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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관하여
- 2017년 9월호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믿음의 신기원을 이룬 인물이다. 당시 사람들은 루터를 이스라엘이 종말에 기대한 선지자 엘리야(말 4:5)와 연관시켰다. 루터는 이 구절을 육체적인 엘리야의 회귀로 해석하는 것을 거부했지만, 자신의 행동을 구약 시대에 닥칠 심판과 멸망을 선포하면서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회복하기 원했던 선지자의 의식과 유사하다고 보았다.1
루터와 그의 행적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지만 그가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중요한 교량 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독일과 유럽 사회의 발전을 위한 선구자적인 루터의 신학과 사상의 주제 가운데 하나는 ‘그리스도인의 자유’다. 자유에 대한 루터의 언급은 그 시기에는 유일한 것이었고, 자유는 루터에게 중심적인 신학 주제였다.2
종교개혁 500주년을 준비하며 종교개혁이 독일과 유럽의 종교, 사회, 문화, 교육 등 각 분야에 끼친 영향력과 의의를 설명하는 독일 개신교회(EKD)의 “2017년 종교개혁 500주년을 위한 진단과 전망”도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의롭게 된 그리스도인의 존재를 ‘자유’로 규정했다.3
루터는 자유사상으로 말미암아 1517년 말(즉 95개 논제를 작성하고 공포한 이후) 그의 이름을 ‘Luder’(루터의 본래의 성)에서 ‘Luther’로 바꾼다. 그는 1517년 10월 31일 마인츠의 대주교 알브레히트에게 보내는 편지에 “거룩한 신학박사로 부름받은 아우구스티누스회 수도사 마르틴 루터”[Martinus Luther August(inianus) Doctor S. Theologie vocatus]라고 서명했다(WA Br 1,112,69-71).
또한 그는 열정적인 인문주의자들의 방식에 따라 헬라어 ‘eleutherius’, 즉 ‘자유한 자’를 때때로 사용하기도 했고, 이 이름으로 1519년 1월 말까지 서명했다. 그 후에 그는 ‘루터’란 이름을 평생 사용했다. 루터가 이러한 개명으로 의도한 것이 무엇인지는 오늘날까지 정확히 해명되지 않았다. 하지만 1517년 말, 면죄부를 신학적으로 비판하던 시기에 루터가 그리스도 및 그의 진리와 하나 됨 속에서 자유를 확신했음은 분명하다.4
그의 자유사상이 매우 탁월하게 전개된 것은 1520년에 나온 세 개의 종교개혁 작품 가운데 하나인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관하여》(이하 “그리스도인의 자유”로 약함)다. 이 작품이 그의 수많은 작품들 중에서 돋보이는 이유는 하나님 앞에서의 인간 및 사회적 관계 속에 있는 인간의 모습을 적은 분량으로 분명하고도 상세하게 서술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항상 루터의 작품에 대한 기본적인 서론으로 사용된다.

저술 배경

1. 루터의 파문
루터는 면죄부 관행을 비판하는 95개 논제를 공포함으로써 로마 교회의 권위에 도전했다. 당시 책임자였던 마인츠의 대주교 알브레히트는 95개 논제를 로마에 전했고, 로마 교회는 루터에 대한 소송 절차를 밟았다. 루터가 1518년 카예탄의 심문을 받고 1519년 라이프치히 논쟁을 했을 때 그가 자신의 입장을 취소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 명백해지자, 로마 교황청은 우선적으로 1520년 6월 15일 파문위협교서 《주여 일어나소서》(Exsurge Domine)로 루터를 위협했다. 그러나 이러한 위협이 루터에게 통하지 않자, 로마 교회는 1521년 1월 3일 교서 《로마의 교황에게 어울리는 것》(Decet Romanum pontificem)을 통해 루터를 파문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시기적으로 파문을 예기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파문위협교서와 실제적인 파문 사이에 저술되었다. 이 작품의 저술에는 두 가지 중요한 동기가 있다. 첫 번째 동기는 전술적인 고려이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작센의 귀족 밀티츠(Karl von Miltitz)가 루터의 일을 놓고 로마 교황청과 루터 진영 사이에서 중재하려는 시도와 관련된다. 밀티츠는 가능한 한 기본적이고도 논쟁적이지 않게 자신의 견해를 작성해 교황 레오 10세에게 보내도록 루터를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여기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자유》라는 라틴어 작품이 존재하는 이유와 이 작품이 《레오 10세에게 보내는 공개 서신》에 첨부되어 발송된 이유를 엿볼 수 있다. 루터가 어쩔 수 없이 쓰긴 했지만 교황만을 수신자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점은, 그가 서신과 작품을 독일어로 썼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다.
두 번째 동기는 루터가 파문의 위협과 파문이라는 상황 속에서 자기 자신을 움직인 복음의 본질에 대해 집중적으로 서술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는 사실이다. 루터는 교황 앞에서 학자들의 언어인 라틴어로 자신을 해명하고자 했을 뿐만 아니라 복음에 대한 이해와 묵상 가운데 얻은 통찰을 많은 독자에게 전달하기를 원했다.5
이 작품은 독일어판(WA 7, 20-38)과 독일어판을 교정하고 확대한 라틴어판(WA 7,49-73)이 있다. 《레오 10세에게 보내는 공개 서신》 또한 두 가지 언어(WA 7, 3-11, 42-49)로 되어 있으며, 이 공개서신은 《그리스도인의 자유》 앞부분에서 헌사의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 서신은 사실상 교황 레오와 교황 제도에 대한 루터의 입장에 관한 소논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루터는 《레오 10세에게 보내는 공개 서신》과 《그리스도인의 자유》의 소책자를 구성상 하나로 저술했다.
루터는 자신의 작품이 교황의 파문과 관련된 상황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인상을 주기 위해 저술 날짜를 파문위협교서가 공포되기(9월 21일) 전인 9월 6일로 정했고, 1520년 11월 20일경 《그리스도인의 자유》라는 제목으로 라틴어판과 독일어판이 동시에 출판하였다.

  2. 칭의론
《그리스도인의 자유》의 중심 주제 가운데 하나는 칭의론이다. 이것은 루터가 비텐베르크대학에서 교수로서 시편과 바울 서신들을 강의하며 줄곧 숙고해 온 주제다. 1519-1520년 비텐베르크대학의 토론을 위해 내놓은 루터의 논제 역시 주로 믿음을 통한 칭의 문제와 이에 상응하는 성례전 이해에 관한 것이다. 또한 루터는 인간의 죄와 의에 대한 새로운 이해에 관해 학문적으로 숙고하는 동시에 이 시기에 출판된 비텐베르크 설교들과 논고에 자신의 새로운 통찰을 덧붙였다.
‘죄와 의’라는 주제를 다룬 루터의 첫 논고는 1518년 말에 나온 《세 종류의 의에 관한 설교》와 1519년 초에 나온 《두 종류의 의에 관한 설교》이다. 루터는 1520년 초에 《선행에 관하여》라는 작품에서 ‘믿음에 의한 의’라는 주제를 다시금 다루었다. 루터는 십계명에 대한 해석에서 오직 믿음이 제1계명의 요구를 성취하며, 믿음만이 인간에게 요구되는 그 밖의 모든 행위들이 선하게 될 수 있는 유일한 근원이라고 설명했다. 1520년 가을에 루터는 동일한 문제를 다른 음조로 《그리스도인의 자유》에서 다루었다.6

작품 요약7

루터는 이 작품에서 인간이 어떻게 자유하고 의롭게 되며, 다른 사람을 섬길 수 있게 되는지를 설명한다. 이 작품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부분에 맞는 두 명제를 처음에 제시한다(§1-2).

“그리스도인이란 어떤 존재이며, (성 바울이 자주 서술하고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가 그리스도인에게 선사하여 준 자유가 어떤 것인지를 우리가 철저히 인식할 수 있도록, 나는 다음의 두 명제를 제시하고자 한다. 그리스도인은 만물을 지배하는 자유한 주인이며 누구에게도 종속되어 있지 않다. 그리스도인은 만물에 대해 섬기는 종이며 모든 사람에게 종속되어 있다”(WA 7, 20, 25-21, 4).

그리스도인은 모든 만물 위의 자유로운 주인인 동시에 모든 만물을 섬기는 종이라는 모순적인 명제는 그리스도인의 두 가지 본성에 의해 뒷받침된다. 즉, 그리스도인은 한편으로 영적인 본성 혹은 영혼으로 ‘영적이고, 새로운, 내적인’ 인간이고, 다른 한편으로 육적인 본성 혹은 육신으로 ‘육적이고, 옛, 외적인’ 인간이다.

1. 내적인 인간
루터는 먼저 속사람(내적인 인간)에 관해 다룬다(§ 3-18). 그리스도인은 믿음 안에서 자유를 갖는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자유는 영혼 혹은 속사람이 의로운 존재와 자유, 악한 존재와 포로됨을 결정하는 곳이다. 영혼이나 속사람은 육이나 외적인 것에 의미를 갖지만, 그 반대는 성립될 수 없다. 다시 말해, 외적인 경건 연습과 육체의 외적인 상태는 영혼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 영혼에 중요하고 필요한 것은 오직 말씀이다. 영혼은 하나님의 말씀 이외에 다른 것은 전혀 필요로 하지 않는다(마 4:4).

“영혼은, 하늘에서나, 혹은 의롭고 자유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살고 있는 땅위에서, 거룩한 복음, 즉 그리스도에 의해 설교된 하나님의 말씀 외에는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 … 영혼은 다른 모든 것은 없어도 괜찮지만, 하나님의 말씀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영혼을 돕지 못한다. 영혼이 말씀을 가지게 되면, 그것은 다른 것을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고 말씀으로 넉넉하며, 영혼은 말씀에서 양식, 기쁨, 평화, 빛, 은혜, 의, 진리, 지혜, 자유, 그리고 모든 좋은 것을 넘치게 소유한다”(WA 7, 22, 3-14).

하나님의 말씀은 행위 없이 오직 은혜로 이루어지는 칭의에 관한 복음이다(sola gratia). 믿음만이 하나님의 말씀을 유익하고 효과적으로 사용하며(sola fide), 믿음은 속사람을 의롭게 하고 그리스도인으로 만든다(요 6:28-29).
하나님의 말씀은 율법과 약속의 형태로 우리에게 주어졌다. 율법은 성취할 수 없는 요구를 통해 인간이 선에 대한 무능 앞에서 자신의 능력에 절망하고 죄를 깨닫도록 하는 반면, 하나님의 약속인 복음은 율법이 요구하는 것을 선물로 주고, 율법이 명령하는 것을 성취한다. 결국 하나님 홀로 스스로 명령하시고(계명/율법), 또한 하나님 홀로 스스로 성취하신다.
루터는 믿음만이 사람을 의롭게 한다는 사실을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과의 관계,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들어 설명한다. 첫째, 영혼은 믿음을 통해 말씀과 하나가 된다. 루터는 믿음이 그리스도인을 말씀과 하나 되게 하며 말씀의 모든 능력에 참여하도록 만든다고 가르친다. 믿음을 통해 요한복음 1:12에 나오는 하나님의 자녀 됨의 약속이 성취된다. 믿음과 말씀이 하나 됨은 단순히 외적이거나 우연한 것이 아니라 총체적인 것이기에 영혼은 말씀처럼 된다.
루터는 이 과정을 불에 놓여 있는 쇠의 모습으로 묘사한다. 쇠가 불처럼 빨갛게 되듯이 믿음을 가진 사람 역시 말씀을 통해 완전히 변화되고 말씀의 본성들에 참여하게 된다. 이렇게 믿음이 말씀과 하나 되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의롭게 되기 위해 행위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은 더 이상 율법과 계명의 강요 아래에 있지 않으며 따라서 자유하다. 바로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자유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이 나태하게 산다는 것이 아니라, 의와 구원을 위해 행위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의미다.
둘째, 영혼은 믿음을 통해 하나님과 하나가 된다. 믿음은 말씀을 진리로 여기는바,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으로써 첫 계명이 성취되고 선한 행위를 이루기 때문에 결국 믿음은 의롭게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믿음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을 참된 존재로 인정하기 때문에 의롭게 되는 것이다. 믿음은 누군가가 다른 사람에게 보여 줄 수 있는 최고의 영예다. 믿는 자는 믿는 대상이 진실하다고 여기고 있다는 사실을 증언하는 것이다. 그와 반대로 불신은 누군가에게 가해질 수 있는 최고의 수치다.
셋째, 영혼은 믿음을 통해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다. 루터는 ‘즐거운 교환’이라는 성 버나드의 결혼신비주의적인 비유를 들어 영혼과 그리스도의 하나 됨을 설명한다.

“믿음은 영혼이 하나님의 말씀과 동일하게 되고 모든 은혜로 충만하여 자유하고 복되도록 만들 뿐만 아니라, 마치 신랑과 신부처럼 영혼을 그리스도와 연합시킨다. 이런 결혼의 결과는 성 바울이 말하는 것처럼(엡 5:30), 그리스도와 영혼이 한 몸이 되는 것이다. 또한 양편의 재화, 행복 혹은 불행, 그리고 모든 것들은 공동의 것이 된다. 그리스도가 가진 것은 믿는 영혼의 소유가 되고, 영혼이 가지고 있는 것은 그리스도의 소유가 된다. 만일 그리스도가 모든 재화와 모든 축복을 갖고 있다면, 그것은 영혼 자신의 것이다. 영혼이 모든 악덕과 죄를 갖고 있다면, 이것은 그리스도의 소유가 된다. 여기서 즐거운 교환과 싸움이 일어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인 동시에 인간인 바, 결코 죄를 지은 적이 없으며, 그의 의는 정복당할 수 없으며 영원하고 전능하다. 이제 그가 믿는 영혼의 죄를 신부의 반지(즉 믿음)를 통하여 자신의 것으로 삼고 마치 자신이 그것을 행한 것처럼 행한다면, 그 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삼켜지고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의 정복당할 수없는 의는 모든 죄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혼은 오직 (신랑이 신부에게 주는) 약혼 선물, 즉 믿음 때문에, 모든 자신의 죄로부터 풀려나 자유하게 되고, 신랑 그리스도의 영원한 의를 갖추게 된다. 부유하고 고귀하고 의로운 신랑 그리스도가 가난하고 업신여김을 받는 악한 창녀와 결혼하여 그녀를 모든 악으로부터 해방시키고 모든 좋은 것으로 치장해 준다면, 이것이야말로 즐거운 결혼식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되면 죄가 그녀를 저주하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왜냐하면 모든 죄들은 그리스도 위에 놓여 있고, 그 안에 삼켜졌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제 신랑으로부터 풍족한 의를 가지게 되어, 비록 모든 죄가 그녀에게 놓여 있다 할지라도 그녀는 다시 죄에 대항해 굳게 설 수 있다”(WA 7, 25, 26-26, 10).

결국 모든 계명은 오직 믿음으로 성취된다. 오직 하나님만을 경외하라는 제1계명은 선행이 아니라, 믿음으로만 성취 가능하다. 하나님을 송축하며 진실한 분이라고 고백하는 것은 믿음을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제1계명을 성취하는 자만이 다른 모든 계명을 성취할 수 있다. 계명은 믿음으로 성취되고, 행위는 그 열매로 뒤따라오는 것이다.
루터는 다음으로 그리스도의 몫에 참여하는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관해 말한다. 이것은 믿음의 결과에 대한 심화, 다시 말해 합일 사상 혹은 즐거운 교환이라는 경험의 심화다. 그리스도는 믿는 영혼에게 그 자신의 왕 및 제사장 직무에 참여하게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아버지의 참된 장자로서 (제롬 이후로 장자의 권리는 창세기 49:3을 근거로 주장되어) 제사장 및 왕으로서의 권리를 갖는다. 그런데 왕과 제사장 직무라는 그리스도의 이중적인 직무는 그리스도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는 그것을 모든 신앙인들에게 나누어 준다. 그리스도인은 만물에 대해 왕과 같은 자유가 있고, 하나님 앞에서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할 목적으로 자유로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제사장 직무를 갖는다. 

2. 외적인 인간
두 번째 부분은 겉사람(외적인 인간)에 대해 다룬다(§ 19-20). 그리스도인은 자유 안에서 값없이 하나님을 섬기는 행위를 한다. 그리스도인은 믿음 안에서 자유를 갖고 있지만, 육신 안에는 세상을 섬기고 쾌락을 추구하고자 하는 완고한 의지가 있다. 이러한 의지는 선행을 통해 믿음의 영혼을 닮게 된다(롬 7:22-23; 고전 9:27; 갈 5:24).
루터는 선행의 근거를 구원을 얻기 위한 칭의의 노력이 아닌, 하나님에 대한 자발적인 사랑으로 보았다. 루터는 또한 사람(인격)과 행위의 관계를 자세히 설명한다. 불신앙은 행위를 악하게 만드는 것이며, 믿음 안에서의 행위만이 선하다. 왜냐하면 믿음이 칭의를 통해 행위를 하나님 마음에 들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루터는 마태복음 7:18을 설명하면서 “선하고 경건한 행위가 선하고 경건한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선하고 경건한 사람이 선하고 경건한 행위를 한다. 그래서 어느 경우든 사람이 모든 선행 이전에 먼저 선하고 경건해야 하고, 선행이 경건하고 선한 사람을 뒤따라 나온다”(WA 7, 32, 5-9)라고 말한다.
다음으로 루터는 이웃에 대한 사랑에서 나오는 선행을 다룬다. 이웃에 대한 행위의 동기가 언급되는데, 선행이란 자기 자신과 이웃을 위해서 필요하며 유익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구원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기심 없이 자발적인 사랑으로 이루어진다. 이웃 앞에서 잘못된 의도로, 즉 사랑으로 행하지 않은 선행은 잘못된 행위다.
그리스도는 이웃 섬김에서 그리스도인의 모범이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행하신 것처럼 이웃에게 행하며, 결국 이웃에게 소위 ‘두 번째 그리스도’가 된다. 그리스도인은 이웃을 섬기기 위해 자발적으로 자신을 내어 준다. 그리스도인은 세상 당국에도 복종하는데, 이것은 다른 사람을 섬기기 위함이다(롬 13:1 이하).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다른 이들이 그렇게 하도록 하는 모범이 된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모범을 뒤따라 이웃의 자리에 서고, 그 동료가 구원에 이르는 것을 바랄 뿐이다.
그리스도인은 교회 및 다른 인간적인 규정들로부터 완전히 자유하지만, 이웃이 하나님에게 적대적으로 행동하지만 않는다면 그를 위해 그러한 규정들을 따른다. 인간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은 그리스도인에게로 옮겨가며, 그리스도인은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이자 종이 된다. 이것으로 그리스도인은 자유한 동시에 종속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대한 결론은 다음과 같다.

“그리스도인은 자기 자신 안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이웃 안에서 산다.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을 통하여 이웃 안에서 산다. 그리스도인은 믿음을 통하여 자신을 넘어 하나님께로 가며, 그는 다시 사랑을 통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자신 아래로 온다. 하지만 그는 항상 하나님과 그의 사랑 가운데 머문다. … 보라 이것이 참되고 영적인 그리스도인의 자유이다”(WA 7, 38, 6-13).

작품의 특징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비텐베르크의 그루넨베르크(Johannes Rhau-Grunenberg) 인쇄소에서 독일어판과 라틴어판이 동시에 출판되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학자들 간에는 루터가 어떤 언어로 먼저 작품을 썼는가에 대한 논쟁이 있기도 하다.
마우러(W. Maurer)는 독일어판이 처음 쓰인 것이고, 그 이후에 자세하게 라틴어로 번역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쉬톨트(B. Stolt)는 독일어판과 라틴어판을 비교해 “라틴어 본은 독일어판을 기초로 하였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즉, 루터는 중세의 설교 작성 방식을 따라 먼저 라틴어 개념으로 내용을 설계한 후에 식자층을 위해 라틴어판을, 일반 대중을 위해서는 기본사상을 강조한 독일어판을 각각 작성했다는 것이다.8 그녀는 또한 루터의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수사학적인 규칙에 따라 작성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루터 권위자인 쉬바르츠(R. Schwarz)는 루터가 독일어판이 나온 후에 라틴어판을 작업했다고 주장하는데, 이 주장이 오늘날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9
루터의 두 판을 비교해 보면, 그 차이점이 신학적인 내용에 있는 것이 아니라 수사학적 표현 양식과 분량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식자층이 사용하는 언어가 라틴어였기 때문에 루터는 라틴어판에서는 신학적으로 보다 정밀한 표현을 시도했고, 일반 대중을 위한 독일어판에서는 내용을 보다 평이하고 간단하게 서술했다. 라틴어판에는 독일어판에 없는 서론과 부록이 포함되어 있다. 독일어판과 라틴어판은 몇 부분이 많이 길거나 짧은 내용으로 되어 있거나 생략되었다는 점 외에는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결국 중요한 것은 동일한 내용 전개가 두 방향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에 있다. 언어와 논증에서 나타나는 차이는 독자가 다르다는 점에서 비롯된 것이다. 중요한 것은 독일어판이 라틴어판의 영향력을 능가했다는 점과 독일어판이 문체에 있어서도 힘차고 생동감 있게 표현되었다는 사실이다.  
앞서 루터의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교황 레오 10세에게 보내는 공개 서신》(Epistola Lutheriana ad Leonem X. summum pontificem)과 구성상 하나로 되어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사실 루터는 이 공개 서신을 10월 말에 라틴어로 먼저 썼고, 후에 모든 이들이 접할 수 있도록 독일어로 번역했다.10 이 서신에는 한편으로는 지상에서 사탄의 지배와 권력의 중심인 교황제도와 교황청에 대한 용감무쌍한 공격을 다루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레오라는 개인적인 존재에 대한 형제의 사랑으로 목회상담적인 섬김을 보인다.
이 서신의 어조는 본래 의도와 일치하게 온건했다.11 루터는 사과할 용의가 있었고, 자신이 교황 개인에 대항할 어떤 악의도 없으며, 교황이 자신을 언쟁이나 다툼을 원하지 않는 존재로 여길 것이라고 확신했다. 루터는 교황청의 부패한 삶이 아니라 그릇된 가르침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제외하고는 모든 면에서 교황에게 순응할 태세가 있음을 확언한다. 복음의 자유를 가르치는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자신의 가르침을 취소하는 상황만 아니라면, 교황청과 화해를 진심으로 원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와 종교개혁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루터가 쓴 작품 가운데 걸작에 속한다. 리츨(Albrecht Ritschl, 1822-1889)은 이 작품의 라틴어판을 “루터의 종교개혁 프로그램 자체”라고 보았다. 덧붙여 “우리는 … 종교적인 자유에 대한 루터 사상의 내용 없이는 가톨릭의 이상에 대항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복음적 이상을 전혀 밝혀낼 수 없을 것이다”라고 보았다.12 또한 저명한 가톨릭 교회사가 로르츠는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종교개혁자의 모든 작품 가운데 가장 경건한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루터의 작품 가운데 이보다 더욱 가톨릭 교인들을 슬프게 하는 작품은 없다. 왜냐하면 이 작품에서 교회의 개혁을 위하여 루터의 능력이 교회 안에서 달성할 수 있는 모든 것 가운데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라고 이 작품의 가치를 평가했다.13 이 작품이야말로 루터에게 있어 “그리스도인 삶의 전체 요약”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그리스도인의 믿음의 본질을 ‘자유’로 표현한 핵심적인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자유에 대한 루터의 사상을 부분적으로 오해하거나 왜곡되게 해석해 종교개혁이 상이한 방향으로 전개되도록 만들기도 했다. 세상적인 지배질서로부터 자유를 요구하고 나서거나, 루터의 겉사람과 속사람의 차이를 통일적으로 이해하지 못해 영적인 차원에만 몰입하는 현상들이 대표적인 예다.
이 작품이 갖는 의미와 성공은 1520년에서 1525년 사이에 출판된 인쇄 수량만으로도 추측 가능하다. 5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20개의 독일어 판과 8개의 라틴어 판이 출판되었다. 루터의 이 작품은 종교개혁에서 ‘자유’가 중세 가톨릭 교황 교회의 권력 앞에서 하나님 말씀의 능력을 강조하는 구호가 되도록 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했다.


1) Irene Dingel, “Von der Freiheit eines Christenmenschen(1520) - Historische und theologische Aspekte”, in: I. Dingel et al. ed., Meilensteine der Reformation. Schlusseldokumente der fruhen Wirksamkeit Martin Luthers(Gutersloh, 2014), p.122.

2) 언어 통계에 따르면 1517년부터 1530년까지 나온 독일어 루터 작품에서만 무려 5,000개의 증거들이 발견된다. 앞의 책, p.123 참조.

3) https://goo.gl/CTchpC. - “2017년 종교개혁 500주년을 위한 진단과 전망”에 대해서는 권진호, “2017년 종교개혁 500주년을 위한 진단과 전망”, 〈한국교회사학회지〉40(2015), pp.9-40 참조.

4) R. 쉬바르츠, 《마틴 루터》, 정병식 옮김(서울: 한국신학연구소, 2007), pp.104-105.

5) Dietrich Korsch ed., Martin Luther. Von der Freiheit eines Christenmenschen (Leipzig, 2016), pp.72-73 참조.

6) R. 쉬바르츠, 《마틴 루터》, pp.187-188 참조. - “선행에 관하여”에 대한 요약으로 앞의 책,  pp.188-190 참조.

7) 라틴어판에 비해 독일어판은 30개의 절로 분명하게 구분되어 있다. 여기서는 독일어판의 절(‘§’로 표시)에 따라 내용을 요약하고자 한다.

8) 《그리스도인의 자유》, 한인철 옮김,  p.4 참조.

9) 독일어판과 라틴어판의 생성에 대해서는 우선적으로 R. Rieger, Von der Freiheit eines Christenmenschen. De libertate christiana (Tubingen, 2007), pp.5-12 참조.

10) 서점상은 투기의 목적으로 독일어로 된 공개서한을 이전에 별도로 인쇄해 출판했다. 그래서 루터는 독일어판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위해 새 헌사를 써야 했는데, 1521년 츠비카우(Zwickau)의 시장이 된 뮐포르트(H. Muhlphordt)가 그 대상이 되었다.

11)  《그리스도인의 자유》,  한인철 옮김, pp.2-3 참조. - 이 공개서한은 루터 편에서 볼 때 교황과의 화해를 위한 마지막 시도였다. 그러나 이 서한과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교황으로부터 어떤 반향도 얻어내지 못했고, 그 이후의 관계에서도 아무런 영향력이 없었다. 그래서 학자들 중에는 이 서한이 교황에게 전해졌는가에 회의를 표하기도 한다.

12) Christian Danz, Einfuhrung in die Theologie Martin Luthers(Darmstadt, 2013), pp.54-55에서 재인용.

13) J. Lortz, Die Reformation in Deutschland(Freiburg, 1982), pp.232-233.

:: 필자 정보 - 권진호
목원대학교 교회사 교수. 독일 키일대학교(Dr.Theol.). 저서로는 《성 어거스틴의 은총론 연구》, 《루터에게 설교를 맡겨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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