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와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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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2021년  10월호젠더 이데올로기와 21세기 한국 교회의 과제 성 이슈, 신학적 조명과 대안

젠더 이데올로기의 발흥과 21세기 문명이 봉착한 위기

‘해체의 시대’로 일컫는 21세기는 이전 세기와 전혀 차원을 달리하는 인류 문명사적 위기에 봉착해 있다. 이 시대 문명의 가장 주목할 만한 동향은 인간이라면 마땅히 받아들여야 할 생로병사의 자연 질서를 해체하려는 거대한 움직임이다. 특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는 그 어떤 무신론자도, 불가지론자도 결코 부정할 수 없는 남성과 여성의 성별(性別)이라는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철폐하려는 성 혁명(sexual revolution)이 일어나고 있다.

주지하듯이, 성별 해체는 1990년대 발흥한 젠더 이데올로기(gender ideology)에 의해 추진되고 있다. 젠더 이데올로기는 선천적으로 부여받은 생물학적 성(sex)이 아닌 사회·문화·심리적 성으로 간주되는 젠더(gender)를 통해 임의대로 성별을 결정할 수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남녀 고유의 천부적 성 정체성을 허무는 일을 자행한다. 인류의 장구한 역사 속에서 단 한 번도 인간 존재의 본질인 남녀의 성 정체성이 파괴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유념할 때, 이것은 문명사적으로 가공할 만한 위기를 자초하는 일라고 할 수밖에 없다. 

젠더주의가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오랜 세월 인류 사회를 보편타당하게 지배해 온 관습과 규범이 급속도로 해체되고 있다. 천부적으로 주어진 남녀 고유의 신체적 기능은 물론, 남녀가 결합해 이루는 결혼 및 가족 제도 역시 해체되고 있다. 한 남성과 한 여성의 신성한 결합인 일부일처제를 대체하는 대안적 생활 공동체로서, ‘인권’ 또는 ‘성적 다양성’이라는 명목으로 레즈비언·게이·바이섹슈얼·트렌스젠더·퀴어(LGBTQ) 파트너십이 제시된다. 심지어 폴리 아모리(=다자섹스, polyamory)도 은밀하게 확산 일로에 있다. 이것이 인류 사회에 어떤 암울한 그림자를 드리울 것인지는, 젠더주의에 함몰된 서구 세계가 분명하게 보여 준다. 

이 시대가 ‘성별 해체ⓖ성윤리 해체ⓖ가정 해체’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할 이유는, 역사상 성(性)과 문명이 상호 불가분리 관계에 있음은 명약관화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성과 문화》(Sex and Culture, 1934)를 발표한 조셉 다니엘 언윈(J. D. Unwin)은 5천년 역사에서 86개 주요 문명을 연구한 결과, 한 민족의 문화적 성취와 성적 규율 사이에 유의미한 상관성을 발견했다. 어떤 예외도 없이 사회가 번성했던 때는 성적 정절을 가치 있게 여겼던 반면, 성적으로 방종해지면 그 사회도 연이어 쇠퇴했다. 특히 주목할 것은 찬란한 문명의 동력이 일부일처제와 직접적 관련한다는 연구 결론이다.

무엇보다도 21세기 교회가 성 규범을 사수해야 할 당위성은 역사상 성 규범 철폐에 대한 저항이 항상 교회로부터 시작됐기 때문이다. 모든 시대에 걸쳐 교회와 성도는 변함없는 기독교의 복음 진리를 밝히 드러내야 할 책무가 있는데, 매 시대마다 그리스도의 진리를 위해 헌신한 이들로 말미암아 세상이 정결해진다는 사실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건전한 성 규범을 심대하게 위협하는 젠더주의가 횡행하는 21세기는 교회와 성도가 성 규범 해체에 제동을 걸 뿐만 아니라, 인류가 사수해야 할 보편타당한 윤리적 대안을 몸소 행함으로써 실천해야 할 위중한 때다. 

사회적 합의 없이 강행되는 젠더 주류화의 실체를 공론화할 연구자 양성 시급

21세기 글로벌 세계에서 최고 순위를 차지하는 정책은 바로 젠더 주류화(성 주류화, gender mainstreaming)다. 심각한 문제는 젠더 주류화가 글로벌 파워 엘리트에 의해 강행되는 핵심 전략임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사람(일반인은 물론 전문가조차)에게 생소하다는 점이다. 이것은 오늘날처럼 개명한 민주사회에서는 참으로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만큼 실체적 진실이 은폐된 젠더 주류화가 사회적 합의 없이 극소수 정책 입안자 사이에서만 은밀하게 강행된다는 방증이다. 

그렇다면 젠더 주류화의 실체란 무엇인가? 젠더 주류화는 일명 ‘성차별 철폐 운동’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것은 절반의 진실에 불과하다. 젠더 주류화가 겨냥하는 성차별 철폐는 차별의 근원이 되는 성별 해체, 곧 남성의 시각에서 여성의 권리 신장은 한계가 있으니 아예 성별을 해체해서 극단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또한 결혼 및 가족 제도가 왜곡된 성 역할과 성적 위계 질서를 파생한다고 간주하기에 이 또한 해체하자는 것이 젠더 주류화의 숨은 전략이다.

젠더 주류화가 지향하는 젠더 평등(=성 평등, gender equality)에서 평등이란 남녀 평등(=양성 평등, sex equality)이 아닌 성별이 완전히 해체된 절대적 평등, 더 나아가 무수히 다양한 성별로 세분화한 모든 사람이 똑같아야 한다는 전체주의적 평등에 가깝다. 생물학적으로 명백히 다른 남녀의 성별을 획일화하는 것은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대하는 헌법상 상대적 평등의 개념을 위반할 뿐 아니라, 인간 존재의 본질을 훼손하는 행위다. 그러므로 양성 평등과 성 평등의 차이점을 직시함으로써, 정책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감시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젠더 주류화의 허구성을 파헤치기 위해 ‘젠더’ 용어의 실체적 진실을 짚고 넘어가야만 한다. 본래 ‘젠더’는 영문법에서 중성형 명사를 지칭하는 단순한 문법 용어였다. 하지만 존 머니(J. Money)라는 일개 성 과학자가 성 정체성은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고 주장하며 사람들을 기만한 희대의 사건(쌍둥이 형제를 대상으로 실패로 끝난 비인간적 사기 실험으로 판명)에 연루됐던 사실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젠더’가 오늘날 국제 사회에서 모든 성 정체성을 포괄하는 주류 용어로 통용되는 현실은, 참담한 역사의 아이러니다. 

더욱이 젠더에 입각해 성을 다원주의적으로 이해하면서 파생된 치명적 문제는 이것이 불가피하게 정체성 혼란을 초래한다는 점이다. 인간의 정체성은 일관성이 있어야 하는데, 젠더의 실체가 기분과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하는 성이다 보니, 각자 느끼는 대로 상황에 따라 성별을 선택하게 된다. 결국 남녀 성 정체성을 거부하고, ‘제3의 성’을 넘어 수많은 성 정체성을 법적으로 용인하면서 수십 가지 유형의 젠더퀴어(‘성소수자’는 성적으로 부도덕한 이들을 보호해야 할 약자로 왜곡하므로 ‘젠더퀴어’라고 지칭)를 양산하는 것이다. 

젠더 주류화는 무수히 다양한 성 정체성의 다원화를 추구함으로써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무모하게 도전할 뿐 아니라, 인간 세상을 무법천지의 디스토피아(dystopia)로 만들어 간다는 사실이 입증됐다. 이런 상황 속에서 21세기 한국 교회는 젠더 주류화의 실체적 진실을 간파함으로써 다각도로 치밀한 대응책을 세워야 한다. 특히 젠더주의 세력이 유명학자들을 총동원하여 반(反)이성적인 성 혁명을 학문적으로 정당화하는 상황 속에서 그 핵심 전략인 젠더 주류화의 폐해를 사회적으로 공론화할 실력 있는 연구자 양성이 시급하다.

21세기가 섹스와 젠더를 분리해 성 정체성의 혼란을 조장하는 상황 속에서 필자는 생물학적 섹스를 기반으로 건강한 성 정체성의 형성을 독려하고자 한다. 젠더주의 진영은 양자를 분리해 섹스를 생물학적 성으로, 젠더를 사회적 성으로 구분하면서 특히 전자를 성관계에 제한시키지만, 본래 양자는 통전적·전인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에 덧붙여 필자는 일정 기간 젠더의 실체적 폐해를 드러낸 이후엔, 비(非)과학적인 젠더 용어의 폐기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제언한다. 

국민적 동의 없이 추진되는 성애화에 대한 저항과 사회적 성화의 확산

젠더주의가 창조 질서를 해체하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또 하나의 핵심 전략은 바로 성애화(sexualization)다. 젠더 주류화가 실체적 진실이 은폐된 채 사회적 합의 없이 강행되듯이, 성애화도 국민적 동의 없이 정책 관계자에 의해 은밀하게 추진된다. 젠더주의가 강행하는 성 혁명의 악영향은 사회 전체의 성애화를 통한 타락과 패륜의 확산이라고 확언할 수 있다. 성 혁명이 휩쓸고 지나간 북미와 서유럽에서는 도덕적·윤리적 기준의 해체가 강요되고, 음란을 조장하는 규범이 형법을 통해 강제화(대표적: 차별금지법 및 평등법)되기 때문이다. 

성 혁명을 겪은 국가들에서는 성(性)과 관련된 강고한 규범들이 급속도로 풀려서 사회가 더 성적으로 문란해졌다. 특히 동성애가 또 하나의 묵인된 성 문화, 인간의 또 다른 대체적 쾌락이 되고 있다. 그런데 동성애는 단지 시작일 뿐이고, 성 혁명의 끝자락은 폴리 아모리로 귀결될 거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성 도덕의 와해는 문화가 부패한다는 징후다. 이혼의 급증으로 인한 가족 공동체의 붕괴, 정신·심리적 장애의 만연, 사멸해 가는 성병의 전염병적 유행, 엄청난 수효의 태아를 죽이는 일 등은 사회가 쇠퇴한다는 신호다.

특히 젠더주의가 야기하는 가장 심대한 악영향은, 아동 및 청소년이 성애화로 인해 크나큰 해를 입는 일이다. 젠더 주류화의 패키지에는 외설적 성교육을 의무 교육에 포함한다. 필자가 우리나라 중고교 교과서 총 27종을 분석한 결과, 거의 예외 없이 젠더주의에 입각해 집필됐음을 발견했다. 특히 성 윤리가 부재한 성적 권리 중심, 피임 위주의 조기 성애화를 근간으로 한 성교육 내용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지난해 여성가족부가 시행한 ‘나다움 어린이책 교육문화사업’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난 부적절한 성교육은 많은 학부모의 공분을 산 바 있다. 

젠더주의 세력은 왜 성애화에 주력할까? 그 이유는 성애화가 모든 유의미한 관계(하나님·교회·전통·부모·교사와의 관계)를 파괴하는 가장 막강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특히 다음 세대를 성에 탐닉하게 하는 성애화가 동력을 얻으면, 나머지 목표는 저절로 달성할 수 있다. 그러나 학교 공교육 주도의 잘못된 성교육을 통해 아이들의 건전한 가치 체계를 짓밟는 것은, 인류의 희망을 잘라버리는 중범죄다. 그러므로 국가와 교육 기관, 미디어는 아동 및 청소년을 성적으로 함몰시키는 모든 유해한 환경을 재정비해야 한다.
이런 연유에서 필자는 사회적 성화를 이룩해야 할 21세기 한국 교회의 중차대한 과제를 역설한다. 패륜적 성 혁명이 횡행하는 21세기 문명사에서 사회 전체를 성애화(性愛化)시키는 흐름에 저항하고, 사회적 성화(聖化)를 확산시키는 일은 시대적 과제다. 사회적 성화는 이 시대에 반드시 구현해야 할 시대 정신으로 새롭게 각성해야 한다. 한국 교계와 신학계는 젠더주의에 함몰돼 기독교의 정체성을 잃어갈 뿐 아니라, 인류 사회의 근간이 무너진 서구 교계와 신학계를 회복시켜야 할 사명이 있다. 한국 교회의 사명은 성결한 성 혁명을 일으키는 사회적 성화로 승화해야 할 것이다. 

결혼을 거부하는 비혼화 추세 속에서 건강한 가정 구축의 당위성

오늘날 대한민국에서는 서구 세계에서 보기 드문 독특한 현상이 젊은 여성 사이에서 성행하는데, 이는 ‘4B’라는 강력한 운동 방식이다. 4B는 非혼·非연애·非섹스·非출산을 축약한 말로서 여성 간 연대를 급진적으로 강화하기 위한 행동 강령이다. 현대 문명을 파행적으로 뒤바꿔 놓은 ‘68혁명’을 겪은 후 서구 세계에서 이와 유사한 형태의 여성 연대가 횡행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현재는 남성 없는 결혼과 인공 임신 등이 제도적으로 마련됐기 때문에 4B처럼 이성 관계를 극단적으로 거부하는 운동이 확산하는 일은 흔치 않다.
사실 수년 전부터 한국의 젊은 세대는 사회·경제적 고통 속에서 결혼 인프라의 부족을 이유로 결혼을 포기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런데 이와 전혀 궤적을 달리하는 4B 운동이 등장했다. 4B 운동은 남성으로부터 해방하기 위해 이성애를 비판하고 동성애를 옹호하는 레즈비어니즘(lesbianism)과 연계되기도 한다. 최근 확산 중인 레즈비어니즘은 가부장제와 함께 이성애가 여성을 남성의 부차적 존재로 얽매는 남성 중심주의적 지배 도구라고 비판한다. 특히 이성애적 결혼을 강요된 모성(母性)과 성적 노예제를 확산하는 억압 제도라고 신랄하게 비난한다.

비혼(非婚)은 2015년 이후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페미니즘 담론의 주요 키워드이자 이성애 중심주의의 대항적 실천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비혼과 레즈비어니즘은 이성애 중심주의가 여성 간 연대를 가로막는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비혼 선언은 부계 혈통 중심적 친족 구조로의 편입 거부, 이성애 중심적 결혼 및 가족 제도에 맞서는 강력한 대항 전략으로 자리 잡고 있다. 더욱이 비혼을 넘어 ‘가부장제를 존속시키는 이성애 결혼 제도 자체를 거부한다’는 반혼(反婚)이 빠르게 확산되는 추세다. 

국내외에서 지금의 가정을 적대시하는 세력으로 인해 이 시대는 역사상 유례없는 물질적 풍요를 구가함에도, 나날이 영적·정신적 혼란에 빠지고 있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삶의 구심점을 잃어가고, 각종 정신 질환으로 인해 삶의 영역이 황폐해지고 있다. 이 시대가 안녕하지 못한 여러 원인 중에서 우리는 가정이 깨어진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특히 성혁명의 거센 파고 앞에서 가정이 해체되고 심리적·정서적으로 피폐해지는 위기에 직면해 건강한 가정 구축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필자가 건강한 가정 구축의 당위성을 역설하는 이유는, 가정을 지키는 것이 바로 인간을 지키는 일이며, 더 나아가 인류사회와 국가와 문명 자체를 지키는 일임을 오랜 연구를 통해 발견했기 때문이다. 가족 간의 끈끈한 유대 관계는 삶의 질은 물론이고, 죽음의 질도 좌우하는 중요 조건, 곧 ‘삶의 존엄-죽음의 존엄-인간의 존엄’을 결정하는 최대 변수다. 그러므로 건강한 가정은 ‘존엄한 삶-존엄한 죽음-존엄한 사회’를 실현함에 있어서 필수 불가결한 요소라고 확언할 수 있다.1

가정은 진실한 사랑의 결실인 자녀를 원하는 한 남성과 한 여성의 일부일처제에 기초해야 굳건히 세워진다. 이 안에서 인간의 성이 가장 축복받는다. 다음 세대는 갈등이 적은 결혼생활을 하는 생물학적 부모의 사랑을 받을 때 가장 잘 성장함으로써, 건강하고 안정된 가정은 건전한 사회인이자 신실한 신앙인을 키울 수 있다. 가정이 개인의 행복을 넘어 사회와 국가의 안녕과 긴밀한 상관관계에 있다면, 21세기 한국 교회는 트라우마의 온상이 아닌 서로에게 삶의 지평을 열어 주는 인격적 공동체로서 가정을 어떻게 건강하게 만들 것인지 깊이 고민해야 한다. 

21세기의 시대적 과제: 상생하는 남녀 관계와 진정성 있는 양성 평등 구현

젠더주의 핵심 전략, 곧 젠더 주류화, 성애화, 비혼화는 모두 여성이 주축으로 추진하는 정책들이다. 정확히 말해 젠더-페미니즘(급진적 페미니즘과 젠더주의의 사상적 혼합, gender-feminism)을 추종하는 여성 주도의 성 혁명이 21세기 문명을 강타하는데, 이것은 문명사에서 거의 유례가 없는 일이다. 그동안 인류에게 파괴적 결과를 가져온 사상 체계를 발전시킨 것은 주로 남성이었고, 작금의 성 혁명은 극히 예외적으로 여성이 주도한 결과물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 시대에 여성들이 역사의 전면에 나선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왜 여성들은 젠더를 성 관련 주류 용어로 새롭게 정착시키고 가정을 해체하는 성 혁명을 강행하는가?’ 여성들을 선동한 가장 유력한 동인은 다름 아닌 여성 차별의 장구한 폐습으로 보인다. 즉 여성들은 남녀 차별이 원천적으로 극복되지 않기에 차별의 근원인 생물학적 성별을 해체함으로써, 성차(性差)가 생물학적 결정이 아닌 사회·문화적 관행의 결과라고 강변하는 것이다. 또한 여성 차별의 강고한 질서인 가부장제와 이성애를 확대 재생산하는 기제로 간주되는 가정을 파괴하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기나긴 세월 억압받아 온 여성들의 복잡한 심경을 읽을 수 있다. 역사상 얼마나 많은 여성이 고난과 수치를 겪으면서 한 많은 인생을 살다 갔는지 모른다. 18세기 말 무렵 여성 차별 문제를 제기했던 자유주의 여권론(제1세대 페미니즘)의 공헌으로 양성 평등이 실현됐다면, 인류 문명은 지금과는 다른 방향으로 진일보했을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자유주의 여권론은 냉엄한 한계에 부딪혔고, 여성들의 차별받는 현실 속에 마르크스주의(Marxism)가 비집고 들어왔다. 마르크스주의는 과거에 행했던 자본가 대 노동자 대립 구도를 넘어, 오늘날에는 남성 대 여성, 이성애자 대 동성애자 대립 구도로 몰아간다. 

이런 맥락에서 기독교 복음주의자 존 스토트(J. R. W. Stott)가 ‘남녀에게 정의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나님은 남녀가 서로 어떤 관계를 맺기를 바라시는가?’라는 질문이 교회에 긴급한 과제를 던졌다고 주장한 것을 깊이 성찰할 필요가 있다.2 남성과 여성 사이의 정의로운 공존과 상생, 진정성 있는 양성 평등이 구현되지 않고는, 여성 주도로 성 혁명이 벌어진 난국을 근본적으로 타개할 수 없다는 사실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남녀 관계는 어떠해야 하는가?’ 필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말씀과 사역의 핵심인 ‘하나님 나라’(마 4:17; 막 1:15), 곧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이 실현되는 세계로 답변하고자 한다. 하나님 나라에서 남녀는 성별에 따라 구별되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의 영 안에서 하나다(갈 3:28). 따라서 남녀는 서로 다른 성의 존엄성을 훼손할 권리를 갖지 않으며, 어떤 성도 다른 성에 의해 존엄성을 침해당해서는 안 된다. 남녀는 서로를 결코 차별하거나 억압할 수 없다. 이를 침해하는 것은 ‘하나님 형상’(창 1:27)을 남녀에게 부여하신 하나님에 대한 모독이기 때문이다.

여성 주도 성 혁명이 강행되는 21세기는 진정성 있는 양성 평등을 실현함으로써, 상생하는 남녀 관계를 확립해야 할 전환점에 서 있다. 필자는 남녀 파트너십이 바람직한 남녀 관계를 위한 올바른 접근이라고 확신한다. 남녀는 모두 하나님 형상으로 지음받은 존재로서 서로 협력해 창조 세계를 돌보고, 서로 다름을 존중하면서 유기적 통일성을 이루는 동반자다. 그러므로 이제는 여성을 억압하는 남성중심주의, 남성을 억압하는 여성 중심주의를 모두 내려놓고, 남녀 모두의 존엄성이 회복된 공동체로 나아가야 한다. 

특히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마지막 시대에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주겠으니 그들도 예언을 할 것이요”(행 2:18; 참조, 욜 2:29)라고 말씀하듯이, 하나님은 남녀 모두에게 동일한 계명을 주셨고, 예수님의 구원과 성령의 은사를 주셨으며, 하나님 나라의 상속을 위해 부르셨다. 그러므로 남녀는 주 안에서 서로의 존재로 인해 지음을 받고 결국 하나님에게서 생겨남으로써,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구축 해가는 동역자다(고전 11:12). 

끝으로 젠더-페미니스트들에게 당부의 말을 전한다: 부당한 여성 차별의 악습은 근절돼야 하고 진정성 있는 해결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생명의 담지자(擔持者)인 여성들이 이성애적 결혼과 출산을 극도로 혐오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인류의 미래는 암울할 수밖에 없다. 문제 해결 방식이 성별 해체-성윤리 해체-가정 해체로 인륜에 치명적 위해를 가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이는 인류 문명을 파탄시키는 대재앙의 단초가 될 것이다. 부디 여성들이 인류의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과 인류의 안녕에 대한 책임의식으로 21세기 문명을 선도(善道·先導)할 수 있기를 간곡히 당부한다. 



註
1)    곽혜원, 《존엄한 삶-존엄한 죽음》(새물결플러스, 2014), pp. 441-442.
2)    존 스토트, 《현대 사회 문제와 그리스도인의 책임》, 정옥배 옮김(IVP, 2011), p. 367.

 

곽혜원 곽혜원 ┃ 21세기교회와신학포럼 대표. 튀빙엔대학교 (Dr. theol.). 저서로 《삼위일체론 전통과 실천적 삶》, 《존엄한 삶, 존엄한 죽음》 등이 있다. 필자의 다른기사 keyboard_arrow_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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