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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와진단 2026년  11월호리센느와 효리수 열풍, 숏폼 시대에 필요한 긴 이야기 문화로 읽는 Z-코드

우연한 재미가 사람의 발견으로

“거제 야호.” 이 말이 한 걸그룹의 운명을 바꿔놨다. 해체 예정이던 데뷔 2년차 걸그룹 ‘리센느’의 멤버 원이를 주인공으로 한 유튜브 채널 ‘안녕하십니까원이입니다잘부탁드립니다’(줄여서 ‘안원잘부’)에서 다른 멤버 미나미가 무심하게 툭 내뱉은 말이었다. 원이가 갸루 차림의 미나미에게 “너 지금 이러고 거제 가면 시민들한테 혼난다”고 하자 미나미가 특유의 비음 섞인 목소리와 제스처로 “거제 야호”(일어로 ‘거제 안녕’의 의미)를 말했다. 2026년 3월 공개된 이 장면은 숏폼과 온라인 커뮤니티를 타고 퍼졌고, 알고리즘은 리센느의 다른 영상과 음악까지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2024년에 발표한 곡 ‘LOVE ATTACK’은 역주행해 2026년 7월 멜론 TOP100 1위까지 올랐다.1

그 과정에서 흥미로운 것은 사람들이 노래만이 아니라 멤버 한 사람 한 사람을 발견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새침하고 예쁘장한 외모와 달리 원이는 걸쭉한 거제 사투리를 쓰고 갯지렁이를 손으로 잡아 손낚시를 하는 반전 매력이 있다. 일본 출신 미나미는 ‘갸루’, 경주 출신 제나는 ‘신라 공주’ 콘셉트로 각자의 뿌리를 찾아 나섰다. 처음에는 웃기기 위한 설정에서 시작했지만, 점차 캐릭터 너머 각자의 성격과 성장 과정, 멤버 사이의 관계가 보이기 시작했다. 설정이 실제 살아온 시간과 관계에 연결되면서 콘셉트 이상의 설득력을 얻게 된 것이다.

“거제 야호”를 본 사람들은 리센느의 과거 영상을 거슬러 올라갔다. 규모가 크지 않은 지역 행사, 주민센터, 초등학교 운동회 흙바닥에서 공연하던 모습, 준비한 것을 보여주기 위해 “1분만”이라며 간청하는 모습, 매일 라이브 방송을 이어가던 시간이 뒤늦게 회자됐다. 갑자기 일어난 사건으로 보인 역주행 뒤에 오랜 시간 간절함과 꾸준함으로 축적해온 기록이 있었다. 그러니 ‘거제 야호’가 만들어낸 것은 성공이라기보다 ‘발견’이었다. 짧은 밈이 리센느라는 그룹을 알게 하는 문을 열었고, 그 문을 통해 사람들은 이미 존재하던 리센느의 시간을 발견했다.

최근 화제가 된 ‘효리수’는 국내 최정상 걸그룹 소녀시대의 유닛으로 출발점은 다르지만, 대중의 관심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멤버들의 재발견이라는 점에서 묘하게 같은 구조를 갖는다. 효리수는 효연의 유튜브 채널 ‘효연의 레벨업’의 ‘가짜 김효연’ 코너에서 시작됐다. 소녀시대의 다른 멤버인 티파니와의 대화에서 장난처럼 나온 “효리수”라는 단어가 현실이 됐다. 웃자고 시작한 콘텐츠가 우연히 실제 유닛 활동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들은 ‘가짜’라는 콘셉트에 맞게 철저하게 자신들을 망가뜨린다. 기존 소녀시대 유닛인 ‘태티서’의 대항마를 자처하며 효연과 유리, 수영이 유닛을 만들어 메인보컬 경쟁을 음치 대결처럼 하며, 소녀시대 시절 상대적으로 비중이 적었던 기억까지 웃음의 소재로 삼았다. 그런데 막상 무대가 시작되면 분위기가 반전된다. 오랜 활동 속에서 축적한 경험과 실력으로 압도적인 무대 장악력을 보여줬던 것이다. 효연은 노래 파트가 많아진 뒤 “요즘 가수 된 것 같다”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 그 말이 웃음을 자아내면서도 묘하게 뭉클한 이유는 2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것 같아도 그 자리를 묵묵히 지켰던 마음, 그리고 마침내 하고 싶었던 것을 해낸 그 열정과 감격스러움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콘텐츠 기획에서 삶의 서사로

그렇다면 리센느와 효리수 열풍의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했을까? 복합적인 이유를 들 수 있겠지만 한마디로 말하면 관계를 맺게 되었기 때문이다. 바라만 보던 존재, 소비의 대상이던 아이돌의 매력을 발견하면서 호감을 갖고 감동을 주며 응원하는 관계로 전환됐다. 이를 몇 가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첫째로 축적된 서사다. “거제 야호” 밈이 떴을 때 사람들은 재미있다고 느꼈지만 그것만으로는 리센느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꾸준히 업로드된 다른 영상들을  알고리즘을 통해 접하면서 어느새 그 사람의 다양한 면모를 알게 되었다. 단순히 재미 요소가 아니라 원이가 어떤 학창시절을 보내고 고향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어왔는지, 또 팀을 살리기 위해 얼마나 간절한 마음으로 고군분투했는지, 소속사 관계자들과 멤버들, 주변 인물들이 서로 투닥거리면서도 얼마나 아끼는지, 그저 웃기기만 한 게 아니라 실력이 얼마나 출중한지 보여주는 영상들이었다. 이전에 무명 걸그룹이라며 지나쳤던 소소한 공연이 이제 꾸준히 무대에 섰던 시간으로 다시 읽혔고, 조회수가 많지 않던 시절의 라이브 영상 역시 계속 사람들과 소통해 온 기록으로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효리수의 경우도 비슷하다. 소녀시대 활동 당시 어떤 멤버들은 공연과 예능에서 상대적으로 더 많은 주목을 받았고, 그렇지 못한 멤버들도 있었다. 특히 효연은 당시 걸그룹에게 요구되던 음색과 이미지가 자신과 잘 맞지 않아서 힘들기도 했고, 최근 스스로 회고하듯 낯가림이나 말실수 등으로 위축됐던 시기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 데뷔 19년차가 되면서 생긴 여유, ‘가짜’라는 콘셉트가 주는 자유로움, 소녀시대 멤버와의 친밀함, 누구나 인정할 만한 실력, 그리고 정제된 이미지보다 개성 있으면서도 자연스럽고 재미있는 모습을 선호하는 최근 콘텐츠 환경이 맞물리면서 효연은 대중에게 이전과 다른 면모를 보여주고 주목받게 됐다. 과거의 소녀시대 활동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지금의 모습이 그 위에 덧붙여지면서 이전의 시간까지 다시 읽히기 시작했다. 그래서 효연과 효리수는 익숙하면서도 낯설고, 오래 보았지만 새롭게 발견되는 존재가 됐다.

철학자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는 인간 행동의 의미를 알기 위해서 그것이 어떤 삶의 서사 속에 놓여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고 보았다. 다시 말해, 그 사람이 누구인지 이해하려면 그 사람의 행동을 한두 개만 놓고 볼 것이 아니라 그 행동이 삶 전체의 이야기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봐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서사는 마케팅에서 말하는 ‘스토리텔링’과는 조금 다르다. 다른 아이돌도 사투리를 쓰고 고향 주민을 만나는 콘텐츠를 찍을 수 있다. 다른 멤버들과의 투닥거림을 보여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장면이 다른 영상 속의 행동, 실제 삶과 이어지지 않는다면, 단발적 ‘콘셉트’에서 끝나 버리기 쉽다. 탁월한 기획도 중요하지만 그 기획이 힘을 얻는 것은 삶이 기반이 된 콘텐츠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일관성에서 오는 진정성이다. 리센느와 효리수의 상당수 콘텐츠는 PD에 의해 기획되고 출연자가 연기하며 의도에 따라 편집되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만들어진 콘텐츠를 통해 오히려 “진짜 모습”이라고 느꼈다. 사실 플랫폼 시대의 진정성은 ‘연출되지 않았음’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하나의 장면이 설정과 콘셉트에 기반할 수 있지만, 그 설정에 임하는 중에도 본연의 자연스러운 제스처나 말투, 웃음이 서로 다른 시간과 관계 속에서 비슷하게 반복될 때 사람들은 그 안에서 한 사람을 읽는다. 팬 앞에서의 모습이 공연에서의 태도로 이어지고, 과거의 열심인 태도가 오늘 감사의 자세로 연속될 때 그 모든 콘텐츠들은 연결된다. 그러므로 오늘의 진정성은 연출의 부재라기보다는 서로 다른 장면들에서조차 일관성이 발견될 때에 더 가까운 것일 수 있다. 서사가 그 사람을 이해하게 한다면, 일관성은 진정성에 대한 믿음으로 이어진다. 여기에서 숏폼 시대의 역설을 발견할 수 있다. 콘텐츠는 점점 짧아지고 몇 초 안에 흥미를 끌고 유명해질 수도 있지만, 시청자가 누군가를 ‘발견’하고 신뢰하며 관계 맺기에 필요한 시간까지 짧아진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세 번째는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적 가치와 매력이다. 사람은 혼자 있을 때보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 안에서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사람들은 리센느 멤버들이 서로 장난을 주고받으며 함께 웃는 모습, 어른이나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친근감 있게 다가가며 배려하는 태도, 팀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는 모습에서 이들이 어떤 사람인지 읽었다. 멤버뿐 아니라 소속사, 콘텐츠 제작자, 부모와 주변 사람들까지 서로 아끼며 고마움과 사랑하는 마음을 전하는 모습도 반복해서 드러났다. 효리수 역시 서로를 놀리며 다소 거친 농담을 주고받더라도 이것이 불쾌감이 아니라 친밀감으로 읽히는 것은 그 밑에 오랜 시간 쌓인 관계와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결국 대중이 발견한 것은 캐릭터나 재밌는 콘셉트만이 아니라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었다. 갈등과 불신이 쉽게 증폭되는 시대에 사람들은 어쩌면 가장 희소해진 가치인 사랑, 믿음, 희생, 연대, 희망과 같은 인간적 가치를 이들의 관계에서 발견했는지 모른다.

마지막으로, 서사의 공감대와 확장이다. 이들의 서사는 개인의 삶에 머무르지 않고 다른 세대의 기억과 경험까지 건드리며 공감대를 형성하고 확장된다. 리센느의 거제 사투리와 동네 주민과의 만남, 낚시와 트로트, 명절 풍경은 요즘 아이돌 콘텐츠에서는 다소 낯선 소재다. 효리수도 비슷하다. 6세대 아이돌라는 콘셉트이지만 2세대 소녀시대 당시의 활동 기억을 연상시키며, 첫 음악방송을 앞두고 마치 중노년 세대가 돗자리를 깔고 마실 나온 모습을 연출하고, 좋은 일이 있어 이웃에게 떡을 돌리듯 스태프들에게 떡을 나눈다.

그런데 사람들이 반응하는 이유는 단순히 옛날 것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장면이 각자의 기억과 경험을 떠올리게 하는 요소가 있었기 때문이다. 리센느의 동네 풍경과 이웃 간의 정은 누군가에게 자신이 자란 마을과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고, 예의와 감사, 서로를 챙기는 모습은 세대를 넘어 공감할 수 있는 가치로 다가온다. 효리수는 SM과 소녀시대 특유의 감각을 떠올리게 하면서도, 이제는 20년 가까운 시간을 살아낸 이들만이 보여줄 수 있는 여유와 자기풍자를 더한다. 사람들은 그들의 무대를 보며 소녀시대가 활동하던 시절의 자기 청춘을 함께 떠올린다.

스타의 서사 위에 시청자 자신의 서사가 포개지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의 이야기는 단순한 팬덤의 서사를 넘어선다. 한때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시간, 각자의 결핍과 아쉬움, 그럼에도 다시 무대에 서는 모습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실패와 미완성의 시간까지 함께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그들이 다시 기회를 얻고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과정을 보며 함께 응원하고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결국 사람들은 그들의 과거를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지나온 시간과 앞으로의 가능성까지 다시 바라보게 된다.

숏폼의 시대에 필요한 가장 긴 이야기

이들의 흥행을 “고생하다가 콘텐츠를 열심히 올렸더니 결국 성공했다”는 식으로만 읽으면 해석에 실패한 것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시간에도 무엇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왔는가의 문제다. 기독교의 신실함 역시 결과가 사회적 성공으로 보상되었기 때문에 가치 있는 것이 아니다.

‘안원잘부’의 윤성원 PD는 구독자 100만 명을 기념하는 Q&A에서 갑작스럽게 쏟아진 관심을 두고 “인기라는 게, 대중의 관심이라는 게 되게 얄궂다”고 말했다. 기분도 좋지만 매우 짧은 시간 사이에 대중의 관심이 한 사람의 인생, 한 그룹의 운명까지 바꿔놓는다는 사실이 묘하게 느껴졌다는 것이다.2

영화평론가 라이너는 리센느를 다룬 영상에서 “리센느가 달라진 것이 아니라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가 달라졌다”는 취지로 평했다.3 생각해보면 유명해진 뒤의 원이가 더 성실해진 것도 아니고, 차트 1위를 한 뒤에야 리센느의 노래와 무대가 갑자기 훌륭해진 것이 아니다. 효연 또한 소녀시대 멤버로 성실히 활동해왔다. 지금 우리가 재미있게 혹은 감동적으로 바라보는 이 모든 것들은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그저 새롭게 ‘발견’되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돌아봐야 할 것은 어쩌면 그들보다 우리 자신인지 모른다. 우리는 유명한 사람에게는 작은 행동에서도 의미와 매력을 발견하면서, 이름 없는 사람의 같은 행동에는 너무 쉽게 무심했던 것은 아닐까. 유명하거나 많은 사람이 좋아한다는 것 자체로 그 사람을 믿어도 된다는 증거처럼 받아들이고,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 사람의 가치와 가능성까지 낮게 평가하지는 않았을까. 리센느와 효리수의 흥행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유명해진 뒤에야 대중이 그들의 오래된 시간과 가치를 알아보게 되었다는 데 있다. 그렇다면 서사를 발견한다는 것은 한 스타를 더 깊이 알아가는 일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 곁에서 아직 이름 없이 자기 몫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어떤 눈으로 보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하는 일이기도 하다.

또한 오늘의 교회를 생각해볼 필요도 있다. 교회는 이미 플랫폼의 한가운데에 들어와 있다. 목회자들은 설교를 1분 단위로 자르고 자막을 입혀 플랫폼에 올린다. 릴스와 쇼츠에서 사람들이 멈춰볼 만한 제목을 고민한다. ‘거제 야호’가 리센느를 처음 발견하게 만든 것처럼 짧은 영상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교회와 복음을 만나는 첫 통로가 될 수도 있다. 문제는 도구를 목적이라고 착각할 때 일어난다. 숏폼이나 콘셉트 형식은 발견의 방식일 수 있지만 그 자체가 신뢰의 방식일 수는 없다. 목회자와 그리스도인들이 쌓아온 서사는 진정성 있는 것으로 신뢰받고 있는가? 신자뿐 아니라 비신자들에게도 공감을 얻으며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가치와 매력이 있는가?

이는 비단 개개인뿐 아니라 교회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교회의 진짜 서사는 홈페이지에 기재된 비전 선언문보다 그 공동체가 반복해온 선택 속에서 만들어진다. 교회가 가장 우선시하는 복음의 가치는 무엇인지, 교회 안에서 갈등과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떤 식으로 해결하고자 했는지, 재정이 어려울 때 무엇을 붙들었는지, 취약한 사람의 문제 제기를 어떻게 들었는지가 쌓이고 그 일관성이 ‘어떤 교회인지’를 말한다. 스탠리 하우어워스가 《교회됨》에서 기독교 윤리와 이야기, 공동체의 성품을 연결한 것도 이와 관련된다. 곧, 교회가 하나님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하느냐만이 아니라, 그 이야기를 제대로 살아낼 수 있는 ‘교회됨’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 서사는 고립된 상태가 아니라 세상 가운데 관계 맺으며 비로소 빛을 발할 수 있다.

그래서 오늘의 목회가 물어야 할 질문도 조금 달라질 수 있다. ‘어떻게 복음을 더 효과적으로 전달할 것인가’ 이전에 ‘우리가 전하는 복음과 모순되지 않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하고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요청되는 것은 성경의 서사를 ‘잘 말하느냐’에만 있지 않다. 성경의 서사가 공동체의 삶의 서사가 되고 있는가가 문제다. 기독교가 세상에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설득력 있는 이야기도 결국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잘 만들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오래, 잘 살아낸 이야기가 필요하다.  


주
1) https://www.koreajoongangdaily.com/entertainment/two-years-and-1500-videos-how-rescene-pulled-off-a-rare-kpop-breakthrough/12773216
2) https://www.youtube.com/watch?v=WQIerKK8zUQ
3) https://www.youtube.com/watch?v=eVY6OMFmTaM

김지혜 장신대 객원교수. 문화선교연구원 책임연구원. 장로회신학대학교(Ph.D.). 저서로 《하나님 나라를 품은 공동체》, 《세상의 선물이 되는 교회》(공저)가 있다. 필자의 다른기사 keyboard_arrow_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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