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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평신도의 직업 소명 의식
- 2017년 7월호

성직주의의 극복이었다. 루터는 만인제사장 개념을 통해 사제와 평신도 간에는 어떠한 존재적 차이도 없음을 천명했다. 여기서 만인제사장은 단순히 오늘날 교회 안의 목회자와 평신도의 관계를 말하기보다, 영적 직분과 세속직 사이에 차이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목회를 ‘성직’이라고 표현하듯이 성도들의 직업 활동 역시 거룩한 직분이며 하나님께서는 이 일로 모든 신도를 부르셨다는 것이다. 따라서 단순히 생계 활동을 하기 위해 직업을 갖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최선을 다해서 직업 활동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종교개혁 이래 개신교의 전통은 교회 안에서의 삶에만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요구되는 엄격한 윤리 기준을 개신교인들의 모든 생활에 확대해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하나의 의례로서 예배에 참여하는 것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실천 윤리의 행동 지향성이 각자의 삶의 무대 위에서 표출되어 나타나야 한다. 일부 근본주의 기독교인들의 주장과 달리, 현실 세계를 부정하지 않고 그 안에서 초월의 기준에 따라 삶을 영위하며 사회를 변화시켜 나가는 것이 개신교의 전통인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바로 소명 의식이다. 목회에 대한 소명으로 목회자를 부르셨듯이, 하나님께서는 각자의 직업 활동에 대한 소명으로 평신도를 부르셨다. 그리고 이를 통해 영광 받길 원하신다는 소명 의식이 바로 정립되어 있어야 이러한 삶을 살 수 있다. 본고에서는 ‘한국교회탐구센터’가 주관하고 필자가 책임을 맡아서 설문조사한 결과를 바탕으로 평신도들의 직업 소명 의식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조사는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지앤컴 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3월 10-27일에 19세 이상 개신교인 1,000명을 대상으로 모바일 및 온라인으로 진행되었다.

평신도의 정체성 인식
먼저 평신도의 정체성과 관련해 ‘평신도’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질문했다. 이에 대해 ‘목회자를 제외한 모든 성도’라는 응답이 65.8%, ‘목회자를 포함하는 모든 성도’가 27.9%로 3명 중 2명가량이 평신도 개념에 목회자를 포함시키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평신도에 대한 이해는 학자에 따라 다를 수 있으나, 평신도 신학자들은 역사에서 볼 때 성직을 전담하고 있는 목회자와 그렇지 않은 평신도의 구분이 성도의 본질적 성격에 관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1 성직자도 성직의 기능을 수행하는 평신도로서 평신도의 신분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2 그러나 이번 조사에서는 평신도에 목회자를 포함한다는 의견은 3분의 1에 이르지 못해 평신도 신학자들의 견해가 일반 성도들에게는 깊이 인식되지 못하고 있음을 나타냈다.
다음으로 성경 말씀 중에서 “너희는 왕 같은 제사장”이라는 구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모든 성도가 제사장이므로 나도 곧 제사장이라고 생각한다’는 답변이 47.6%, ‘상징적인 표현일 뿐, 모든 성도를 제사장으로 생각하기는 어렵다’가 44.5%로 두 의견이 비슷한 응답률을 보였다. 이 성경 말씀은 이른바 ‘만인제사장론’을 의미하는 것으로 모든 그리스도인이 세속적 직업을 버리고 목회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세속적인 직분들 속에서 제사장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이 평신도로 하여금 교회에서만 주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역사에서도 주체가 됨을 선언하는 말이다. 이러한 점에서 만인제사장이 제시하는 제사장직의 새로운 패러다임은 단순히 대상을 목사로부터 모든 그리스도인에게로 확장하는 것이 아니라, 제사장직의 자리를 교회에서 세상으로 확장했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이번 조사에서는 절반에 가까운 응답자들이 이것을 상징적인 표현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또한 목회자와 평신도의 차이에 대해서 두 가지 의견을 제시하고 자신의 의견과 가까운 것을 선택하게 했는데, ‘목회자와 평신도는 직분에 따른 역할 차이가 있을 뿐 신분상의 차이는 없다’가 60.8%, ‘목회자는 영적 지도자이고 평신도는 이에 따라야 하므로 신분상에도 차이가 있다’는 35.3%로 나타났다(〈그림1〉 참조). 개신교인 5명 중 3명가량은 자신과 목회자가 신분상에서 차이가 없다고 인식하는 것이다. 평신도 신학자들은 성직자나 평신도 사이에는 기능상의 차이는 있지만 존재적인 차이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신자는 의미상 성직자됨 보다 선행하는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응답자들 중 3분의 1이상은 신분상에도 차이가 있다고 인식했다.
평신도의 직업 소명 의식
평신도의 직업 소명 의식을 알아보기 위해 먼저 현재 직업을 갖고 있는 자영업자, 블루칼라, 화이트칼라, 농림·어업에 종사하는 응답자 654명을 대상으로 “현 직업을 선택하시기 전에 소명을 고려하였는지”에 대해 질문했다(〈그림2〉 참조). 그 결과 ‘고려했다’는 36.1%, ‘고려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되었다’는 52.0%로 고려하지 못했다는 응답이 더 많았다. 직업별로 소명 고려 여부를 살펴보면 자영업자, 블루칼라, 화이트칼라 세 직업 중에서 블루칼라가 29.6%로 가장 낮게 나타났다. 고용 형태별로는 정규직 39.8%, 비정규직 28.3%, 임시직 21.0% 순으로 조사되었다. 어느 정도 안정되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일수록 직업 소명을 고려한 경우가 많았다고 응답해 직업 소명이 직업의 내용이나 귀천과 상관없이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매우 제한적으로 적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다음으로 현재 직업을 갖고 있는 응답자(654명)를 대상으로 현 직업을 최종적으로 선택할 때 ‘소명’과 ‘연봉, 적성, 이동거리 등 현실적인 상황’ 중 어느 것을 기준으로 선택했는지 물었다. ‘소명’ 23.3%, ‘연봉, 적성, 이동거리 등 현실적인 상황’ 69.1%로 소명을 기준으로 선택한 경우는 4명 중 1명에 불과했다. 최종 직업 선택 기준을 소명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정규직 근로자(24.9%), 20대 젊은 층(31.8%), 교회 중직자(38.0%), 경제 수준 중상 이상(40.3%)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경향을 보였다.
또한 이들에게 “현재 종사하는 일이 소명에 맞는지”를 질문했는데, ‘그렇다’ 67.0%, ‘그렇지 않다’ 31.3%로 3명 중 2명가량은 현재 직업이 자신의 소명에 맞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앞의 조사 결과와 비교해 보면, 직업을 선택할 때는 소명과 관련해 선택하지 않았지만, 선택한 이후에 소명에 맞는다는 것을 발견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현재 직업이 소명과 일치한다는 응답은 고학력층(69.4%), 정규직(71.1%), 화이트칼라(72.8%) 순으로 높은 경향을 보였다. 이러한 결과 역시 어느 정도 안정되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일수록 소명에 맞는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어 성도들이 직업의 귀천과 상관없이 소명 의식을 갖도록 도울 필요가 있겠다.
이와 관련해 사회학자인 막스 베버는 신정론에 대해 설명했다. 그에게 신정론은 종교적 믿음이 지금의 계층 체계를 신의 뜻에 의해 확립된 것으로 인가한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베버에 따르면, 특권 계급의 경우 자신들이 희소가치를 소유한 것을 신이 부여하는 것으로 설명하는 ‘행운의 신정론’을 발전시키고, 비특권 계급에서는 현존하는 불평등 구조를 부정적으로 보며 내세에서의 보상을 기대하는 ‘보상의 신정론’을 발전시키게 된다.3 이 이론에 따라 해석한다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그것이 소명과 맞다고 해석하고 받아들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그 직업에 대한 만족이나 소명 의식을 갖지 못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개신교인들이 직장에서 성경적 가르침대로 실천하며 사는 것이 가능할까? 이에 대해 직업을 가진 개신교인(654명)을 대상으로 질문했는데, 그 결과 ‘가능하다’(매우+어느 정도) 57.3%, ‘가능하지 않다’(별로+전혀) 38.6%로 가능하다는 인식이 불가능하다는 인식보다 훨씬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에서 성경적 가르침대로 실천하며 사는 것이 ‘가능하다’라는 인식은 직장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는 40-50대 연령층(40대 60.8%, 50대 59.4%)과 정규직(60.2%), 경제 수준 중상층 이상(72.7%), 교회 내 중직자(75.5%), 규모 1,000명 이상 교회 교인(62.9%)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경향을 보였다. 반면에 ‘불가능하다’라는 인식은 블루칼라(43.1%), 비정규직(44.2%), 경제 수준이 중하/하층(46.7%)에서 높게 나타났다. 사회적으로 지위가 낮을수록 직업에 대한 소명 의식뿐 아니라, 성경적으로 실천하며 살기 어려운 열악한 환경으로 인식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직장에서 성경적 가르침대로 실천하며 사는 것에 대해 ‘상황적으로 시도하기 어렵다’가 39.2%로 가장 높았고, 그다음 ‘노력해서 일정 부분 성경대로 실천하고 있다’ 33.9%, ‘노력해 봤는데 잘 안 되었다’ 17.5%로 3명 중 1명가량은 일정 부분 노력해서 실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그림3〉 참조). ‘상황적으로 시도하기 어렵다’라는 응답은 남자(42.7%), 30대 연령층(44.6%)에서 높았으며, 한편으로 경제 수준 중하 이하(42.2%), 고졸 이하(43.0%), 블루칼라(43.9%)에서 높은 경향을 보였다. 저학력 저소득층의 블루칼라 직업군이 직장에서 성경적으로 실천하기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었다.
다음으로 직업 소명과 관련해 교육받은 경험에 대해서 ‘있다’는 응답이 32.6%로 3명 중 1명가량으로 나타났고, 절반 이상은 교육받은 경험이 없었다. 그리고 직업 소명 교육을 받았다고 응답한 326명을 대상으로 직업 소명 교육의 도움 정도에 대해 질문했다. 그 결과 ‘도움이 되었다’(매우+약간) 85.5%, ‘도움이 되지 않았다’(별로+전혀) 12.8%로 대부분의 교육 경험자들이 교육 효과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고용 형태별로는 정규직(85.4%), 비정규직(83.1%), 임시직(79.3%) 순으로 나타나 정규직이 아닌 다른 고용 형태에서도 적용될 수 있는 소명 교육의 개발이 필요한 실정임을 나타냈다.
직업 소명 교육이 도움이 되었다는 응답자(279명)를 대상으로 어떤 면에서 가장 큰 도움을 받았는지 질문했다. ‘어떤 직업이든지 소명감을 갖고 일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됨’ 76.2%, ‘어떤 직업을 선택하면 되는지 방법을 알게 됨’ 17.9%, ‘소명이 있는 직업을 찾게 됨’ 5.2%로 4명 중 3명 정도가 직업 선택 방법보다는 직업 소명 자체의 중요성을 인지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응답했다.
직업 소명에 대해 루터는 모든 직업은 하나님이 부여하신 소명(calling)임을 강조했고, 칼뱅 역시 그 어떤 직업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봉사의 현장임을 역설했다. 따라서 직업에는 귀천이 없고 모든 직업에 대해 소명 의식을 갖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일부 직업 소명 교육 중에는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안정된 직업을 선택하도록 안내하거나, 그런 직업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직업이라는 식으로 오히려 그릇된 직업관을 심어 주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결과에서도 4분의 1가량이 그러한 직업관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바른 직업 소명 교육이 필요함을 알 수 있었다.
전체 응답자를 대상으로 현재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소명으로 인식하는지 물었다(〈그림4〉 참조). 그 결과 ‘소명으로 인식한다’ 36.5%, ‘소명이라고 인식하지 못한다’ 54.7%로 3명 중 1명 정도만 소명으로 인식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를 직업별로 살펴보면, 소명 인식이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계층은 가정주부(86.1%), 학생(44.8%), 무직(27.5%), 자영업(24.3%), 블루칼라(22.9%), 화이트칼라(19.7%) 순으로 조사되었다.
이 결과의 한 가지 특징은 예상과 달리 가정주부의 역할도 소명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응답이 높게 나왔다는 점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주부는 직업이 없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강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주부로서의 소명 인식이 높게 나왔다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결과로 여겨진다. 그러나 가정주부를 포함해 학생이나 무직자들은 자신의 일을 소명으로 여기거나 소명을 이루는 과정으로 이해하는 데 반해, 실제로 가정 밖의 직장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서는 소명으로 생각한다는 응답이 20% 안팎으로 매우 낮게 나와 이른바 사회생활을 하는 기독교인들이 자신의 직업을 소명으로 생각하는 인식은 매우 부족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가는 말
이번 조사 결과와 관련해 우리는 평신도의 올바른 자리와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교회 지도자들은 평신도들을 훈련시켜서 교회 안에서 많은 봉사를 하도록 요구한다. 요즘 보편화되고 있는 ‘작은 목자’라는 개념은 평신도를 목회의 동역자로 인정한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나, 자칫 평신도를 교회 안에만 매여 있게 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물론 교회 안에서 요구가 있을 때 이를 위해 봉사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나 평신도들이 교회 안에만 매여 있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상황이 아니다. 평신도는 오히려 소명을 따른 직업 활동을 통해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한다.
평신도들은 이미 세상에 보내진 자들이다. 일상생활의 대부분을 직장과 같은 일반 사회 안에서 보내는 평신도들은 전문 목회자들과 같이 교회 안에서의 활동에 몰두하기보다는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맡은 바 책임을 다해야 한다. 평신도들의 삶의 자리는 ‘교회’가 아니라 ‘사회’다. 이미 보내진 사회 각각의 영역에서 기독교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책임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평신도들의 삶의 자리인 사회에서 기독교인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자발적이고 자율적인 사회 활동이 이루어져야 한다. 기존의 한국 교회의 대사회 활동은 교회 안에 있는 일반 구성원들의 활동이라기보다는 주로 목회자를 비롯한 교회 지도자들과 명망가들을 중심으로 한 활동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요즘 자주 논의되고 있는 시민 사회는 시민의 참여를 바탕으로 하는 사회이고, 풀뿌리로부터의 실제적인 참여가 있어야만 진정한 의미에서 시민들이 주인이 되고 주체가 되는 사회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한국 교회가 교회 울타리 안에 머물지 않고, 울타리 밖의 사회와 소통하며 참다운 시민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교회 안에 조용히 머물러 있거나 기껏해야 교회 안에서의 활동에 몰두하고 있는 대다수의 한국 교회 구성원들이 한국 사회에서 의미 있는 참여자가 될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기독교인들은 사회 각 영역에서 기독교인다운 삶을 살아야 하고, 기독교 시민 의식을 갖고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독려되어야 한다. 사회생활에서 양심 있는 시민이 되도록, 사회를 개선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세우고 운영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정치 문제들에 대해 잘 알 뿐만 아니라 자신의 양심에 따라 지지하거나 반대하도록 격려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지역사회 회의나 학교 회의, 시의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하고, 시민으로서 그들이 관심을 갖는 시민 단체, 사회 운동 단체에 책임감을 갖고 참여하도록 권장되어야 한다. 그리고 필요에 따라 기독교인 결사체를 구성해 활동을 전개할 수도 있다. 이를 통해 올바른 신앙인으로서만이 아니라, 기독교 시민으로서의 역할도 수행하게 된다. 그때 기독교는 우리 사회의 공공 영역에서도 의미 있는 역할을 감당하게 될 것이다. 

 


 

:: 필자 정보 - 정재영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종교사회학 교수, 연세대학교(Ph.D.). 저서로 《교회 안 나가는 그리스도인》, 《한국 교회 10년의 미래》 등이 있다. 루터가 비텐베르크교회 문에 써 붙인 95개 조항의 핵심 중 하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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