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신학적 이해와 행동 강령을 정리한 특별한 기도문을 작성하곤 했다. 김세윤 박사는 “유대인들의 기도문은 각각의 단체들이 내세우는 하나님에 대한 이해, 하나님의 구원사에 대한 이해, 자신들의 이상과 소망 등을 아주 압축적으로 반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¹ 이러한 배경 속에서 예수님의 제자들도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눅 11:1)라며 특별한 기도문을 요청했고, 예수님이 이에 응답해서 가르쳐 주신 기도문이 바로 ‘주기도문’이다. 따라서 주기도문은 단순한 기도가 아니라 예수 공동체의 신학적 이해와 정체성을 담은 신앙 고백이며 사명 선언문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주기도문의 신학적 이해는 무엇을 바탕으로 형성됐을까? 에드워즈가 “기도문의 모든 내용을 구약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다”라고 말했듯이, 주기도문의 신학적 토대는 구약성경이다.² 이는 주기도문이 구약의 기도문을 그대로 차용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구약의 신학적 사상과 언약적 이해를 바탕으로 형성됐음을 뜻한다. 주기도문의 단어와 표현들이 구약의 배경과 맥락 안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구약의 렌즈를 통해 주기도문을 살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접근은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를 더욱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앞으로 아홉 번에 걸쳐 ‘구약성경에 나타난 주기도문’이라는 주제로 구약의 관점에서 주기도문을 탐구하고자 한다. 그 첫 번째로, 주기도문의 서론이자 부름에 해당하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 부분은 기도의 대상인 하나님에 관한 것으로, ‘하늘에 계신 하나님’, ‘우리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

구약에서 ‘하늘’(샤마임)은 공간적으로는 땅과 바다와 구별되는 영역을, 신학적으로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을 의미한다.

먼저, 구약에서 하늘은 공간적 의미로 땅 위의 모든 영역을 가리킨다. 하늘은 눈과 비와 서리와 이슬과 우레를 내리는 곳이며(창 8:2; 사 55:10; 욥 38:29; 삼상 2:10), 태양과 달과 별이 있는 곳이며(창 1:14), 새들이 날아다니는 곳이다(창 1:20). 또한 ‘하늘과 땅’이라는 표현을 통해 하늘과 땅과 그 속에 있는 모든 것을 포함한 온 세상을 나타내기도 한다(창 1:1).

하늘에 대한 이러한 일반적 이해와 달리, 구약에서 하늘은 특별히 신학적 의미로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으로 나타난다. 모세는 하늘을 ‘주의 거룩한 처소’(신 26:15)라 했고, 솔로몬은 하늘을 ‘주께서 계신 곳’(왕상 8:30)이라고 했다. 또한 시편 기자는 ‘여호와께서 그의 보좌를 하늘에 세우시고’(시 103:19)라며 노래했고, 이사야는 하늘을 ‘하나님의 보좌’(사 66:1)라고 했다. 이렇듯 구약에서 하늘은 하나님께서 좌정하시는 보좌가 있는 곳,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이다. 

그러나 이것은 하늘이 하나님을 제한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하나님은 하늘에만 계시는 분이 아니다. 예레미야는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렘 23:24)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서 하나님의 편재(遍在, omnipresence)를 선언했다. 그리고 모세는 ‘하늘과 모든 하늘의 하늘’(신 10:14)이 여호와께 속한 것이라고 했으며, 느헤미야는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느 9:6)을 하나님께서 지으셨다고 했다. 이처럼 하늘과 하늘의 가장 높은 곳(하늘의 하늘)까지도 하나님의 손으로 지으신 피조물이기에, 솔로몬은 성전을 건축한 후에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왕상 8:27)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이렇듯 구약에서 하늘은 그 존재 자체로 특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이기에 특별한 곳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하나님이 하늘에서 무엇을 하시는지가 더욱 강조된다.

1.    하늘에서 다스리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하늘에서 온 세상을 다스리신다. 시편 기자는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시 2:4)라며 세상의 권력자들을 비웃으시는 하나님을 노래했다. 세상 권력자들이 헛된 일을 꾸미며 하나님의 일을 대적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비웃으시며 그들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대로 세상을 다스리심을 선언하신다. 또한 “여호와께서 그의 보좌를 하늘에 세우시고 그의 왕권으로 만유를 다스리시도다”(시 103:19)라고 노래했던 시편 기자는 하늘에서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선포했다. 선지자 미가야는 이스라엘 왕 아합과 유다 왕 여호사밧이 연합해 아람과 전쟁하고자 할 때, 하나님께서 보여 주신 환상 속 “하늘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과 그의 좌우편에 있는 하늘의 만군”(대하 18:18)이 전쟁을 주도하고 있음을 전했다. 전쟁의 승패가 아합과 여호사밧의 계략이나 군사력이 아닌 하나님께 있음을 선언한 것이다. 그리고 바빌론 왕 느부갓네살은 하나님이 계신 하늘을 우러러보며 “하늘의 군대에게든지 땅의 사람에게든지 그는 자기 뜻대로 행하시나니 그의 손을 금하든지 혹시 이르기를 네가 무엇을 하느냐고 할 자가 아무도 없도다”(단 4:35)라며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찬양했다.

이처럼 하늘은 하나님이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곳이다. 하나님은 하늘에서 당신의 뜻을 온 세상에 이루어가신다. 세상의 권력자들이 아무리 계략을 꾸미고 힘을 과시해도 하늘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이 온 세상을 다스리신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것은,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다.

2.    하늘에서 들으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하늘에서 자기 백성의 소리를 들으신다. 출애굽의 구원 역사는 ‘들으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다. 이집트에서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는 이스라엘 백성의 소리를 하나님이 들으셨다. 하나님은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셨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언약을 기억하셨다(출 2:23-25). 그리고 그들을 이집트에서 구원하기 위해 모세를 부르셨으며, 홍해를 가르고 그들을 구출해 내셨다. 느헤미야는 자기 민족의 죄를 자복하면서 “그들이 환난을 당하여 주께 부르짖을 때에 주께서 하늘에서 들으시고 주의 크신 긍휼로 그들에게 구원자들을 주어 그들을 대적의 손에서 구원하셨거늘”(느 9:27)이라고 고백했다. 시편 기자도 “의인이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들의 모든 환난에서 건지셨도다”(시 34:17)라며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시고 환난에서 건지시는 하나님을 찬양했다. 솔로몬은 성전을 봉헌하며 주의 백성이 성전에서 기도하며 간구하거든 주는 하늘에서 들으시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사해 달라(왕상 8:33-34)고 하나님께 간구했다. 솔로몬의 간구에 하나님은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대하 7:14)라고 응답하셨다.

이처럼 하늘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의 소리를 들으시는 곳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들으심은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이어진다. 고통의 소리를 들으신 하나님은 그들을 대적의 손에서 구원하시며 그들이 당하는 환난에서 건지신다. 회개의 부르짖음을 들으신 하나님은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며 그들을 회복시켜 주신다. 하나님이 하늘에서 들으신다는 것은 단순히 귀 기울이심을 넘어 그분의 언약에 신실하심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들으시되 무심히 들으시는 분이 아니라, 들으시고 기억하시고 응답하는 분이시다. 하늘에서 들으시는 하나님은 땅에서 행하시는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것은, 우리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반드시 응답하실 분께 나아가는 것이다.

3.    하늘에서 돌보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하늘에서 자기 백성을 돌보신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가나안 땅에 대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돌보아 주시는 땅이라 연초부터 연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신 11:12)라고 했다. 자기 백성을 면밀하게 살피시는 하나님은 그들을 세밀하게 돌보신다. 그렇기에 시편 기자는 ‘하늘에서 땅을 굽어보사 모든 인생을 살피시는 하나님’(시 33:13; 102:19-20; 113:5-7)을 노래한다. 여기서 ‘굽어보신다’라는 것은 허리를 굽혀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는 돌보기 위해 사정을 살피는 것을 상징한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굽어보심은 하나님의 돌보심으로 이어진다. 굽어보시는 하나님은 그들의 영혼을 사망에서 건지시며 그들이 굶주릴 때에 그들을 살리신다(시 33:19). 또한 갇힌 자의 탄식을 들으시며 죽이기로 정해진 자를 해방하시고(시 102:20), 가난한 자를 티끌에서 일으키시며 궁핍한 자를 거름 더미에서 들어 세우신다(시 113:7).

이처럼 하늘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돌보시는 곳이다. 하늘에서 자기 백성을 굽어보시는 하나님은 그들을 살뜰히 돌보신다. 하나님의 눈은 한순간도 쉬지 않고 그의 백성 위에 머물러 있다. 높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낮은 곳에 있는 자들을 외면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허리를 굽혀 그들의 처지를 살피시고, 그들의 고통에 개입하시며, 그들을 건지고 회복시키신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것은, 우리를 한순간도 잊지 않고 지켜보시며 우리의 연약함과 필요를 아시는 분께 나아가는 것이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우리의 삶 가까이에서 우리를 돌보시는 분이다. 

4.    하늘에서 복 주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하늘에서 자기 백성에게 복을 주신다. 모세는 하나님께 순종해 받게 될 복에 대해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여시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신 28:12)라고 말했다. 하나님이 계신 하늘은 하나님의 선하신 은혜가 가득한 곳이며, 하나님은 순종하는 자기 백성에게 하늘의 보물 창고를 열어 복을 주신다. 말라기 선지자도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 3:10)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십일조는 하나님께 대한 순종의 대표적이며 구체적인 표현이다. 그렇기에 이 말씀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기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이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백성에게 하늘 문을 열고 쌓을 곳이 없을 만큼 복을 내려 주겠다고 약속하셨다.

이처럼 하늘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복을 내려 주시는 곳이다. 하늘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은혜가 가득 담긴 보물 창고다. 순종하는 백성에게 하나님은 하늘 문을 열고 때를 따라 필요한 복을 풍성히 내려 주신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것은, 하늘의 보물 창고를 열고 우리에게 복을 주실 분께 나아가는 것이다. 

5.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향한 기도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주기도문에서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것은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다. 이는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주권자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며,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며, 우리를 눈동자처럼 지키시며 돌보시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며, 하늘의 보물 창고를 열고 우리에게 복을 주실 수 있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라는 표현은 우리에게 두 가지 확신을 준다. 

첫째, 우리 기도의 대상이 되는 하나님은 세상의 어떤 권세보다 높으시며 온 세상을 다스리는 전능하신 분이다.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늘 보좌에 앉아 계신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신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리를 돌보시며, 우리에게 복을 주신다. 이것이 바로 구약이 증언하고 예수님이 가르치신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모습이다.

우리 하나님

구약에서 ‘우리 하나님’(엘로헤이누)은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관계적 측면을 강조한다. ‘우리 하나님’이라는 표현에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하나님의 백성은 어떤 존재로 부름받았는지가 모두 담겨 있다. 

1.    하나님이 되심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에게 ‘하나님’이 되신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해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렘 31:33; 출 6:7; 레 26:12; 겔 37:27; 슥 8:8)라고 반복적으로 말씀하시며, 그들에게 하나님이 되겠다고 약속하셨다.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은 단순한 말에 그치지 않고 하나님의 적극적인 행동으로 이어진다. 

하나님은 이집트에서 고통당하는 이스라엘을 향해 “내가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내며 그들의 노역에서 너희를 건지며 편 팔과 여러 큰 심판들로써 너희를 속량하여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니”(출 6:6-7)라고 말씀하셨고, 실제로 그들을 이집트에서 구원하셨다. 또한 “나는 여호와 너희의 거룩한 이요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의 왕이니라”(사 43:15)라고 하시며, 이스라엘을 다스리시는 왕 되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들을 회복시키실지에 대해 말씀하셨고, 실제로 그들을 바빌론 포로에서 회복시켜 주셨다. 이러한 하나님을 시편 기자는 “그는 우리의 하나님이시요 우리는 그가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의 손이 돌보시는 양”(시 95:7)이라며 찬양했다. 하나님의 실제적인 인도하심과 돌보심을 경험했기에 부를 수 있었던 찬양이다. 

이처럼 ‘하나님이 돼 주신다’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서 그들을 다스리는 주권자, 그들을 돌보는 보호자, 그들을 이끄는 인도자, 그들을 구원하는 구원자의 역할을 감당하심을 의미한다. 

2.    하나님의 백성 됨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돼 주겠다고 약속하셨던 하나님은 그들에게 ‘내 백성’이 될 것을 요구하신다.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실 때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출 19:6)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목적을 알려 준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 서서 사람들이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도록 돕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정의와 은혜, 거룩함을 보여 주는 역할을 감당하도록 선택하셨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선택에 합당하게 살았을 때는 평안을 경험했지만, 언약에 불순종했을 때는 하나님께서 주신 땅에서 추방당하는 아픔을 경험하기도 했다. 

이처럼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가시적으로 보여 주는 존재가 돼야 함을 의미한다. 

3.    우리 하나님을 향한 기도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주기도문에서 ‘우리 하나님’을 향해 기도한다는 것은 단순히 하나님을 부르는 것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는 우리의 왕 되시며, 우리의 보호자, 우리의 인도자, 우리의 구원자가 되시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다. 동시에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존재가 되겠다는 결단을 품고 기도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하나님’이라는 표현 속에는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 공동체적 정체성, 그리고 세상을 향한 제사장적 사명이라는 구약의 핵심 신학이 압축돼 있다.

아버지 하나님

‘우리 하나님’과 마찬가지로 구약에서 ‘아버지 하나님’도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관계적 측면을 강조한다. 그렇기에 ‘아버지 하나님’이라는 표현에도 하나님은 어떤 아버지가 되시며, 하나님의 자녀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가 담겨 있다.

1.    아버지가 되심
하나님은 사랑과 긍휼의 아버지가 되신다. 모세는 광야 생활을 돌아보며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안는 것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신 1:31)라고 했다. 육신의 아버지가 아들을 안고 보호하는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지날 때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의 아버지가 되시며 그들을 돌보셨음을 고백한 것이다. 호세아도 출애굽을 회상하며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냈거늘”(호 11:1)이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자식의 고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아버지가 없듯이, 하나님께서 이집트에서 고통당하는 자신의 자녀를 사랑하셨으며, 그들을 이집트에서 구원하셨음을 고백한 것이다. 또한 예레미야는 “내가 그들을 넘어지지 아니하고 물 있는 계곡의 곧은 길로 가게 하리라 나는 이스라엘의 아버지요 에브라임은 나의 장자니라”(렘 31:9)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이스라엘의 아버지가 되신 하나님은 포로 된 그들을 회복으로 인도하겠다고 약속하셨다. 하나님은 생명과 직결되는 물이 있는 계곡으로 인도하실 것이다. 그 길은 구불구불해서 길을 잃어버리거나 걷기에 험한 길이 아니라 평안히 갈 수 있는 곧은 길이다. 그리고 다윗은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시 103:13)라며 하나님을 찬양했다. 여기서 ‘긍휼’(라함)은 ‘자궁’(레헴)에서 파생된 단어로, 엄마의 자궁에서 느껴질 수 있는 돌봄과 사랑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자신의 사랑을 말씀하시며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사 49:15)라고 말씀하셨다. 젖 먹는 자식을 잊어버리는 어머니가 세상에 존재할 확률은 극히 드물다. 그러나 혹 그런 일이 일어난다 해도, 하나님은 결코 이스라엘을 잊어버리지 않겠다고 말씀하신다. 

이처럼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신다’라는 것의 토대는 자식을 향한 사랑이다. 아버지 하나님은 자신의 자녀를 사랑하기에 고통 속에 있는 그들을 돌보시며, 구원과 회복으로 그들을 인도하신다. 자기 자식을 긍휼히 여기는 부모의 마음, 그 이상으로 하나님은 자신의 자녀를 긍휼히 여기신다. 

2.    하나님의 자녀 됨
사랑과 긍휼의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은 자녀 됨을 요구하신다. 모세는 가나안 땅을 목전에 두고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그는 네 아버지시요 너를 지으신 이가 아니시냐 그가 너를 만드시고 너를 세우셨도다”(신 32:6)라고 했다. 하나님이 창조주이시며 아버지가 되심을 아는 하나님의 자녀가 어떻게 하나님을 향해 악을 행할 수 있느냐고 반문하는 것이다. 또한 말라기에서 하나님은 자신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을 향해 “내가 아버지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말 1:6)라고 물으신다. 이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고백하면서도 자녀답게 살지 못했던 것에 대해 질타하시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질타 또한 하나님의 사랑에서 출발한다. 마치 아버지가 사랑하는 아들을 징계하는 것처럼, 하나님도 사랑하는 자녀를 징계하신다(잠 3:12). 

이처럼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그분을 세상의 창조주요 우리 정체성의 근원으로 인정하는 것이며, 그렇기에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겠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3.    아버지 하나님을 향한 기도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주기도문에서 ‘아버지 하나님’을 향해 기도한다는 것은 자기 자녀를 긍휼히 여기며 사랑하는 아버지께 기도하는 것이다. 동시에 그분을 우리의 창조주, 우리의 구원자, 우리 정체성의 근원으로 인정하며 고백하는 것이다. 광야에서 자녀를 안고 인도하셨던 아버지, 포로에서 회복으로 인도하신 아버지, 자식을 긍휼히 여기시는 아버지를 향해 기도하는 것이며, 그 아버지의 자녀답게 살아가겠다는 결단이다. 

나가는 말

지금까지 우리는 주기도문의 첫 구절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를 구약의 렌즈를 통해 살펴보았다. 이 짧은 구절 속에는 구약 전체가 증언하는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풍성하게 담겨 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라는 표현은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주권자이시며,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를 돌보시며,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하나님을 가리킨다. 또한 ‘우리 하나님’이라는 표현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 관계, 공동체적 정체성, 그리고 세상을 향한 제사장적 사명을 담고 있다. 그리고 ‘아버지 하나님’이라는 표현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며, 고통에서 구원하시고 회복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주기도문의 첫 구절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기도한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담고 있다. 첫째,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며, 우리를 돌보시고, 우리에게 복 주심을 믿고 기도하는 것이다. 둘째, 그분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며 그분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기에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사랑하시며 선한 길로 인도하심을 믿고 기도하는 것이다. 셋째, 그분의 백성답게, 그분의 자녀답게 살겠다는 결단을 품고 기도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주기도문의 첫 구절은 단순히 기도의 시작이나 하나님을 향한 부름에 그치지 않는 신학적으로 깊이 있는 신앙 고백으로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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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1)    김세윤, 《주기도문 강해》, (두란노서원, 2000), p. 16.
2)    James R. Edwards, The Gospel according to Luke, ed D. A. Carson, The Pillar New Testament Commentary (Grand Rapids, MI; Cambridge, U.K.; Nottingham, England: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Apollos, 2015), p. 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