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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명시적 신학과 묵시적 신학이 일치하는 교회가 건강한 교회입니다
- 2017년 7월호

미국 트리니티복음주의신학교와 한국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 간에 체결한 세계 선교 파트너십 프로그램으로 방한한 피터 차 교수를 만났다. 차 교수는 트리니티복음주의신학교 실천신학 교수로 교회 문화와 사회, 종교사회학 등을 가르치고 있다. 또 캠퍼스의 다민족 학생들에게도 관심을 가지고 사역하고 있다. 이번 파트너십 프로그램에서 차 교수는 목회학 박사 과정 학생들을 지도했다. “문화적인 통찰을 통한 성경적 가르침과 실천이 일치할 때 교회는 건강할 수 있다”고 강조하는 차 교수를 지난 5월 12일  양재동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만나 스티브 차 편집장이 인터뷰했다.

한국에서 ‘건강한 교회 공동체 문화 형성’에 대해 강의한 것으로 안다. 어떤 내용인가? 
교회를 연구하는 미국의 많은 신학자들이 발견한 바에 의하면, 모든 교회에는 회중과 교인들을 형성하는 두 가지 신학이 있다. 첫째는 ‘명시적 신학’이다. 교회의 신앙 고백, 목회자의 설교와 가르침이 해당된다. 교단의 신앙 고백,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 등이 이에 속한다. 둘째는 ‘묵시적(implicit) 신학’이다. 이 신학은 교회가 하는 일에서 드러난다. 어떻게 예배를 드리는지, 어떻게 교제를 하는지, 어떻게 재정을 사용하는지, 누가 의사 결정을 하는지, 누가 교회의 영웅인지, 누가 경계에 서 있는지 등이 이에 해당된다. 
교회 연구가들은 명시적 신학과 묵시적 신학이 동일한 방향으로 나아갈 때 회중이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명시적 신학과 묵시적 신학의 방향이 다른 교회들이 많다. 심지어 두 신학이 충돌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때 사람들에게 더 많은 영향을 끼치는 것은 묵시적 신학이다. 미국의 한인 교회를 떠나는 이민 2세들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들 가운데 교회의 명시적 신학이 잘못되어서 교회를 떠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교회의 가르침이나 설교가 진리에서 벗어나서 교회를 떠나는 일은 거의 없다는 말이다. 그들이 지적한 것은 묵시적 신학에 관한 것이었다. 따라서 명시적 신학과 묵시적 신학을 일치시키는 것은 목회자의 주요 책무다. 또한 이것은 성경의 가르침과 교인의 삶을 일치시킨다는 점에서 성경적이다. 

교회의 명시적 문화와 묵시적 문화를 구분한 것이 독특한 것 같다. 교회의 묵시적인 문화는 어떻게 형성되는가?
묵시적 신학을 형성하는 것은 교회의 내적 문화다. 모든 교회에는 자기 문화가 있고, 그 문화는 독특하고 특별하다. 이는 교회의 역사와 함께 형성되어 왔다. 그 교회가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어떻게 반응하며 문제를 해결해 왔는지가 묵시적 신학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를 통해서 문제 해결에 대한 교회의 문화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에드가 샤인 교수는 저서 《조직문화와 리더십》(Organizational culture and leadership)에서 교회 문화를 포함한 조직 문화를 3단계로 나눌 수 있다고 했다. 1단계는 가시적인 단계다. 한국어로는 ‘유물’(artifacts)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 인류학자나 선교사들이 외국의 문화를 대면할 때 제일 먼저 눈으로 보고 경험하는 것이다. 언어, 전통, 의상처럼 모든 교회에는 각자의 독특한 유물들이 있다. 2단계는 실행 가치다. 어떤 가치는 성경적이고 건강하지만, 어떤 것들은 비성경적이다. 명시적 신학과 묵시적 신학 사이의 공백을 만들기도 한다. 이러한 가치들은 상술한 유물들과 관련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유물이 없는 가치들은 실제로 실천된 가치가 아니다. 유물이 있는 가치만 실제로 실행된 가치라고 볼 수 있다. 3단계는 기초적 수준인데 숨겨져 있다. 저자는 이를 암묵된 기본 가정이라고 말한다. 누구도 이에 대해서 명확하게 가르치지 않았지만, 수년간 사람들이 경험을 통해서 배우고 조직의 한 부분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한국 교회도 교회의 건강에 관심이 많다. 교회 성장을 위한 효과적인 원리에만 집중하기보다는 자신들의 모습을 돌아봐야 할 것 같다.
횃불트리니티에서 수업에 참여한 박사 과정 목회자들이 솔직하게 자기 평가를 하는 것을 보고 큰 위로를 얻었다. 목회자의 자아 성찰이 중요하다.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변화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교회마다 독특한 상황이 있다. 긍정적인 부분은 강화하고, 부정적인 부분은 변화시켜야 할 것이다. 선라이프미니스터리 대표인 댄 스페이더가 “당신은 사람들이 성장하도록 만들 수 없다. 그것은 성령님의 역할이다. 그러나 당신은 그들이 성장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 수 있다. 그것이 당신의 역할이다”라고 했다. 회중 문화에서 목회자는 이런 공간을 만드는 역할을 해야 한다.

교회 공동체가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은 어떻게 만들 수 있는가?
효과적인 설교들은 적용을 제시한다. 그런데 적용이 개인적 수준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나는 목회자들에게 우리가 흔히 명시적 신학에 의거해서 설교를 하는데, 조직으로서의 교회 공동체가 하나님의 말씀을 그리스도의 몸으로 어떻게 받아들이고 적용하고 실천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 보라고 조언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도움이 될 수 있는 유물이 필요하다. 매주 교회 공동체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도움이 될 수 있는 유물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이를 통해 교인들에게 진리를 구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많은 교회가 교회 홈페이지에 교회의 핵심 가치를 명시해 놓는다. 그러나 이것을 지지해 줄 수 있는 유물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실제적으로 묵시적 신학을 형성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목회자들에게 자기 교회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유물을 만들 것을 조언한다. 그래야 그 가치들이 교인들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로 나의 부친이 섬긴 워싱턴 열린문장로교회는 세대간 상호의존적인 교회 사역에 힘써 왔다. 세대 간의 화합에 대해서도 설교(명시적 신학)했고, 교회 문화로 정착시키기 위한 노력(묵시적 신학)으로 세 가지 유물을 만들었다. 첫째, 영어권 회중과 한국어권 회중으로 나누었고 그 위에 상임 장로회를 두었다. 한국어권 회중에 속한 이는 이중 언어 사용자로 세웠다. 그들은 두 부류의 회중들이 어떻게 함께 선교하고 다음 세대를 교육할 것이지, 그리고 두 회중 그룹에서 발생하는 문제해결을 위해 소통한다. 둘째, 목회자가 새로 부임하기 위해서는 두 부류의 회중으로부터 과반수 이상의 찬성을 받아야 하는 것을 교회법으로 정했다. 셋째, 교회는 새신자 교육을 할 때 교회의 이런 모델을 설명하고 이에 대해서 동의해야 교인으로 받아들인다. 매년 부활주일 연합예배에서는 영어권 목회자가 설교하고 한국어권 목회자가 통역한다. 이는 1세대 회중들이 미래 세대를 섬기기 원한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는 상황에서 목회자들은 어떻게 행해야 하는가?
1970년대의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성경 중심의 질문이 지금은 교회와 기독교인들의 행실에 대한 질문으로 바뀌었다. 캠퍼스 사역자인 릭 리처드슨은 “오늘날 학생들도 과거의 질문들에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최근 던져진 질문이 해결되기 전에는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질문의 중심이 ‘성경’에서 ‘교회’로 바뀐 것이다. 관점을 바꾸어 말하면 과거의 질문들은 명시적 신학에 대한 것이고, 오늘날의 질문들은 묵시적 신학에 대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포스트모던 세상에서는 교회가 변증 그 자체라고 확신한다.

한국 사회도 점차 다문화되어 가고 있다. 다문화 사역의 경험으로 조언을 해 달라.
1985-1992년 당시 미국의 대학가는 점차 다문화되어 가고 있었다. 캠퍼스 사역자로서 나는 변화하는 사역지를 대면해야 했다. 관련 자료가 없었기에 부딪히며 배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1992년 LA폭동이 일어났다. 흑인 갈등의 문제는 백인들의 문제라고 생각했던 한인교회는 이때 비로소 인종 갈등의 문제에 대해 신학적 성찰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우리는 사역의 방향을 세워 갈 때 성경 말씀으로 시작해야 한다. 에베소서 2:11-19에서 사도 바울은 교회 내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에 대해 언급했다. 19절에서는 너희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고 하나님의 권속이라고 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자동적으로 형제자매가 된다는 말이다. 이것이 성경의 명시적 신학이다. 이를 다문화 사역을 하는 가운데 어떻게 행할지가 바로 묵시적 신학이다.
다문화 사역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우선 하나의 지배적 문화가 존재할 때, 다른 문화권을 가진 사람들은 손님이 된다. 지배 문화권에 속한 사람들은 손님들을 환영하고 항상 친절하게 대한다. 하지만 손님들은 의사 결정권과 발언권이 없다. 한국계 미국인들은 윌로크릭교회와 같은 곳에서 예배를 드리고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손님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다문화 사역은 이런 방식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다른 모델은 몇 개의 원이 모두 교차하는 중심부가 있고, 그 밖에 각 원의 인종적·문화적 독특성이 존재하는 모델이다. 그 중심부에는 복음, 예수 그리스도, 성경과 세계 선교에 대한 순종 등이 있다. 우리는 각자의 특별한 재능을 이 조직에 가져와야 한다. 우리는 손님이 아니라, 합법적인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에서는 이런 교회들이 성장하고 있다. 내가 속한 교회도 그중 하나다. 40%가 백인, 40%가 아시아계 미국인, 나머지 20%가 흑인과 히스패닉 계열이다. 찬양은 흑인 교회처럼 활기차다. 담임목사는 1.5세 한국계 미국인이다. 교회 안에 다양한 문화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두 번째 모델을 세워 나갈 수 있을까? 이것이 우리가 당면한 도전이라고 생각한다. 미로슬라브 볼프의 《배제와 포용》은 다른 이들을 포용할수록 점점 더 하나님 왕국의 시민이 되어 가는 비전을 제시한다. 볼프는 오직 성령님의 능력만으로 타인을 포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의미는 수직적으로는 하나님 아버지와 새로운 관계를 맺었다는 것이지만, 수평적으로는 영적 또는 성령이 이끄시는 능력으로 말미암아 다른 문화에서 온 형제자매들을 포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횃불트리니티신학교에서 추진하는 프로젝트는 무엇이며, 그 시도가 다문화 환경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 되리라 보는가?
7-8년 전만 해도 횃불트리니티신학교는 백인들이 다수인 부유한 공동체였다. 아시아계 미국인들도 있었지만, 흑인이나 히스패닉계 학생들이 오기에는 쉽지 않은 환경이었다. 백인의 문화가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3-4년 전부터 매주 수요일에 ‘모자이크 모임’을 갖기 시작했다. 빵과 스프로 간단하게 식사를 한 후 미국 사회가 경험하고 있는 최신 이슈 한 가지씩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민 정책, 증가하는 실업률, 실패하는 교육 제도 등이 이 모임에서 다루어졌다.
5주 동안 1개의 이슈를 다룬다. 첫째 주는 이슈에 대한 성경적·신학적 틀을 다루고, 둘째 주는 사회학적 분석, 셋째 주는 기독교인 전문가와 인터뷰를 진행한다. 넷째 주는 이런 이슈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로 이루어진 공개 토론회를 갖는다. 다섯째 주는 찬양과 예배와 기도로 마무리한다. 지난 몇 년간 성장을 거듭해 100-120명의 학생들이 참여하는, 캠퍼스에서 가장 큰 모임이 되었다.
중요한 것은 모임의 참가자 절반이 백인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흑인들과 히스패닉계 학생들은 이 모임에서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자기 의견을 자유롭게 말하고, 타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그들에게 이 모임은 기독교 공동체가 사회적 이슈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논의하는지를 알 수 있는 중요한 모임이다. 이는 모임에 참석하는 백인 학생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모임을 통해서 다양한 인종과 문화적인 차이를 경험하는 것은 큰 축복이다. 참여자들 간에 형성된 초문화적인 네트워크는 이들의 향후 목회에 커다란 자산이 될 것이다. 이는 미국 교회 약 8%만이 인종적 다양성을 갖고 있는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필자 정보 - 진행 스티브차 편집장 · 글 이동환 기자 · 사진 한치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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