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기업들의 돌파구, 인간과 AI의 감정적 교류

지난 2-3년 새 인공지능은 크게 두 방면으로 대중의 관심을 끌어모으고 있다. 하나는 생성형 인공지능, 다른 하나는 인공지능 휴머노이드다. 원래 2020년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인공지능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독차지했던 것은 자율주행 인공지능이었다. 그러나 자율주행 인공지능의 발전이 사실상 3단계 문턱에서 막혀 있는 상황이라 더 이상 과대광고만 가지고는 대중의 관심을 끌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에 미국 거대기술기업들이 내세운 것이 생성형 인공지능과 휴머노이드다. 각각의 분야에서 꽤 유의미한 기술적 발전이 이뤄진 덕분에 인공지능 개발자들은 과거 두 차례 발생했던 인공지능의 겨울(AI winters) 당시와 같이 대중의 관심이 싸늘하게 식는 사태를 피할 수 있게 됐다. 인공지능의 겨울이란 인공지능 발전이 대중과 투자자들의 기대치에 이르지 못하면서 이 기술에 대한 관심과 투자가 감소하는 시기를 말한다.

향후 인공지능의 겨울이 다시 도래할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이다. 과거에는 인공지능의 성능이 참담할 정도로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현재 인공지능은 특정 분야에 한정해서 상당한 성능을 보여 주고 있고 그 발전 가능성 또한 아직 다 소진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다만 지난 몇 년 동안의 열광적 관심과 투자가 계속 이어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당장 챗GPT를 개발한 오픈AI만 하더라도 2024년 한해 적자 폭이 7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며 향후 2029년까지 대규모 적자를 면치 못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즉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넷플릭스처럼 원래부터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서비스나 콘텐츠를 갖춘 기업에게는 인공지능 기술이 기업실적을 증대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인공지능 서비스 하나만을 가지고 사업을 영위하려는 기업들의 성공 및 존속 가능성은 현재로서 대부분 불투명하다. 현재 실리콘밸리 투자 은행들과 벤처캐피탈 역시 이 점을 인지하고 인공지능 서비스 분야에 대한 투자를 점진적으로 줄여가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로서 인공지능 기업들이 살아남을 길은 두 가지다. 첫째, 경천동지할 기술적 비약을 통해 돈이 될 만한 인공지능 사업모델을 구축하는 것. 이는 아직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현재 인공지능 업계는 트랜스포머 모델 개발 후 소소한 발전을 이루고 있지만 트랜스포머 모델의 기술적 한계를 확실하게 돌파할 만큼 근본적인 혁신은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얼마나 많은 인력과 시간, 자본이 추가적으로 투입돼야 할지 현재로서는 미지수다. 그래서 기업들은 둘째 대안을 선택하고 있다. 바로 인공지능이 인간과 감정적으로 교류하며 만족감을 줄 수 있도록 서비스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다.

생성형 인공지능을 통해 구현되는 대규모 언어모델, 그리고 인공지능 휴머노이드 기술은 이것을 가능하게 해 주는 주된 방안으로 각광받고 있다. 일단 대규모 언어모델은 사용자에게 정서적 교감을 통한 만족감을 제공한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character.ai의 서비스는 사용자 개인에게 최적화된 대화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 회사는 여러 유명인(실존 인물뿐만 아니라 소설, 게임, 영화, 드라마에 나오는 캐릭터까지 포함)의 가상 인공지능 캐릭터를 창조해서 사용자가 캐릭터들과 흥미 위주의 대화를 할 수 있도록 한다. 이 서비스는 당연하게도 정확한 정보나 지식 전달보다는 철저히 사용자와의 친밀한 감정적 교류가 가능한 대화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주력한다. 챗GPT를 비롯한 여타 대규모 언어모델 서비스 역시 이러한 기능에 초점을 맞춰 발전해 나가고 있다. 

대규모 언어모델을 탑재한 인공지능 휴머노이드는 정서적 교감이 가능할 뿐 아니라 인간과 물리적 상호작용도 가능하다. 물론 현재 개발되고 있는 인공지능 휴머노이드의 로봇공학적 성능은 안전하고 효율적인 인간-인공지능 상호작용을 달성하기에 크게 부족하다. 인간과의 물리적 상호작용 없이 공장이나 작업장에서 단독으로 작업을 수행하는 로봇은 대단한 성능을 발휘하는 수준까지 발전했다. 하지만 우리 일상에서 인간의 신체적 안전과 정서적 안정감을 침해하지 않고 작업을 수행하는 인공지능 휴머노이드는 현재의 기술 발전 속도로 봐서 아직 조금 더 먼 미래에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기술발전 속도가 아직 기대에 못 미치는 실정이지만 예외적으로 간단한 물리적 작용을 통해 인간과 감정적으로 깊게 교류할 수 있는 로봇도 하나둘씩 만들어지고 있다. 바로 인공지능 리얼돌, 이른바 섹스로봇으로 불리는 로봇들이다.

섹스로봇에 대한 세계 인공지능 학계의 관심

섹스로봇에 대한 상상은 꽤 오래전부터 여러 편의 대중문화 콘텐츠를 통해 다채롭게 펼쳐진 바 있다. 인간과 분별하는 것이 불가능한 로봇들이 배우자나 성행위 상대자 역할을 하는 상상, 과연 현실에서도 이뤄질 수 있을까? 현재 관련 연구나 기술 발전 동향을 보면 생각보다 멀지 않은 시기에 초보적인 형태의 섹스로봇이 개발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지금도 미국, 중국, 일본에서는 일부 리얼돌 제작사들이 대화 및 간단한 제스처 능력을 지닌 인공지능을 탑재한 리얼돌을 개발하는 중이다. 여기에 더해 인간의 피부 질감을 더욱 현실적으로 재현하고 체온을 모방하도록 몸체에서 열을 내며 성관계시 나오는 특정한 신체 반응을 일으키는 모터까지 장착한 제품도 하나둘씩 나오고 있다. 이런 제품들은 향후 테슬라나 보스턴 다이내믹스 같은 곳에서 주도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인공지능 휴머노이드 기술이 발전하면 그 기술을 채택해서 본격적인 섹스로봇으로 진화할 것이다. 물론 섹스로봇은 그 성능만 따지면 실제 인간 연인이나 배우자에 한참 못 미치는 점들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섹스로봇은 인간이 갖지 못한 강력한 장점을 하나 가지고 있다. 바로 개인 맞춤형 외모와 인격을 갖출 수 있는 능력, 즉 커스터마이징 기능이다.

통상적인 관점으로는 실제 인간 연인이나 배우자를 만나기에 결격 사유가 있는 이들이 섹스로봇을 구매하는 주 고객층이 될 것으로 예상할 것이다. 외모가 크게 부족하든가 사회성, 경제적 여력이 부족한 이들만이 섹스로봇을 원할 것이라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섹스로봇 제작기술이 발전할수록 외모, 성별, 사회성이나 경제력 수준 여부에 상관없이 로봇에 애정을 쏟는 이들의 수는 빠르게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섹스로봇은 사용자들의 요구를 즉각적으로 반영하는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설계된다. 외형도, 성격도, 심지어 성적 취향까지 원하는 대로 설정하고 바꿀 수 있다. 현재 섹스로봇 개발에 전념하고 있는 여러 기업 역시 커스터마이징 기능의 극대화를 지향점으로 삼고 개발에 힘쓰고 있다.

이렇게 되면 실제 인간 연인 및 배우자와 가정을 이루려는 이들의 수가 지금보다도 훨씬 더 급격하게 줄어들 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우려 때문에 많은 인공지능 윤리 연구자들이 섹스로봇을 주제로 전문적인 학술연구를 진행 중이다. 미국에는 아예 이 분야에 특화된 학회까지 존재한다. 학회명부터가 “로봇과의 사랑과 섹스”(Love and Sex with Robots)다. 이 학회는 매년 전 세계 인공지능 연구자들을 대상으로 학술대회를 개최한다. 올해는 8월에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학술대회를 연다. 이런 학술대회가 한 번 열릴 때마다 발제논문 수십 편이 쏟아져 나온다. 그만큼 섹스로봇이라는 연구 주제에 대한 학자들의 관심도는 높다. 

한국 사회는 유독 이 논제에 애써 무관심한 모습을 보인다. 이는 성 담론을 꺼리는 보수적인 유교문화의 영향, 그리고 리얼돌 같은 성인용 제품에 혐오감을 내비치는 페미니즘 기조 때문일 것이다. 성 담론을 꺼리고 리얼돌 확산이 초래할 성상품화의 일상화를 경계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그 정도가 지나쳐 섹스로봇이 가져올 거대한 파급력에 눈과 귀를 닫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러운 현실이다. 성 담론이 문화적으로 쉽게 다루기 어려운 과제라는 점은 이해되지만 그로 인해 막상 우리 사회 가정 형성의 중요한 조건이 되는 남녀 간 감정적, 육체적 상호작용이 인공지능 휴머노이드에 의해 대체되는 시대가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인간의 남녀관계는 제아무리 서로에 대한 애정이 크다 하더라도 반드시 크고작은 갈등을 수반한다. 그런데 대규모 언어모델로 대화 능력을 장착하고 성행위가 가능한 몸체를 가진 인공지능 로봇은 그런 갈등의 소지를 전적으로 제거한다. 인간과의 갈등에 시달리기를 기피하는 이들, 그러면서 이성에게 감정적 위로를 얻고자 하는 이들은 향후 섹스로봇 제작 기술이 발전하면 기꺼이 인간 대신 로봇을 애정의 대상으로 선택할 것이다. 이러한 행태는 외모나 사회성, 경제력이 평균 이상인 사람들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로봇과의 사랑이 초래하는 기독교의 인격적 관계 차단

왜 인간은 실제 인간이 아닌 줄 알면서도 로봇을 사랑하고 교감을 나눌 수 있을까? 심리학적으로 진단할 때 이는 인간 정신을 움직이는 근본 동기가 통상적으로 이성보다 감정과 욕망에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의식은 객체인 사물 자체를 그것의 실제 상황 및 특성과는 다른 방식으로 인식하고 그려낼 수 있는 상상의 능력 혹은 대상화 능력을 갖는다. 그리고 여기에는 반드시 인간 각각의 근본적 욕망을 반영하는 개별적 지향성(intentionality)이 반영되기 마련이다. 인간의 마음이 가진 이런 특성 때문에 인간은 섹스로봇을 바라볼 때 각자가 바라는 이상적인 연인이나 배우자상을 떠올리며 상대한다. 욕망과 감정이 뒤섞인 이 상상의 심리 상태는 인간 아닌 것을 인간처럼 여기게 하는(심지어 그것이 인간이 아님을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강력한 의인화 작용을 일으킨다. 실제 이러한 작용 때문에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충격적인 일도 벌어진다. 지난해(2024년) 2월 미국 플로리다주에 사는 14세의 중학생 슈얼 세처는 몇 달 동안 character.ai의 한 드라마 캐릭터와 대화하고 감정적 위로를 받는 것에 몰두한 나머지 현실에서의 인간관계가 싫어져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아직 섹스로봇 단계에 이르지도 못한 대화형 인공지능 단계에서부터 벌써 인공지능을 의인화하고 인공지능과의 감정적 교감에 몰입하는 사례들이 하나둘씩 나오는 것이다.

감정과 욕망에 기초한 이런 가상적 의인화 작용은 대화형 인공지능을 사용할 때 본격적으로 발동한다. 1953년 앨런 튜링이 〈계산 기계와 지능〉이라는 유명한 논문에서 제안한 이미테이션 게임(imitation game)도 실상 그 작동 원리는 이성적 판단보다 감정적 바람에 치우쳐 있다는 사실이 이미 여러 실제 사례 관찰을 통해 입증됐다. 인공지능 학계에서는 이러한 심리작용을 일라이저 효과(ELIZA effect)라고 한다. 

1966년 미국 MIT 인공지능 연구소 연구자 조셉 바이젠바움(Joseph Weizenbaum)은 미국의 저명한 심리학자 칼 로저스가 개발한 상담 치료 이론을 적용해서 ELIZA라는 이름의 대화형 인공지능을 개발했다. 이 인공지능은 지금의 챗GPT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성능이 떨어졌고 답변의 종류도 제한돼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대화가 잘 이뤄지는 구간에서는 사용자들이 마치 인간을 대하듯 ELIZA에게 말하고 애착을 보이는 현상이 목격됐다. 즉 인간은 조금이라도 감정적 교감이 이루어지고 욕망을 투영할 상대가 있다면 거기에 쉽사리 애착을 보이는 본성을 갖고 있다. 여기에 만일 성적인 교감과 성행위까지 가능한 로봇이 나온다면? 그 파급효과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심각할 것이다.

기독교적 관점으로 볼 때 이러한 심리 성향은 하나님을 향한 수직적 관계, 그리고 이웃을 향한 수평적 관계 모두가 단절된 이들에게서 나타나는 우상화의 근본 기제다. 기독교 신학에서 규정하는 인격적 관계란 기본적으로 타자의 존재와 인격에 대한 불가침성, 타자에 대한 자의적 대상화 불가능성을 기본 조건으로 삼는다. 기독교 신앙인은 하나님에 대해서는 물론이거니와 타인에 대해서도 자신의 욕망과 바람을 강제적으로 덧씌워 판단하거나 대해서는 안 된다. 기독교의 인격적 관계는 철저히 상대의 존재적 현실에 대한 엄밀한 수긍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래서 기독교 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는 《창조와 타락》이라는 저서에서 에덴동산의 선악과 금지명령을 타인에 대한 자의적 판단의 금지, 타인에 대한 강압과 폭력의 금지를 위한 명령으로 재해석했다. 그는 말한다. “타인은 나에게 하나님이 정해 주신 한계다. 내가 그를 사랑하지만, 그 같은 이유로도 침범해서는 안 될 대상이다.”

로봇과의 사랑과 섹스는 기독교의 인격적 관계 형성을 근원으로부터 차단한다. 비인간 존재자에 대한 정서적 집착과 자의적 대상화가 일상화된 사회에서는 기독교의 인격적 관계를 위한 인성 훈련이 불가능해진다. 우리 기독교계가 이러한 위험성을 인지하고 대화형 인공지능과 섹스로봇의 발전 동향을 예의주시해야 한다. 아무 준비가 돼 있지 않은 상태로 기술개발이 이뤄지면 손을 대기 힘들 정도로 사태가 심각해질 것이다. 사전에 교회가 어떻게 이 가상 관계의 일상화에 대응할 것인지 미리 고민하고 연구해야 하며, 자라나는 세대와 신자들에게 기독교의 인격적 관계를 가르치고 훈련하는 노력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