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특집

성도의 삶은 구원을 이루어가는 행복한 여행입니다(포항제일교회 이상학 목사)
- 2017년 1월호

새 신자들이 교회에 처음 등록하면 그들을 위한 새 신자 교육이 진행된다. 이 교육은 교회의 방향성과 강조점들을 핵심 교리에 담아 새 신자들을 훈련시키는 중요한 시간이다. 많은 교회가 새 신자 교육을 통해 성도의 기본적인 자질을 훈련하고 일꾼을 세운다. 포항제일교회 이상학 목사는 직접 새 신자들을 교육하고 훈련시킨 노하우를 담아 《시작하는 그리스도인에게》를 출간했다. 이상학 목사는 이 책에서 필수적인 교리와 신앙생활에 필요한 내용을 평신도들도 알기 쉽게 풀어냈다. 2016년 11월 24일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이상학 목사를 인터뷰했다.

새 신자들을 위한 책을 저술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포항제일교회를 부임하고 난 다음부터 새 가족들을 대상으로 성경 공부를 하고 가르친 내용들을 책으로 엮었다. 당시 김진홍 목사님이 지은 성경공부 교재인 《성도의 확신》을 기본 골격으로 삼고 미국에서 경험했던 목회 현장과 개인의 삶에 적용해 보고 얻은 반성적 성과물들을 통해 이 책을 썼다. 이 책은 새 신자들에게 신앙생활을 건강하게 할 수 있는 로드맵 역할을 한다. 
교회의 보통 분위기는 새신자들에게 예수를 빨리 영접시켜서 세례를 받게 하고 봉사 자리에 배치해 교회가 성장하고 양적으로 자라는 동력으로 삼고자 한다. 대부분의 목회자들에게 이런 욕구가 있다. 하지만 그런 과정을 거친 대부분의 새 신자는 중간에 문제가 생긴다. 영적 침체에 빠지거나 교회 일을 하다가 시험에 든다. 일을 잘하는 경우에는 본인을 과대평가해서 영적인 교만에 빠져 공동체를 해치게 되는 많은 경우를 봤다. 새 신자들에게 기독교 신앙의 본질과 핵심이 무엇인지 소개해 주고, 교회 생활에서 꼭 필요한 신앙 기준을 안내할 필요가 있다. 그들에게 신앙의 로드맵을 제시해 주어야 한다. 그래야 그들이 신앙의 본질을 붙잡고 균형 잡힌 교회 생활과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

새 신자들이 신앙을 시작할 때 중요하게 가르쳐야 하는 부분은 무엇인가
두말할 필요 없이 구원이다. 대개 선교 단체나 교회는 새 신자에게 사영리를 설명해 주고 영접하면 구원이 이루어졌다고 선포한다. 그런 구원의 확신은 심리적인 안정과 평안을 주지만 구원 이후의 삶에 대해서는 어떤 이야기도 해 주지 않는다. 구원받은 이후의 삶도 매우 중요한데 마치 구원과는 관련 없는 것처럼 치부된다. 예수님을 좇아 건강하고 신실하게 살아가려는 동력을 상실하게 만든다. 한국 교회 성도들에게 구원 이후 제자의 삶이 필수가 아닌 선택의 영역이 되어 버린 경우를 많이 보았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이 책은 구속과 구원을 구분해서 설명한다. 사도 바울은 구속 곧 죄 사함(엡 1:7)을 받았다고 얘기한다. 구원의 확신은 엄격히 말해 죄 사함에 대한 구속이다. 죄 사함을 받아 하나님과 자녀의 관계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이제 깨어졌던 자아와 파괴된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고 주님을 닮아가는 과정이 남았다. 이 과정은 구속과 관계된 것은 아니고, 이 과정을 밟지 않는다고 해서 죄 사함이 무너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것이 성도의 삶의 진면목이고 메인 게임이다. 내 안에 깊은 은혜를 체험하고 자신이 자라면서 자유와 해방을 얻게 되는 과정을 경험할 수 있다. 이 거룩한 여정은 행복한 여정이다. 교회는 성도들에게 이 행복을 맛보게 해야 한다. 회복되어 가는 성도가 누릴 수 있는 본래의 축복과 아름다움과 풍요로움을 제시해 주어야 한다. 구원은 치유와 회복과 자유를 삶의 전 과정에서 경험하는 지속적인 축복이다.

한국 교회가 갖는 구원의 확신에 문제점은 무엇인가
교회가 어려움을 겪는 핵심적인 원인은 구원에 대한 잘못된 이해다. 잘못된 이해는 그릇된 삶의 실천으로 귀결된다. 그래서 많은 성도들이 죄 용서-기쁨-범죄라는 비정상적인 패턴으로 살아간다. 여전히 죄에 묶여 있지만 일주일에 한 번 교회에 가서 면죄부를 받은 것으로 만족한다. 이것은 구원론의 문제이지 윤리적인 문제가 아니다. 윤리 조항이 하나 더 늘어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성도들이 하나님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동기를 제시해 줘야 한다. 성경에 나오는 모든 정언 명령들을 자발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동력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한국 교회 성도와 목회자 중에는 매우 엄격하고 분명한 신앙적 기준을 가진 이들이 있다. 이런 신앙은 자칫하면 율법주의적인 신앙에 빠지기 쉽다. 우리의 신앙은 ‘해야 하기 때문에 하는’ 신앙이 아니라 ‘하고 싶어서 하는’ 신앙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때 삶 속에 변화와 치유가 일어난다. 그 출발은 구원에 대한 바른 이해다.

구원의 과정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구속의 은총을 받은 성도들이 떠나는 행복한 첫 여행지는 예배다. 성도에게 예배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성도들에게 참된 은혜를 가르치기 위해서 바른 예배와 예배의 의미를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 교회는 설교 중심의 예배를 드린다. 모든 예전이 설교를 향해서 나아간다. 말씀 중심의 신앙이라는 측면에서는 좋을 수 있지만 위험 요소가 있다. 만약 설교자가 말씀 전달에 실패하게 되면 말씀을 듣는 성도들의 예배가 덩달아 실패하게 되기 때문이다. 설교자의 역량에 따라 성도들의 예배가 좌지우지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예배는 전체가 하나의 유기체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예배의 모든 마디마디를 통해서 당신 자신을 드러내신다. 그래서 처음에 들어올 때 예배 10분 전에 나오는 전주부터 시작해서 송영과 사죄 선포, 설교, 기도, 봉헌, 축도의 전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드러내신다. 설교가 중요하지만 말씀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다른 예전 속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역사를 간과하게 된다.
성도들은 설교자가 설교에 실패해도 하나님은 나를 향한 은혜에 대해서는 실패하는 일이 없음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예배의 모든 순서를 신실하게 드려야 한다. 예배의 전 과정이 성령의 역사인 것이다. 설교에 은혜를 받지 못했다면 찬양과 경배, 기도, 헌금 등의 순서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면 되는 것이다. 새 신자 때부터 예배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가지는 것은 이후 성숙한 신앙생활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성도 간의 교제에서 물질을 나누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새 신자들이 생각하는 성도의 교제는 세상에서 친구들을 만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성도의 교제는 혈연, 학연, 인연의 벽을 넘어 순수하게 예수님 안에서 자신을 내어주고 내어받을 수 있는 관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것은 새 신자는 물론 성도에게도 희망이며 도전이다.
대개 성도의 교제는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기도하는 영적인 교제다. 영적인 교제에는 물질의 나눔도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천덕 신부님은 그리스도인의 참된 교제는 영적 사귐의 마음을 경제적 나눔이라는 외피에 담아 전달함으로써 이루어진다고 말했다. 물질의 나눔은 영적인 교제를 싸고 있는 중요한 외피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성도를 보고 물질의 도움 없이 기도만 해 주는 것은 온전한 사귐이 될 수 없다. 이 시대는 물질 만능 주의 시대다. 교회 안에서 하나님만큼이나 성도들의 마음을 지배하는 것이 물질이다. 물질을 분명히 하지 않으면 신앙적인 진전은 생각할 수 없다. 루터도 지갑을 회개하는 것이 진정한 회개라고 말했다. 먼저 목회자가 확신을 가지고 성도들에게 권면할 수 있어야 한다. 물질을 나누는 것이 부담이 될 수 있겠지만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됐을 때는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주님이 주신 것이라는 고백이 있어야 한다.
새 신자들은 신앙의 수준이 낮기 때문에 물질 나눔을 부담스러워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목회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은 성령의 역사를 제한하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새 신자는 모든 것을 새롭고 신실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주 안에서 물질을 나누는 것은 부담을 주는 일이 아니라 공유하고 실천해야 할 덕목이다.

새 신자들에게는 생소한 내용인 은사를 강조한 이유는 무엇인가
마지막 파트에서는 은사에 집중했다. 새 신자들에게 은사는 생소한 단어다. 6-7주 정도 새 가족 공부를 진행하다보면 그들에게는 교회를 섬기고 싶은 마음이 일어난다.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이듯이 교회는 우리의 어머니다. 칼뱅은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 수 없듯이 성도는 교회를 떠나서 살 수 없다고 말했다. 새 신자는 예수님만 알아 가는 것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교회를 섬겨야 한다.
은사는 하나님이 주신 잠재력과 가능성을 꽃피우는 축복이다. 은사를 통해 내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이 드러나 온전한 신앙을 형성해 나가게 된다. 그런데 은사를 사용하여 교회를 섬기다 보면 어려움이 뒤따를 때가 많다. 성가대, 교사, 주차 등 은사를 따라 사역하는데 다툼이 생기고 마찰이 일어난다. 그래서 기도하게 되고, 그 기도로 공동체와 내가 성장하게 된다. 성가대, 교사, 주차 등 은사에 따른 봉사는 책임의 영역이 아니라 영적 성장의 영역이다. 새 신자 때부터 이를 가르쳐 섬김을 통한 성장에 대해 소망과 기대를 가지게 해야 한다.

은사를 받으려면 성령을 받아야 하는가
성령 충만이 반드시 은사 충만이 아니다. 은사 충만은 하나님이 주신 재능을 잘 사용할 때 말하는 용어다. 그 은사를 사용하고 있다고 해서 내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성령 충만하지 않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성령 충만은 성령님과 관계 속에서 깊숙이 붙들려 있음을 말한다. 그래서 감정적이기 보다는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붙들려 있는 자가 온전히 순종하게 될 때 나오는 상태다. 예를 들어 삼손과 같은 사사는 은사가 충만했던 자지만 성령 충만하지는 않았다. 그는 자신의 은사로 블레셋 사람들을 물리쳤지만 하나님과의 관계는 신실하지 않았다. 결국 본인 안에 있는 성욕이라는 약점을 간과하다가 그것에 걸려 넘어졌다. 은사가 충만하다 할지라도 항상 성령 충만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은사로 쓰임 받아도 내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가까워지고 성숙의 자리로 나가고 있는지 점검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소홀히 하는 덫으로 은사를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

교회만이 아니라 세상에서도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부분은 무엇인가
성도들이 지역을 섬기고 봉사하는 것을 성도의 의무로 여기고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봉사에도 생명과 연결된 부분이 있다. 그것을 잘 설명하는 부분이 누가복음에서 선한 사마리아 비유다. 이 비유를 강도 만난 이웃을 도와주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도덕적 측면에 집중해서 읽지만 그 이면에는 다른 의도가 숨어있다. 이 비유는 한 율법사가 예수님께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으리이까”라는 질문으로 시작됐다. 그 질문에 대하여 주님은 선한 사마리아인을 비유로 제시하셨다. 예수님께서 이 비유에서 제사장과 레위인은 강도 만난 자를 피해 지나갔다고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그들은 제사장이고 레위인이기 때문에 피 묻은 환자나 병자를 만나 피가 옷에 묻으면 자신이 가진 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할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직분에 대한 신실함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를 피해 갔다. 예수님은 하나님에 대한 제사장 직분을 설사 감당하지 못하는 위험을 감수하면서라도 이 강도 만난 이웃을 끌어안고 싸매 주는 것이 진정한 경건이고 영생이라고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25장의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도 마찬가지다.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심으로써 도덕적 선행이 주님과의 관계와 직결돼 있는 결정적인 사건임을 보여 주셨다. 외형적이고 율법적인 형식과 자리에 얽매이기 보다는 자신이 더럽혀지더라도 이웃을 섬기고 돕는 자가 주님과의 진정한 만남과 생명이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봉사도 결국 주님과의 관계에서 풀어내야 하는 행복한 자리다. 

:: 필자 정보 - 글 이필행 기자 · 사진 정화영 기자

인신모독성 댓글, 광고성 댓글은 관리자가 임의로 삭제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품위를 지키는 댓글 문화를 이룹시다.
                          

독자의견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