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올림픽 개막식에 등장한 기괴한 ‘최후의 만찬’

지난 8월 11일,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된 제33회 하계올림픽이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우리나라는 전체 8위의 준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이번 하계올림픽은 100년 만에 파리에서 열리는 올림픽으로 프랑스인들에게는 나름 뜻깊은 행사였다고 볼 수 있다. 전 세계 스포츠 팬들 입장에서도 이번 올림픽은 반가운 행사였다. 2021년 도쿄 올림픽은 코로나 팬데믹 때문에 제대로 된 축제 분위기를 내지 못했다. 반면 이번 파리 올림픽은 팬데믹의 여파를 완전히 벗어나 선수들이 자유롭게 경기에 참가했고, 관중 또한 별다른 제한 없이 경기를 관람할 수 있었다. 덕분에 이번 하계올림픽은 전 세계 체육인이 함께하는 축제로서의 명성과 분위기를 확실하게 되살릴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축제 분위기를 해치는 논란과 사건 사고도 여럿 발생했다. 오심이나 편파 판정, 운영 미숙 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통상적인 올림픽 관련 사건 사고도 있었지만, 이번 파리 올림픽에서는 올림픽 정신을 표현하는 개막식 행사에서 특히나 논란이 되는 일이 벌어졌다. 파리 올림픽 조직위원회는 7월 26일 개최된 올림픽 개막식에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명화 〈최후의 만찬〉을 패러디한 기괴한 행위 예술을 선보였다. 이 행위 예술 장면에서 논란이 되는 사안은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 식탁 위에 누워 있는 디오니소스가 식인 행위를 연상시킨다는 점이다. 고대 그리스의 밀교(密敎)였던 오르페우스교 신자들은 디오니소스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기 위해서 짐승이나 어린아이를 죽여 해체한 뒤 그 살을 나눠 먹었다는 혐의를 받았다. 이 혐의가 사실인지 아닌지 여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문화사적 정황상 식탁에 오른 디오니소스가 식인 풍습을 연상시킨다는 점은 분명하다. 두 번째 논란이 되는 사안은 식탁 뒤에 예수의 제자들처럼 서 있는 여러 사람의 복장이다. 이들 가운데 남성들은 여성의 옷을 입고 여성들은 남성의 옷을 입었는데 이는 LGBTQ로 대표되는 젠더 다양성을 비유해서 표현한 것으로 여겨진다. 세 번째 논란이 되는 사안은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선 자리에 비만 여성이 서 있었다는 점이다. 이는 남성인 예수 그리스도의 자리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여성상을 세워 놓음으로써 전통적 성 역할과 종교적 가치를 해체하려는 의도를 내비치는 연출로 풀이된다.

이 행위 예술 장면은 전 세계 각계각층으로부터, 특히 기독교 공동체로부터 강력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프랑스 사회 내부에서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가톨릭교회 또한 프랑스 주교회의와 교황청 명의로 반발 성명을 발표했다. 기독교계의 거센 비판에 직면한 파리 올림픽 조직위원회는 곧 해당 논란에 사과하면서, 이 행위 예술 장면이 프랑스의 정치적, 사회적 질서를 뒷받침하는 ‘톨레랑스’(정치적, 사상적, 문화적, 종교적 관용)의 정신을 표현하려는 의도를 담은 것이며 기독교 조롱이나 비하의 의도는 없었다고 밝혔다.

이렇게 조직위의 사과를 통해 논란은 일단락됐지만 기독교 공동체 입장에서 이번 일의 문화적 함의와 여파는 여전히 큰 우려를 낳는다. 이번 파리 올림픽 개막식은 관용과 다양성이라는 명분하에 아직 이론적으로 정돈되지 않은, 그리고 실천의 현실성이 희박한 PC주의(Political Correctness) 윤리관을 공식적인 범지구적 시대정신으로 공표한 현장이었다. 이미 대중문화의 영역에서, 그리고 일부 선진국의 진보성향 정치 세력들에 의해 ‘위대한’ 삶의 지침으로 칭송을 받는 PC주의는 이제 세계화가 덜 이뤄진 중진국들의 정치 및 문화 영역에도 그 영향력을 확장하려는 태세를 갖추고 있다. 전 세계인의 축제를 표방하는 올림픽 개막식에서 논란을 무릅쓰고 급진적인 PC주의 윤리관을 설파하는 파리 올림픽 조직위의 행태는 이처럼 전 세계로 확장되는 문화적 변혁을 고지하는 하나의 대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이번 논란에서는 PC주의 윤리관을 둘러싼 전 세계적인 문화적 분위기뿐만 아니라 현재 프랑스가 처한 문화사적 처지와 위치 또한 고려할 필요가 있다.

프랑스인들에게 특별한 민족주의적 의미를 갖는 현대 올림픽

원래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축제이자 종교 행사였던 올림픽은 1890년대 들어 전 세계인의 참여를 목표로 삼는 국제적 스포츠 행사로 되살아났는데 여기에는 프랑스의 교육자 쿠베르탱 남작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돼 있었다. 올림픽을 국제적 스포츠 행사로 되살리려는 쿠베르탱의 노력에는 다분히 민족주의적인 동기가 결부돼 있었다. 루이 14세와 나폴레옹 1세의 치세 이후 프랑스는 더 이상 유럽의 절대적 패권국 지위를 누릴 수 없었다. 19세기 중반 이후 프랑스는 갈수록 유럽에서의 군사적 우위를 잃어가고 있었고, 그에 따라 정치적, 외교적 영향력 또한 상실하고 있었다. 결정적으로 프랑스는 1871년 보불전쟁에서 패전하여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뼈아픈 국력 손실을 경험했다.

쿠베르탱은 겨우 여덟 살의 나이로 파리의 참상과 프랑스의 혼란상을 지켜봤고, 이후 열렬한 프랑스 민족주의자가 돼 땅에 떨어진 프랑스의 국가적 위상을 다시 세울 방법을 모색했다. 체육 활동을 신들에게 헌신하는 하나의 길로 여겼던 고대 그리스의 문화적 유산에 매료된 그는 자라나는 세대의 체육 활동을 독려하려는 목적으로 올림픽의 부활을 위해 힘썼다. 물론 여기에는 프랑스가 강한 체력을 가진 군대를 확보하기를 바랐던 민족주의적 열망과 나라 간의 평등한 연대와 협력을 강조하던 사회주의자들의 사상적 영향 또한 관여돼 있었다.

쿠베르탱이 주창한 올림픽 정신 이면에는 이처럼 프랑스 민족주의가 짙게 반영돼 있었다. 1900년에 개최된 제2회 올림픽의 개최지가 파리(초대 개최지는 그리스 아테네)였던 것도 쿠베르탱의 민족주의적 성향 때문이었다. 이렇듯 프랑스인들에게 올림픽이란 애국 의식과 민족주의, 그리고 문화적 자긍심을 고취시키는 행사였고, 당연하게도 1924년과 2024년의 파리 올림픽 역시 이러한 의미를 계승하는 행사로 여겨졌다. 21세기의 올림픽은 그 위상이나 목표라는 측면에서 20세기 초반의 올림픽과는 크게 달라졌지만 이 행사가 각국의 민족주의가 부딪치는 경쟁의 장이라는 점에서는 달라진 것이 없다. 프랑스 정부 역시 이번 파리 올림픽을 통해 개선하거나 강조하려 했던 국가 이미지가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이미지를 압축한 장면이 바로 이번 파리 올림픽 개막식에서 논란이 된 행위 예술이다. 이 행위 예술을 통해서 프랑스 정부와 사회는 자신들의 어떤 사상적, 문화적 강점을 자랑하려 했던 것일까?

톨레랑스의 문화적 모순, 그리고 이상과 현실의 좁힐 수 없는 괴리

1789년에 시작된 프랑스 대혁명 결과 프랑스에는 지극히 불안정하면서도 실험적인 자유민주주의 공화정 체제가 수립됐다. 그 뒤로는 제정과 공화정이 이리저리 뒤섞이고 교체되는 불안한 정세가 이어지다가 1871년 보불전쟁 패전 이후 자유민주주의 공화정 체제가 확립됐다. 이 과정에서 프랑스 정치와 사회의 대의명분으로 자리 잡은 개념이 바로 톨레랑스, 관용의 정신이다. 
톨레랑스는 그 기본 정의대로만 본다면 참으로 훌륭한 정신이다. 정치 이념, 경제적 지위, 인종, 그리고 종교의 차이에 관계없이 모든 인간을 기본적으로 평등하고 존엄하게 대우하겠다는 인류애의 정신을 악하다고 말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다만 문제는, 프랑스의 정치적, 사회적 현실에서 톨레랑스라는 개념이 계급 투쟁을 독려하고 제국주의적 침략과 확장을 정당화하며 민족주의적 자긍심을 고취시키는 프로파간다의 도구로 활용돼 왔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 당시에는 이 개념이 기득권 계급의 권력과 부를 부르주아에게로(농민이나 도시노동자들은 제외하고) 이전하는 명분으로 활용됐고, 나폴레옹 전쟁 당시에는 프랑스의 제국주의적 욕망을 투사하는 명분(유럽 전역에 자유민주주의 정신을 퍼뜨리겠다는)으로 활용됐다. 그 이후의 프랑스에서 톨레랑스란 프랑스가 정치체제나 문화 측면에서 전 세계적으로 가장 앞선 문명국임을 과시하는 민족주의적 나르시시즘을 표출하는 관념으로 활용됐다. 소수의 예외 사례(문화예술 분야)를 제외하고는 진정한 톨레랑스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오히려 톨레랑스 원칙을 무너뜨리는 일들이 프랑스 사회 도처에서 일어났다. 

다만 프랑스 철학계는 톨레랑스의 정신을 매우 세련된 형태로 발전시키는 데 성공했다. 여기에 크게 공헌한 인물 가운데 레비나스나 데리다 같은 유대인이 포함돼 있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레비나스의 경우 프랑스 학계를 넘어 전 세계가 그 윤리학적 업적을 인정할 만한 가르침을 남겼지만 단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50세가 되도록 대학 교수직을 얻지 못했다. 이런 은근한 차별들은 21세기가 된 지금도 프랑스 사회 곳곳에 남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프랑스가 톨레랑스의 정신을 프랑스인의 탁월한 삶의 원리인 것처럼 포장할 수 있는 데는 몇 가지 근거가 있다. 일단 나치 독일의 침략을 받았고 그에 저항한 역사가 있다는 점, 두 번의 세계대전 이후 실존철학, 현상학, 해석학, 포스트구조주의, 그리고 페미니즘 영역에서 전 세계 학계를 압도하는 탁월한 성과를 거둔 프랑스 학자들이 여럿 등장했다는 점, 그리고 이런 철학적 조류들이 오늘날 미국을 중심으로 퍼져 나가는 PC주의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는 점, 여기에 더해 68혁명의 근원지로서 오늘날 자기결정권과 다양성을 중시하는 삶의 태도를 확산시킨 진보 세대의 등장에 무시할 수 없는 기여를 했다는 점 등이 프랑스를 톨레랑스 정신이 넘쳐나는 국가인 것처럼 포장하는 데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다. 

현재 세계 최강대국이자 전 세계 문화 조류를 선도하는 미국은 다양성 존중을 지고선으로 삼는 PC주의를 통해 미국이 저지른 제국주의 범죄와 인종범죄의 역사를 세탁하고 윤리적 문화를 주도하는 문화 선도국으로서의 위치를 굳혀가고 있다. 이를 지켜본 프랑스인 역시 자신들의 문화적 자존심과 우월감을 뽐내기 위해 미국이 PC주의를 활용하는 방식을 그대로 따라하고 있다. 다만 프랑스인들은 미국과 달리 그들이 원래 갖고 있던 개념인 톨레랑스를 내세우고 있을 뿐이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점이 있다. 프랑스 사회는 이 허울로 가득한 톨레랑스 정신을 가지고 자신들의 정치적 선진성과 문화적 우월성을 내세우려고 기독교적 전통을 거부, 해체하는 길을 선택했다. 여기에는 프랑스만의 고유한 역사적 근거도 존재한다. 프랑스인은 가톨릭교회가 19세기 후반까지도 상당한 수준의 부와 권력을 거머쥐고 기득권 세력으로 군림했던 기억이 있다. 이런 역사적 배경 때문에 프랑스인들의 사고방식 가운데는 프랑스 사회의 진보와 근대화를 달성하기 위해 기독교 전통을 타파하고 급진적 세속화를 추진해야 한다는 생각이 깊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프랑스인들이 착각하는 점이 있다. 그것은 기독교적 세계관과 인간 이해가 프랑스인들이 17세기 이후 누려온 우월한 국가적 위상과 문화적 명성을 뒷받침해 온 사상적 기원이라는 사실이다. 17-18세기의 프랑스 계몽주의, 19세기의 프랑스 사회철학, 그리고 20세기의 프랑스 실존철학, 현상학, 해석학, 포스트구조주의 발흥에는 반드시 기독교의 가르침이 이런저런 모양새로 관여돼 있었다. 다만 19세기 이후 프랑스인들이 기독교적 인간 이해를 그들의 삶의 원리로 차용할 때 세속화와 무신론이라는 허울을 덧입혔을 뿐이다. 인종, 성, 그리고 문화적 배경에 대한 차별 없이 모든 인간을 기본적으로 평등하게 대우하고 존중하는 사상의 출발점은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가르침이다. 서구 이외 지역에 산재해 있던 무수한 사상과 종교적 가르침 가운데 기독교의 가르침만큼 인권 존중의 책임과 만민평등 사상을 삶의 원리로 채택하게 했던 가르침은 존재하지 않는다.

프랑스인들이, 더 나아가 현재 미국을 포함한 서구의 문화 선도국들이 관용, 평등, 자유, 존엄성, 인류애 등의 윤리적 목표를 내세우기 위해서 기독교 전통과 문화를 타파하는 것은 아랫돌을 빼서 윗돌을 괴는 허술한 방안에 불과하다. 이번 파리 올림픽에서는 개막식 논란 외에도 성별이 불분명한 XY염색체를 가진 두 복싱 선수의 활약이 논란이었다. 파리 올림픽 조직위원회는 젠더 이념에 따라 이 사안을 처리했다. 그리고 이 두 선수 모두 압도적인 신체적 우위를 바탕으로 금메달을 차지했다. 과연 이것이 기회의 평등과 노력의 결과를 존중하는 올림픽 정신에 맞는 처사였는지, 해당 사안에 대한 논란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하지만 다음 올림픽에서도 이런 일은 계속해서 일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다음 올림픽은 PC주의 전 세계 확산을 주도하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LA에서 개최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파리 올림픽과 다음 LA 올림픽은 국제 문화교류와 스포츠 영역에서 허울 좋은 관용과 다양성 이념이 서구의 앞선 문명을 지탱해 온 기독교적 인간 이해를 무너뜨리는 문화적 퇴락의 중요한 사례이자 전환점으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