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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주기도로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를 회복하라!
- 2017년 9월호

《삶에서 은혜 받는 주기도문》의 저자 고신대학교 채경락 교수


 주기도가 주는 의미에 대해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 기도의 원형인 주기도의 메시지가 무엇인지 고찰할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해 고신대학교에서 설교학을 가르치는 채경락 교수는 “주기도의 한 간구, 한 문장을 외울 때마다 그 묵직한 의미를 마음에 새기면서 기도할 수 있어야 주님께서 원하시는 기도인이 될 수 있다”라고 말한다. 이것이 그가 《삶에서 은혜 받는 십계명》에 이은 두 번째 책 《삶에서 은혜 받는 주기도문》을 펴낸 이유다. 《쉬운 설교》, 《퇴고 설교학》 등의 저자이며, 《팀 켈러의 설교》의 역자이기도 한 채경락 교수(사진)를 지난 7월 28일 성남 신흥성결교회 카페에서 만났다.

《삶에서 은혜 받는 주기도문》을 저술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그리스도인은 기도인이다. 문제는 성경적으로 기도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기도를 알아야 한다. 주기도가 모든 기도의 원형이기 때문이다. 주기도의 한 간구, 한 문장을 외울 때마다 그 묵직한 의미를 마음에 새기면서 기도할 수 있어야 주님께서 원하시는 기도인이 될 수 있다. 
이를 위해 주기도를 분석적인 언어가 아니라 묵상의 언어로 읽도록 도와주는 해설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주기도의 메시지를 풀어내기에는 분석보다 묵상이 더 적합하기 때문이다. 묵상의 언어는 삶의 언어다. 성도들이 삶에서 만나는 하나님을 현장성 있게 풀이하는 것이다. 이 책의 부제인 “삶은 주기도문”은 ‘삶의 언어, 묵상의 언어로 삶아 낸 주기도’라는 의미를 가진다.
이것이 설교라고 생각한다. 설교는 주석을 넘어 삶으로 연결된 메시지여야 한다. 삶의 언어로 푹 삶아 낸 언어여야 한다. 그래야 성도의 삶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그것을 잘 하신 분이 예수님이다. 예수님의 설교적인 언어는 분석적이지 않다. 삶이 드러나는 이야기로 설교를 만드셨다. 그분을 흉내 내는 것이 언감생심이지만, 그분의 방법을 따라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주기도를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가 아니라 ‘허락하신’ 기도라고 정의한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주기도에서 중요한 것은 호칭이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것을 허락한다는 의미다. 홍길동전에서 “호부호형을 허하노라”라는 것과 같다. 예수님의 아버지를 나의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고신대학교 유해무 교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적이 있다. “독생자 예수라는 말은 예수님만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는 의미다. 그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기도를 주시면서 예수님 당신만의 아버지를 우리의 아버지로 개방해 주셨다.” 이처럼 예수님은 주기도를 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도록 허락하셨다. 하나님의 자녀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을 주셨다. 이런 의미에서 주기도를 주님이 ‘허락하신’ 기도라고 정의할 수 있다. 

주기도는 독백기도가 아니라 합심기도를 의도한다고 설명했는데, 주기도가 교회 공동체에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첫 구절의 ‘우리’라는 말에 집중해야 한다. 우리말에는 ‘우리’ 아내, ‘우리’ 아버지라는 표현이 있는데, 주기도의 ‘우리’는 이와는 다른 의미다. 주기도의 ‘우리’는 단지 나와 너를 합한 복수형이 아니다. 반드시 예수님이 들어가야 한다. 예수님이 없는 나와 너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기 때문이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예수님의 어머니와 요한을 연결시켜 준다. 요한 사도가 볼 때 그때 교회가 탄생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의 가족 주례를 통해, 아들이 아닌 요한이 아들이 되고, 어머니가 아닌 마리아가 어머니가 되었다. 주님 안에서 관계가 없던 사람이 가족이 되는 사건이다. 바로 이것이 교회의 시발점이다. 주기도의 ‘우리’가 바로 그 우리다. 예수님 안에서 서로 다른 남이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이 책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 것이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라고 설명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주기도의 첫 번째 간구는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소서”이다. 첫 번째 간구라는 것은 가장 급한 기도 제목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 것보다 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먼저다. 그러나 주님은 주님의 이름이 높임을 받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씀하신다. 이 간구가 풀려야 우리의 실존적인 문제가 해결된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 것은 무엇인가? 거룩하다는 것은 저분처럼 되고 싶다는 상상도 불허한다. 감히 표현할 수 없고 다가갈 수도 없는 흠모를 하는 것이다. 거룩한 하나님의 이름은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회복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간구다.
신앙과 삶이 괴리되어 있는 자들에게 주기도의 의미는 무엇인가?
“당신의 나라가 임하시옵소서”라는 두 번째 간구에서 말하는 나라는 바실레이아이다. 왕이 다스리는 왕국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소서”라는 말은 “아버지께서 우리의 왕이 되시옵소서”라는 뜻이다. 원래 하나님이 우리의 왕이신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 땅의 현실에 대한 고발이다. 헤롯이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지 못한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을 종교, 신앙의 영역에만 묶어 두고 있다. 그러나 왕은 모든 영역에서 영향력을 가져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주기도는 신앙 색깔, 종교 영역에만 머물렀던 신앙, 나를 위한 신앙을 넘어서서 삶의 전 영역에서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을 살라고 요청한다.

주기도를 “우리 사는 이 땅이 하늘 같게 하소서”라고 줄인다. 이 문구는 어떻게 주기도를 담아내고 있는가? 
주기도는 원문 그대로 번역하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라는 문구가 중앙에 위치한다. 그 위에는 하늘에 대한 내용, 그 아래에는 땅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주기도는 이 구절을 중심으로 하늘과 땅을 구분한다. 하늘은 모든 것이 제대로 된 공간을 상징한다. 하나님이 하나님으로 인정받는 곳이다.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하나님의 통치가 온전히 임하는 곳이다. 반면, 땅은 반역의 공간이다. 하나님을 거부하고, 거룩하게 여기지 않고, 왕으로 인정하지 않는 곳이다. 이런 상황에서 주기도는 이 땅도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고,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는 하늘과 같이 되기를 소망하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주기도를 한다는 것은 ‘내가 땅에 있지만, 하늘이 되겠습니다’라는 다짐으로 이해할 수 있다. 

노후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한 이슈가 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성도들에게 일용할 양식, 하루치 양식을 구하는 주기도를 어떻게 설명해 주면 좋겠는가?     
주기도의 배경에는 만나 사건이 있다. 만나는 늘 하루치만 주어졌다. 매일 매 순간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노후 대책은 적어도 10년 치의 양식을 준비하는 일이 될 것이다. 최소한 1년 치의 양식이라도 있어야 노후 대책이 된다. 주기도에서 구하는 일용할 양식은 결코 안정감을 줄 수 없다. 그럼에도 하루치의 양식을 구하는 것은 돈이나 양식에 의지하지 않겠다는 결단이다. 없어지는 만나에 의지하지 않고, 하늘의 양식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겠다는 결단이다.
이런 의미에서 하루치의 만나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삶의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만나를 먹는 것은 매일의 양식이 아니라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을 의미한다. 결국 주기도에서 말하는 하루치 양식은 ‘하나님을 나에게 주십시오’라는 간구로 이해될 수 있다. 이처럼 주기도에서 말하는 그리스도인의 노후 대책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다.

세상이 말하는 용서와 주기도에서 말하는 용서는 어떤 차이점이 있는가?
산상수훈에 기록된 주기도의 마지막 부분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따라온다.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마 6:15). 이 구절이 주기도에서 강조하는 용서다.
세상이 말하는 용서는 내 속에 있는 측은지심으로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것이다. 내가 용서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주기도는 내가 용서받아야 할 사람이라고 본다. 이러한 관점을 배경으로 내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것과 하나님이 나를 용서하는 것을 병치시킨다. 이를 문법적으로 보면, “내가 형제를 용서하니까, 하나님도 나를 용서해 주십시오”라는 의미다. 하지만 실제적인 순서는 하나님이 나를 용서해 주셨고, 그 동력을 가지고 내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주기도는 ‘네가 이 사람을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용서가 철회될 수도 있다’는 경고를 준다. 일만 달란트 탕감 받은 사람이 용서를 받았지만, 자신에게 빚진 사람을 용서하지 않았기 때문에 탕감 받은 것이 철회된 것과 같다. 주기도의 용서는 우리가 용서해야 할 사람이 아니라, 용서 받아야 하는 죄인이라는 것을 각인시킨다. 엄청난 용서를 받았다면, 너도 작은 용서를 하라고 말한다. 또한 하나님의 용서를 받은 증거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것으로 나타난다고 본다.

위험하고 악한 세상에서, 시험에서 ‘보호’하시고, 악에서 ‘구원’해 주시기를 간구하는 주기도는 교인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가?
세상에서 말하는 위험 요인은 대부분 사고, 재난, 테러를 의미한다. 그러나 주기도에서 말하는 위험 요인은 시련이라는 의미보다 유혹적인 측면이 크다. 죄와 악으로 가득한 세상의 유혹이 현존하는 재난과 테러보다 더 위험하다고 여긴다. 그 이유는 죄와 악은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만들고, 하나님을 놓치게 만들며 하나님의 형상을 파괴시키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통장에서 돈이 빠져나가는 것보다, 죄와 악이 위험하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이것을 기억하고, 주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보호를 요청하는 기도를 해야 한다.

책에는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라는 구절에 대한 해설이 나와 있지 않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그 구절은 고대 사본에서는 빠져 있기 때문에 성경에도 괄호 안에 기록되어 있다. 그런 이유에서 생략했다. 하지만 이 구절을 넣는 것이 주기도의 의미를 더 풍성하게 한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이여, 하나님이 되시옵소서. 왜냐하면 당신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라고 주기도를 요약할 수 있다. 그 가운데 ‘왜냐하면 당신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라는 구절이 바로 이 부분이다. 이 구절은 주기도의 신앙고백의 기초가 되며, 주기도의 의미를 더 풍성하게 만들기에 계속해서 고백해야 한다고 본다. 

‘주기도인(人)은 누구인가?’라는 장으로 책을 마무리했는데, 누가 주기도인인가?
주기도를 하는 사람이다. 주기도의 의미를 깊이 있게 생각하고, 주기도를 진심으로 나의 기도로 받는 사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주기도인과 그리스도인은 동일하다. 주기도는 그리스도인 되겠다는 결단, 고백, 간구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주기도인은 탄식한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지 못하는 세상에 대한 탄식, 거룩한 불만이 있다. 하지만 거기에 머물지 않는다. 하늘이 이 땅에 임할 것이라는 희망을 품는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실 줄 믿는다. 그 믿음으로 삶을 헌신하는 사람이 주기도인이다.
성도들을 주기도인이 되도록 하려면, 주기도를 할 때 그 찰나에 의미가 스쳐 지나갈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짤막한 기도 가운데 많은 생각, 의미를 담아내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성도들의 삶의 언어로 주기도의 의미를 되살리기 위한 묵상을 공동체에서 함께할 필요가 있다.   

:: 필자 정보 - 채경락, 이민구
채경락 고신대 설교학 교수, 이민구 목회와신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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