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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알파고 그 이후, 인공지능 시대의 신학
- 2017년 3월호

신학의 역사를 살펴보면 기독교 신학은 언제나 시대의 도전과 질문에 대한 응답 내지는 수용을 통해 발전했음을 알 수 있다. 초대교회의 교부 신학은 당대의 가장 큰 도전이었던 희랍 철학과 영지주의에 응답하는 과정을 통해 발전했고, 중세의 스콜라 신학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 대한 비판적 수용을 통해 발전했다.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도전은 무엇인가? 전문가들에 따르면 오늘날 우리는 ‘알파고’를 통해 잘 알려진 인공지능의 시대, 즉 제4차 산업혁명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다가오는 인공지능의 시대에 목회와 신학은 어떠한 변화를 맞이할 것이며, 가장 시급한 과제는 무엇인가? 신학자로서 이 질문에 대해 자신 있게 대답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인공지능을 다루는 분야가 신학과는 거리가 먼 과학기술의 영역이고, 인공지능이 미래에 몰고 올 변화의 폭이 너무나도 크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전문가를 초청해서 특강을 들어도 뾰족한 해답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그들로부터 인공지능에 대해서는 배울 수 있지만, 신학이나 기독교 신앙의 방향을 잡는 것은 결국 신학자나 목회자들의 몫일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과학기술 시대의 목회와 신학은 과학과의 간학문적 대화(Interdisciplinary Dialogue)를 외면할 수 없음이 자명하다. 본고에서는 알파고로 인해 잘 알려진 인공지능의 역사와 그것이 몰고 올 변화들을 제시하고, 이와 관련한 신학적 성찰을 전개하고자 한다.
 
알파고, 그리고 제4차 산업혁명
워낙 다사다난했던 탓일까? ‘알파고’ 열풍이 일어난 것이 꽤 오래전 일처럼 느껴지지만, 지금으로부터 딱 1년 전의 일이다. 2016년 3월 9일부터 ‘구글 딥 마인드 챌린지’(Google DeepMind Challenge)라는 타이틀 아래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 대결이 벌어졌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이 대결은 세계적인 IT기업인 구글(Google)1이 세계에 인공지능의 시대를 선포하기 위해 정교하게 기획한 이벤트였던 것 같다. 실제로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이 끝난 후, 구글사의 주식시장 총 시가는 불과 일주일 만에 무려 58조 원이나 상승했다.2 이는 그동안 구글이 선도적으로 투자해 온 인공지능의 기술력과 시장적 가치를 인정받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대결은 인공지능의 시대가 눈앞에 다가왔다는 신호탄이었다.
오랫동안 세계 프로바둑계에서 최강자로 군림한 이세돌과 구글의 자회사인 딥 마인드가 개발한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인 알파고의 대결은 많은 전문가의 예상을 뒤엎고 알파고의 압도적인 승리로 막을 내렸다. 이 사건은 단지 바둑의 역사뿐만 아니라, ‘제4차 산업혁명’의 도래를 선포하는 기념비적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최근 알파고는 발전을 거듭해 비공식적으로 이루어진 인터넷 바둑 대국에서 세계 랭킹 1위 커제를 비롯한 프로바둑 기사들에게 60전 60승을 거두었다. 이제 더 이상 인간은 알파고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알파고의 승리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고유한 영역이라고 믿어 왔던 정신적인 영역에서도 인간을 뛰어넘는 능력을 가졌음을 보여 주었다. 알파고는 인공지능이 인류의 미래 사회에 가져 올 혁명적 변화를 함축적으로 보여  준다.
지난 200년 동안 진행된 세 차례의 산업혁명은 인류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18세기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 발명을 시작으로     1차 산업혁명, 19세기 말 전기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2차 산업혁명, 그리고 20세기 중반 반도체, 디지털, 정보통신 기술의 비약적 발전으로 인한 3차 산업혁명이 그것이다. 이제 우리는 세 단계의 산업혁명을 거쳐 네 번째 산업혁명을 목전에 두고 있다. 제4차 산업혁명은 인공지능과 로봇, 사물인터넷 기술에 의해 자동화와 연결성이 극대화되는 시대를 말한다.

인공지능의 정의와 역사
‘인공지능’이란 인간의 지적 능력을 모방한 지성을 지닌 존재, 혹은 시스템에 의해 만들어진 지능을 뜻한다. 20세기 들어 인간을 대신해 계산을 해 주는 기계를 발명하고 이를 ‘컴퓨터’라고 불렀다.3 그런 컴퓨터가 이제는 인간의 지능을 실현하는 데 도전하고 있다. 1956년 미국의 다트머스 칼리지에서 열린 컨퍼런스에서 인공지능이란 용어가 처음 등장했다. 이들은 수학적 계산에서 인간보다 뛰어난 능력을 갖춘 컴퓨터에 적절한 프로그램이 더해진다면 인간의 지능과 유사한 기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1950년대 영국의 수학자 앨런 튜링(Alan Turing)은 처음으로 “기계가 사람처럼 생각할 수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인간과 사고하는 기계의 차이점을 본질적으로 구분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를 진지하게 제기했다.4 그는 기계가 지능을 가졌는가를 판단하는 방법으로서 사람과 같이 대답하는 능력을 보인다면 본질적으로 인간과 기계를 구분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 후 인공지능은 1960년대에 들어 게임 놀이 및 문제 풀이, 정리 증명 분야로 발전했고, 1970년대에는 음성 인식, 자연어 이해, 로봇 공학에 응용되었다. 1980년대에는 전문가 시스템, 지식 기반 시스템 등을 거쳐, 1990년대의 신경망 컴퓨터, 퍼지 이론 및 지능형 에이전트의 기술로 진보를 이루었다.
현재 자연어 처리는 영화 <그녀(Her)>에서 보여 주듯 사람과 컴퓨터의 자연스러운 대화와 자동 번역 등에 응용될 수 있다. 지금은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이용해 신문 기사도 작성할 수 있다. 아직 칼럼은 못 쓰지만 사실에 기초한 기사 작성은 가능하다. 야구 경기나 증권 시장의 각종 데이터를 입력하는 즉시 신문 기사를 작성해 보여 준다.
데이터베이스 시스템은 주어진 주제에 대한 사용자의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 효과적인 자료의 저장·분류·정보 검색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이다. 또한 전문가 시스템은 인간 전문가를 대신해 특정 분야의 전문적인 판단이나 작업을 수행한다. 예를 들면, 의사가 환자의 증상과 임상 자료로부터 병명을 판단하고 그 병에 적합한 처방을 내리는 것을 컴퓨터가 수행하는 것이다.
이처럼 인공지능의 급속한 발전과 응용 범위의 확장이 몰고 올 가장 급격한 변화는 직업의 영역이다. 가까운 장래에 무인 자동차가 상용화되면 자동차 보험 업계가 심각한 위기에 직면할 것이다. 로봇 무인 자동차가 널리 보급되면 교통사고가 급감하기 때문이다.
법률회사에서는 컴퓨터가 판례를 모아 변호사들의 공판 준비를 돕고, 증권회사에서는 로봇이 시장을 분석하고 자료를 작성한다. 인공지능 로봇이 광고를 제작하고, 신문 기사를 작성하며, 은행 창구의 금융 거래도 담당하게 된다. 이러한 변화로 인해 2025년까지 전체 직업 가운데 3분의 1이 사라질 것으로 예측된다.
다른 직업에 비해 목회를 담당하는 성직은 오래 유지될 것으로 예상된다. 인간의 영혼을 상대하는 목회자의 역할은 로봇이 대체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존하는 직업의 상당수가 사라진다면 평범한 사람들로 구성된 현재와 같은 교회도 더 이상 존속하지 않을 것이다.
인공지능의 기술적 특이점
영국의 미래학자 피터 코크레인은 2030년이 되면 슈퍼 컴퓨터의 용량이 인간 두뇌의 100만 배 이상이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30년 뒤에는 인공지능이 스스로 복제하고 진화하는 새로운 단계에 들어선다는 것이다.
인공지능은 ‘약한 인공지능’과 ‘강한 인공지능’으로 나눌 수 있다. 전자는 인간이 명령한 특정한 범위 내에서 주어진 과제를 수행하는 데 비해, 후자는 자율적 판단력, 감정, 의지를 지닌 컴퓨터로서 스스로 복제할 수 있고 나아가 자신보다 더 우수한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다. 즉, 인간과 같이 자의식을 지닌 존재인 것이다. 딥 마인드는 약한 인공지능이지만, 기존의 기보를 학습하고 알파고 내부에서 계속 바둑을 두면서 이세돌을 이길 수 있는 창의적인 수를 찾아냈다.
전문가들은 강한 인공지능의 출현 가능성 여부에 대해 아직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정말로 인공지능 내부에서 지능 폭발이 일어나 인간과는 비교할 수 없이 뛰어난 초지능이 탄생하는 일이 일어날지, 아니면 지나친 기우일 따름일지 현재로서는 판단할 수 없다.
제임스 배럿은 “인공지능은 인간의 마지막 발명품”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지난 10년간 인공지능 실태를 심도 있게 조사한 배럿은 인공지능에 의해 인류가 종말을 맞이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는 인공지능이 2045년경이면 초인공지능(ASI: Artificial Superintelligence)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전망한다.5
인공지능의 발전은 세 단계로 분류할 수 있다. 첫 번째 단계는 ‘좁은 인공지능’으로서 아이비엠(IBM)의 왓슨이나 구글의 알파고와 같은 것이다. 이는 특정한 목적에만 최적화된 인공지능이다. 보통 ‘약한 인공지능’이라고 칭한다. 두 번째 단계는 ‘일반적 인공지능’으로서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수준의 인공지능이다. 보통 ‘강한 인공지능’이라고 말한다. 이 단계에서는 효율성과 자의식을 갖게 되고 자기 보존 욕구와 자원 획득, 그리고 창의성을 지니게 된다. 이 단계에서 지능 폭발이 일어나면서 세 번째 단계인 초인공지능이 탄생한다.
제임스 배럿은 초인공지능은 스스로 자신보다 더 나은 인공지능을 설계할 수 있으며, 이는 지능 폭발로 이어져 마침내 특이점을 맞이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특이점’이란 용어는 일반적으로 기존의 해석이 전혀 적용되지 않는 질적 변화의 지점을 뜻한다.
기술적 특이점은 기술 변화의 속도와 영향력이 너무 커서 인간의 존재 양식이 질적으로 달라지는 시점을 뜻한다. 레이 커즈와일은 집적회로에 사용되는 트랜지스터가 2년마다 두 배로 증가했음을 예로 들면서 기술의 진화가 기하급수적으로 가속되는 성질이 있다고 주장했다.6 21세기가 끝나기 전에 인공지능 및 로봇 공학, 유전자 공학, 나노기술이 결합되는 ‘기술적 특이점’이 도래하면, 생물학적 죽음에 제한을 받는 호모 사피엔스의 시대는 끝이 나고 새로운 인간의 탄생이 가능하다고 예측한다.
인공지능과 신학
미래 학자들의 이런 이야기를 듣다 보면, 기독교의 미래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다가올 인류의 미래가 인공지능이 가져올 엄청난 이점으로 인한 유토피아(Utopia)가 될지, 아니면 그 치명적 위험이 실현되어 디스토피아(Dystopia) 혹은 종말이 될지 아직 속단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일상화될 것은 자명하다. 과거 20년 전과 비교해 오늘날 휴대폰이 우리의 일상에 가져온 변화의 폭보다, 향후 20년 이내에 인공지능이 가져올 변화의 폭이 훨씬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인공지능이 몰고 올 변화에 대해서는 낙관적 전망과 비관적 전망이 교차한다. 낙관하는 이들은 인류의 역사를 돌아볼 때, 항상 새로운 과학기술과 시스템이 출현할 때마다 어느 정도 혼란을 겪긴 하지만 궁극적으로 인간의 삶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기여했다는 주장을 펼친다. 과거 영국에서 산업혁명 시기에 기계가 노동자의 일자리를 대체할 때도 기계 파괴 운동이 일어나는 등의 혼란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인간의 노동 환경과 여가시간의 확보에 기여한 것처럼, 인공지능은 인류에게 더 나은 미래를 제공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과학의 역사를 살펴볼 때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인공 수정이나 배아줄기 세포 연구 등 새로운 과학기술이 등장했을 때도 처음에는 전통적 가치관으로 인해 거부감에 부딪혔으나, 결국에는 대중에게 점차 받아들여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인공지능도 마치 자동차나 휴대폰처럼 결국 우리에게 편리를 제공하는 하나의 도구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비관하는 이들은 인공지능의 문제는 단순한 하나의 과학기술이 아니라, 인류의 존속과 직결된 문제라고 지적한다. 과거의 발명품이 하나의 새로운 도구였다면, 인공지능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인간에게 명령을 내리는 주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강한 인공지능이 출현한다면 이세돌이 알파고에게 무릎을 꿇은 것처럼 인간은 인공지능에 종속될 수 있다. 인류의 생존 여부는 인공지능의 판단에 맡겨지게 된다. 따라서 역사적으로 과학기술을 둘러싸고 일어났던 충돌과 수용의 과정으로 판단하는 것은 일반화의 오류라는 것이다.
강한 인공지능의 문제 이전에도 과거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근본적인 문제들이 도사리고 있다. 인공지능은 로봇 공학과 생명 공학의 결합으로 인간의 변형을 가능하게 하여 궁극적으로 새로운 인간의 출현을 예고하게 한다. 소위 ‘트랜스휴먼’이라 부르는 기계와 몸, 컴퓨터와 뇌가 결합하는 새로운 인간의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과학기술에 힘입어 영생을 추구하는 존재를 기독교는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
보다 현실적인 문제로서 인공지능은 우선 한편으로는 대규모의 실업자들을, 다른 한편으로는 엄청난 부의 집중화를 초래함으로써 분배와 정의의 문제를 제기할 것이다. 불과 20년 이내에 인공지능이 사람의 일을 대신하면, 양산된 실업자들로 인해 사회의 불안정성은 크게 증폭될 것이다.
만에 하나 각 나라별로 매우 훌륭한 민주주의를 성취해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에게 마이너스 소득분을 지급하는 역소득세 제도 등을 도입함으로써 분배의 문제를 원만히 해결한다 해도 그다음에는 여가시간의 활용과 무료함의 문제가 제기될 것이다. 노동이 사라진 인간에게 일상은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라, ‘무의미의 공포감’으로 엄습할 것이다. 이를 피하기 위해 이전에 할애했던 노동 시간의 상당 부분은 가상현실 게임과 엔터테인먼트로 채워질 것이다. 그러나 이것들로 일자리를 잃은 인간의 근본적인 공허함이 달래질지는 미지수다.
  이처럼 인공지능으로 인해 달라질 미래상을 대강만 추려 보아도 두려움이 엄습한다. 이 문제는 기존의 신학으로는 대답하기 어려운 난제들이다. 구약성경의 바벨탑 사건은 사람의 말이 하나로 통일되어 하늘까지 닿는 높은 탑을 쌓으려는 인간의 교만을 보여 준다. 인공지능의 자연 언어 기술로 인해 언어의 장벽이 사라지고, 로봇 공학과 자동화, 그리고 사물인터넷에 의해 연결성이 극대화되는 미래는 구약의 바벨탑을 연상하게 한다. 그렇다면 기독교는 무조건 인공지능을 반대해야 하는 것일까?

인공지능, 인간의 좋은 친구가 될 수는 없을까?
모든 언어를 이해하고, 정보와 물질이 연결되며, 사물인터넷과 빅 데이터를 기반으로 전지전능한 능력을 보여 줄 인공지능의 도래는 우리로 하여금 바벨탑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비단 인공지능 때문이 아니더라도 오늘날 인간은 위기에 직면해 있다. 무분별한 탐욕으로 인해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 의해 이 땅에 번성했던 수많은 피조물을 멸종시켰으며, 지구 생태계를 파괴함으로써 세계 곳곳에서 기후 변화로 인한 재앙을 겪고 있다.
또한 부의 양극화가 점점 심화되는 가운데, 인종·성·문화·민족·이념·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 장벽을 쌓고 테러를 감행하며 총칼을 겨누는 분열의 삶을 살고 있다. 즉, 인간은 이미 하나님의 창조 동산을 심각하게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인공지능 시대를 대비한 신학의 유력한 출발점은 구약성경의 창조 신학일 것이다. 그것은 “창조주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고, 이 세계는 모두 그분의 말씀에 의해 창조되었으며, 그분이 만드신 이 세계는 보기에 참 좋은 아름다운 곳이며, 피조물 중에 으뜸인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존귀한 존재”임을 선포하고 있다. 이 메시지는 이스라엘이 번창할 때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민인 이스라엘 백성이 나라를 잃고 바벨론 제국의 포로로 전락했을 때, 즉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절망적인 상황에서 주어진 말씀이다.
 인공지능으로 인해 두려움과 불안이 엄습하는 시대지만, 우리가 하나님 앞에 바르게 서서 올바른 질문을 던진다면, 하나님께서는 시대의 상황보다 더욱 강력한 희망의 메시지를 주실 것이라 믿는다.
기독교 교리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이유가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고 구원하시기 위함”이라고 가르친다. 만일 인공지능을 개발한 인간의 행위가 하나님을 배신하는 것이 아니라면, 인공지능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데 사용될 수 있고 궁극적으로 선교의 도구로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 신앙이 고백하는 하나님의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통해 계시되었고, 그것은 십자가 희생을 통해 생명을 나누는 것이다.
과학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인간의 능력과 편리함도 확대됐지만, 그에 상응해 파괴 능력도 증가했다. 우주 안에서 놀라운 성취를 이룩한 인간은 이제 그 능력에 걸맞은 영적 각성을 요청받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생명이 우주 안에 출현한 가장 소중한 존재라는 깨달음이다.
조화로운 우주를 찬미하고, 아름다운 지구 생명체들과 함께 삶을 경축하며, 형제자매인 인류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꾸어야 한다. 만약 인공지능에게 위기에 처한 인류의 올바른 생존 방법에 대해 묻는다면, 인공지능은 알파고가 가장 최적의 수를 찾아낸 것처럼 인류에게 올바른 길을 가르쳐 줄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무조건 인공지능을 교만의 산물인 바벨탑으로 규정하고 반대할 것이 아니라, 인공지능이 선한 도구가 되어 하나님 말씀 앞에 늘 불충한 미완숙한 존재인 인간의 부족함을 채워 주는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도록 그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인공지능이 바벨탑이 아니라, 인간과 더불어 하나님의 창조 동산을 가꾸는 인간의 좋은 친구가 되도록 기독교인들 모두가 이끌어야 할 것이다.

 

 

 

:: 필자 정보 - 김기석
성공회대학교 교수. 버밍엄대학교(Ph.D.). 저서로 《종의 기원 신의 기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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