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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행동의 회개보다 더 중요한 ‘생각의 회개’
- 2017년 3월호

온누리교회 이재훈 담임 목사

‘진리’와 ‘위조된 진리’가 뒤섞여 범람하는 시대다. 최근에는 미국 대선과 우리나라의 정치적 혼란을 틈타 허위 사실을 진실이라고 말하는 ‘가짜 뉴스’가 온라인을 통해 급속도로 퍼져 논란이 되기도 했다. 진실보다는 흥미와 다양성을 추구하는 현대 사회의 경향은 신앙인의 생각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재훈 목사는 《생각을 생각한다》를 통해서 이러한 생각의 문제들을 다루었다. 그는 언론 매체와 뉴스뿐 아니라 주변의 소소한 이야기들도 우리의 생각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읽고 듣는 것에 대한 생각이 우리의 생각을 결정한다고 말하며 ‘생각의 함정’에 빠지지 말 것을 권면한다. 지난 1월 25일 서빙고 온누리교회에서 이재훈 목사를 만났다. 

《생각을 생각한다》는 어떤 책인가?
오늘날의 시대적 상황을 성경 말씀과 연결하며 떠오른 단상들을 칼럼으로 게재해 왔다. 《생각을 생각한다》는 그 글들을 모아 엮은 것이다. 한국 교회가 가진 갈등, 대립, 정체 등의 문제를 나름대로 고민하면서 떠오른 생각들이 담겨 있다. 신앙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이들을 위한 책이라고 볼 수 있다.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우리의 공동체는 바른 길로 가고 있는가? 교회의 시대적 사명은 무엇인가?’ 등을 고민하는 성도들에게 함께 고민하는 장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책에서 다루는 ‘생각의 함정’이란 무엇인가?
사람들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 고유한 것이라 여기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대부분의 생각은 역사 속에서 논의되어 형성된 것일 뿐만 아니라, 이 시대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는 생각인 경우가 많다. 새로운 생각이라고 여기지만, 전혀 새롭지 않다는 말이다. 우리의 이성은 한 시대의 세계관에 묶여 있고, 사람들의 통념에 사로잡혀 있다. 아무리 새로운 생각을 하려고 해도 스스로 자신의 생각의 울타리에서 벗어나는 것이 불가능하다.
나의 생각을 뛰어넘으려면 위로부터 오는 계시, 즉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의 생각을 재조명하지 않고서는 결코 새로워질 수 없다. 내 생각이 진정한 새로운 생각이 되려면, 계시에 의존하는 사색이 필요하다. 사상의 세계는 복잡한 것 같지만 아주 단순하다. 하나님이 없는 사람들의 생각 유형은 정해져 있다. 포스트모던 시대의 사상은 복잡한 것 같아도 결국 인간 이성의 중심에는 죄성이 있다. 계시에 근거하지 않고서는 그것을 뛰어넘는 생각이 일어날 수 없음을 일관되게 다루었다.

변조된 진리가 유포될 때 분별할 수 있는 지침이 있다면 무엇인가?
오래전 옥한흠 목사님께서 “무엇이든지 직접 보고 들은 것이 아니면 무조건 믿지 말라”라는 조언을 해 주신 적이 있다. 다른 사람의 말만 듣고 판단하지 말고, 심지어 뉴스에 나온 이야기도 직접 사실로 확인한 것 외에는 속단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이렇다 저렇다 하는 말에 휩쓸리는 것은 무서운 것이다.  또한 과거 뉴저지에서 목회할 때 성도들에게 ‘소문실명제’를 제안한 적이 있었다. 자신이 들은 소식을 다른 사람에게 전할 때 누구에게서 들었다는 말을 함께 전하자는 것이었다. 불필요한 소문으로 인한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소문과 진리’라는 칼럼에서 이러한 분별의 문제를 다루었다.
성경은 역사 속에서 검증된 사실이며 진리다. 우리는 삶 속에서 확인된 사실에 근거해 판단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의 말에 사로잡혀서 속단해서는 안 된다. 진정한 삶의 변화는 소문이 아닌 진리에 귀 기울일 때 일어난다. 내가 전하는 소식이 진리에 근거한 사실인지, 부정확한 소문인지 분별하고 입에 파수꾼을 세워야 한다. 진리를 진리 되게 하고, 소문을 소문으로 그치게 하는 교회와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분별, 도전, 방향, 훈련 등 책에 담긴 23가지 주제 가운데 어떤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 
다루고 있는 주제들은 우리나라와 한국 교회에서 일어난 최근의 문제들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이것은 어느 한 개인이나 특정 교회를 표적으로 했다는 말이 아니다. 목회 현장에서 일어나는 고민 속에서 나름대로의 길을 찾으면서 깨닫게 된 것들, 여러 목회자나 사상가들의 글을 통해 도움받았던 것을 풀어냈기 때문에 연관되어 있다는 말이다.
이 책에서 가장 좋아하는 주제이자, 스스로 지침으로 삼는 것은 ‘훈련: 긴장을 창조적으로 끌어안기’다. 미국의 기독교 사회학자 파커 파머의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을 읽고 느낀 바를 서술했다. ‘참된 민주주의라는 것이 어떻게 건강하게 성경적인 뒷받침으로 설 수 있는가’를 고민하게 되는데, “민주주의의 마음을 치료한다”라는 원제와 같이 결국 마음의 문제를 치료해야 한다는 것이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다름과 갈등을 어떻게 품고 해결해 가느냐에 달려 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 안에도 많은 갈등과 긴장이 있게 마련인데, 그것을 어떤 마음으로 끌어안느냐가 중요하다. 교회는 사회보다는 갈등을 창조적으로 끌어안고 해결해 갈 수 있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오늘날의 사회 정치는 양극화되어 서로를 조금도 끌어안으려고 하지 않는다. 교회는 이러한 사회의 분열과 대립 구도의 문제를 마음을 치료하며 다루어야 한다.

목회자로서 성도들의 삶을 공감하고, 성도들과 생각을 공유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공유’와 ‘공감’이라는 단어를 성경적으로 표현한다면 ‘성육신’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무엇을 공감하고 공유하느냐가 중요하다. 예를 들면, 도둑질을 하면서도 서로 공유할 수 있지만, 그것은 옳은 것이 아니다. 테러를 일으키는 IS 단원들도 서로 깊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지만, 그것은 진리가 아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공감하신다는 것은 세상의 죄를 하나님도 동일하게 범하신다는 것이 아니다. 사랑이신 하나님이 사랑이 없는 자들을 찾아오시고 낮아지셔서 그들을 품으신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진정한 공유와 공감은 성육신에서 찾아볼 수 있다. 진리이신 하나님이 진리에서 벗어난 자들을 품으시고, 심판자이신 하나님이 구원의 은총을 베풀어 주시는 것은 모두 성육신으로 이루신다. 따라서 목회자들이 성도들의 마음을 공감한다는 것은 먼저 하나님의 마음을 품는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교회 안의 갈등 가운데 진리를 찾아가기 위해서는 어떠한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먼저 목회자 자신이 갈등의 중심에 서 있으면 안 된다. 목회자가 갈등의 중심에 서 있다면, 리더십을 내려놓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목회자가 중재자의 역할을 하는 경우라면, 무엇보다 자신을 비우고 하나님의 영광과 공동체의 발전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그때 해야 하는 생각이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 사이의 균형과 긴장이다. 하나님께서는 은혜의 하나님이신 동시에 진리의 하나님이다. 사랑의 하나님이신 동시에 공의의 하나님이다. 하나님의 DNA에는 늘 이 두 가지가 융합되어 있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는 사랑파와 진리파가 싸운다. 사랑만을 보면 진리가 보이지 않고, 진리만 보면 사랑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진리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올바르게 행하는 것이다. 진정한 사랑은 진리를 행하게 한다. 하나님의 진리는 결국 용서다. 하나님의 진리는 독생자에 대한 공의로운 심판을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신 사랑이다. 따라서 진리를 향하지 않는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다. 사랑으로 결론 내려지지 않는 진리는 진리가 아니다. ‘균형: 은혜와 진리’라는 글에서 다루었는데, 내가 옳다고 믿는 진리와 반대에 있는 상대의 진리를 품지 않으면 내 진리는 온전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지금 내 생각의 위치가 어느 꼭짓점에 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한다.

인세 전액이 산마루교회(담임 이주연 목사) 노숙인 사역에 헌금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성도들에게는 진리의 사색 이후 진리의 실천을 어떠한 방법으로 강조하고 있는가?
거창한 것보다는 아주 작은 실천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현장에서 바로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아에 시달리는 아프리카 사람들을 전부 먹일 수는 없지만, 매달 작은 액수를 통해 한 아이의 하루 한 끼는 섬길 수 있다. 그렇게 각자가 할 수 있는 대로 노숙인, 장애인, 탈북민 등 사회 약자들을 섬길 수 있다. 어떤 방법이든지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실천하다 보면 하나님께서 더 큰 순종을 할 수 있는 힘도 주실 것이다. 우리 주변의 노숙인들에게는 목욕이나 빨래를 할 수 있는 시설이 전무하다시피 한데, 인세가 노숙인 사역에 귀하게 사용되면 좋겠다.

최근 생각의 훈련에 도움을 받은 책이 있다면 무엇인가?
최근 기독교 고전인 어거스틴의 《고백록》을 다시 읽었다. 어거스틴은 진리를 탐구하며 개인의 죄성도 고백하지만, 그의 고백록에 나타난 회개는 잘못된 윤리·도덕적 회개일 뿐만 아니라 지적인 회개였다. 행동의 회개보다 더 중요한 것이 생각의 회개라는 것을 어거스틴의 고백록을 통해 묵상했다. 자신의 생각을 끊임없이 회개해야 한다. 우리는 생각의 회개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행동의 회개만 반복한다. 성도들이 가지고 있는 의문이나 의심을 비판하거나 가로막지 말고, 자유로운 의문과 의심을 통해서 깊은 생각에 이르도록 이끌어 줄 필요가 있다. 어거스틴도 수많은 의문과 의심을 했다. 생각의 깊이는 의심의 깊이만큼 깊어진다. 의심에는 ‘믿지 않으려는 의심’과 ‘잘 믿어 보려는 의심’ 두 가지가 있는데, 교회가 ‘잘 믿어 보려는 의심’은 긍정적으로 환영하고 대화하고 탐구하는 문화를 만들어 가면 좋겠다.

특별히 종교개혁 500주년의 목회 방향에 적용하고 나누고자 하는 ‘생각’이 있다면 무엇인가?
‘종교개혁’은 진리가 아닌 것에 대한 저항 정신, 본질을 회복하는 정신이다. 회복한다는 이야기는 보다 근본적인 개혁에 대한 바람이다. ‘래디컬’(radical)이라는 단어를 두려워하는데 그것은 뿌리를 찾는다는 것이다. 무엇을 변화해야 하는지는 다 알고 있다. 종교개혁자들은 성직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만인제사장이라고 강조했다. 교회의 제도와 질서는 다를지 모르지만, 목회자가 성도 위에 있다는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여전히 종교개혁이 필요한 것은 몰라서가 아니라 아는 것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진리를 다시 인정하고 순종하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책을 통해 나누는 부족한 생각이 독자들의 생각을 조금이나마 자극하는 단초가 되길 바라며, 진지하게 고민하는 한국 교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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