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는 각기 다른 장소에 있지만, 한 성령 안에서 하나의 몸으로 부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공간과 시간의 경계를 넘어, 우리를 예배 공동체로 모으십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성령 안에서 우리를 오늘의 예배로 초대하십니다.”
안녕교회의 온라인 예배는 이렇게 시작한다. 우리는 줌(ZOOM)이라는 온라인 플랫폼을 사용해서 모인다. 주일 오전, 예배 시간이 다가오면 화면에 작은 네모들이 하나둘 나타난다. 대부분 집에서 접속하지만 때로는 여행지거나 출장지일 경우도 있고, 야외에서 자연을 배경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우리는 예배자만이 아니라 그 사람의 예배 공간도 함께 바라본다. 작은 창 하나하나는 한 사람의 얼굴을 보여주는 동시에, 한 사람의 삶이 하나님 앞에 놓이는 예배의 자리다. 서로 다른 장소에, 다른 모습이지만 우리는 하나의 화면 안에 있다. 물리적으로는 흩어져 있지만 예배에서는 함께 있다.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보고,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같은 예전에 참여한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삶의 이야기를 나눈다. 이런 시간을 반복하면서 우리는 점차 공동체를 이뤄간다.
온라인 예배에서 사람들은 누구나 같은 크기의 네모를 가진다. 전통적인 오프라인 예배당에서는 강단과 회중석 사이에 높낮이와 거리가 있다. 그러나 모니터 안에서는 목회자든, 오랫동안 신앙을 지켜온 성도든, 이제 막 처음 발을 디딘 새가족이든 상관없이 모두가 똑같은 크기와 형태의 네모난 창 안에 담긴다. 행과 열을 맞추어 늘어선 네모 창들은 오프라인 강단이 지녔던 위계를 허물고,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동등한 예배자임을 보여준다. 누구 하나 도드라지게 높지 않고, 누구 하나 소외되어 구석으로 밀려나지 않는다. 그 창들은 그 자체로 하나님 나라의 평등하고 친밀한 수평적 공동체성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이렇게 우리는 같은 크기의 화면 안에서 하나의 교회임을 고백한다. 비록 거리상으로는 수십, 수백 킬로미터 떨어져 있을지라도, 온라인 예배는 서로 다른 삶의 자리를 하나의 예배로 연결한다. 한 화면 안에서 서로의 눈빛을 마주하고, 동일한 예전에 참여할 때 기이하고도 거룩한 전율을 느낀다. 공간은 달라도 서로의 존재를 깊이 인식하고, 함께 호흡하며 응답할 때 비로소 참된 교회가 이루어진다.
흩어진 자리에서 예배를 세우다
안녕교회는 매월 1, 3주는 온라인으로, 2, 4주는 오프라인으로 모인다. 오프라인 예배 때는 온라인 연결도 하기 때문에 사실 매주 온라인 예배를 드리는 것이기도 하다. 필자는 대학원에서 선교신학을 전공하며 ‘디지털 시대의 선교’에 대해 연구했다. 온라인이야말로 이 시대의 새로운 선교지이며, 디지털 공간 속에서 호흡하고 사역하는 새로운 선교사가 필요하다는 결론이었다. 새로운 시대와 세대를 담아낼 교회와 선교의 대안을 온라인에서 찾고자 했던 신학적 확신에, 오프라인 예배당을 당장 마련하기 어려웠던 현실적인 조건이 더해지며 자연스럽게 온라인 교회의 길로 들어섰다.
처음부터 온라인을 염두에 두고 시작된 교회이기에 우리의 고민은 ‘온라인 회중은 어떻게 예배의 주체가 될까?’였다. 우리는 일방적으로 예배 영상을 송출하는 대신, 서로 다른 공간에 있는 사람들이 함께 소통하며 누구의 목소리도 독점되지 않는, 수평적이고 안전한 예배를 바랐다.
안녕교회 온라인 예배에서 중시하는 것 중 하나는 예배자가 자신의 예배 공간을 직접 준비하는 것이다. 전통적인 교회에서는 담당자들이 이미 말끔히 정돈해 둔 예배당으로 회중이 들어간다. 반면 안녕교회의 온라인 예배자들은 스스로 자신의 공간을 준비한다. 디지털 기기를 켜고 마이크와 화면을 점검하는 일부터 시작해 성경과 예배 자료를 챙긴다. 성찬이 있는 주일이면 정성스레 빵과 포도주도 마련한다. 어떤 성도는 식탁 위에 십자가와 촛대를 세우고, 절기 색상에 맞춰 테이블보를 깔기도 한다.
이 준비 과정은 단순한 사전 작업이 아니라 거룩한 예배의 일부다. 예배를 관람하러 접속하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자리가 ‘하나님의 성소’임을 드러내는 주체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한 성도는 “직접 예배를 준비하면서 예배에 진정한 참여를 한 것 같다”고 고백했다. 일상의 공간 어디든지 거룩한 예배의 자리가 된다.
공간을 준비하는 일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예전이다. 화면은 자칫 사람을 수동적으로 만들 수 있기에, 온라인 회중이 예배의 주체가 되려면 예배의 순서와 몸짓, 응답을 분명하게 하는 예전이 필요하다. 안녕교회의 온라인 예배는 장로교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구성한 ‘예전적 온라인 예배’와 교파 간 일치와 협력을 경험하는 ‘에큐메니컬 온라인 예배’로 나뉜다.
온라인 환경에서는 오프라인과 같은 방식으로 모든 것을 구현하기 어렵다. 온라인의 기술적 한계는 오히려 새로운 예전적 시도를 낳았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줌 환경에서는 여러 사람이 동시에 마이크를 켜면 음성이 겹쳐 불협화음이 발생한다. 초기에는 다 함께 소리 내어 고백하는 부분들이 있었다. 그런데 줌의 특성상 각자의 목소리가 시차를 두고 도착하면서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가 되기도 했다. 또 ‘음소거 해제’를 해야만 소리가 전송되는데 음소거 상태에서 인도하다가 ‘목사님, 소리가 안 들려요’라는 채팅이 날아오기도 했다.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현재는 다 함께 소리 내는 부분을 최소화하고, 침묵이나 음원을 활용하기도 한다. 때로는 ‘오늘의 목소리’로 지정된 성도가 회중 전체의 고백을 대표하기도 한다.
에큐메니컬 온라인 예배는 주로 예배문을 낭독하는 식으로 진행되는데, 가능한 모든 예배자들이 순서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다. 필자는 예배 전에 예배문을 편집하는 과정에서 여러 번 그 내용을 읽고 또 읽는다. 오타를 수정하고 문장을 배치하다 보면 이미 예배문의 내용이 익숙해진다. 그런데 막상 예배 시간에 성도들과 함께 화면 너머에서 읽기 시작하면 전혀 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혼자 읽을 때는 글자였던 문장이 성도들의 목소리를 만나 활기차게 살아 움직인다.
설교 시간 역시 목회자 한 사람의 독점적인 강론에 그치지 않는다. 목회자는 성경 본문의 역사적 배경과 신학적 의미를 짚어주는 ‘안내자’ 역할에 집중한다. 본문 안내가 끝나면, 회중이 돌아가며 자신의 삶에 비춰 깨달은 바와 적용을 나누는 소통이 이어진다. 설교가 일방적인 전달이 아니라 성도 전체가 완성해 나가는 수평적 고백이 되는 것이다. 동일한 크기의 네모 창 속에서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과 표정에 집중하며 나눔을 들을 때, 말씀은 공동체의 삶 전체로 풍성하게 확장된다. 물론 주의해야 할 점도 있다. “나누길 원하시는 분은 음소거를 해제하고 말씀해 주세요”라고 하면 잠시 정적이 흐른다. 초반에는 필자가 정적을 견디지 못해 아무 말로 채우곤 했지만, 이제는 기다림의 시간을 갖는다. 침묵도 언어가 되기에 그 시간을 침범하지 않으려 한다. 또 누군가의 목소리가 독점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렇다고 말을 무작정 끊을 수도 없다. 차츰 우리는 서로를 배려하며 존중하는 법을 익히고,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공동체가 돼 가는 중이다.
교회를 개척하며 가장 고민했던 부분은 찬양이었다. 찬양팀도 없고, 악기도 없고, 찬양 인도자를 세우기도 어려운 작은 공동체에서, 온라인이라는 환경까지 더해지니 막막하기만 했다. 그런데 막상 교회를 시작해 보니 걱정만큼 큰 문제는 아니었다. 웬만한 찬양은 이미 유튜브에 좋은 영상으로 다 준비돼 있었다. 우리는 매주 부를 찬양을 미리 정해 유튜브 영상을 화면으로 공유하고, 가사 자막을 보며 각자의 자리에서 소리 내어 찬양한다. 음향 장비가 완벽하지 않아도, 정교한 연주가 없어도, 각자의 공간에서 같은 찬양을 함께 부른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하다. 잘 갖춰진 찬양팀이나 성가대가 주는 감동과는 다른 차원의 깊은 울림이 있다.
찬양만큼이나 소박하게 이어가는 것이 헌금이다. 헌금은 대부분 계좌이체로 이루어진다. 온라인 예배 때는 물론이고, 오프라인으로 모일 때도 마찬가지다. 십일조는 구별해 드려야 한다는 성도들의 공감대가 있어 별도로 이체한다. 그 밖의 헌금은 주일헌금, 감사헌금, 선교헌금, 절기헌금처럼 명목을 나누지 않고, 모두 ‘안녕헌금’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받는다. 헌금의 종류를 세분화하기보다 단순하게 만든 것은, 헌금이 특정한 목적이나 절기에 매이기보다 예배자의 삶 전체가 하나님께 드려지는 응답임을 강조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형식은 없지만, 계좌이체 한 번에도 그 마음이 담길 수 있다고 믿는다.
헌금이 삶 전체를 드리는 응답이라면, 성찬은 그 응답이 가장 응축되어 나타나는 예전이다. 온라인 예배에서 가장 깊이 고민해 온 것도 바로 이 성찬이다. 화면을 사이에 두고 드리는 성찬이 가능한가. 각자의 집에서 준비한 빵과 잔을 함께 나누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안녕교회가 온라인 성찬에서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성찬의 본질이었다. 성찬은 눈에 보이는 물질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거룩한 예식이자, 시공간을 넘어 과거의 믿음의 선진들과 전 세계의 성도들과 하나로 연결되는 신비한 사건이다.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여함이라”(고전 10:17)는 말씀처럼 성찬은 우리가 하나의 몸이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표지다.
온라인 성찬을 준비하는 날이면 예배자들은 각자의 식탁 위에 저마다의 모양을 한 빵과 잔을 올려놓는다. 각기 다른 식탁에서 다른 빵과 잔을 나누지만 그것은 분리된 식탁이 아니다. 같은 예식에 참여하여 빵을 떼고 잔을 들 때, 우리는 각기 다른 흩어진 공간에서 성령의 띠로 묶여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임을 고백하게 된다.
물론 온라인 성찬을 모든 교회가 동일하게 시행해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각 교단의 신학적 입장과 예전적 지침, 공동체의 합의가 충분히 고려돼야 한다. 다만 온라인 시대에 성찬의 의미와 성도들의 참여를 다시 질문하는 일은 필요하다.
더불어 우리의 온라인 예배는 화면 안에만 갇히지 않는다. 성찬이 예전 안에서 나누는 식탁이라면, 실제 식탁에서 나누는 교제도 있다. 얼마 전에는 육아로 인해 오랜 기간 온라인으로만 예배에 참여하던 한 성도의 가정을 찾아갔다. 우리는 한 식탁에 둘러앉아 각자 온라인에 접속해 화면으로 연결된 다른 성도들과 예배를 드린 뒤, 음식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때로는 이렇게 화면 밖에서 그 가정의 삶의 자리를 직접 보고, 식탁을 마주하는 특별한 시간을 갖기도 한다.
온라인 회중이 참여하는 예배를 위하여
그동안 안녕교회가 온라인 예배를 드리며 배운 것을 몇 가지 원칙으로 정리해 본다면 다음과 같다.
첫째, 회중이 예배의 주체다. 온라인으로 접속한 사람을 예배를 구경하는 사람으로 대하지 않고, 예배의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예배하는 회중으로 초대한다.
둘째, 각자의 삶의 자리를 예배의 자리로 만든다. 예배자가 필요한 준비를 직접 하도록 안내한다. 자신의 공간을 예배의 공간으로 만드는 과정 자체가 예배에 참여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안녕교회에서는 등록 성도에게 성찬기와 절기별 테이블보를 선물해 이 준비 과정을 돕는다.
셋째, 예전의 흐름을 분명하게 한다. 모임, 말씀, 성찬, 파송이라는 예배의 흐름 속에서 회중이 언제 무엇을 하는지를 분명히 한다. 온라인에서는 오히려 예배의 구조와 회중의 응답을 분명하게 해 줄 필요가 있다. 안녕교회에서는 매주 미리 예배문을 공유하여 성도들이 예전을 익힐 수 있게 한다.
넷째, 화면을 서로 소통하는 공간으로 사용한다.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고, 함께 읽고, 함께 기도하고, 적절한 방식으로 응답할 수 있도록 한다. 중요한 것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기술을 통해 회중의 참여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다섯째, 온라인 예배와 목회적 돌봄을 분리하지 않는다. 예배 안에서 서로의 안부를 묻고, 삶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 자체가 서로를 향한 목양이고 돌봄이다.
이 다섯 가지는 온라인 예배를 구현하기 위한 최신의 방송 장비나 기술을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온라인 예배를 대하는 관점의 변화에서 시작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접속했는가’보다 ‘얼마나 함께 예배했는가’를 묻는 것이다. ‘화면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보다 ‘화면 속 사람들이 서로의 존재를 경험했는가’를 묻는 것이다. ‘예배를 얼마나 잘 보여주었는가’보다 ‘예배자들이 얼마나 예배에 참여했는가’를 묻는 것이다.
우리는 아직도 온라인 예배를 배우고 있다
안녕교회가 온라인 예배의 모든 답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예배의 관계를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지, 온라인 회중의 소속감을 어떻게 더 깊게 할 것인지, 성찬을 어떻게 이해하고 실천할 것인지, 화면 앞에서 혼자 예배하는 사람을 어떻게 돌볼 것인지 여전히 질문하고 있다. 우리는 처음부터 모든 답을 알고 시작하지 않았다. 온라인이라는 새로운 공간에서 교회를 시작하면서 현실적인 필요와 신학적인 확신을 가지고 한 걸음씩 걸어왔다. 때로는 실험했고, 때로는 실패했고, 다시 수정했다.
이 과정에서 익숙한 방식만 고집하기보다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도 경험했다. 동시에 무엇을 새롭게 할 것인지 뿐 아니라 무엇을 지켜야 할 것인지도 계속 질문했다. 온라인 예배는 디지털 시대에 교회가 공동체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 예배가 무엇인지, 우리가 서로를 어떻게 돌볼 것인지를 다시 묻는 신학적 질문이 된다. 우리는 계속해서 유연함과 자유로움을 추구하되 예배의 본질이 흐려지지 않도록 균형을 찾으며 온라인 예배를 이어갈 것이다.
특히 올해는 어린 생명을 맞이한 가정들이 늘어나면서, 온라인 예배의 자리가 더욱 귀하고 필요해졌다. 아기를 돌보느라 장거리 이동이 어려운 성도에게 온라인 예배는 더없이 반갑고 고마운 통로다. 현장에 함께하지 못하는 누군가에게는 이 작은 화면이 공동체와 함께 하나님께 나아가는 유일한 문이 되기도 한다.
화면 속 아기들의 모습이 늘어날수록, 자연스레 어린이와 함께하는 온라인 예배에 대한 고민도 깊어진다. 작은 네모들이 모여 온 세대가 함께 드리는 예배. 이는 우리가 앞으로 계속해서 배우고 답을 찾아가야 할 또 하나의 질문이다.
다시, 예배로의 초대
주일 아침이 되면 화면에 작은 네모들이 하나둘 켜진다. 누군가는 거실에서, 누군가는 이동하는 차 안에서, 누군가는 아이를 품에 안은 채 화면을 밝힌다. 화면에는 저마다의 삶을 품은 작은 네모들이 놓이지만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온전히 마주하며 하나의 거룩한 공동체로 모인다.
온라인 예배는 우리가 서로를 예배자로 초대하고 함께할 때 하나의 교회, 교회 공동체를 이룬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서로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함께 참여하고, 함께 돌보는 것이다.
예배를 시작하며 우리가 드리는 초대의 말은 오늘도 같다.
“오늘 우리는 각기 다른 장소에 있지만, 한 성령 안에서 하나의 몸으로 부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공간과 시간의 경계를 넘어, 우리를 예배 공동체로 모으십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성령 안에서 우리를 오늘의 예배로 초대하십니다.”
작은 창들이 하나둘 켜진다. 그 창 하나하나가 삶의 예배처가 되고, 우리는 그렇게 다시 예배로 초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