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특집

상담자로서의 목회자
- 2017년 3월호

오래전 두 자매가 교역자실을 찾아왔다. 이들이 찾아온 이유는 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여든이 넘은 노모 때문이었다.
자매들의 말에 따르면, 어릴 때 아버지는 서울에 가서 사업을 하셨기에 자주 집을 비웠다. 그 때문인지 어머니와 아버지의 관계는 매우 좋지 않았다. 그 와중에 어머니와 삼촌이 매우 가까워졌다. 그사이 남동생이 태어났는데, 삼촌의 아들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이러한 가정의 불화로 말미암아 두 자매는 큰 상처를 받았고, 장성한 이후에는 어머니, 남동생과 연락을 단절하고 살았다. 그러다 최근 고향에 집안 명의의 큰 땅이 발견되었다. 그런데 그 땅을 자신들이 상속받으려면 어머니가 법정에서 남동생이 사생아라는 것을 증언해야 한다. 하지만 어머니가 자신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자, 자신들을 대신해 어머니를 설득해 달라고 목사를 찾아온 것이다.  
상담자인 목회자로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큰 고민이 아닐 수 없었다. 이때 성령께서 주신 생각은 ‘어머니에 대한 연민’이었다. 가장 사랑받고 지지받아야 하는 남편과 가족에게 외면당한 그 어머니의 삶이 참으로 안쓰러웠다. 먼저 어머니의 마음을 위로하고 싶었다.
두 자매에게 혹시 어머니의 입장에서 이 일을 생각해 보았느냐고 물었다. 딸들이 수십 년 만에 나타나서 “어머니가 되어 가지고 자식을 위해 이것 하나 못 해 줘요?”라고 다그칠 때, 어머니의 마음이 어땠을까를 생각해 보라고 권면했다. 지금까지 어머니를 홀대한 것과 오랫동안 돌보지 않은 것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하라고 말했다. 또한 목욕탕에 가서 어머니의 등이라도 밀어드리면서 그동안 자기들 때문에 얼마나 힘드셨는지 묻고 먼저 위로해 드리라 말했다. 잠깐 생각에 잠겼던 두 자매는 “느낀 바가 많습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이것이 목회 상담이다. 목회자는 자신에게 상담을 요청하는 사람들에게 신앙적으로 의미 있는 응답을 해 주어야 한다. 목회 상담을 통해 우리의 상담자 되시는 성령의 사역을 담당해야 한다. 내담자들을 위로·격려하는 것뿐만 아니라, 주님의 마음을 생각나게 하는 상담자가 되어야 한다.  

단기 상담
  전문 상담가의 관점에서 볼 때, 목회자가 할 수 있는 상담은 5회기 미만의 단기 상담이다. 일주일에 1회, 1시간 만나는 상담을 1회기라고 한다면, 상담 전문가가 아닌 목회자가 성도 한 사람을 상담할 수 있는 것은 5회기 미만, 즉 4차례 정도다. 만일 그 이상의 상담이 필요하다면 목회자는 반드시 전문 기독교 상담가에게 그 성도를 이첩(referral)해야 한다. 그것은 목회자의 사역 특성상 집중해서 오랫동안 한 사람을 상담하는 것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다른 성도들과의 형평성 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목회자의 상담은 가능하면 1-2회 이상을 넘지 않는 단기 상담이 바람직하다. 아울러 1회기 상담은 1시간을 초과하지 않아야 한다. 시간을 정해 두지 않으면 상담이 방향을 잃거나 초점 없이 흘러가 시간을 낭비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단기 상담을 통해 드러난 문제 해결에 집중하고, 거기에 얽히고 감추어진 정서적·관계적 문제들은 전문가에게 맡기라는 것이다.
신학적이며 윤리적인 상담
목회 상담에 있어 목회자는 기준을 분명히 세워야 한다. 그 기준은 신학적이면서 동시에 윤리적이어야 한다. 목회자이자 윤리학자였던 시카고대학의 단 브라우닝(Don Browning)은 다원주의 사회에서 한 영혼을 돌보는 목회자의 돌봄은 도덕적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목회자의 상담은 보편성과 도덕적 상식에 기초해 이루어져야 한다. 인간보다 돈, 관계보다 이익이 선행하는 성도들의 삶에 도덕적인 기준을 분명하게 제시해야 한다. 또한 목회자의 상담은 내담자 안에 있는 우상을 분별하는 것이어야 한다. 단순히 한 사람의 인생에 대한 자아실현적 가치의 성취를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거룩성과 우선순위를 세울 수 있도록 인도하고 이끌어야 한다. 
임상심리학자 폴 프루이저(Paul Pruyser)의 말처럼, 목회자는 모든 상담 사례들을 신학적으로 해석해야 할 권리와 의무를 가진다. 그러므로 목회자의 윤리적 관점은 목회자 자신이 몸담고 있는 교회의 신학 가치에 부합하는 것이어야 한다. 물론 교단과 교회의 신학 가치는 모든 신학의 근본이 되는 성경의 기준에 부합하는 것이어야 한다. 아울러 사회과학적 소양도 함께 갖추어야 한다. 그것은 인간 이해에 대한 기독교적 자원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이 시대의 구성원들을 이해하고 소통하기 위해서다.

목회 상담의 우선순위
목회자의 상담이 단기 상담이어야 한다면, 목회자는 자신의 상담이 주변이 아니라 핵심으로 바로 들어갈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내담자가 성취하기 원하는 바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영적 관계 회복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래서 목회 상담은 내담자의 사람됨, 내적·영적 통제력, 그리고 하나님이 주실 미래에 대한 소망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  
예컨대 위 사례의 경우, 목회자는 그 자매들로 하여금 현 시점에서 우선 돌아보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고, 영적 관점에서의 새로운 가치관으로 교정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일을 해야 한다. 그들의 우선순위는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나 존경, 혹은 신앙적 관점에서의 바른 헌신이 아니었다. 눈앞의 이익에만 관심을 두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들의 이익을 확보하겠다는 ‘탐욕’이었다. 이에 대해 목회자는 영적인 분별력을 가지고, 이들이 원하는 재산이 아니라 그들이 도달해야 할 화해와 성숙, 관계의 회복을 추구하도록 도전해야 한다. 

우상의 분별
영어 공부를 좋아하는 한 자매가 있다. 그녀는 출석하는 교회에서 영어 예배 봉사를 하면서 외국인들을 섬기고 있다.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치기도 한다. 이 자매가 미국 여행 중에 만났던 교포 형제와의 관계 때문에 우울한 마음을 안고 상담자를 찾아왔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미국 여행을 하면서 그 형제와 많은 시간을 보냈고, 좋아하게 되었다. 미국에 있는 그의 집에 찾아가 어머니를 만나 인사도 했다. 지금도 그 어머니와는 스마트폰을 통해 말씀으로 교제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그 형제와 좀처럼 안정된 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의 말이나 행동이 갑작스럽고 때로는 난폭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담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은 ‘공감’이다. 목회자의 상담에 영적인 우선순위가 있다 하더라도, 목회자가 그 문제를 경청하는 과정은 공감으로 채워져야 한다. 왜냐하면 한 영혼의 실패와 좌절, 우울과 고통에 대한 긍휼과 공감이 없다면 그것은 목회자의 상담일 수 없기 때문이다. 단기 상담이 제한된 시간 안에 서둘러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상담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공감을 거를 만큼 시급하게 달려야 하는 상담은 아니다. 만일 목회자의 상담에 공감이 결핍된다면 그 상담은 눈을 감고 이리저리 휘두르는 무서운 검이 될 수도 있다. 목회자는 우선 그 자매가 경험하고 있는 관계의 아픔에 대해 함께 아파하고, 영어에 대한 열정에 대해 축하하고, 교회에서의 봉사에 대해 귀한 섬김이라고 격려해 주어야 한다.
한 회기의 상담을 마무리할 즈음 어느 정도 공감과 신뢰가 형성되었다. 상담자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분별력에 따라, 그 자매의 우상에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영적으로, 의지적으로 따라가고 있는 영어에 대해서 지나치게 우상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물었다. 그녀는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지나치게 동경하고 있었고, 그 세계의 일부가 되고자 하는 열정이 결국 인간관계에 대한 자신의 판단력을 둔하게 만들었음을 고백했다. 

최적의 좌절
이것이 사랑 안에서의 직면(confrontation)이다. 심리학자 하인츠 코헛(Heinz Kouhut)의 용어를 빌리자면, 공감 안에서의 최적의 좌절(optimal frustration)이다. ‘최적의 좌절’이란 상담자가 지속적으로 공감하는 가운데, 상대방의 성장을 위해 조심스럽게 약점과 상처에 접근하는 것을 말한다. 필자가 이 자매에게 ‘혹시 영어가 자신에게 모든 것을 집중하게 하는 우상은 아닌지, 그리고 미국이나 미국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막연한 동경 때문에 인간관계에서 잘못된 것은 없었는지’ 물으며 문제에 접근한 것이 ‘최적의 좌절’의 예이다.
두 번째 회기를 마칠 즈음 상담자는 처음보다 좀 더 강도 높은 질문을 던졌다. 우선 상담자는 미국 여행 경비를 누가 부담했는지, 그리고 그 2주간의 여행이 어떤 여행이었는지 물었다. 비용은 한국에서 간 자매가 모두 부담했고, 두 사람은 한 방을 쓰면서 여행했다.
영어에 대한 집착, 미국에 대한 동경이 결국 하나님께서 결혼의 거룩한 연합을 위해 아껴 두신 순결을 희생시켜 버릴 만큼 큰 우상이 되고만 것이다. 이것은 거룩해야 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의무에 대한 방치다. 목회자는 이 상실을 내담자와 더불어 안타까워할 뿐만 아니라 또한 필요한 만큼 책망해야 한다.
결혼 이전에 성적인 결합은 하나님의 자녀가 해서는 안 될 행동이다. 그리고 일단 성적으로 결합이 이루어지고 나면 자매는 상대에 대한 이해력과 분별력을 잃게 되며, 그 관계에 더 종속된다. 반면 형제는 그것을 일순간의 쾌락으로 치부하며 상대를 업신여길 가능성이 크다. 이것이 그녀가 직면해야 하는 ‘최적의 좌절’이었다. 그리고 형제와의 관계가 안정적일 수 없었던 문제의 본질이었다.

온유한 상담
분별력을 가지고 오랜 우상을 상대화시킬 때, 비로소 그녀는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영적 여정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목회자의 진실한 사랑과 공감이다. 이 여정은 높은 난이도를 요구하는 영적 수술이며, 정교하고 조심스러운 사후 처방이 필요한 장기적 회복의 과정이다. 이를 위해 목회자는 기도와 지원을 약속하고, 비밀을 유지해야 한다. 그 일이 드러나지 않도록 입술의 파수꾼을 세워야 한다.
예수님께서도 한 젊은 부자 청년에게 변화를 요청하실 때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막 10:21)라고 말씀하셨다. 거짓 우상이 있고, 책망할 일이 있다 하더라도 목회자는 온유해야 한다. 단호하되 따뜻함을 잃지 않아야 한다.
실패하고 상처 받아 비틀거리는 성도는 두텁게 에워싸는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지 않고서는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어쩌면 이것은 죄를 지은 한 여성을 무섭게 책망만 하고 싶어 하는 설교자적 유혹을 떨쳐내는 일이다. 더불어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세밀한 사항들을 더 많이 묻고 싶어 하는 조사관으로서의 열망에 대한 자기 부정이다. 목회자는 상담을 하면서 지속적으로 자시을 부인해야 한다. 그것은 혼자 스스로 싸워야 할 영적 전쟁이기도 하다.

심방과 상담
목회자가 상담의 효과와 결과에 집착한다면, 자칫 상담을 자기 존재의 연장으로 여길 수도 있다. 상담의 결과가 생각보다 미미할 수도 있다. 그리고 상담을 잘못했을 경우, 오히려 성도들이 위축되거나 목회자로부터 멀어질 가능성도 있음을 염두해야 한다. 가정의 비밀을 노출시켰을 경우, 목회자가 그것을 다 안아 준다고 해도 성도 편에서는 오히려 위축되어 목회자가 인도하는 예배에 참석하기를 꺼려 하는 경우들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상담은 한 사람의 영혼을 면밀하게 살피는 과정이며, 개인에게 적합한 진단과 처방을 내리는 일이다. 때문에 그것을 일반화해 사람들을 교회에 많이 나오게 하겠다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야망이다. 한 사람에게 맞는 처방이 다른 사람에게는 맞지 않을 수도 있다. 종교개혁자 장 칼뱅이 유일하게 선한 교황이라고 불렀던 그레고리 대제는 상담과 돌봄의 개별적 원칙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종종 어떤 사람들에게 유익한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친다. 어떤 동물에게 좋은 약초가 다른 동물을 죽이기도 하고 - 말(馬)을 침착하게 만드는 휘파람이 망아지들을 날뛰게 하고 - 한 사람의 질병을 달래 주는 약이 다른 사람의 질병을 가중시키기도 한다”(Pastoral Care vol. 11).
목회에 있어서 심방을 중요하게 여겼던 청교도 목회자 리처드 백스터(Richard Baxter) 역시 성도들과의 개별적인 만남과 섬김이 바로 사람을 변화시키는 현장이라고 강조한다. 그의 저서 《참된 목자》(the Reformed Pastor)에서 그는 ‘목회적 돌봄’(pastoral care)이란 설교, 성례, 그리고 가정과 일터로 찾아가는 심방에 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말하는 심방이란 집중적인 심방을 의미하는 것으로 참된 목자는 성도들과 “슬픔과 눈물을 함께 나누고, 잘 경청하며, 비밀을 유지하고, 양심이 과도하게 요동할 때에도 검열관이 되지 말아야 한다.” 그는 후배 사역자들에게 설교가 만능이 아니라고 가르친다. 오히려 그는 공개적으로 설교의 불충분성을 지적하면서, 성도들과 함께 울고, 경청함으로써 그들을 존중하는 개별적 심방 사역을 강조한다.

“결론적으로 나는 공적인 설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예배 설교는 다수의 사람들을 회심시키기에 효과적인 방법일 수 있다. 그러나 내 경험에 비추어 보건대, 개인적인 가르침에 비해 회개시킬 수 있는 사람의 수도 그리 많지 않다. … 만일 우리가 이 의무를 소홀히 한다면, 아무리 오랫동안 연구하고 설교한다 할지라도 그 목적을 이루기는 힘들 것이다. 이 일은 우리 교인들의 행복을 위해 필요하다.” (리처드 백스터,《참된 목자》, pp.254-255)

상담과 심방이 서로 다른 것은 분명하지만, 이 둘은 서로를 필요로 한다. 더구나 목회자는 성도들의 삶에 적극적으로 찾아가서 심방하고 상담할 수 있는 고유한 특권이 있다. 목회자는 이런 개별적 심방과 상담에 익숙해야 한다. 백스터의 요청과 같이, 모든 영역에서 진지하고 성실한 열성을 가지고, 설득력 있는 태도로 성도들을 돌볼 때, 성도들이 행복하게 신앙생활을 해 나갈 수 있다. 목회자에게 있어 상담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적인 사역의 일부다.
목회자나 상담자의 한계는 분명하다. 한 상담자가 지적한 바와 같이 목회 상담은 병, 가난, 불의, 학대와 같은 인간사의 묵시적 현실 앞에 무기력해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지극히 제한되어 있다. 하지만 예일대학교의 목회상담학자였던 제임스 디터스는 상담은 “의미가 슬픔을, 전인적 회복이 해체를 극복하는” 소망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디터스의 말처럼 목회자는 상담을 통해 그 일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아픔을 공감해 주고, 앞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도록 격려해 줄 수 있다. 그들을 위로하며 공급하시는 하나님께 연결시킴으로써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에 문제에서 빠져 나와 자신의 궤도에 서도록 도울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목회자들은 희망의 사자이며 영광스러운 성령님의 조력자들이다.

:: 필자 정보 - 하재성
고려신학대학원 목회상담학 교수. 미국 밴더빌트대학교(Ph.D.). 저서로 《우울증, 슬픔과 함께 온 하나님의 선물》, 《강박적인 그리스도인》 등이 있다.

인신모독성 댓글, 광고성 댓글은 관리자가 임의로 삭제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품위를 지키는 댓글 문화를 이룹시다.
                          

독자의견 리스트