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원칙을 묻는 이유
교회의 인공지능(AI) 사용은 이미 현실의 문제가 됐다. 목회데이터연구소와 기아대책이 2026년 4월에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생성형 AI를 사용한 경험이 있는 목회자는 2023년 41%에서 2025년 80%로 증가했고, 목회와 설교에 AI를 활용한다는 응답은 같은 기간 17%에서 58%로 세 배 이상 늘었다. 그러나 같은 조사에서 성도의 65%는 설교문 작성에 AI를 활용하는 것을 부적절하다고 평가했으며, 그 이유로 “개인적 묵상과 연구가 줄어들기 때문”을 들었다. 사용과 분별 사이의 이러한 간극은 한국 교회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2025년 미국의 한 조사에서 교회 지도자의 64%가 설교 준비에 AI를 활용한다고 답한 반면, 교회의 73%는 AI 사용에 관한 어떤 정책도 갖고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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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에 대한 교단 차원의 대응이 여러 교단에서 나타난다.2 그러나 총회의 문서가 곧 개교회의 원칙이 되는 것은 아니다. 교단의 가이드라인은 원칙의 재료를 제공할 뿐이며, 그 재료를 자기 교회의 언어로 옮기고 실제 사역에서 지켜 내는 일은 각 교회의 과제로 남는다. 따라서 ‘교회가 AI를 사용할 때 어떤 윤리적 문제가 발생하는가’라는 질문뿐 아니라, ‘그 문제에 응답하는 원칙을 어떤 신학적 토대 위에 어떻게 세울 것인가’라는 질문이 제기된다.
도구를 넘어선 도구: 원칙이 필요한 이유
AI 사용 원칙을 세우자는 제안은 흔히 AI가 도구에 불과하므로 원칙까지 필요하지 않다는 반응에 부딪힌다. 이 반응은 오늘의 디지털 전환의 질적 새로움을 간과한 것이다. 장영하는 오늘의 디지털 전환이 과거의 그것과 세 가지 점에서 다르다고 정리한다. 첫째는 ‘기능’(function)에서 ‘지능’(intelligence)으로의 변화이고, 둘째는 ‘의식’(consciousness) 가능성에 대한 논의의 부상이며, 셋째는 ‘이동 가능한’(portable) 것에서 ‘체현된’(embodied) 것으로의 확장이다.
3 오늘의 AI는 도구의 자리에 머물지 않고, 인간과 같은 공간에서 반응하고 판단하며 어떤 영역에서는 인간을 능가하는 지적 행위자의 외양을 띠고 있다. 소설가 장강명이 알파고 이후의 한국 바둑계를 추적하면서 도달한 결론도 이 지점에서 유사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는 AI가 “우리가 살아야 하는 환경 그 자체”가 될 것이며, 우리가 AI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남들이 사용하는 순간 탁월성의 기준 자체가 재설정된다고 주장한다. 그는 “쓸모 있고 강력한 기술은 마치 야수와 같아서, 일단 거리에 뛰쳐나오면 붙잡아 우리에 가두는 것이 매우 어렵다”라고 경고한다.
4 AI가 도구가 아니라 환경이라면, 원칙은 그 환경 안에서 교회가 어떤 존재로 남을 것인가를 미리 규정하는 문서가 된다.
원칙이 필요한 더 깊은 이유는 기술이 중립적이지 않다는 사실에 있다. 교황 레오 14세가 2026년 5월에 반포한 첫 회칙 〈고귀한 인류〉는 “기술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기술은 그것을 고안하고, 재정을 대고, 규제하고, 사용하는 이들의 특성을 띠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5 기술이 사용자의 특성을 띤다면 그 역도 성립한다. 곧 사용자가 기술의 특성을 닮아가는 것이다. 성경의 우상 비판은 바로 이 형성의 역학을 겨냥한다. 우상을 만들고 의지하는 자는 그 우상을 닮게 된다(시 115:8). G. K. 비일은 성경의 우상 비판이 ‘인간이 궁극적 신뢰를 두는 대상이 인간을 형성하는 힘’에 대한 비판임을 밝히면서, 그 핵심을 “우리는 우리가 숭배하는 것을 닮아간다”라는 명제로 요약했다.
6 금과 은의 우상이 인간의 권력욕과 통제욕의 투사물이었다면, 계산 가능성과 예측 가능성과 통제 가능성을 약속하는 AI는 현대판 우상이 될 위험을 다분히 내포한다.
여기에서 원칙의 성격에 관한 결론이 도출된다. 교회의 AI 사용 원칙은 일차적으로 정체성의 고백이다. 그것은 “우리는 누구이며 무엇을 닮아가야 하는가”를 묻는 문서이며, “교회가 효율과 속도를 닮아갈 것인지 사랑과 인내를 닮아 갈 것인지”를 공동체적으로 확정하는 문서다.
교회의 AI 사용에서 제기되는 윤리적 문제
원칙은 문제에 대한 응답이므로, 원칙을 세우기 전에 문제를 정확히 진단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 교회에서 제기되는 윤리적 문제는 다섯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정직성의 문제다. 생성형 AI에 본문과 주제를 제시하면 서론과 예화와 적용을 갖춘 설교문이 즉시 산출된다. 이를 자신의 묵상의 산물인 것처럼 회중에게 전할 때,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위탁받은 사자의 ‘대언’(代言)이 아니라 알고리즘의 ‘대필’(代筆)이 되며, 회중을 향한 영적 정직성이 훼손된다. 동일한 문제는 소식지의 칼럼과 기도문, AI로 제작한 이미지와 영상에도 제기되며, 〈인공지능 기본법〉의 표시 의무는 세상이 교회에 먼저 정직을 요구하는 역설적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둘째, 비밀 유지의 문제다. 상담 내용을 정리하거나 심방 기록을 작성하기 위하여 성도의 이야기를 상용 챗봇에 입력하는 순간, 목회적 비밀은 외부 기업의 서버로 이전된다. 누가 어떤 죄와 싸우고 있는지, 어느 가정이 위기에 놓여 있는지를 아는 교회는 세상의 어떤 조직보다 민감한 정보를 다루며, 이 정보가 학습 데이터로 흡수되거나 유출될 때 신뢰의 공동체로서의 존립 근거를 잃는다.
셋째, 인격의 데이터화와 알고리즘적 차별의 문제다. 출석률과 헌금액과 봉사 시간을 합산하여 성도를 점수화하고, 정착 가능성이 높은 새신자를 예측하여 그들에게 심방과 자원을 집중하도록 돕는 도구들이 이미 출현했다. 효율의 관점에서 합리적으로 보이는 이러한 사용은 아흔아홉 마리를 두고 잃은 한 마리를 찾아 나서는 목자의 논리(눅 15:4)와 충돌하며, 알고리즘이 ‘돌볼 가치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을 구별하기 시작할 때 교회는 그것을 차별이라 명명할 수 있어야 한다.
넷째, 돌봄의 방기와 시뮬레이션된 공감의 문제다. 실천신학자 에릭 스토다트는 돌봄의 일부 과업을 기계에 ‘위임’(delegation)하는 것과 돌봄의 책임 자체를 기계에 ‘방기’(abdication)하는 것을 구별한다.
7 정보 안내와 초기 응대는 위임될 수 있으나, 깊은 상실 가운데 있는 교인의 곁에 머무는 일이나 중환자실에서 떨고 있는 교인의 손을 잡고 기도하는 일은 위임의 대상이 될 수 없다. AI는 어울리는 성경 구절과 상담 지침을 제공할 수 있지만, 고통의 자리에 함께 있어 줄 수는 없다.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이 지적하듯 AI는 공감하는 반응을 시뮬레이션할 수 있어도 타자의 고유함을 알아보고 맞아들이는 참된 공감을 할 수 없으며, 관계를 기술로 대체할 때 우리는 살아 있는 관계를 생명 없는 이미지로 바꿀 위험에 놓인다.
8 외로움을 AI 컴패니언과의 대화로 달래는 성도가 늘어나는 현상은 공동체 부재의 증상으로 읽어야 한다.
다섯째, 분별력의 약화와 구조적 의존의 문제다. 챗봇은 존재하지 않는 성경 구절을 그럴듯하게 생성하고, 번영신학이나 교리적 왜곡을 매끄러운 문장에 섞어 낸다. 목회자가 본문과 씨름하는 시간을 줄일수록 이러한 오류를 걸러 낼 역량도 줄어들며, 회중은 논리적으로 정연하나 영적으로 가벼운 말씀에 길들여진다. 〈고귀한 인류〉가 교육 현장을 향하여 젊은이들의 “질문하려는 욕구”를 지켜 내라고 당부하였다면,
9 교회는 성도들의 “묵상하려는 욕구”를 지켜 내야 한다.
이 다섯 문제의 배후에는 통제되지 않은 AI가 산출하는 사회적 해악이 약자에게 집중되는 현실, 소수 기업에 집중되는 기술 권력, 노동의 불안, 디지털 격차라는 더 넓은 지평이 놓여 있으며,10 교회 원칙은 담장 안의 문제에서 출발하되 담장 밖의 문제를 시야에서 놓치지 않아야 한다.
원칙의 신학적 토대: 하나님의 형상과 참된 미덕
1. 하나님의 형상과 도덕적 책임의 귀속
원칙은 토대 위에 세워진다. 첫 번째 토대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됐다는 고백이다. 미국 남침례회 윤리와종교자유위원회(ERLC)가 2019년에 발표한 〈인공지능: 복음주의 선언〉은 하나님께서 각 사람을 “내재적이고 동등한 가치와 존엄성, 도덕적 행위 주체성”을 가진 존재로 창조하셨음을 확언하고, “인간만이 도덕적 결정에 대한 책임을 진다”라고 명시한다.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도 기계와 인간 사이에서 오직 인간만이 참된 도덕적 행위자이며, AI를 사용한 결정의 최종 책임은 언제나 인간 결정자에게 있다고 밝힌다.
11 이 고백은 장영하가 제기한 세 가지 물음, 곧 ‘기계는 스스로 사고할 수 있는가’, ‘자율 의지를 가지는가’, ‘인간과 같은 의식을 가지는가’라는 물음과 결합될 때 원칙의 첫 기준을 산출할 수 있다.
12 사고와 의지와 의식이 없는 존재는 도덕적 행위 주체가 아니며, 그러한 존재에게는 본래적 의미의 책임도 사랑도 회개도 귀속될 수 없다. 따라서 어떤 원칙도 책임을 기계에 이전하는 방향으로 설계될 수 없으며, “AI가 그렇게 하였다”라는 말은 교회 안에서 변명이 될 수 없다.
2. 이차적 아름다움과 참된 미덕의 구별
두 번째 토대는 에드워즈의 참된 미덕론이다. 에드워즈는 미덕을 외적 행위가 아니라 마음의 성향의 아름다움으로 정의하고, 참된 미덕은 “가장 본질적으로 보편 존재에 대한 호의적 사랑”에 있으며 모든 존재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일차적 대상으로 삼는다고 규정했다. 이 사랑은 인간의 자연적 능력의 산물이 아니라 성령께서 신자의 마음에 부여하시는 “새로운 영적 감각”에서 흘러나온다. 그는 이러한 참된 미덕을 ‘이차적 아름다움’과 엄격히 구별하였다. 이차적 아름다움은 “형태, 방식, 양, 그리고 가시적 목적에 있어서 서로 다른 것들 간의 상호 동의와 일치”로서 자연의 조화, 음악의 화성, 제도의 효율성, 그리고 자기 사랑과 자연적 동정심 같은 덕스러워 보이는 자연적 정서에서 발견된다. 그것은 피조 세계에 새겨진 신적 질서의 메아리이지만, 하나님께 대한 일차적 동의를 결여하기에 참된 미덕은 아니다. 이차적 아름다움을 참된 미덕으로 오인하는 것은 빛의 반사를 빛의 원천으로 오인하는 ‘범주 오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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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구별을 AI에 적용하면, 현대 AI는 에드워즈의 용어로 ‘이차적 아름다움의 산업적 엔지니어’라 부를 수 있다. 거대 언어 모델은 의미와 구문과 수사의 비례가 경이로운 텍스트를 산출하고, 정서 인식 모델은 공감을 모방하는 출력을 조율하며, 이미지 생성 모델은 형태와 양의 일치를 산업적 규모로 생산한다. 그러나 AI는 원리적으로 참된 미덕을 가질 수 없다. 참된 미덕의 자리인 마음이 없고, 성령의 내주를 받을 수 없으며, 그것이 최적화하는 목적 함수는 설계자에 의해 사전 규정된 것이어서 하나님을 향한 개방적 사랑으로 나아갈 수 없고, 사심 없는 자비심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연구자 스튜어트 러셀이 신학적 전제 없이 인공 행위자는 자신의 목적 함수 자체를 평가의 대상으로 삼을 수 없다는 동일한 결론에 도달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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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점에서 모든 개별 원칙을 관통하는 최상위 기준을 발견할 수 있다. 그 기준은 교회의 AI 사용에서 진정한 위험은 AI가 산출하는 이차적 아름다움이 참된 미덕으로 오인되는 범주 오인에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의 AI 사용 원칙은 이차적 아름다움의 청지기적 활용을 허용하되 그것이 참된 미덕의 자리를 대신하지 못하도록 경계선을 긋는 문서여야 한다.
교회 AI 사용의 일곱 가지 원칙
이상의 토대 위에서, 그리고 “ERLC 선언”과 〈로마 콜〉(Rome Call for AI Ethics)과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이 공유하는 다섯 가치, 곧 인격으로서의 번영, 관계 안에서의 번영, 소외된 이들과 함께하기, 창조 세계 돌봄, 공동선과 세 책임, 곧 의미 있는 인간 개입, 책임성, 투명성을 기초로 하여15 교회가 세울 원칙을 일곱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인격 우선의 원칙이다. 교회는 사람을 데이터로 환원하지 않는다. 성도는 출석률과 헌금액의 합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이다. 예측 모델과 분석 도구는 돌봄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데 사용되지 않으며, 소외될 위험이 있는 사람을 발견하는 데에만 제한적으로 사용된다.
둘째, 책임 귀속의 원칙이다. 모든 AI 산출물과 결정의 책임은 사람에게 있다. 위임은 가능하나 방기는 불가능하다. 교회는 자기 사역을 ‘AI에 맡길 수 있는 일’, ‘사람의 검토가 필요한 일’, ‘사람이 직접 감당해야 하는 일’로 구분하여 문서화하고, 각 산출물에 최종 책임자를 둔다.
셋째, 정직과 투명성의 원칙이다. 교회는 AI 사용을 은폐하지 않는다. 설교 본문의 묵상과 설교문의 작성은 AI에 맡기지 않으며, 자료 조사와 정리에 AI를 활용한 경우 그 사실을 회중과 나눌 수 있는 정직성을 유지한다. 주보, 영상, 교육 자료의 AI 생성물에는 그 사실을 표시하며, 교회가 먼저 표기의 문화를 형성한다.
넷째, 비밀 보호의 원칙이다. 교회는 성도의 정보를 외부 AI에 입력하지 않는다. 상담 내용, 심방 기록, 헌금, 가정 형편 같은 개인정보는 상용 AI 서비스에 입력하지 않으며, 부득이한 경우 익명화와 학습 배제 설정을 확인하고, 교회 차원의 데이터 보호 규정으로 접근 권한을 관리한다.
다섯째, 몸의 임재의 원칙이다. AI는 관계를 보조할 뿐 대체하지 않는다. 심방과 상담, 임종과 장례, 신앙의 위기 앞에서 교회는 사람의 몸으로 임재한다. 자살과 자해, 학대와 가정 폭력, 정신 건강의 위기처럼 영혼이 걸린 상담은 어떤 경우에도 챗봇에 방기하지 않고 즉시 목회자나 전문가에게 연결하며, AI가 생성한 위로의 메시지를 목회자의 이름으로 보내지 않는다.
여섯째, 약자 우선과 공동선의 원칙이다. 교회는 디지털 격차가 은혜의 격차가 되지 않도록 한다. 실시간 자막과 번역, 음성 해설로 노년 성도와 장애인과 이주민의 접근성을 높이는 사용은 예장합동 가이드라인이 ‘일반은총적 선용’이라 부른 대로 적극 장려하되, 특정 계층을 배제하거나 알고리즘이 차별을 낳는 사용은 중단한다. AI가 소모하는 에너지와 자원, 그것이 성도들의 노동에 미치는 영향까지 사용 판단에 포함한다.
일곱째, 분별과 절제의 원칙이다. 교회는 자신이 무엇을 닮아 가는지를 계속 묻는다. 교회는 정기적으로 이 사용이 공동체를 더 사랑하는 공동체로 만드는지 더 계산하는 공동체로 만드는지를 점검하며, 목회자와 성도 모두에게 AI 없이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는 시간과 자리를 의도적으로 확보한다.
일곱 원칙은 서로를 지탱한다. 인격과 책임의 원칙이 토대를 놓고, 정직과 비밀의 원칙이 신뢰를 지키며, 임재와 공동선의 원칙이 사랑의 방향을 정하고, 분별의 원칙이 전체를 살아 있게 한다. 그리고 이 일곱은 모두 이차적 아름다움을 참된 미덕으로 오인하지 않는다는 하나의 기준의 상이한 적용이다.
결론
논의의 결과는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오늘의 AI는 임의로 선택할 수 있는 도구가 아니라 교회가 그 안에서 살아가야 하는 환경이며, 기술이 중립적이지 않기에 교회의 원칙은 금지 목록이 아니라 정체성의 고백이어야 한다. 둘째, 교회의 AI 사용에서 제기되는 다섯 가지 문제는 모두 이차적 아름다움이 참된 미덕으로 오인되는 범주 오인의 상이한 양상이다. 셋째, 원칙은 하나님의 형상과 에드워즈의 참된 미덕론을 토대로 일곱 원칙으로 구체화될 수 있으며, 그 최종 목적지는 문서가 아니라 공동체의 성품이다.
키에르케고르는 영원이 시간 안으로 들어오는 결단의 시간을 ‘순간’이라 명명했다.
16 AI 시대는 한국 교회에 위협으로만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이차적 아름다움의 환영을 따라 살 것인지 성령께서 부여하시는 새로운 영적 감각을 따라 하나님께 동의할 것인지를 묻는 결단의 순간, 곧 카이로스로 다가온다. 그러므로 한국 교회는 AI 시대에 더 효율적인 종교 서비스의 공급자가 되려 하기보다, 기계가 결코 산출할 수 없는 참된 미덕의 공동체로의 소명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
註
1) 목회데이터연구소·기아대책이 ㈜지앤컴리서치에 의뢰하여 2025년 5월 실시하고 2026년 4월 7일 발표한 조사. 미국의 수치는 Exponential AI NEXT와 ChurchTechToday가 2025년에 실시한 교회 지도자 대상 조사 결과이다. 두 조사는 사용의 확산과 원칙의 부재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2)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제109회 총회, 〈인공지능(AI) 시대, 목회자 윤리 선언〉(2024. 9);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제111회 총회, 〈AI 윤리 및 신앙 활용 가이드라인〉(2026. 9); 한국기독교장로회 제111회 총회 결의(2026. 9); 〈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기본법〉은 2024년 12월 국회를 통과하여 2026년 1월 시행됐다.
3) 장영하, “디지털 전환과 우리의 시대,” 2025 한국기독교윤리연구원 컨퍼런스 〈디지털 혁명의 도전 앞에 선 교회와 목회〉 강의안 (한국기독교윤리연구원, 2025), 2-4.
4) 장강명, 《먼저 온 미래: AI 이후의 세계를 경험한 사람들》 (동아시아, 2025), 25, 79, 113. 장강명은 알파고 이후 신진서 9단이 “인간이 아닌 인공지능을 스승으로 삼은 첫 세대”가 되었다는 사실에서 탁월성의 기준 자체가 AI에 의해 재설정됐음을 지적하고 있다.
5) 레오 14세, 〈고귀한 인류〉(2026. 5), 9항. 이 회칙은 사회 교리의 전통 위에서 인공지능과 인간 존엄, 노동, 기술 권력의 집중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최초의 회칙이다.
6) G. K. Beale, We Become What We Worship: A Biblical Theology of Idolatry (InterVarsity Press Academic, 2008), 16, 43-48.
7) Eric Stoddart, “Artificial Care? The Abdication of Compassion to Machine Learning,” Practical Theology 14/5 (2021), 420-435.
8) 교황청 신앙교리부·교황청 문화교육부에서 발표한 문서다.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Antiqua et Nova), 58, 61, 63항.
9) 〈고귀한 인류〉, 140항.
10) 강성호, “AI 시대의 기독교 윤리와 신학적 성찰,” 고신뉴스 KNC, 2023년 10월 17일자; 기술 권력의 집중과 노동, 데이터 착취의 문제에 관해서는 〈고귀한 인류〉, 67, 150, 178-179항을 보라.
11) The Ethics and Religious Liberty Commission, “Artificial Intelligence: An Evangelical Statement of Principles” (April 11, 2019), Articles 1, 3-4;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 39, 44항.
12) 장영하, “디지털 전환과 우리의 시대” 3-4. 이 세 질문은 장영하가 2023년 8월 한국기독교윤리연구원 컨퍼런스 ‘인공지능이 만들 교회의 풍경’에서 신학자와 윤리학자가 우회할 수 없는 물음으로 제시했다.
13) Jonathan Edwards, The Nature of True Virtue, Ethical Writings, ed. Paul Ramsey, vol. 8 of The Works of Jonathan Edwards (Yale University Press, 1989), 539-541, 550-551, 557, 561-564, 619, 622.
14) Stuart Russell, Human Compatible: Artificial Intelligence and the Problem of Control (Viking, 2019), 137-172.
15) ERLC, “Artificial Intelligence,” Articles 1-4; Pontifical Academy for Life, 〈Rome Call for AI Ethics〉 (28 February 2020);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 11-14, 56-58항. 〈로마 콜〉은 투명성, 포용성, 책임성, 공정성, 신뢰성, 안전과 프라이버시의 여섯 원칙을 제시한다.
16) Søren Kierkegaard, Philosophical Fragments (철학적 단편들)Johannes Climacus, ed. and trans. Howard V. Hong and Edna H. Hong, Kierkegaard’s Writings VII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85), 13, 18. 키에르케고르는 진리를 얻는 시간 속의 순간이 “결정적 의미”를 가져야 하며, 그 순간에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영원한 것이 생겨났다”고 말한 뒤(13), 짧고 지나가는 순간이면서도 “영원으로 충만한” 이 순간에 특별한 이름을 붙여 “시간의 충만”(the fullness of time)이라 부른다(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