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교회가 세상에서 환영받지 못하고 무시당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독교 진리가 없어도 사람들이 그럭저럭 만족하며 살아가는 데 별 부족함을 못 느껴서일까? 기독교는 이미 오래전에 퇴색한 해묵은 종교의 이미지, 예술과 학문, 과학 문명이 발달하지 못했던 시대에나 사람들에게 위안거리였던 한물간 종교라는 이미지가 세속주의 시대정신에 밀려 새삼 급부상하기라도 한 탓일까? 만약 그렇다면 기독교 변증은 어쨌거나 이런 이유들이 다 기독교인이 세상 사람과 적실하게 소통하는 가운데 기독교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탓이라고 진단할 것이다.
기독교 내에서 핵심적으로 소통되는 테마나 언어들이 교회 바깥에서는 별나라 이야기처럼 점점 더 낯설게 느껴지는 것만 같다. 매스컴에 묘사된 부정적인 기독교인의 모습이나, 길거리에서 오다가다 만나는 투박한 전도자들로부터 주입된 특정 이미지만으로 기독교를 이해하는 이들도 의외로 많다. 기독교를 제대로 소개받지 못해 기독교를 무심하게 외면하는 이들이 실제로 많다는 의미다. 이대로라면 기독교 내에서조차 세상으로 이탈해 나가는 영혼이 점점 더 늘어날 심상찮은 분위기다.
‘기독교 변증 = 기독교 신앙에 대한 변호’라는 등식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막상 기독교 변증이란 무엇인지, 어떤 방법으로 기독교를 소개할지를 놓고는 막막해지기 쉽다. ‘기독교 변증이 곧 기독교’라는 말이 있을 만큼 변증의 범위와 내용 또한 워낙 광대하고, 특히 요즘 사람들에게 기독교의 어떤 부분을 어떻게 더 부각시켜서 전해야 효과적인지 정확한 맥을 잡기가 쉽지 않다.
저자는 ‘월드 클래스급’ 정리의 대가로 잘 알려졌다. 이 책을 통해 이 부분에 대해 궁금해하는 기독교인들에게 구체적인 해법을 제시한다. 오랫동안 쌓아온 기독교 변증 분야의 풍부한 지식으로 숙련된 통찰을 발휘해 기독교 변증의 ABC를 개괄적이지만 깊이 있고 순도 높게 한 권의 책에 오롯이 다 담아 냈다. 이 책은 저자가 옥스퍼드 기독교 변증 센터에서 2004년부터 2013년까지 기독교 변증을 주제로 강의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그래서 지역 교회 목회자가 ‘기독교 변증 강의안’을 만들고자 할 경우 꼭 들어가야 할 기독교 변증 강의 핵심 요소를 다섯 가지로 요약해서 제시하는 것으로 간략하게라도 이 책의 진미를 함께 맛보고자 한다.
기독교 변증 강의 교안의 주요 구성 요소
첫째, 기독교 변증이 무엇인가에 대해 정의한다. 기독교 변증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 주제를 최선의 방법으로 변호하고 설명하는 일이며, 그 주제들을 효과적이고 충실하게 더 넓은 세상과 소통하는 일에 초점을 맞추는 기독교 사상의 한 분야다. 기독교 변증은 그동안 증거주의, 전제주의, 합리적 변증, 경험적 변증학, 내러티브 변증의 다섯 가지 접근법을 활용해 왔다. 내러티브 변증은 기독교란 증명하고 수용해야만 하는 일련의 명제적 진술이 아니라 의미 있고 충만한 삶으로 이끄는 살아내야 할 이야기라는 사실을 강조함으로써 기독교를 여타의 세속적, 종교적 대안보다 삶의 현실에 더 잘 맞는 이야기로 제시하는 데 관심을 둔다(pp. 25-49).
둘째, 교회사적으로 시대마다 기독교 변증이 주로 다뤄 온 주제들을 개괄해 준다. 초대교회 시대의 기독교 변증은 기독교에 대해 이교도가 제기한 오해를 바로잡고, 유대교나 그리스 철학, 로마 시민 종교 등 기독교와 경쟁하던 사상 체계를 비판하는 데 초점을 뒀다. 7세기 이후 알라의 유일성을 강조한 이슬람이 기독교의 삼위일체 신론과 그리스도의 신성 교리에 대해 제기한 의문에 대답하기 위한 기독교 변증이 시도됐고, 유럽이 기독교화된 중세 시대에는 기독교 변증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약화됐다. 16세기 종교개혁기에는 가톨릭과 다른 특정 형태의 기독교를 옹호하는 교파적 변증의 한 형태가 개발됐다. 인간의 이성을 유일하게 신뢰할 수 있는 지식의 원천이라 믿었던 18세기 계몽주의 시대부터 이성주의에 맞서 기독교적 유신론 변증에 대한 관심이 증가됐다.
20세기 초반에는 교회의 권위 구조 밖에 존재하는 재능 있는 개별 변증가들이 등장했다. 영국 작가 G. K. 체스터턴이 상상력에 호소하는 변증 접근법을 계발한 후 그의 영향으로 도로시 세이어즈, C. S. 루이스, 프란시스 쉐퍼, 팀 켈러 같은 변증가들이 등장해 활동했고, 앨빈 플랜팅거, 리처드 스윈번, 윌리엄 레인 크레이그 같은 기독교 철학자들이 기독교 신앙과 유신론을 철학적으로 변호하는 방식의 변증을 시도했다. 세속주의와 자연과학의 결합으로 리처드 도킨스, 샘 해리스 같은 이들이 주도한 신무신론이 등장, 과학을 무기화하자 존 레녹스, 알리스터 맥그래스 등이 과학주의에 도전하는 변증 접근법을 발전시켰다(pp. 51-77).
셋째, 신앙의 접촉점을 통해 기독교와 인간의 보편적 상황을 연결할 방법을 안내한다. 신앙의 접촉점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심어 놓으신 직관으로서 인간이 하나님과 관계를 맺도록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됐다는 증거가 된다. 인간의 경험이나 직관이 그 자체를 넘어서 실재에 대한 더 큰 비전을 가리키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를 의미한다. 대표적인 접촉점으로 갈망의 감각, 세상의 아름다움, 질서정연한 자연, 경이로움을 느끼는 감각, 도덕적 의무의 감각, 실존적 불안과 소외를 들 수 있다. 기독교 변증은 인간의 문화와 경험에 이미 내재된 복음과 접촉점이 될 만한 것들을 찾아내고, 이런 것들을 기독교 신앙이 변혁적 영향력을 발휘하게 하는 데 활용하고자 한다(pp.181-213).
넷째, 기독교 변증의 대상인 청중을 현실성 있게 이해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한다. 변증은 무시간적인 것을 특정 시대의 언어로 제시한다. 상황이 다르면 다루는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한 청중에게 효과 있는 변증적 접근도 다른 청중에게는 잘 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변증가는 발코니에서 아래 거리를 내려다보는 관찰자의 관점이 아니라, 거리에서 삶의 실제 문제들에 직면해 해결점을 찾으려고 분투하는 참여자의 관점을 가져야 한다. 그러려면 청중의 언어를 배우고 신학의 모든 조각을 일상어로 번역해야 한다.
팀 켈러의 변증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구체적 청중의 열망, 두려움, 신앙에 대한 의심 등을 친숙하게 알았고, ‘합리성 주의 결핍 장애’가 있다 할 만큼 길고 연쇄적인 연역적 추론에 관심이 없는 요즘 청중은 논리와 개인적 호소가 섞인 것에 관심이 있음을 잘 파악했기 때문이다. 팀 켈러는 기독교의 진실성에 대한 강력한 증명을 시도하기보다 ‘감정지능’을 발휘하며, 경제적인 언어로 기독교 진리를 청중의 경험과 관심사에 연결하는 데 집중했다(pp. 243-279).
기독교에 대한 세상의 질문에 이렇게 답하라
다섯째, 기독교에 대해 요즘 사람들이 많이 제기하는 주요 질문에 표준적인 답을 제시한다. 기독교에 대한 다양한 질문은 기독교 변증이 답해야 할 이슈들을 탐구하는 데 유용하다. 이 책에 소개된 열 가지 문답 가운데 여기서는 여섯 가지 문답에 담긴 핵심 키워드를 나눠 본다.
질문1 신은 인간이 자신의 소원 성취를 투사한 존재일 뿐인가? 사람들은 직관이나 감정에 기초해서 결론을 내리고 나중에 그 신념들을 정당화하는 이유를 찾아낸다. 프로이트는 신이란 하늘의 아버지가 인간의 모든 필요를 돌봐 주기를 바라는 소원의 성취라고 주장한다. 마찬가지 논리와 근거로 프로이트와 다른 무신론자들은 그들이 싫어하는 아버지상으로부터 도망쳐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신의 존재를 부정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pp. 282-286).
질문2 종교는 폭력의 원인인가? 종교의 특성은 모든 정치 운동의 특징이기도 하다. 종교에 광신도가 존재하는 것처럼, 정치에도 존재한다. 문제는 광신주의이지 종교 자체가 아니다. 신무신론의 종교 비판에서 나타나는 어둡고 공격적인 어조는 광신주의가 종교를 옹호하는 사람들의 진영에만 국한되지 않을 수 있음을 암시한다(pp. 286-291).
질문3 고난의 문제에 대한 성경적인 해법은? 신정론(theodicy)은 유신론적 관점에서 세상 속 고난의 일관성과 합리성을 지적으로 변호하는 것이다. 고난의 존재는 아직 남아 있는 옛 질서의 일부일 뿐이다. 사람들이 찾는 것은 고통과의 의미 있는 씨름이며, 이를 통해 더 나은 사람이 돼 가는 것이다. 삶의 수수께끼나 고난 같은 변칙들은 존재의 문제보다는 이해의 문제로 봐야 한다. 즉 고난의 문제는 상황 자체보다 우리의 지각이나 이해의 한계에서 비롯된 것(고전 13:12)들이다(pp. 293-298).
질문4 이성은 과연 신의 자리를 찬탈했는가? 종교보다는 이성과 과학을 더 신뢰할 수 있는 권위로 받아들이는 시대에 이제 신적 계시는 더 이상 필요치 않다는 분위기다. 그러나 이성은 망상을 일으키고 생각을 제한하며 가두어 놓기도 한다. 만약 인간의 추리 과정에 결함이 존재한다면 이성 자체는 이를 포착할 수 없다. 인간 이성의 권위에 대한 합리적 방어는 궁극적으로 순환논리적이고 기생적이다. 자신의 결론을 가정으로 삼고 그것에 의존한다. 이성이 자신의 권위와 능력을 검증하는 데 사용될 수 없다(pp. 300-304).
질문5 과학과 종교는 양립할 수 없나? 세계가 어떻게 기능하는지 설명하는 과학과 의미나 가치에 대한 질문과 관련이 있는 종교는 서로 다른 형태의 지식이지만, 토론과 대화를 통해 서로를 풍부하게 할 수 있다. 주전자의 물이 왜 끓는지를 과학적으로 답변한다고 해서 차를 마시려는 욕구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다른 답변을 무효화하지 않는다. 근본적인 갈등은 과학과 기독교 사이에 있는 게 아니라 문화적 권위와 영향력을 놓고 벌이는 경쟁 가운데 교조적인 형이상학적 자연주의와 하나님에 대한 믿음 사이에 있다(pp. 316-322).
질문6 기적의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 자연법칙은 철학적으로 절대화된 개념이기보다는 지금까지 관찰된 것들을 요약하는 불완전한 귀납적 일반화로 정의된다. 특정한 일들이 항상 일어난다는 절대적 선언보다는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 확률 범위를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적은 자연에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해하는 자연에 반대되는 것이다. 기적은 정의상 자연의 일상적 과정을 중단시켜야 하지만, 그럼에도 어떤 더 깊은 수준에서 전체 실재의 하나 됨과 자체적 일관성을 반영한다(pp. 322-327).
지금 이곳에 필요한 기독교 변증
개인적으로 저자가 이 책에서 가장 강조하고 싶어 한다고 느낀 테마가 있다. 기독교는 실제 삶을 사는 것이지 단지 특정한 생각을 하는 정도에 머무는 진리 체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기독교는 추상적인 사고 체계가 아니라 살아 있는 역사적 실재다. 그래서 사람들이 기독교 신앙을 갖게 하는 데는 때로 논증보다 각자만의 증언 또는 간증이 더 중시된다. 그로 인해 비기독교인이 새로운 신념을 갖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역사적 실재에 실제로 참여해 삶의 변화를 경험하는 데까지 나아가는 믿음의 여정이 중요하다.
그러나 현재 한국 교회의 현실은 이 부분에서 무언가 중요한 동력을 상실한 것처럼 보인다. 기독교가 요즘 세상 사람들에게 실제 삶과 동떨어진 종교인 듯 여겨지고 있다. 개인적으로 필자 역시 기독교 진리가 정말 삶 그 자체이기에 어느 시대 누구에게나 절대 진리라는 사실을 온전히 드러내는 데 관심이 많다. 그런 차원에서 지금은 성경에 기록된 종말에 대한 예언을 재조명하고 본래 있어야 할 제자리로 복원시키는 작업이 특히 요긴하다고 본다.
인류사에서 지금만큼 기독교 변증에 마지막 때에 대한 성경 예언의 성취가 적실하게 강조돼야 할 때가 없었다. 이 책에서 저자 역시 시대적으로 때에 맞는 변증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우리는 너무도 자주 모더니즘적인 합리적 설득이 표준이라고 가정하지만, 실제로 설득의 방식은 종종 역사적 상황에 의해 형성된다”(p. 337).
한국 교회 역시 너무 늦기 전에 이 시대에 맞고 또 꼭 필요한 변증적 자원으로 보는 눈을 열어야 한다. 그래서 기독교 변증을 통해 기독교가 세상과 소통할 설득력을 갖추는 중대한 터닝 포인트를 놓치지 않는다면, 마지막 때 깨어 예수님의 재림을 예비하는 이들에게만 주어지는 영광스러운 복과 세상은 결코 맛볼 수 없는 큰 영적 부흥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