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하고 싶은 주제

죽음은 대화에서 인기 있는 주제가 아니다. 사람들은 모두 어떻게 더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지, 어떻게 잘 죽을까는 고민하지 않는다. 만약 죽음을 피할 수 있다면 사람들은 무엇이든 하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죽음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에 잘 살기 위해서라도 죽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불행한 삶을 사는 이유 중 하나는 삶의 마지막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 삶이 얼마나 허무한지에 대해서 주님은 누가복음에서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통해서 가르쳐 주셨다(눅 12:13-21). 어리석은 부자의 잘못이 무엇인가? 그는 열심히 농사짓고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곡식을 수확했다. 일반적으로 성경에서 풍성한 수확은 열심히 노력한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을 의미한다. 부자는 기존 곳간을 허물고 더 크게 세워 그 많은 곡식을 저장하도록 했다. 적어도 몇 해 동안은 아무 걱정 없이 먹고 살 수 있었다. 여기까지는 부자에게 별 문제가 있는 것 같지 않다. 하지만 주님은 그에게 있는 결정적인 문제점 하나를 지적한다. 그 부자의 잘못은 자신의 생명이 소유의 넉넉한 것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날 밤에 주님께서 그의 영혼을 다시 찾는다면 그 많은 소유는 누구의 것이 되겠는가? 자신의 생명이 누구에게 속했는지를 모르는 모든 신자는 어리석은 부자와 같이 허무한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유쾌한 주제는 아니지만 죽음에 대한 바른 이해 없이는 바른 삶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신자들은 죽음에 대한 올바른 교리를 잘 배워야 하고, 그 교리에 따라 살아가는 연습을 부단히 해야 한다. 죽음을 어떻게 이해하는가는 믿음과 직결돼 있으며 참된 믿음은 죽음 속에서 가장 빛을 발하게 된다. 신자의 죽음도 어떤 면에서 슬플 수밖에 없지만 부활의 소망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불신자의 장례식과 신자의 장례식은 근본적으로 달라야 한다.

돌아가셨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고인의 죽음을 가리켜서 “죽었습니다”라는 말 대신 “돌아가셨습니다”라고 말한다. “죽었다”는 표현이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돌아가셨다”는 문구는 “죽었다”는 의미를 지닌 관습적인 표현이다. 이 말을 문자 그대로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돌아가셨다는 말은 원래 있던 곳으로 가셨다는 말인데 고인이 어디에서 왔는지도 모르는데 어디로 돌아갔는지를 어떻게 알겠는가? 그런데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 정확한 의미도 모르고 “돌아가셨다”는 말을 관습적으로 사용한다. 

놀랍게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 따르면 “돌아가셨다” 즉 “돌아감”이야말로 죽음에 대한 정확한 정의다. 이 신앙고백서는 죽음에 대한 성경적 교리를 우리에게 정확히 가르쳐 준다. “사후에 인간의 몸은 티끌로 돌아가 썩음을 보지만, 그들이 영혼은 죽거나 자는 것이 아니라 불멸하는 존재이기에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 즉시 돌아간다”(32장 1항). 죽음은 이중적 돌아감, 즉 몸의 돌아감 그리고 영혼의 돌아감이다. 

죽음을 돌아감으로 이해하고 믿는다면 우리 삶은 매우 달라질 것이다. 죽음이 돌아감이라면 죽음은 끝이 될 수 없다. 유물론자들은 죽음을 인생의 마지막으로 이해한다. 적지 않은 현대 신학자들도 영혼 소멸론을 주장하는데, 이와 같은 이해 속에서는 참된 윤리가 나올 수가 없다. 부활을 믿지 않고 이생이 전부라고 생각하면 결국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고전 15:32; 사 22:13)라는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돌아감을 죽음으로 이해한다면 우리는 죽음 이후에 돌아갈 곳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도대체 죽은 이후 인간은 어디로 돌아가는가?

죽음 이후의 심판

돌아갈 곳을 알기 위해서는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 하지만 인간은 어디에서 왔는지 스스로 알 수 없다. 이에 대한 궁극적인 답을 우리는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성경에 따르면 인간의 몸은 흙에서 왔고 인간의 영혼은 하나님에게서 왔다(창 2:7). 죽음을 통해서 인간의 몸은 흙으로 돌아가서 썩지만 그 영혼은 하나님께로 돌아간다. 

성경을 통해서 우리는 죽음이 죄의 결과라는 것을 안다. 하나님은 창조된 인간에게 명령을 주셨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창 2:17). 따라서 죽음은 자연에 속하지 않는다. 만약 아담이 하나님의 명령을 잘 지켰다면 죽음은 이 세상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죽음은 죄의 삯일 뿐이다(롬 6:23). 현대 신학은 죽음을 자연 현상 중 하나로 보는 경향이 강한데 죽음을 그렇게 보면 죄의 심각성을 약화할 뿐이다. 

죽음 이후에 있을 일에 대해서 히브리서는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단호히 선언한다(히 9:27). 이 심판은 두 번에 걸쳐서 시행된다. 한 번은 죽음 직후에, 다른 한 번은 최후의 심판에서 시행된다. 티끌로 돌아간 몸이 썩음을 본다는 점에서는 아무런 차이가 없지만, 하나님께 돌아간 영혼은 의인인가 악인인가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진다. 의인의 영혼은 복락을 누리지만 악인의 영혼은 지옥의 고통을 경험하게 되기 때문이다.

중간 상태(intermediate state)에 대하여

죽음 직후에서 최후의 심판 날까지의 기간을 ‘중간 상태’라고 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성경이 상세하게 말하지 않기 때문에 세세하게 따지는 것은 신앙생활에 유익하지 않다. 하지만 성경이 명시적으로 가르치는 교훈에 대해서는 정리할 필요가 있다. 중간 상태에 대해서 거의 유일하게 언급하는 본문이 부자와 나사로 비유이기에 이 비유를 중점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 본문의 중심 메시지가 성경(모세와 선지자)의 최종적 권위에 관한 것임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부자와 나사로 본문을 단순한 비유인지 아니면 실제 사실인지를 먼저 구별할 필요가 있다. 비유와 사실이 섞여 있다고 볼 수 있는데, 그렇게 보면 어디까지가 비유고 어디까지가 사실인지를 구분해야 할 것이다. 만약 순전히 비유로만 본다면 이 본문은 성도들에게 별다른 영향력을 미치지 못할 것이다. 아브라함의 품이나 불꽃, 음부, 구렁텅이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면 부자가 받은 심판도 단지 경고를 위한 엄포에 불과할 것이다. 따라서 이 본문은 실제로 있었던, 혹은 실제로 일어나거나 있게 될 일을 기술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부자와 나사로 본문에서 중간 상태와 관련해 가장 해석하기 어려운 부분은 영혼과 몸의 구별이 없다는 것이다. 부자는 아브라함에게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눅 16:24)라고 요청하는데, 이 말만 보면 죽은 영혼이 여전히 몸의 일부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자의 말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그렇다고 해서 해당 본문을 전부 비유로 보는 것은 더 적절하지 않다. 

부자와 나사로는 중간 상태에 대해서 한 가지 중요한 교훈을 준다. 죽음은 끝이 아니고 새로운 상태에 들어가는 것이다. 죽음 이후에는 어떤 형태로든지 하나님의 정의가 시행이 된다. 자비를 호소하는 부자에게 아브라함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눅 16:25). 우리는 이 세상의 삶이 불공평하다는 것을 알고 있고 이를 당연시 한다. 또는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하기도 한다. 사후에 이와 같은 불의가 하나님의 정의에 따라 시정되지 않는다면 이 세계는 더욱 불의한 세계가 될 것이다. 사후에 하나님의 정의가 시행된다는 것을 정말 믿는다면 신자들, 특히 부유한 신자는 생전에 결코 자기 이웃이나 동료를 함부로 대하지 않을 것이다.

중간 상태가 주는 또 하나의 중요한 교훈은 죽음 이후에는 회개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회개하더라도 회복의 가능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낙원과 음부를 오갈 수 없기 때문이다. 지옥의 고통 속에서 악인들은 회개하지 않을까? 부자와 나사로 본문은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가르쳐 준다. 부자의 말을 잘 들어 보면 그가 지옥의 고통 속에서도 회개하지 않고 끝까지 교묘하게 아브라함의 판결을 무시하고 대적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부자가 지옥에서 회개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지옥에서도 회개하지 않을 정도로 악한 자가 지옥에 가는 것이다. 

신자의 죽음: 복에 이르는 통로

죽음은 죄의 결과로 세상에 왔지만 우리 주님은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죽음을 이기셨다. 그분의 부활은 또한 우리에게 영생을 선사한다. 따라서 우리에게 자연스러운 질문이 생긴다.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서 죽으셨는데 왜 우리가 죽어야 하는가? 이 질문은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42문이 정확하게 제기한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다음과 같다. “우리의 죽음은 우리의 죗값을 치르는 것이 아닙니다. 죽음은 우리가 죄짓는 것을 그치게 하고, 영생에 들어가게 하는 통로가 됩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신자의 죽음을 이해함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하다. 신자에게 있어서 죽음이 죄의 값을 치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신자의 죽음과 비신자의 죽음을 근본적으로 나누는 기준이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해 죽음의 의미는 완전하게 바뀌었다. 물론 신자들도 사고로 죽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경우에도 그 죽음은 신자에 대한 하나님의 엄한 권징이지 그가 범한 죄에 대한 값을 치르는 것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으로 말미암아 믿는 자에게는 칭의의 은혜를 주셨고, 그의 모든 죄를 단번에 사하셨다. 

우리의 죄를 그치게 한다는 점에서 죽음은 신자에게 큰 복이다. 신자는 이 세상에 있는 동안 여전히 남아 있는 본성의 부패로 인해 끊임없이 성화를 위한 투쟁의 삶을 살아야 한다. 이를 영적 전투라고 한다. 신자들은 더 이상 죗값을 치르지 않지만 죄로 인한 고통은 여전히 감수해야 한다. 이 세상에서 완전한 성화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죽기까지 모든 신자는 영적인 전투를 치러야 한다. 그런데 이 힘든 전투는 죽음 이후에 중단되며, 이때부터 신자는 완전한 안식을 누리게 된다. 하지만 불신자들은 죽음 이후에 몸은 죄를 짓지 않더라도 영혼은 여전히 죄를 지으면서 심판 날까지 자신의 죄를 쌓는다. 이와 반대로 신자에게 죽음은 영생에 이르게 하는 통로가 된다. 이 점에 있어서 신자는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죽음은 신자에게 오히려 복의 통로일 뿐이다. 

그리스도: 모든 위안의 근거

그리스도는 신자의 죽음이 오히려 복이 되는 유일한 근거다. 믿음을 통해 성령은 신자와 그리스도가 하나로 연합하게 하며, 이 연합을 통해서 모든 복이 신자에게 임하는데 이 점에서 우리는 사도 바울의 고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빌 1:20-21).¹ 바울 사도를 통해 우리는 죽음을 그리스도를 통해 바라보게 된다. 엄밀하게 말하면 우리의 믿음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 때문에 죽음의 의미가 완전하게 바뀌었다. 

신자들은 예수 믿고 나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한다. 그와 같은 고민이 매우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고민은 확장될 필요가 있다. 신자는 어떻게 살 것인가도 고민해야 하지만 어떻게 죽을 것인가도 고민해야 한다. 그래야 어떻게 살 것인가를 훨씬 더 넓은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 죽음을 제외한 삶만 생각하면 어리석은 부자의 늪에 쉽게 빠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신자는 삶과 죽음을 분리하지 않고 지혜롭게 늘 함께 생각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우리는 전도서를 통하여 죽음이 우리의 삶에 복이 되는지를 잘 배울 수 있다. 전도자는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라고 노래한다(전 7:1). 일반적으로 이와 같은 전도서의 메시지를 인생무상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전도서의 메시지를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전도서의 메시지를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중요 구절에 전제돼 있다는 것이다. 죽는 날 그 자체가 출생하는 날 자체보다 나을 수 없다. 출생하는 날이 더 나은 이유는 출생한 갓난아이는 그의 삶을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지만 이미 충분한 삶을 산 노인은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자신의 전 생애 동안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았기 때문이다. 

전도자는 또한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낫다고 교훈하는데(7:2) 이는 신자들이 결혼식에는 참석하지 말고 장례식장에만 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장례식장이 더 나은 이유는 죽음이 모든 사람의 끝이기 때문이다. 장례식장은 인간들에게 마지막을 보여 주며 그곳에 참석한 사람은 마지막을 생각하게 된다. 마지막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마지막을 아는 것은 지혜에 속한다. 아쉽게도 죽음이 인생의 마지막이라는 것을 많은 사람이 알지만 마치 마지막이 없는 것처럼 무시하고 살아가고 있다. 

복된 죽음이 되기 위해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신자의 죽음은 복되다. 시편은 여호와 하나님은 경건한 자들의 죽음을 귀하게 보신다고 노래한다(116:15). 요한계시록 역시 하늘에서 나는 음성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지금부터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14:13). 하지만 이런 복이 신자들에게 기계적으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어차피 죽을 것이고, 죽는 것은 복이 되니까 빨리 죽는 것이 낫다는 식으로 이해돼서도 안 된다. 무엇보다 죽음의 복음을 잘못 이해해 이 세상을 대충 살아도 된다는 식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시편 기자는 경건한 자들의 죽음을 귀하게 보시는 여호와께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116:14)라고 맹세한다. 서약을 지키는 것과 복된 죽음은 밀접히 연결됐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앞에서 살펴본 대로 신자에게 죽음이 복음이라면, 죽음을 바라보는 신자들의 시각이나 태도가 완전히 달라야 할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몸이 약해지면 믿음도 약해질 수 있다. 교회는 노인들로 하여금 죽음을 평소에 잘 준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아무리 신앙이 좋은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죽음은 여전히 공포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부활과 영생의 복음이야말로 그들에게 가장 필요하다. 예배 시간에 복음을 통해 살아계신 삼위 하나님과의 교제를 체험하여 영생을 미리 맛보게 하는 것이 교회가 해야 할 일이다.

교회 안에서 복음이 충분히 잘 가르쳐지고 있다면 성도들은 죽음에 대해서 좀 더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미국 개혁교회의 한 할머니가 우리 가정을 저녁 식사에 초대한 적이 있는데 식사 후에 자신의 유언장을 아무렇지도 않게 보여 주었다. 그때 필자는 죽음에 대해서 아무런 거리낌 없이 그렇게 친하지도 않은 나에게 이야기하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 유언장에 따르면 자신의 자산의 일부는 교회에, 일부는 기독교 학교에, 나머지는 자신이 봉사하는 사회단체에 기부하며, 변호사의 공증도 첨부돼 있었다. 구미 교회가 쇠퇴해 노인밖에 남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아직까지 명맥을 유지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들이 기부하는 유산 때문이다. 교회도 이 점을 잘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나이 든 노인들의 목소리를 존중할 수밖에 없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우리나라에서는 유산 문제에 있어서 신자와 비신자의 차이가 크게 없는 것 같다. 신자 역시 자신의 유산 대부분을 자녀에게 물려줄 뿐이다. 신자의 자녀 역시 부모의 재산을 물려받는 것을 당연시하는 것 같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복음이 삶의 마지막 부분에 별 영향을 주지 못함을 의미한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확신한다면 자신의 유산을 자녀들에게 물려주기보다는 자녀들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 교회나 신학교나 선교단체에 기부할 것이다.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 6:21). 유산이야말로 개인에게 가장 큰 보물이다. 이를 어떻게 사용하는가는 그 신자의 믿음을 보여 준다. 

죽음과 장례

죽음은 내용이고 장례는 형식이다. 복된 죽음은 복된 장례식으로 이어져야 한다. 복된 장례식이 되기 위해서 교회는 성경의 범위를 벗어나서는 안 된다. 서약이 포함된 결혼식과 달리 장례식은 예배로 보기 어렵다. 예배라 하더라도 그 예배는 철저하게 유가족과 그곳에 참석한 사람들을 위한 사적인 예배다. 로마교회와 달리 개혁교회는 죽은 자를 위한 기도를 용납하지 않기 때문에 특히 (축도할 때) 주의할 필요가 있다. 신자의 영혼은 죽을 때 이미 하나님께로 갔기 때문에 ‘천국 환송 예배’라는 말도 그렇게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² 조의금도 교회가 집사회를 통해 무기명으로 처리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교회에 유익하다. 

장례와 관련된 예배 혹은 예식에는 비신자도 참여하기에 목사는 여러 가지 신경 쓸 게 많다. 예식이 조금이라도 미흡하면 유가족에게 큰 실망감을 줄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장례식장마다 분위기가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미리 몇 가지 물품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 필자는 항상 휴대용 스피커와 마이크를 준비해 필요한 경우 사용했다. 은혜로운 장례식은 그곳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준다. 장례식을 통해 믿음이 회복된 자들도 적지 않다. 그들에게는 장례식에서 선포된 복음이야말로 고인이 주는 마지막 선물이 될 것이다. 아쉽게도 장례식 설교에 대해서 목사들이 별로 고민하지 않는 것 같다.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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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와 유사하게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갈 2:20). 로마교회 성도들에게도 바울은 동일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 14:8).
2) 아직 한국 교회에서 장례와 관련된 규정은 보편화되지 않은 것 같다. 이 점에서 다음 책은 목회자들에게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안재경 편집, 《장례 매뉴얼》(교회건설 연구서,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