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특집

성경의 권위, 솔라 스크립투라!
- 2017년 5월호

미국 트리니티신학교 존 우드브리지 교수

한국교회사학회(회장 김주한 교수)와 복음주의역사신학회(회장 박용규 교수), 한국장로교신학회(회장 이승구 교수)가 주최한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공동 학술대회’가 지난 3월 18일 서울 양재동 온누리교회와 횃불트리니티 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개최됐다. 학술 대회에서는 미국 트리니티신학교 교회사 및 기독교 사상사 교수인 존 우드브리지 교수가 “솔라 스크립투라: 본래의 의도, 역사적 발전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삶에서의 중요성”이라는 제목으로 발제했다. 그는 마르틴 루터가 ‘오직 성경’ 교리를 확립하는 과정에 대해 소개했으며, 성경의 권위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그는 1970년부터 미국 트리니티신학교 교회사 교수로 50년 가까이 후학 양성에 힘썼으며, 총신대 박용규 교수가 그의 제자다. 우드브리지 교수를 지난 3월 16일 오후에 양재동 교육문화회관에서 만났다. 인터뷰는 스티브 차 편집장이 진행했고, 박용규 교수가 배석했다.

교수님의 신앙의 여정에 대해서 말해 주십시오. 
저는 긴 역사를 가진 목회자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선조이신 존 우드브리지 1세는 영국의 종교개혁가인 존 위클리프 목사(John Wycliff e, 1320-1384)의 제자였습니다. 조상 중에는 조나단 에드워즈 목사의 딸과 결혼한 분도 있어요. 꽤 화려한 계보입니다. 1870년대에 예일대학교에서 우리의 계보에 대해서 책을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14대 목회자였던 아버지는 아들인 저도 목회자가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대학에 다니며 신앙에 대한 회의를 갖게 되었습니다. 가치관에 혼란을 겪었던 것 같아요. 결국 졸업식 때 아버지께 목회자가 되지 않겠다고 말씀드렸는데, 아버지가 무척 실망하셨습니다. 졸업 후 역사학을 계속 공부하기 위해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가난한 유학생이었던 저는 서점에서 싸구려 책 한 권을 발견하고 구입했습니다. 기독교 역사가 겸 작가인 다니엘 롭스(Daniel Rops)의 저서였습니다. 롭스는 그 책에서 기독교에는 진정한 역사적 기초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때부터 하나님이 제게 역사하기 시작하신 것 같습니다. 그 후에 읽게 된 타키투스(Cornelius Tacitus, 56-117년)의 로마 《연대기》가 제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았습니다. 불신자이자 이교도였던 타키투스가 왜 예수님의 신화를 계속 이어갔는지 의문이 들었고, 혹시 예수님이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인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책을 통해서 잃어버렸던 저의 신앙을 회복시키셨습니다. 교회에 가서 주님이 살아 계시다면 믿음을 달라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가 제 신앙의 전환점이었습니다.
자녀의 신앙 때문에 고민하는 크리스천 부모들이 많이 있는 줄 압니다. 이들은 믿음에서 떠난 자녀 때문에 크게 상심하고 걱정합니다. 그러나 제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시간이 지나면 다시 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부모님들의 지속적인 기도가 있다면요.

종교개혁의 5대 솔라(오직 성경,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예수그리스도, 오직 하나님께 영광) 중에서 교수님은 이번 발제에서 솔라 스크립투라(Sola Scriptura, 오직 성경)에 대해 다루셨습니다. 어떤 내용으로 발표하셨는지요?   
솔라 스크립투라는 성경만이 우리의 규율과 지식의 기준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계시입니다. 성령님의 감화 감동으로 인간 저자들을 통해 보이신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오직 구원만을 위한 책은 아닙니다. 어떻게 살 것이냐의 문제를 다룹니다. 우리는 다양한 경로로 지식을 얻으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성경은 진실이 무엇인지 가르쳐 줍니다. 장 칼뱅이 말한 것처럼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만 ‘진짜 진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같은 ‘오직 성경’ 교리는 마르틴 루터에 의해 회복되었습니다. 이단 사상을 출판했다는 혐의로 고발당한 루터는 1521년 4월, 보름스 제국회의에 참석해 황제와 고위 사제들 앞에서 성경이 유일하고 무오하며 최종 결정자임을 선언했습니다. 성경과 교회 전통의 권위를 동등하게 인정한 중세 가톨릭 시대에 오직 성경만이 유일한 권위가 있음을 선언하며 그들의 오류를 지적한 것입니다. 루터의 견해처럼 성경 그 자체로 충분합니다. 성경 외의 것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성경에는 이미 구원에 대한 모든 것이 존재합니다. 
  
솔라 스크립투라는 성경의 권위와 관련되며, 이는 성경의 무오성에 기반합니다. 성도들로부터 “성경이 전부 진리인가?”라는 질문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에 대한 교수님의 답변은 무엇입니까?  
로마 가톨릭과 개신교는 성경의 무오성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이 성경의 궁극적인 저자라는 원칙을 갖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의 궁극적 저자라면, 성경의 진실성 또한 보증된 것입니다. 종교개혁자들도 성경의 무오성을 믿었습니다. 그들은 우리보다 더 깊은 시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성경의 단어 하나하나를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히브리서 4:12은 하나님의 말씀은 힘이 있고, 좌우의 날선 검보다도 예리하다고 말합니다. 기독교 역사를 살펴보면 이러한 성경의 권위를 신뢰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령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설교 중에 “성경에서 말씀하시기를”이라는 표현을 반복했습니다. 목회자가 사람을 설득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성령님이 사람들 안에서 역사하시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19세기 말에는 성경의 무오성에 대한 이슈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자유주의자들은 성경을 직접적으로 받아썼다는 증거가 없기 때문에 성경에는 오류가 있을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반해 복음주의자들은 몇몇의 성경 구절들은 실제 받아썼으며, 사람의 말이지만 성령님의 감동으로 쓰여졌다고 주장합니다.  
이로 인해 부상한 학문이 고고학입니다. 19세기에는 고고학이 무척 발달했습니다. 고고학을 통해 구약성경의 증거들이 많이 발견되었습니다. 저명한 고고학자인 제임스 K. 호프마이어(Hoffmeier) 교수에게 창세기 1-11장의 역사 정확성에 대해 물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는 제게 창세기 2장에 대해 아느냐고 반문하고는 에덴에서 흘러나오는 4개의 강 중 비손강에 대해 설명해 주었습니다.
고고학자들은 오랫동안 비손강을 찾고 있었다고 합니다. 비손강이 있었다고 추정되는 사우디아라비아는 사막 지역이에요. 1990년에 걸프전쟁이 일어나 탱크들이 모래를 헤치고 다녔는데 고고학자들이 탱크가 지나간 자리에서 조약돌을 발견했습니다. 사막에서 조약돌이라니! 고고학자들은 의문을 가지고 조사하기 시작했고, 그곳에서 강바닥을 발견했습니다. 강줄기를 따라 300마일을 거슬러 올라갔는데 모래 틈에서 발견한 것과 똑같은 종류의 돌들을 발견했습니다. 심지어 호프마이어는 창세기를 기록했던 모세가 비손강에 대해서 쓸 때에도 이미 강은 사라진 후였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는 모세가 오직 계시를 통해 비손강에 대해서 알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19세기에 살았던 신학자나 고고학자들은 비손강이라고 언급된 성경이 거짓이라고 주장했을 것입니다.
복음주의 공동체 내에서 일부 급진주의자들은 성경이 믿음과 실천에 대해서는 무오하지만, 역사와 과학 분야에는 무오함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저는 과학이 성경과 모순된다고 보지 않습니다. 유명한 불신자 언어학자인 노암 촘스키가 인간과 동물의 존재론적 차이를 연구하면서 발견한 사실은, 인간만이 유일하게 언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이 언어의 기원을 추적한 끝에 소수의 인원, 즉 두 사람 간에 의사소통이 이루어졌던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동물과 인간을 하나의 부류로 분류하려는 진화론에 대한 중대한 반박입니다.
성경이 진리임을 인식하고 접근할 때 어떤 관점과 태도를 취하면 좋을까요?
케네스 켄저(Kenneth Kantzer) 박사의 말이 좋은 대답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예수님이 성경 말씀을 어떻게 생각하셨는지 알아야 하며, 예수님의 시점을 따라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우리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경 말씀을 진리로 생각하셨고, 악한 영을 쫓아낼 때도 말씀을 사용하셨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예수님과 달리 성경에 대해서 모두 대답하기 어렵습니다. 대답하기 어려운 성경의 질문들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켄저 박사는 하버드대학교에 있을 때, 대답할 수 없는 많은 신약학자들의 질문들을 받았었다고 합니다. 그는 이러한 질문들을 ‘영적 아이스박스’에 보관했다고 합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보관했던 의문들이 하나하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너무 신기했다고 합니다.
현대인들은 성경이 오래된 책이기 때문에 어떻게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이슈들과 도전을 다룰 수 있는지에 의문을 가집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답하시겠습니까?
인류의 변치 않는 관심사는 ‘행복’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생의 목적은 행복을 찾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현대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루터는 행복을 위해 인간은 물질과 위신의 우상을 세우나, 진정한 삶에 대한 성경의 대답은 시편 1편에 이미 나온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는 행복하고 복이 있으며 그렇지 않은 자들은 행복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성경이야말로 행복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에게 가장 적합하고 필요한 책입니다. 물론 성경이 현대 사회의 특정한 이슈를 다루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삶의 의미, 행복의 열쇠는 성경 안에 있습니다. 성경의 이러한 말씀에 반기를 들고 싶은 사람들이 있겠지만 루터와 칼뱅은 잘못된 편에 서지 말라고 분명하게 말합니다. 성경은 최소한 우리 삶의 이슈를 다루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윤리 전문가들도 성경이 윤리학에 긍정적 영향을 끼친다고 평가합니다.
오늘날 대표적인 이슈 중 하나는 동성애 문제입니다. 성경은 분명 동성애를 비판합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기독교인들의 태도입니다. 타인에 대해 자비롭지 못하고, 돌보지 않는 태도입니다. 제 친구 중에는 동성애자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제가 기독교인인 것을 알며, 제가 자신들의 생활 방식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압니다. 저는 우리가 동성애를 이슈로 삼기보다는 동성애자들과도 함께 어울리고 그들을 돌아보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그들의 삶이 변화된 경우도 있었습니다.

삶에서 성경의 권위가 살아나도록 하려면 성경을 늘 읽고 말씀을 묵상하는 습관이 필요할 것입니다. 교수님은 어떻게 성경을 묵상하십니까?
성경 묵상에 대해서 마르틴 루터는 두 가지를 지적합니다. 우선 그는 성경 묵상 시간은 악한 영과의 투쟁의 시간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묵상은 느긋하게 성경을 읽는다는 의미가 절대 아닙니다. 묵상의 히브리어는 ‘행동하다’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묵상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명령이지만 수행하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악한 영이 우리가 성경을 묵상하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도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루터는 말씀 묵상 후에는 사탄으로부터 구원해 달라는 기도를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악한 영들은 우리가 성경 말씀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길 원하지 않습니다. 제 경험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아침에 집에서 말을 조심하라는 야고보서 말씀(3:8-12)을 묵상한 후 학교에 가기 위해 운전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학교 입구에서 앞차가 분명히 오른쪽으로 가겠다고 신호를 넣더니 반대쪽으로 가는 거예요. 그 순간 제 입에서 나쁜 말이 툭 튀어나왔습니다. 성경을 읽은 지 1시간도 되지 않아서 악한 영이 저를 넘어뜨린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것뿐 아니라, 어떻게 말씀대로 살아가야 하는가는 매우 중요한 과제입니다. 
그럼에도 성경 묵상은 삶의 변화를 가져오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Renewing Your Mind in a secular world 라는 책에서 정신과 의사의 시각으로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연구한 적이 있습니다. 달라스와 트리니티신학교 재학생들을 대상으로 공부와 심리적 상태에 대한 연구를 한 것입니다. 학생들 중에서 3-4년간 공부하는 동안 정신 상태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극적인 변화를 경험한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학생들은 하지 않았는데 이들이 했던 행동이 무엇인지 찾아냈는데, 이들은 말씀을 묵상하는 학생들이었다고 합니다. 그들의 마음과 생각에 하나님의 말씀이 새겨지면서 생각이 성경 말씀을 중심으로 재설계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것이 마음이 새롭게 된다는 의미이고, 마르틴 루터가 말했던 교회의 부흥입니다.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 있는 설교를 하기 위해서 목회자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 말씀의 선포라는 측면에서 설교는 중요합니다. 제임스 패커 목사가 트리니티신학교에서 한 설교에 대한 시리즈 강의에 따르면, 청교도 목회자들의 설교에서는 적용이 매우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목회자들은 성경 말씀을 바르게 해석하고 적용하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성령님의 도우심과 현명한 목회자들을 통해 성경을 밝게 볼 수 있습니다. 이때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조나단 에드워즈 목사가 영적 각성을 가장 방해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 사람들에게 ‘영적 자만심’이라고 대답한 데서 힌트를 얻어야 합니다. 목회자는 특히 영적 자만심을 경계해야 합니다. 어떤 목회자는 바울을 주제로 설교하다가 어느 순간 자신이 바울인 양 착각합니다. 우리가 바울에 대해 가르칠 수는 있어도,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이 될 수는 없습니다.

특히 교회사를 통해 깊이 있는 성경에 대한 관점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권능으로 역사하시는 분이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부흥의 역사에 대해서 읽어 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교회사 수업에서 저는 학생들에게 조지 휘필드(George Whitefield)의 일기를 읽어 본 적이 있느냐고 묻습니다. 존 웨슬리의 글들도 읽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1855-1858년에 미국에서 일어난 대각성 운동에 대한 책도 읽어 보기 바랍니다.무디는 1899년 죽음을 맞이하며, “하나님, 다시 한번 1857년과 같은 성령님의 기름 부으심을 허락해 주소서”라고 구했습니다. 에반 로버츠의 기도에 대해서도 읽으십시오. 고전도 좋습니다. 지금은 하나님께서 권능으로 일하심을 깨달아야 할 때입니다. 에반 로버츠는 무릎 꿇은 그리스도의 교회는 무너질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께 기도하고 구하면 모든 것을 멋진 방향으로 바꾸어 주실 것입니다. 성령을 구하라는 주님의 말씀처럼 하나님께 구하십시오.

미국의 대각성 운동에 대해서 언급하셨는데, 안타깝게도 한국 교회는 21세기 들어 정체기에 접어들었습니다. 교회사 전공자로서 한국 교회 목회자들에게 주실 통찰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20세기의 첫 10년간 전 세계적으로 급격한 세속화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가운데서 전 세계적 규모의 큰 부흥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1904년의 영국 웨일스의 부흥 운동, 1905년 인도 라마바이의 묵티 부흥, 1906년 미국 LA에서 일어난 아주사 거리의 부흥, 그리고 1907년 한국의 평양대부흥, 1908년의 중국의 부흥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부흥 전문가들도 잘 알지 못하고, 심지어는 부흥 운동이 있었던 곳에 살았던 사람들도 알지 못합니다.
기억할 것은 이 같은 전 세계적인 부흥의 시대는 몇몇 사람의 기도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입니다. 찰스 피니 목사는 제2차 대각성 운동에서 부흥된 많은 미국 교회를 목격했습니다. 그중 크게 부흥한 한 교회 목회자에게 비결을 물었습니다. 그 교회의 목사는 몇 주 전까지만 해도 그 이유를 몰랐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한 교인이 목사를 찾아와서 자신이 주일예배를 위해서 그동안 매주 토요일 밤을 새면서 기도했는데, 이번 주는 잠이 들었다며 죄송하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때 피니 목사는 지속적인 부흥의 자리에는 부흥을 위해서 밤새도록 기도한 손길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신학생들에게 사역을 할 때 자신을 위해서 기도하는 후원자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합니다. 기도의 후원자가 있으십니까?

:: 필자 정보 - 진행 스티브 차 편집장 · 정리 이동환 기자 · 사진 한치문 기자

인신모독성 댓글, 광고성 댓글은 관리자가 임의로 삭제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품위를 지키는 댓글 문화를 이룹시다.
                          

독자의견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