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기존 한국 교회 체제의 유효성에 대한 논의들이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다. 관습적으로 해온 교회 행사나 활동이 앞으로도 필요한지에 대한 논의다. 최근 출판된 황인권의 《5무 교회가 온다》에서는 기존 교회가 전통적으로 유지해온 여러 사역과 함께 십자가조차도 없애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는 단순히 교회 전통을 제거해야 한다는 주장이 아니다. 형식과 제도를 넘어섬으로써 본질과 더 가까워지고, 요즘 세대의 기호와 문화를 감안해서 그들과의 접촉점을 고민해야 한다는 제안이다.

관습화된 교회 사역들

실제로 교회 활동 중에는 신앙의 본질에 해당하는 요소와 그렇지 않은 요소가 혼재해 있다. 주일에 예배하는 행위는 본질에 해당하지만, 그 형식은 다양할 수 있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엄숙한 예배를 드릴 수 있지만, 찬양 중심의 열린 예배를 드릴 수도 있고 뜨거운 성령 집회를 할 수도 있다. 한 세대 전만 해도 교회에서 기타를 치는 행위는 쉽게 용납되지 않았지만, 요즘에는 전자 기타만이 아니라 강대상 바로 옆에 드럼이 놓인 경우도 드물지 않다. 피아노가 처음 교회에 들어올 때는 그 소리가 가볍고 경망스러워서 예배 악기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요즘엔 교회를 개척하면 피아노 헌금을 가장 먼저 할 정도로 인식이 바뀌었다.

마찬가지로 주일에 교회당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생각은 일종의 전통으로 이해될 수 있다. 성경에서 초대교회는 가정에서 시작됐고, 한국 초기 교회 역시 가정에서 모였다. 물론 오늘날처럼 교회가 건물을 소유하는 것이 잘못됐거나 비성경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교회당에 모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비성경적이라고도 말할 수 없다. 또한 특별한 사정이나 필요에 따라 온라인 예배로 대체하거나 가정예배로 전환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훼손해서는 안 될 본질과 수정·보완이 가능한 비본질을 구분해 숙고할 필요가 있다.
몇 년 전 중형 교회에 부임한 담임목사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몇몇 교인이 찾아와 요즘 성도들이 교사나 성가대, 주일 중식 봉사를 하려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자 목사는 그 모든 사역을 중단하자고 제안했다. 교인들은 깜짝 놀랐다. 그래서 목사는 설명하기를, 사역의 본래 의미를 이해하고 동의하면 봉사자가 나타날 것이라며 의무감으로 억지로 할 필요는 없다고 답했다.

어느 작은 교회의 새벽예배에는 교인들이 아무도 참석하지 않는다. 모두 교회에서 멀리 떨어져 살고 있어서다. 그럼에도 교회에 새벽예배가 있으면 좋겠다는 교인들 요청에 따라, 담임목사와 사모는 매일 새벽예배를 드린다. 교인이 없는 관계로 이들은 예배당 대신 교회 식당에 마주 앉아 큐티 나눔 형식으로 예배를 진행한다.

이상 두 사례는 오늘 한국 교회에서 전통적·관습적으로 이뤄지는 예배와 사역을 되돌아보게 한다. 한국 교회가 코로나19를 겪으며 예배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하게 됐고, 이제까지 이루지 못한 개혁을 감행할 절호의 기회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팬데믹이 엔데믹으로 전환되고, 한국 교회는 어느 정도 안정을 회복했지만 새롭게 개혁되기보다 오히려 빠르게 과거로 회귀하는 분위기다.

교회 제도화의 딜레마

교회가 처음 태동했을 때는 신앙 공동체의 모습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조직화되고 제도화됐다. 그래서 오늘날 교회는 신자들 간의 일치와 연합, 결속을 강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조직으로서 효율성을 추구하며 여러 면에서 어그러짐이 나타나고 있다. 교회가 지속적으로 다양한 사역을 수행하려면 제도화 과정은 필수적이지만, 이 과정에서 공동체성 상실 같은 여러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른바 ‘교회 제도화의 딜레마’다.
사회학자들은 이를 교회 유형과 관련해 교회형(church type)과 종파형(sect type)으로 나눠 설명한다. 베버와 트뢸치는 종교가 초기에는 종교 정신의 순수성을 추구하기 위해 모든 충성을 다하며 세상과의 구별을 강조하지만, 점차 기존 정치 및 사회 체제와 타협하고 그에 순응하게 되면서 종파형이 교회형으로 변한다고 설명했다. 종파에는 대개 사회 하류층이나 주변부 인물들, 박탈을 경험한 사람들이 참여하며 공동체성을 경험한다. 반면에, 교회에 사회 주류 계층이 주로 가입하면 교회 자체가 기득권층화된다. 그래서 처음에는 구별을 강조하던 공동체가 시간이 지나면서 기존 체제와의 차이가 옅어지고, 결국 하나의 제도로 굳어지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기독교 역사를 통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유대교 사회 이스라엘에서 신흥 종파로 여겨졌던 기독교가 국교로 격상되고 점차 제도화되면서 기성 종교로 탈바꿈했다. 개신교 역시 가톨릭의 지배 아래 하나의 신흥 종파로 시작했지만, 이후 세계적인 종교로 성장했다. 마찬가지로 영국의 성공회 또한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분리됐지만, 성공회가 제도화되면서 성공회 성직자인 존 웨슬리가 감리교를 창시했다. 그러나 감리교 역시 제도화의 길을 걷게 되면서 감리교 목사인 윌리엄 부스가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고자 구세군을 창설했다. 이와 같이 종파형은 역사의 진전에 따라 점차 교회형으로 변화하는 경향을 보인다.

신학에는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선포했으나, 그 결과 교회가 생겨났다”라는 말이 있다. 예수님의 핵심 메시지가 ‘하나님 나라’였는데 역사 발전 속에서 제도적 형태인 ‘교회’로 변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의 복음이 종교적 제도화의 과정을 거치며 변질됐다는 뜻이다. 신학계에서는 이러한 교회 제도주의를 극복해야 한다는 주장이 연이어 제기됐다. 하워드 스나이더는 《참으로 해방된 교회》에서 교회를 제도주의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고 주장했고, 알렌 락스버러는 제도 교회 울타리 너머에 있는 참된 교회를 탐색하기도 했다. 

얼마 전 번역돼 나온 《리퀴드 처치, 솔리드 처치》 역시 오늘날 교회가 맞닥뜨린 제도화의 딜레마에 천착한다. 저자 피트 워드는 교회를 단순히 한 장소에 모여 예배하는 집회 중심의 고정된 관점으로 보지 말고, 관계와 소통의 연속체로 이해하는 관점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교회 생활 방식은 초기 형태에서 점차 발전해 현대 문화의 고체와 같은 딱딱한 특징을 모방해 왔다. 그는 이런 특징의 교회를 ‘솔리드 처치’라 부른다. 이는 지그문트 바우만이 《액체근대》에서 근대를 고체 또는 딱딱한 근대와 유연한 근대로 구분한 것과 관련된다. 바우만은 시간이 지나면서 근대적 시스템은 한계를 드러내고 오늘날의 근대성은 조금씩 유연화 과정을 거치면서 액체화되고 있다고 진단한다. 

솔리드 처치는 예배 외형에 집중한다. 참석 인원을 중시하고 많은 사람이 모이는 대 예배에 가장 큰 관심을 갖는다. 목회자는 사역에 집중하기보다 관리하고 감시하는 데 많은 에너지를 쏟는다. 교회에 관료주의가 자리 잡는 것이다. 이는 교회의 본질과 거리가 멀다. 그래서 피트 워드는 교회의 참모습을 탐구하며 리퀴드 처치를 주창한다. 기존 형식으로는 현대사회의 영적 갈망과 필요를 채워 주는 데 한계가 있다. 이는 교회에 들어오지 않으려는 사람과 어떻게 접촉면을 넓힐까 하는 문제와 이어진다. 그래서 피트 워드는 역동적이고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관계에 기초한 교회를 강조한다.

교회 밖의 영적 구도자들

종교 인구가 크게 줄면서 우리 사회는 빠르게 세속화된 사회로 변하고 있다. 종교별 인구조사를 시작한 1985년에 무종교인 비율이 절반을 넘었으나 이후에는 절반 아래로 줄었다. 그리고 최근 다시 증가하고 있다. 인구센서스만 아니라 여러 조사에서도 무종교인의 비율이 60% 안팎으로 나온다. 하지만 무종교인이 늘었다고 해서 사람들의 종교성 자체가 줄었다고 볼 수는 없다. 기성 종교 곧 제도 종교에서는 이탈하고 있지만, 무종교인 중 적지 않은 수가 종교적 또는 영적인 관심이 있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자기 나름대로 영성을 추구하고 있으며 영적인 활동을 하기도 한다. 

이는 이미 미국 교회가 경험한 바다. 종교사회학자 로버트 벨라는 오래전부터 현대사회에서 인간의 의미 탐구가 더 이상 교회 울타리 안에 머물지 않게 됐다고 지적했다. 그 원인은 종교의 교리적 정통성과 도덕 기준의 권위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로 인해 세속 사회에서의 종교 행위는 약화되기보다 오히려 더 필요해졌다고 본다. 각 개인이 삶의 궁극적인 물음에 대한 해답을 스스로 찾아야 하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회의 가장 적절한 역할은 개인에게 정해진 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해답을 찾을 수 있는 최선의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다.¹

로버트 우스노우는 오늘날 미국이 겪는 심대한 가치 위기가 오히려 사람들이 초월성을 추구하도록 자극한다면서, 새로운 영적 수단의 탐구이자 거룩한 순간을 개인이 찾는 것을 뜻하는 ‘추구의 영성’이 그동안 전통 종교가 제공한, 특정의 거룩한 장소에서 초월성을 경험하는 ‘거주의 영성’을 대체하고 있다고 말한다.² 다시 말해 제도 종교에 정착해 신앙생활을 하기보다 다양한 가능성에 개방성을 갖고 새로운 영적 가능성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다이애나 버틀러 배스도 이러한 진단에 동조한다. 《교회의 종말》에서 그녀는 중앙 통제에 의해 표준화되고 규칙화된 종교 형태의 기독교는 쇠퇴하는 반면, 훨씬 더 유연한 형태의 창의성과 인격성을 중심으로 하는 신앙 공동체가 출현하고 있다고 전망한다.³ 그리고 주류 교단이 쇠퇴하는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전에 미국인은 대부분 기독교인이었고 자신을 기독교인이라 말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는데 20세기 말부터 바뀌었다. 전통적인 종교 명칭은 부정적인 의미를 갖기 시작했고 기독교인이라는 말도 점차 열렬한 신봉자로 한정됐고, 종교 우익이나 보수 복음주의라는 말과 동의어로 사용됐다. 그리고 전통 교단들의 교세 약화 이면에서 관습적인 종교의 틀을 넘어서는 영성과 관계 중심의 신앙 재편이 이미 시작됐다고 한다. 

탈 제도적이면서 본질적인 교회

교회는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전통적이고 관습적인 제도를 유지하려고 애쓰기보다 제도에 안에 담긴 신앙의 본질을 분별하고 실천해야 한다. 최근에 이야기되는 ‘마이크로 처치’나 ‘심플 처치’도 이러한 흐름과 맥을 같이한다. 마이크로 처치는 단순히 규모가 작은 교회를 의미하지 않는다. 기존 틀을 벗어나서 소그룹이나 온라인을 기반으로 훨씬 유연하고 자유롭게 구성되는 공동체 교회의 사례다. 최근 몇 년간 미국에서는 500여 개의 마이크로 처치가 새롭게 세워진 것으로 알려진다. 대체로 평신도 주도형 교회이고 한 동네, 한 학교, 한 공동체 안에서 모여 그곳의 필요를 채우며 신앙을 실천하는 것을 지향한다. 

이러한 시도는 기존 전통 교회에는 매우 파격적으로 보이기에 시도하기 쉽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새롭게 교회를 시작하는 단계라면 미셔널 처치나 마이크로 처치의 사례를 진지하게 참고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기존 교회도 변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특별히 ‘심플 처치’의 의미를 새길 필요가 있다. 심플 처치는 사역이 축소되고 교회 활동 참여가 감소되는 중에도 성도들의 영적 갈망은 높아져가는 상황에서 교회가 취할 전략적 대안으로 제시된다. 단순히 예배나 활동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선택과 집중을 통해 사역을 재조정하고 본질에 집중하는 새로운 방향성을 의미한다. 기존 교회에서 하고 있는 사역들이 얼마나 교회 및 신앙의 본질과 관계가 있는지를 점검하고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이는 리퀴드 처치의 발상과도 같은 맥락이다. 리퀴드 처치는 플랫폼 처치와도 일맥상통한다. 플랫폼 처치는 전통적으로 제도화된 교회 안에 한정된 목회가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공간을 활용해 이를 필요로 하는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이 만나고 참여하게 하는 목회를 추구한다. 오늘날 새롭게 형성되는 뉴노멀 교회는 시간과 장소, 대면과 비대면을 뛰어넘는 교회이고 급변하는 시대 상황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는 교회다. 한국 교회는 앞으로 제도나 형태에 갇힐 것이 아니라 교회 본래의 존재 목적을 되살리고 거기에 충실하면서 본질적인 사역에 주력해야 한다.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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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로버트 벨라, 《사회변동의 상징구조》, 박영신 옮김(삼영사, 1997).
2)    Robert Wuthnow, After Heaven: Spirituality in America Since the 1950s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98).
3)    다이애나 버틀러 배스, 《교회의 종말》, 이원규 옮김(kmc, 2017), 1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