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스런 언어, 혼란스런 생각

때로 그리스도인의 언어는 매우 혼란스럽다. 일상적 현실의 언어와 감각을 넘어선 비유적·상징적 언어가 쉽게 뒤섞인다. 모든 게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고선 돌아서서 서로 애 많이 썼다고, 참 잘했다고 칭찬을 늘어놓는다. 새 생명을 얻었다고 말하다가, 금방 내가 그리스도와 더불어 죽었다는 진지한 고백을 내놓는다. 열심히 살아가자고 토닥거리지만, 동시에 날마다 죽는다고 읊조리기도 한다. 물론 그때그때 말하고 싶은 바를 나타내는 비유적 표현이니, 이런 식의 뒤엉킴은 어느 정도 자연스럽다. 하지만 적나라한 의미를 숨기고 싶을 때가 아니라면, 모호함이 득이 되는 경우는 별로 없다.

표현이 선명하지 않다는 것은 그 표현이 담아내는 생각 자체가 분명하지 않다는 말과 같다. 우리의 사고 자체가 언어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감각적 구체성을 보장할 수 없는 영적 차원이라면 일상적이고 직설적인 언어의 범위를 넘어갈 때가 많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적 언어는 자주 문자적 의미와 비유적 의미의 경계를 오간다. 하지만 그런 우리들에게도 표현의 모호함이나 혼란스러움이 미덕인 경우는 많지 않다. 타인과의 소통을 가능케 하는 공적 언어가 되려면, 비일상적·비유적 의미를 담아낼 때도 그 나름의 일관성은 있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들에게도 언어의 엉킴은 자주 우리 생각의 꼬임 혹은 생각의 흐림을 반영한다. 생각 자체를 막연하게, 혹은 혼란스럽게 두자면 어쩔 수 없지만, 보다 선명한 생각을 하려는 이들에게는 오히려 방해거리가 될 수 있는 현상들이다.

권위를 실어 주는 함께하심

그중 하나가 그리스도의 임재(臨在)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스도인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신다고 믿는다. 때로 그윽한 분위기 속에서 그분의 함께하심이 느껴진다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또한 우리는 함께해 달라고 주님께 기도하곤 한다. 평소에는 꼭 그러실 필요가 없는 양, 유난히 힘들거나 중요한 상황에서는 반드시 우리와 함께해 주셔야 한다고 매달리는 것이다. 마치 부탁하지 않으면 우리와 함께하시지 않을 것처럼 말이다. 또한 모일 때마다 감격스런 마음으로 마태복음 18장의 말씀을 암송하기도 한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 18:20). 일견 멋진 말씀 같지만, 좀 뜬금없기도 하다. 두세 사람이 모이건 나 혼자 있건, 어차피 주님은 나와 함께하시는 것 아닌가? 어차피 함께하신다고 고백하는 마당에, 굳이 두세 사람이 모여야 함께하신다고 말하는 것은 좀 우습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따지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냥 늘 함께하신다고 믿으면서도 특별히 함께해 달라고 부탁하고, 또 혼자서도 주님과 함께 있는 것이라 믿으면서도, 두세 사람이 모인 곳에 함께하신다는 말씀에 은혜를 받기도 한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고 넘어가도 되지만, 어딘가 뒤엉킨 대목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사실 이 대목은 보다 깔끔하게 해결할 수 있다. 마태복음 18장의 약속은 흔히 말하는 임재의 약속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구절만 떼어 읽으니 그냥 “같이 있어 줄게” 하는 약속처럼 들리지만, 실제 그 말씀의 의도는 보다 구체적이다. 문제가 되는 이 구절은 교회 내에 누군가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이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관한 가르침 중에 등장한다(18:15-20). 누군가 잘못한 것이 드러났을 때, 우선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말고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충고하는 것이 원칙이다. 충고를 듣고 회개하면 잃을 뻔한 형제를 다시 얻은 셈이 된다. 그때는 그 사람의 잘못을 굳이 남들에게 알릴 이유가 없다(15절). 

하지만 일이 이렇게 깔끔한 경우는 드물다. 소위 ‘빼도 박도 못할’ 때까지 발뺌하며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럴 때는 한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서 다시 충고한다. 나 말고 한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니 자연 “두세 사람”이라는 수가 나온다. 그래서 이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는 것이다(16절). 만약 여기서 그 사람이 잘못을 인정하고 회개하면, 이것으로 상황은 종료된다. 일을 더 크게 벌일 필요가 없다. 하지만 대개는 끝까지 버틴다. 그럴 경우에는 “교회에 말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전체 교회 앞에서 공개적으로 그 사람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다. 만약 교회의 권고에 승복해 잘못을 인정하면, 역시 그 사람은 공동체의 일원으로 남을 수 있다. 하지만 만약 교회의 권고마저 거부한다면 (정말 나쁜 의미로) “이방인과 세리처럼 간주하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다. 당시 통념상 이방인과 세리는 죄인의 대표적 범주였고, 경건한 사람은 결코 어울려서는 안 될 부류의 사람으로 여겨졌다. 그러니까 ‘상종하지 못할 사람’으로 여기라는 말이니, 결국 교회에서 쫓아내라는 말씀이다. 공동체는 거룩해야 한다. 따라서 죄를 지은 사람이 끝내 잘못을 인정하고 회개하지 않으면, 그 사람을 교회 밖으로 쫓아낼 수밖에 없다.

바로 이 지점에서 예수님은 교회의 조치에 하늘의 권위를 부여하신다. 어떤 상황에서든 ‘너희’ 곧 이 땅에 존재하는 교회 공동체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다. 또 지상의 교회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문맥상 매고 푼다는 말의 뜻은 분명해 보인다. 교회가 회개하지 않은 사람을 심판하고 출교시키거나, 회개하는 신자를 용서하고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교회가 주님의 말씀을 따라 결정을 내리면, 그건 바로 하늘의 결정과 같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는 도입구는 이 말씀의 무게를 느끼게 한다. 이 땅에 존재하는 사람의 공동체지만,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교회라는 점에서, 교회는 주님의 권위를 품고 있다. 교회의 결정이 곧 하늘에 계신 주님의 결정이 되는 것이다.

물론 교회 자체가 그런 천상의 권위를 내재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주님의 말씀을 따라 이 땅에서 교회 중 ‘두 사람’의 마음을 모아 요청하면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그 요구하는 바가 이루어지게 하실 것이다(19절). 본문은 이 사실을 매우 강조한다.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는 도입구도 그렇고, ‘무엇이든지’ 하는 수식어 역시 마찬가지다. 사실상 교회가 이 땅에서 정당하게 요청하는 바가 그대로 하늘 아버지의 뜻이 되는 셈이다. 그러니까 이 말씀은 일반적인 ‘기도 응답의 원리’에 관한 가르침이 아니다. 기도란 ‘두 사람’이 아니라 나 혼자 드려도 들어주신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떠벌리지 말고 혼자 조용히 골방에 숨어 기도하라 가르치시지 않았던가. 여기 나오는 ‘두 사람’ 역시, 문맥에서 분명해지는 것처럼, 잘못한 신자를 꾸짖고 그 일의 증인으로 모인 ‘두(세) 사람’이다. 따라서 여기서의 기도는 잘못한 신자의 심판과 용서와 관련해 증인들과 교회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다. 그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주신다는 뜻이니, 결국 매고 푸는 것에 관한 바로 앞 절의 말씀과 같다. 교회가 기도하고 결정하는 바가 그대로 하나님의 결정이 된다는 이야기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임재에 관한 말씀이 등장한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20절). ‘두세 사람’이라는 수가 알려 주는 것처럼, 이 역시 일반적 상황의 이야기가 아니라 잘못한 신자를 처리하는 특수한 상황을 염두에 둔 말씀이다. ‘두세 사람’의 증인이 모여 결정을 내리는 자리, 그러니까 제대로 된 절차를 따라 교회가 마음을 모아 결정을 내리는 자리에는 주님이 함께하신다. 주님이 직접 그 자리에 계셔 결정한 것과 같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이 말씀 역시 일반적 의미에서 ‘함께하심’에 관한 말씀이 아니다. 물리적 의미에서의 함께하심에 관한 말씀은 더더욱 아니다. 

문맥상 이 말씀은 교회의 결정이 주님의 결정과 같다는 사실, 곧 지상의 교회에 부여되는 주님의 천상적 권위에 관한 말씀이다. 일상적 의미의 임재라면, 굳이 두세 사람을 거론할 필요가 없다. 혼자건 두세 사람이건 주님의 함께하심이 사람의 수에 좌우될 이유는 없으니 말이다. 문맥을 잘 살피면, ‘함께 있다’ 하신 말씀이 물리적·정신적 임재에 관한 약속이 아니라 교회의 권위에 관한 말씀임을 알 수 있다.

함께 계신 주님? 아직 오셔야 할 주님?

그리스도의 함께하심에 대한 우리의 고백을 그분의 다시 오심에 관한 우리의 희망과 나란히 놓으면 여기서도 생각의 혼란이 생긴다. 우리는 정말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고 믿는다. 대부분 신자들이 반가워하는 고백 중 하나다. 그러면서 또 주님이 다시 오시기를 기다린다고 말한다. 주님이 아직 오시지 않았으며, 그래서 아직은 우리와 함께 계시지 않는다는 생각을 전제한 기다림이다. 이미 와 있는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릴 사람은 없을 것이니 말이다. 

이 부분에 대해 질문을 던지면, 대부분의 신자들은 어색한 웃음을 보이며 상황을 넘기려 든다. 그러다 집요하게 설명을 요구하면 당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금 우리와 함께하시는 주님에 대한 고백과 다시 오실 주님에 대한 기다림을 함께 생각해 본 적이 없고, 그래서 이 두 ‘신념’ 사이에서 생겨나는 모순의 가능성을 찬찬히 살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자주 등장하는 대답은 ‘몸으로는 안 계시지만, 영으로는 함께하신다’라는 표현이다. 제일 무난한 답변이지만, 모호하기는 여전하다. 이런 상황이라면 우리는 주님이 계신다고 생각하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안 계신다고 생각하고 살아야 하는가?

물론 대부분의 신자들은 주님이 자신과 함께하신다고 믿는다. 그윽한 분위기 속에서 주님의 임재를 ‘느끼고’ 싶어 하는 사람도 많다. 할 수만 있다면, 느껴지지 않는 주님의 임재를 감각적으로 확인하고 싶다는 바람일 것이다. 이런 열망이 신앙의 견실함을 보여 주는 모습의 하나라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영으로’ 함께하시는 그리스도의 임재가 과연 그런 것일까? 운이 좋다면 거의 감각적 체험으로 번역될 수 있을 만한, 유사-물리적 현실 같은 것일까? 

이 대목에서 재미있는 것은 매우 현실적이고 적나라한 바울의 표현이다. 빌립보서에서 바울은 “이 세상을 떠나는” 것, 곧 자신의 지상적 삶이 이대로 끝나는 것이 개인적 바람이라고 토로한다. 물론 그런 바람의 진짜 속내는 몸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몸을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1:23) 것이다. 이런 희망의 이면에는 지금 ‘육신으로’ 살아가는 동안에는 주님과 함께 있지 않다는 안타까움이 전제되어 있다. 하지만 성도들을 생각하면 그가 ‘남아서’ 그들 곁에 머무는 것이 유익하다(1:24-25). 그래서 바울은 이 두 가지 상충된 바람 사이에서 오락가락한다. 당장이라도 세상을 떠나 주님과 함께하고 싶지만, 아직 섬겨야 할 성도들이 있기에 주님의 뜻 안에서 자신의 사적 희망을 유예하는 것이다.

고린도후서의 표현은 보다 적나라하다. 자신의 사도적 삶을 돌아보며 바울은 현재의 “지상적 천막”이 허물어지고 사람의 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마련하신 하늘의 집을 덧입고 싶다고 말한다(5:1-4). 이것이 간절한 소망이 되는 것은 “우리가 이 몸 안에 사는 동안에는 주님과 따로 떨어져 살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5:6). 그렇다. 우리는 지금 지상적 육체를 갖고 살아가며, 그래서 그리스도와는 떨어져 따로 살고 있다. 여기서 바울이 묘사하는 상황은 그리스도의 임재가 아니라 부재다. 이 부재는 우리가 이 지상적 몸을 벗어나는 날, 하나님께서 마련해 주실 부활의 몸을 입게 되는 날 끝날 것이다. 당연히 “이 몸을 떠나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더 낫다”(5:8).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우리는 주님과 함께할 소망을 품고 부재의 시간을 살아간다. 그래서 현재의 삶이 더 소중해진다. 

언젠가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설 것이며, 좋은 결과든 나쁜결과든, 이 현재의 몸으로 행한 일에 따라 되갚음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5:10). 그래서 우리는 이 몸에 머물러 살든지, 이 몸을 떠나 주님과 함께 있든지, 오로지 그리스도만을 기쁘게 하려고 한다(5:9). 지금 눈에 보이는 현실에 기반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장차 이 몸과 세상을 떠나 주님과 함께 있을 것을 기대하며 그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다(5:7).

주님과 떨어져 있다는 바울의 단도직입적인 고백은 그리스도의 임재에 관한 우리의 끈끈한 고백을 곱씹게 만든다. ‘주님 안에서’와 같은 표현을 누구보다 많이 사용하는 바울이지만, 그는 현재의 삶이 그리스도 부재의 삶이며, 그의 ‘임재’를 기다리는 삶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행보는 더욱 신중하다. 고대하는 그리스도와의 만남은 심판의 만남이 될 것이며, 현재의 삶이 가치 있는 것이라야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빌 3:10-14). 바울의 삶은 주님의 임재를 느끼거나 그 임재를 확신하며 만족하는 삶이 아니라, 주님의 부재를 뼈아프게 느끼며 그의 임재를 사모했던 삶이었다. 바울의 행보는 바로 이 소망이 만들어 내는 긴장으로 가득 차 있었다.

부재의 시간을 위해

신약성경은 기다림의 책이다. 그리스도를 만났던 교회가 그분의 다시 오심을 고대하는 가운데 만들어 낸 신앙의 기록들이다. 따라서 신약의 모든 이야기 속에는 아직은 계시지 않는 그리스도에 대한 아쉬움, 그분의 임재가 실현되기를 고대하는 기다림이 잔잔하지만 지속적인 배경음악으로 깔린다. 이런 부재와 기다림의 분위기는 심지어 ‘역사적 예수’에 관한 복음서의 기록들에서도 감지된다.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주님을 간절히 기다리던 교회가 그 주님을 회상하며 만들어 낸 기록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가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대목이 요한복음의 고별강화다(13-16장). 고별강화(告別講話, farewell discourse)라는 표현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여기 담긴 예수의 행적과 가르침은 애초부터 떠남과 헤어짐을 의식하고 이루어진, 일종의 유언(testament)들이다. 예수는 그가 아버지에게서 파송되어 왔다가 이제 다시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되었다는 사실을 감지하셨다(13:1). 그리고 나름의 방식으로 그 떠남을 준비하며, 자신의 귀환 이후 이 땅에 머물 제자들을 위해 마지막 유훈을 내리신다. 그러니까 여기서 예수님은 자신이 떠난 이후, 부재의 삶을 살아갈 제자들을 염두에 두고 가장 요긴한 가르침을 남기신 것이다.

부재의 틈을 극복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멀리 떨어진 연인들은 대개 함께 있었던 시간을 추억하며 그 외로운 틈을 메운다. 물론 함께 있을 미래를 꿈꾸기도 한다. 함께 있었던 기억과 함께할 소망을 뒤섞어 지금 부재의 아픔을 극복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함께 있고 싶은 서로의 열망이 지금 함께 있다는 착각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군대 간 남자 친구를 아무리 사랑해도, 그 친구가 지금 내 곁에 있다고 믿을 수는 없다. 만약 강원도 전방에 있을 그 친구가 정말 지금 내 곁에 있다는 느낌이 든다면, 늦기 전에 병원을 찾는 편이 좋을 것이다. 오히려 건강한 사람들이라면 현재 부재의 현실을 담담히 받아들인다. 그리고 다시 만날 시간을 준비할 것이다.

요한복음도 마찬가지다. 그리스도와의 관계가 초월의 언어로 채색되는 경우가 적지 않지만, 그 초월적 언어는 결코 눈앞의 현실을 가리기 위한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와 신자들의 관계를 여러 가지로 묘사할 수 있지만, 복음서의 저자는 마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 것처럼 말하지도, 아직 오시지 않은 그리스도의 부재를 감추지도 않는다. 곧 다시 만날 것이라고 거듭 다독거리고, ‘또 다른 보혜사’가 오실 것이라고 약속하지만, 현실적인 의미에서 그들과 계속 같이 있을 것이라는 약속은 결코 주어지지 않는다(14:1-3, 19-20). 보혜사의 오심 역시 함께 계시던 그리스도를 기억하게 하며, 그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한 것이지, 계시지 않는 그리스도의 임재를 현실로 매개하려는 것이 아니다(14:16-17, 26; 15:26; 16:7-11, 13-14). 그리스도가 제자들을 아예 ‘고아처럼 버리는’ 것은 아니지만(14:18), 당면한 헤어짐이 주는 불안과 긴장은 피할 수 없다(16:4-6). ‘두려워하지 말라’라는 주님의 말씀이 바로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둔 것이다(14:27; 16:19-33).

그렇다. 요한복음의 저자는 주님의 임재에 대한 신비적 체험이나 초월의 언어로 부재의 시간을 가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 부재의 아픔과 두려움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이를 미래의 임재와 보혜사의 도우심에 관한 약속으로 이어간다. 그래서 부재의 안타까움으로 채색된 오늘의 현실은 약속된 임재를 향한 준비가 되고, 또한 그 약속을 현실로 만들어가는 과정이 된다. 그리스도의 임재에 대한 기대 속에서, 신자들의 눈길은 지금 우리들에게 주어진 현재로 다시 모아진다. 바로 이 현재가 미래로 가는 다리임을 알기 때문이다. 요한복음에서 이 주제는 사랑에 관한 주님의 가르침 속에서 매우 인상적으로 드러난다.

계시지 않은 주님 안에 머물기

제자들은 주님을 사랑한다. 주께서 그들을 사랑하신 만큼은 아니겠지만, 그들 역시 주님을 사랑하고 따랐을 것이다. 주님이 떠나신다고 그 사랑이 멈추는 것은 아니다. 부재의 시간에도 주님을 향한 그들의 사랑은 지속된다. 하지만 사랑이 그저 아련한 마음의 울림이 아니라면, 몸으로 함께하지 않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 가능한가? 주님이 계시지 않는 부재의 시간에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주님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일까? 요한복음이 이 물음에 대해 제시하는 답변은 한마디로 ‘지금 우리와 함께 있는 형제를 사랑함으로써’다. 형제 사랑이 주님과의 관계 자체는 아닐지 모르지만, 적어도 부재의 시간 동안에 형제 사랑은 계시지 않는 주님과의 관계를 이어가는 유일한 현실적 끈이다. 신비적 방식으로 임재를 재현하는 대신, 실제 우리와 함께하는 공동체적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주님을 향한 사랑의 관계를 이어간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가장 인상적인 본문이 요한복음 15장의 포도나무 이야기다. 오래전 글에서 간략히 다룬 적이 있지만(〈목회와신학〉 2014년 5월호), 다시 한 번 되새겨보기로 하자. 예수님은 포도나무이고 우리는 가지다.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으면 당연히 열매는 맺는 법이지만, 인생이 언제나 그렇게 깔끔하지는 않다. 본문은 바로 그런 터무니없는 상황에서 출발한다. 분명 주님께(“내 안에”) 붙어 있지만,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어떤 이유로든 제대로 붙어 있지 못했던 셈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은 손에 가위를 든 농부에게서 출발한다(1절). 그런 무용지물을 잘라 불에 던지는 심판의 하나님이시다. 물론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잘 맺도록 다듬어 주실 것이다(2절). 이렇게 주님 안에 있지만,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가 있다. 그런데 예수님은 세 절에 걸쳐 “내 안에 있어야 열매를 맺는다”라는 사실을 거듭 강조하신다(3, 4, 5절). 그러니까 주님 안에 있으면서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는 실질적으로 주님 안에 있지 않다는 이야기다. 2절에서 “무릇 내게 붙어 있어…” 하고 시작했던 말은 결국 겉으로만 붙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이었던 셈이다.

그렇다면 결정적 물음은 이것이다.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방식으로 주님 안에 있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이에 대한 답변은 본문이 진행되면서 차근차근 주어진다. 우선 예수님은 관계의 상호성을 부각시키신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어야 한다는 것, 그러니까 우리가 주님 안에(“내 안에”) 있어야 한다는 것은 서로가 서로 안에 머무는 상태를 의미한다. “내 안에 머물러라. 그러면 나도 너희들 안에 머물겠다”(4절). 포도나무와 가지가 서로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머무는” 상태가 열매를 많이 맺는 상태다(5절). 열매를 맺지 못해 밖에 버려지고 불에 태워지는 것은 결국 이런 상호적 내재가 구현되지 못한 가지들의 이야기다(6절). 

하지만 주님과 제자들이 서로의 ‘안에 머문다’라는 말은 여전히 모호하다. 구체적으로 우리가 주님 안에, 그리고 주님이 우리 안에 머문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그냥 그렇다고 생각하고 믿기만 하면 되는 일인가? 그렇다면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경우는 왜 생기는 것일까? 그 절반의 대답이 7절에 나온다. 상호적 내주의 관계에서, 주님이 우리 안에 머무신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주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머문다는 것을 의미한다. “너희가 내 안에 머물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물면…”(7절). 

고별강화의 맥락에서, 주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머문다는 말의 의미는 알아채기 어렵지 않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후 주님이 줄곧 강조해 오신 말씀의 핵심은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를 사랑하라는 말씀이다. 바로 이 형제 사랑이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표시가 될 것이다(13:34-35). 바로 이 형제 사랑에 관한 주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머물 때, 우리와 주님 사이에 참된 생산적 관계가 맺어진다. 물론 주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머문다는 말은 그 말씀이 우리 속에 들어와 우리의 삶을 인도한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결국 우리가 주님의 말씀대로 서로 사랑하는 삶을 실천한다는 뜻이다. 바로 이것이 주님이 우리 안에 머무신다는 표현의 구체적 의미다.

우리가 주님 안에 머문다는 말 역시 보다 구체적 의미를 가진 것으로 드러난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자신을 사랑하셨던 바로 그 사랑으로 제자들을 사랑하셨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바로 이 사랑 안에 머물라고 말씀하신다. 바로 이것이 주님 안에 머문다는 말의 구체적 의미다. 곧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보여 주신 바로 그 사랑 안에 머문다는 뜻이다(9절). 하지만 여전히 물음이 생긴다. 구체적으로, 우리가 예수의 사랑 안에 머문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우리에게 주신 사랑을 마음으로 음미하며 감사하면 되는 것인가? 이에 대한 답변 역시 바로 주어진다. 바로 예수님 자신의 모범에서 도출되는 답변이다. 

세상의 구원을 위한 아버지의 뜻을 품고 이 땅에 오신 예수는 그 아버지의 계명을 철저히 지키셨고, 이 순종을 통해 아버지의 사랑에 머무셨다. 바로 이것이 해답이다. 예수께서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머무셨던 것처럼, 제자들 역시 그리스도의 계명을 지킬 때 그의 사랑 안에 머물게 된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머문다는 것은 한 마디로 그의 계명을 지킨다는 것이다(10절). 앞에 나온 그의 ‘말씀’과 마찬가지로, 그의 ‘계명’ 역시 그 내용이 분명하다. 서로 사랑하라는 바로 그 계명이다.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고 결국 자신의 목숨을 내어 주며 제자들을 사랑하셨던 것처럼, 그렇게 서로의 발을 씻기며 서로를 사랑하라는 계명이다. 혹시 까먹었을까 봐 주님은 다시 한 번 그 계명을 되새기기까지 하신다(12절). 서로를 사랑하라는 이 계명을 지킬 때, 우리는 주님의 사랑 안에 머문다. 형제 사랑이 주님 사랑이 되고, 바로 이것이 주님 안에 머무는 삶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상호 내주의 말씀은 사실상 동일한 의도를 이중적으로 표현한 것임이 드러난다. 주님이 우리 안에 머문다는 것은 그의 말씀이 우리 안에 머문다는 것이다. 그 말씀은 형제 사랑이다. 또 우리가 주님 안에 머문다는 것은 그의 계명을 지킴으로써 사랑 안에 머문다는 것이다. 그 계명 역시 형제 사랑이다. 결국 둘 다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으로 수렴된다. 사실 이 결론은 우리의 추론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다. 아예 예수께서 직접 그 의도를 밝히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곧 너희가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17절). 결국 가지가 포도나무에 제대로 붙어 있어 열매를 맺는 가지에 관한 말씀은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의 계명을 제대로 지키라는 말씀, 곧 주님의 계명대로 서로를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라는 말씀이다. 바로 이것이 주님이 떠나신 이후 제자들이 주님과의 관계를 맺어 가는 방법이다. 포도나무이신 주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그래서 주님과 우리는 서로 안에 머물러야 하는데, 그 상호적 머무름의 유일한 길은 바로 형제를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키는 삶이었던 것이다.

순종하는 사랑

포도나무와 가지에 관한 15장의 말씀에서 시작했지만, 사실 이는 바로 앞 14장에서 줄곧 강조된 가르침이기도 하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면, 당연히 서로 사랑하라는 그의 계명을 지킬 것이다(14:15, 23). 반대로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을 것이다(14:24). 분명히 하자. 형제를 사랑하라는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이라야 정말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사랑한다고 스스로 착각하는 사람 말고,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 말이다(14:21). 요한일서의 표현처럼, 눈에 뻔히 보이는 형제조차 사랑할 수 없는 수준이라면, 그런 사람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다는 말인가?(요일 4:20). 그래서 주님은 자신이 아버지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그러기에 아버지께서 명령하신 대로 행하신다는 사실을 드러내신다(14:31). 주를 향한 사랑의 고백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몸소 가르치시는 것이다.

그러니까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이 부재의 시간에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유일한 방법은 주의 계명을 따라 서로를 사랑하는 것이다. 고요한 시간, 계시지 않는 주님을 계시는 것처럼 ‘느끼는’ 것도 아니며, 주님을 사랑한다고 감미로운 노래를 부르는 것도 아니다. 그렇게 할 수 있지만, 그것이 사랑의 핵심은 아니다. 우리는 계시지 않는 주님을 사랑할 수 없다. 적어도 우리의 몸으로는 그렇다. 대신 주께서 오시기까지는 우리의 형제자매가 몸소 사랑할 대상이 된다. 바로 그것이 주님의 계명이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는 수평적 관계를 성실하게 가꿈으로써 주님을 사랑하는 수직적 관계를 유지한다. 그리고 이렇게 주님의 계명을 지키며 서로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고대하는 주님의 임재가 허락될 것이다(14:21, 24).

진솔한 언어, 진솔한 신앙

주님을 사랑한다는 말을 많이 한다. 하지만 사실 주님은 부재중이다. 하지만 우리는 계시지 않는 주님을 어떻게 사랑하는지 말하지 않는다. 많은 경우 그 사랑은 내 마음의 문제로, 입술의 고백으로 마무리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주님과의 사랑이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사랑이 어찌 마음속 생각만으로 가능하겠는가? 물론 “몸으로 계시지 않으니, 달리 사랑할 도리가 없지 않느냐?”라고 항변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부재를 메우는 방법이 있다. 요한복음에서는 형제 사랑이 바로 그 해답이다. 계시지 않는 주님을 사랑하는 유일한 방법, 부재중이신 주님을 경험하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우리는 형제 사랑이 버겁다. 그래서 형제는 포기하고 그냥 주님만 바라보고 싶다. 그래서 오늘 우리에게 주님 사랑이란 형제 사랑일 수밖에 없다는 가르침을 건너뛰고 싶다. 그 대목에서 우리 신앙은 정말 주님을 향한 사랑이 아닌, 내 일상과 그 배후의 욕심을 비껴가는 ‘순수한 마음의 종교’로 타락한다. 언어는 신앙이요 사랑이지만, 그냥 언어에서 멈춘다. 주님의 함께하심을 이야기하지만, 그 구체적 의미를 묻지 않는다. 일견 멋진 듯하지만, 무슨 말인지 알 수 없거나, 종종 앞뒤가 맞지 않는다. 우리의 생각과 행보가 일관되지 않은 탓이다. 초월의 언어가 위선의 장치로 도용되는 비극이다. 말씀 앞에서 우리의 사고와 언어를 보다 구체적으로 물어야 할 이유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