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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루터의 직업 소명론
- 2017년 4월호

루터의 도시 비텐베르크에는 종교개혁을 알리는 상징적인 두 개의 교회가 있다. 하나는 〈95개 조 논제〉 게시로 유명한 ‘성채교회’(Schlosskirche)다. 루터와 멜란히톤의 묘가 있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곳을 먼저 찾는다. 그러나 종교개혁의 역사와 전개를 고려하면, 성채교회보다는 시청 광장 옆에 있는 ‘비텐베르크 시립 교회’(Stadtkirche St. Marien in Wittenberg)가 더 중요하다. 루터는 이 교회에서만 약 3,000편의 설교를 했고, 종교개혁 사상에 따라 양형 성찬을 시행했다. 또한 이곳은 회중찬송인 코랄이 만들어지고 불린 개신교 찬송의 요람이자, 개신교 최초의 청빙목사인 요하네스 부겐하겐이 목회한 장소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교회가 중요한 가장 큰 이유는 교회당 안에 있는 제단화 때문이다. 일명 ‘종교개혁제단화’(Reformationsaltar)라고 불리는 네 폭의 제단화는 신앙고백적 역사의 특수성뿐만 아니라, 그 안에  루터의 교회론을 압축하고 있다.
이 네 폭의 제단화는 각기 ‘십자가 중심적 설교’, ‘성만찬’, ‘세례’, ‘죄의 고백과 용서’라는 교회의 표지를 담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가장 큰 중앙 제단화이다. 여기에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제자들과 함께 나누던 ‘최후의 만찬’이 그려져 있다. ‘최후의 만찬’ 하면 대부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것을 떠올릴 것이다. 그런데 여기 있는 루카스 크라나흐의 작품에는 그와 비교되는 아주 특별한 것들이 담겨 있다.
예를 들면, 다빈치의 그림에 나오는 식탁은 일자형이지만, 여기의 식탁은 원탁이다. 원탁의 상징적 의미는 서로가 계급 없이 평등하며, 누구나 막힘없이 소통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점은 곧 루터의 교회론에서 강조되는 ‘모든 신자의 만인사제직’(Priestertum aller Glaubigen)을 뜻한다. 루터의 후원자이자 가장 친한 친구 중 한 명이었던 크라나흐는 이런 식으로 그림 속에 여러 의미를 담아 놓았다. 그중에서도 특이한 것은 12사도의 식탁자리에 의외의 인물들이 있다는 점이다.
오른편에 검은 망토를 입은 수염 있는 사람이 바로 ‘루터’다. 루터가 식탁의 포도주를 식탁 밖에 있는 한 젊은이에게 넘겨주고 있다. 그 젊은이의 정체는 이 그림을 그린 루카스 크라나흐의 아들이다. 이것은 매우 의미 있는 장면이다. 당시 중세교회에서는 성찬 때 회중에게 떡만 나누어 주고 잔은 주지 않았다. 그런데 루터의 도시에서는 둘 다 나누어 주는 양형 성찬을 함으로써 종교개혁의 정신을 고취시켰다. 실제로 16세기 종교개혁을 기념하는 상징은 양형 성찬에 있었다.1 따라서 중앙 제단화에서 사도급에 해당하는 사람이 아닌 외부(평신도)로 넘겨주고 있는 모습은 개신교회 안에서 만인사제직이 작동하는 방식을 상징하는 대목이다.
여기에는 또 한 명의 눈에 띄는 인물이 있다. 루터 바로 왼편에 있는 긴 수염의 사람이다. 그의 이름은 한스 루프트, ‘9월 성경’(1522)으로 알려진 루터의 독일어 신약성경을 인쇄했던 출판업자다. 여기에도 특별함이 있다. 한스 루프트는 12사도도 아니고, 루터 같은 종교개혁가도 아니며, 그렇다고 거룩하게 ‘소명(Berufung) 받은 사제’도 아니었다. 그저 동네 인쇄업자일 뿐이었다. 그런데 종교개혁신학의 모든 핵심이 담겨 있는 제단화에, 그것도 가장 큰 중앙 패널에 그가 사도급의 위치로 그려져 있다. 이것은 종교개혁신학이 선언하고자 하는 핵심, 즉 루터의 ‘직업 소명론’을 보여 준다. 루터에게는 ‘직업(Beruf)이 곧 소명(Berufung)’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상을 루터는 어디서 발견했고, 그 핵심은 무엇일까?
성직, 소명, 직업
목사만 거룩한 성직자일까? 가끔, 아니 솔직히 말하면 자주, 목사를 높디높은 거룩한 성직으로 여기는 분들을 만난다. 교인들이 그렇게 목사를 높여 주면 감사한 일이지만, 목사 스스로 “나만 거룩하다”라고 폼 잡는 분들을 보면 눈살이 찌푸려진다. 개신교 신학에서 모든 직업은 거룩한 하나님의 소명(거룩한 부르심)이기 때문이다.
루터는 라틴어 vocatio를 하나님의 부르심(Berufung)으로 번역했다. 이는 “각 사람은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대로 지내라”(고전 7:20)를 근거로 한다.2 여기서 주목할 만한 것은 루터 이전만 해도 소명(Berufung)은 오직 영적 직무로 부름받은 자에게만 해당하는 용어였는데,3 그는 세속 직업의 영역까지 확장 적용하면서 수도사 제도를 비판하는 근거로 사용했다는 점이다.
루터에게 직업(Beruf)은 소명(Berufung, Calling)이다.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종교개혁의 원동력을 ‘칭의론’이라는 신학에서 찾는다. 그러나 실상 일반인들에게 힘을 주었던 루터의 가르침은 ‘모든 신자의 만인사제직’이었다. 물론 그의 만인사제설은 신자들에게만 해당된다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거기서 배태된 열매인 직업소명론은 교회 밖의 일반인들에게 거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게 되었고, 종교개혁의 파괴력을 확대시키는 데 큰 일조를 하게 된다.
당시만 해도 ‘영적 계급’(주교, 사제, 수도사)과 ‘세속 계급’(영주, 기사, 평민, 노예)으로 출신 성분과 직업을 나누는 것이 통념이었다. 그러나 루터는 이런 계급적 구분을 혁명적으로 바꾸어 평면에 놓는다. ‘모든 인간은 신 앞에 평등하다’라는 진리는 칭의론과 만인사제설의 골자다. 물론 앞서 언급했다시피 루터의 만인사제직은 ‘신자들의 공동체’ 안에서만 유효한 데 반해, 직업 소명론은 교회의 담을 넘어 민주적 사회 공동체를 이루는 데 실질적 토대를 제공했다.
중세 시대에 ‘신의 부름’을 뜻하는 ‘소명’(Berufung)이란 말은 영적 직무에 속한 이들에게만 허락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루터는 이를 세속 직업에 확장시키고, 거기서 ‘직업’(Beruf)이라는 단어를 만들었다. 즉, 세속 직업도 하나님의 소명이라는 것이다. 루터에게 직업은 하나님이 부르셔서 직무를 명령하며 주신 일자리다. 하나님이 각 개인에게 주신 일종의 ‘positioning’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때문에 자기에게 맡겨진 직업에는 목적이 있다. 여기에는 자기 생계를 위한 것뿐만 아니라, 이웃을 먹여 살리는 것까지 포함된다. 그러므로 자기에게 주어진 직업을 통해 이웃을 섬기고 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면, 그것이 곧 성직이다.
이하는 루터와 사회학자 콘체(W. Conze)의 말을 인용해 본다. 

“그러므로 한 여종이 주인의 명령과 직무에 따라 마구간에서 똥을 치우고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천국으로 가는 직선로를 제대로 찾은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자기 직무가 무엇인지, 자기 할 일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하면서 성자나 교회당으로 가는 이들은 천국이 아니라 지옥으로 직진하는 자들이다.”4(루터)
“루터가 가르친 기독교적 일과 직업 개념은 ‘재화를 얻기 위해 일하는 것을 정당하다’고 가르친다. 일을 통해 소비 지출과 자기 복락을 위해서만 노력하며 사는 것은 자본주의 경제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루터 역시 이것을 허용한다. 그러나 거기서 그치지 않고 한 발짝 더 나아간다. 기독교적(루터) 일의 개념은 자기 마음이 돈과 재화에만 의지하며 만족하는 것과 차원이 다르다. 현대 경제사회에서는 전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루터는 가르친다. ‘일과 직업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신의 명령에 따라 이웃을 위한 사랑 실천의 장이다.’ 이런 루터의 일과 직업 개념은 자아실현을 강조하는 현대의 개념과 반대편에 서 있고, 현대 자본주의 체제와 끊어진 다리 저편에 위치한다. 그러므로 루터의 시각으로 보자면, 현대 직업사회는 전혀 기독교적(achristlich)이지 않고, 심지어 적그리스도적(Anti-christlich)이다.”5(콘체)
 
하나님이 주신 소명이란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 즉 내 가족과 동료들의 한가운데 자신의 삶의 자리가 주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우리가 사랑해야 할 대상은 우리의 이웃이다. 거기서 소명은 창조세계의 모든 사람이 조화로운 질서 가운데 살아가는 것을 목표로 한다. 다양한 직업과 직무를 통해 이 땅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이루며 이웃 안에서 책임적 존재로 살아가는 것이 곧 소명이다.
모든 인간은 창조 세계 안에서 하나님의 다양한 부름을 받았다. 동일한 직무라고 할지라도 동일한 환경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때문에 소명이란 결코 누군가의 모습을 복사하거나 모방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각 사람마다 하나님의 특별한 부르심과 직무를 부여받았기에 자신이 처한 사회적 삶의 자리에서 각기 다른 특성을 갖는다. 누구를 모방하며 살 필요 없이 하나님의 소명대로 이웃과 더불어 조화롭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
루터의 De votis monaticis(수도원 서약에 관하여)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거룩한 신자들은 같은 신앙 안에서 살아야 하며, 같은 성령에 의해 감동되고 인도되어야 한다. 그러나 외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모든 신자가 각기 다른 일을 준행하며 사는 것이 하나님의 확고한 의도이다.”
즉, 하나님은 각 사람마다 다른 일을 수행케 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은 “같은 시간, 또는 같은 장소, 또는 같은 사람들 앞에서 똑같은 일을 맡기지 않으신다. 그러나 그 모든 일을 같은 영과 믿음으로 지도하고 관리하시며 다른 시간, 다른 장소, 다른 일과 다른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가신다.”
하나님의 일은 이렇듯 숨겨져 있으나, 인간은 하나님의 소명과 자신의 직업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드러내야 할 과제를 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소명(직업)의 수행을 통해 드러나는 것은 이전에 알려지지 않았던 일들, 장소들, 시간들, 사람들, 상황들이지만, 이 모든 것은 결국 각 개인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도록 강제하는 인도하심이다. 이것은 신앙의 가르침이다. 그 안에서 모든 거룩한 신자는 각자가 그의 특정한 소명에 따라 가르침을 받는다.”6
요약하자면 각 사람은 직업을 통해 하나님의 창조세계에 참여하게 되는데, 거기서 주어진 직업적 임무는 모방할 수 없는 하나님의 개별적 소명이다. 우리의 직업이 이처럼 하나님의 소명과 연결되어 있다면, 우리에게 맡겨진 일은 세상 한가운데서 만들어지는 두려움에 잠식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소명의 원천은 하나님께 있고, 그분이 각 개인이 소명을 이루며 살아가는 삶의 자리를 책임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소명 가운데 살아가는 인간이 두려워해야 할 것은 오직 ‘신앙 없음’일 뿐이다.
소명과 삶의 자리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해 보자. 그렇다면 모든 세속 직업은 종류를 막론하고 모두 성직인가? 그렇지는 않다. “세속 직업은 거룩한 소명이며 성직이다”라는 루터의 주장에는 전제 조건이 있다. 앞선 인용구에서 언급한 대로 ‘자신의 일이 이웃의 유익을 도모하고 섬기는 일’이 되어야 한다. 루터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곧 ‘이웃 사랑의 일’과 직결된다는 것을 항상 힘주어 강조했다. 그 때문에 루터는 ‘각자 자기 직업을 통해 이웃을 섬기는 일이 곧 세상을 예배로 가득 채우는 길’이라고 가르친 것이다.7 루터에 따르면, 우린 모두가 사제이기 때문에 거룩한 직무로 부름(소명)받았으며, 목사나 선교사의 경우 공동체 안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공적 직무로 부름받았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린 모두 사람들 사이에서 타자를 섬기기 위한 직무로 부름받았다. 즉, 루터에게 직업이란 이웃을 섬기기 위해 부름받은 모든 자리를 뜻한다.
물론, 현대적 관점에서 루터의 직업 소명론은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 있다. 왜냐하면 루터 당시 직업이란 대부분 혈통이나 가문에 따라 이어지는 태생적이고 고정적인 카테고리였지만, 현대의 직업은 언제라도 이동 가능한 유연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비판점은 이미 중세 신분제 사회 안에 잠재되어 있었고, 루터 역시 이런 시대적 한계를 완전히 극복하지 못했다. 예를 들어 당시 중세 사회는 ‘세 신분론’이 자리 잡고 있었다. 통상 주교·사제·수도사로 구분되고 영적 계급으로 불리는 ‘가르치는 신분’, 사회질서의 직무를 맡은 영주와 기사 같은 ‘수호의 신분’, 농민과 같은 ‘생산자 신분’으로 나뉘어 일종의 계급 구조화되어 있었다. 이 구조를 잘 살펴보면, 육체 노동직이 천시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중세 초기 프랑스에서 유래하여 전 유럽의 사회적 통념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루터는 이런 계급 구조를 하나님의 ‘두 통치설’로 구분한 다음, 중세 통념과는 다른 방식의 ‘세 신분론’ 또는 ‘삶의 세 자리 이론’을 제시했다. 영적공동체(교회), 경제공동체(혈연, 사회적 관계), 정치공동체(국가)가 바로 그것이다. 이 세 자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에게 사랑 실천의 장으로 주신 삶의 자리다. 이 세 자리는 계급적으로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어떤 자리도 우선권을 주장할 수 없다. 모두 하나님이 주신 삶의 자리이기 때문이다. 다만, 루터의 패착, 또는 시대적 한계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루터가 세 자리를 종종 고정적 형태로 구별해서 생각했다는 점이다. 그 한계를 1525년 농민전쟁 시 루터의 태도에서 볼 수 있다.8
이런 시대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루터의 직업 소명론의 가치는 퇴색되지 않는다. 오늘날 현대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부익부 빈익빈’, ‘부자는 망해도 삼대를 간다’라는 식의 암울한 논리가 통용된다. 자기 배만 불리고 자기 유익만 구하는 직업관이 만연한 이 사회에 루터의 직업 소명론은 우리 사회의 음지를 직시하고 저항하는 기독교적 시각이 될 수 있다. 우린 모두 하나님의 소명을 받은 거룩한 신자들이다. 어느 직업이든 이웃의 이익을 도모하며 서로를 높이며 섬기는 일을 추구한다면, 특정 직업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 ‘함께’ 거룩한 것이다.


1) 16세기 개신교 진영에서는 중세 교회의 이종배찬 금지론을 부수고, 모든 신자가 주의 말씀대로 떡과 포도주를 받도록 한 것을 종교개혁의 가장 혁명적인 부분으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1528년 독일 개신교령이었던 브라운슈바이크(Braunschweig)에서 내린 포고령을 보면, ‘개신교령에서는 종교개혁을 기념하는 행위를 하도록 권장’하는데 특별한 날을 지정한 것이 아니라 ‘양형 분찬’을 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2) 원시 기독교 공동체에서 노예 해방이나 사회 계급구조 변혁에 힘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외면하면 곤란하다. 이런 사고방식은 중세를 넘어 루터에게까지 미치고 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초대 교회 상황에서 헬라 문화와 달리 유대-그리스도인들은 노동의 가치를 부정적으로 여기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는 창세기에서부터 등장하는 ‘일하시는 하나님’(천지창조)에 대한 관념으로 시작되었고, 다문화 사회였던 헬라 문화 속에서도 그 가치가 퇴색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신약에서 몸을 “성령의 전”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러나 영지주의를 필두로 이원론적 세계관은 창조세계, 성육신, 부활 같은 기독교의 핵심 가치를 공격하게 되었고, 이와 같은 이원론적 세계관에 대항하는 신앙고백들이 교부들에 의해 만들어지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상황은 교회 내부에 깊숙이 자리 잡게 되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수도원의 출현이다. 수도원을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곳으로 구별하는 것은 이원론이 교회 내부로 들어와 영적 계급화를 이루는 주요 맥락이 된다.
3) 이러한 이해는 이미 사막 교부 안토니우스의 삶을 다룬 Vita Antonii(안토니우스의 생애)에 잘 드러난다. 그는 세상을 떠나 사막으로 들어간 것을 고린도전서 7:20에 나오는 ‘부르심’으로 이해했고, 그런 삶이 영적으로 뛰어난 삶이라고 여겼다. 이 사상은 후에 중세 수도원 사상의 밑거름이 되었고, 중세 사회의 계급 질서를 정당화시키는 데도 한몫을 하게 된다. 성서의 본문 역시 영적 계급과 세속적 계급을 구분하고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오용된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누가복음 10:38-42 ‘마리아와 마르다’에 관한 본문은 대표적 오용 사례에 속한다. 13세기 토마스 아퀴나스와 베르톨드 폰 레겐스부르크(Berthold von Regensburg)는 세상적·영적 신분을 개념화시켜 신학에 적용시켰다. 이에 대한 부정적인 결말은 원시 기독교가 가지고 있던 육체노동의 가치가 퇴색되어 버렸다는 데 있다. 그로 인해 중세 사회 시스템에서는 육체노동자보다 영적 직무를 행하는 자가 언제나 존경받게 되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루터는 만인사제직과 직업소명론을 통해 세속 직업의 가치를 격상시켰다.
4) WA10, 309.
5) W. Conze, Art: “Arbeit”, in Geschichtliche Grundbegriffe. Historisches Lexikon zur politisch-sozialen Sprache in Deutschland, Bd.I, Stuttgart 1972, p.166.
6) WA8, 588(1521).
7) 루터의 탁상담화, in Johannes Schilling(Hg.), Luther zum Vergnugen(Stuttgart: Phillpp Reclam jun., 2008), p.37.
8) 1525년 〈슈바벤 농민의 12개 조항 요구〉로 시작해 그 해 5월 프랑켄하우젠 전투에서 토마스 뮌처가 죽기까지 보여준 루터의 태도는 이런 한계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루터는 경제 공동체인 농민들이 목사 선출권을 요구한 것은 영적 공동체의 직무와 권리를 요구한 것으로, 농민들이 칼을 든 것은 정치 공동체인 국가의 직무를 침범한 것으로 이해했다.

:: 필자 정보 - 최주훈
중앙루터교회 담임목사. 독일 레겐스부르크대학교(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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