다. 이중 그 무엇도 중요한 증거에 대한 정직한 검토를 대체할 수 없다”(p.147).

부활 사건의 신빙성, 무엇이 걸림돌인가.

이 책은 2003년 베리타스 포럼(The Veritas Forum)에서 열린 앤터니 플루와 게리 하버마스의 부활 논쟁을 담은 책이다. 베리타스 포럼은 전 세계 대학의 저명한 기독교 사상가와 무신론 사상가들을 초대해 기독교 진리에 대해 강연하고 토론케 하는 포럼이다. 생애 마지막 무렵 무신론을 버리고 유신론자로 전향한 철학자 앤터니 플루와 부활 논증에 관한 세계적 권위자인 게리 하버마스가 이 포럼에서 나눈 부활 논쟁과 토론이 이 책의 1부에 담겨 있다.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과 죽음, 장사, 부활에 대한 철학적·역사적 증거들을 놓고 합리적 결론을 도출하기 위한 치열한 토론이 전개된다. 

이 책의 2부에는 2004년에 전 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유신론 수용을 선언한 플루의 인터뷰와 함께 그가 어떻게 신의 존재를 믿게 되었는지를 소개한 책 《존재하는 신》에 대한 하버마스의 논평이 실려 있다. 3부에는 데이비드 바게트가 앤터니 플루와 게리 하버마스의 대화, 그리고 플루가 유신론자가 되기까지의 지적 회심 과정을 비평적으로 검토했다.

“논쟁은 정확히 말하면 증거에 대한 합리적인 평가다. 그리고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사실을 기반으로 해서 무엇이 진리인지를 알아내려는 시도다”(p.21). 예수님의 부활 사건에 대한 증거들이 존재한다면 합리적인 이성이 과연 그것을 믿을 수 있느냐에 초점을 두고 진행된 1부 논쟁 편에서 예수의 부활 사건을 놓고 앤터니 플루가 던진 주된 의문점들에 대해 게리 하버마스가 대답한 내용들을 한데 요약해 본다.

첫째, 예수는 십자가에서 정말 죽었는가? 십자가에서는 죽은 시늉을 할 수 없다. 장시간 매달려 있는 것만으로도 질식하게 된다. 머리보다 팔이 더 높이 들린 상태로 매달려 있으면 늑간근, 흉근, 삼각근 등 폐 주변 근육에 몸의 무게가 실려 이로 인해 폐에 압박이 가해지게 된다. 몸의 무게가 이 근육들을 끌어내리면 몸은 십자가 아랫부분으로 처지게 되고, 무릎이 꺾여 몸 전체가 고꾸라진다. 예수님은 쇼크와 울혈성심부전이 복합된 질식으로 사망했다.

둘째, 예수가 잠깐 기절했을 수도 있지 않은가? 기절설의 주된 함정은 그것이 조금도 논리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만일 예수님이 힘이 빠지고 쇠약해져서 죽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무덤에서 다시 소생했다면, 깨어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타나러’ 가신 것이 된다. 땀에 젖고 상처가 터져 흉한 모습으로 쓰러질 듯 비틀거리며 가는 곳마다 핏방울이 떨어져 흔적을 남겼을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이 살아 있었다는 사실을 제자들에게 확신시켰겠지만, 제자들은 결코 그가 부활했다는 결론을 내리진 못했을 것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없었다면 신자들의 부활을 받아들일 이유도 없고, 기독교도 없었을 것이다.

셋째, 실제로 예수를 장사 지냈다는 증거가 있는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그 현장에 종교 지도자들이 있었고, 그들은 예수님이 죽기를 바라고 있었다. 당시 로마 군인들의 임무는 그 결과를 확인하고 일을 마무리 짓는 것이었는데, 거기에는 예수님의 시체를 매장하는 것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더구나 마태는 유대인 목격자들이 제자들이 시체를 훔쳐 갔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예수님의 무덤이 실제로 비어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고 기록한다. 만일 그곳에 누군가 장사된 적이 없었다면 그들의 그런 태도는 있을 수 없다.

넷째, 제자들이 예수의 환영을 본 것은 아닐까? 예수님의 제자들이 스승의 죽음을 너무도 깊이 애도한 나머지 예수님의 환영을 보았다는 주장이 가능하다. 그러나 여러 사람이 동일한 환영을 보는 일은 없다. 환영을 일으키는 흔한 원인은 배고픔이나 목마름과 같은 신체적인 결핍인데, 그 상태에서 개인적으로 특정 환영을 경험할 경우 함께 있는 많은 사람이 그 환영을 동시에 경험하긴 불가능하다.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와 사도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를 직접 목도하기 전엔 비신자였기 때문에 환영을 만들어 냈을 가능성도 없다. 게다가 일반적으로 환영은 경험자들의 삶을 바꾸지 못한다. 

플루가 신은 인정하되 기독교는 거부한 이유

이 책의 2부와 3부에서는 게리 하버마스와 데이비드 바게트가 저명한 무신론자였던 앤터니 플루가 어떻게 유신론자로 회심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한다. 플루가 무엇을 근거로 마침내 유신론을 받아들이게 되었는지는 무신론자 대상의 변증전도가 중시해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 준다.

플루는 우선 무신론자들의 가치관을 대변하듯 이렇게 말한다. “어떤 개인이 새로운 사안을 믿거나 믿지 않을 합리성은 그 사람이 새로운 사안을 맞닥뜨리기 전에 이미 합리적이라고 믿고 있던 것이 무엇이냐에 달렸다”(p.117). 그러나 그가 오랫동안 견지해 오던 무신론적 자연주의 가치관은 빅뱅이론과 미세조정(fine tuning) 논증, 지적 설계(Intelligent Design) 논증 등을 비롯한 고전적인 신 존재 증명, 특히 우주론적, 목적론적 신 존재 증명에 의해 깨지고 만다.

플루는 신의 존재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구성하는 세 가지 철학적 논점으로 자연법칙의 기원, 생명의 조직, 생명의 기원을 들었다. “우리가 보는 지구에서 목적 지향적이고 자기 복제를 하는 생명의 기원에 대한 유일하게 만족스러운 설명은 무한한 지적 정신의 존재다”(p.133). 이런 근거들을 통해 플루는 창조주 신을 인정하게 되지만,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허용한 기독교의 하나님을 통해서는 악의 문제를 풀어낼 수 없다고 여겼다. 그래서 창조만 하고 세상에 더 이상 개입하진 않는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신까지만 인정하는 이신론자에 머물고 만다.

플루는 창조세계의 법칙을 비롯해 강력한 유신론적 근거들을 인정하고도 기독교인이 되진 못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 책을 따라가다가 그가 하나님의 절대적 예정에 대해 깊은 반감을 가졌다는 데 눈길이 쏠렸다. 그의 말을 직접 들어 보자.

“사실 미래의 삶은 전통적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말하는 예정하시는 하나님에 의해 주어집니다. 그런 하나님을 어떻게 이해해도 선하신 분이라고 볼 수는 없지요. 선에 대한 일반적 이해와도 맞지 않고요”(p.84).

플루와 같이 합리성을 중시하는 지적 무신론자들은 칼뱅주의에서 주장하는 하나님의 절대 이중예정론에 대해 상당히 적대적이다. 이 부분은 필자가 한동안 안티 기독교 사이트에서 안티 기독교인들과 논쟁을 벌일 때도 자주 느꼈던 애로사항이다. 그들은 이미 천국에 갈 사람, 지옥에 갈 사람을 정해 놓고도 실제로는 아닌 척하며 사람들에게 믿으라고 기회를 주는 듯한 하나님, 안 믿으면 그 불신을 그들의 책임으로 돌리며 저주를 퍼붓는 하나님에 대해 도저히 용납하기 어렵다는 비판을 지금도 쉴 새 없이 쏟아 낸다. 이런 반응을 대할 때마다 이 이슈에 대한 신학적 재조율이 없다면 현대의 비신자들을 복음으로 설득해 내기란 요원할 수도 있겠다는 회의감에 빠져든 적이 많다. 

칼뱅은 말씀과 은혜를 놓치고 공로주의와 행위 구원으로 치닫던 중세 가톨릭 시대를 성경적 가치로 되돌렸다. 그러나 칼뱅적 개신교는 사람의 전통과 의지를 강조한 당대의 종교적 경향을 거부하느라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은혜를 너무 강조하면서 반대급부로 절대 이중예정론으로까지 나아갔다. 이후 청교도, 존 웨슬리의 예지예정론, 오순절 성령운동 등을 통해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의지나 책임 간의 균형을 되찾으려는 신학적 시도가 진행되어 왔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으며 한국 교회 내에서 대승적으로 이 예정론 문제를 놓고 500년 동안 교회 공동체에 더하신 새로운 신학적 조명과 지혜를 반영하는 좀 더 충분한 신학적 반성과 성찰이 진행되길 기대해 본다.

유신론의 증거가 믿음을 낳지는 못한다

책에서 성경에 주된 비중을 두지 않고 제시한 부활에 대한 객관적·역사적 증거들은 “최소한의 사실들”, “경험적으로 검증 가능한 역사학의 표준적인 주장”(p.143), “지적 최선”(p.194)과 같은 말로 표현된다. 이렇게 예수님의 부활 사건이 그의 신성을 보여 주는 역사적 사실이라는 입증 작업을 통해 기독교 자체가 참된 진리체계라고 주장하는 데 이 책의 궁극적인 목적이 있다. 이것은 곧 기독교에 창조주 신이 존재한다면, 부활은 결코 이해 불가능한 기적이 아니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그런 점에서 플루가 창조주 신을 인정하고도 특별 계시나 성육신, 부활과 같은 신의 기적적인 개입을 부인한 채 2010년에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 참 안타깝다. 그러나 그의 지적 회심 과정은 기독교인들이 무신론적 비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우선해야 할 접근방법이 무엇인지 새삼 조심스레 돌아보게 해 준다. 그들에게 성경의 내용부터 들이대며 직설적으로 복음을 전하려 하기보다 한 걸음 뒤로 물러서 먼저 그들의 사고방식 안에서 진리를 표현하고 마음을 열게 해 주어야 한다.

변증전도는 비신자들에게 먼저 신의 존재에 대한 합리적 증거들을 보여 주고, 그 신을 어디서 만날 수 있는지 안내하는 데 초점을 둔다. 기독교는 그 창조주 신이 이 땅에 사람으로 온 존재가 바로 예수라고 믿는, 다른 어느 종교나 신화에서도 접할 수 없는 독특하고 매력적인 진리다. 이 사실을 먼저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면 부활 사건의 타당성 또한 의외로 쉽게 전할 수 있다. 파스칼이 말한 대로 있던 것을 다시 있게 하는 것이, 없던 것을 있게 하는 것보다 훨씬 쉽기 때문이다. 

이 책의 곳곳에는 무신론적 자연주의자들의 허점을 찔러 그들에게 부활 사건을 포함한 기독교 진리의 타당성을 제시하는 데 활용할 만한 대응 논리들이 가득하다. 그러나 하나님은 믿음으로 결단할 여지를 남겨 두기 위해 증거들을 헤프게 다 보여 주시진 않는 것 같다.

플루의 문제는 “증거가 이끄는 데로 따라갔을 뿐”(p.121) 인격적인 결단을 내리지 않았다는 데 있다. 아무리 많은 증거들을 본다 해도 의심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어딘가에 남아 있다. “그 어떤 종교도 예수와 같은 카리스마적 인물과 바울과 같은 최고 수준의 지성을 결합하고 있지 않다. 만일 전능한 신이 종교를 세웠다면 기독교가 바로 그 종교일 것 같다”(p.136)라고 말했던 앤터니 플루에게 게리 하버마스의 다음과 같은 조언이 끝내 적용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여전히 마음속에 의혹이 일어날 수 있고 다른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결혼도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신중해야 한다. 모든 정보를 한 줄로 세우고 과연 ‘네, 함께하겠습니다’라고 말할지 말지를 결정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네, 함께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단계가 바로 믿음이고 헌약이다”(p.90).   

안환균 그말씀교회 담임목사. 변증전도연구소장. 미국 풀러신학교(D.Min.). 저서로 《당신에게 가장 좋은 소식》 등이 있다. 필자의 다른기사 keyboard_arrow_r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