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와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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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2021년  06월호 영적 침체 회복을 위한 예배 영적 침체를 극복하는 목회

지난해 발생한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전 세계 사람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 바이러스의 강한 전염력은 사람들의 생활 패턴을 바꿔 놓았고, 사회적 행동 반경을 축소시켰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됨에 따라 경제 상황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으며, 이로 인한 실직, 채무 증가 등의 이유로 심리적 위축과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으며 작년 한 해 우울증 치료를 받은 사람이 100만 명을 돌파했다는 통계가 보고됐다.1 코로나 블루(corona blue)라는 신조어가 등장할 정도로 ‘우울한’ 감정이 온 세계를 뒤덮고 있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성도들의 삶 또한 팍팍하다. 교회의 심장이라고 불리며 성도들에게 힘을 부여하는 공적 예배가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에 따라 축소되면서 신앙생활의 활력을 잃고 영적 침체에 빠지는 경우들이 빈번하다. 온라인 예배와 가정 예배 지침 활용 등을 통해서 성도들의 신앙생활이 위축되지 않았고 코로나19 이전과 비교해도 별반 다르지 않다고 보고하는 교회들도 있으나, 현장에서 들려오는 목회자들과 교역자들의 생생한 증언은 교회와 성도들이 처한 영적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깨닫게 한다.

약 1년 반 정도 이어지는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 공적 예배와 모임이 위축되고, 진정한 교제(communion)가 상실되면서, 이것이 일종의 잘못된 신앙 형성을 야기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예배는 성도들을 영적으로 훈련시킨다. 다시 말하자면 공적 예배 속에서 성도들은 신앙의 훈련을 받는다. 다양한 예배의 요소들은 성도들의 마음속에 끊임없이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하며 그들의 변화를 촉구한다. 함께 참여한 다른 성도들과 함께 행하는 예전(liturgy)과 의식(ritual)들은 개인적 행함의 차원과는 또 다른 차원의 메시지를 불러일으키고 성도들에게 전달한다. 그러므로 공동 예배는 신앙을 형성할 뿐만 아니라 성숙시키는 형성적 기능(formative function)을 가진다.

본고는 교회에서 함께 드리는 공적 예배가 어떻게 참여자들을 훈련시키고 그들에게 영적인 힘과 활력을 공급하는지를 예전신학(liturgical studies)과 의례학(ritual studies) 차원에서 설명할 것이다. 특히 예배의 형성적인 힘이 영적 침체와 우울을 경험하는 신자들에게 어떻게 목양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지를 논증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근래 북미에서 우울한 성도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등장한 블루 크리스마스(blue christmas)예배를 소개하면서 영적 회복을 위한 예배 기획에 대한 아이디어들을 주고자 한다.

예배와 신앙 형성, 예배와 신앙 성숙

예배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이중 은혜(double grace)를 받는다. 그것은 칭의(justification)와 성화(sanctification)다.2 예배 참여를 통해 믿음이 시작되고, 매주 반복되는 예배에 참여하면서 점진적 성화를 경험한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예배의 현장에 실제 참여하는 것이다(bodily participation). 육체적 참여를 통해 신자는 공동체에 소속감(belonging)을 느끼게 되고, 함께 행하는 예전과 의례를 통해 신자로서의 정체성(christian identity)이 형성된다.3

이런 신앙 형성의 과정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 교회가 때때로 세상의 비난을 받기도 하고, 신자들조차도 교회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기도 한다. 그러나 신앙적 관점에서 볼 때, 새생명이 태어나고, 그들이 자라는 생장지(Sitz im Leben)가 된다는 차원에서 교회는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신자는 교회를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 교회의 예배는 교회를 생동감 있게 만들고 신자의 심장을 뛰게 하는 핵심 행위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예배는 신자의 영혼에 새 힘을 공급한다. 한 주간 세상을 살아가면서 신자들은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는다. 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매일같이 분투한다. 첨예한 경쟁은 사람들의 마음을 메마르게 만들기 마련이다. 성도들은 분주한 삶 속에서 때때로 하나님을 망각하기도 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내지 못하며, 죄에 무릎 꿇기도 한다.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도 상처를 주고받으며 분노와 좌절을 경험하기도 한다. 그러나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경험하고, 그 은혜로 이웃과의 관계 또한 회복해야 함을 깨닫는다. 그러므로 매주 반복되는 예배는 일종의 언약 갱신 축제다. 언약이라는 개념을 통해 우리를 약속으로 묶으신 신실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책임져 주시는 것처럼, 예배를 통해서 우리는 새롭게 되고 한 주간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4

신자들은 예배가 신앙을 형성하고, 신자를 성숙시키며, 넘어진 자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세상을 살아갈 용기를 주는 것임을 경험적으로 잘 안다. 타인의 간증을 들으면서, 또한 자신의 경험을 통해 공적 예배는 사회 속에서 경험하는 일반적인 모임과는 다른 차원의 것임을 암묵적으로 알게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예배는 영적 침체에 빠진 신자를 일으켜 세우고, 우울한 마음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부여할 수 있을까? 예전 신학과 의례 신학은 이것을 설명할 수 있는 학문적 근거를 제공한다.

예배의 요소, 순서 그리고 의미 형성

예배는 다양한 요소로 구성된다. 오랫동안 북미 예전학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루터교 예전학자인 고든 래스롭은 말씀과 성찬은 예배를 구성하는 중심 요소(Central Thing)이며, 중심 요소 전후에 기도, 찬양, 신앙고백, 죄의 고백과 사죄의 선언, 강복선언과 같은 요소들이 병치(juxtaposition)돼 형성적 효과(formative effect)를 불러온다고 설명한다.5

하나님의 말씀을 강설하는 설교가 예배의 핵심 요소임에 틀림없다. 설교를 통해 예배자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하나님이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고, 지금도 지켜 주시며 인도하시는지를 깨달으며 세상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그러나 설교만이 성도들의 마음속에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은 아니다.

때때로 성도들은 공예배 속의 참회의 기도와 사죄의 선언을 통해 자신의 심령을 억누르고 하나님과의 참된 교제를 방해하는 죄와 죄책의 문제를 해결받게 된다. 더불어 용서받은 자로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살겠다고 하는 새 힘을 공급받는다.

곡조 있는 기도로 불리기도 하는 찬송은 회중의 마음 문을 열어 영혼의 문제를 치유하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일으키며, 성령의 충만함을 느끼게 하는 중요한 방편이다. 온 회중이 함께 찬양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한 가족이며 한 몸임을 깨닫게 한다. 그리고 허다한 증인의 무리 속에 내가 포함돼 있음을 느끼게 한다.6

공예배 속의 다양한 기도 순서를 통해 교회는 성도 개인의 문제뿐만 아니라 서로를 위해, 더 나아가 온 세상을 위해 함께 기도하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왕과 제사장, 그리고 선지자적 사명을 감당하기를 요구하심을 깨닫게 된다. 무엇보다 개인적 신앙의 차원을 넘어서서 온 세계를 마음에 품으면서 내가 원하는 하나님의 복과 기도의 응답은 결국 세계를 섬기기 위함임을 깨닫게 된다.

초대교회부터 지금까지 말씀과 함께 예배를 구성하는 양축의 하나인 성찬은 성도들에게 중요한 은혜의 방편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우리를 위해 나눠 주신 몸과 피를 받으며, 주신 은혜를 기억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하나님 앞에서 함께 기뻐할 그날을 기대하게 된다. 더불어 성찬을 통해 우리는 자신을 “찬양과 감사의 살아 있는 희생 제물”로 드려야 함을 깨닫게 된다.7 즉 우리의 삶을 타인에게 내어 주기 위해 쪼개어져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성찬의 메시지는 신자들의 영적 생활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이 세상을 힘 있게 살아갈 수 있는 영적 동력을 제공한다.

때때로 예배의 요소들이 어떻게 배치되는가에 따라 성도들에게 다가오는 의미가 달라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존 칼뱅의 경우 목회 초기에 예배의 첫 부분에 십계명, 참회의 기도, 사죄의 선언을 배치했다. 이에 반해 마르틴 부처와 함께했던 스트라스부르 사역 이후 다시 제네바로 돌아와서 목회를 할 때는 참회의 기도, 사죄의 선언 이후에 십계명을 배치했다. 전자의 경우 십계명과 참회의 선언이 중첩되면서 십계명이 구원의 조건으로 성도들에게 무겁게 다가왔지만, 후자의 경우는 용서받은 성도가 감사한 마음으로 기쁘게 계명을 지키게 살겠다고 하는 고백의 의미로 다가오게 됐다. 무엇보다 칼뱅은 십계명을 노래로 부르는 목양적 지혜를 발휘했다. 즉 같은 예배의 요소라 할지라도 어떻게 배치되느냐에 따라서 의미가 달라지는 것이다.8
 
이는 매주 참여하는 각 교회의 예배 요소와 구조, 배치를 되돌아 보게 하며, 세심한 예배 기획의 필요성을 깨닫게 한다. 각 교파의 예배에는 각기 신학적 특징이 있다. 신학이 담긴 예배의 요소와 순서는 예배 행위를 통해 신자들의 마음속에 스며들어간다. 실천 속에 이론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마음속에 흘러 들어 가는 메시지는 예전과 의례의 행위를 통해 보다 강화될 수 있다. 예배 속 예전과 의례는 신자의 영성에 영향을 미친다.

예전과 의례의 힘

예배의 현장에는 무엇인가 일어나고 있다. 우리의 육안에는 보이지 않지만 삼위 하나님은 예배 가운데 일하시며, 참여자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하나님과 교제를 나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백성이 모인 공예배의 자리에는 삼위 하나님이 함께하신다. 하나님의 임재는 인간의 요청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 있다. 그러나 “두 세 사람이 모인 곳에 나도 함께하겠다”(마 18:20)라고 하나님이 약속하셨기에, 회중은 신실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며 더욱더 친밀히 하나님 앞으로 나아간다.9

예배 중에 참여자는 여러 가지 예전과 의례를 행한다. 형식이 없는 예배는 없다. 예배학적으로 가장 비예전적이라고 평가받는 퀘이커 교파의 예배에도 예전과 의례는 존재한다. 무형식도 일종의 형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전과 의례는 단순히 반복적이고 무의미한 인간의 행위가 아니다. 인간의 행동에는 의미가 담겨 있다. 행동을 통해서 사람들은 자신의 내면의 생각과 감정을 표출하며, 동시에 그 행동은 사람의 내면을 형상하는 힘을 지닌다. 음성 언어만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몸짓, 행동, 표정, 시선 등 다양한 방법으로 의사소통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예배를 논할 때는 사회학적인 접근 또한 필요하다. 이것이 예배학 분과가 다루는 학문으로서의 예배학이 타 분과(예를 들면 조직신학, 역사신학에서 예배학을 다루는 방법)에서 예배의 문제를 다루는 것과 차별화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예배 속 다양한 의례는 인간의 파토스(human pathos)와 신적 에토스(divine ethos)를 연결하는 중요한 매개체가 된다. 물론 타종교에도 의례는 존재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기독교적 의례로 만드는가? 그것은 바로 그 속에 담긴 내용이다.10 그러므로 역사적으로 교회는 자신들이 생각하는 성경적 근거에 맞춘 예배 의식들을 발전시켜 왔다. 예전과 의례들은 당대의 문화적 요소들을 반영하기도 했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예배 속에서 다양한 의례들이 생성되기도, 동시에 사라지기도 했다.

무엇보다 예전과 의례의 특징은 이것이 공적(public)이라는 점이다. 예전과 의례는 공동체의 모임 속에서 행해지는 것이며, 이것이 공동체의 정체성을 형성한다. 공동체의 정체성이 개인의 종교적 정체성에 영향을 미친다.11 함께 의례를 행하는 것을 통해 참여자의 종교적 감성은 활성화되기도 하고, 때로는 위로를 받기도 하며, 함께 기쁨과 슬픔을 나누기도 한다. 

예를 들어 보자. 예배 가운데 때때로 우리는 어려움을 당한 자들을 위해 통성으로 기도한다. 동일한 주제를 두고 기도하는 가운데, 사람들은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느낄 뿐 아니라, 연민의 감정을 공유한다. 공동체가 함께 찬양하며 박수를 치는 가운데 참여자의 마음은 각성되고, 기쁨의 감정을 나눈다. 때때로 하나님께 탄원하는 행위(lament)를 통해서 참여자들은 자신의 아픔과 내면의 고통을 하나님께 토로한다. 참회의 기도와 사죄의 선언을 통해서 개인의 상처 입은 양심은 하나님의 용서를 깨닫고 우울의 늪을 헤치고 나오는 힘을 얻게 된다. 이런 행위는 치유 효과를 가진다. 심리적 우울과 아픔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다. 이것은 어느 특정한 행위의 결과가 아니다. 메시지와 찬양, 기도, 참회의 기도와 사죄의 선언, 하나님 복의 선언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마치 거미가 여러 번의 행위를 통해 복잡한 거미줄을 쳐나가듯, 다양한 예배의 요소와 신자의 행동은 의미의 그물을 쳐나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배를 드리지만, 예배가 우리를 형성한다. 이런 형성적인 힘을 가진 예배는 세심히 기획해야 한다. 왜냐하면 설교 한 번으로 성도가 변하는 것이 아니라, 일관성 있게 배치된 예배의 다양한 요소가 지속적으로 성도들의 마음 문을 두드리면서 변화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사례 연구: 영적 침체 회복을 위한 예배 기획 

최근 북미에서 새롭게 시행되는 예배가 있다. 그것은 블루 크리스마스(blue christmas)다. 국내에는 아직 소개되지 않은 것 같다. 그만큼 생소한 예배다. 미국의 감리교, 성공회, 루터교, 장로교회 등에서 서서히 관심을 받고 있다.12

보통 크리스마스 시즌은 기쁨과 기대가 넘치는 시간이다. 대림절에서 시작돼 크리스마스까지 이어지는 기간은 교회뿐만 아니라 온 세상이 함께 기뻐하는 시간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기뻐하는 가운데서도 슬픔에 잠긴 사람들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내며 상실감에 사로잡힌 사람들, 심한 질병에 걸려 영육간의 침체를 경험하는 사람들, 실직과 경제 문제와 가정의 어려움으로 심각한 위기에 처한 사람들. 블루 크리스마스는 이런 사람들이 함께 모여 솔직하게 슬픔을 나누고 서로를 격려하며 희망의 약속을 붙드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힘든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이 억지로 기쁜 표정을 짓고, 기쁜 찬송을 부른다 할지라도 인간 내면의 깊은 슬픔과 상실감, 고독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시편에는 삶 가운데 일어나는 다양한 문제들에 대한 성도의 솔직한 감정들이 잘 나타나 있다. 우리는 때때로 탄식(lament)하며 하나님께 부르짖는 가운데 내면을 솔직히 드러내고, 상한 심령이 치유받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13 이런 차원에서 블루 크리스마스는 참여자들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전달할 뿐 아니라, 하나님 앞에 자신들의 상황을 솔직하게 토로하며 회복과 격려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 예배는 확정된 형식이 있지 않기에, 교단의 신학과 교회의 상황을 고려하고 개교회의 음악적 역량에 따라 다양한 패턴으로 예배 기획을 할 수 있다. 기획 포인트는 성도들도 세상의 삶 속에서 우울과 슬픔에 빠질 수 있음을 인정하고 공감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의 만져 주심과 은혜로 희망을 가질 수 있음을 핵심 주제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 주제를 근간으로 기악 연주, 회중 찬송, 회복을 위한 기도, 강복 선언 등이 일관성을 띠면서 이어져야 할 것이다.14

무엇보다 일방적인 전달이 아닌 청중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입술을 열 수 있도록 세심히 예배를 기획해야 한다. 때로는 숙련된 연주가가 연주를 할 수 있지만, 의미 있는 가사를 직접 입으로 고백하는 회중 찬송의 시간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음악 속에서 자신과 타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적절함이 필요하다. 또한 합심으로 기도하는 시간과 아울러 자신을 돌아보고 하나님께 고요히 나아갈 수 있는 기도의 패턴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잘 정리된 기도의 언어를 사회자와 회중이 번갈아 읽음을 통해서 신학이 담긴 깊이 있는 기도문을 준비해야 한다. 회중이 탄식하고, 고요함 속에서 묵상하며,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고자 하는 시간도 가져야 한다. 

나가면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가운데 신앙 여정은 늘 순탄하지만은 않다. 때때로 신앙이 게을러지기도 하고 심령이 위축되기도 하며, 영혼의 어두운 밤을 경험하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배를 통해 우리를 만나 주신다. 

매주 반복되는 예배는 성도들의 신앙의 리듬을 형성하며 새로운 생명과 활력을 공급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예배하는 존재(homo adorans)로 만드셨기 때문이다. 예배의 현장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예배 속에서 하나님과의 교제 가운데 우리의 존재의 의미와 인간됨을 확인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교회의 예배가 위축되지 않도록, 모이고자 하는 마음 자체를 폄하하지 말아야 한다.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는 위로와 격려가 필요하다. 극심한 영적 침체를 겪는 성도들이 매주 교회의 예배 속에서 충만한 은혜와 동기 부여를 받을 수 있도록 말씀 준비뿐 아니라, 예배 전체를 세심히 기획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매주 예배를 준비하고 수고하는 모든 분들에게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함께하길 빈다. 


- 주
1)    https://www.medigatenews.com/news/1113112745
2)    Todd Billings, Calvin, Participation, and the Gifts(Oxford University Press, 2007), 12. 
3)    Paul Connerton, How Societies Remember(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9), 4-5. 
4)    John D. Witvliet, Worship Seeking Understanding(Baker, 2003), pp. 26-30. 
5)    Gordon W. Lathrop, Holy Things: A Liturgical Theology(Fortress Press, 1998), pp. 51-52. 
6)    Don E. Saliers, Music and Theology(Abingdon Press, 2007), pp. 7-8.
7)    Don E. Saliers, Worship and Spirituality(OSL Publication, 1996), p. 66.
8)    G.I. van de Poll, Martin Bucer’s Liturgical Idea(Van Gorcum, 1954), pp. 113-114. 
9)    문화랑, 《예배학 지도 그리기》(이레서원, 2020), pp. 42-43. 
10)    이것은 Frank Senn과 게렛신학교에서 예배의 역사(History of Christian Worship) 시간에 필자와 나눴던 대화 내용이다. 
11)    Peter Atkins, Memory and Liturgy: The Place of Memory in the Composition and Practice of Liturgy(VT: Ashgate, 2004), 69-70. 
12)    블루 크리스마스는 크리스마스 당일 예배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대림절과 크리스마스 사이의 특정한 날을 택해 예배를 드린다. 대략 12월 21을 전후로 가장 밤이 긴 날을 잡기도 한다. 왜냐하면 가장 긴 밤은 인생의 가장 힘든 시기지만 내일부터는 희망의 빛이 길어지는 희망을 의미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13)    https://reformedjournal.com/liturgy-and-lament/
14)    자세한 예배 순서와 내용은 다음의 예를 참조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https://www.umcdiscipleship.org/resources/blue-christmas-a-service-of-reflection-for-the-longest-night

문화랑 고려신학대학원 예배학 교수. 게렛복음주의신학대학원(Ph.D.). 저서로 《예배학 지도 그리기》, 《미래 교회교육 지도 그리기》 등이 있다. 필자의 다른기사 keyboard_arrow_r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