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핏은 속죄의 의미를 둘러싼 오해를 지적하며 글을 시작한다. 즉 속죄(καταλλάσσω, 카탈라소)는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라는 결과를 가져오는 메커니즘으로 깨끗케 함, 정화 혹은 방해 요소 제거를 의미하는데, 윌리엄 틴들이 사용한 단어인 ‘속죄’(atonement)가 메커니즘과 그 결과인 화해를 혼합하는 개념적 오류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모핏에 따르면 이러한 혼동은 십자가의 죽음에 대한 환원적 사고를 낳게 했다. 속죄와 예수의 죽음을 동일한 범위의 개념으로 간주함으로써, 예수님의 모든 구원 사역이 십자가에서의 죽음에만 국한된 것으로 여겨지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예수의 부활과 승귀는 단지 그의 죽음이 효과적이었음을 증명하는 부수적 역할로 축소된 것이다. 

반면 모핏이 제시하는 속죄는 훨씬 더 포괄적이다. 그는 속죄를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 시작된, 그리고 부활과 승천을 포함한 구속 사역 전반으로 확장된 개념으로 이해한다. 이는 하나님의 백성이 모세의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해방됐던 것처럼,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 죽음의 세력을 잡은 마귀에게서 해방되는 것을 의미한다. 나아가 예수님이 부활하신 육체를 가지고 승천해 자신을 제물로 드리고, 지속적인 중보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이 온전한 기업을 받을 때까지 새언약의 관계를 유지하도록 하는 모든 구원 사역을 포함한다. 따라서 죽음뿐만 아니라 부활, 승천, 그 이후의 중보 사역까지도 속죄의 필수 요소인 것이다. 

은유 vs. 유비 

모핏은 이러한 주된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중요한 배경적 논의를 진행한다. 이는 바로 은유와 유비의 개념이다(8장 참조). 많은 학자가 히브리서가 예수의 죽음의 의미와 하늘의 실체를 설명하기 위해 지상의 성막과 제사 의식을 은유로 사용한다고 해석한다. 소스키스의 분류에 따르면, 은유는 한 사물을 전혀 다른 연상 망에 속하는 또 다른 사물에 빗대어 말하는 ‘이형 모형’에 해당하며 종종 추상적 성찰과 관련이 있다. 이러한 해석을 따르는 학자들은 히브리서 저자가 예수의 십자가 죽음과 인류 구원이라는 영적이자 추상적인 실체를 설명하면서, 속죄일에 지성소에 피를 뿌리는 구체적이지만 상이한 제사 행위를 은유로 활용하고 있다고 본다. 

모핏은 이에 반대하며, 지상의 지성소에서 드리는 피의 속죄 제사와 하늘의 지성소에서 예수님이 자신을 속죄 제물로 드린 사건 사이에는 유비가 성립한다고 주장한다. 소스키스의 분류에 따르면, 유비는 ‘동형 모형’에 속한다. 모형 비행기가 대표적인 예다. 아이에게 ‘조종사’로서 모형 비행기를 ‘비행’시키거나 ‘착륙’시키라는 말을 할 때, 이러한 용어들은 실제 비행기의 연상 망에서 사용되는 요소들을 평행적으로 유비하여 적용한 것이다. 천상의 성소에서 이뤄지는 제사는 각각의 요소와 절차에 있어서 지상의 성소에서 이뤄지는 제사와 근본적으로 유사한 방식과 의미를 갖고 작동한다는 것이다. 

레위기에서 제사는 제사장이 하나님께 나아가 제물을 그 임재 앞에 바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일련의 절차를 포함한다. 제사는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구성된 “환원 불가능한 의식 절차”(p. 226)로 이뤄져 있으며, 이 절차들은 서로 위계적으로 연관돼 있다. 일부 절차는 다른 절차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하며, 이 과정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도살 행위가 아니라, 제물의 신체 일부나 피를 하나님의 임재 앞에 드리는 것이다. 도살은 제사를 구성하는 필수 요소지만, 제사 전체를 도살 행위로 축소하는 것은 레위기 제사 의식의 본질을 오해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속죄를 단순히 십자가의 죽음으로 정의하는 환원주의는 성경 저자의 논의를 심각하게 곡해하고 있다고 모핏은 주장한다. 

유대교 이해를 바탕으로 읽는 히브리서

모핏의 이러한 해석은 그의 유대교 이해에 뿌리를 두고 있다. 많은 해석자가 이 서신이 대체주의적이고 반유대주의적 성격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예수 그리스도가 율법에서 규정된 제사와 비교할 수 없는 제사를 드렸기에, 율법과 제사 의식이 대체됐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때때로 물질·지상 세계와 영적·하늘의 세계를 구분하는 플라톤적인 이원론적 우주 이해가 히브리서의 배경이라는 견해와 함께 제시됐다. 그러나 모핏은 히브리서의 저자가 유대 묵시주의에 더욱 크게 영향을 받았다고 본다. 하늘이 비물질적이고 관념적인 세계가 아니라 천사 제사장들로 가득한 하늘의 성막과 지성소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하늘의 구체적 실재가 지상의 성막과 제의 의식의 구조가 됐다는 것이다(pp. 199-200). 모핏은 히브리서 저자가 레위기의 제사, 제사장, 성막, 언약과 그리스도가 하신 일 간의 유비 관계를 세심하게 그려내고 적합한 상응점을 드러낸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를 통해 초기 기독교인의 일부가 구약과 신약의 연속성을 유지하면서 그리스도와 그 복음을 전했다는 것이다. 

모핏은 이 저서에서 히브리서를 읽는 방식에 혁명을 가져왔다. 그동안 많은 해석자가 히브리서는 구약의 제의 제도, 성막, 언약의 역사적 요소들을 통해 예수님이 이루신 영적이고 천상적인 구원의 추상적 실체를 전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참된 구원이 임했으니 구약 제의 제도의 그림자와 같은 요소들은 이제 그 의미를 상실했다는 것을 히브리서의 주요 메시지로 이해했다. 이러한 관점에 의하면 히브리서의 독자는 유대교적 요소들로 돌아가고자 하는 그리스도인들이고, 히브리서의 주된 내용을 이루는 대조들(모세와 그리스도의 대조, 지상의 성막과 하늘의 성막의 대조, 레위 제사장과 멜기세덱 제사장의 대조, 짐승의 피로 드린 제사와 예수님이 자신을 드린 제사의 대조) 은 버려야 할 것과 취해야 할 것의 대조다.

이처럼 히브리서를 반유대주의적 대체주의 렌즈로 읽는 동안, 구약의 제의적 요소라는 선한 것이 어떻게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됐는지 세밀하게 논증해 가는 히브리서의 주장은 그 빛을 잃었다. 하여 모핏은 구약의 제의적 모델을 통해 보여 주신 영광스러운 천상 제사의 구체적인 요소들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의 몸을 입고 하늘 성소에서 자신을 드린 일을 통해 온전히 실현됐음을 밝힌다. 히브리서의 내용이 다만 땅의 그림자는 버리고 하늘의 참된 것을 취하라는 단순한 명제로 수렴되는 것이 아니라, 모세를 통해 하늘 성막과 제의를 구현케 하시고 그곳에 친히 임재 하셨던 하나님의 열정과 그 정교한 구원 계획의 소상한 소개서가 되는 것이다.  

예수님의 지속적인 속죄 제사

무엇보다 본 저서의 가장 큰 성과는 속죄의 의미에 대한 강력한 재고와 논의 장을 열었다는 점이다. 모핏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깊이 숙고하지 않았던 중요한 사실을 환기시킨다. 즉 신약의 저자들이 하늘 성소와 제사를 따라 구조화된 레위기 제사 체계라는 유대적 세계관 속에 있었다면, 그들이 예수님이 이루신 속죄를 속죄 제사에 비유하면서, 그 제사의 장소와 시간을 십자가의 죽음으로 단순히 동일시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모핏은 예수님이 궁극적인 속죄 제물로 자신을 하나님께 단번에 바치셨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 다음과 같은 중요한 질문들을 던진다: “그러나 이것이 예수의 천상적 사역의 전부인가?”, “그의 속죄 사역이 완전히 마침내 끝났다는 것을 의미하는가?”(p. 217) 모핏이 지적하듯, 만약 그렇다면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끊임없이 중보하는 대제사장이 여전히 필요한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다. 그는 예수님의 계속되는 속죄 사역을 “새언약 관계를 유지하는 사역으로서, 아직 완전함에 이르지 못한 언약 백성이 여전히 성화되는 과정에 있는 동안 필요한 사역”(p. 218)으로 정의한다.   
  
히브리서가 정의하는 죄는 “불법”이라고 불리고, 이는 “의”와 반대의 개념이다. 맏아들 예수님은 의를 사랑하고 불법을 미워하신 분이라고 묘사되고(1:9), 하나님의 아들들이 평강의 열매를 맺는 것은 의를 통해 이루어진다(12:11). 이 두 본문에 각각 인용된 시편 45편과 이사야 35장의 문맥에서 의는 대적에 둘러싸인 시험 가운데서도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신뢰하는 믿음을 지칭한다. 히브리서는 이러한 믿음을 고난을 통해 배우는 순종이라고 부르며(5:8), 성도들이 경계해야 할 이스라엘 백성의 실패의 예는 다름 아니라 믿지 아니함으로 불순종하는 것이라고 말한다(3:18-19). 그리하여 새 언약의 백성, 즉 예수님의 속죄 제사를 통해 온전해진 하나님의 사람들은 불법에서 자유함을 얻는 자들이라고 묘사된다(10:17). 

이런 개념들을 살펴볼 때, 죄를 해결한다는 것은 다만 과거의 잘못을 없었던 것으로 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불순종의 마음이 변하여 믿음과 순종의 사람이 되는 것, 즉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에 새겨지는 것이 그 핵심이다(10:16). 다른 말로 하자면, 예수님의 제사가 이루시는 속죄는 복음을 받아들이는 순간 완결되는 것이 아니라 성도의 삶 속에 현재도 진행되는 사역으로 이해돼야 한다. 그래서 모핏은 예수님 제사장적 사역이 지금도 하늘 성소의 보좌 앞에서 이뤄지고 있으며, 성도들의 필멸의 몸도 부활의 영원한 생명을 입고 그 유업에 들어갈 때까지 중보하고 역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예수님의 피는 2000년 전 십자가 위에서만 흘려진 것이 아니라 지금도 은혜의 보좌 앞에서 드려지고 있다는 것이다.

모핏의 논의가 예수님의 지속적인 속죄 제사가 성도의 성화 과정에 어떻게 역사하는지에 대한 세부적인 고찰로 이어진다면 히브리서의 메시지에 대한 더욱 풍성한 이해로 이어질 것이다. 이는 예수님의 맏아들, 선구자, 보증으로서 수행하신 역할에 대한 고찰을 포함한다. 히브리서는 예수님의 중보 사역을 통해 성립되고 유지되는 새 언약을 소개하며, 예수님의 피가 성도의 마음에 뿌려져 양심이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한다고 말한다(9:14). 이 속죄 제사는 광야에서 만나는 시험 가운데, 세상 것이 주는 유혹으로 인해 완고해진 마음 때문에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 위험에 처한 성도들(3:12-13)에게 주어진 속죄 사역이다. 이 사역은 성도가 유업의 소망을 붙들고 순종을 배우며 끝까지 아들 됨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돕는 예수님의 대제사장적 역할이 새 언약의 중요 부분임을 보여 준다. 예수님은 아들 됨의 길을 먼저 가서 모범을 보이신 맏아들이시다. 이러한 예수님의 맏아들로서의 사역을 그의 대제사장으로서의 사역과 함께 고려한다면 히브리서의 메시지를 더욱 균형 있게 해석할 수 있다.

몸을 가지고 이루신 온전한 순종

예수님이 이루신 정결함에 대한 모핏의 이해도 논의 확장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는 클라완스의 견해를 따라 고대 유대교에서 의식적 부정함을 해결하기 위한 정결 제도와 죄나 도덕적 부정함에 대한 정결 제도가 각각 존재한다고 주장한다(pp. 169-174). 모핏은 예수님이 이루신 온전함은 정결이며(p. 182), 그 정결은 부정함을 입은 필멸의 몸이 부활의 생명을 가진 몸이 돼 이루신 의식적 정결이라고 주장한다. 죄가 없으신 예수님은 도덕적 정결은 필요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pp. 183-184). 

모핏은 의식적 부정함이 인간 육체의 필멸성으로부터 발생한다는 매코비의 의견을 인용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더 나아가 왜 필멸의 몸이 부정한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내면적 죄가 인간 육체의 필멸성을 초래했다면, 필멸성이 초래하는 부정함 또한 죄의 파생적 결과일 수 있다. 히브리서에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임재에 다가가는 것을 막는 부정함을 해결하셨다면 그 온전함은 불순종의 문제 해결과 떨어질 수 없는 문제일 것이다. 

히브리서 5:8-9은 예수님이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으며 그리하여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라 칭함을 받았음을 말한다. 인간과 똑같이 죽음의 두려움을 경험하는 육체를 입고 오셔서 광야와 같은 시험 속에서도 온전한 순종을 이루고 그리하여 필멸의 몸이 영원한 생명을 입은 부활의 몸이 돼 하나님 앞에 자신을 드렸다는 것이 히브리서에서 논의해야 할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의식적 정결을 이루신 예수님의 몸의 부활 승천과 더불어 그러한 결과를 이끌어 낸 도덕적 정결, 즉 몸을 가지고 이루신 온전한 순종이라는 과정도 함께 고찰한다면 더욱 균형 잡힌 이해가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