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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하나님 안에서 만족할 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 2017년 7월호

베들레헴침례교회 존 파이퍼 원로목사


지난 5월 29-31일 디자이어링 갓(Desiring God) 목회자 콘퍼런스와 부흥 집회가 양재 온누리교회에서 열렸다. 이번 행사의 주 강사로 방한한 존 파이퍼(John Piper) 목사는 ‘기독교 희락주의자’, ‘기쁨의 신학자’로 불리는 기독교 대표 복음주의자다. 그는 6년간 베델대학교에서 가르쳤으며, 설교자로의 소명을 받고 베들레헴침례교회에 부임해 2013년까지 33년간 목회했다. 은퇴 이후 베들레헴신학교 총장직을 맡고 있으며, 디자이어링 갓 사역을 통해 많은 교회를 지원하고 있다. 최근 《존 파이퍼의 초자연적 성경 읽기》, 《성경과 하나님의 영광》 등 그의 메시지를 담은 책이 출간되기도 했다. 5월 30일 용산 그랜드 하얏트 호텔 미팅룸에서 있었던 인터뷰 내내 존 파이퍼 목사는 솔직한 모습으로 질문 하나하나에 정성껏 대답했으며, 그의 목소리에는 복음에 대한 자신감이 묻어났다.
 

목사님은 대학 강단에서만이 아니라, 설교를 통해 많은 이들에게 복음을 전해 오셨습니다. 지난 목회를 통해 경험하신 기쁨과 도전은 무엇이었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사도 요한이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도다”(요삼 1:4)라고 한 것처럼,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워지는 것을 지켜보는 일은 엄청난 기쁨이었습니다. 성도들이 말씀을 이해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기뻐하는 모습으로 성장했습니다. 특히 고난 가운데 있는 이들이 하나님 안에서 잘 감당하며 살아갈 때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은 제 사역의 중요한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제 인생의 하이라이트는 항상 설교였습니다. 다른 사역에서 느끼는 보람도 컸지만, 무엇보다 매주 강단에서 하나님의 말씀의 문을 여는 것은 정말로 멋진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순간이 설레지 않았던 적은 30여 년간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물론 준비 과정은 너무나 힘들고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설교가 준비되고, 원고가 마무리되고, 마음에 새겨지면 진정한 기쁨이 생겼습니다. 
사실 대학에서 일하다가 말씀을 전하기 위해 부르심을 받고 교수직을 떠나야 했을 때 큰 손실을 입게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시간의 자유 없이 바쁜 목회 스케줄의 압박에 시달리다 보면 창의성과 성경에 대한 통찰력을 잃게 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양들을 위해서 목회자에게 성경의 의미를 밝히 보이기를 원하십니다. 목회자의 흥미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저는 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보통 학문적 흥미를 중심으로 성경을 대했습니다. 그러나 설교자가 된 이후에는 성경을 두드리며 “아! 내가 사람들에게 뭐라도 전해야 하는데 … 주님 이것이 의미하는 바를 저에게 밝히 보이소서”라고 기도하곤 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하나님을 더 많이 발견할 수 있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써 온 책의 내용들도 목회를 통해서 경험했던 압박과 훈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죄를 다루는 목회자로서 좌절하고, 어려움을 겪을 때도 있었을 텐데 어떻게 극복하셨는지요?
제가 아는 가장 큰 죄인은 바로 ‘존 파이퍼’입니다. 저에게는 제 자신이 최악의 문젯거리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저를 실망시키거나 좌절하게 만들 수 있지만, 저를 지옥에 떨어뜨릴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제 자신이 믿음을 저버리면 지옥에 갈 수 있고, 사랑하기를 그만두면 결혼생활도 파탄에 빠질 수 있습니다. 한 개인의 삶에는 세상의 전쟁보다 배우자나 자녀 문제가 더 큰 영향을 줍니다. 저 역시 결혼생활에 대해서 47년간 고민해 왔고, 이를 위해 여전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결혼생활에 대해 다른 이들과 이야기하며 도움을 요청하고, 상담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아내와 저는 서로 더 나은 대화의 방법을 찾아갔습니다.
때로는 가정이 목회자들에게 가장 큰 낙심을 안겨 주는 곳이 되기도 합니다. 저에게는 네 명의 아들과 한 명의 딸이 있는데, 사실 모든 자녀들이 예수님을 잘 따르는 것은 아닙니다. 저희 부부를 슬프게 하는 아들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저를 보며 유명한 목회자의 삶을 부러워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만약 자녀들이 당신이 하는 일을 존경하지 않는다면, 이 모든 유명세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가정사보다 가슴 아픈 것은 없습니다. 한국 교회의 상황을 잘 알지 못하지만, 목회자가 이러한 부분을 교회에 밝히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정직한 환경의 교회에서 성장하고 있다면, 반드시 교회의 리더들과 이러한 삶의 무게를 나누십시오. 당신을 위해 기도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감사하게도 가정에서와 달리 교회에서는 낙심한 일이 별로 없었습니다. 처음 교회를 개척했을 때는 사역자가 저와 다른 사역자 한 명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25명의 목회자와 40여 명의 장로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목회자와 장로들 간의 관계가 너무나 돈독합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오랜 시간 공을 들여 목회자와 장로들이 성경적 기준을 세워 신학적으로 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좌절을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1992년에 한 예배 인도자가 불륜을 저질렀습니다. 200여 명의 성도들이 교회를 떠났고, 4년간 교회는 성장하지 못했습니다. 교회의 암흑기였지만 우리는 함께 회개하고 주님께 간구했습니다. 스스로를 겸손하게 낮추었으며, 리더들 간의 교제는 아름다웠습니다. 그리고 지난 20여 년 동안 우리는 회복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해 왔습니다. 이렇게 교회에서 그리고 가정에서 낙심되는 일들을 겪었지만, 지난 33년을 돌아보면 오직 감사와 찬양이 넘칠 뿐입니다.

사역 가운데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것은 무엇이 있는지, 우선순위에 대한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저는 사역의 단순화를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사실 사역에 대한 책을 많이 읽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전심으로 성경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목회자들이 목회에 대한 입문서(how to books)를 읽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낸다는 사실이 안타깝습니다. ‘어떻게 교회를 이끌어 가며, 어떻게 예배하고, 어떻게 성장하고, 어떻게 훈련하며, 어떻게 전도하고, 어떻게 선교하는지’에 대한 책들 말입니다. 모두 ‘어떻게’(how)에 대한 것입니다. 새신자들이 친근함을 느끼게 하기 위해 교회 벽을 어떤 색깔로 칠해야 하는지는, 목회자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목회자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생명입니다. 목회자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깊이 있게, 전심으로 알아야 하고, 그 지식은 어떤 환경에서도 흔들림이 없어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우리는 성경 안에서 매일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분을 연구의 대상으로만 여기지 마십시오. 목회자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알아야 하고, 성령으로 충만해야 하며, 기도의 사람이 되어야 하며, 성경 연구자가 되어야 하며, 사랑이 넘치고, 성도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목회자는 ‘나는 진심으로 성경의 말씀 하나하나를 행하며 살아가는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말씀을 행함이 내가 해치워야 할 일들의 목록 중 하나여서가 아니라, 우리의 친구 되시고, 사랑 되시고, 돕는 자 되시고, 주님 되시고, 보물이 되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기 때문에 행하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더불어, 기도는 성경과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어우러집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기도하게 됩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도움을 요청하는 구절들이 가득합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열두 사도가 제자들을 불러 그들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받는 사람 일곱을 택해 그들에게 일을 맡기고 자신들은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고 말했습니다(행 6:3-4). 여기서 말씀 사역은 말씀을 묵상하고, 연구하고, 생각하고, 전하고, 하나님의 능력 앞에 머리를 숙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한국뿐 아니라 미국의 목회자들도 직면한 문제들이 매우 많습니다. 입문서가 주는 전략으로는 생기 없는 영혼과 사악한 심령, 세상에 가득한 악한 문화의 영향력에 대항해 이길 수 없습니다. 이는 마치 장난감 총을 들고 탱크에 맞서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에게는 성령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수 있도록 말입니다.

이번 집회에서 ‘복음으로 빚어진 하나님의 종’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복음으로 빚어진 마음, 복음으로 빚어진 생각, 복음으로 빚어진 입’ 등에 대해서 설명해 주십시오.
어디를 가나 저의 메시지는 ‘하나님의 영광’과 ‘사람들의 기쁨’ 그리고 이 둘의 관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이러한 메시지는 제가 22살에 발견한 바를 기초로 합니다. 당시 저는 극심한 좌절과 불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저에게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실 분이며, 우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 한다”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라는 말씀을 나누셨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믿고 행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에게는 행복해지고 싶은 욕구가 더 컸습니다. 사람에게 식욕이 있는 것처럼 행복하길 원하는 자연스러운 마음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저는 성장하면서 이것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즉 하나님의 영광과 기쁨의 관계가 순차적인 것인지 나란히 병행하는 것인지를 놓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목사님들이 “여러분은 자신이 원하는 일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라고 설교하는 것을 들을 때마다 ‘나의 의지나 생각이 아닌데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과연 하나님의 뜻과 내가 원하는 것이 같을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으로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러다 1969년에 스승이었던 다니엘 풀러와 신앙의 선배인 조나단 에드워즈를 통해 동일한 한 가지 진리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기쁨 중 하나만 택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선택할 필요가 없을 뿐 아니라, 감히 선택하려고 들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하나님 안에서 기쁨을 추구하지 않으면, 결국 이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기쁨을 누리라는 명령은 진정 중요한 계명입니다. 그래서 저희 베들레헴신학교의 교훈은 ‘진정한 기쁨 안에서의 교육’입니다. 우리는 행복하도록 허락받았을 뿐만 아니라, 행복하도록 요구받았습니다. 우리는 가장 행복한 것에 영광을 돌립니다. 만약 제가 어느 스포츠에 대해 이야기하느라 대부분의 시간을 소비한다면, 다른 사람들은 제가 스포츠를 영화롭게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이 기뻐하는 것을 영화롭게 합니다. 이러한 사실은 제 삶의 모든 것을 변화시켰습니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가장 만족할 때,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가장 영화롭게 되신다”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만족을 얻든지, 아니면 다른 곳에서 만족을 찾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가장 만족할 때 하나님은 영화롭게 되십니다. 여기서 가장 만족하는 상태는 이를 위해 우리의 목숨을 내어놓을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를 위해 희생하고, 그 희생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0:2-3에 보면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열심이 있었지만, 지식을 동반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마음을 뜨겁게 하는 세상 가치를 따라갔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사람들에게 만족감을 주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마음속에 불꽃을 일으킬 수 있는 연료를 찾습니다. 이것이 생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적절한 불쏘시개를 끊임없이 던져 주어야 합니다. 목회자는 가르치는 사역으로 양들에게 하나님을 향한 생각을 먹여야 합니다. 그 생각이 마음으로 가서, 마음이 기쁨으로 가득 차고, 변화를 일으키며, 새로운 삶을 살아갈 때 이를 통해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최근 출간된 《존 파이퍼의 초자연적 성경 읽기》를 통해 많은 도전을 받았습니다. ‘초자연적 성경 읽기’란 무엇인지 간단히 설명해 주십시오.
성경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그 목적을 이루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하나님의 초자연적 도움이 필요한데, 그것은 자연적 성경 읽기를 통해서 가능합니다. 단어의 뜻을 알려면 그 언어를 이해해야 하는데, 이것은 순전히 자연적인 노력입니다. 어린아이들은 3-4세에 언어가 발달하고, 그 언어를 잘하려면 최소한 18년 정도가 걸립니다. 이렇듯 성경을 제대로 읽으려면 최소한 18년을 읽어야 하고, 헬라어·히브리어를 공부하면 독해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습니다. 이방인들도 이런 방법으로 성경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들은 명사·동사, 주어·목적어, 전치사·접속사를 분석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자연적인 것입니다. 물론 우리도 이러한 방법을 행해야 합니다.
성경의 목적을 깨닫게 되면 나 같은 끔찍한 죄인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열렬한 마음으로 말씀의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실로 불가능한 일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즉, 이 세상에 자연적인 수단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자는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죽었고, 무감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성경의 진정한 목적을 이루려면 초자연적 방법으로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이것은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이시도록 간구하는 것입니다. “내 눈을 열어서 주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시 119:18), “일심으로 주의 이름을 경외하게 하소서”(시 86:11),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이 우리를 만족하게 하사”(시 90:14). 이렇게 주님께 부르짖는 것입니다. 《존 파이퍼의 초자연적 성경 읽기》는 어떻게 하면 성령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에 온전히 의지해 성경으로 나아갈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의 결과물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성경을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실질적인 방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최고로 높이는 설교를 할 수 있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성경 읽기와 마찬가지로 설교도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목적, 초자연적 측면, 그리고 자연적 측면’입니다. 사실 몇 달 전 설교에 대한 새로운 책을 마무리했습니다. 이 책의 제목은 Expository Exultation입니다. 설교에 대한 저의 생각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제목처럼 설교는 강해(exposition)입니다. 성경의 여러 구절들을 강해하며 진정한 의미를 분석하는 것입니다. 이 과정은 성경을 읽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많은 수고가 요구됩니다. 이것이 자연적인 측면입니다. 저는 설교를 준비할 때 대부분의 시간을 여기에 할애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바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입니다. 단어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저자들이 정말로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말하는 실제 현장은 어떠한 상황이었는지 탐구합니다. 더불어 이 모든 과정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이 말씀의 중요성을 보이시고, 이 말씀이 현실의 삶과 어떠한 관련이 있는지 눈을 열어 알게 해 주시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여기에서 초자연적인 측면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한 가지를 나누자면, 저는 강대상에 오르기 전에 약 30초간 교회 의자에 앉아 ‘A·P·T·A·T’를 합니다.
첫째로, A는 ‘인정’(Admit)입니다. “주님, 나는 할 수 없습니다. 저 혼자서는 생각도 할 수 없고, 숨도 쉴 수 없고, 저는 그저 속수무책인 자입니다”라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
둘째로, P는 ‘기도’(Pray)입니다. 필요하다고 느끼는 모든 것을 간구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능력과 자유가 필요합니다. 자기 이익을 초월해야 합니다. 이것은 설교자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선물입니다. 설교를 할 때 우리는 자신을 의식하지 말고 자유함을 얻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내 설교를 좋아할지, 내 모습이 괜찮은지, 팔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목소리는 어떤지 등등에 신경 쓰지 말고 설교 중에 자신을 잊어버릴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회개하게 하는 능력을 위해, 겸손하게 하는 마음을 위해, 여러분의 교회에서 필요로 하는 것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셋째로, T는 ‘신뢰’(Trust)입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이것을 잘 이해하지 못하더군요. 우리는 모두 믿음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성령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믿음으로’ 설교하고, ‘성령으로’ 설교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에 대한 믿음을 가져야 하지만, 사람들은 이렇게 구체적인 약속을 믿지 못합니다. 설교하는 순간에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마음에 말씀하시고 역사하실 것이라는 약속을 믿지 못합니다.
저는 에베소서를 읽다가 “우리가 그리스도로 인해 하나의 성령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엡 2:18)라고 말씀하신 부분에서 잠시 멈출 수밖에 없었고, 여기에서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발견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은 것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 하나님을 이 한 구절에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설교하기 30초 전에 의자에 앉아서 이 말씀을 붙잡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내 아들로 말미암아 성령 안에서 나에게 나아감을 얻었다. 내가 여기 있다. 내가 너를 도우리라. 가서 행하라”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제가 말하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강대상에 선 우리에게 자유와 담대함을 줍니다. 우리는 성경 읽기를 통해서 이러한 구체적인 약속의 말씀에 집중하며 붙잡아야 합니다.
넷째로, A는 ‘행함’(Act)입니다. 성경은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빌 2:12-13)라고 말씀합니다. 내가 행하지만 지금 실제로 행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내가 생각하고 말하는 지금도 하나님은 여기에 함께 계십니다. 바울은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라고 말했습니다. 내가 일할 때 하나님이 함께 일하십니다. 내가 설교할 때도 하나님이 함께 설교하십니다. 제가 말하는 행함은 바로 이것입니다. 여러분의 머리와 팔과 입을 사용해 행하십시오. 자신의 무능력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이 역사하시기를 기도하십시오. 또한 그분의 행하심을 믿는다면 하나님은 당신의 행함을 통해 역사하실 것입니다.
마지막 T는 ‘감사’(Thank)입니다. 어제 집회에서도 저는 강대상에서 통역이 잘 되고 있는지 사람들이 잘 이해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뒤돌아서서 무대를 내려오며 감사를 드렸습니다. 여기까지가 설교의 순간에 대한 접근입니다.

설교 준비 과정에 대해서도 도움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먼저 본문을 선택합니다. 이에 대한 계획을 미리 세워 두면 매주 어떤 말씀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8년간 로마서를 설교했습니다. 본문이 준비되었다면 각 구절마다 몇 번의 설교를 할 것인지 정하면 됩니다. 그리고 제가 사용하는 기술 중 하나는 ‘호 그리기’(arcing)입니다. 이것은 하나의 문단을 전치사를 기준으로 구분하는 것입니다. 전치사들 사이의 관계를 통해 해당 문단에서 말하고자 하는 하나의 핵심 포인트를 찾아내는 기술입니다.
로마서를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롬 1:15). 다음 16절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는 새로운 전치사 ‘for’로 시작합니다. 이어서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에서 또 전치사인 ‘for’가 나옵니다. 17절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도 전치사 ‘for’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에도 새로운 전치사인 ‘as’가 나옵니다.
여기에는 총 6개의 전치사가 등장하는데, 놀랍게도 모두 ‘왜냐하면’(because)과 관련이 있습니다. 저는 이를 통해 이 본문을 어떻게 설교해야 할지 결정할 수 있었습니다. 본문의 논리가 어떤 포인트로 설교할지를 결정한 것입니다. 이 모든 구절은 처음에 등장한 구절대로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열심을 설명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이 구절은 가장 중요한 구절은 아니었지만, 그의 핵심 포인트였습니다.
이것은 복음이 구원의 능력이며, 바울이 로마에 가는 것보다 복음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논쟁의 흐름보다는 포인트가 더 중요합니다. 설교를 할 때 우리는 특정한 결론에 도달한 과정을 분명하게 설명해 주어야 합니다. 방금 살펴본 로마서는 비교적 쉽고 간단한 구조를 가졌지만, 어떤 구절들은 무척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준비하는 데 긴 시간이 필요합니다.

바쁜 목회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는 한국의 목회자들에게 격려와 조언의 말씀 부탁드립니다.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원칙 하나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 이상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너무 많은 것을 감당하기 위해 타인의 아이디어를 빌리면 오히려 역효과가 일어납니다.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의 설교나 책을 읽고 소화한 후 설교를 하면, 성도들은 목회자가 다른 사람의 신발을 빌려 신고 달리고 있음을 단번에 알아챌 것입니다. 목회자는 자신에게 요구되는 일을 얼마나 진정성 있게 감당할 수 있는지 스스로를 돌아봐야 합니다. 그리고 만약 자신이 할 수 있는 일 이상을 계속 요구받는다면, 다른 이에게 맡기도록 하든지 다른 교회로 가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스도의 피로 직접 사신 양 떼를 먹이는 일(행 20:28)을 절대 가볍게 여기지 마십시오. 그것은 커다란 특권이자 귀하고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 또한 비교할 수 없이 가치 있는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문제와 어려움 속에서도 부르심의 영광은 실로 엄청난 것입니다. 여러분은 영원한 것들을 위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을 위한 부르심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깨달으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가정이나 교회의 문제가 절대 여러분을 무너뜨릴 수 없을 것입니다. 고난이 지나면 당신은 더욱 강해질 것이고, 이를 위해 일생을 살아왔다는 사실에 기뻐할 것입니다.

:: 필자 정보 - 진행 스티브 차 편집장 · 글 현수철 기자 · 사진 정화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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