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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사회의 비혼화 현상과 성경적 결혼관
- 2017년 5월호

결혼에 대한 사회적 시각이 변화하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6년 사회조사’ 가족 부문의 ‘결혼 문화에 대한 태도’ 항목에 따르면 결혼을 ‘해야 한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비율이 51.9%(2010년, 64.7%)였다. 2명 중 1명은 결혼을 해도, 하지 않아도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결혼을 하지 않고 동거 등 함께 살 수 있다’는 인식은 48%로 2010년 이후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이처럼 혼인하지 않은 상태의 비혼자가 늘어 1인 가구가 증가하고, 설령 결혼을 해도 점점 더 늦어지고 있는 만혼의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결혼의 필요성에 대한 변화된 인식과 결혼식과 결혼생활을 위한 현실적·경제적 압박이 스트레스가 되어 청년들의 결혼 결정이 점점 힘들어진다고 볼 수 있다.
비혼과 만혼의 중심에는 ‘에코 세대’가 있다. 에코 세대는 취업과 결혼과 출산을 포기한 일명 ‘3포 세대’라 불린다. 급속한 경제 발전과 함께 긍정적 미래에 대한 꿈을 갖고 살아온 베이비붐 세대는 자녀 교육을 위해 헌신했고, 그 자녀들인 에코 세대는 풍요로운 어린 시절을 보내며 성장했다. 그런데 에코 세대가 세상의 주역이 되어야 하는 현 시점에서 취업난에 결혼은 엄두도 못 내고, 저출산과 고령화의 늪에 빠진 것이다. 취업도 어렵고, 일자리의 질도 나빠져서 청년 실업이 100만 명을 넘어섰고, 청년층 비정규직 비율은 35%, 대졸 무직자도 20만 명에 달한다(통계청 발표 ‘2016년 12월 및 연간 고용동향’). 사귀는 이성 친구가 있고 결혼하고 싶어도 섣불리 결정할 수 없는 현실적인 어려움에 가로막혀 있는 것이다.
비혼과 만혼, 1인 가구 등에 관한 통계는 베이비부머가 아직 10년은 더 일을 할 수 있지만 그 자녀 세대의 결혼은 점점 더 늦어질 것이고, 이에 따라 출산율은 더 낮아질 것이며, 따라서 1인 가구는 계속 증가할 것임을 시사한다. 어떤 이들은 지연되는 결혼과 홀로 사는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다음 세대는 “유모차보다 휠체어를 먼저 끄는 세대”가 될지도 모른다고 경고한다.
부모 세대 저출산의 원인은 산하 제한 등 정부의 정책에 의해 자녀를 덜 낳았기 때문이었지만, 에코 세대는 결혼 자체를 포기하거나 미루기 때문이다. 정부는 결혼과 출산을 장려하고자 결혼하는 부부에게 신혼집을 마련해 주거나 단기적이고 일시적인 경제적 혜택을 주고, 출산장려금과 자녀를 낳아 키우기 좋은 환경을 마련하기 위한 정책을 수립·진행 중에 있다.

결혼에 대한 신학적 분류
비혼·만혼을 막기 위한 경제 정책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결혼 가치관에 영향을 미치는 문화가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특히 교회는 이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왜냐하면 세상에서 결혼 가치관과 결혼 문화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관이 교회이며, 성경과 신학이 여전히 청년 세대에게 방향을 제시하고 도전을 줄 수 있는 보루이기 때문이다.
‘결혼 신학’이란 결혼에 대한 하나님의 관점과 시각이다. 결혼 신학은 실제적 삶의 적용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실천 신학’ 또는 ‘목회 신학’(pastoral theology)에 가깝다. 목회 신학은 “신학의 목회적 차원과 목회의 신학적 차원을 결합하는 학문”1으로 볼 수 있다. 결혼에 신학적으로 접근하려면 결혼 신학의 목회적 차원과 결혼의 신학적 차원을 동시에 다루어야 한다. 존 위티어 주니어는 20세기 이후의 계몽주의 결혼 신학을 ‘계약으로의 결혼’으로 보았고, 그 이전에 로마 가톨릭 전통은 ‘성례로서의 결혼’, 칼뱅주의 전통은 ‘언약으로서의 결혼’으로 분류했다.2
계몽주의의 영향으로 결혼에 대한 시각이 계약적 관점으로 바뀌면서 결혼을 개인적인 시각으로 보게 되었고, 이런 시각은 가족생활과 삶을 송두리째 바꾸고 지배하게 되었다. 즉 “혼인의 형성과 유지, 파기에 있어서의 교회, 나라, 혹은 더 큰 공동체의 역할들은 성적 자율성과 교회와 국가의 분리라는 헌법적 원리들을 존중함”3에 따라 결혼을 쌍방 간의 사적이고 자발적인 계약(흥정)으로 간주하게 되었다. 계몽주의 세속 신학은 결혼에 대한 계약적 관점을 강화했고, 가톨릭이든 개신교든 전통적인 결혼관의 근간을 무너뜨리며 영적이고 목적론적인 결혼을 당사자 간의 쌍방적 협의와 흥정이 가능한 인간적 영역으로 환원시켰다.
결혼을 성례로 보는 가톨릭 전통은 아우구스티누스가 결혼의 세 가지 주된 유익을 자손과 정절과 성례적 결속이라고 언급한 데서 유래한 것으로 본다.4 가톨릭은 사제와 성직자들을 위한 독신주의를 고수하면서도 “생육과 번성의 신학”에서는 자연적인 주기법 외에는 피임을 거부하는 매우 적극적 입장을 취해 왔다. 가톨릭 교회 혼인 성사 교리편은 ‘생육하고 번성하라’라는 말씀을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복을 내리며 말씀하셨다.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 땅을 가득 채우고 지배하여라”(가톨릭성경, 창세 1:28)라고 번역한다. 자식을 많이 낳는 것이 하나님의 복이었다. 가톨릭의 결혼 신학은 신성하고 영속적인 결합이라는 의미에서 성례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결혼 자체가 신비로운 하나님의 은총을 가져다주지도 않을 뿐 아니라, 부부가 결혼 성례를 통해서 자녀(생명)를 얻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결혼을 성례적 모델로만 이해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개신교의 결혼관은 ‘소명과 언약으로서의 결혼’이다. 종교개혁자인 루터는 “결혼을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속하는 것인 동시에 공적이며 세속적인 제도”와 ‘거룩한 소명’으로 여겼다.5 칼뱅은 결혼 제도의 창시자가 하나님이라고 말하면서 결혼제도의 신성함을 주장하고, 결혼의 가치를 평가절하하는 것을 강력하게 반대한다. 칼뱅은 결혼이란 하나님에 의해 제정된 창조질서에 속하며 동시에 결혼으로 인해 세워진 가정은 “인간을 구원할 목적으로 세우신 구속기관인 교회와도 밀접한 관계 속에 있다”라는 관점을 가지고 있다.6
또한 칼뱅은 언약으로서의 결혼 신학을 견지한다. 그는 결혼제도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언약에 기초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에게는 “결혼은 계약이 아니라 배우자가 상대방을 손상시키지 않고 서로의 유익을 위해 자신을 아낌없이 주는 언약”7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결혼이 비록 개인들과 맺은 하나님의 관계를 상징하나, 하나님의 신성한 약속을 보증하지 않기 때문에 결코 성례가 될 수 없다”라는 입장을 취한다. 나아가 칼뱅은 결혼은 남자와 여자의 상호적인 동의로 구성되며, 따라서 결혼은 계약 이상이지만 결혼 계약의 위반들에 대한 행위들을 지적하므로 계약적 요소가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8
루터는 복되고 신성한 소명(일상생활과 가정생활에서의 모든 일을 이원론적으로 구분하지 않는 거룩한 일이라는 의미)으로서의 결혼을, 칼뱅은 언약으로서의 결혼을 인식하며 “남성과 여성에게 결혼할 것을 지속적으로 권고하면서 독신생활의 가치를 부인하였으며, 결혼을 세속화시키는 동시에 영적인 것으로 만들었다.”9
종교개혁자들로부터 개혁 교회, 개신교에 이르는 결혼 신학은 언약으로서의 결혼이다. 시민법에 근거하는 계약으로서의 결혼, 교회법과 전통에 기초한 가톨릭의 성례로서의 결혼과 달리 개신교의 언약 모델은 하나님의 법에서 근거를 찾는다. 그러나 쾨스텐버거와 존스가 지적한 대로 구약의 결혼은 창조질서의 일부이므로 언약의 개념을 초월한다고도 볼 수 있다.10 비록 언약 모델이 성서적으로 결혼을 가장 적절하게 묘사하고는 있지만, 창조질서의 개념을 포함하는 포괄적 결혼 신학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언약적 관점에서의 결혼이란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신성한 연합으로 하나님이 맺어 주시고 그분 앞에서 시작되며 (부부가 그것을 인정하든지 여부와 관계없이) 대개 성관계로 완성된다. 결혼은 단지 계약이 아니라 영속성, 신성성, 친밀성, 쌍방성, 배타성을 특징으로 하는 신성한 연합”11이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언약으로서의 결혼이 한국의 다음 세대의 결혼관 및 결혼 장려 교육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를 살펴보자.

‘계약으로서의 결혼’으로부터 ‘의식 있는 비혼’의 기간으로
젊은 세대는 ‘반드시 결혼해야 한다’라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뿐 아니라 ‘결혼하지 않음’이 열등하거나 이상하다고 여겨지는 것을 거부한다. 또한 성경도 독신 자체를 거부하거나 열등하게 다루지 않는다. 예수님께서 결혼과 이혼과 간음에 대해 가르치시면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사람 중에 하늘나라를 위해 스스로 결혼을 하지 않는 몸도 있다(마 19:10-12)라고 말씀하셨다. 계약으로서의 결혼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부모 세대는 자녀의 결혼 결정과 과정에 자녀들의 입장을 존중하고 기다려야 하며, 자녀 세대는 연애를 하고 배우자를 결정하고 결혼을 진행하는 것이 외로운 과정이므로 도움이 필요함을 인식해야 한다. 왜냐하면 건강한 결혼생활을 위해 먼저 결혼 전에 결혼에 대해 준비하는 비혼의 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마고 치료의 창시자 헨드릭스(Harville Hendrix)는 “결혼이라는 긴 여행을 떠나기 앞서 미혼일 때 결혼을 준비하는 것이 성공적인 결혼을 위한 필수요소라고 하면서, 그 준비는 관계에 대해 자신을 교육시키기, 자기 자신에 대해 자신을 교육시키기, 관계의 기술을 연습하기, 행동과 방어 특성을 변화시키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노력하기가 있고, 이렇게 준비된 미혼을 그는 의식 있는 미혼(conscious single)”12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결혼을 미루는 다음 세대에게 필요한 것은 결혼의 포기나 부정적 인식으로부터 의미 있고 ‘의식 있는 비혼’의 기간이 되도록 돕는 것이다.
이러한 결혼의 준비 기간에 도움을 가장 잘 제공해 줄 수 있는 기관이 교회다. 교회는 공동체이고, 전 세대가 함께 있으며 신앙의 네트워크가 활발한 곳이다. 문제는 교회에서 “비기독교인과는 결혼하지 말라”라는 원론적인 가르침 외에는 다른 적절한 지침을 제시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청년들의 만남을 세속적인 것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높다는 점이다. 젊은 세대가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학창 시절이 지나면 제한적 만남, 즉 지인을 통한 소개팅이나 전문 결혼정보 회사 등을 통한 만남으로 관계의 장(場)이 제한된다. 남녀 간의 만남이 힘들어지면서 자연스러운 교제가 어려워진다. 그런데 교회는 다양한 세대 공동체가 함께하는 곳이기 때문에 만남과 교제와 소통이 이루어진다. 이러한 결혼 장려는 교회가 잘 할 수 있는 영역이다.

‘성례로서의 결혼’으로부터 ‘거룩함으로의 결혼 예식’으로
결혼 자체가 은총의 수단은 아니지만, 그리스도 안에서의 신비한 연합(엡 5:31-32)임에는 틀림이 없다. 여기에 성례로서의 의미가 있다. “그리스도와 믿는 자들이 성례를 통해 신비로운 만남을 갖는 것처럼, 기독교 이해 속의 결혼은 신부와 신랑이 육체와 정신, 영혼의 전인적 연합을 이루는 것이라는 이해”13다. 이러한 신비한 연합으로서의 결혼은 구별되고 뜻깊은 결혼 예식을 통해 경험한다.
결혼은 신비한 결합이고 성스러운 의례지만, 싱글이나 비혼자들에게 압박감이나 스트레스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하며 결혼을 꿈꿀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일본에서는 교회가 신앙의 장소는 되지 못하고 있지만 작고 예쁜 결혼식의 장소로서는 많이 활용되고 있다. 서양 문화의 영향을 받아서일 수도 있지만, 일본 문화 속에 거의 유일하게 기독교 문화가 스며든 곳이 결혼식장으로서의 예배당이다. 한국에서는 오히려 결혼식을 교회 밖에서 하려는 경향이 높아지고 있다. 그것은 교회 예배당이 결혼 예식장으로서 부부로 출발하는 젊은 사람들에게 큰 관심을 끌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요즘 청년들은 예식 장소로 밝고 천정이 높은 옛 채플식 장소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다시 말해, 현대와 전통이 어우러진 의미 있는 장소를 기대한다.
‘소명과 언약으로서의 결혼’으로부터 ‘사랑과 친밀감의 형성’으로
최근의 연애와 결혼의 풍속도를 보면 연애와 결혼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경향이 높아지고 있다. “동거율의 증가와 결혼 정보 회사의 증가와 결혼 지연 등과 같은 사회 현상은 오늘날 젊은이들이 과거 사회와 달리 연애와 결혼을 친밀감 형성을 통한 연속과정으로 보기보다는 비연속적인 과정으로 보는 경향이 증가하고 있음을 시사한다.”14 다시 말하면 연애, 즉 사랑을 통해 친밀감을 만들고 이에 따라 성숙한 사랑을 키워가면서 배우자를 선택하는 과정이 약화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개방된 성풍속도와 변화된 결혼관(양성평등, 취업, 역할 변화 등)은 언약으로서의 결혼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다. 한편으로는 부모가 아닌 결혼 당사자들이 결혼 비용을 포함해 책임과 의무를 자신들의 몫으로 여기는 의식의 전환이 일어났고(이러한 경제적 부담이 결혼을 더욱 힘들게 하고), 이에 따라 결혼생활로 인해 야기되는 이해득실의 비용을 계산해 결혼 여부를 결정한다. 그러므로 과거에 동거나 혼전임신이 결혼으로 연결되는 것과는 확연하게 다른 세태다.
이러한 ‘사랑(연애) 따로 결혼 따로’의 만남은 친밀감을 형성하지 못한 채 결혼할 가능성이 높고, 그것은 언약의 핵심 개념인 무조건적인 사랑에서 서로 반응하는 성숙한 사랑으로 발전하지 못하게 된다. 왜냐하면 연애 기간은 단순히 유희적 기능이나 성적 즐거움뿐 아니라 전인적인 친밀감을 쌓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연애 기간이 짧은 사람들은 결혼 결심에 상황 요인들이 영향을 많이 받지만 연애 기간이 길어질수록 상황 요인들에 의해 결혼을 결심하는 데 영향을 받지 않고 첫 만남에서 시작되어 연애 기간에 걸쳐 형성된 서로의 심리 내적 가치와 친밀함의 공유에 의해 결혼 결정”15을 한다. 사랑에서 결혼으로 발전해 가지 못하는 만남은 친밀감과 가치를 공유하는 과정을 경험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고, 결국은 결혼 결정을 조건에 의지하게 되기 때문에 비혼 기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하나님 앞에서의 거룩한 소명과 언약으로서의 결혼은 사랑과 친밀감에 기초한 언약일 때만 빛이 난다.
결혼을 하고 싶지만 높은 결혼 장벽 때문에 결혼을 미루다 보니 비혼, 만혼이 늘어나고 그것은 다시 출산 기피로 이어져 고령 사회를 한층 심화시키는 결혼·출산 생태계의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에코 세대에게 결혼을 해야만 한다는 당위성은 오래전에 사라졌다. 결혼하지 않은 채 홀로 살거나 결혼은 하지 않았으나 동거하며 함께 사는 커플들도 늘어나고 있다. 그러므로 비혼자는 단지 혼자 사는 사람이 아니다. 당위적인 행위로서의 결혼이 아니라, 자유의지에 따라 개인적인 선택과 자발적 결정에 의한 것이다.
그러나 성경의 창조질서는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둘이 연합하여 한 몸”(창 1:27)을 이루는 일이며, 하나님은 이것을 기뻐하신다. 아담은 타락하기 전에 돕는 배필이 필요했고, 또한 혼자서는 자녀를 낳을 수 없었다. 그렇기에 가정은 먼저 결혼을 전제하고, 결혼을 통해 하나님의 선물로 자녀가 출산해 가족을 형성한다. 이러한 결혼의 신비를 통해 하나님의 창조질서가 유지된다. 예수님께서는 가나의 혼인 잔치(요 2:1-11)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시는 첫 표적을 행하시며 결혼을 축복하셨다. 그러므로 교회는 기독교 역사 속에 결혼 신학의 흐름을 되돌아보고, 다음 세대가 결혼을 희망하고 장려할 수 있는 가치(신학)와 문화를 제공해야 한다. 

 



1) 이기춘, 《한국적 목회신학의 탐구: 양성적 목회모형의 상황적 조명》(서울: 감리교신학대학교출판부, 1989), p.38.
2) 존 위티 주니어, 《성례에서 계약으로: 서양 혼인법의 역사와 신학》, 정경화·류금주 옮김(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6), pp.7-8.
3) 앞의 책, p.369.
4) 안드레아스 쾨스텐버거·데이비드 존스,《성경의 눈으로 본 결혼과 가정》, 윤종석 옮김(서울: 아바서원, 2016), p.85.
5) 키르시 스티예르나, 《여성과 종교개혁》, 박경수·김영란 옮김(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13), pp.75-76.
6) 칼뱅, 《창세기 주석》, 창 2:22. 최윤배, “칼뱅의 가정론”, 목회와 신학 편집부, 《종교개혁과 칼뱅》(두란노아카데미, 2010), pp.191-199에서 재인용.
7) 헤르만 셀더르하위스, 《칼빈》, 조승희 옮김(서울: 대성닷컴, 2009), p.255.
8) 앞의 책, p.200.
9) 키르시 스티예르나, p.74.
10) 안드레아스 쾨스텐버거·데이비드 존스, p.92.
11) 앞의 책, p.96.
12) 경동진·조윤옥, “기독청년의 결혼준비도 향상을 위한 집단상담 프로그램”, 〈신학과 실천〉 제41호(2014), pp.359-360에서 재인용. Harville Hendrix, Keeping the love you find(New York: Pocket books, 1992), pp.15-16.
13) 앞의 책.
14) 홍구화·권빛나, “결혼결정 상황 요인 척도의 개발 및 타당화”(숭실대학교 부부가족상담연구소), 〈가족과 상담〉제2권 1호(2012), pp.52-53.
15) 앞의 책, p.54.

 

:: 필자 정보 - 박은주
박은주 경민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 풀러신학교(Ph.D., 결혼가족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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